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시부문 당선소감/성영희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시부문 당선소감/성영희 지면기사

    당선통보를 받는 순간 일생을 통틀어 가장 즐거운 귀를 경험했습니다. 수화기 반대쪽 귀를 다른 한 손으로 감싸며 이 순간이 제발 꿈으로 빠져 나가지 않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깜깜하게 닫혀 있던 귀를 열고 그 안쪽에 싱싱한 해조류 한포기 착생하는 듯 짭조름한 눈물이 고였습니다. 돌에서도 꽃이 필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미역귀, 바짝 마른 미역귀를 물에 담그면 양푼 가득 푸른 바다는 수돗물에서도 탱탱하게 부풀곤 했습니다. 그건 마지막 숨결들을 풀어 놓는 일, 마르기 전의 물살을 기억해내는 일이었습니다. 제 몸을 원래대로 부풀리는 일, 잊지 않겠습니다. 시란 세찬 물길 속에서 소용돌이로 붙어사는 미역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흔들릴수록 어지럽고 어지러울수록 세찬 파도가 더욱 그리운 돌미역 같은 것. 귀를 잃고 난청을 앓는 돌과 바짝 마르면서 웅크린 미역귀처럼 다시 파도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의 최종심에서 탈락하면서 깜깜하게 닫혀가던 내 귀에 천 번은 더 흔들려야 비로소 한 줄기 물살로 피어나는 미역귀처럼, 귀를 열고 다시 겸허해지라는 파도의 전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주일은 뒤늦은 세례를 받은 날이었습니다. 길고 험한 파도를 지나 기도하는 삶을 선택한 저에게 찾아온 응답이 순은으로 아름답군요. 부족한 시를 끝까지 놓지 않고 격려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경인일보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또한 시 쓰는 딸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기시며 마지막손을 꼭 쥐어주셨던 아버지와 홀로 남으신 어머니께 가장 먼저 이 영광을 드립니다. 시 쓴다고 아내로 엄마로 부족하기만 했던 저에게 묵묵히 응원의 힘을 실어준 남편과 딸 다영이와 아들 연욱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 전하며 늘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주신 문우님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합니다.

  •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시 심사평/신달자 시인·유성호 평론가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시 심사평/신달자 시인·유성호 평론가 지면기사

    바위·미역이 엮은 바다풍경 '우리모습'2017년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는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다. 그 매체적 위상이 하루하루 높아져가는 경인일보에 수준 높은 작품들이 이렇게 많이 투고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소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부쳐진 작품들을 여러 차례 읽어가면서, 많은 작품이 만만찮은 안목과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시단에서 주류를 형성한 시풍을 답습하거나 판박이에 가까운 관습적 언어를 보여주는 대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심의를 쏟은 것도 썩 긍정적으로 생각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한국 시의 좌표를 새롭게 개척해가려는 생성적 면모일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해서 읽은 분들을 가나다순으로 밝히면 강성애, 고은진주, 김기란, 김문숙, 나혜진, 성영희, 오세정, 이동우, 임상갑, 하예주 씨 등이었다. 오랜 토론과 숙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성영희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당선작으로 결정된 성영희 씨의 '미역귀'는, 바위에 달라붙은 미역줄기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을 활용하여 인생론적 깊이를 드러낸 수작이다. '귀'로 살아가는 미역은 비록 깜깜한 청력을 가졌을지라도 언제나 파도처럼 일어서는 '돌의 꽃'이다. 그런데 미역을 따고나면 바위는 난청을 앓게 되고, 그렇게 바위와 미역이 구성하는 바다 풍경이 잠에서 깬 귀를 열어 다시 햇살을 읽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쫑긋쫑긋' 삶의 이치를 듣게 되는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은유해준다. 다른 출품작들도 균질적인 성취를 보여 크게 믿음이 갔다. 더욱 성숙한 시편들로 경인일보의 위상을 높여주기 바란다.당선작에 들지는 못했지만, 구체성과 심미성을 갖춘 언어를 통해 자신만의 미학적 성채를 구축한 사례를 많이 발견하였다는 점을 덧붙인다. 대상을 좀 더 일상 쪽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타자들을 애정 깊게 응시한 결실들도 많았다. 다음 기회에 더 풍성하고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이번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마음 깊이 당부 드린다.■심사위원신달자(시인,

