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⑪인천 부산한복] 인천의 부산한복, 그곳엔 삶이 있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영화 <국제시장>에서 황정민 배우는 오로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기 전부를 희생한 덕수라는 인물을 연기합니다. 비록 영화일지라도, 극중 덕수의 일생을 보면 한국전쟁을 겪은 전후 세대가 그 당시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부산에 국제시장이 있다면 인천 동구에는 중앙시장이 있습니다. 중앙시장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정착했던 곳이라고 하는 데요. 중앙시장은 1972년 문을 열었지만, 그 이전부터 한복집 등 다양한 가게들이 밀집해 상권을 이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가게는 중앙시장 안에 위치한 '부산한복'입니다. '인천에 웬 부산?', 가게 상호부터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부산한복의 2대 대표인 전영순(70)씨는 영화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영화로도 담지 못할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부산에서 인천으로영순씨는 육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항만부두를 관리하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국제시장 안 저고리 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했습니다. 아버지의 근무지가 부산에서 인천으로 바뀌면서 영순씨의 가족들도 함께 인천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열네 살 무렵 일입니다."아버지가 항만관리청에 공무원으로 계셨어요. 그 덕에 울릉도도 가보고, 포항으로 전학을 가서 산 적도 있어요. 처음에는 아버지 혼자만 인천으로 갔는데, 자식이 6명이나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으니까 가족 전부 이사를 간 거죠. 엄마는 식구가 많으니까 부산에서 한복 저고리 만드는 일을 했었고요."그런데 1년 뒤 영순씨의 아버지는 예기치 못한 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었던 1960년대. 영순씨 가족에게 아버지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가 10년 넘게 바느질 일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생활이 안 됐어요. 그 당시에 저고리 하나 바느질해서 받는 돈이 200원이었어요. 미싱기도 없어서 손으로 다 하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느질해도 혼자서는 2개밖에 못 만들었죠. 이 돈으로는 쌀 한 되도 사기 어려웠던 시절이에요."그는 옛일을 떠올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 했습니다. 어느새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엄만 진짜 열심히 사셨어요. 그때 당시 우리 가족은 여기(중앙시장 부근)에 안 살고 하인천(현재 인천역 부근)에 살았는데, 엄마는 중앙시장까지 바느질하러 다녔어요. 그러면 엄마 올 때까지 저는 동생들 데리고 밥해 먹이고 엄마를 기다렸죠. 그런데 엄마는 차비가 없으니까 그 먼 거리를 걸어 다녔거든요. 엄마는 일 끝나고 밤 10시 넘어서 집에 돌아왔어요. 너무 어두워서 무서우니까 제가 엄마를 데리러 나갔죠. 엄마 고생하는 걸 보니까 내가 도와야겠다 싶었어요."영순씨는 맏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도와 함께 바느질 일을 시작했습니다. 둘이 바느질을 해 돈을 버니까 집안 사정이 조금씩 나아졌다고 하네요. 한복집을 차리게 된 건 영순씨가 결혼을 한 뒤 일입니다. "바느질만 해서는 동생들 공부 못 시키겠다 싶어서 제가 결혼한 뒤에 엄마한테 한복집을 차려드렸어요. 상호는 저희가 부산에서 살다가 올라오기도 했고, 부자가 되자는 의미에서 부(富)자를 넣어 엄마가 지은 거예요."#2대에서 3대로 영순씨의 바람대로 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공부까지 마쳤습니다. 굶다시피 하며 일한 그와 어머니의 희생 덕분일 것입니다. 올해로 일흔이 된 그의 몸은 성한 곳이 없습니다. 지난 1월에는 양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고 하는 데요. 한복 만드는 작업 특성상 서서 하는 일이 많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영순씨는 슬하에 4남매를 두었습니다. 지금은 셋째 딸 이은진(39)씨가 가업을 이어받아 부산한복 3대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은진씨 기억 속에 할머니와 어머니는 매일 바빠 보였다고 합니다. 밤낮없이 일하는 데다, 휴일에 쉬지도 못해 제대로 된 나들이 한 번 가본 적 없다고 하네요. "어렸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어머니는 제게 바느질을 안 가르쳐 주셨어요. 당신이 너무 힘들게 시작했으니까, 힘든 일 하지 말라고. 그런데 저는 언젠가 이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의 한복 가게에서 몇 년 동안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2017년쯤부터 제가 가게 일을 전담해서 하고 있죠."예전과 비교해 디자인부터 선호하는 색상까지 한복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특히 과거에는 맞춤제작 한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대부분 대여 방식을 선호한다고 하네요. 