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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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삐걱이는 노인처럼, 쇠퇴를 마주하다 [경기도&미술관·(5)] 지면기사
양정욱의 '노인이 많은 병원 302호 : 기억하는 사람' 힘겹게 식사·치매 오래된 목재로 형상화 노화의 과정 은유적으로 녹여 '공감' 의미누구나 노년을 맞는다.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우리에게 더더욱 노년의 삶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가의 시선에서 노인의 시간은 과연 어떤 형상으로 담길 수 있을까? '노인이 많은 병원 302호 : 기억하는 사람'은 느린 움직임으로 늙은 환자의 시간에 우리를 이끈다.작가 양정욱의 전작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일상의 면면을 채우는 삶의 모습들을 형상화한다. 작가는 일상의 부분들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삶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면모를 사유하고 형태와 움직임으로 구사한다. 이러한 작업은 이야기를 수집하고 구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지나쳐 버리기 쉬운 순간이나 부분, 혹은 종업원이나 안내원, 경비원과 같이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주목받지 않는 이들의 직업에 대한 관찰로부터 이야기를 구상하고 소소한 깨달음을 공유한다. 이 이야기들은 작가가 수작업한 목재의 추상적 구조와 전동장치의 기계적 움직임, 역학적 리듬 등을 통해 작품으로 재현된다.작가의 작품에서 목재는 대개 자연스러운 무늬와 휘어짐을 가진 오래된 나무이며, 목재의 움직임은 거창하고 매끄러운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정밀하고 반복적인 운동과 이따금씩 삐거덕거리는 움직임으로 묘사된다. 작품들은 '서서 일하는 사람', '그는 선이 긴 유선전화기로 한참을 설명했다',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 '날벌레가 알려준 균형 전문가의 길' 등과 같이 시적인 제목으로 서사적 깊이를 더한다. 평범했던 일상의 순간들이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을 통해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와 인간적인 감정으로 전해진다.'기억하는 사람'은 작가가 늙은 환자들의 모습에서 힘겹게 먹거나, 침침한 눈으로 보거나,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등의 특징을 표현한 '노인이 많은 병원 302호' 연작 중 하나이다. 기력이 쇠한 노인의 신체와 움직임은 작품에서 느리게 돌아가는 구동력, 삐걱거리는 소리와 동작, 깜빡이는 기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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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했던 1980년대, 폭력의 시대를 고발하다 [경기도&미술관·(4)] 지면기사
'안창홍의 위험한 놀이' 자전적 이야기·시대정신으로 미술계 주목 아이들 전쟁놀이 빗대 '참혹한 현실' 표현 제각각 개성있는 가면 등 인간 군상 축소안창홍이 그리는 현실 세계는 적나라하기에 때로는 더욱 애달프다. 그는 자전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화폭에 가감 없이 쏟아내면서도 시대정신을 외면하지 않은 작품으로 동시대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더불어 '가족사진', '위험한 놀이', '49인의 명상'과 같은 독보적인 개성을 갖춘 연작을 발표하며 한국 미술계에 걸출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소위 말하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 후 그림에 매진하며 'POINT현대미술회', '현실과 발언'과 같은 그룹에서 활동하였다. 1989년에는 경기도 양평에 터를 잡고 지금까지 왕성히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경기도미술관 소장품인 '위험한 놀이'는 안창홍의 초기 연작에 속한 작품이다. '위험한 놀이' 연작은 아이들이 행하는 전쟁놀이에 빗대어 인간의 본능적인 폭력성과 참혹한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벌판에서 아이들의 '위험한 놀이'가 한창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창과 칼을 손에 쥐고 쓰러진 인형 더미를 딛고 서 있다. 들판 위 늘어선 기하학적인 구조물과 얼굴과 표정을 가면으로 가린 채 익명성을 띤 아이들의 모습은 언뜻 비디오 게임의 한 장면처럼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하지만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생명력을 잃고 쓰러진 천 인형과는 달리 아이들이 쓴 가면은 어느 것 하나 같지 않고 제각각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또한, 크고 용맹해 보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이 놀이가 버거운 듯 다른 이에게 안긴 작은 아이도 있다. 아마도 이는 작가가 구현한 인간 군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특히 화면 오른쪽 뒤편의 투구벌레 가면을 쓴 아이는 눈앞의 비참한 광경을 그저 관망하듯 서있다. 그러나 뾰족한 가면 사이로 삐져나온 말간 살갗에서 비로소 이들 모두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임을, 이 모든 광경이 상상이 아닌 현실임을 깨닫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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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龍) 지난 굴곡따라 붓질… 넘실대는 정기 [경기도&미술관·(2)] 지면기사
