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전형필 선생 등 일제강점기 불구 ‘문화의 힘’ 계승하려 노력
美 메트로폴리탄·英 바티칸센터 해외기관들 재원 상당부분 민간 차지
아직 척박한 한국 문화예술계도 대중들의 자발적 참여·관심 많아져야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랐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를 통해 ‘우리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힘 없는 약소국으로,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강대국에 휘둘려야 했던 억울함이 가슴 속 한으로 맺혔을 텐데, 그럼에도 선생은 힘이 아닌 아름다움을 원했다. 백범이 말한 아름다움의 바탕에는 문화가 중심이었다.

김구 선생 뿐만이 아니다. 우리 역사는 문화를 사랑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문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창한 이들이 여럿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민족 문화가 말살되던 일제 강점기, 자신의 재력을 쏟아부어 우리 문화 수호에 앞장섰다. 서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고 그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거액을 지불하더라도 일본에 뺏긴 문화재를 되찾으려 노력했고 문화재 보존과 민족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간송미술관을 건립했다.

‘물질은 유한하고 정신은 무한하다. 그 정신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문화다’라고 말한 이는 놀랍게도 삼성을 세운 호암 이병철 회장이다.

입지전적인 경영자로만 알려진 그가 사실은 외화벌이용으로 해외 밀반출이 일상이었던 우리 문화재를 지켰고, 호암미술관을 통해 우리의 전통 미술을 누구나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걸 아는 이는 별로 없다.

한국의 ‘메디치’로 불리는 금호아시아나 박성용 명예회장은 음악 영재들이 세계 무대에 진출할 수 있게끔 길을 터줬다. 그를 통해 정경화, 정명훈, 정명화, 백혜선, 백건우, 장영주 등 세계적 음악가들이 배출됐고 아낌없는 그의 문화사랑은 기업을 주축으로 한 우리나라 메세나 운동의 태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부로 잇는 문화 혈맥’은 바로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스스로 문화를 꽃피우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우리는 그 희망을 ‘자발적 문화기부’에서 찾기로 했다.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기부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빈자에 대한 구휼은 오랜 세월 농경사회를 유지해 온 미덕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중들의 상부상조 정신은 지도층의 박약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신해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국난을 극복하는 결정적 힘으로 작용했다. IMF 시절 금 모으기 운동도 국난에 직면한 국가에 대한 민중의 기부행위였다.

그러나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대중의 기부는 취약하다. 전통적으로 지배계층의 정신적 사치로 여겨진 문화예술 분야는 대중의 참여를 제한했다.

세상이 변했다. 이제 대중은 문화의 시대를 산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문화는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척도가 됐다. 조창희 경기문화재단 대표 같은 이는 “삶이 문화다”라고 단언할 정도다. 문화 소비의 형태가 관조에서 참여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문화가 신통치 않으면 삶이 우울한 시대로, 우리 문화 기반은 그 자체로 우울하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과 영국의 바티칸센터, 프랑스의 퐁피두센터 등 해외 유수의 문화기관들은 국가 보조금 외에도 운영 재원의 상당 부분이 민간 기부로 조성된 수입이 차지한다. 민간 기부를 통해 탄탄한 문화 재정 기반을 구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가를 지원하고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굳건하게 지켜나간다.

그들이 오늘날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시간 사회 전반에서 다져 온 문화의 힘이 8할이다.

지금도 돈이 없어 예술가들이 예술을 포기하고, 때로는 삶을 버리기도 하는 게 척박한 우리 문화예술계의 현실이다. 우리 스스로 문화를 지키고 발전을 도모하는 행위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제 막, 문화기부의 작은 씨앗이 곳곳에 뿌려지고 있다. 그 씨앗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우리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공지영·황성규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