부산한복 역시 한복 대여 사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은진씨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가게를 많이 찾을 수 있도록 간판과 내부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고, SNS 등을 활용한 홍보에도 적극적입니다."기본적으로 어머니가 일궈놓은 게 있지만, 저는 그 위에 쌓아야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한국 복식과 신 한복과 관련한 디자인, 패턴 제작하는 방법 등을 조금 더 공부하면서 체계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면 지금보다 가게가 활성화되고, 매년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그는 끝으로 단골손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손님들은 딱 하루 한복을 입는 건데, 그 중요한 순간에 입을 때만큼은 최고로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노리개라든가 기본적인 소품 하나하나 챙기는 것에도 정성을 다하고 있어요. 이렇게 해드리면 다른 말씀 안 드려도 만족하시고, 소개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굉장히 감사드리죠."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영순씨에게 자신의 삶에서 한복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거지만 나와 식구를 여기까지 이끌어주고, 자식들도 잘 키울 수 있게 해준 거죠."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가족'일 것입니다. *부산한복 주소: 인천광역시 동구 중앙로 65-1. 영업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첫째, 셋째 주 화요일 휴무). 전화번호: 032)765-2119./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부산한복 앞에 선 전영순, 이은진 대표. 2021.04.27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왼쪽부터 부산한복 1~3대 대표. 2021.04.27. /부산한복 제공,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부산한복 내부 전경. 2021.4.27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021-04-29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⑩김포 쉐프부랑제]대기업 프랜차이즈를 이긴 동네 빵집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빵알못(빵을 잘 알지 못하다)'인 저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빵집들이 있습니다. 대전의 '성심당', 군산의 '이성당', 안동의 '맘모스베이커리'처럼 유명한 빵집들은 가본 적 없지만 왠지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한국은 '서울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각종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빵집만큼은 예외인가 봅니다.김포시 사우동에는 쉐프부랑제라는 빵집이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빵집들 만큼 '전국구'는 아니지만 이 동네에서만큼은 최고를 자부하는 빵집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쉐프부랑제의 이병재 대표입니다. #생계를 위해 배운 제빵 기술전라북도 고창군이 고향인 이 대표는 16살 무렵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탓에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습니다. 서울의 한 빵 공장에서 일하던 고향 선배가 제빵 기술을 배워보라고 권유했던 것이죠. 이 대표는 을지로의 한 빵집에서 처음 일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새벽 5시에 일을 시작해 저녁 9시~10시까지 일하는 게 기본이었다고 하는 데요. 그렇게 일해 받는 월급은 1만2천원.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고 합니다. "가방끈이 짧아서 기술을 익혀야 미래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월급은 얼마 안되지만 숙식을 제공해줘서 일을 배울 수 있었죠.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까 적성에 안 맞았으면 계속 못 했을 거예요. 근데 늦게까지 일을 해도 힘이 든다고 못 느꼈어요. 일이 재밌었고, 무엇보다 젊었으니까." 이 대표의 이력은 꽤 화려합니다. 개인 빵집을 차리기 전에는 전국 유명 빵집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군산의 이성당에서 3년, 마산(현 창원)의 코아양과에서도 3년, 서울 세종호텔에서도 잠깐 일을 하다 서울 양재동에 개인 빵집을 차려 10년 넘게 운영했습니다. 지금의 빵집을 개업한 건 2002년 2월의 일입니다. 그쯤 이 대표는 몸이 좋지 않아 6개월가량 일을 쉬었다고 하는 데요. 사촌 동생의 집들이에 참석하려고 김포를 방문했는데, 이 장소가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김포 인구가 8만명 정도였어요. 도시 규모나 발전 가능성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 장소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다른 가게 부지를 보기 위해 차를 타고 성남에 가야 했는데 저도 모르게 김포로 가고 있더라고요. 