  •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소설부문 심사평/김별아 소설가·방민호 평론가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소설부문 심사평/김별아 소설가·방민호 평론가 지면기사

    신인의 패기 '호스트바' 정면으로 다뤄"욕망과 교환의 세계를 묘파한 수작."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심지어 일말의 개연성도 없이 지독히 작위적인 하급이다. 이런 마당에 기어이 쓰는, 쓸 수밖에 없는 소설이라니! 161편의 응모작 중 심사자들이 마지막에 논의한 작품은 4편이다. '시취의 기록'은 문장이나 표현은 안정적이나 소재들이 분산되어 명료한 주제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불분명한 복선 등 혼란스러운 디테일을 정돈할 필요가 있다. '초대'는 안정된 문장에 소설적인 구조를 갖췄으나 결말 처리가 미흡하고 주제가 이야기를 앞서 끌고 나가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포근하고 복슬복슬한'은 있고도 없는 '토끼'를 잡는 헛짓을 통해 대기업이라는 조직의 허상을 드러낸 우화다. 일단 잘 읽히고 세부적인 장면 묘사가 생생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경영논리의 야만성을 드러내기에는 비유와 상징이 허술하고 철지난 것이라는 점이 아쉬웠다. '켄의 세계'는 이를테면 황석영의 1974년 작 '장사의 꿈'의 2016년 판으로, 근래에 뜻하지 않게 온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까지 엿보게 된 '호스트바'와 '선수'의 세계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전망과 출구를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욕망과 교환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파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인다운 패기와 신인답지 않은 성실성이 당선작으로 결정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세상은 중하고 급한 문제들로 가득 차 있고 많은 소설들이 세상보다 뒤처진 채 허덕거린다. 시대와 세태의 변화를 예리하게 감지하는 촉수를 곤두세우고 다만 반걸음이라도 세상을 앞서 나가려 애써야 마땅할 터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당선자를 포함한 모든 쓰는 이들의 용맹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김별아(소설가)방민호(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교수)심사중인 김별아(왼쪽) 소설가와 방민호 평론가.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시부분 당선작/성영희 '미역귀'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시부분 당선작/성영희 '미역귀' 지면기사

    미역은 귀로 산다바위를 파고 듣는 미역줄기들견내량 세찬 물길에 소용돌이로 붙어살다가12첩 반상에 진수(珍羞)로 올려 졌다고 했던가깜깜한 청력으로도 파도처럼 일어서는 돌의 꽃귀로 자생하는 유연한 물살은해초들의 텃밭 아닐까 미역을 따고나면 바위는 한동안 난청을 앓는다돌의 포자인가,물의 갈기인가, 움켜쥔 귀를 놓으면어지러운 소리들은 수면 위로 올라와 물결이 된다 파도가 지날 때마다온몸으로 흘려 쓰는 해초들의 수중악보흘려 쓴 음표라고 함부로 고쳐 부르지 마라얇고 가느다란 음파로도 춤을 추는 물의 하체다저 깊은 곳으로부터 헤엄쳐 온 물의 후음이긴 파도를 펼치는 시간잠에서 깬 귀들이 쫑긋쫑긋 햇살을 읽는다물결을 말리면 저런 모양이 될까햇살을 만나면 야멸치게 물의 뼈를 버리는바짝 마른 파도 한 뭇

