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심층·탐사

  • [레트로K] 1월1일 새해연휴, 3일 쉬던 ‘신정’이 있었다
    레트로K

    [레트로K] 1월1일 새해연휴, 3일 쉬던 ‘신정’이 있었다

    1949년 양력설 '신정'을 3일 명절 지정 음력설 '구정' 쇠던 관습 계속되자 1980년대 구정 되살리기 움직임 1989년 신정·구정 명칭 대신 '설날'로 고유 이름 되찾아 “신정에 어디 가세요?" “구정에 고향 내려가시나요?" 요즘 MZ세대는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설날의 낯선 이름. 양력설(1월1일)을 뜻하는 '신정'과 음력설을 뜻하는 '구정'은 모두 우리 민족 대표 명절인 '설날'을 말한다. 설날 자체가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지닌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래 우리 전통으로는 음력으로 날을 세왔던 만큼 음력설을 새해로 보고 설 명절을 보내왔는데, 1949년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지며 양력 1월1일, 신정을 3일 설 연휴로 지정했다. 하지만 몸과 머리가 기억하는 관습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정부는 양력·음력 2번 모두 쉴 수 없다는 '이중과세' 원칙에 따라 양력설을 공식적인 설 명절 연휴로 지정한 대신 음력설인 구정은 공휴일로 채택하지 않았지만 생일도 음력으로 지내는 한국인의 DNA에서 쉽사리 음력설인 구정 풍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1980년대 들어 신정 대신 구정을 진짜 설 명절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1983년 1월4일자 경인일보에는 '신정, 설 기분이 안난다'는 기사가 실렸다. 양력과 음력으로 설명절을 두번 세는 '이중과세'를 지양하자는 움직임에 따라 그간 양력설인 신정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됐다. 1984년 12월22일자에는 '구정 공휴일 지정키로' 기사가 실렸는데, 이때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설' 명절 연휴의 시작이다. 1985년 2월21일자 경인일보에는 “역시 설 기분이 난다"는 구정, 지금으로 치면 설 명절을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구정이라 불리다가 조상의날, 민속의날 등으로 바뀌던 설날은 1989년, 고유명칭인 지금의 '설날'로 제이름을 찾았다. 1989년 1월14일자 '구정 이틀 연휴, 설날 개칭' 기사에는 이같은 내용이 실렸다. 이렇게 서서

  • [레트로 K] 비행기도 숨죽이게 만든 ‘수능, 그 전설의 시작’
    레트로K

    [레트로 K] 비행기도 숨죽이게 만든 ‘수능, 그 전설의 시작’

    올해 수능은 유독 말이 많았다. 수능 100일께 남겨두고 별안간 정부가 킬러문항과의 전쟁을 선포하는가 하면 사교육을 뿌리 뽑겠다며 학원가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기어코 킬러문항을 출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기습적으로 정했다. 수능시험은 시험보기 전 몇달 바짝 준비하는 시험이 아니다. 짧게는 고등학교 길게는 초등학교부터 이어지는, 흡사 마라톤과 같은 긴 여정인데, 결승선에 다다를 때쯤 심판이 룰을 바꾸겠다며 정지휘슬을 분 셈이다. 정부의 기습적인 '수능 방향 틀기'에 입시만 보며 전력질주 하던 학생과 이를 뒷바라지 하던 학부모들이 황당을 넘어 분노하기까지 한 건 그런 이유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렇듯 수능날은 다가왔고 시험은 치러졌다. 킬러문항이 사라진 자리에 준킬러문항이라는 고난이도 문제들이 대거 등장했다. 변별력을 두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게 출제위원들의 항변이다. 이로 인해 '만점'이 딱 1명 뿐인 수능이라는 역대 기록을 세웠고 1,2명만 죽이는 킬러문항 대신 다수를 죽이는 준킬러로 '역시 입시는 사교육'이라는 공식만 더 선명하게 해준 꼴이 됐다. 이번주 레트로K는 대학입시시험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갈등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수능의 역사를 따라가봤다. 1993년은 학력고사 시대를 끝내고 처음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해다. 이때는 수능을 2회에 걸쳐 보았는데 여름에 1차, 겨울에 2차 시험을 본 뒤 우수한 성적을 기준으로 입시에 적용하는 시스템이었다. 1993년 8월 4일자 경인일보에는 '수능시험 시기·횟수 불합리' 기사가 실렸다. 첫 수능을 보름 앞두고 우려와 긴장의 목소리가 높은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a href="http://www.kyeongin.com/paper/view/1993/08/20?pageNo=14" class="ix-editor-text-link" target="_blank"><b style="color: rgb(107, 173, 222);">1993년 8월 20일 지면보기 클릭</b></a> 이때 수험생과 교사, 학부모

