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지금까지 361회 참여 '헌혈 전도사' 최락준 수원 창현고 교사

19살 시작 1년에 12번 이상 '팔 걷어' ABO 프렌즈 회원으로 활동8300여명 교직원·학생들 동참 유도… 여자친구에 독려하는 제자도감염병 우려 헌혈 버스 운영에 제약… 학교에 들어오지 못해 아쉬움"헌혈자 여러분들의 작은 사랑의 실천이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우리 사회 대부분이 '멈춤'이 됐다. 그중에서도 헌혈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만큼 얼어붙었다. 실제로 헌혈량이 부족해 종종 전체 재난문자 등을 통해 '헌헐량이 부족하다 도와달라'는 말이 전파되기도 했고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단체헌혈에 나서며 헌혈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헌혈량은 여전히 부족하다. 11일 기준 전국 혈액 보유량은 4.2일분으로 적정 혈액 보유량인 5일분을 밑돌고 있다.이런 비상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헌혈하고 독려하는 헌혈 전도사가 있다. 수원 창현고등학교 최락준(48) 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금까지 361회 헌혈에 참여했는데, 헌혈을 처음 시작한 나이부터 지금까지로 단순히 나눠봐도 1년에 12번 이상 헌혈을 해 온 셈이다. 정기적인 헌혈을 약속하는 대한적십자사 등록헌혈제도 'ABO Friends' 회원으로 활동 중인 최락준 교사는 헌혈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가치 있는 행동이라는 신념 아래 꾸준히 헌혈에 동참하고 있다. 또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도 헌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그가 처음 헌혈을 시작하게 된 때는 19살 때였다. 울산이 고향인 그는 서울에서 학력고사를 치른 뒤 청량리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다가 헌혈의 집을 발견하고 우연히 헌혈을 하게 됐다. 이후 서울 회기동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 최락준 교사는 대학생활동안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헌혈을 떠올렸고 학교 근처에서 꾸준히 헌혈에 동참했다.지난 2004년 수원의 창현고에 부임한 뒤에도 헌혈 활동은 계속됐다. 지금은 없어진 아주대 헌혈센터에서 헌혈을 했고 현재는 집 근처의 수원시청역 센터에서 헌혈을 하고 있다.최락준 교사의 헌혈 사랑은 가족들과 학생들에게도 퍼졌다. 올해 대학교 1학년인 큰아들은 헌혈이 가능한 만 16세가 되면서 헌혈을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 생일이 지나면 헌혈이 가능한데 생일 바로 다음날 헌혈의 집에 함께 갔다"며 "둘째도 중학교 3학년인데 헌혈이 가능한 나이가 되면 헌혈에 동참하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그는 가족 구성원들이 A, B, O, AB형 등 4종류의 혈액을 골고루 보유하고 있는 것이 자랑이기도 하다.지난 2007년부터는 자신이 맡고 있는 반의 아이들이 헌혈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봉사활동 시간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학생들에게 헌혈을 장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임 이후 최락준 교사는 최근까지 8천300여명의 교직원과 학생들이 헌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최락준 교사는 "처음 학생들과 함께 아주대 헌혈센터에서 헌혈을 하게 됐을 때 생각보다 아이들이 헌혈을 좋아했다"며 "남학생들은 서로 경쟁도 하더라"며 웃음 지었다.또 "5년 전에는 가르치던 학생이 여자친구와 함께 헌혈을 하러 왔다가 센터에서 마주쳤는데 여자친구에게 헌혈을 독려하는 모습이 기특했다"며 "또 다른 학생은 자신의 혈액형을 모르고 있다가 헌혈을 하러 가 자신이 희귀 혈액형인 'RH-'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고 되돌아봤다.최근에는 본인이 가입해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헌혈 인증 릴레이를 독려하고 있다. 헌혈을 인증하는 사진을 올리고 회원들과 공유하면서 격려하는 식으로 헌혈 활동에 참여한다. 그는 "헌혈에 대해 강권을 하면 오히려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며 "주변에는 무작정 강권을 하기보다는 헌혈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권유를 하는 방식으로 헌혈을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그가 헌혈을 장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락준 교사는 이웃 사랑과 함께 건강 관리를 꼽았다.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어야 헌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헌혈의 좋은 점은 작은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혹 간 수치가 높거나 철분 수치가 부족하면 헌혈이 불가능해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락준 교사는 산책이나 출퇴근을 도보로 하는 등 건강 관리에 힘쓰고 있기도 하다.코로나19로 학교에 헌혈 버스가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꼽았다. 혈액 버스는 시간과 장소 제약이 있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직장 등을 대상으로 버스가 직접 찾아가는 단체 헌혈 방식이다. 단체 헌혈 중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임을 감안할 때 혈액 버스가 학교를 방문하지 못하는 것은 전체적인 혈액 수급의 어려움 중 하나다.최락준 교사는 "감염병 우려 때문에 버스 헌혈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며 "2학기가 되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버스가 들어오지 않아 학생들에게 헌혈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점도 아쉽다"고 토로하기도 했다.최락준 교사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가족들이 모두 헌혈을 하러 가는 것이 하나의 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몇 회까지 헌혈을 하겠다는 것 보다 가능한 한 헌혈을 계속하고 싶다"며 "막내가 올해 7살인데 막내가 컸을 때 가족들이 함께 헌혈을 하러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헌혈은 자신의 생명을 나누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 중 하나"라며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지만 혈액을 공급받아야 하는 분들을 위해서도 책임감을 갖고 지켜내야한다"고 덧붙였다.이어 "삶의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면 잠시만 시간을 내 헌혈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이원근기자 lwg33@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최락준 교사 제공■ 최락준 교사는?△ 1972년 12월 울산 출생 △ 1995년 경희대 수학과 졸업 △ 2004년 수원 창현고 부임 △ 2015년 10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 2018년 4월 헌혈유공자 최고명예대장 수상'헌혈 전도사'로 알려진 수원 창현고 최락준 교사가 학교 회의실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헌혈은 자신의 건강 관리는 물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있는 행동"이라며 헌혈의 가치를 소개하고 있다.헌혈 200회 기념해 찍은 사진.

2021-05-11 이원근

[인터뷰…공감]'인천 야구의 영원한 팬' 김종린 신기시장 상인회장

사라진 '숭의야구장 추억' 잊지 못해… 시즌권 끊어 항상 경기장行'현대' 야반도주에 한때 보지 않다가… 'SK' 악바리 근성으로 '힐링''시장내 야구박물관' 모기업에 제안… 직접 수집·기증물품으로 꾸며지역 정체성 담은 'SSG 랜더스' 팬들과 적극 소통하며 성장하길인천은 '야구의 도시'(球都)라고 불린다. 1920년 경인선 기차를 타고 서울로 통학했던 인천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천 최초의 야구단 한용단(漢勇團)에서부터 지금의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SSG 랜더스에 이르기까지, 야구는 오랜 세월 인천시민 곁에 있던 대표적인 스포츠 종목이다. 웃터골경기장(인천공설운동장), 숭의야구장, 문학야구장 등에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의 뒤에는 언제나 이들을 응원하는 인천시민이 있었다.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신기시장의 김종린(66) 상인회장은 인천 야구의 오랜 팬이다. 그는 인천에서 홈 경기가 열리면 어김없이 구장을 찾는다고 한다. 김 회장은 성인이 돼 고향인 인천에 다시 돌아오면서 야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교직 생활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다른 지역에서 10여년 동안 살다가 성인이 돼서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는데, 고향에서 홀로서기를 하는 동안 인천고 등 지역 고교야구가 전국대회에서 활약하는 것을 라디오 중계를 통해 들으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김 회장에게 1982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신기시장에서 지금의 '찬수네 방앗간'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큰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해 국내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출범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 회장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메이저리그처럼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를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흥분됐다"며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팀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컸다"고 했다.인천과 경기·강원을 아우르는 '삼미 슈퍼스타즈'가 창단하면서 인천의 프로야구 역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김 회장의 기대와는 달리 삼미 슈퍼스타즈는 리그의 대표적인 약팀이었다. 1985년 구단을 인수해 창단한 '청보 핀토스'도 하위권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뒤를 이은 '태평양 돌핀스'는 플레이오프(1989년)와 한국시리즈(1994년)에 진출했으나 정상의 자리엔 서지 못했다.그래도 김 회장의 인천 야구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시장 상인들과 함께 TV 중계를 보며 고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 됐다고 한다. 팀이 이기면 함께 기뻐하고, 지면 푸념도 하면서 인천 야구에 대한 애정은 갈수록 커졌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숭의야구장을 아이들과 소풍 가는 기분으로 즐겨 찾았던 옛 추억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는 그는 "당시엔 형편이 어려워 가끔 아들과 딸을 데리고 경기장에 갔다"며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아들과 딸도 나만큼 야구를 좋아한다. 지금은 시즌권을 끊어 홈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항상 경기장으로 응원을 간다"고 웃으며 말했다.태평양의 뒤를 이어 창단한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 프로야구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창단 첫해인 199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1998년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중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김 회장은 "삼미와 청보 시절 때에는 패배가 익숙했기 때문에 경기에 자주 이기는 현대가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감이 커졌다"며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하니 그만큼 구단에 대한 애정도 컸다. 지금도 아내는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하지만 2000년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을 연고로 하겠다며 그야말로 '야반도주'하면서 인천 야구팬들은 한순간에 응원팀을 잃어버렸다. 현대 유니콘스에 대한 애정은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되돌아왔다. 김 회장도 한동안 프로야구를 보지 않았고, 지인 중에서는 이때 프로야구에 완전히 등을 돌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현대 유니콘스에 이어 2000년 창단한 SK 와이번스는 김 회장이 역대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중 가장 좋아하는 구단이다. 그는 "성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게 좌우명인데, SK 와이번스의 경기를 볼 때마다 '악바리' 근성으로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야구는 인생과 닮아 한 게임을 하다 보면 반드시 2~3번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잡아 이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운 점이 많았다"고 했다. 김 회장의 응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SK 와이번스는 4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등 명문 구단으로 자리 잡았다.김 회장이 있는 신기시장에는 특별한 곳이 있다. 인천 야구의 역사가 담긴 '야구 박물관'이다. 야구 박물관에서는 '한용단'부터 시작하는 인천 야구 100년사와 역대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의 유니폼과 사인볼 등을 볼 수 있다. 2013년 SK 와이번스의 모기업인 SK텔레콤과 신기시장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게 됐는데, 야구를 좋아하는 김 회장이 '인천 야구와 관련한 곳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 야구 박물관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SK텔레콤이 야구 박물관에 필요한 장식장 등을 지원했고, 김 회장이 직접 수집하거나 지인과 구단으로부터 기증받은 물품으로 박물관을 꾸몄다. 그는 "오랜 야구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에 야구 박물관이 없다는 게 아쉬웠었다"며 "매년 전시 물품을 추가해 야구 박물관을 조금씩 확장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지난해 시즌 9위라는 아쉬운 성적표를 남긴 SK 와이번스. 새 시즌을 기다리던 김 회장에게 신세계그룹의 SK 와이번스 인수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구단 사정이 어려웠다면 예상이라도 했겠지만, 운영을 잘하고 있던 곳이 매각한다고 하니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고 한다.가장 애정을 가지고 응원했던 SK 와이번스가 사라진다는 실망감과 함께 혹시나 '새로운 구단이 연고지를 옮겨 인천을 떠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 야구팬들에게 남긴 일종의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그의 우려와 달리 신세계그룹은 인천을 연고지로 이어가며 지역 특색을 살려 야구단 이름을 '랜더스(LANDERS)'로 정했다. 여기엔 인천국제공항·인천항 등이 있는 '관문도시'로서 '상륙' 또는 '착륙'의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김 회장은 "SSG 랜더스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야구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어 구단에 애정을 가지고 운영할 거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며 "추신수 선수를 영입하는 등 구단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니 결국 응원하게 됐다"고 했다.김 회장은 앞으로 SSG 랜더스가 성적뿐 아니라 지역 사회,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그는 "프로야구단인 만큼 성적으로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SSG 랜더스 만의 색을 가진 야구를 보여줬으면 한다"며 "팀 이름에서도 지역 정체성을 담기 위해 노력했듯이 지역사회, 야구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글/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김종린 회장 제공인천시 미추홀구 신기시장의 김종린 상인회장이 시장 한쪽에 마련된 야구박물관에서 '홈런공장'이라고 새겨진 '인천군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김종린 신기시장 상인회장은 방 하나에 사인볼, 사인배트, 구단 유니폼 등 다양한 야구 기념품을 보관해놓고 있다. /김종린 회장 제공김종린 신기시장 상인회장은 방 하나에 사인볼, 사인배트, 구단 유니폼 등 다양한 야구 기념품을 보관해놓고 있다. /김종린 회장 제공

2021-05-04 김태양

[인터뷰…공감]'경기도 대북통 前 평화부지사' 이화영 킨텍스 대표이사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協 출범 주도 '대북기조 일관성' 강조옥류관 냉면 등 물산품전시회 아이디어 北 움직이지 않아 보류정치적 통일 서두르기 보다 남북 상호협력 길 열어가는게 중요제 3전시장 건립 '내실' 기해… GTX 복합환승센터 등 협의도그는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사회학과를 학생운동으로 졸업한 뒤 30대에 국회에 등원한다. 17대 국회의원 시절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간사를 역임하며 북한전문가로 부각된다. 2018년 7월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경기도와 인연을 맺은 후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협의회'를 출범시키며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북브레인으로 등장한다.이화영(58) 킨텍스 대표이사.그가 국제전시장 킨텍스의 CEO로 있는 것에 만족하는 이는 많지 않다. 탈냉전 이후 과도기에 머물고 있는 남북한 평화공동체 구축이라는 국민들의 과제를 풀고, 북한전문가로 실질적 대안제시와 함께 현재처럼 부동작 시간에 동력을 축적시키는 전문가로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지난해 9월1일 취임해 8개월여간 킨텍스 변화를 이끌어 온 그를 만났다.여권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 지사의 대북 발전 방안에 대한 다양한 묘안과 대책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그에게 해법을 듣고 싶었다. 그는 남북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경력이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는 자양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남북한 민간교류, 북한지역 관광 활성화 등을 통해 지방정부가 모세혈관처럼 북한과 교류할 때 상호관계가 굳건해지고 신뢰가 구축된다"고 강조했다.현재 킨텍스 대표이사라는 점을 부각하며 좀처럼 인터뷰를 꺼린 그에게 어렵게 얻은 시간인 만큼 듣고 싶은 얘기를 모두 물어봤다.# 이화영의 이야기 하나-남북관계고착된 남북관계의 해법에 대해 물었다.그는 "제가 가장 잘 아는 분야여서 남북관계가 잘 유지되면 흐뭇한 얘기를 많이 할 텐데…. 단절이 돼 아쉽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지자체의 대북 기조는 일관성 있게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경기도 평화부지사 시절 이 지사의 뜻을 받들어 주도한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협의회'를 염두에 둔 말이다.이 대표는 지방정부의 역할에 대해 "고양시의 경우 이재준 시장이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 사저, 북한과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킨텍스에 '이산가족 화상상담소'를 마련해 이산가족들의 북한 산소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제공해 주면 이곳에서 차례를 지내면 된다. 킨텍스는 남북정상회담 당시 프레스 공간을 마련해줬다"며 고양시를 예로 들었다.이뿐 아니라 자신이 평화부지사 시절, 북한과 합의한 것 중 하나인 '물산품 전시회'도 북에서 자랑하는 아이템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쪽에서 선호하고 관심 있어 하는 '옥류관 냉면', '평양소주', '금강산 생수' 등 남쪽에서 팔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전시회를 킨텍스에서 개최하면 좋을 듯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준비하고 있고 향후 논의해 관계가 개선되고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실행 가능하다"며 "현재는 북에서 움직이지 않아 모든 게 보류된 상태이지만 북측에서도 다양한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실제로 북은 개성공단을 비롯해 인근 지역에 공업단지, 시범단지 등을 만들려는 의지가 있었고 농업분야, 과거 스마트시티 분야 등 많은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이 대표는 "남북관계에 대한 젊은이들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 양쪽이 모두 정치적인 통일을 서둘러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남북이 상호협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시간을 10년, 20년 경유해서 남북한이 서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정치적 문제를 논의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그는 남북관계 전문가로 관계개선 및 발전을 위해 우선 갖춰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말했다. 첫째 제일 중요한 것으로 '인적교류'를 꼽았다. 사람이 오고 가야 벽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미국에 대해 중앙정부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북을 압박하니까 북은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애초 남북관계 기조를 잡을 때 북미 합의의 반발적 기조를 따라간 것 때문에 끝까지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교훈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세 번째로 "인도주의적 정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북에 대한 지원이 원활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의미다. 남쪽의 교육문제, 저출산 심화 등의 해법은 북과 연결하면 경제적 지평이 넓어지고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화영의 이야기 둘-킨텍스킨텍스의 현안과 발전방안에 대해 들어봤다.이 대표는 올 초 향후 10년간의 킨텍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신경영비전 및 중장기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지난 2월 조직체계 및 인사개편을 단행했다.코로나19 이후 변화되는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조직을 일부 신설하고 팀 간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고 빠른 의사결정으로 구성원들의 빠른 의견개진을 추구했다.이와 관련해 그는 "'해외사업팀'으로 명명하긴 했지만 향후 역량있는 사람들로 독립적인 사업단을 만들어 수소사업으로 해외 로드쇼, 케이팝 콘텐츠 등 K컬처를 세계 곳곳에 촘촘히 전파하는 역할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팬데믹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동남아 헬스케어와 러시아 시장, 중앙아시아 시장에 직접 진출하겠다"고 설명했다.5천억원이 투자되는 킨텍스 제3전시장 건립과 관련해서 그는 "제3전시장 건립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오는 5월부터 기본설계공모를 추진, 겉만 화려한 전시장이 아닌 IT 계통·디지털 요소를 갖춘 건축의 완성도 측면에서 2전시장과 다르게 '내실'을 기하고 있다"며 제3전시장 개장과 함께 큰 대표 전시회 개최 계획도 밝혔다.이 대표는 "GTX 개통도 이뤄진다. 1·2 전시장 사이 도로 및 지상공간을 활용해 복합환승센터, 킨텍스 앵커호텔 건립, 도심 공항터미널 및 시내면세점, 호텔 및 상업시설이 복합화된 경기 서북부의 핵심시설로 개발하기 위해 경기도와 고양시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킨텍스는 지난 2018년 6월 국제 경쟁입찰을 통해 서남아시장 마이스인프라 건립 사업인 30만㎡ 규모의 인도 뉴델리 IICC(인도 국제전시컨벤션 센터) 20년 운영권을 수주했다. 현재 약 70% 건립 공정률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IICC 전시장 운영을 통해 국내 중소기업의 서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경기도, 고양시, 중기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이 대표는 "코로나19 초유의 사태로 MICE 업계 그리고 킨텍스 모두 어렵고 힘든 고난의 시기를 걷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면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한 이력을 기반으로 현재의 위기를 과감하게 극복하고 있었다.글/김환기기자 khk@kyeongin.com, 사진/킨텍스 제공■ 이화영 대표이사는?▲ 2004년 제17대 총선 서울 중랑구갑 출마, 국회의원 당선(원내부대표,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여당 간사 역임)▲ 2011년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2012년 제19대 총선 동해·삼척, 제20·21대 총선 용인시 지역구 예비후보 등 출마▲ 경기도 평화부지사(2018년 7월~2020년 1월13일) 역임. 경기도 주체로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협의회' 설치▲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 노무현재단 자문위원(현)▲ 2020년 9월 제8대 킨텍스 대표이사(현)고양시에 위치한 킨텍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이화영 킨텍스 대표이사는 "킨텍스는 제3전시장 건립 이후, 남북 협력시대의 균형적 국토 발전 목적에 부합하는 경기북부의 인프라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1-04-27 김환기