그날 당장 계약했죠."가게 상호인 쉐프부랑제는 프랑스어로 요리사를 뜻하는 셰프(chef)와 빵집 주인을 일컫는 불랑제(boulanger)를 더해 지었습니다. 이 대표는 '최고의 요리사'라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셰프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지만 그의 기억으로는 20년 전 셰프가 들어간 상표는 8개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미래를 내다본 작명이었던 셈입니다."가게 이름이 독특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더 많이 기억해 주는 것 같아요. 김포에서 이름만큼 새로운 먹거리를 선보이려는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지금도 주기적으로 빵 메뉴를 바꿔주고 있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들도 금세 싫증을 느끼고 다시 찾지 않게 되는 거죠."#대기업 프랜차이즈를 이긴 비결보통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근처에 입점하는 걸 꺼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대표는 거꾸로입니다. 그는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말합니다. 이 대표의 이런 자신감에는 물론 근거가 있습니다. 이미 경쟁을 해서 승리한 경험이 있는 것이죠. 원래 쉐프부랑제 근처에는 프랜차이즈 빵집 2곳과 일반 빵집 2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남아있는 건 쉐프부랑제 뿐입니다. 6개월 전에 또 다른 프랜차이즈 빵집이 가까운 거리에 들어왔는데도 '자신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입니다. "오히려 (프랜차이즈 빵집과) 같이 가는 게 저한테는 득이 될 수 있어요. 빵 맛을 비교했을 때, 소비자가 인정해주면 되는 거니까요. 아무리 내가 잘 만들어도 소비자가 맛이 없다고 느끼면 얼마 안 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죠."이 대표의 자부심은 개업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그는 개업 초기 '고급화' 전략을 꺼내 들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 대신 가격은 조금 비싸도 고품질의 빵을 만들어 파는 전략으로 승부를 건 것이죠. "빵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유기농 등 최고급을 사용해요. 몇백 원 단가를 낮추려고 재료비를 아끼면 소비자들이 금세 알아차리거든요."가맹사업을 하자는 제안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사업 제안을 전부 거절했다고 하는 데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빵의 품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죠. 그에게는 당장의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었을 겁니다.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에는 김포시 운양동에 3층짜리 '카페&베이커리'가 새로 문을 연다고 합니다. 16살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상경해 제빵 기술을 익힌 소년이 예순이 넘은 나이가 돼 자기 명의의 건물을 지어 빵집을 차리게 된 것이죠. 지금은 두 아들도 이 대표 곁에서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 건물을 지어 빵집을 하는 꿈을 이루니까 행복하죠. 빵집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도 모든 고객분이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서비스하겠습니다."*김포 쉐프부랑제 주소: 김포시 사우동 875. 영업시간: 오전 7시~저녁 11시30분 (주말 영업 유동적). 전화번호: 031)998-1813. 대표가 직접 뽑은 인기 메뉴: 수제 단팥빵과 자체 쿠키 브랜드 '쿠마약키'./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가게 앞에 선 이병재 대표. 2021.4.13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는 이병재 대표의 두 아들. 2021.4.13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빵집 안에서 인터뷰하는 이병재 대표. 2021.4.13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021-04-15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⑨봉담디지털스튜디오]38살 동네사진관에 깃든 추억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38살 동네 사진관'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이 있죠. 추억이 담긴 옛 사진을 가끔 꺼내볼 때가 있습니다. 그 당시를 한참 동안 잊고 살다가도 앨범 속 때 묻은 사진 한 장을 보고 있노라면, 그 즉시 과거로의 추억여행이 시작되곤 합니다. 사진의 힘이란 참 마법 같습니다. 요즘은 남녀노소 모두 스마트폰을 이용해 양질의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습니다. 한번에 몇백 장도 찍을 수 있죠. 과거에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무척 소중했습니다. 