  • [레트로 K] ‘서울의 봄’ 영화가 끝나도 단죄 없는 현실은 계속된다
    레트로K

    [레트로 K] ‘서울의 봄’ 영화가 끝나도 단죄 없는 현실은 계속된다

    1997년 12월 22일 안양교도소에서 전두환씨가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1997.12.22 /경인아카이브 1997년 12월 22일 전두환씨가 특별사면으로 석방되는 날 안양교도소. 1997.12.22 /경인아카이브 오랜만에 극장가가 한국영화 한편으로 훈풍이 불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이 입소문을 타면서다. SF, 액션 등 블록버스터급 영화도 아닌 ‘시대극’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 건 “총이 있다면 쏴서 죽이고 싶었다”는 살벌한(?) 관람평이 말해주듯 치가 떨릴 만큼 사실적인 배우들의 연기가 엄청난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은 12·12사태가 일어난 그날 밤을 다뤘다.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는 우리 사회를 후퇴시킨 현대사의 비극이다. 12·12사태를 시발점으로, 5·18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등 죄없는 이들이 독재에 스러져 간 사건들이 줄줄이 일어났다. 각색된 영화지만, 영화 역시 때론 역사를 기록하는 수단이다. 1979년 12월 12일 이후 40년도 넘게 흐른 지금 이 시점에,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을 지금의 청춘들까지 영화에 열광하는 데는 어쩌면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역사가 현재에도 되풀이 될 수 있다는 불안 탓일 지 모른다. 이번주 레트로K는 서울의 봄을 관람하고 온 독자를 위해, 단죄의 역사를 찾아봤다. 민주당은 부천시민운동장에서 1212군사반란자 재판회부를 위한 국민궐기대회를 열었다. 1994.12.3 /경인아카이브 1995년 12월 1일자 ‘전·노씨 신군부 군사반란 입증 주력’ 기사는 검찰이 1995년 11월 30일 12·12 재수사를 발표한 배경과 향후 전망을 설명했다. 1995년 11월 30일자 경인일보 지면보기 클릭 검찰의 12·12와 5·18에 대한 재수사가 착수됐다. 검찰의 이번 재수사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쿠데타의 주역들에 대해 사법처리를 하겠다는 뜻이며 5·18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검찰이 정치권보다 먼저 칼을 빼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앞서 12·12 관련자들