[인터뷰…공감]'경기도 대북통 전 평화부지사' 이화영 킨텍스 대표이사

그는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사회학과를 학생운동으로 졸업한 뒤 30대에 국회에 등원한다. 17대 국회의원 시절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간사를 역임하며 북한전문가로 부각된다. 2018년 7월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경기도와 인연을 맺은 후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협의회'를 출범시키며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북브레인으로 등장한다.이화영(58) 킨텍스 대표이사.그가 국제전시장 킨텍스의 CEO로 있는 것에 만족하는 이는 많지 않다. 탈냉전 이후 과도기에 머물고 있는 남북한 평화공동체 구축이라는 국민들의 과제를 풀고, 북한전문가로 실질적 대안제시와 함께 현재처럼 부동작 시간에 동력을 축적시키는 전문가로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지난해 9월1일 취임해 8개월여 간 킨텍스 변화를 이끌어 온 그를 만났다.여권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 지사의 대북 발전 방안에 대한 다양한 묘안과 대책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그에게 해법을 듣고 싶었다. 그는 남북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경력이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는 자양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남북한 민간교류, 북한지역 관광 활성화 등을 통해 지방정부가 모세혈관처럼 북한과 교류할때 상호관계가 굳건해지고 신뢰가 구축된다"고 강조했다.현재 킨텍스 대표이사라는 점을 부각하며 좀처럼 인터뷰를 꺼린 그에게 어렵게 얻은 시간인 만큼 듣고 싶은 얘기를 모두 물어봤다.# 이화영의 이야기 하나-남북관계고착된 남북관계의 해법에 대해 물었다.그는 "제가 가장 잘 아는 분야여서 남북관계가 잘 유지되면 흐뭇한 얘기를 많이 할 텐데… 단절이 돼 아쉽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지자체의 대북 기조는 일관성 있게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경기도 평화부지사 시절 이 지사의 뜻을 받들어 주도한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협의회'를 염두에 둔 말이다.이 대표는 지방정부의 역할에 대해 "고양시의 경우 이재준 시장이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 사저, 북한과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킨텍스에 '이산가족 화상상담소'를 마련해 이산가족들의 북한 산소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제공해 주면 이곳에서 차례를 지내면 된다. 킨텍스는 남북정상회담 당시 프레스 공간을 마련해줬다"며 고양시를 예로 들었다.이뿐 아니라 자신이 평화부지사 시절, 북한과 합의한 것 중 하나인 '물산품 전시회'도 북에서 자랑하는 아이템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쪽에서 선호하고 관심 있어 하는 '옥류관 냉면', '평양소주', '금강산 생수' 등 남쪽에서 팔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전시회를 킨텍스에서 개최하면 좋을 듯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준비하고 있고 향후 논의해 관계가 개선되고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실행 가능하다"며 "현재는 북에서 움직이지 않아 모든 게 보류된 상태이지만 북측에서도 다양한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실제로 북은 개성공단을 비롯해 인근 지역에 공업단지, 시범단지 등을 만들려는 의지가 있었고 농업분야, 과거 스마트시티 분야 등 많은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이 대표는 "남북관계에 대한 젊은이들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 양쪽이 모두 정치적인 통일을 서둘러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남북이 상호협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시간을 10년, 20년 경유해서 남북한이 서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정치적 문제를 논의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그는 남북관계 전문가로 관계개선 및 발전을 위해 우선 갖춰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말했다. 첫째 제일 중요한 것으로 '인적교류'를 꼽았다. 사람이 오고 가야 벽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미국에 대해 중앙정부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북을 압박하니까 북은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애초 남북관계 기조를 잡을 때 북미합의의 반발적 기조를 따라간 것 때문에 끝까지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교훈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세번째로 "인도주의적 정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북에 대한 지원이 원활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의미다. 남쪽의 교육문제, 저출산 심화 등의 해법은 북과 연결하면 경제적 지평이 넓어지고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화영의 이야기 둘-킨텍스킨텍스의 현안과 발전방안에 대해 들어봤다.이 대표는 올 초 향후 10년간의 킨텍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신경영비전 및 중장기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지난 2월 조직체계 및 인사개편을 단행했다.코로나19 이후 변화되는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조직을 일부 신설하고 팀 간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고 빠른 의사결정으로 구성원들의 빠른 의견개진을 추구했다.이와 관련해 그는 "'해외사업팀'으로 명명하긴 했지만 향후 역량있는 사람들로 독립적인 사업단을 만들어 수소사업으로 해외 로드쇼, 케이팝 콘텐츠 등 K컬처를 세계 곳곳에 촘촘히 전파하는 역할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팬데믹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동남아 헬스케어와 러시아 시장, 중앙아시아 시장에 직접 진출하겠다"라고 설명했다.5천억원이 투자되는 킨텍스 제3전시장 건립과 관련해서 그는 "제3전시장 건립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오는 5월부터 기본설계공모를 추진, 겉만 화려한 전시장이 아닌 IT 계통·디지털 요소를 갖춘 건축의 완성도 측면에서 2전시장과 다르게 '내실'을 기하고 있다"며 제3전시장 개장과 함께 큰 대표 전시회 개최 계획도 밝혔다.이 대표는 "GTX 개통도 이뤄진다. 1·2 전시장 사이 도로 및 지상공간을 활용해 복합환승센터, 킨텍스 앵커호텔 건립, 도심 공항터미널 및 시내면세점, 호텔 및 상업시설이 복합화된 경기 서북부의 핵심시설로 개발하기 위해 경기도와 고양시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킨텍스는 지난 2018년 6월 국제 경쟁입찰을 통해 서남아시장 마이스인프라 건립 사업인 30만㎡ 규모의 인도 뉴델리 IICC(인도 국제전시컨벤션 센터) 20년 운영권을 수주했다. 현재 약 70% 건립 공정률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IICC 전시장 운영을 통해 국내 중소기업의 서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경기도, 고양시, 중기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이 대표는 "코로나19 초유의 상태로 MICE 업계 그리고 킨텍스 모두 어렵고 힘든 고난의 시기를 걷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면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남북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한 이력을 기반으로 현재의 위기를 과감하게 극복하고 있었다. 고양/김환기기자 khk@kyeongin.com<약력>■이화영 대표이사는▲2004 제17대 총선 중랑구갑 출마, 국회의원 당선(원내부대표,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여당 간사 역임)▲2011년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2012 제19대 총선 동해·삼척, 제20·21대 총선 용인시 지역구 예비후보 출마▲경기도 평화부지사(2018년7월~2020년1월13일) 역임. 경기도 주체로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협의회' 설치▲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 노무현재단 자문위원(현)▲2020년 9월1일 제8대 킨텍스 대표이사 (현)이화영대표는 "북에서 경기도와 교류협력을 하고자 하는 의지 강하다. 접경지이기 때문이다. 파주, 연천, 포천 등과 연계해 교류협력이 시작되면 빠른 속도로 일어날 수 있다"고 피력했다. 2021.4.27 /킨텍스 제공

2021-04-27 김환기

[인터뷰…공감]'수소경제 전도사'로 불리는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애초 수송에너지 연구하다 기후위기 대응 친환경에너지에 관심사용범위 지속 확대로 고용 창출… 미래 수출 효자상품 강조정부 지원·법적 근거 마련… 불확실성 최소화 기업 투자 기대일본에선 어린이집·병원 옆에도 충전소… 삶 윤택하게 만들어수소. 지구상 모든 물질 중 가장 가볍다. 수소는 산업용 원료로 많은 쓰임이 있었다. 정유공장의 탈황 공정과 비료공장 생산 공정에서 산업용 원료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20세기 수소는 그랬다.21세기 수소는 이제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전극에서 수소와 산소가 발생한다. 거꾸로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키면 물과 전기가 발생하게 된다. 이 원리를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가 수소 연료전지다. 이런 연료전지는 스마트폰, 노트북, 드론, 자동차, 기차를 비롯해 거대한 선박과 발전소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석유 등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전기 에너지를 만들 때와는 달리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등 대기오염 물질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만큼 친환경적이다.깨끗한 수소 에너지를 기반으로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사회. 바로 '수소경제' 사회다.김재경(45)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소경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수소경제 전도사로도 불릴 정도다.김재경 위원은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만드는 데 연구 책임자로 참여했다. 그는 "수소경제 정책과 산업, 그런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틀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실행해 나가야 하는지를 연구하면서 수소경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수소경제에 대해 많은 분에게 설명하고, 오해를 해소하는 경우가 늘면서 '전도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조금 과분하다"며 "수소경제가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애초부터 수소경제가 그의 연구 대상은 아니었다. 김재경 위원은 자동차·해운·항공·철도 등이 연관된 수송에너지 분야를 연구했는데, 4~5년 전부터 수송에너지 시장이 석유 중심에서 전기나 수소 중심으로 전환되는 걸 감지했다고 한다.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원은 기후 위기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등 대기오염 물질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 수소를 활용하면 친환경적으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화석 연료 중심의 사회를 개선하는 데 연구자로서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이런 요인은 그가 수소경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수소경제의 중심인 수소는 '범용성'이라는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김재경 위원은 설명했다. 그는 "과거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로 수소의 사용 범위가 지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어떤 분야에선 기존 산업을 대체하고 있고, 새로운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수소가 미래의 수출 효자 상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소 연료전지, 수소차, 수소 추출기 등 우리나라의 제조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비교 우위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탄소중립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수소에 대한 민간 기업들의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수소가 탄소중립을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기회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SK, 현대차, 포스코 등 국내 에너지·철강·화학·자동차 분야 국내 대기업들이 계획하고 있는 수소경제 투자 규모만 2030년까지 43조원에 달한다.정부도 수소경제의 기본이 되는 값싼 수소를 공급하기 위해 액화수소 생산·운송·활용 전반을 아우르는 일괄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민간의 투자 계획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는 것이다.김재경 위원은 최근 시행된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수소경제라는 게 2005년 마스터플랜을 마련해 연구개발이 추진된 적이 있는데, 사회적인 관심이 줄어들면서 정책 연속성이 떨어졌고 애초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간 경우가 있었다"며 "법적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했다. 이어 "수소경제 육성법을 기반으로 정부의 계획이 더욱 힘있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업들도 이런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김재경 위원은 수소경제에서 인천이 차지하는 역할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그렇다.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선 수소가 필요하다. 국내에서 필요한 수소를 100% 생산하기 어려우니 일정량은 수입해야 한다. 인천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국제항만을 갖추고 있다. 수소 수입에 유리한 인프라가 인천에 있는 것이다. 또한 인천은 수도권의 중요한 수소 생산지가 될 수 있다. 석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수소를 '부생수소'라고 하는데, 인천엔 관련 정제시설을 갖춘 공장이 있다.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로도 수소를 만들 수 있다. 인천은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조수 간만의 차와 풍력 등 재생에너지 자원도 활용할 수 있다.소비 측면에서도 인천은 상당한 규모의 인구가 있어 유리하다. 수소의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지역은 전국적으로도 드물다는 게 김재경 위원의 설명이다. 이는 인천시가 바이오·부생수소 생산클러스터 구축사업을 시작으로 수소경제의 선순환 구조(수소 생산~저장~공급~활용)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배경이기도 하다.수소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도시가스보다 안전하다. 김재경 위원은 "수소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은 아직 수소가 심리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두려움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일본은 어린이집 옆에, 병원 옆에 수소충전소가 있다"며 "익숙해지는 시간을 거치고 나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수소경제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우리 사회가 수소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과제는 여전히 많다. 정부는 컨트롤 타워로서 수소경제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관련 산업 육성과 규제 개선에 더욱 힘써야 한다. 민간 기업들은 수소경제를 기반으로 한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시민들은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수소경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김재경 위원은 "수소경제 정착을 위한 제도적·정책적 연구 분야가 아직 많다"며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고, 수소경제를 추진하는 해외 국가 연구진들과도 협력해 더 나은 성과를 얻는 데 기여하겠다"고 했다.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사진/김재경 위원 제공■ 김재경 위원은?▲ 1976년 부산 출생 ▲ 2013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2018년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수립 민관전문위원회 연구책임자 및 총괄간사 ▲ 2019년 울산 4차 산업혁명 U포럼 위원 ▲ 2020년 경기도 수소산업위원회 위원, 울산 수소산업위원회 위원, 에너지경제연구원 가스정책연구팀 연구위원 ▲ 2021년 범부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작성을 위한 기술작업반 위원, 국회 그린수소사회 연구회 위원김재경 위원은 "도시가스보다 안전한 수소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며 "수소경제가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021-04-20 이현준