민정기의 '와룡추' 힘찬 물줄기·기암괴석 멋… 아름다운 경치 '가평 용추구곡 제1곡' 산수화 벚꽃에 한눈파는 사이 초록이 번지는 속도가 심상찮다. 늦기 전에 어디로든 나서야 짧은 봄의 한 자락이라도 맞이할 터. 경기도미술관의 소장품인 민정기 작가의 작품 '와룡추'를 들뜬 마음 앞에 내밀어본다.'와룡추'는 가평군에 있는 용추구곡의 제1곡 '와룡추'를 그린 그림이다. '용추'는 용이 승천한 곳, 혹은 그런 용의 모양새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겠고, '구곡'은 그 장소를 아홉 구간으로 나누어 따로 이름을 붙여 부른다는 뜻.이런 구곡의 풍경을 그린 '구곡도'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나라를 열었던 조선의 문인들이 많이 그리고 감상했던 산수화다. 당시 문인들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중국 남송시대의 학자 주희를 숭앙했는데, 그가 제자들과 함께 머물며 학문을 논했던 중국 무이산의 아홉 골짜기를 그린 '무이구곡도'를 감상하면서 대학자의 높은 정신과 학문적 성취를 흠모했던 것이다. 그러니 '구곡도'는 눈앞의 산수를 바라보며 풍경을 넘어 삶의 이치를 그려보게 해주었던 그림인 셈이다.'무이구곡도'가 유행한 이래 조선의 학자들은 스승이 머물던 곳, 또는 그 자신의 주변 산수에 있는 계곡을 찾아 이와 같은 맥락의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퇴계 이황 선생이 머물던 도산을 그린 '도산도', 율곡 이이가 머물던 고산을 담은 '고산구곡도'와 같은 그림들이 많이 그려진 이유다. 우리 땅 여기저기에 '구곡'이라 불리는 곳은 학계에 보고된 것만 60여 개소에 이르고 서울과 경기, 강원에 걸쳐 있는 구곡은 8개로 알려져 있다.민정기 작가가 살고 있는 경기도 양평에도 '벽계구곡'이 있는데, 이곳은 조선시대 학자 이항로가 거처하며 경영한 곳이다. 작가 본인의 삶의 터전이 '구곡'으로 이름 짓고 옛 학자의 정신을 따랐던 조선 문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벽계구곡을 몇 번이나 답사한 후에 민정기 작가는 작품 '벽계구곡'을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와룡추' 역시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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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에 평화 살아숨쉬듯… 한땀한땀 새긴 생명의 발자국 [경기도&미술관·(1)] 지면기사
류연복의 'DMZ'국토의 속살 '들풀·들꽃' 작품으로 평온함 담겨 한편의 시같은 '목판화'역사 증명하는 1980년대 대표 장르 경기도에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살고 있다. 경기도는 그들이 살아간 터전이자, 작품이 탄생한 작업실이기도 하며, 영감을 주는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이 바라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작품에 담겨 흔적으로 남고, 우리는 그 흔적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경인일보와 경기도미술관은 미술관의 소장품과 경기도 작가들을 중심으로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줄 기획을 마련했다. 경기도와 미술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 편집자 주 목판화의 미학은 칼맛에 있다. 칼은 '살림'과 '죽임'의 두 면을 하나로 가진 도구다. 목판화는 죽은 나무로 '살림'을 얻는, 그러니까 죽은 것과 산 것의 의미로 합집합을 이루려는 아름다운 수행이다. 그것은 목판이 가지는 여러 의미들 가운데 하나이겠지만, 오랜 역사를 살피면 그 사실은 명확해진다.어두운 근대를 거쳐 '온숨(義氣)'으로 돌아온 이 칼의 맛은, 우리가 근대를 넘어 현대사의 질곡을 헤엄칠 때 역사를 증거하고 어울림의 연대를 만들었던 회화의 한 분수령이 되었다. 1980년대 민중 목판화의 시대는 새로운 회화적 사건이었다. 그 삶의 숨결은 지금, 이곳에서 여전히 유효하다.목여(木如)는 류연복의 호(號)다. 그 말뜻은 '나무와 같다', '나는 나무다', '나무를 따른다'로 해석될 수 있다. 그가 목판화를 하면서 '나무'에 대해 갖는 사유의 면목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그의 호를 그렇게 지은 데에는 자신이 곧 '나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의 작품들은 크게 세 개의 지류를 형성하며 흐른다. 본류는 의심할 바 없이 이 땅, 즉 모국어(母國語)로서의 국토다. 그러나 그는 거대한 국토를 형상화하기보다는 모국어의 속살이랄 수 있는 이름 없는 들풀과 들꽃들의 대지를 새긴다. 더불어 그 대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와 흐르는 강과 우뚝 속은 산과 섬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