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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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9 봉담디지털스튜디오]38살 동네사진관에 깃든 추억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38살 동네 사진관'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이 있죠. 추억이 담긴 옛 사진을 가끔 꺼내볼 때가 있습니다. 그 당시를 한참 동안 잊고 살다가도 앨범 속 때 묻은 사진 한 장을 보고 있노라면, 그 즉시 과거로의 추억여행이 시작되곤 합니다. 사진의 힘이란 참 마법 같습니다. 요즘은 남녀노소 모두 스마트폰을 이용해 양질의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습니다. 한번에 몇백 장도 찍을 수 있죠. 과거에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무척 소중했습니다. 필름의 용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함부로 셔터를 누를 수 없었고, 다 사용한 필름은 사진관에 맡겨 인화를 해야 했으니까요.시간이 흐르면서 사진을 찍는 도구는 달라졌지만, 사진을 남기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일 겁니다. 소중한 순간을 두고두고 추억하기 위함이겠죠. 봉담디지털스튜디오의 이공섭 대표는 38년 동안 화성시 봉담지역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봉담이 북적거리는 도시가 되었지만, 그가 처음 사진관을 열 때만 하더라도 이곳은 젖소가 자라는 시골동네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동네의 가장 큰 추억창고는 이 대표가 운영하는 사진관일 겁니다. "우리 사진관은 오로지 봉담에서만 쭉 운영하고 있어요. 아들 백일 때 사진관을 개업했죠. 백일잔치를 사진관에서 했는데, 항상 개업 연도를 물어보면 우리 아들 나이를 떠올리면서 '38년 됐구나' 라고 헤아리곤 해요."올해로 38살이 된 사진관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봉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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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8 용인떡집]무릎과 맞바꾼 떡집, "맛있다는 한마디면 족해"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의상실 직원에서 떡집 사장으로떡은 돈을 주고 사 먹지 않아도 자주 먹게 되는 음식입니다. 옆집에 이웃이 새로 이사를 오면 '이사 떡'을 나눌 것이고, 지인의 개업식에 가면 분명 '개업 떡'을 준비했을 테죠. 여기에 결혼식과 돌잔치 등 주변의 경조사를 챙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답례 떡'도 받게 됩니다. 떡은 이처럼 한국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하는 음식입니다. 떡을 대체할 수 있는 여러 음식들이 나오곤 있지만 떡 만큼 남녀노소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도 드물 겁니다. 용인중앙시장 안에는 40년 업력의 떡집이 있습니다. 상호는 '용인떡집'으로 단순하기 그지없으나, 한편으론 자부심이라고 읽힙니다. 떡을 매개로 이 지역 사람들의 경조사를 지난 수십년 동안 책임졌을 테니 가게의 내공도 상당할 테죠. 오늘의 주인공은 용인떡집의 홍금자 대표입니다.충청도가 고향인 홍 대표는 젊은 시절 서울의 한 의상실에서 일했습니다. 떡을 만드는 기술자인 전라도 출신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지금의 떡집은 당시 형편을 고려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용인에 내려와 차리게 됐습니다. "제가 자랄 때는 의상실이 한창 인기였어요. 서울 종로의 한 의상실에서 옷 마감 작업을 하는 일을 했죠. 친구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떡집을 차린 거예요. 지금이야 발전했지만 당시 이곳은 다 논이고 밭이고 그랬어요. 이층집도 별로 없었고, 승용차를 가진 사람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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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7 평택 에이큐양복점]미군과 함께한 40년, 맞춤 양복에 인생을 걸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양복으로 맺은 미군과의 인연 오산 공군기지와 맞닿아 있는 평택시 신장동에 가면 영어로 된 간판이 즐비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곳 상점 대부분의 주요 고객이 '미군'인 점을 고려하면 이국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죠. 오늘의 주인공은 이 지역에서 40년 넘게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인재 대표입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해도 어려운 게 장사라고 하는데, 그는 언어와 문화는 물론 크고 작은 취향까지 다른 외국인들에게 '맞춤 양복(장)'을 만들어주며 오랜 기간 가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이인재 대표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10대 때부터 송탄(평택)에 위치한 양복점에 취직해 옷 만드는 일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에게 처음 주어진 역할은 심부름 같은 허드렛일이었습니다. 고생길의 출발점이었던 것이죠. "처음에는 심부름을 하면서 다림질하고, 손바느질하는 하는 걸 배웠어요. 손가락에 골무를 끼우고 헝겊에 바느질하는 연습을 많이 했죠.(웃음) 일이 손에 익으면서부터는 셔츠, 바지, 상의를 만들고 재단하는 걸 하나하나씩 배웠어요. 이렇게 배워서 1979년에 제 가게를 처음 연 거죠."자신만의 상호를 단 가게를 연 뒤로는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미군들 사이에서도 "옷을 잘 만든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손님들이 몰려들었습니다."옛날에는 바느질도 직접하고, 다리미도 연탄불로 데워 사용해야 하니까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옷이 적었죠. 상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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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6 오산 할머니집]80년 노포, 소머리 설렁탕의 깊은 맛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무쇠솥에 구멍이 나기까지 손끝마저 아린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몸을 녹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백년가게는 80년 역사를 간직한 '오산 할머니집'이라는 노포입니다. 