[인터뷰…공감]'서수원 최초 종합병원' 화홍병원 개원 1년 앞둔 전덕규 명인의료재단 이사장

건설업 수익으로 '이웃 사랑' 힘써… 의료 낙후지역으로 눈돌려코로나 급격하게 확산… 초창기 병원 운영 어려워 힘든 한해 보내국민안심병원 지정·24시간 응급 대처… 모든 공간에 음압장비도"의료시설이 낙후된 서수원에 최고의 서비스를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서수원 최초의 종합병원으로 개원한 화홍병원이 다음 달 개원 1주년을 맞는다. 화홍병원은 40대의 젊고 패기 있는 전문의들로 구성, 16개 과목에서 진료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개원한 화홍병원은 평소 종합병원을 목표로 추진해왔던 전덕규 명인의료재단 이사장의 끈기와 열정으로 일군 병원이다. 전 이사장은 건설업을 해오다 의료계에 발을 디뎠다. 건설과 의료기관, 어찌 보면 맞지 않는 조합이지만 전 이사장은 평소 꿈꿔왔던 종합병원을 마침내 실현했다.13일 화홍병원에서 만난 전 이사장은 보자마자 대뜸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5월18일 서수원지역에 처음으로 종합병원을 개원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병원의 운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여파가 경제계는 물론 의료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게다가 초창기 종합병원의 운영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종합병원 이미지 구축과 지역 의료 서비스를 위해 매달렸고 최근에는 지역민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병원을 찾고 있다.전 이사장은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 병원을 개원해야 하는 부담이 컸다. 코로나19가 줄어들기는커녕 급격하게 확산했고 초창기 병원이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대처 방안이 없어 임직원들이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종합병원의 면모를 갖추기보다 운영하는 데 급급할 정도로 힘든 한 해를 보냈다"고 평가했다.그러나 전 이사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평소 지역민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쳐온 전 이사장은 건설업을 통해 얻은 이익을 교원단체, 청소년문화센터와 함께하는 노인 무료급식 봉사활동 지원에 힘써왔고, 그럴 때마다 낙후된 지역에서의 의료서비스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주변에 돈이 없어 병원을 찾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을 많이 봤다. 처음에는 건설업에 뛰어들면서 생활하기에 바빴는데, 병원을 운영해보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며 "지역 사회의 의료사각지대에서 힘들어하는 분들을 보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편안한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병원을 개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에는 조그마한 병원을 설립해 운영해 보려고 했지만 서수원 지역의 의료서비스가 낙후됐다는 소식을 듣고 종합병원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면서 "현재 작은 병원이지만 점차 규모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종합병원은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코로나19의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화홍병원이 서수원뿐만 아니라 수원 서남부지역에서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화홍병원은 최상의 의료시스템과 최고의 의료진을 구축하고 있다.전 이사장은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위해 최첨단 의료 장비를 갖추는 데 정성을 다했다. 특히 화홍병원은 5대 특화센터를 구성한 새로운 형태의 종합병원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고난도 척추 수술 및 재수술, 절개 없이 작은 구멍으로 척추 내시경 클리닉을 오랫동안 운영한 실력파 척추외과 의사인 최선종 병원장을 필두로 10년 이상 함께 진료해 온 서울대, 연세대 출신의 분야별 우수한 의료진들이 모여 5대 전문 센터를 구성해 환자의 이용·편의성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다.전 이사장은 "화홍병원은 최첨단 건축공법을 통해 생활 편의를 극대화한 친환경적이며 아름다운 병원 건물을 갖췄다"며 "'세상에 없던 새로운 더 좋은 병원'을 좌우명으로 최 병원장과 함께해온 젊고 유능한 의료진들이 모여 혁신적인 유기적 진료 협진 체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이 같은 방안에 따라 화홍병원은 ▲척추·관절센터 ▲소화기센터 ▲뇌신경·정신건강의학센터 ▲인공신장센터 ▲소아청소년센터 등 5개의 특화센터와 건강검진센터, 응급의료기관으로 구성, 환자에게 더 정확한 진료를 보장한다.지상 8층, 지하 2층 규모로 지어진 화홍병원은 2층에 외래진료공간과 특화센터가 있고 수술실(5개)과 음압병실을 갖춘 중환자실, 병상간격 2m의 쾌적한 입원실(4~7층·400병상) 등을 갖췄다.전 이사장은 "화홍병원은 세계적 영상진단 업체 GE의 MRI 3.0T 2대와 CT 128채널 2대, 골밀도 검사기 등 각종 첨단 의료장비를 보유해 환자들의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면서 "화홍병원만의 차별화된 의료서비스를 환자들께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미래의 병원은 대학 중심의 병원이 아닌 지역의 종합병원이 지역민들과 함께 건강을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최우선일 것"이라면서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된 화홍병원은 25명의 전문의료진이 16개 진료과목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365일 24시간 응급의학과 전문의(6명)들이 최상의 시스템을 통해 응급상황에 대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화홍병원은 코로나19 장기화와 겨울철 호흡기 질환의 동시 유행에 대비해 병원 1층에 '호흡기 전담 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전 이사장은 "호흡기 전담 클리닉은 진료실 및 대기실과 영상촬영이 가능한 X레이실뿐 아니라 검체실 등 모든 공간에 음압 장비 시설을 설치해 감염 예방과 호흡기 환자를 위해 운영하게 된다"며 "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받아 운영하는 만큼 주간과 야간에도 호흡기 질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이어 "호흡기, 발열 등의 증상 환자가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도록 호흡기 전담 클리닉을 운영하게 됐다"며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병원 진료를 꺼리는 환자분들도 이제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전 이사장은 "누구에게나 신뢰받는 병원,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환자 및 직원 모두가 행복한 병원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최고의 의료지식 및 기술과 최첨단 우수 의료 장비로 고객 만족을 실천하는 병원을 만들겠다"면서 "우수한 의료진과 전 직원은 더 매진해 서수원 지역 거점 병원을 넘어 전국 최고의 병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전덕규 이사장은?△ 2000년 9월 (주)풍산종합건설 대표이사△ 2003년 10월 (주)명인종합건설 대표이사△ 2009년 9월 (주)티엔에스산업개발 이사(사장)△ 2016년 4월 케이티주식회사 대표이사△ 2019년 11월 의료법인 명인의료재단 화홍병원 이사장△ 2011년 경기도지사 봉사상전덕규 명인의료재단 이사장이 화홍병원 개원 1주년을 앞두고 "누구에게나 신뢰받는 병원,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환자 및 직원 모두가 행복한 병원을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다.

2021-04-13 신창윤

[인터뷰…공감]초저예산 '인천스텔라' 만든 백승기 영화감독

'인천스텔라' 등 4편 제작비 1억도 안돼… 기간제 교사 일하며 충당영사실에서 본 '황비홍2' 잊을 수 없어 '주성치 비디오' 닳도록 시청'인천 내항' 단골 배경… 희로애락 함께한 풍경 관객과 나누고 싶어각자 삶의 터전이 '최고의 할리우드' 흥행 도전·다작 감독 사이 '고민'2014년 영화 '숫호구' 500만원, 2016년 '시발, 놈: 인류의 시작' 2천만원, 2019년 '오늘도 평화로운' 1천만원, 최근 개봉한 인천스텔라 6천만원 등. 백승기(39) 감독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찍은 초저예산 영화들의 제작비다. 7년 동안 4개의 장편에 투입된 제작비를 다 합쳐도 1억원이 넘지 않는다. 백승기 감독이, 맞대결 대신 '자매품 영화'라고 홍보하는 전략을 택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의 제작비 1억6천500만 달러(1천886억원)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만큼 터무니없이 적다. 제작비를 벌기 위해 기간제 미술교사로 일하면서도 정말 고집스럽게 영화를 찍어온 백승기 감독이다.최근 전국 100여개 상영관에서 일제히 개봉한 로맨틱 우주 활극 '인천스텔라'를 만든 백 감독을 인천 중구청 인근의 카페 '낙타사막'에서 만났다. 그는 "웰메이드(well-made)를 해야 하는데 '왜?메이드'를 하고 있다"면서 "지금 그 고집이 사람을 잡고 있다"고 웃었다. '여유로운 창작 환경도 아닌 상황에서도 왜 계속 영화를 찍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힘든 점도 많지만, 기쁨이 크기 때문에 (영화를) 계속 찍을 수밖에 없다. '영화' 그 자체가 너무 좋다"고 답했다.그는 언제부터 영화에 빠지게 됐을까? 그가 극장에서 처음 접한 영화는 초등학교 시절에 본 '황비홍2'였다고 한다. 그것도 객석이 아닌 영사실에서였다. 지금은 사라진 화평동 인천극장 영사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네 형을 따라 나섰다 그는 그때 평생 잊지 못할 신세계를 경험했단다."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인류가 처음 경험했을 때의 그 충격, 느낌이 그때의 제가 받은 그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그때 영사기에서 쏜 빛이 스크린에 펼쳐지던 그 모습, 영화라는 그 자체가 신기했어요."이후로 극장은 자주 가지 못해도 '비디오'로 영화를 즐겼다. 동네 친구들과 배우 주성치의 영화를 비디오테이프가 닳도록 봤다. 어제 본 영화를 오늘 보며 또 웃었다. 이후 인천예고 1학년에 다니던 때 만난 영화 '타이타닉'은 정말 경이로웠고 충격 그 자체였다."IMF 이후 '금 모으기'가 한창이었어요. 저 영화를 보면 외화가 그대로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해서 보지 말라던 영화였죠. 너무 궁금해서 그 영화를 보러 갔어요. 좋아하던 여학생과 볼 생각으로 배다리에 있던 피카디리 극장에서 영화표 두 장을 예매했죠. 그런데 여학생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자리 두 개를 차지하고 혼자 앉아서 봤죠. 옆 사람이 아닌 영화에만 집중했어요. 그야말로 경이롭다는 말 밖에….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배, 연기라고 믿기 힘든 사람들의 모습,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어요. 정말 '영화는 인간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창작 활동'이라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백 감독의 영화는 인천에 없는 곳을 빼고는 모두 인천에서 촬영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저예산으로 만들다 보니 자신이 잘 아는 동네의 인프라를 활용했다. "어차피 우리는 잘 못 만든다. 가진 것도 없고 기술도 없고, 인맥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어차피 우리가 못 만들 바에는 차라리 세상에서 제일 못 만들자. 그만큼 부담을 갖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작 환경 안에서 우리가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어요. 동네를 기반으로 많은 단편을 만들어 냈고, 급기야 저예산으로 장편도 만들고 운이 좋게도 극장 개봉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원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을 제외하곤 마치 서명처럼 그의 영화마다 꼭 등장하는 인천의 모습이 있다. 자유공원 광장에서 바라본 인천 내항의 모습이 그렇다. 배우가 자유공원 광장 난간 앞에 서서 인천항을 바라보는 모습이 거의 모든 영화에 나온다. 또 공자상 옆 계단에 앉아서 배우들이 인천항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 또 홍예문 위를 걷는 장면 등도 그가 꼭 담아내는 그림이다.백 감독은 "제가 생각하는 인천의 아름다운 장소인데, 인천이 이탈리아 나폴리 못지 않은 미항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릴 적엔 잘 몰랐지만, 작품으로 재해석하면서 더 좋아진 장소들인데, 제가 힘들 때나 기쁠 때 바라본 풍경들이다. 그 감성을 관객과 같이 나누고 싶어 꼭 등장시킨다"고 설명했다.그는 각자 사는 삶의 터전이 최고의 '할리우드'라고 강조했다."영화판을 이야기할 때 아직도 '할리우드로 진출해야지', 혹은 '충무로로 가야지'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인천에서 영화 만드는 백승기도 충무로로 보내는 기자분들도 계시고요. 하지만 지금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창작집단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충무로가 아니라 인천의 화도진로, 홍예문로 정도가 되겠죠. 저는 화도진로 시네마, 홍예문로 시네마를 펼치고 싶습니다."그는 아직은 매번 '완성' 그 자체를 목표로 영화를 찍고 있지만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고민이 있다."상업적 감독으로서의 성취감도 이루고 싶어요. 현재 상업적인 성공에 주력하거나, 아예 포기하고 다음 세대 관객을 위해 '한국에 저예산으로 수십 편의 다작을 남긴 이런 감독이 있었다'는 식의 외롭고 쓸쓸한 목표에 도전을 해야 할지 갈림길에 있는 것 같아요. 저뿐 아니라 같이 참여해주시는 분들에게도 언제까지 '그저 즐겨 주세요. 돈 없이 합니다' 이럴 수는 없겠더라고요. '의미 있었어'라고 제 입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말은 나중에 사람들이 평가해주는 것이지 저 스스로 입에 담을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마지막으로 영화감독으로서의 목표를 물었다. 그는 "임종 직전까지 그 순간에도 카메라와 노트북이 놓여 있다면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백승기라는 장르의 영화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백승기 감독은?1982년 출생. 주변의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해 첫 장편영화 '숫호구'를 시작으로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오늘도 평화로운', '인천스텔라'까지 연출한 4편의 작품이 모두 부천영화제에 초대되면서 부천의 총아로 불리고 있다.▲ 2012 '숫호구' 장편 Super Virgin (feature)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후지필름 이터나상, 제27회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 초청▲ 2016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장편 Super Origin (feature)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 2019 '오늘도 평화로운' 장편 Super Margin (feature)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 2020 '인천스텔라' 장편 Super Nova (feature)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편배급지원상, 제7회 춘천영화제 춘천의 시선상지난 3월25일 전국 100여개 극장에서 일제히 개봉한 '메이드 인 인천' SF영화인 로맨틱 우주 활극 '인천스텔라'를 연출한 백승기 감독을 최근 인천 중구청 인근에 있는 카페 낙타사막에서 만났다. 백 감독은 "임종하는 순간까지 카메라와 노트북만 곁에 있다면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백승기라는 장르의 영화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2021-04-06 김성호

[인터뷰…공감]'효성에어캡 대표' 류현숙 (사)한국여성지도자연합 경기도지부장

# 동네 주부들과 가내수공업 공장 시작새벽부터 집안일 끝낸 후 자동차 베어링 다듬어10년 일하는 감각 익힌 셈·타파웨어 딜러 3년도보석사우나 '망우석' 수입 유통… 남편까지 지지 # 가장 값싼 포장지가 빛나는 순간수억 원 사기 '타격'… 재기의 사업 아이템 발견男영업문화 슬기롭게 극복 거래처 수십 곳 뚫어40~60대 여성 자격증 취득·재취업 '디딤돌' 역할한국은 전 세계에서 30대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지난 2019년 기준 성인여성 526만명이 경력단절을 겪어 연령별 취업곡선이 M자를 그리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경제 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지적했을 정도다. 그러나 경기도에는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에게 재취업을 지원하는 단체가 있다. (사)한국여성지도자연합(이하 여지연)이다. 여지연 경기도지부장으로서 17개 시·군 지회에서 1천500명의 회원에게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류현숙(63) 효성에어캡 대표를 30일 수원 인계동 경인일보 사옥 브리핑룸에서 만났다.류 대표는 경희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할 만큼 뛰어났지만 수십 년을 집에서 주부로 지냈다. 지난 1982년 공무원과 결혼해서 2004년 사업가로 변신할 때까지 22년 동안 집에서 살림을 도맡았다. 류 대표는 "그때만 해도 공무원 아내가 집 밖을 나가고 '내조'를 잘 못하면 '철밥그릇이 개밥그릇으로 바뀐다'고들 했다. 오후 6시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집안일에 전념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이른 새벽부터 집안 청소를 하고, 남편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끝내고, 우는 아이의 기저귀까지 갈고 난 후 그는 동네 주부들을 모아 일종의 가내수공업 공장을 차렸다. 10년간 자동차 베어링(모터의 축을 지지하는 부품)을 다듬어 공장으로 보내며 '일하는 감각'을 체득했다. 세기가 바뀌고 자녀가 어느 정도 자라자 이번엔 타파웨어(전자레인지용 플라스틱 용기) 딜러로 3년을 또 일했다. 류 대표는 "일하는 여성으로서 밑바탕을 쌓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전국에 '보석사우나'가 유행했던 2004년 류 대표는 마침내 일을 벌인다. 사우나에 들어가는 망우석(초록색 보석)을 수입해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가로의 전업을 말릴 것만 같았던 남편은 오히려 열렬한 지지자가 돼 주었다.설렘도 잠시, 초보 사업가였던 류씨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수억원의 사기를 당한 것이다. 낙심해 망우석을 도로 포장하던 류 대표의 눈에 문득 들어온 것은 그 망우석을 싸고 있던 에어캡이었다. "에어캡은 가장 값싼 포장지잖아요. 포장뿐 아니라 택배를 보낼 때도 많이 쓰일 것 같았어요." 마침 그 무렵 그릇 도매상에 갔는데 그릇마다 에어캡이 끼워져 있었다. 현재처럼 제조에서 유통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정확히 예측한 건 아니지만, 막연하게 느낌이 좋았다. 2007년 그는 오래된 공장을 임대해 효성에어캡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출범한다.류 대표가 가장 공들인 건 설비였다. 작은 물건 포장용으로는 7파이(약 22㎝) 크기의 에어캡이 쓰이지만 이삿짐 포장용으로는 20파이(약 63㎝) 짜리가, 인쇄용품·건설장비 포장용으로는 30파이(약 94㎝) 짜리가 쓰이는 등 용도에 따라 에어캡 크기가 달라지는 데 주목했다. 다양한 종류의 에어캡 생산 설비를 들이는 데 필요한 자금은 지역 금융기관과 은행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2~3년밖에 안 됐는데도 기술보증기금이 사업성을 인정해 제법 큰 규모로 보증을 서 주고, 기업은행도 자금력을 보탰다. 류 대표는 "내가 갚아야 할 돈이며 세금을 안 밀리고 꼬박꼬박 내려 하니 자다가도 눈이 번쩍 떠졌던 시기"라고 말했다.거래처에 일반화돼 있던 술·골프 등 중년 남성 특유의 영업문화를 그는 슬기롭게 극복했다. 때로는 '나도 남자다'라고 생각하고 골프를 함께 치며 어울렸지만, 여성에 대한 장벽이 여전하다고 느껴질 때면 남성 부장에게 바통을 넘기기도 했다. 정해진 방법은 없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내 물건을 팔고 싶다는 진정성을 어필하는 것이었다. 결국엔 삼성전자 1차 벤더까지도 류 대표를 믿고 거래를 맡겼다.시대적 조류를 살피는 일도 잊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당시는 택배 문화가 처음 싹틀 때였다. 값싼 포장재로서 에어캡의 수요가 두터워졌다. 무엇보다 야후·라이코스·세이클럽 등 포털사이트가 속속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류 대표는 이를 놓치지 않고 포털사이트에 공격적으로 광고를 개시했다. 광고를 보고 주문이 하나둘씩 들어오더니 3개월이 지나니 거래처 수십 곳이 뚫렸다.3년쯤 됐을 때 창문 단열용 에어캡이 시장에서 반응을 얻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집 안의 외풍을 차단할 수 있는 창문용 에어캡은 기업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4년 만인 지난 2011년 구공장 임대였던 공장을 5천610㎡ 규모의 새 공장으로 바꿨다. 이후 각종 ISO 인증을 받는 등 기술력을 쌓아 현재는 수도권 에어캡 업체 수십 곳 중 5위권 업체가 됐다.현재 류 대표는 사업가뿐 아니라 지역 경력단절여성의 디딤돌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여지연은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됐던 40~60대 여성들이 전문 교육을 받고 치매 치료나 다도, 웃음치료 자격증을 취득해 재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열심이다. 사랑의 열매, 빨간밥차, 유엔난민기구,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등 정기 후원하는 단체만 10여개다. 최근엔 유니세프에서 장기후원 감사패도 받았다.류 대표는 "여성들이 자신감을 잃지 말고 사회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취업이나 창업의 경쟁률은 예전보다 높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진입 장벽이 낮아진 시대라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경기 지역의 경력단절여성에게 이 말을 남겼다. "절대 실망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세요. 1인 기업이 100인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글/이여진기자 aftershock@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류현숙 대표는?△ 2009년 7월효성에어캡 설립△ 2011년 2월 경기도지사 표창 △ 2014년 10월 (사)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 법인이사(현)△ 2016년 2월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2018년 3월 국세청 모범납세자 및 아름다운납세자상 수상△ 2018년 3월 화성상공회의소 의원(현)△ 2020년 2월 (사)한국여성지도자연합 경기도지부장(현)경기지역 경력단절여성들이 사회에 성공적으로 복귀하는 데 디딤돌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류현숙(63) 효성에어캡 대표. 류 대표는 지난해부터 (사)한국여성지도자연합 경기도지부장을 맡아 17개 시·군 지회에서 회원 1천500명에게 다양한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21-03-30 이여진