필름의 용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함부로 셔터를 누를 수 없었고, 다 사용한 필름은 사진관에 맡겨 인화를 해야 했으니까요.시간이 흐르면서 사진을 찍는 도구는 달라졌지만, 사진을 남기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일 겁니다. 소중한 순간을 두고두고 추억하기 위함이겠죠. 봉담디지털스튜디오의 이공섭 대표는 38년 동안 화성시 봉담지역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봉담이 북적거리는 도시가 되었지만, 그가 처음 사진관을 열 때만 하더라도 이곳은 젖소가 자라는 시골동네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동네의 가장 큰 추억창고는 이 대표가 운영하는 사진관일 겁니다. "우리 사진관은 오로지 봉담에서만 쭉 운영하고 있어요. 아들 백일 때 사진관을 개업했죠. 백일잔치를 사진관에서 했는데, 항상 개업 연도를 물어보면 우리 아들 나이를 떠올리면서 '38년 됐구나' 라고 헤아리곤 해요."올해로 38살이 된 사진관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봉담사진관'이 '봉담디지털스튜디오'로 이름을 바꾼 것만 보더라도 이 변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배운 이 대표 역시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저는 디지털 시대에 일찍 눈을 뜬 편이에요. 코닥하고 거래를 하다 보니 다른 데보다 변화를 먼저 감지했죠. 봉담이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고가의 디지털카메라를 미리 사서 대응했어요."이 대표는 현재 아들과 함께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들인 이광신 실장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사진과 관련한 디지털 기술을 많이 배워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사진관을 이어받으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원래는 전공을 살려 컴퓨터 관련 업계에 취직하려 했다고 하네요. "대학을 졸업할 즈음 아버지께서 사진관을 정리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나서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그때가 학교 졸업앨범 납품기간이라 바쁜 시기였거든요. 일할 사람이 없다 보니 다친 아버지를 돕게 됐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죠." 결과적으론 사진 관련 기술을 배워 둔 게 선견지명이었던 셈입니다.#동네 사진관이 살아남는 방법이 사진관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단골손님이 많습니다. 이 대표가 사진을 찍어줬던 어린아이가 사진관 나이만큼 커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방문하는 일도 있고, 한 가족의 아버지는 이 대표가, 그의 아들은 광신씨가 사진을 찍어주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주인뿐만 아니라 손님도 대를 잇는 것이죠.이 대표가 이렇게 오랜 기간 한 지역에서 사진관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죠. 다만 한가지, 지역에 대한 애착을 빼놓고는 그 이유를 전부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는 것도 보람이지만 저는 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어요. 의용소방대 활동도 20년 넘게 했고, 봉담 출신들이 모인 단체의 회장직도 맡았으니까요.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게 참 보람있게 느껴지더라고요."물론 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는 게 순탄하진 않았습니다. 시골의 사진관은 '사진을 잘 못 찍을 것 같다'는 편견과 맞서 싸워야 했기 때문이죠."왠지 화성이면 사진을 잘 못 찍을 것 같다고 생각해 인접 도시인 수원이나 외곽으로 빠지는 분들을 보면 내심 서운하죠. 제가 전국에 회원 3만 명을 둔 사진 관련 협회 부회장도 했었거든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실력에 대해 의심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조금 안타깝지만 그런 부분은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아들인 광신씨도 나름의 고민이 있습니다. 대를 이어 사진관을 잘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30년 넘게 저희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은 아버지를 먼저 찾아요. 그런 게 조금 부담이죠. 아버지가 계실 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촬영하는데, 저만 있을 때는 항상 '젊은 아들이 잘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시죠. 그래서 처음에는 사진 찍기가 겁나기도 했어요." 이런 고민을 들은 이 대표는 "요즘에는 반대로 내가 있으면 걱정하고, 젊은 친구가 있으면 믿는다"고 웃으며 아들의 용기를 북돋았습니다.이들 부자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오랜 기간 사진관을 일궈왔지만 마주한 현실이 녹록하진 않습니다.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이 보편화 되면서 사진관에 '대목'이라고 할만한 시기가 사라진 것이죠. 