  • [레트로 K] 김포에서 태어난 검단면, 인천에서 검단동이 된 사연
    레트로K

    [레트로 K] 김포에서 태어난 검단면, 인천에서 검단동이 된 사연

    국민의힘이 쏘아올린 '김포시 서울 편입' 논란이 난리다. 해묵은 논쟁인 줄 알았던 경기남·북도 분리 논의가 민선8기 들어 본격화됐고,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중심으로 전보다 훨씬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와중이었다.예나 지금이나 행정구역 개편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산업화시대가 종식된 후 보수·진보 할 것 없이 국토 개발에 대해선 '균형'에 방점 찍은 지 오래됐고, 최근엔 지방소멸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게다가 정책적 숙의 과정 없이 일단 '던지고 본' 측면이 강해 '서울시민'이란 타이틀을 미끼 삼아 수도권 민심을 잡으려는 총선카드로 오해받기 딱 좋다.일단 논란 자체는 파급력이 상당하다. 경기도 뿐 아니라 인천까지 들썩이며 수도권을 헤집고 있다. 모두 가능한 이야기일까, 과연 그만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궁금이 커졌다.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열심히 옛 기사를 뒤져보았다. 그리고 김포군 검단면에서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동이 된 사연을 찾았다. 서울시 김포구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검단동의 과거와 현재는 엿 볼 수 있으니.(1994년 9월 8일 지면보기 클릭) 1994년 9월 8일자 경인일보 '인천광역화 경기·인천 입장' 기사에는 경기와 인천의 행정구역 개편 문제가 보도됐다. 이때의 시작은 인천 '광역화'를 통해 수도권 서부벨트를 개발하고 '21세기 환태평양 경제권 중핵도시'로 성장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됐다. 당시 내무부는 김포군, 옹진군, 강화군, 시흥시 전역을 포함하는 안과 강화군,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양촌리 일부를 포함하는 안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편입을 반대하는 경기도와 찬성하는 인천시를 사이에 두고 내무부의 고민이 깊다는 게 기사의 골자다. 여기서 눈 여겨볼 건 이 대목이다.'한편 경인지역 정치권에서는 양 지자체간의 영역분쟁에 일체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추이를 관망한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이 개입할 경우 국가경쟁력 강화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행정구역 개편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 [레트로 K] 인현동 화재참사 24주년… 증명이 필요한 슬픔은 없다
    사회일반

    [레트로 K] 인현동 화재참사 24주년… 증명이 필요한 슬픔은 없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던가/그럴리 없다고/그럴수 없다고/우리들은 모두 머리 저어 '말도 안돼'만 외쳤던 그날!…너희들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무너지고 무너지는 세상에/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단다''이제 세상은 몇 번이나 더 무너져야만 할까/벌써 그리운 이름 된 너희들을 생각하며…용서하렴 무기력한 선생님을/진실로 너희를 사랑하지 못한 어른들을/너희에게 더 많은 사랑 주지 못했다고 우시는 부모님을/너희와 그 고통의 순간 함께 하지 못한 우리들을/너희를 보호하지 못한 현실을' - 희생학생들이 다녔던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국어교사의 추도시1999년 화재로 57명 숨진 사건대부분 인천지역 중·고등학생市 '술 마신 학생 잘못' 책임 돌려"폐쇄명령처분… 책임 없다" 주장 2022년 이태원 참사… 반복된 비극피해자 향한 시선은 비정하기만1999년 10월 30일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의 한 호프집에서 불이 났다. 유난히 날이 좋았던 10월의 마지막 주말, 인천지역 상당수 고등학교들의 가을축제가 끝나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재밌게 놀 생각에 신나고 들뜬 마음으로 가득했을 주말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이 사고로 57명이 목숨을 잃었고 79명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대부분 인천지역의 중·고등학생, 청소년들이었다.11월 1일자 경인일보에는 참담했던 그날의 현장이 생생히 담겼다. "불길은 놀라운 속도로 혀를 낼름거리며 지하계단을 타고 호프집의 유일한 출입구 쪽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독한 유독성 가스를 내뿜으면서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이들은 죽음이 다가오는 줄 몰랐다. 그러다 누군가 "불이야, 대피, 대피"라고 외치면서 실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호프집 내부는 완전 전소되지 않고 출입구 쪽을 중심으로 불에 그을린 상태로 연기만 자욱해 사상자들은 대부분 유독가스에 질식한 것으로 보인다. 사상자들은 출입구 반대쪽 주방에서 50여명, 테이블 사이 3개 통로에서 20여명씩 무더기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바닥에는 운동화와 가방, 깨진 맥주잔, 휴대폰 등이 널려 있어