[인터뷰…공감]개항 20주년 맞는 '구원투수' 김경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모두 같은 '출발선'… 준비 안 하면 공항 경쟁서 살아남기 어려워글로벌 문화예술 교류 거점 역할 '차별화' 지역 관광자원에 기여도인천공항 외 글로벌 톱10 모두 정비단지 가져… MRO 클러스터 역점노선 확대·여객 증가 '선순환'… 교통약자·노동자 위한 인권 경영도인천국제공항이 오는 29일이면 개항 20주년이 된다. 개항 이후 눈부신 성과를 이뤄낸 인천공항이지만 20주년을 맞이하는 상황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코로나19는 공항 관련 산업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24시간 내내 붐비던 여객터미널은 한산하기만 하다. 2017년부터 진행한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인천국제공항공사 김경욱 사장은 올해 2월 취임했다. 인천공항공사 설립 이후 최초로 전임 사장 해임 이후 임명된 사장이다. 인천공항 내외부 상황이 그야말로 '최악'일 때 취임한 김경욱 사장에 대해 기대와 함께 우려도 컸다. '소방수' 역할을 맡은 김경욱 사장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취임한 지 50여일이 지난 김 사장은 "인천공항뿐 아니라 인천공항을 함께 만들어온 항공사와 상업시설 등 항공업계 전체가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며 "임대료 감면 등 적극적으로 상생 노력을 펼치고 있으나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어려운 경영 환경이 예상된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코로나19가 촉발한 인천공항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점이었던 2019년 수준으로 항공 수요가 회복하는 시기는 2025년 이후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는 750만명 안팎의 여객이 인천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인천공항이 개항한 2001년(약 1천400만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김 사장은 "코로나19가 인천공항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이 지속 가능한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인천공항은 사람과 기술, 문화가 만나는 혁신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공항으로 변모해야 한다"며 인천공항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항 간 경쟁이 더 격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지금 전 세계 모든 공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항공 수요가 회복하는 시기에는 새로운 경쟁을 하게 된다. 이때는 앞서 인천공항이 가졌던 '경쟁 우위'가 없어지고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공항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인천공항이 경쟁 공항과 차별화하는 요소로 '문화'를 꼽았다. 김 사장은 "인천공항을 단순 관문이나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천공항은 앞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전초 기지이자 글로벌 문화예술 교류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천공항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는 공항이 되면 아웃바운드 여객(내국인 출국객)이 인바운드 여객(외국인 방한객)보다 많은 현재 상황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이를 위해 민간 기업, 지자체 등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또한 인천공항 국제업무지구에 조성되고 있는 카지노 복합리조트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와 인천 지역 관광 자원 등은 인천공항의 역할을 더욱 다양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봤다.인천공항이 '수요 창출형 공항'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공항산업 육성의 중심지가 돼야 한다. 특히 항공 MRO(수리·정비·분해조립) 클러스터 조성은 인천 지역사회와 인천공항공사가 함께 추진하는 역점 사업이다. MRO 클러스터 조성은 항공산업의 안전도를 높이고 기술력 확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필요한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 등이 정비 역량을 갖고 있지만, 자가 정비 중심이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해외로 정비를 맡기는 물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김 사장은 "글로벌 톱10 공항 중 인천공항 외에 모두 기체, 엔진, 부품 정비가 가능한 항공정비단지를 개발·운영하고 있다"며 "국내 취항 항공사 대부분이 인천공항에서 정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또 "항공 MRO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해외 MRO 기업 유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며 "MRO 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부지도 마련돼 있는 만큼, 머지않은 시기에 MRO 클러스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는 MRO 기업의 초기 투자비 부담을 줄이고 사업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합작기업에 지분 투자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공항공사 등도 MRO 합작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MRO 산업 육성은 허브공항으로서 인천공항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허브공항은 다양한 노선이 얼마나 자주 운항하는지를 일컫는 '연결성' 등을 토대로 평가된다. 다양한 노선이 자주 다니는 '높은 연결성'은 여객 편의로 이어진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여객의 증가로 이어진다. 인천공항에 취항하는 항공사가 공항 인근에서 정비까지 받을 수 있으면 항공사의 취항 노선이 확대되고, 이는 다시 여객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된다. 김 사장은 "항공 노선 연결성 등 기본적인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이런 노선과 여객의 유입이 얼마나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지난해 인천공항공사는 인천시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 iH(인천도시공사),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과 '인천공항경제권 추진협의회'를 발족했다. 인천공항공사 사장 공석으로 한동안 활동이 멈춰 있었는데, 김 사장 취임을 계기로 추진협의회 활동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사장은 "인천공항 허브화를 위해서는 인천시 등 관계 기관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인천시와 인천공항공사를 중심으로 '인천공항 경제권'을 실현하기 위한 비전·전략을 수립하고, 의견 수렴을 거쳐 올 상반기 중 선포할 것"이라고 말했다.최근 취임한 심재선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은 '인천공항발전협의회'를 구성·운영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 사장은 이 단체가 인천공항과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논의하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김 사장은 "다양한 소통·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김 사장은 'ESG 경영'과 '인권 경영'을 위해서도 힘쓴다는 계획을 밝혔다.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은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김 사장은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을 개선하고 세계가 신뢰하는 공항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ESG 경영'을 펼치겠다고 했다.인천공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도 중요하다. 김 사장은 "인천공항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용 안정, 전문성 강화 등을 복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미래 20년을 준비하며 충분히 대화하고 공감대를 넓히면서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인권 경영과 관련해선 공항 이용객과 협력 업체 등 공항 생태계 전체를 대상으로 인권 수준을 끌어올리고, 교통 약자와 위험 분야 노동자 등 인권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김경욱 사장 임기는 2024년 2월까지다. 인천공항 향후 20년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다. 그는 "강동석 인천공항공사 초대 사장님이 인천공항의 틀을 잡았고, 이를 토대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향후 20년 뒤에 인천공항의 재도약을 이뤄내는 데 기여한 사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김경욱 사장은?△ 1966년 출생△ 1984년 서울 충암고등학교 졸업△ 1988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89년 제33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2013년 4월~2014년 5월 국토교통부 철도국장△ 2014년 5월~2015년 5월 청와대 국토교통 비서관△ 2017년 2~9월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2018년 4~12월 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 2018년 12월~2019년 5월 국토교통부 기획조정실장△ 2019년 5~12월 국토교통부 제2차관△ 2021년 2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취임인천국제공항이 오는 29일 개항 20주년을 맞는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인천공항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김경욱 사장이 취임했다. 그는 "인천공항이 재도약하는 데 역할을 한 사장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2021-03-23 정운

[인터뷰…공감]'GA코리아·성균관대 개설 골프학과 강사' 임진한 프로

# 봄 맞은 그린, 가장 다치기 쉬운 계절비거리 욕심 내면 OB밖에 나오지 않아실력에 맞는 클럽 선택… 전략 세워야# 스크린골프 언더파가 안통하는 필드날씨·바람 등 변수 많은 실전경험 강조스윙은 선수에게도 힘들어 노력·인내를"골프는 인내와 전략이다." 오랫동안 고칠 수 없었던 개인의 문제점이 단 몇 번의 지도를 통해 굿샷으로 변화된다. 본인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한 많은 골퍼들은 그의 지도력에 또 한 번 놀라워한다. 도저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초보 골퍼들을 마법처럼 변화시키는 그의 마력에 귀가 쫑긋하다. 방송사의 골프 채널 '임진한의 터닝포인트 전국투어'를 통해 비춰진 임진한(63) 프로 얘기다. 그는 아마추어 골퍼들의 고민과 문제들을 짧은 시간에 해결해 주는 골프 레슨 지도자다. 이미 골프 마니아들은 임 프로의 레슨 동영상을 수없이 보고 배울 정도다. 특히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임 프로의 골프 지도에 감명을 받는다.임 프로를 지난 5일 용인 코리아CC에서 만나봤다. 이날은 GA코리아(회장·이동준)와 성균관대가 국내 최초로 석·박사 학위 취득이 가능한 골프학과를 개설하는 날이어서 임 프로가 직접 레슨 지도를 했다. 그는 레슨 프로그램에서 늘 보았듯이 모자를 벗고 웃으면서 깍듯하게 맞아주었다. 요즘 방송 프로그램을 잘 보고 있다는 말에 그저 웃음만 보여준다. 그러면서 골프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들려줬다.3월 들어 골프 시즌이 본격화됐다. 이미 지난해부터 전국의 골프장은 만원 사례였다. 해외에서 골프를 즐겼던 골프 마니아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에 집중적으로 몰렸고, 20~30대 골프 인구 증가는 골프장 예약을 하늘의 별 따기로 만들었다. 특히 골프장은 회원제를 줄이면서 일반제(대중제)로 전환을 시도했고, 일부 골프장은 골프장 이용료(그린피)를 올려 골퍼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임 프로는 이런 골프장에 대해 "그린피가 인상된 것은 맞는 부분이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골프장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라운딩하면서 잘 정리된 홀 경관을 볼 수 있는데 좋은 환경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골프장 업계도 많은 인력을 동원해 관리를 잘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이런 골프장을 매일 관리하기 위해선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이는 골프장 수입에 큰 손실을 줄 수도 있다"고 전했다.이어 그는 "골프 대중화에도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골프장 개별소비세를 낮추고 있지만 더 인하해야 한다. 또 대중제 골프장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 골프장 업계가 머리를 맞대 다양한 정책을 마련해야 비로소 골프 대중화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골프장 인구의 증가로 골프장 업계는 겨울에도 필드를 개방했다. 3월부터는 야간 라운드도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이에 임 프로는 골프인들이 가장 다치기 쉬운 계절이 바로 요즘이라고 얘기한다. 그는 "겨울 동안 한 번도 골프 클럽을 잡지 않았는데 갑자기 필드에 나가면 몸에 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필드에 나가기 전 필수 사항으로 반드시 3회 이상 연습장에서 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골프는 남녀노소 좋은 스포츠다. 하지만 타수를 줄이려고 욕심을 부려 힘껏 휘두르면 절대 안 된다"며 "상대방의 실력을 신경 쓰기보다 본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라운딩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덧붙였다.그러면서 '골프는 인내와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 프로는 "골프는 인내와 전략이 필요한 운동이다. 다른 사람이 비거리가 더 멀리 나간다고 해서 욕심을 부리면 당연히 OB(out of bounds)밖에 안나오지 않겠느냐"며 "자신의 실력과 몸 상태를 제대로 알고 인내하면서 골프를 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모든 프로 선수가 자신만의 전략을 세운다. 골프는 다양한 크기의 클럽(드라이버, 우드, 아이언 등)을 잘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에 맞는 클럽을 선택해야 한다. 즉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국내 골프 인구의 증가로 스크린 골프 동호인들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 임 프로는 "스크린 골프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나 게임에 불과하다. 스크린에서 언더파를 친다고 해서 필드에서도 언더파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스크린 골프는 기계적으로 공식화됐지만, 필드에서는 잔디 상태, 날씨, 기온, 바람 등 다양한 환경이 존재한다. 그만큼 실전 경험과 자신만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그럼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임 프로는 "노래에서도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요즘 트로트 경연을 TV에서 보면 처음부터 목청껏 부르는 노래는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골프는 처음 동작에선 힘을 빼고 공을 쳤을 때의 강함이 필요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70%의 스윙으로 훈련해야 한다. 반복된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프로 골프 선수들은 원포인트 레슨을 통해 자신의 스윙을 점검하고 꾸준히 연습한다. 아마추어들도 잘못된 스윙이 습관처럼 이어지면 안 된다. 주기적으로 티칭 프로에게 자신의 스윙을 점검하고 올바른 훈련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그러면서 임 프로는 "완벽한 스윙은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임 프로는 지난 2011년 타이거 우즈가 한국에 왔을 때를 회상했다.그는 "당시 우즈에게 18홀 중 14번의 드라이버를 잡게 되는데 완벽한 샷은 몇 번이었냐고 물어봤다. 이에 우즈는 단 1~2회밖에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세상에 완벽한 샷을 구사하는 선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만큼 골프 스윙은 프로 선수에게도 힘들다. 그런 골프를 아마추어 골퍼가 한다면 얼마나 정확하게 할 수 있겠는가. 골프는 그만큼 노력을 요구하고 인내해야 하는 운동"이라고 피력했다.한국 선수들이 외국에서 골프의 중심에 서 있다. 이에 "우리나라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스파르타식 훈련과 지도자, 부모의 열정이 더해져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며 "특히 우리 선수들의 강점은 흔들리지 않는 멘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나 실력 모두 최고의 기량을 갖춘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임 프로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겸손과 배려다. 그를 통해 배운 사람들은 ▲어렵지 않고 쉽게 레슨을 해준다 ▲핵심을 꼭 집어서 이야기해준다 ▲큰 경험으로 개인의 문제점을 쉽게 찾아낸다 등 많은 칭찬이 이어진다.임 프로는 다른 레슨 프로에게 느낄 수 없는 초보자를 대하는 겸손과 상대방을 이해하는 배려 섞인 마음이 월등하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임 프로는 국내 최고의 골프 지도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임 프로는 "초보 골퍼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을 이해하고, 한 번 더 설명하고, 한 번 더 연습하고, 한 번 더 피팅을 해드리면 부담을 떨쳐내고 비로소 자기의 스윙을 찾게 된다"며 "아주 편한 자세로 쉽게 가르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임진한 프로는?▲ 2011·2013년 골프다이제스트 미국을 제외한 세계 50대 코치 ▲ 2000년 3월 이동수 골프단 감독 ▲ 1996년 임진한 골프 대표, 일본프로골프협회 회원 ▲ 1993년 대한골프협회 최우수선수상<도서>▲ 2018년 7월 임진한의 터닝포인트(사람인레슨)-유니콘 ▲ 2014년 4월 임진한의 골프가 쉽다(임진한 프로의 개인 레슨)-삼호미디어 ▲ 2002년 11월 임진한 ONE POINT 클리닉-삼호미디어 ▲ 2001년 2월 골프 스윙의 기본(POWER-UP)-삼호미디어<방송>▲ 2009~2014년 레슨투어 VICTORY ▲ 2000~현재 SBS골프 아카데미아마추어 골퍼들의 고민과 문제들을 짧은 시간에 해결해 주는 골프 레슨 지도자 임진한 프로가 용인 코리아CC에서 아마추어 골퍼를 상대로 아이언샷에 대한 지도를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임 프로가 참가자의 퍼팅을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는 모습.