메뉴는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 단 2가지로 단출합니다. 메뉴판부터 주인장이 가진 음식 맛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식당입니다. 이 식당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요정이었다고 하는데요. 현재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4대 박명희 사장의 시증조모께서 해방 이후부터 가게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국이 시국이었던지라, 영업 초기에는 별도 메뉴가 없었다고 하네요. 있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거나, 손님들이 해달라는 음식을 만들어 판매했다고 합니다.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을 판매하기 시작한 건 37년 전쯤부터 입니다. 37년 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으면, 이 시간 동안 고기와 육수를 끓이는 무쇠솥에 구멍이 나 바꾼 솥도 여러 개라고 하네요. 세월의 힘은 무쇠도 뚫는가 봅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원래 남편이 맡아서 했는데, 남편이 하니까 자동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10년 전쯤 남편이 세상을 뜨면서부터는 혼자 식당을 운영했어요. 옆에서 어른들이 도와주니까 할 수 있었겠죠.(웃음)"(박명희)3년 전부터는 둘째 아들인 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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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5 성남 우드아트가구]나무의 멋, '고가구'에 빠지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일흔,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가구의 주재료는 오동나무·편백나무·소나무 등의 원목입니다. 일반 가구와 달리 시트지를 붙이거나 별다른 가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무가 가진 결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봉황(다복), 거북이(장수), 박쥐(다산) 등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 문양이 새겨집니다. 고가구를 집안에 들여놓음으로써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기분까지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성남시 수진동의 '우드아트가구'는 고가구 전문점입니다. 부부 사이인 이종근·권영숙 대표는 이 자리에서만 25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영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일반 가구만 취급했다고 합니다. 고가구를 하나·둘씩 매장에 들여놓았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일반 가구를 판매할 때보다 훨씬 좋았다고 하네요."일반 가구를 10년 정도 쓰다 보면 가구에 껍데기가 일어나고, 바퀴가 빠지는 등 수리할 일이 생겨요. 10년 간 판매한 가구들을 모두 수리하려고 하니 어렵더라고요. 오랜 기간 가구를 쓰다 보니 고장 난 것인데, 가구점이 나쁘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어요."(권영숙)이종근 대표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찍부터 자개장을 만드는 기술을 배운 나전칠기 전문가입니다. 가구점을 하기 전에는 자개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나전칠기 전문가', '일흔을 넘긴 나이', '25년의 가구점 운영 경력'을 가진 그는 지금도 새로운 걸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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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4 인천 흐르는물]LP와 커피, 낭만이 흐르는 곳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낭만이 흐르는 곳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뒤꽁무니를 쫓다 보면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경주마' 같은 삶의 피로감이겠죠. 오늘은 메마른 현실에 지친 이들을 위해 낭만이 가득한 공간을 소개합니다. 특히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는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인천시 중구 신포동은 지금이야 구도심으로 불리지만 인천항 개항 이후 최대 상권을 이룬 곳입니다. 하지만 신포동 일대 개항장지구는 인천 내륙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주요 공공시설이 이전하고 인천항 내항의 항만기능이 점차 줄어든 1990년대부터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이곳에 안원섭 대표가 1989년부터 30년 넘게 운영 중인 LP카페 '흐르는 물'이 있습니다. 가게의 상호는 정희성 시인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나오는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호와 얽힌 에피소드가 재밌습니다. "원래 상호는 시 구절을 인용해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였어요. 그렇게 몇 년 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와서 이름 좀 바꿔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당시 우리 가게에 예술을 하거나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많이 왔는데, 관에서 볼 땐 상호가 문제였던 거죠. 그래서 '흐르는 물'이라고 줄인 거예요."음악을 좋아하던 29살 청년이 문을 연 이 공간은 지역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됐습니다. 시와 소설을 쓰는 사람, 미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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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3 수원 진천생고기]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그리운 날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제2의 고향' 수원서 문 연 고깃집코로나19는 '삶의 맛'을 무척 단조롭게 만들었습니다.