  • [레트로 K] 헤매는 '수도권 교통문제' 걸어온 길 돌아보니
    레트로K

    [레트로 K] 헤매는 '수도권 교통문제' 걸어온 길 돌아보니

    경기도와 인천이 풀지 못하는 난제 중의 하나가 바로 '교통'이다. 애초에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와 인천의 교통망이 구성되는 측면이 강한데다, 날이 갈수록 경기도와 인천의 거주 인구가 늘어나면서 교통수요가 증가하는데 근본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땜질식 처방만 계속되면서 이제는 '총체적 난국'이 돼버렸다.문제는 총체적 난국이 길어지면서 수도권 지역 간 갈등만 커지고 있다는 점.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갈등요인은 '지하철'. 워낙 정책 수요가 크니, 정치권에선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지하철 공약을 내세우지만 선거가 끝나면 모르쇠로 일관하기 일쑤다. 기대로 잔뜩 부풀었던 지역민들의 허탈감만 커졌고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제는 그 화살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 지하철역을 내가 사는 동네로, 우리 집 앞에 끌어와야 한다며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데, '동족상잔'같은 비극이 옆동네, 같은 동네에서도 왕왕 벌어지는 게 경기도·인천의 현실이다.[[관련기사_1]]경인지역의 열차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 서울 근처에 있는 덕(?)에 아주 일찍부터 열차가 도입됐다. 일제강점기에 경인선을 필두로 안양·수원·오산·평택 등을 오가는 경부선이 오갔다. 의정부와 동두천, 연천 등을 오가는 경원선도 경기북부를 지나갔고, 구리·양평 등 경기 동부에는 중앙선을 타면 오갈 수 있었다. 안성선도 있었는데, 충청남도 천안에서 안성까지 운행하는 열차였다.수인선과 수여선의 협궤열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 열차의 목적은 오로지 '일제의 수탈'이었다. 쌀, 소금을 비롯해 각종 자원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대량 수송이 필요한 열차가 필요했기 때문에 열차들이 운행됐다.특히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수원과 여주를 오가는 수여선은 용인과 이천, 여주의 질 좋은 농산물을 수원으로 옮겨 일본으로 수송해갔고, 폐선된 후 다시 재개된 수인선의 경우 소래포구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려는 목적으로 부설돼 일제강점기의 아픔으로 기억된다.열차 이후 경기도와 인천에 들어온 것은 전동차다. 주로 서울 지하철이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

  • [레트로 K] 예약 따윈 없다! 귀성하려면 노숙도 불사했던 '추석 이야기'
    사회일반

    [레트로 K] 예약 따윈 없다! 귀성하려면 노숙도 불사했던 '추석 이야기'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엔데믹 후 처음 맞는 추석 인데다, 공휴일이 겹친 황금연휴가 되면서 기대감도 크다. 코로나19의 전례 없는 팬데믹을 겪은 지난 3년간 우리네 추석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추석은 여전히 가족의 정을 만끽하는 소중한 명절이기 때문이다.특히 길어진 추석연휴 덕에 고향을 찾는 가족들이 많아지면서 기차표를 미리 예매하려는 이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역 앞에 길게 줄 서서 기다리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100% 온라인 예매로 기차표를 살 수 있게 됐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이미 '클릭전쟁'이 벌어졌고 아쉽게 예매에 실패한 이들은 KTX 홈페이지를 들어가 취소표 구하기에 발을 동동 굴렀다.심지어 중고거래 플랫폼엔 '웃돈'을 얹어 추석 기간 지방을 오가는 기차표를 판매한다는 글들이 올라오자 철도공사 등에서 단속 강화를 외치고 있다. 당연히 암표를 판매하거나 구입하면 안되지만, 그래도 추석을 앞두고 고향으로 가려는 분주한 움직임들은 다시 돌아온 우리의 명절을 실감케 한다. 1993년 9월 28일자 17면 (지면보기 클릭)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상저온 탓으로 아직 추수를 마치지 못한 농가가 많은 우리 마을에서도 추석을 맞이하는 설렘은 예년이나 다름없다. 어렵게 구한 햅쌀로 송편을 빚고, 동네추렴으로 큰 돼지도 두어마리 잡아 나누었다" 1993년 9월 28일자 경인일보는 시리즈물인 '낙향일기'를 통해 1990년대 추석을 맞은 수도권 농촌 지역의 풍경을 그렸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모두 서울로 보낸 윤씨네 집에서는 추석때만 되면 큰 잔치를 치르는 집처럼 부산스러워진다. 며칠 일찍 내려온 큰 딸이 장만해온 찬거리들과 밭에서 거두어 들인 채소와 나물, 생선과 고기 등을 10여명이 훨씬 넘는 대식구들의 식사와 차례준비로 떠들썩 하다. 큰 아들과 둘째가 추석 전날 내려오고 손자손녀들과 어울리다보면 정말 사람사는 집처럼 느껴진다. 이제 노인이 다 된 윤씨 내외에게는 일년에 두세번 모이는 이런 명절날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추석을 맞은 경인