2021-03-16 신창윤

[인터뷰…공감]'코로나 백신 불안 해소 앞장' 정재훈 가천대 길병원 예방의학과 교수

전세계적으로 유행 탓… 비교대상 충분히 확보하기 쉬워 개발 시간도 단축美 수천만-英 1천만 도즈 넘어… 임상시험의 몇백배 이르는 접종 '안전성 확보'몸살 경증 1~2일후 사라지고 중증 '아나필락시스' 화이자 10만명당 1명 일반적허약·고령자엔 치명적 질병… 사회적 약자 향한 공동체의식 확인하는 계기를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요즘 그가 일하는 가천대 길병원에서 '스타'로 통한다. 각종 매체의 인터뷰와 기고, 방송출연 등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만난 지난 5일에도 방송 인터뷰가 3건, 출연이 1건 잡혀있었다. 기자들의 전화는 하루에 70여통을 받는다. 모두 잠자는 시간을 줄이거나 점심을 대충 때우는 등 자기 시간을 쪼개서 활동하는 '가욋일'이다. 그는 "일반 시민들의 오해에서 오는 불안감이 없도록 감염병과 관련한 의료 현안을 쉽게 설명해 도움을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라며 "몸은 힘들지만, 도움이 됐다는 분들이 많아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자신의 SNS에 해외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의료 현안을 정리하는 등의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독감백신 사태가 터진 이후였다. 당시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한 일이 있었는데,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과 독감백신으로 인한 사망은 분명 다르다며 그가 알기 쉽게 정리한 설명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며 국민적 불안감을 잠재우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 또 비슷한 일이 반복되며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재훈 교수를 만나 백신 이야기를 들었다.■ 백신 불안감 부추기는 보도 아쉬워온 국민이 백신 접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시기에 "백신을 접종한 환자가 사망했다"는 식의 백신 신뢰도를 깎아내리고 막연한 불안감을 높이는 언론보도가 많다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특히 이런 보도로 인해 확산하는 사회적 불안감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압도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다고 했다. 그는 "어느 누가 백신을 접종한 뒤 이틀이 지나 사망했다고 하면, 마치 사실처럼 들리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처럼 보인다"면서 "하지만 10~20분이면 쓸 수 있는 기사를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려면 그보다 수십배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런 상황은 전문가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말했다.정 교수는 "이제 백신을 의심할 시기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이 너무 빨리 개발됐다고 안전성에 대해 의심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는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기 때문에 백신 개발도 빠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신이 효과성과 안전성을 입증하려면 특정 집단에 감염병 예방접종을 실시해 예방접종을 실시한 집단과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집단을 비교하고, 또 감염병에도 노출되도록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백신 시험은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다. 하지만 광범위한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비교 대상을 충분히 확보하기 쉬웠고, 시간도 단축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우리나라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백신 접종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늦게 시작해 다른 나라의 접종 결과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백신의 안전성을 확인한 기회였다. 지금 미국·영국·이스라엘 등은 백신과 관련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미국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영국은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를, 이스라엘은 화이자 위주의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 백신의 임상 시험 규모는 3만~4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숫자만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임상 규모다. 하지만 미국의 접종량은 수천만 도즈(1도즈는 1회 접종분)를 넘겼고, 영국도 1천만 도즈를 넘어섰다. 이스라엘도 이미 500만 도즈를 넘겼다. 그는 "임상시험의 몇 백배에 이르는 접종이 이뤄졌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보면 백신이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면서 "안전성 또한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한 백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신 안전성 신뢰할 만한 수준그는 "현재 사용하는 백신에서 주의할 만한 부작용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안전성 문제는 해소됐다"면서 "저도 백신 접종을 할 것이고, 내 가족과 부모님께도 백신 접종을 권한다"고 말했다.백신 안전성에 대한 얘기는 곧 부작용에 대한 얘기인데, 부작용은 단기 부작용과 장기 부작용으로 구분해 살필 수 있다. 지금의 백신은 사실상 1회용으로 면역력을 생성하고 사라지는 역할을 한다. 만성질환이나 장기 부작용은 드물고 확률도 낮고, 인과관계에 대한 평가도 어렵다.단기 부작용은 경증과 중증으로 살필 수 있는데, 접종 부위가 아프다거나 붓거나 빨개지고 몸살 기운이 오는 등의 가벼운 경증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이는 백신이 병에 감염된 것처럼 우리 몸을 속여서 면역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고, 1~2일에 사라져 심각한 것이 아니다. 중증으로는 대표적인 것이 우리 몸에 외부물질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아나필락시스'인데 화이자를 예로 들면 10만명당 1명 정도로 일반적인 수준이라는 것이다.■ 1년 더 버텨야그는 "정부나 전문가 집단이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2주만 참아주세요'라는 식으로 메시지를 줬는데, 결과적으로 모두를 양치기 소년으로 만든 잘못된 선택이었다"면서 "코로나19는 앞으로 1년은 더 지속할 것이고, 언제든 다시 확산하고, 사망자도 생길 것이다.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1년은 코로나19 상황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꼭 백신을 맞고, 1년만 더 버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냥 감기처럼 코로나19의 위험성이나 백신 접종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몸이 약한 사람이나 할머니·할아버지에게는 너무 치명적인 질병"이라며 "나는 괜찮겠지 하지 말고, 모두가 백신을 맞아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백신을 맞는 일을 우리 사회의 연대의식을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감염병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시험하는 시기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코로나19를 통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사회 문제들이 굉장히 많이 노출됐다. 극단적인 종교세력, 극단적인 정치활동,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성(性)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이 감염병을 통해 존재를 알렸다"면서 "감염병은 우리 사회의 수준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했다. 그는 남은 1년을 "우리 사회가 감염병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준비가 얼마만큼 되어 있는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동체 의식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정재훈 교수는?▲ 1984년 대구 출생 ▲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조교수 ▲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빅데이터융합센터(G-ABC) 센터장 ▲ 인천광역시 민간역학조사관 ▲ 인천광역시 민관합동 신속대응팀 팀장 ▲ 국민건강보험공단 비상근 전문위원 -한국역학회 코로나대응위원회 위원 ▲ 전 국방부 중앙역학조사반 반장 ▲ 전 국군의무사령부 예방의학장교정재훈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의심할 시기는 지났다"며 "만족할만한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유일한 수단은 백신밖에 없다. 모두가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1-03-09 김성호

[인터뷰…공감]'아이가 안전한 세상 만드는 엄마'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울산 계모 사건' 인생의 전환점… 친모에 탄원서 작성 부탁받고 '관심'정인이 사건 맡은 법원과 검찰청에 '근조화환' 입양모 살인죄 적용 목소리신고시 즉시 조사·아동학대살해죄·어린이집 CCTV 의무화 등 변화 앞장초교때부터 교육 강조… '아동은 부모 소유물 아닌 인격체' 인식 개선해야지하실에 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기름과 옥수수가루로 연명한다. 지하실로 들어오는 빛은 한 줌뿐. 그 누구도 아이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다. 뉘인 몸을 일으키라는 어른의 발길질이 아이에게 허락된 유일한 스킨십이다. 아이를 돕지 않는 것이 SF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오멜라스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행복을 위한 계약 조건이었다.아이의 불행을 직시한 소설 속 사람들의 선택지는 둘로 나뉜다. 오멜라스를 떠나거나 아이를 외면한 채 오멜라스에 남는 것이다. 현실은 소설과 달랐다. 불행한 아동을 그대로 둬선 안 된다며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었다. 국회 간담회 참석차 경남 창원에서 온 공혜정(53)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를 2일 오후에 만났다.■삶을 바꾼 울산 계모 사건두 아이를 둔 평범한 엄마였던 공 대표는 오멜라스를 떠나지 않고 '지하실의 아이'를 주목하게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삶을 바꾼 계기는 2013년 울산 울주군 계모 사건이었다. 피해 아동의 친모와 친분이 있었다. 탄원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울산 계모 사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사건을 자세히 알게 되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애초엔 시민 모임으로 시작했다. 모임의 이름은 '하늘로 소풍간 아이를 위한 모임'이었다. 온라인 시민 모임은 학대로 사망한 아이들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까지 아우르는 단체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로 나아갔다.공 대표는 "울산 계모 사건 당시 들었던 의문이 한 번에 죽이면 살인죄로 높게 처벌을 받는데,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끔찍하게 학대한 결과로 아동이 사망하게 되면 치사죄로 처벌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울산 계모에게 법정최고형을 선고하고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끝에 살인죄로 처벌을 받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울산 계모 사건은 애초에 상해치사 사건이었다. 아동의 학대 사망 사건을 다루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 대표는 국회를 찾아가 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달라고 의원들에게 요구했다. 그런데 이미 만들어놓은 법이 있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었다.회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공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회원들과 함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전화 폭탄 민원을 넣고 1인 시위를 했다. 그 결과 26일 만에 기적처럼 아동학대처벌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 대표는 "2013년 12월5일 처음 국회를 찾아갔다. 학대 아동을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하자는 법인데, 이 법을 반대하면 의원들이 그야말로 '역적'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결국 '0'순위로 법사위에서 의결했고, 2013년의 마지막 날 오후 10시30분에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했다"고 했다. 활동 초기 이뤄낸 쾌거였다.■'천사가 세상을 떠났다'정인이 사건도 공 대표가 이끄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의 주목을 받게 했다. 협회 회원들의 활동이 사회의 책임을 들불처럼 키웠다.회원들은 정인이 사건의 양부모에 대한 재판을 앞두고 지난 1일 서울남부지법 주변에 근조화환 150개와 바람개비 100개를 설치했다. 화환 리본에는 '정인이의 미소를 빼앗아간 악마들을 살인죄로 처벌하라', '천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악마가 세상에 남았다' 등의 문구를 담았다.공 대표는 "정인이 사건을 수사기관이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했을 때부터 나서서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하면서 검찰청 앞에 근조화환을 설치했다"며 "전 국민적인 관심에 힘입어 검찰과 면담을 한 뒤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청원서를 전해줬다. 이후 정인이 입양모에 대한 살인죄로 죄명을 적용하는 첫 번째 발판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국회도 반응했다. 아동학대범죄 신고가 있을 때 지자체나 수사기관이 즉시 조사나 수사에 착수할 의무를 부과하는 등 내용을 담은 정인이법이 마련됐다. 여기에 용인 초등생 학대 사망 사건 등 잔혹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이어지자 아동학대살해죄도 신설됐다. 이보다 앞서 협회는 어린이집 CCTV 의무 설치 조항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이후 수많은 보육기관의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에 드러났고,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변화도 이끌어냈다.■부모교육의 의무화공 대표는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미에서 예방활동과 예방교육, 학대피해 아동 지원, 아동학대 대물림 끊기 등 법 제도 개선 운동을 지속 전개할 계획이다.아동학대 가해부모들이 과거 학대 피해자인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씻어내지 못한 채 자녀에게 학대를 대물림한다는 것이다. 공 대표는 "체벌을 하고 때려야 아이가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중에서도 과거 학대 피해를 입은 부모들이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해서 학대를 아이에게 대물림한다. 학대 가해 부모도 학대 피해의 기억을 깨고 나와 올바른 부모의 역할모델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부모에겐 심리치료, 정신상담 등 각 분야의 자격증을 가졌거나 임상 실험 사례가 많은 전문가들이 그림책 테라피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부모교육을 예비군이나 민방위훈련처럼 의무화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공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부모교육은 건강가정지원센터나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이뤄지는데,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서 부모교육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은 원래 좋은 부모고 나쁜 부모는 참석조차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며 "아동양육 수당을 줄 때에 월령별 발달 단계에 따라 부모교육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지급한다면 부모교육 자체가 일상화돼 학대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부모가 된 이후에 부모교육을 하면 늦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을 하는 것처럼 이때부터 부모교육을 하고 아동 자신에 대한 인권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 "아동은 결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을 갖춘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아쉬운 '시스템'정인이의 경우 아동학대 신고가 3번 있었지만, 학대 정황을 조기 발굴하기 위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에 등재돼 있지 않았다. 운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영유아 건강검진과 만 3세에 전수조사에도 사각지대는 여전했다.공 대표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경우 불시에 의료진을 대동해 찾아가 대면 확인을 해야 한다"며 "시스템은 있으나 구체적인 매뉴얼이 아쉽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고 말했다.공 대표는 아동학대 범죄자의 신상공개도 찬성하고 있다. 공 대표는 "국민은 국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세금을 내고 있으며 아동도 역시 국민"이라며 "아동학대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내 아이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용인 초등생 학대 사망 사건의 경우 이모 부부의 자녀 등 2차 피해를 우려해 특정강력범죄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도 의원 전원 반대 의견으로 신상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이에 대해 공 대표는 "강력범죄자들이 비혼자거나 미혼이면 공개해도 되고 아이를 가진 부모라고 해서 공개해선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기준"이라며 "잔인하게 아동을 무시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공 대표는 마지막으로 "그 어떤 좋은 의도가 있다고 해도 폭언을 하거나 때리는 것은 훈육이 아닌 학대"라며 "아동학대 사건의 양형기준도 현재의 솜방망이 처벌에서 강화하길 바란다"고 했다.글/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국회 앞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아동학대는 체벌을 훈육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발생한다"며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학대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선 부모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1-03-02 손성배

[인터뷰…공감]'40여년 교직생활 마침표' 민중 미술 전념하는 이종구 화백

군부독재 체제속 억압받는 현실 직시 '저항 선택' 작품세계 바탕이 돼고향땅으로 시선 옮겨 '오지리 사람들' 연작… 몰락한 농촌의 현실 투영소중한 아이들 희생 '세월호 참사' 광화문 촛불시위 작품 속 직접 등장도인천 골목 곳곳에 '문화예술의 향기' 묻어났으면 모든 시민 즐길 수 있어야인천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이종구(66) 화백은 우리나라 민중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산업화 속에서 몰락하는 농촌의 실상부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생전 모습까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역사적 흐름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화백은 현시대를 기록하는 화가이면서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1980년 인천 동산고등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고, 2004년 중앙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임용돼 이달 말 퇴직을 앞두기까지 4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화백은 젊은 학생들과 건강한 의식을 공유하고 세대 간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교사 생활에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이 화백의 퇴임 기념집, '저기 선생님이 걸어 가신다'란 제목에는 학교를 떠나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스승을 응원하는 제자들의 따듯한 마음이 담겼다. 이 화백은 "오랜 기간 있어 온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독립한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있지만, 직책을 모두 내려놓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세상에 나간다는 생각에 기대감과 설렘도 크다"며 "시원섭섭하다는 게 이런 것 같다"고 웃으며 소회를 밝혔다.이 화백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작품 활동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방학 때도 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 화백은 퇴임 후 "예술가의 삶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 같다"며 "시간적 여유가 생긴 만큼 화가로서 전문성을 기르고 작품 활동도 활발하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이 화백에게 있어 민중 미술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이 화백이 처음 예술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는 군부독재 속에서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다. 군부독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지역 곳곳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화백은 인천에서 지역 작가들과 연대해 예술로 저항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군부독재 체제 아래서 시민들이 억압받는 현실을 지켜봤다"며 "젊은 혈기에 뜻맞는 작가들과 저항을 선택한 게 지금 민중 미술의 바탕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이 화백은 특히 산업화가 진행되고 농산물 수입 개방이 이뤄지면서 몰락해가는 농촌의 현실에 주목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이 화백에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화백은 이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탄생한 게 '오지리 사람들' 연작이다. 이 화백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이 화백은 쌀부대를 캔버스 삼아 고향 땅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 그리고 이웃들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농민들의 초상화가 아니라 어려운 농촌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그리고자 노력했다. 담벼락에 붙은 정치 선거 포스터나 수입쌀 상품 포장지 등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때부터 주변에서는 이 화백을 '농민 화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화백은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의 근간은 농촌이었지만 쌀 수매가 폭락, 농산물 수입 개방 등으로 농부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힘든 세상이 돼버렸다"며 "고향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해 소외당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농민을 대변하고 싶었다"고 했다.이 화백은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 등 역사적 사실을 화폭에 담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소중한 아이들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며 "예술가로서 세상에 잘못된 일이나 모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를 그린 작품에는 낯익은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시민들과 함께 서 있는 이 화백 본인의 모습이다. 이 화백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신도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이 화백은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다운 삶, 인간의 가치, 인간의 존중성 등 '휴머니즘'에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인간을 해치는 독재, 분단, 환경 파괴 등을 작품 소재로 삼는 이유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시민 의식, 시민의 권리, 평등한 삶 등에 대해 강조를 많이 했던 것 같다"며 "지금까지의 민주화 과정에서 방관자로 살지 않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지지하는 등 화가와 교사의 위치에서 함께 싸워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이 화백은 시민 활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자신이 갖춘 능력을 바탕으로 활동을 펼치면서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어떤 활동을 할지는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없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지역 현안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인천 시민'인 이 화백은 지역 골목 곳곳에 문화예술의 향기가 묻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화백은 "문화예술은 특정 지역에 사는 주민만 누려서는 안 되고, 모든 시민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며 "지역 곳곳에서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화합해 문화예술을 즐기는 환경을 인천시가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했다.그는 "화가의 위치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정치적·사회적 문제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작품으로 증언·기록하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 건강한 시민사회가 만들어지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종구 화백은?△ 1954년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으로 유학을 왔다. △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1976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 1980~ 2003년 인천 동산고등학교 교사로, 2004년부터 2021년 2월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민중 미술 운동에 참여했고, 지난 40여년 동안 20여차례의 개인전과 500여회의 기획전, 단체전에 출품했다. △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가나미술상, 우현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인천민족미술인협의회 대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인천지회장, 인천문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이종구 화백은 인천 부평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화가와 교사의 역할을 하면서 민주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며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사회 문제를 대변하고 기록·증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21-02-23 김태양

