파주시장으로 일한 지 이제 갓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지방선거 기간에 만났던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당부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들의 요지는 분명했다. 시민과 소통하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부끄럽지 않은 시장이 되겠다고 화답하곤 했다. 시민의 관심과 신뢰없이 단체장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로 소통하고 변화하려면 일선 공무원을 중심으로 공직사회 모두 습관 자체가 변해야만 가능하다.

시민의 애로를 현장에서 접할 수 있는 지방 공무원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민의 눈에는 여전히 공무원 하면 '철밥통' 내지 '비리'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있다. 최근 사회의 굵직한 뉴스들의 한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룹도 공무원이다. 자신들의 안위만을 중시했던 이기주의가 그대로 곪아터진 것이라 생각한다. 일부에선 공직사회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국가혁신론까지 나오고 있다. 되새겨보면 최근 여러 사회 이슈의 원인도 국민의식이 아니라 공무원 문제가 더 많았다. 공직자는 변하지 않고 죄없는 국민만 혁신하려 했던 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공무원들의 변화없이는 단체장의 노력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요즘 파주시 공무원들에게 "시민에겐 충성하고 시장과는 싸워라"고 말하고 있다. 시민의 이익과 복리가 명분이라면 장(長)과의 한판 승부도 당연히 필요하다는 의미로 던진 말이다. 시민의 목소리는 뒤로 한 채 장(長)에게만 잘보이려 한다면 공무원으로서의 자질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처럼 공직자는 백성(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국민과 지역주민을 위해 열정을 다 바쳐 일하면 그것이 최선이다. 정책이 공익에 벗어나거나 시민의 의중을 비켜가려 하면 장(長)에게 직언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 지역의 대표를 뽑아준 사람이 바로 시민이기 때문이다.

국민과 시민이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고 그에게 공직자들을 인선토록 권한을 주는 이유는 국민의 복지와 안녕을 잘 챙겨 달라는 의미이다. 장(長)의 영광과 안위를 위해 피 같은 세금을 쏟아가며 투표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누가 뭐래도 공직자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어야 한다. 공무원들이 가장 먼저 국민부터 챙겨야 하는 근거이자 존재의 이유다.

한참 지난 이야기지만 한 서울시 공무원이 퇴직을 앞에 두고 '공무원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공직이란 게 국민의 안위와 복리를 위해 몸바칠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말이다. 공직자가 극성스럽게 자신을 알리지 않아도 시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면 시민이 먼저 그를 알아볼 것이다.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의미의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공직자에게 있어선 아부와 줄서기가 아니라 국민 섬기는 일을 충실히 할 때 제대로 발현될 수 있다.

공직자의 능력은 국민을 섬기고, 섬김에 있어 공익에 대한 소신과 철학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모르는 공무원은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다. 공직자의 행위는 시민복리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크나큰 폐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공무원이 국민의 공복으로서 두려운 마음을 갖고 공직의 최우선 목표를 국민에 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직이라는 직업이 다른 직군과 가장 큰 차이는 명예를 먹고 사는 직업이란 점이다. 공무원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선 올곧은 의지와 국민을 우선시하는 마음이 뒤따라야 한다. 시민의 복리를 위해 장(長)과 맞장 뜰 수 있는 패기 넘치는 공무원이 넘쳐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부턴 "이건 아닙니다"라고 누가 시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올지 기대해 볼 참이다.

/이재홍 파주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