  •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총평 지면기사

    일상속 소재 끈질긴 관찰과 상상 즐겨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은 최은의 단편소설 '켄의 세계'와 성영희의 시 '미역귀'다.소설 심사위원들은 예·본심 모두 고심을 거듭했다. 160여편의 원고를 거듭 살펴본 후에 '켄의 세계'를 선택했다. 방민호 심사위원은 "자신의 세계를 잘 세워 올린 소설"이라며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평했다. 당선자 최은 씨는 소설쓰기를 시작한 지 2년 남짓 된 신예로, 직장에 다니면서 쓰고있다. 최씨는 "출판사에 다닌 경험이 있어 책과 가까웠고, 소설강좌를 들으면서 쓰기 시작했다" 며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것들 중 마음에 담기는 것에 상상력을 더해 소설로 만드는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시부문 당선자 성영희 씨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시쓰기를 좋아했다고 밝혔다. 그는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라며 "현재는 국문학 공부를 하며 시를 쓰고 있다"고 전했다. 일상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소재로 한 생활시를 즐겨 쓰던 그는 식탁 위에 오른 미역귀를 끈질기게 관찰하고 상상했다. 성 씨는 "고향이 바다라 바다를 소재로 한 시가 많았다. 바다에서 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시에 담겼다"고 말했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소감/최은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소감/최은 지면기사

    정신없이 바쁘던 오후, 진동하는 핸드폰을 보고도 못 받았다. 일하는 데가 창구라 개인 전화는 편히 못 받는 편이다. 곧이어 울리는 회사 전화는 재깍 받아, 매번 하는 똑같은 멘트를 읊었다. 말하며 그간 신문사 기자 고객은 못 접해봤다고 생각하는데, 당선 소식이었다. 그날 오후는 업무 실수를 하지 않았나 두 번, 세 번 살펴봐야 했다. 대학 졸업 후 어떤 식으로든 거의 쭉 돈을 벌어왔다. 모든 사회인이 그렇듯 때론 똥밭을 구른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이 좋았다. 자신의 어떤 것을 세계에 내다 팔며 자기를 먹여 살리는 일은 그 자체 지고의 예술이다. 운 좋게 진짜 예술의 영역에 첫 발을 내딛게 됐지만, 평범한 직장인일 수 있는 사람이 예술도 잘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예술은, 좋은 글은 눈먼 채 천상을 더듬는 태도가 아닌 눈이 빠질 정도로 세상을 노려보고, 때론 흙바닥에 혀를 대는 용기이기 때문이다.설탕과자 같은 글, 반대로 단순한 천박과 잔인을 쿨함이라 착각하는 글, 남들 다 살기 힘든데 자기연민이 뚝뚝 흘러넘치는 글, 자족이 소통보다 앞서는 글, 쓰나마나한 글은 안 쓸 거다. 이 화려한 영상 시대에 글이라는 지난 세기의 표현 방식을 붙들고 있다는,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좌표 파악에서 늘 출발할 것이다. 기계처럼 바지런히 써 석(石) 중에 옥(玉)을 독자 분들께 최대한 빨리 내밀고 싶다.졸고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 강영숙 선생님, 격려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소설-김환·시-김이솝 수상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소설-김환·시-김이솝 수상 지면기사

    '201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21일 오후 수원 인계동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단편소설 부문 심사를 맡은 노희준·진연주·서진연 소설가,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최동호·이승하·권성훈 시인과 송광석 경인일보 대표이사 사장 및 임직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단편소설 '폭발'로 당선된 김환씨는 "졸작을 뽑아주셔서 감사하다. 쉬지 않고 쓰겠다"는 소감을 남겼다.소설부문 노희준 심사위원은 "세차장에서는 겨울에 찬물을 쓰는데, 그 이유는 추울 때는 더운물이 더 빨리 얼기 때문"이라며 "문학의 길을 걷다 보면 힘들 때가 많겠지만, 겨울의 찬물처럼 쓰길 바란다"고 전했다.시 '대봉'으로 당선된 김이솝씨는 "상을 받는 자리가 아니고, 시세계의 신내림을 받는 자리라 생각한다"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시부문 최동호 심사위원은 박목월 시인의 말을 인용해 "좋은 작품을 쓰더라도 세상이 쉽게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며 "당선자들 모두 크고, 넓고, 높이 나아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송광석 사장은 축사를 통해 "문학계와 언론계가 모두 어렵다보니 신춘문예를 하다가도 그만두는 신문사가 많지만, 아무리 세상이 척박해도 신문사로서의 공적기능을 다하기 위해 신춘문예를 포기할 수 없다"며 "당선자들은 시인으로, 소설가로 오늘 다시 태어난 것이므로 힘차게 문학의 길을 정진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당선자에게는 상패와 소설부문 상금 500만원, 시 부문 상금 300만원이 수여됐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21일 오후 경인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시 '대봉'으로 당선된 김이솝(왼쪽)씨와 단편소설 '폭발'로 당선된 김환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김환(단편소설)·김이솝(시) 당선 지면기사