[인터뷰…공감]'10년간 국내외 도움 손길' 유현숙 (사)나눔문화예술협회 이사장

산기대에 '知食라운지' 조성… 멘토링 등 청년 창업 지원에 올인60대 초반 나이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도전' 특별상 등 쾌거도사업·건강 시련 극복 심기일전… 라오스 한국명예대사로 활동스타 셰프들과 함께 웰 메이드 도시락 등 복지 사각지대 파고들어"이웃들에게 나눠 준 것보다, 그들이 저에게 준 것이 더 큰 행복이자 미래입니다."유현숙 (사)나눔문화예술협회 이사장은 지난 8일 경인일보 '인터뷰공감' 인터뷰에서 "그들이 환하게 웃으며 '희망이 생긴다'고 말할 때마다 저에겐 행복이고, 살아가는 목표이기도 하다"며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은 저 자신"이라고 강조했다.'나눔'(Share)이란 화두는 유 이사장 인생 최대의 관심사다. 용인 동천동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유 이사장은 나눔 전파자가 된데 대해 "'특별히 뭘 나눠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눔 활동을 시작한 게 아니라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걸 좋아했던 게 동기가 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겨울 추위에 손이 터진 또래의 아이들에게 내가 입고 있던 털 스웨터를 풀어서 밤새 털장갑을 떠서 나눠 주고는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한테 야단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 뒤 "세월이 흐르면서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부연했다.또 '남들이 이사장님 대단하다'라고 엄지척 할 때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누가 시키면 하겠나. 그러니까 대단할 것 하나도 없다"라고 겸양했다.유 이사장이 2012년부터 이끌고 있는 (사)나눔문화예술협회는 문화예술활동 및 문화예술교육과 청년 일자리창출 지원사업, 그리고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오고 있다. 또 해외사업으로 라오스 등을 중심으로 한 저개발국가 교육인프라구축 및 구호활동을 통해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는 공익 법인이기도 하다.(사)나눔문화예술협회는 지난 10여년간 세 분야의 나눔 활동에 주력해 왔다.먼저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미래 인재인 청년 일자리 '나눔'이다. 평소 '실업 해결책은 청년 창업이 답'이라고 소신을 피력해 온 유 이사장은 KT&G(대표·백복인)의 후원을 받아 지난 2018년부터 현재까지 시흥시 소재 한국산업기술대에 한국형 청년창업 지원센터인 '知食라운지'를 개소, 창업에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 창업 전반에 걸친 창업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발굴 및 창업기업육성에 올인하고 있다.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업지원에 '올인'하게 된 데는 "청년실업으로 자신들의 미래가 없어져서 행복하지 않다는 절망한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그는 설명했다.청년 창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유 이사장은 '창업가의 열정 부족과 절박감 결여'라고 손꼽는다. "창업으로 성공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 창업자 본인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 주변에서 다 해주기를 바라기만 한다"고 분석했다.유 이사장은 지난해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한 감정) 만연으로 무기력해져 가는 청년 창업가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60대 초반의 유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2020 맥스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한국챔피언' 클래식부문과 시니어부문 도전에 나서 특별상과 시니어부문에서도 입상을 하는 쾌거를 거둬 청년 CEO들에게 '누구든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줘 창업 의지와 열정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이처럼 유 이사장이 낙담한 청년들에게 재차 도전 의지를 심어주려고 한데는 남다른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고,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사선을 넘어 현 고지까지 달려온 경험에서 기인한다.지난 2008년 유 이사장에게도 시련기가 찾아왔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사업이 좌초 위기에 봉착했다.엎친데 덮친격으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안 좋아져 병원을 찾았을때 의사로부터 머리에 혹이 무려 5개 정도나 생겨있고 그중 한 개의 혹은 크기도 크고 시신경을 누르고 있어 실명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또 얼마 안가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갔다가 3~4시간에 걸쳐 배에 생긴 혹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부단한 자기 점검과 열정으로 다시 일어섰다.유 이사장은 취업난 등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갖춰야 하는 지식과 스펙은 하나의 직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직업을 기반으로 한 풍부한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사람들과 협업해야 한다"고 인생 선배로서 조언하기도 했다.두 번째는 라오스 등 메콩강 유역의 국가에서 벌이는 국제 구호 나눔 활동이다.2014년부터 라오스 한국명예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유 이사장은 최근까지 라오스 등 저개발국가 교육인프라 구축 및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다.유엔이 정한 최빈국인 라오스에 대한 구호활동은 제주아셈회의(2008년)때 맺은 라오스 부아손 부파반 총리와의 인연으로 시작됐다.(사)나눔문화예술협회는 라오스 오지에 13개 학습 기자재 등을 완비한 학교를 건립했고, 올해 1월부터 안산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을 통해 한국어 교육원 기숙사를 건립 중이다.그뿐만이 아니라 조립식 축구대와 악기 등 음악기자재를 포함한 구호물품을 라오스에 최대한 많이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라오스는 코로나19 확진자가 45명 밖에 안되지만 국경 봉쇄 등 록다운을 시작으로 거리 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사실상 경제활동이 올스톱돼 경제 위기 상황"에 있으며 "생필품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음에 따라 지역 병원과 식료품을 파는 가게가 문을 닫는 등 일상생활이 더욱 악화되면서 지역주민들은 물론 아이들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유 이사장은 "성교육을 받아 본적이 없는 라오스 여학생들이 생리가 시작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몰라 더러운 헝겊 조각을 이용하거나 신문지를 생리대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생리 기간 동안은 부끄러워 학교를 갈 엄두조차 못 내는 라오스 여학생들을 위해 생리대를 보내주려고 한다"고 소개했다.또 "라오스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교육이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학교를 지어 주는 일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야 한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기업들과 뜻있는 독지가들이 후원에 동참해 주길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공공복지 서비스가 미처 도달하지 못하는 틈을 메워주고 있다.유 이사장은 코로나19가 상륙하던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스타 셰프로 알려진 최현석·여경래·미카엘 등과 함께 '웰 메이드(well-made) 도시락' 캠페인을 펼치며 서울은 물론 수원과 안산, 보령 등 전국 곳곳을 누비며 도시락을 쌌다. 어떤 날은 1천개가 넘는 도시락을 싸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과 장애인가정 등 취약계층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며 친한 '이웃'이자 '벗'을 자처했다.이와 함께 지역아동센터에 급식지원사업과 인천 서구에 화재예방을 통한 가정용 소화기 전달, 쌀 나눔행사 등 어려운 이웃들의 손을 잡아 주기 위한 나눔 활동을 계속 펼쳐나가고 있다.끝으로 유 이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울수록 주변과 어려운 이웃을 더 살피고 베풀어야 할 때인 것 같다"며 "경인일보 독자 여러분들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희망이 돼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글/전상천기자 junsch@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유현숙 이사장은?▲ 경기대 대체의학대학원 식품치료 전공 대체의학 박사▲ 원광대 한의학전문대학원 제3의학 전공 한의학 박사▲ (사)나눔문화예술협회 이사장(현)▲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명예대사(현)▲ 라오스 국가개발 훈장 수여(2015)▲ 국민추천 국민포장 수상(2020) 외 다수 수상유현숙 (사)나눔문화예술협회 이사장은 최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공감' 인터뷰에서 유엔이 선정한 최빈국인 라오스 등에 대한 국제구호 활동에 나서게 된 인연 등을 소개하는 동시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과 '나눔'으로 더 행복해지는 삶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1-02-16 전상천

[인터뷰…공감]실향민 황영석 할아버지의 '변함없는 새해 소망'

# 국내외 누볐지만 외로웠던 젊은 시절초교 교장 선생님 만나 미군부대에 취직형과 양계장 운영에 전국 양조장서 일해'중동 붐' 일자 바레인·리비아까지 건너가# 아직도 눈 감으면 선한 고향 '연백'대규모 염전에 평야까지 풍요로웠던 곳이산가족 상봉 신청은 한번도 하지않아'北유지 출신 불발' 소문에 생각도 안해디아스포라(Diaspora), 좁게는 유대인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고향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반도를 떠났다가 해방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한 고려인과 재일조선인, 교포, 한반도에 정착한 화교, 실향민, 탈북민 등이 있다. 실향민은 분단이 낳은 디아스포라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 단산리에서 인천으로 내려온 황영석(86)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황 할아버지는 피란 이후 삶의 근거지를 인천으로 두고 경북 포항, 전북 전주, 전남 순천·목포, 중동의 바레인과 리비아까지 안 살아본 데가 없을 정도로 국내외를 누볐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가본 어느 곳보다 가까운 그곳, 고향 땅은 70년 동안 단 한 번도 다시 가지 못했다.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직선거리로 약 3㎞ 떨어진 황해도 연백은 헤엄쳐서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멀리서나마 고향 땅을 보고 싶은 마음에 교동을 찾아도 산 하나에 딱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다. "저 산만 없었어도…." 할아버지는 탄식할 뿐이다.지난 8일 남동구 간석동 한 카페에서 만난 황 할아버지는 반명함판 크기의 사진 한 장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줬다. 할아버지가 중학교 때 사진관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인데, 낡고 물에 젖어 흐릿하다. 고향에서 가져온 것 중 유일하게 남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터졌다."황희 정승을 배출한 장수 황씨 집성촌에 살았는데, 흔히 '유지'라고 불리는 집안이었어요. 6·25사변 전에는 우리 동네가 남한이었고 전쟁이 나면서 북한 인민군이 점령했어요. 부모님이 70세가 넘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 멀리 갈 수 없어서 1951년 1·4후퇴 때도 내려가지 않았는데, 인민군에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예요.할머니가 군인들을 지팡이로 때리면서 막아 한 번은 피했지만, 두 번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혼자 집을 나왔어요. 큰 형은 먼저 피란 갔고, 고향에는 할머니와 부모님, 남동생 셋, 여동생 하나가 남아 영영 못 보게 됐습니다."황 할아버지는 연백에서 배를 얻어타 강화군 석모도, 강화도를 거쳐 인천으로 들어왔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현 중구 신흥초등학교에서 신흥로터리로 가는 길목에 연백군 피란민 연락사무소가 있었다고 한다. 먼저 나온 형의 소식조차 모르고 갈 곳이 없던 10대의 황 할아버지는 연락사무소 앞에서 서성이기만 했다. 그러다 연백초등학교에 다닐 때 근무했던 교장 선생님을 연락사무소 앞에서 만났다."연백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천500명이나 되는 큰 학교였는데, 조용한 학생이던 나를 교장 선생님이 알아봤어요. 유지 아들이어서 그랬나 봅니다. 교장 선생님이 도원동에 목공소를 차린 고향 사람에게 저를 데려가 줬고, 거기서 지내면서 축항(인천항)에 있는 미군부대에 취직했어요. 수소문 끝에 만난 형님이 시골로 내려가자고 해서 지금의 구월동에 살던 지인 집에서 3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다 전쟁이 끝나고 해병대에 입대했어요."황 할아버지는 포항에 있는 해병대 제1사단 상륙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피란민 출신에 텃세가 심해 상급자와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부대에서 '깡다구'가 세기로 소문이 났지만, 계급사회이다 보니 간부들 입장에선 골칫거리였다. 결국 부대장이 할아버지에게 부대내 매점인 PX(Post Exchange) 운영을 맡겼다. 황 할아버지 입을 빌리자면 당시 부대장이 PX에서 "많이 남겨 먹었다"고 했다. 부대장은 "내가 병까지 팔아야 하겠느냐"며 할아버지에게 빈 병을 넘겨줬고, 그걸 팔아서 할아버지도 쏠쏠히 용돈을 벌었다고 한다. 지금 군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전쟁 직후에는 다들 그렇게 먹고 살아야 했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제대 후 다시 갈 곳이 없어진 황 할아버지는 인천 구월동으로 돌아와 형과 함께 양계장을 했다. 현 남동경찰서 뒤에 있는 구월아시아드선수촌 아파트 자리에 양계장이 있었다. 그러나 형과 의견이 잘 맞지 않아서 제물포역 인근에 있던 와룡양조장에 취직했다고 한다. 와룡양조장은 인천 일대에서 유통되던 '와룡소주'를 만든 양조장으로 유명했다. "1960년대까지 와룡양조장에서 일하다 전주에 있는 주정 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겼어요. 이 시기 국순당을 창업한 배상면씨와도 인연을 맺었습니다. 배상면씨가 술을 빚을 효소를 찾아 당시로는 값비싼 현미경을 들고 전국의 양조장을 돌아다닐 때였어요. 이후 순천에 있는 양조장으로 옮겼다가 목포에 있는 보해양조로 이직했는데, 대우가 좋았죠. 보해양조 창업주 임광행씨가 나를 무척 아꼈던 기억이 납니다."1970년대 '중동 붐'이 일자 황 할아버지는 인천으로 돌아와 지역 물류기업인 영진공사가 진출한 바레인국제공항으로 직장을 옮겼다. 항공기 케이터링(Catering·음식 공급) 분야에서 근무하다 리비아로 건너가 항만 하역 쪽 일을 맡았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황 할아버지의 아들도 현재 항공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그렇게 황 할아버지는 혈혈단신이나 마찬가지인 처지로 힘겹게 삶을 이어가고 가정을 일궜다.황 할아버지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연백평야가 드넓게 펼쳐진 고향의 풍경이 선하다. 황 할아버지는 '왜정 때' 대규모로 만들어진 염전에 평야까지 여러모로 풍요로웠던 공간으로 고향을 기억하고 있다. 분단이 되지 않았다고 상상한다면, 황 할아버지는 여전히 고향 땅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은 채 가족들과 평화로이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황 할아버지는 이제껏 한 번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지 않았다. 형이 한차례 신청은 했었는데, 북한에서 유지 출신 월남인 상봉은 잘 받아주지 않는다는 얘기가 돌면서 아예 신청할 생각도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은 물론 남은 형제들의 생사조차 모르고 산다. 지금까지도 20명 이상 꼬박 나오는 연백초등학교 동창회가 가족을 대신해 서로를 위로하고 안부를 물으며 명절을 챙긴다.이들 실향민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통일부의 남북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로 추산한 실향민은 지난해 1월 기준 5만2천465명에서 올해 1월 4만9천154명으로, 1년 사이 3천311명이 세상을 떴다. 같은 기간 실향민이 가장 많은 경기도는 1만5천807명에서 1만4천831명으로 976명 줄었다. 경기, 서울 다음으로 많은 인천시는 4천287명에서 4천1명으로 286명 감소했다. 인천은 곧 4천명대가 무너진다. 남북의 냉각기가 이어지고 있어 이산가족 상봉은 기약이 없다. "명절만 되면 북에 두고 온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요. 지금은 손주까지 봐서 많이 나아졌지만, 피란 내려와 홀로 보낸 젊은 시절은 참 많이 외로웠어요. 지금도 연백 출신 실향민들이 고향과 가까운 강화 교동도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고향 땅을 밟고 가족을 만날 그 순간을 아직도 기다립니다."황 할아버지는 올해에도 이렇게 새해 소망을 빌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황영석 할아버지는?1935년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나고 자랐다. 1951년 7월 16살의 나이로 인천으로 피란 와 미군부대, 양계장, 양조장, 중동 지역 공항·항만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분투하며 살았다. 현재는 인천 지역 황해도 연백군민회 일을 맡아 연백 출신 실향민들을 챙기면서 평범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황영석 할아버지가 지난 8일 인천 남동구 간석동 한 카페에서 실향민으로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황영석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남은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2021-02-09 박경호