  • [레트로 K] 청소년의 방패인가 칼인가… 학생인권조례 '10년 기록'
    사회일반

    [레트로 K] 청소년의 방패인가 칼인가… 학생인권조례 '10년 기록'

    2023년, 교사의 죽음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쟁이 10년만에 다시 불붙었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손수 꾸미고 가꾸었던 교실 안 작은 공간에서 생을 마감한 사건. 우리의 교육현장이 이 지경에 이르자, 그 원인을 두고 당장 학생인권조례가 지목된 것이다. 경기도는 대한민국 학생인권조례의 시초가 된 곳이다. 그 출발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있었을까. 그리고 조례가 정착되는 과정에 작금의 교육현장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는 없었을까.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경인일보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살펴본다. 인권보호 vs 탁상행정 2010년 8월 16일자 22면 (지면보기 클릭) 2010년 8월 16일자 경인일보 기사에는 ‘내년 초중고 체벌금지. 인권보호 vs 탁상행정’가 실렸다. 요지는 학생 인권보호를 위해 경기도교육청이 2011년부터 도내 모든 학교에 학생체벌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일선 학교에선 ‘학교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 아니냐’는 비판여론이 일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를 도입한 당시 김상곤 교육감은 “군에서도 언어, 신체폭력이 사라지고 있는데 학교에서 교육이란 명분으로 체벌을 용인해선 안된다”며 “학생인권조례안을 도의회에 제출할 예정이고 내년부터 시행되도록 준비기간을 가질 것”이라고 그 취지를 밝혔다. 도교육청은 체벌금지의 대체프로그램으로 ‘독후감, 봉사활동, 과제물 부과’ 등의 지덕벌 제도와 그린마일리지, 이른바 상벌점제 도입을 고려했다. 이전인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를 강타했다. 학생인권조례의 초안에는 ‘모든 체벌과 집단괴롭힘 금지/과도한 휴대전화 규제금지/머리카락 길이 제한을 포함한 두발 및 복장 개성실현/수업시간외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대체과목 없이 특정 종교과목 수강 강요금지 등 종교의 자유/빈곤학생 등에 대한 교육복지권/학생자치활동 및 학칙 제개정 등 현안참여권/징계방어권’이 포함됐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 일부학생들 중엔 조례가 이미 시행된 것으로 착각해 교사들의 생활지도에 반발했다는 기사도 실렸다.

  • [레트로 K] 침묵으로 숨어버린 악인들 '묻지마 범죄의 역사'
    사회일반

    [레트로 K] 침묵으로 숨어버린 악인들 '묻지마 범죄의 역사'