    ■ 단편소설=폭발(김환) ■ 시=대봉(김이솝)■ 심사위원=소설 류보선·노희준, 시 최동호 이승하 ※시상식은 1월21일 경인일보 수원본사 사옥에서 개최합니다.

  •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폭발/김 환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폭발/김 환 지면기사

    거인이 오고 있다큰 소리를 내는 그의 의중은 알수없다기다리며 거울 위에 자화상을 그렸다 매번 왜곡되는 거울회화像을 고정하는 기계장치를 달때거인의 발소리가 달려왔다그의 귀에 저 멀리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출 수 없는 흥분이 그의 몸 전체를 휘감았다. 그는 신이 나서 좁은 방 안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거인이 왔다! 이번에야말로 분명 거인이다! 쿵쿵대는 이 소리가 거인의 발소리가 아닐 리가 없다!”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또한 처음보다 훨씬 더 규칙적이었다. 거인이 일정한 속도로 한 걸음씩 도시를 가로질러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거인이 내리는 결론이 무엇이든 그는 거인의 선택과 처분에 모든 것을 내맡길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었다. 소리의 크기로 보아 거인의 거대한 발바닥이 자신의 집 창문을 캄캄하게 가릴 때까지 채 몇 분이 남지 않았음을 느낀 그는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일정한 예의와 격식을 갖추고 반갑게 거인을 맞이할 목적도 있었지만, 주체할 바 없이 끝내주는 기분을 자신이든 주변이든 무엇이든 바꿔놓음으로써 완전히 새롭게 만끽하고 싶은 이유가 더 컸다.“쾅!”“이런! 다 왔다! 거의 다 왔어!”놀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거인이 발걸음을 내딛자, 그저 가만히 기다리다가는 정말 숨이 터져 죽을 지경이 되어 그는 거인처럼 성큼성큼 온 방안을 빠르게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두 팔을 있는 대로 크게 흔들며 발로는 방바닥을 있는 힘껏 굴러가면서 십 수 걸음을 걷고 나자 두 발 뒤꿈치가 금세 아파왔다. 거인의 걸음은 그만 걷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주저앉아서 연신 뒤꿈치를 손으로 문질러 대면서, 그래도 웃음만은 결코 멈출 수 없어 그는 고통의 신음 중간중간에 환희의 깨웃음을 간헐적으로 섞어 넣었다. 그러나 여유를 너무 부렸다. 이 정도 시간이면 이제 거인의 다음 발걸음은 내 차례다. 고통이 다 가시지 않은 발로 그는 절뚝거리며 빠르게 창문으로 걸어가서 커튼에 바싹 귀를 댔다. 아니, 귀가

  •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소감/김 환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소감/김 환 지면기사