[인터뷰…공감]'코로나시대 종교의 역할' 고명진 (사)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사회 곳곳 어려움 겪고 있지만 언젠가 종식350만 성도와 목회자들 힘낼수있게 도울 것수원중앙침례교회 산하 복지재단 통해 선행영원한 삶 누리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추구현대사회 소유욕·물질 만능주의에 사로잡혀서로 나누는 것이 사회를 밝게 만들수 있어"코로나19 위기 극복할 수 있습니다. 대표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지난달 29일 용인 중앙예닮학교에서 만난 고명진(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 목사) (사)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대표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면서도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사랑의 실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사회는 물론 종교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하지만 코로나19도 언젠가는 종식될 것이고 마침내 극복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지난해 11월 고 회장은 제33회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에 추대됐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는 31개 시·군에 1만5천 교회가 있으며 성도 수는 약 350만명이다.고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교회의 역할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면서도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회장으로서 350만 성도를 위해, 그리고 목회자들이 목회에 힘을 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침례교는 루터의 교회개혁 이후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출현했다. 침례교는 신약의 본질적인 원리를 지키는 교회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원형적인 교회(Primitive Church)로서 신약교회(New Testament Church)의 신앙을 전승하려고 노력해왔다. 침례교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침례를 통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강조한다.경기도는 17개 광역지자체 기독교 단체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이에 고 회장은 "교회는 신앙공동체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래서 목회자는 세상의 소리에 더 기울이고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요즘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선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설명했다.코로나19가 발발한 이유 중 하나로 교회의 무분별한 대면 예배를 꼽을 수 있다. 교회도 코로나19의 근원지라는 사회적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물어보자, 고 회장은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은 일부 교회들을 보며 책임을 통감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선 회장으로서 송구스럽다"면서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선 교회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도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춰 방역을 강화하고 대면예배 대신 비대면 온라인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겠다"고 피력했다.고 회장은 수원중앙침례교회의 담임목사다. 수원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춘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산하에 수원중앙복지재단을 통해 장애인을 비롯해 노인, 외국인 등 사회 약자들을 위한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고 회장은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지난 1951년 처음 개척교회로 시작해 1960년부터 2004년까지 담임목사를 맡으신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께서 현재의 교회를 만드셨다"면서 "저는 1976년 수원중앙침례교회에 온 뒤 전도사와 부목사로 활동했다. 2005년 1월1일 담임목사로 부임해 현재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어 "수원중앙침례교회는 현재 제적 성도 수 약 3만5천명, 코로나19 이전에는 주일에 평균 8천~9천명이 함께 예배했다"고 덧붙였다.또 고 회장은 "수원중앙복지재단에는 직영시설로 수원굿윌스토어, 꿈자리 보금자리를 운영하고 수탁시설로는 버드내노인복지관, 수원외국인복지센터, 수원장애인종합복지관, 광교노인복지관, 수원시광교장애인주간보호시설을 각각 맡고 있다"고 전했다.수원중앙복지재단이 지역 사회에 큰 돌봄을 하게 된 배경에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다. 이 재단은 장애인들을 비롯해 다문화 가정, 어르신 등 소외계층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고 회장은 목회 활동 중 가장 주안점에 대해 "예수님의 가치를 알고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이라며 "나누고 베풀어서 교인들뿐만 아니라 비교인들까지 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교회와 목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은 영혼구원과 영적 성숙이다"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사랑의 실천이기도 하다. 이는 복지를 뜻한다"며 "복지는 차별 없이 함께 누리고 베푸는 것이다. 영원한 삶을 누리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복지재단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이날 인터뷰를 한 장소인 중앙예닮학교에 대해 그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인가형 대안학교다. 이곳에선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재능을 키워주는 곳"이라며 "학생들은 개인의 자질을 살려 미래의 일꾼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강조했다.또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부모와 자식 간의 괴리감이 매우 크다"면서 "부모의 욕심과 욕망에 학생들이 고통받고 있다. 진정한 교육의 가치는 학생 개개인의 인격과 정신 함양이 중요하다. 무조건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코로나19가 장기화로 접어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우울증) 또는 코로나 레드(코로나19 장기화로 분노와 스트레스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회장은 "코로나19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4차 산업이 앞당겨졌다고 볼 수 있다"며 "기업들의 온라인 판매와 교육계의 비대면 온라인 화상 강의, 문화계의 비대면 온라인 공연 등이 바로 순기능일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14세기에 유럽에서 번진 페스트(Yersinia Pestis·흑사병)는 약 3년 동안 2천만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을 정도로 심각한 전염병이었다"며 "당시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환자들을 목회자와 신자들이 돌봤다. 바로 흑사병에 교회가 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회는 급성장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됐지만 페스트는 수많은 목회자의 목숨도 앗아갔다"면서 "페스트 이후 단기간에 목회자를 양성하면서 그것이 결국 교회의 타락과 몰락으로 이어졌고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끝으로 고 회장은 경기도민과 교인들에게 "현대 사회는 개인의 소유욕과 물질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죽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부를 축적한다고 걱정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서로 베풀고 나눈다면 이 사회가 좀 더 밝게 나아가지 않을까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 되고, 새로운 시대 목회사역에 도움이 되며, 신나고 즐거운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고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의 우리를 통해서 갈 길을 잃은 이 땅에 불을 밝히고 거룩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고명진 회장은?▲ 수도침례신학교 학사 ▲ 성결신학대학원 석사 ▲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 ▲ 리버티신학대학원 명예박사 ▲ 기독교한국침례회 중앙교회 담임목사 ▲ (사)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 학교법인 예닮학원 이사장 ▲ 수원중앙복지재단 이사장 ▲ 침례신학대학교 특임교수 ▲ H-net 아카데미 이사장 ▲ 극동방송 이사고명진 (사)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용인 중앙예닮학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를 잘 극복하고 목회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21-02-02 신창윤

[인터뷰…공감]'올시즌 끝으로 마침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함석훈 팀 아나운서

# 원래 직업은 KBS공채 출신 탤런트'허·동·택'과 중앙대 함께 다녔고 평소에도 농구 관심야구장도 아나운서 없던 시절 프로 출범과 함께 마이크'이름 없이 등번호만' 얼굴과 매치 안돼 시행착오도# '내 인생의 모든 것' 즐거운 농구우승경험 없지만 평균관중 2위… '19년째 동고동락'가족같은 팬에 선수·프런트와 유대… '러브콜' 거절무관중 경기에 속상…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 떠올라인천을 연고로 하고 있는 남자 프로 농구단 전자랜드 엘리펀츠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2007년 프로에 입문해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만 500경기 이상을 소화한 주장 정영삼 선수와 2009년부터 팀을 이끌고 있는 유도훈 감독, 농구팬 사이에서 이른바 '삼산동 우미관 형님'으로 불리는 삼산월드체육관 경호업체 김광구 대표 등이다. 전자랜드 엘리펀츠 홈 경기장의 장내를 뒤흔드는 목소리도 2003년부터 변하지 않고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자랜드 앨리펀츠 함석훈(55) 아나운서다.전자랜드가 올 시즌을 끝으로 프로농구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하면서 전자랜드 엘리펀츠란 이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햇수로 19년째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동고동락한 함 아나운서는 "올 시즌에는 농구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감사합니다'란 말을 많이 전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팬들과 함께할 수 없어 매우 안타깝다"며 "화면으로 경기를 접하는 팬들이 체육관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함 아나운서의 원래 직업은 배우다. KBS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야망의 전설'과 '야인시대' 등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1997년부터 농구장 아나운서란 또 다른 직업을 갖게 됐다. 당시는 프로야구 경기장에도 장내 아나운서가 없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함 아나운서는 "어릴 때부터 농구를 좋아했다. 허재와 김유택, 강동희 선수 등과 같은 시기에 중앙대학교를 다녀서 평소에도 농구에 관심이 많았다"며 "우연한 기회에 전국 대학교 응원대전 사회를 보게 됐는데, 현장에 있는 관계자가 '곧 출범하는 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해 매우 생소한 농구장 아나운서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함 아나운서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프로농구 초창기에는 유니폼에 선수 이름 없이 등번호만 적혀 있었다"며 "선수 얼굴과 등번호가 매치되지 않다 보니, 선수들의 플레이를 관중들에게 정확히 알려주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이때부터 함 아나운서는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관찰해 별명을 붙여주거나 경기 장면을 설명해주는 추임새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그를 대표하는 유행어 '사랑의 3점 슈터 정인교'와 '뜨리 뜨리 뜨리, 뜨리 포인트!'(3점 슛이 성공할 때마다 내뱉는 추임새) 등이다. 함 아나운서는 "현장에 온 관객에게 경기 상황을 임팩트 있게 설명하고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했던 말들이 많은 농구팬에게 사랑받게 돼 정말 기쁘다"고 웃으며 말했다.전자랜드 엘리펀츠는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우승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아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된 2019~2020시즌 전자랜드 엘리펀츠 경기당 평균 관중은 4천257명으로, 10개 구단 중 2위를 기록했다.함 아나운서는 전자랜드 엘리펀츠 팬들에 대해 "끈끈한 정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수도권 지역이란 특성 때문일지 몰라도 인천 지역 팬들은 창원, 부산, 전주 등 비(非)수도권 팀 관중들만큼 흥이 많거나 열정적이지 않다"면서도 "전자랜드 팬들만의 가족과 같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로농구 초창기부터 경기장을 찾던 팬들이 많다"며 "혼자 오던 팬들이 결혼해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오는 모습들을 보면 뿌듯한 생각도 든다"고 했다.국내 프로농구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아나운서다 보니, 많은 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고 한다. 이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도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팬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함 아나운서는 "플레이오프에서 우리 팀과 대결했던 다른 구단 관계자가 이적 제의를 한 적도 있다"며 "비즈니스적으로 생각하면 더 많은 돈을 주는 팀으로 옮기는 게 맞지만, 삼산월드체육관을 찾아주는 관중들이 눈에 밟혀서 다른 팀으로 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관중들과 직접 만나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 시즌에도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만나자는 '무언의 다짐'을 주고받은 것 같다"며 "선수와 사무국, 코치진과도 끈끈한 유대감이 있지만 우리 체육관을 방문하는 수많은 팬 덕분에 19년간 이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지난해 미국 프로농구(NBA)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는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제목인 더 라스트 댄스는 시카고 불스가 마지막 우승을 거머쥔 1997~1998시즌을 앞두고 당시 감독이던 필 잭슨이 내건 슬로건이다. 이 시즌 이후 구단이 리빌딩(Rebuilding)을 하기로 결정하자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을 주축으로 한 선수 구성으로는 마지막 시즌임을 알린 메시지다. 올 시즌을 끝으로 구단 운영을 마무리하는 전자랜드 엘리펀츠도 팬들과 함께 마지막 춤을 추고 있다. 전자랜드 엘리펀츠는 'All of my life(내 인생의 모든 것)'란 슬로건을 내걸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함 아나운서를 포함한 구단 관계자들도 선수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함 아나운서는 "올 시즌이 시작하기 전부터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놓자는 마음을 가졌는데,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가 계속돼 속상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전자랜드 엘리펀츠 아나운서로 선수·관중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이 하나씩 생각난다"며 "전자랜드 엘리펀츠란 이름으로 뛰는 마지막 경기까지 팬들이 즐겁게 농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함석훈 팀 아나운서는?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함석훈 아나운서는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원주 나래 블루버드'로 팀 아나운서를 시작했다. 2003년부터 19년 동안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홈 경기장인 삼산월드체육관을 찾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함석훈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팀 아나운서는 "'전자랜드 엘리펀츠'라는 이름으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까지 팬들이 즐겁게 농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1-01-26 김주엽

[인터뷰…공감]'전국 두번째 규모' 경기도건축사회 이끄는 정내수 신임 회장

베이비부머세대 건축사들 그때 많은 걸 보고 배워 부와 지식 축적공고 졸업후 실습생 거쳐 '라이선스'… 도면부터 현장까지 섭렵용인 회장 시절 사회공헌활동비 10배로… 재수끝에 경기도회 입성'사람들과 함께 볼수 있는 건축물' 마음가짐 연장선상 활동 강조월 매출이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사업자가 열 명 중 두 명 꼴.(2017년 국정감사) 전문직으로 일컬어지는 '사(士)자 돌림' 직업 중 가장 연봉이 낮은 직업. '건축사'를 수식하는 부정의 말들은 많다. 지난해 2차례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인원은 2천298명(1천306명·992명)으로 2016년 456명의 합격자를 냈던데에 비해 불과 5년 새 5배 이상이 불었다.일감은 늘지 않았는데 배출되는 건축사는 크게 늘었고, 이 때문에 평균 사업소득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건설붐의 혜택을 보며 자리를 잡은 기성세대 건축사와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1인 건축사사무실의 격차는 어느 때보다 크다. 1천800명 회원을 보유한 전국 두 번째 규모의 지역건축사회를 이끌게 된 정내수 경기도건축사회장은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그는 '책임'을 강조했다. 선배 건축사로서의 책임, 구체적으로는 '황금기'를 보낸 선배로서의 책임이었다."지금 막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후배 건축사들에게 무엇인가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새로운 업역을 개척하지 않으면 지금 포화된 시장 속에서 가망이 없어요. 지금까지 안 해 왔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업역을 찾아서 회원들에게 소개하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배출되는 건축사의 수가 늘며 과다 경쟁이 발생했고, 이는 건축사 1인당 평균 소득이 3천870만원이란 상황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의사와 변호사가 각각 1억원·2억원이 넘는 소득을 거두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최근 열린 대한건축사협회장 선거에서도 이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건축사계의 최대 과제는 회원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신진 건축사'·'1인 건축사'를 지원하는 것이 됐다. 이들이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인지, 그 과정을 건축사회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가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정 회장은 신진 건축사와 1인 건축사를 지원하는 것이 협회의 "목표이자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황은 더 악화될 겁니다. 55세 이상이면서 자리를 잡은 선배 건축사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건축사를 시작한 후배들을 아우르고 융화시키는 게 숙제"라고 했다.건축사가 언제나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정 회장은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부터 아시안게임을 치른 2002년까지를 건축사계의 '최대 호황기'라고 설명했다."88년 서울올림픽부터 전국적으로 건설붐이 일었어요. 그때는 안 되는 건축사 사무실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오픈만 하면 무조건 잘 되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사무실을 하던 사람들은 직업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죠. 나이로 치면 회원 중에서도 50대 중반 이상 세대인데 그 선배 세대 건축사들은 때를 잘 타고 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 정말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 건축사들은 부는 물론이고 많은 현장을 통해 지식도 축적할 수 있었어요. 사실 지금 라이선스를 따서 문을 여는 건축사들은 운이 없다고도 볼 수 있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현업에 종사하는 40대 중반 이후 나이의 건축사들도 황금기를 맛보지 못했다. 수요(현장)는 정해져 있는데 공급(건축사)이 증가하다 보니 일거리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사실은 정 회장도 건설 붐의 절정에선 살짝 비켜난 사람이다. 공고를 졸업하고 건축계에 발을 들였을 때가 1981년. 용인의 한 건축사사무소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면서다. 정 회장은 "공고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자연히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하게 됐다"고 회상했다.당시 용인에 고작 3곳밖에 없었던 건축사 사무소는 현재 250여곳으로 불어났다. 논과 밭 일색이던 곳이 도시로 상전벽해했고, 건축사 정내수도 이 과정에서 성장한다. "저는 실무로 건축사 라이선스를 딴 사람이죠. 1981년에 들어가서 1991년에 실장이 됐고, 건축사 자격증은 2001년에 땄으니까요. 용인은 장점이 계획부터 시작해서, 말하자면 처음 도면부터 시작해서 (모든 분야를)섭렵할 수 있다는 데 있어요. 다른 지역은 토목을 하는 사람, 구조를 하는 사람이 다 나눠져 있어요. 그런데 용인은 도면 그리는 것부터 현장까지 다 보기 때문에 토털 시스템을 배우기 좋았어요."정 회장은 경기도 회장이 되기 전, 용인 지역 회장을 4년 동안 역임했다. 사회에 첫발을 딛은 것도 용인이었고, 용인에서 건축이라는 꿈을 이뤘기 때문에 자연히 이르게 된 자리였다.경기도건축사회장 선거는 지난 2017년 이후 2번째다. 그는 재수 끝에 회장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도 '후배들을 위해'라는 마음으로 선거를 치렀다고 한다.용인 회장으로 있으며 400만원이었던 사회 공헌 활동 비용은 4천만원으로 10배가 증가했다. 건축사회가 이익집단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이를 통해 매해 김장을 천포기씩 담갔고, 적을 때는 두 채 많게는 여섯 채까지 차상위계층의 집을 고쳤다. 보수 현장에는 건축사들이 직접 땀을 흘리며 작업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연탄을 돌렸고, 장학금도 마련해 사회로 환원했다.정 회장은 "건축사들도 이런 활동을 한다는 것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싶어요. 건축사의 근본 마음은 후대에 물려줄, 사람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돈만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사회 공헌 활동도 그런 마음가짐의 연장선에서 펼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이어 "이익집단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하는 집단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경기도건축사회 산하 23개 지역 협회가 있는데 사회 공헌 비용을 다 합치면 1억원이나 됩니다. 매년 1억원씩 사회에 쓰고 있는데 그런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쉽습니다. 더 알리고, 더 많이 사회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정 회장은 선거에서 '일하는 회장', '섬기는 회장', 그리고 '매일 출근하는 회장'을 약속했다. 그는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좋은 시절을 보낸 선배로서 후배들이 새로운 업역에 접근하게끔 도움을 돌려주고 싶고, 건설붐이란 사회 현상으로 성공한 만큼 사회에 봉사와 헌신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갓 고등학교를 졸업해 혈혈단신으로 용인에 발을 내린 정 회장은 물려받은 유산 없이 맨몸으로 성공을 거뒀다. 40년 전 건축사 사무실의 실습생 청년은 이제 경기도건축사회를 이끄는 성공한 건축사가 됐다. 그는 "건축사들이 꿈꾸는 게 자기 집을 자기가 짓는 거거든요. 저는 용인에 제가 지은 집에서 거주합니다. 어찌됐든 나름의 성공을 거둔 셈이죠"라고 말했다.정 회장은 "건축이라는 직업에 돌려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고민합니다. 제가 회장으로 재직하는 3년 동안 많은 변화는 아니겠지만, 변화의 시작 만은 제가 제 손으로 이뤄내고 싶습니다"라고 강조했다.글/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정내수 회장은?▲ 전라북도 익산 출생▲ 이리공업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 건축사사무소 데카 ▲ 경기도건축사회 28대 회장최근 제28대 경기도건축사회 회장으로 취임한 정내수 건축사는 '일하는 회장', '섬기는 회장', 그리고 '매일 출근하는 회장'을 모토로 사회에 막 진출한 후배 건축사가 새로운 업역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21-01-19 신지영