    특별한 것 없는 여느 날이었을 것이다.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고, 평소 걷던 길을 그냥 걸었으며, 아침에 널어둔 빨래를 걷기 위해 옥상에 올라왔을 뿐인 '보통날'이었을 것이다.2005년 4월 19일 인천 남구 용현동 호프집에서 박씨는 지인과 술 한잔 기울이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앉았지만 일면식도 없는 김씨가 뜬금없이 박씨의 뒤통수를 빈 맥주병으로 때리며 공격하기 전까지 박씨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2008년 5월 15일 19면 (지면보기 클릭)2008년 5월 10일 인천 중구 도원동 주택가를 걷던 스무살 여학생은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 양쪽 허벅지를 찔렸고 집 앞에서 가족이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던 28살 여성도 같은 괴한에게 오른쪽 허벅지를 찔렸다. 무차별적으로 여성들의 다리를 찌른 후 범인은 달아나 버렸다.2013년 8월 18일 빨래를 걷기 위해 옥상에 올라왔던 50대 여성은 이웃집에 살던 중학생이 수차례 찌른 칼에 쓰러졌다. 다행히 또 다른 이웃이 이를 보고 신고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위 사건들 모두 그간 경인일보에 보도된 '묻지마' 범죄 사건이다. 예를 든 사건이 3건 일뿐, 경인일보 기사 DB 검색을 통해 찾아낸 묻지마 범죄 사건은 훨씬 더 많다. 사회면 한 귀퉁이에 조용히 실려 우리가 모르고 지나갔을 뿐, 지난 시간 쭉 누군가는 이유 없이 모르는 사람을 공격했다. 2012년 8월 22일 1면 (지면보기 클릭) 2012년 8월엔 기어코 사람이 죽었다. 이 사건은 하도 끔찍해서 이름도 붙었다. '강남진 묻지마 흉기 난동사건' 2012년 8월 21일 오전 0시55분께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의 한 주점에 흉기를 들고 들어간 강남진은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 문 밖에서 들린 노크 소리에 놀라 여주인의 목 부위를 찌른 후 달아났다. 도망가는 길 문 앞에서 마주친 손님의 복부를 찔렀고 오전 1시5분께 정자동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대문이 열려 있는 주택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때마침 거실에 있던 집주인이 소리를 지르자 흉기로 가슴과 복부를 10여차례 찔렀고 비명소리에 놀

  • [레트로 K] 여름아 부탁해 '직장인의 휴가'… 90년대 피서는 어땠지?
    레트로K

    [레트로 K] 여름아 부탁해 '직장인의 휴가'… 90년대 피서는 어땠지?

    직장인이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때는 여름 휴가다. 요즘은 연차를 사용하는 일이 비교적 자유롭고 여름휴가라고 해도 꼭 여름 성수기에 가야 하는 압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이 되면 슬그머니 생각나는 것이 휴가인 건 어쩔 도리가 없다.최근 경제가 악화되면서 여름 휴가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또 다른 한편에선 엔데믹 이후 처음 맞는 여름인 만큼 해외로 '보복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아 인천공항이 북새통을 이룬다는 말도 들린다. 상반된 풍경에 씁쓸함을 자아내지만, 경제가 어려울 때 양극화는 더 커진다. 25년 전, 대한민국을 뒤흔든 경제위기 'IMF'의 여름 풍경도 비슷하다.휴가를 갔다 오면 자리가 없어질까봐 말도 꺼내기 어렵다1998년 7월 15일은 그 전년도인 1997년 국가부도, 이른바 IMF체제 속에 처음 맞이한 여름이었다. 이때의 직장인에게 여름휴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언감생심이었다.1998년 7월 15일자 (지면보기 클릭)당시 경인일보 기사의 제목은 'IMF시대 [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여름휴가 눈치껏 반납'. 제목 아래엔 작은 삽화가 그려져 있는데, 날개가 달린 책상이 둥둥 떠 날아가고 이를 바라보는 직장인이 "휴가 달라 하면 혹시 내 자리가.." 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등장한다. '연말까지 5백명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S기업의 경우 올해부터 연월차 수당 없이 2주간의 휴가를 사용 해야 하지만 아직 누구도 여름휴가를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김모 과장은 "감원이 코앞에 닥쳤는데 무슨 배짱으로 1주일씩 휴가를 가겠다는 얘기를 꺼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민간기업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시 IMF로 인해 구조조정의 공포를 겪는 것은 공공기관도 마찬가지. 통폐합, 민영화 등 공공분야 구조조정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등장하던 시기, 휴가를 권장해도 서로 눈치를 보며 휴가원을 제출하는 사람이 없다고 묘사했다.한 공무원은 인터뷰를 통해 "정원감축에 대한 명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