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기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분노와 슬픔만이 남은 듯합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처럼 고된 하루를 위로해줄 일상의 소소한 행복조차 욕심이 되어버린 요즘입니다.이번에 소개할 가게는 지난 1991년 수원시 장안구 거북시장 안에 문을 연 '진천 생고기'입니다. 온전히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지난 30년 세월 동안 '삼겹살에 소주 한잔'의 즐거움을 제공한 곳입니다. 진천 생고기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진천(충북) 출신 진수진 대표와 부산이 고향인 그의 아내 김은순 대표가 '제2의 고향' 수원에서 고깃집을 연지도 어느덧 30년이 넘었습니다. 이 곳이 개업 초기에 좀 더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참 재밌습니다. 주변에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고깃집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넘쳐나다 보니 한 발 늦은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근처 진천 생고기로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런 운으로만 30년 넘게 가게를 이어갈 순 없었겠지요.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한 부부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신선한 고기를 갖다가 손님이 보는 곳에서 직접 썰어줍니다. 고기 가지고 장난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신뢰를 주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네요."(진수진)"고기든 채소든 재료를 속이지 않고 좋은 걸 쓰니까 손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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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2 군포 재궁태권도장]태권도장을 지키기 위해 경비원이 되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마약은 끊어도, 태권도는 못 끊는다여러분은 '태권도'하면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 여럿과 함께 태권도장으로 향했던 어린 시절 모습이 선명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 문대성 선수가 상대 선수를 멋진 뒤돌려차기로 제압한 장면도 기억 한편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태권도를 소환해 보려고 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28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남 재궁태권도장(군포) 총관장입니다.이영남 관장이 태권도를 시작한 계기는 유년시절 남들보다 작은 '키' 때문이었습니다. 보통의 부모들이 그렇듯 이 관장의 아버지도 자식의 성장이 또래보다 더딘 걸 염려해 아들을 태권도장에 보낸 것이었죠.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것이지만, 그는 금세 태권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취미 생활 정도로 여긴 태권도가 어느새 그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고, '태권도의 길'을 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태권도를 시작한 뒤로는 몸집이 큰 사람들을 상대해도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이 단련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말 그대로 배짱이 아주 대단해졌죠."그토록 사랑한 태권도였지만 한때나마 스스로 도복을 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과거 태권도 관련 단체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다가 승단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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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1 안산 할리바버샵]사람 몸에 칼을 댄다는 책임감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안산시 '할리바버샵'에 가다경인지역에는 총 119곳(경기도 85곳, 인천 34곳)의 백년가게가 있습니다. 이곳의 대표들은 자기 업종의 전문성을 가지고 최소 20년 이상 가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장인'입니다. 이 중 어떤 장인을 첫 번째로 소개해야 할지, 가게 선정 과정부터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러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한 '바버숍'이 백년가게로 선정돼 있는 걸 발견하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것의 향기가 나는 백년가게와 현대적인 느낌의 바버숍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서였죠. 이곳의 대표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손에 쥔 빗과 가위를 놓지 않고 있는 신태민 이용기능장입니다. 그는 이용사 자격증 취득 시험의 감독관을 맡고 있을 정도로 이용업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치면 심사위원 격인 셈이죠. 이런 그도 바버숍 매장을 열기 위해 지원자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술과 연륜은 있다고 하나, 최신 이용 트렌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느지막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신 기능장의 고생길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이발소를 운영하다 새롭게 트렌드를 접목시켜 바버숍 문을 연 건 5~6년 전 일이에요. 매장 운영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서 교육을 받았죠. 집에 도착하면 새벽 3~4시가 됐어요. 그렇게 7~8년 정도를 했죠. 기존 매장을 운영하면서 평소 해오던 틀에서 벗어나려고 아이템 구상을 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