[인터뷰…공감]'한지생각이다(주) 운영' 이미자 인천 6호 공예명장

독학으로 시작… 김포서 활동하다 배다리상가에 공방 '둥지'가구·조명·지갑 등 다양… 전통문양 선호 오랜시간 정성 들여페트병 샹들리에 등 재활용 공예품만으로 전시회 올해 목표'선하고 똑똑한 종이' 강조… 제조공장·체험관 등 산업화 '꿈'한지(韓紙)는 '착한 종이'다. 세월이 갈수록 결이 고와지는 매력이 있는 이 종이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땅에서 자란 닥나무 껍질을 고유의 기법으로 만들기 때문에 나무 근본을 훼손하지 않는다. 과거부터 중국과 일본의 종이보다 우리 종이를 으뜸으로 쳤다고 한다.인천 중구 신포동에서 한지공예 갤러리·공방 '한지생각이다(주)'를 운영하고 있는 이미자 명장은 30년 넘게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고 실용화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 명장은 최근 인천시 공예명장(인천 6호)으로 선정됐다. 그는 "단지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명장이라는 이름까지 얻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우리 전통 한지가 실생활 곳곳에 사용될 수 있도록 확산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이 명장은 고등학교 시절 취미 삼아 박공예를 하다가 한지의 매력에 빠져 1980년대 후반부터 한지 공예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관련 서적을 사다가 종이를 찢고, 오리고, 붙이는 작업을 스스로 터득해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처음엔 김포에서 전시회를 열고, 공예 강좌를 운영하면서 유명해졌고, 20여년전부터 인천에 공방을 차리고 공예 활동과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김포에서 작업을 하는데 어느 날 신문에 당시 최기선 인천시장이 배다리 지하상가를 인사동처럼 공예 거리로 만들겠다고 발표를 한 걸 봤어요.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에 뉴스만 믿고 요즘 말처럼 은행 돈을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았다는 뜻)'해서 배다리 상가에 공방을 차렸어요."결과적으로 배다리는 인사동처럼 되진 않았지만 이때부터 이미자 명장은 인천에 자리를 잡고 한지 공예품을 만들었다. 지금 신포동에 공방을 차린 지는 12년 정도가 됐다고 한다.전통 한지는 닥나무 껍질에서 나오는 섬유질을 한지 틀에 띄워 만든다. 섬유 조직이 우물 정(井)자 배열이라 질기고 단단하다. 조선 시대 이규경(李圭景)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고려의 종이는 천하에 이름을 떨쳤는데, 그것은 다른 원료를 쓰지 않고 닥나무만을 썼기 때문이다. 그 종이가 매우 부드럽고 질기며 두꺼워서 중국 사람들은 고치종이라고도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이 명장은 제조공장에서 한지를 받아 고유의 문양을 새기고, 이를 활용해 각종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가구부터 조명, 지갑, 가방, 벽지, 바구니, 인형, 액세서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저는 우리 전통 문양을 좋아해요. 한지에 전통 문양을 새겨 넣고 그걸 가공해 실용품을 만들어요. 종이라서 내구성이 나쁠 것이란 인식이 있지만, 오히려 가죽처럼 질기고 단단해서 손으로 절대 찢어지지 않아요."공예품을 만드는 일은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먼저 문양이 새겨진 동판에 원하는 색깔의 한지를 대고 밀가루 풀을 바른다. 그리고 단단하고 넓은 유화용 붓으로 수백~수천번을 내리친다. 그래야 종이에 풀이 잘 먹어 단단해지고, 문양이 잘 새겨진다. 이 작업을 4~5번 반복해 여러 겹의 한지가 한 몸처럼 붙으면 비로소 공예품에 사용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 명장은 훈민정음과 도깨비 문양, 전통 기와 문양 등을 주로 활용한다. 한지의 색은 청(靑)·적(赤)·황(黃)·백(白)·흑(黑)의 오방색을 주로 사용한다. 우리 전통 색으로 음양오행 사상을 기초로 한다. 황은 중앙, 청은 동쪽, 백은 서쪽, 적은 남쪽, 흑은 북쪽을 말한다. 나쁜 기운을 막고 좋은 기운을 들이는 의미의 색으로 전통 공예품에 많이 사용된다."가죽은 칼로 그으면 스크래치가 생기지만 풀을 먹인 한지는 흠이 나지 않아요. 그래서 눈으로만 감상하는 예술작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 사용되는 소품으로 가공할 수 있는 거에요. 전통 공예품은 오히려 외국인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작품이라 한글 무늬를 선호하고 있어요. 'ㄱ', 'ㄴ', 'ㄷ' 모양으로 만든 브로치도 큰 인기를 끌었어요."그는 '전통'과 '정통'은 다르다고 한다. 전통 한지공예라고 해서 꼭 옛것 그대로의 정통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싫다고 했다. 무형문화재처럼 수백년전 전통 기술을 그대로 보전하고, 남기는 것이 아니라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활용법을 찾아가는 게 더 좋다고 했다.공예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다. 시간과 정성이 투입되는 만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판매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 명장은 공방에서 차(茶)도 팔고, 갤러리도 여는 등 유인책을 펼쳤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악재를 만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올해 다양한 전시와 판로 개척을 계획하고 있다."올해는 재활용품을 활용한 한지 공예품에 도전해보려고 해요. 공중화장실의 휴지 심처럼 생긴 지관을 활용해 연필꽂이를 만들기도 했고, 페트병을 한지 공예와 접목해 샹들리에 조명을 설치미술처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런 재활용 공예품만 따로 모아서 전시회를 여는 게 올해 목표에요."그는 한지는 '선하고 똑똑한 종이'라고 했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자연에 이롭고, 항균 효과도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지 섬유를 활용한 장판과 벽지, 옷, 양말, 이불이 개발되기도 했다. 그는 한지만을 활용한 체험방을 만들어 한지의 산업화를 이루는 게 꿈이라고 했다."한지 산업은 원주와 전주를 최고로 치는데 인천은 아직 한지 관련 부분은 불모지나 다름없어요.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 한지를 만들 수 있는 닥나무 숲을 만들고, 바로 옆에 한지 제조공장과 공방, 체험관을 만들어서 인천공항에 내리는 외국인들이 꼭 들렀다가 가는 명소를 만들고 싶은 게 꿈이에요. 경제적 투자가 이뤄져야겠지만 일단 꿈은 크게 가져 보려구요."이 명장은 최근 '제5회 인천시 공예명장' 선정 심사에서 공예명장으로 선정됐다. 3번째 도전 끝에 명장의 영예를 얻었다고 한다. 각 군·구에서 추천한 5명의 후보 중에 이 명장이 공예명장으로 결정됐다. 인천에서는 6번째로 명장의 칭호와 함께 개발 장려금 지급, 국내외 전시회 참가 우선 선정의 기회가 제공된다.이 명장은 "어떤 명예를 얻는다거나 대우를 받으려고 명장이 된 게 아니라 자기만족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어도 꾸준하게 한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저는 '개근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이 분야가 사양 길에 접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인천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미자 명장은?▲ 1967년 6월 출생 ▲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이사 및 인천지부장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 ▲ 전주전통고예전국대전 운영위원 ▲ 한지생각이닥(주) 대표 ▲ 1989~2019년 개인전·초대전 15회, 그룹전 40회 ▲ 1992~2020년 이태원 글로벌빌리지센터 외국인 관광객 한지체험 강의 ▲ 2011년 제14회 인천시 관광기념품공모전 대상 ▲ 2013년 제9회 청주국제공예공모전 입선 ▲ 2015년 소공인 맞춤형 성장지원사업 선정(조선종이 미래를 만나다) ▲ 2016년 제30회 인천공예품대전 대상 ▲ 2021년 인천시 6호 공예명장 선정이미자 한지공예 명장이 인천시 중구 신포동 소재 공방에서 한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 명장은 "한지 공예품이 실생활 곳곳에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미자 한지공예 명장이 가죽에 한글(훈민정음)문양 한지를 덧대 만든 지갑을 꺼내 보이고 있다. 한지는 가죽보다 단단하고 질겨 오래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2021-01-12 김민재

[인터뷰…공감]'정계은퇴 2년' 前 경기도지사 남경필 빅케어 대표

# 정치와 '확실한 거리두기'33세에 시작… 5선 국회의원 등 거쳐공인으로서 높은 기준에 맞춰 살아와그때나 지금이나 목표는 '행복 찾기'# 스타트업 도전도 '연정'젊은 창업자·전문가와 손잡아 시너지신뢰 활용 기업에 활력 불어넣는 역할창업 고민하는 분들에 '혼자 하지 마라'# 헬스케어 이어 '마음케어' 준비작년 코로나 위험도 자가 평가앱 선봬유저 제공 정보 담아 세밀한 서비스로디지털 백신 개발… 건강한 삶에 도움경기도지사를 퇴임하고 2년여만에 다시 만난 남경필 전 도지사는 정치인의 정장을 벗고 스타트업을 상징하듯 단정한 캐주얼 차림이었다. 단순히 스타일에 변화를 준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삶의 무대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느낌을 줬다. 5선 국회의원이자 전 도지사로서의 답변을 요구받는 질문에는 거리를 두면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빅케어'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대답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남 대표는 "많은 분들이 편안해 보인다고 하신다"며 "33살에 정치를 시작해 50대 중반까지 20년 넘는 시간을 공인으로서 높은 기준에 맞춰 살아왔지만 지금은 기업인이니까 그 기준점이 조금은 낮아져서 아닌가 싶다"고 웃었다.은퇴 선언 이후 정치와는 확실히 거리를 두고 있는 남 대표는 "지난해 총선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설명했더니 별다른 말 없이 돌아가셨다"며 "사람은 가슴이 뛰고 행복한 일을 해야 한다. 지금이 그렇다"고 스타트업 빅케어에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했다.남 대표는 그러면서 "정치할 때나 지금이나 목표는 비슷하다"며 "정치할 때 정책을 가지고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해주자는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기업을 통해 만들어낸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차이일 뿐"이라고 덧붙였다.#정치 은퇴 선언남 대표는 "'내가 여기(정치)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구나'하는 것을 절감했다"며 "정치가 갈등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해결하고 다른 생각을 혼합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했는데 도지사 퇴임 후 정치가 굴러가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생각한 정치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어 은퇴를 선언했다"고 했다.이어 "연정도 해봤고 개인적으로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기 때문에 정치에 미련이 없다"면서도 "다만, 세상이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 커다란 파고가 닥쳐오는 시기에 국내 내부적으로 서로 통합되지 못하는 것 같아 시대를 바라보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그가 정치 은퇴를 선언한 뒤 눈을 돌린 것은 스타트업이었다. 도지사 재임 당시에도 스타트업캠퍼스와 경기도주식회사 등과 같은 플랫폼 생태계에 관심을 보였던 그가 직접 회사를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2012년에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대표를 지내면서 퀵서비스 배송 기사들의 처우문제 해결에 나섰을 때, 정치에 몸담으면서 플랫폼 경제를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라고 눈여겨봤을 때, 스타트업 기업 육성 지원 정책을 시행할 때 등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그를 스타트업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남 대표는 "정치에서는 이겨야 할 상대가 있지만, 경제에서는 서로 가진 강점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며 "우리 고객 중에는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다. 정치할 때 못한 통합이 경제에서는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연정'의 연속, 스타트업스타트업 대표로 경제계에 뛰어들었지만, 정치인 남경필의 연정은 이어지고 있다. 남 대표는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와, 또 전문가와 연정을 하고 있다"며 "실리콘밸리에 성공한 기업들도 처음에는 2~3명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기업을 키워온 것처럼 '신뢰'와 '편의', '전문성'이라는 세 부분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신뢰·편의·전문성 중에 남 대표가 맡은 부분은 '신뢰'다. 살아오면서 좋은 관계를 맺게 된 많은 사람들과의 신뢰를 활용하고 그간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기업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는 서비스에 편의성을 더하고 전문가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해 하나의 서비스를 개발한다.남 대표는 지금 도지사 시절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31살의 젊은 창업자와 함께 빅케어를 이끌어가고 있다. 거기에 사무실 한쪽, 빼곡히 적혀있는 사업 구상안 사이로 등장하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이름은 남 대표가 스타트업에 대해 얼마나 많은 열정을 쏟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남 대표는 "창업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혼자하지 말아라'이다"라며 "열정과 기술을 읽는 능력을 갖춘 젊은 이들과 협업해서 서로 모자란 것을 채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사람들이 느끼는 욕망과 공포는 비슷하기 때문에 자신을 잘 성찰한다면 좋은 사업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며 "아이디어만 있다면 기술은 이미 나와 있고 투자할 곳을 찾는 자본도 적지 않다"고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했다.#헬스케어 스타트업 '빅케어'남 대표는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이 한창 주가를 올릴 때 그 가능성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기업과 기업을 잇는 플랫폼을 만들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든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의 빅케어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빅케어는 다가올 시대에는 '헬스케어'가 핵심이 될 것이라는 남 대표의 미래관이 담겼다. 자연환경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슬로건인 'Go Green'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Go Life'로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빅케어는 지난해 코로나19 위험도 자가 평가 앱을 선보였다. 건강검진 등으로 개인이 갖고 있는 데이터를 모아 스스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은 물론, 주변 환경이 얼마나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지에 대해 평가하고 그 결과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빅케어는 세계 25만명 코로나19 환자의 기저질환 데이터를 모으고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위치 정보를 얹었다.올해는 '마음케어'를 준비하고 있다. 곧 시범서비스에 들어갈 마음케어는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심신을 달래줄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유저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담아 더욱 세밀한 서비스로 키워간다는 계획이다.남 대표는 "빅케어는 디지털 백신 개발을 추구하고 있다"며 "건강데이터를 가지고 예정된 불행(질병·사망 등)을 막고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했다. 이어 "약을 투여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주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덧붙였다.마지막으로 '기업가가 정치에 도전하는 경우는 많지만 그 반대는 거의 없지 않았냐'는 질문에 남 대표는 "거의 처음 아닐까요? 그러니까 더 성공해야죠"라는 말로 스타트업 대표 남경필이 경제계에서 드러낼 존재감을 예고했다. 글/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남경필 대표는?▲ 2014년 7월~2018년 6월 제34대 경기도지사▲ 2012년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대표▲ 2010년 9월~ 2011년 11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2008년 한나라당 경기도당위원장▲ 1998년 7월~2014년 5월 제15·16·17·18·19대 국회의원남경필 빅케어 대표는 최근 서울 삼성동 그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비록 정치에서는 은퇴했지만 정치인이었을 때와 스타트업 대표로 있는 지금, 방식은 다르지만 세상을 행복하게 하려는 것과 '연정'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2021-01-05 김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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