여기에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도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랬듯이 현재 닥친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38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쉽게 무너질 리 없기 때문이죠."저희 사진관이 봉담지역 학교의 졸업앨범을 제작하고 있는데, 화성지역 전체로 확대하면 지금보다 사정이 나아질 것 같아요. 사실 지금 가지고는 2대가 먹고 살기 힘들어요. 지금보다 실력을 갖추고, 영업활동도 많이 해서 아들이 대를 이어받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봉담디지털스튜디오 주소: 화성시 봉담읍 삼천병마로 1276. 영업시간: 오전 9시30분 ~ 오후 8시(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일요일은 휴무). 전화번호: (031)227-3570봉담디지털스튜디오 앞에 선 이광신(왼쪽) 실장과 이공섭 대표. 2021.03.26.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이광신 실장의 어린 시절./봉담디지털스튜디오 제공환하게 웃고 있는 이광신(왼쪽), 이공섭 부자.2021.03.26.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021-04-01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⑧용인떡집]무릎과 맞바꾼 떡집, "맛있다는 한마디면 족해"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의상실 직원에서 떡집 사장으로떡은 돈을 주고 사 먹지 않아도 자주 먹게 되는 음식입니다. 옆집에 이웃이 새로 이사를 오면 '이사 떡'을 나눌 것이고, 지인의 개업식에 가면 분명 '개업 떡'을 준비했을 테죠. 여기에 결혼식과 돌잔치 등 주변의 경조사를 챙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답례 떡'도 받게 됩니다. 떡은 이처럼 한국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하는 음식입니다. 떡을 대체할 수 있는 여러 음식들이 나오곤 있지만 떡 만큼 남녀노소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도 드물 겁니다. 용인중앙시장 안에는 40년 업력의 떡집이 있습니다. 상호는 '용인떡집'으로 단순하기 그지없으나, 한편으론 자부심이라고 읽힙니다. 떡을 매개로 이 지역 사람들의 경조사를 지난 수십년 동안 책임졌을 테니 가게의 내공도 상당할 테죠. 오늘의 주인공은 용인떡집의 홍금자 대표입니다.충청도가 고향인 홍 대표는 젊은 시절 서울의 한 의상실에서 일했습니다. 떡을 만드는 기술자인 전라도 출신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고, 지금의 떡집은 당시 형편을 고려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용인에 내려와 차리게 됐습니다. "제가 자랄 때는 의상실이 한창 인기였어요. 서울 종로의 한 의상실에서 옷 마감 작업을 하는 일을 했죠. 친구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떡집을 차린 거예요. 지금이야 발전했지만 당시 이곳은 다 논이고 밭이고 그랬어요. 이층집도 별로 없었고, 승용차를 가진 사람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죠. 주변 환경도 열악하고, 타지에 와서 일한다는 게 힘들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어요."떡집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떡이 보편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곳 사람들이 당시 먹던 떡은 절편 혹은 인절미 정도였다고 하는 데요. 지금이야 흔하지만 송편, 경단, 꿀떡 등은 생각지도 못한 수준이었다고 하네요. "새로운 떡을 해 놓으니 손님들이 무척 신기해 했어요. 떡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인식을 퍼트리는데 한 5년 걸렸나 봐요. 이 시간 동안 돈도 못 벌었다고 봐야죠. 5년 정도 지나니 떡집이 알려져 수입도 좀 늘었고, 개업할 때 진 빚을 모두 갚기까지는 10년이 걸렸네요."#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은 이유40년 된 물건이 있느냐는 질문에 홍 대표가 자신을 가리키며 "여기 있지 않느냐"라며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그의 의연한 대답 속에서 지난날의 힘듦이 느껴졌습니다. 새벽 일찍부터 가게에 나와 떡을 만들고, 밤늦게까지 떡을 판매하는 일을 지난 수십년간 했으니 몸이 성하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 겁니다. 작년에는 무릎 연골 수술까지 받았다고 합니다."바쁠 때는 새벽 3~4시에 나와요. 반죽부터 시작해서 떡을 만들어 납품하고, 소매도 해요. 이러다 보면 오후 1~2시에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죠. 그러다 저녁 9시에 퇴근하는 거예요. 보통 아내들은 뒷바라지 정도 하는 역할만 해요. 근데 저는 욕심이 많았어요. 떡을 만드는 기술자 일까지 했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갔고, 무릎 수술도 하는 결과로 나타난 거 같아요."지금은 홍 대표 부부와 함께 일하는 아들이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가 아들을 가르친 방식에서도 장인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데요. 홍 대표 부부는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다른 떡집에 취직해 일을 배우도록 했습니다. 