    소설의 등 뒤에 아무 것도 없는 채로, 아무 것도 없게 쓰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래와 기원은 서사를 분명한 목적지에 이르는 길 위를 걸어가도록 손쉽게 강제한다. 안락한 강제성 안에서 서사는 쓰는 자의 오직 물리적일 뿐인 노력과 의지와 수고에 정확히 부합하는 줄거리만을 자신의 몸으로 가진다. 그러나, 그러므로, 그것으로 끝이다. 서사를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소설 안에서 서사를 정지시켜야 한다. 쓰는 자의 기억과 기대조차도 일말의 소환될 여지가 없이 정지된 서사는 쓴다는 행위, 쓰고 있다는 것, 그렇게 써 있다는 것 자체를 소설 요소의 가장 우위에 놓는다. 정지된 서사는 정지되어 있으므로 당도할 분명한 목적지를 갖지 않는다. 도무지 이를 데가 없는 길 위에 있는 서사는 그 순간, 하나의 이미지, 혹은 한 편의 시가 된다. 이것이 끝나지 않는 서사로서 소설의 핵심이다.소설의 등 뒤에 아무 것도 없는 채로, 아무 것도 없게 쓰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동시에 그것이 끝이다. 시작과, 그것과 동일한 끝 사이에서 쓰는 자는 오로지 주사위 놀이만을 할 뿐인 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나의 글을 읽어 준 타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심사위원들에게 더없이 감사하다. 그리고 언제나 나와 함께 그가 서 있었으며, 지금도 서 있다.김환

  •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대봉/김이솝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대봉/김이솝 지면기사

    파르티잔들이 노모의 흐린 눈에 가을을 찔러 넣는다.턱밑에 은빛 강물을 가두고 은어 떼를 몰고 간다.쿵! 폭발하는 나무들.온통 달거리 중인 대봉 밭에감잎 진다.며느리가 먹여주고 있는 대봉을 다 핥지 못하고뚝뚝, 생혈(生血)을 떨구는 어머니.남편과 아들이 묻힌 지리산 골짜기유골을 찾을 때까진 살아 있어야 한다고삽을 놓고 우는 섬진강변.귀를 묻고 돌아오는 저녁.

  •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평/류보선 교수·노희준 소설가

    [2016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평/류보선 교수·노희준 소설가 지면기사

    모든 미학은 아슬아슬함을 추구한다. 표면장력이랄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완벽한 결함’이나 ‘불가능성의 증명’에 가깝다. 종종 절묘하게 모자란 상태가 극대화된 긴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본심에 올라온 응모작은 쉽게 분류됐다. 안정성이 뛰어난 작품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 전자가 골고루 잘하지만 이렇다 할 특기는 없는 모범생의 성적표 같았다면, 후자는 무림으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용기와 내공이 불안한 문하생의 대련 같았달까. 취향 판단으로 흘러서는 안되겠기에 둘 사이의 간극에서 우열을 가리기가 몹시 까다로운 심사였다. 그럼에도 안주보다는 모험에, 현상태보다는 가능성에 손을 들어주자는 쪽으로 협의가 이루어졌다.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아홉 편이었다.‘이제는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인터뷰의 형식으로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사변성과 허구성을 버무리려는 의도까지는 좋았으나 그 과정에서 톤이 흔들린다. 블랙코미디의 도입은 자구책일뿐 해결책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특정 기성작가의 작품경향이 엿보인다는 점도 당선작으로 뽑기를 망설이게 했다.‘요한의 사례’는 교차시점을 사용하여 사실의 광기가 아닌 진술의 광기가 어떤 식으로 확산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구조를 갖추었으나 그에 걸맞은 스토리의 참신성을 확보하지 못하여 점차 클리셰로 함몰되어가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두 작품 모두 자신의 힘을 감당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해머를 날려버리는 회전던지기 선수를 보는듯했달까.‘폭발’은 실험적인 서사구조를 떠받치기에 충분한 진지함과 치열함을 갖추고 있었다. 적당히 비워놓음으로써 형상화하는 핍진성의 측면에서도 세월이 엿보였다. 다만 이러한 내적질서를 감안할 때 결말에 반복해 등장하는 거인은 실망스럽다못해 생뚱맞았다. 결말만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뽑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심사위원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교수)노희준(소설가)류보선(왼쪽) 교수와 노희준 소설가가 소설부문 평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