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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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분단의 기억·(2)] '철거 기로'에 선 접경지 폐철교 지면기사
대한민국 최전방인 파주와 연천을 가기 위해선 거쳐야 할 '관문'들이 있었다. 갈라진 남·북한을 관통해 흐르는 한탄강과 임진강, 이들을 횡단하기 위해 각 지역에 설치된 '철교'들은 100년 이상을 그 자리에 지키며 인력 수송과 물자 보급에 쓰였다. 철교는 한 세기를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숱한 세월의 파고 속에 일제 수탈의 아픔을 겪고,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땐 온 몸이 찢기는 생채기가 나기도 했다. 휴전된 이후엔 접경지역 주민들의 통근과 생계를 책임지는 삶의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한반도의 근대사를 온 몸으로 견뎌 낸 철교는 이제 '고물' 취급을 받는다. 경기도에 있는 많은 철교들이 철거 위기에 놓였다. 그 쓰임과 사용 연한이 다했다는 것이다.그런데 생사고락을 함께 견뎌 온 지역 주민들은 격렬히 반대한다. 세상은 낡고 쓸모 없어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철교와 함께해 온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한다. 도대체 철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떤 역사를 지녔길래,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보존에 나섰을까.한탄강·임진강 관통하며 100년 이상 남북 물자·인력 수송한 철교일제 수탈·한국전쟁 겪으며 생채기… 역할 다하고 흉물 취급 '해체 위기'2019년 운행 중단 '한탄철교' 주민들이 나서 '문화재적 가치' 보존 주장연천군 "철도공단과 협의" 한발 물러나… 산책로·자전거길 활용 모색중'대광리 철교' 사실상 방치… '임진강 철교' 남북관계 경색에 활용 주춤"원형 훼손 등 직접적 손상 진행… 등록문화재 지정 반드시 필요" ■ 내 아버지뻘, 연천 한탄철교연천 한탄철교를 찾았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 3월까지 열차가 운행된 바 있다. 동두천에서 연천의 중심인 전곡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3가지 다리를 만나야 한다. 한탄강을 사이에 끼고 한탄대교와 (구)한탄교 그리고 한탄철교다. 앞선 두 다리에는 차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는 것과 달리 철교 인근은 다리 구조물 군데군데가 시뻘겋게 녹이 슬고 철교 인근이 잡초에 뒤덮여있었다.철교 끝에는 본래 '한탄강역'이라는 정거장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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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기억 '용치'… 유산으로써 재평가 시선 지면기사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친 한반도의 소망은 '평화'다. 우리의 전쟁은 아직 정전상태이며 남이든, 북이든 정권이 바뀌거나 국제정세가 요동치면 한반도의 평화는 언제라도 깨지는 유리그릇과도 같은 신세다.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그중에서도 갈라진 한반도의 반쪽, 북한과 가장 많은 경계를 접하고 있는 경기도에 우리가 산다. 그래서 경기도에는 한국전쟁의 상흔과 분단으로 인한 가슴 아픈 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경인일보가 한국전쟁과 분단의 기억을 좇아 일상 속에 잔존하는 전쟁·분단의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첫 번째로 마주한 문화유산은 '용치'다.용치(龍齒)는 용의 이빨을 닮았다는 데서 이름 붙여졌다. 해외에서도 드래곤 티스(Dragon's Teeth)로 불린다. 주로 전쟁 중 장갑차, 전차가 침입하는 통로를 막는 대전차장애물의 한 종류다. 그래서 주로 하천가를 비롯해 하천과 연결된 육지 등 대전차 등의 예상 침투로에 설치된다.우리나라 용치가 언제 설치됐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김신조 사건이라 불리는 1·21사태 이후로 남북 대치가 극심해졌던 70년대 초를 추정할 뿐이다. 경기도 내 조사된 용치들은 하나당 높이가 최소 1.5m 이상이며 최대 2m가 훌쩍 넘는 것도 있다. 주로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북부지역에 분포돼 있고 국방부가 관리하는 군사시설에 속한다.하천에 주로 설치된 용치들이 집중호우 때 물길을 막아 인근 지역을 침수시킨 범람의 원인이라는 지적에 한때 경기도와 용치가 있는 시군에선 군과 협의해 일부를 철거하기도 했다.정전 중인 한반도, 용치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한 군사시설이라는 국방부와 일상의 불편이라는 주민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용치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부였다면, 분단을 상징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유산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새로운 시선이 최근의 모습이다. → 관련기획 11면([전쟁과 분단의 기억·(1)] 대전차장애물 '용치') /공지영·신현정기자 jyg@kyeongin.com용의 이빨이란 뜻인 '용치(龍齒)'는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대남 도발을 상정해 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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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분단의 기억·(1)] 대전차장애물 '용치' 지면기사
한국전쟁 후 분단의 부산물로 태어났다. 작물을 심는 논밭에, 매일 걷는 산책길에, 가족과 함께 찾았던 캠핑장에 늘 우뚝 서 있었지만, 아무에게도 이름을 불려본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안에서 창밖의 한탄강을 바라보던 한 주민이 강가에 줄지어 선 '그것'들을 발견했다. 도대체 무엇이길래, 커다란 돌기둥들이 저토록 규칙적인 모양으로 서 있을까. 그는 궁금했다. 혹시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들이라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경기문화재연구원은 그것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용치'가 세상에 그 이름을 불렸다.'경기도 최대규모' 고양 공릉천 지영교인근까지 1km 넘게 이어져 스산한 풍경1970년대 설치 이래 주민들에겐 '일상' 경기도에 있는 용치 중 최대 규모라는 고양 공릉천의 지영교 인근을 찾았다. 지영교에 들어서자마자 성인 남성 어깨 높이의 큰 돌기둥들이 일렬로 늘어선 풍경이 펼쳐졌다. 용치였다. 지영교 아래를 관통해 인근 경작지까지 1km 넘게 이어진 풍경은 처음 보는 이에겐 기괴함 마저 들게 했다. 공릉천 산책로에도 용치가 서 있었는데, 그 사이를 걷으려니 선뜻 발을 내딛기가 어려웠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와 무성하게 자란 갈대들로 스산함을 더한 탓도 있지만, 사람 키만한 돌기둥이 같은 모양새로 선 풍경은 용치가 설치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이에겐 기괴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용치(龍齒)'는 용의 이빨(Dragon's Teeth)을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대전차장애물의 한 종류로, 적군의 길목을 막기 위해 설치됐다. 장갑차, 전차 등이 지나갈 예상 침투로에 둔 콘크리트 구조물로 된 걸림돌 역할을 한다.용치가 언제부터 설치됐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분단된 이후 대치국면이 극에 달했던 1970년대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일명 '1·21 사태(김신조 사건)'로 불리는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습격사건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과의 전면전을 대비하기 위해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설치했다는 목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