아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집에서 안 가르치고, 다른 데 가서 남 밑에서 배워봐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하기 싫으면 늦잠을 자거나, 배우다가 중간에 쉽게 그만둘 수도 있는 거고요. 남 밑에서 배우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홍 대표의 아들은 4년 동안 다른 업장에서 일을 배우고 난 뒤에야 용인떡집에서 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들이 취직해 일을 배운 곳의 대표는 한때 홍 대표 부부에게 일을 배운 직원이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배움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대가 없이 기술을 전수해 준다고 합니다. 홍 대표 부부에게 배운 사람들의 숫자는 열 손가락으로도 다 세지 못할 정도라고 하네요. "남편이 떡을 배울 때는 맞아가면서 배웠다고 해요. 이런 어려움이 있어서 인지 잘 가르쳐줘요. 배운다는 사람이 있으면 오자마자 가르치기 시작해서 1년 정도만 배우면 나가서 자기 가게를 차릴 수 있게 해줘요. 학원에 가면 돈 내고 배워야 하는데, 저희는 용돈도 주면서 가르쳤죠.(웃음)"#대를 잇는 보람홍 대표는 지난 40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떡을 먹는다고 합니다. 자신이 만든 떡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미소를 짓는 그입니다. 명절이나 여행으로 다른 지역을 방문하면 꼭 그 지역 떡집에 들러 맛을 볼 정도로 떡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이런 그의 진심이 고된 떡집 일을 견디게 한 원동력 아니었을까요?그의 마음은 40년 전과 똑같지만 몸 만큼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홍 대표는 현재 사업자 명의를 아들에게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맨날 나와서 일하는 게 좋았는데, 이젠 조금은 쉬어가면서 일을 해야 할 거 같아요. 대신 아들과 며느리가 가게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잠깐씩 도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홍 대표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 보람은 떡을 맛본 손님들의 '맛있다'는 인사였습니다. 그는 자식과 손주와도 자신이 경험한 보람을 공유하고 싶다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껏 해온 것처럼, 아직 여기 사람들한테 욕먹으면서 살지 않았으니까 아들이 쭉 전통 있는 떡집으로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느낀 보람을 다음 대가 함께 느끼면서 앞으로도 가게를 잘 운영해 나가는 게 제 꿈이에요."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용인떡집 주소: 용인시 처인구 금령로93번길 12-1. 영업시간: 오전 9시 ~ 저녁 9시. 매달 둘째 주 화요일(장날이면 수요일) 휴무.용인중앙시장 안에 위치한 용인떡집과 홍금자 대표. /디지털콘텐츠팀질문에 답변하는 용인떡집 홍금자 대표. /디지털콘텐츠팀백년가게 심볼. /백년가게 홈페이지 제공

2021-03-18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⑦평택 에이큐양복점]미군과 함께한 40년, 맞춤 양복에 인생을 걸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양복으로 맺은 미군과의 인연 오산 공군기지와 맞닿아 있는 평택시 신장동에 가면 영어로 된 간판이 즐비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곳 상점 대부분의 주요 고객이 '미군'인 점을 고려하면 이국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겠죠. 오늘의 주인공은 이 지역에서 40년 넘게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인재 대표입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해도 어려운 게 장사라고 하는데, 그는 언어와 문화는 물론 크고 작은 취향까지 다른 외국인들에게 '맞춤 양복(장)'을 만들어주며 오랜 기간 가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이인재 대표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10대 때부터 송탄(평택)에 위치한 양복점에 취직해 옷 만드는 일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에게 처음 주어진 역할은 심부름 같은 허드렛일이었습니다. 고생길의 출발점이었던 것이죠. "처음에는 심부름을 하면서 다림질하고, 손바느질하는 하는 걸 배웠어요. 손가락에 골무를 끼우고 헝겊에 바느질하는 연습을 많이 했죠.(웃음) 일이 손에 익으면서부터는 셔츠, 바지, 상의를 만들고 재단하는 걸 하나하나씩 배웠어요. 이렇게 배워서 1979년에 제 가게를 처음 연 거죠."자신만의 상호를 단 가게를 연 뒤로는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미군들 사이에서도 "옷을 잘 만든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손님들이 몰려들었습니다."옛날에는 바느질도 직접하고, 다리미도 연탄불로 데워 사용해야 하니까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옷이 적었죠. 상의는 1장, 바지는 많아야 4장 밖에 못 만들었어요. 그래도 손님이 몰려오면 일은 해야 하잖아요. (미국에) 간다고 그러니까. 한 번은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일 해봤어요. 그쯤 되니까 뭘 먹어도 소화가 안 되더라고요.(웃음) 참 열심히 했죠."#미국에서 전해진 부고 소식올해 67살이 된 이인재 대표는 영어로 손님들과 직접 의사소통을 합니다. 직접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 뿐만 아니라, 이메일을 통해 들어오는 주문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 회화는 물론 작문까지 두루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판매 사원을 뒀는데, 저도 가게를 하면서 영어를 배웠어요. 제가 초등학교만 나왔는데,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를 봤어요. 사람은 꾸준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4년제 대학교까지 나왔죠."이 대표의 양복점에는 손님들의 흔적이 가득 남아 있습니다. 유리를 얹은 탁자에는 미군들의 명함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미군들이 이 대표가 만든 옷을 입고 찍은 기념사진도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한국에서 근무할 때 이 대표와 인연을 맺고 미국으로 돌아간 이들이 이따금 양복 제작을 의뢰하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인연이 30년 넘게 이어지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해병대 근무하셨던 분인데, 30년 전에 저희 양복점에서 옷을 해 갔어요. 그분이 미국으로 돌아가서 군 제대를 하고 사업을 하게 됐는데, 꼭 봄과 가을에 한국으로 나와서 옷을 열 벌씩 했거든요. 나중에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옷을 만들어 보내주기도 했는데, 어느 날 부인한테 이메일이 온 거예요. '자기 남편이 주문하고 혹시 안 가져간 거 있느냐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손님들을 추억하는 그의 눈시울이 이내 붉어집니다.#아흔까지 남은 20년이인재 대표가 처음 양복점을 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 일대에 50곳 넘는 양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많이 줄어 10곳 남짓입니다. 이 대표도 가게 규모를 줄여 지금 자리에 10년 전쯤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양복점들이 자꾸 사라지고 있어서 일까요. 그의 꿈은 '90살까지 양복점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에 터를 잡아 가게를 일구며 자식 넷을 키웠고, 지금은 손주 8명을 둔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앞으로 90살까지 하는 게 목표인데, 한 20년 남았죠. 여기 상인회 분들 중에 가장 나이 많은 분이 85세예요. 우리 업이 오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산을 좋아해서 많이 다니거든요. 건강에는 문제 없죠.(웃음)"말 그대로 수십 년 동안 양복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이 대표는 여전히 옷을 만드는 일에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힘든 점을 묻는 질문에는 간혹 옷을 받아본 손님들이 만족하지 못한 일을 떠올리며 외골수의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손님들에게는 손해를 감수하고 옷을 새로 만들어줄 정도로 본인이 하는 일에서만큼은 완벽을 추구하는 그입니다."맞춤 옷은 체형을 다 확인하잖아요. 옷 입는 사람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죠. 앞으로도 저희 가게 방문해서 옷을 맞추는 모든 분들이 만족할 수 있게끔 성의껏 노력하겠습니다. 잘 해드릴 테니까 편한 마음으로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평택 에이큐양복점 주소: 평택시 쇼핑로 6-2 1층. 영업시간: 오전 10시 ~ 오후 8시(화요일 휴무). 양복, 양장, 드레스 등 예복 취급. 제작 기간 2주 소요.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이인재 대표 2021.3.4 /디지털콘텐츠팀 제공미군들과 함께한 이인재 대표 젊은 시절. 2021.3.4 /디지털콘텐츠팀 제공자녀를 안고 있는 젊은시절 이인재 대표. 2021.3.4 /디지털콘텐츠팀

2021-03-04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⑥오산 할머니집]80년 노포, 소머리 설렁탕의 깊은 맛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무쇠솥에 구멍이 나기까지 손끝마저 아린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몸을 녹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백년가게는 80년 역사를 간직한 '오산 할머니집'이라는 노포입니다. 메뉴는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 단 2가지로 단출합니다. 메뉴판부터 주인장이 가진 음식 맛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식당입니다. 이 식당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요정이었다고 하는데요. 현재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4대 박명희 사장의 시증조모께서 해방 이후부터 가게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국이 시국이었던지라, 영업 초기에는 별도 메뉴가 없었다고 하네요. 있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거나, 손님들이 해달라는 음식을 만들어 판매했다고 합니다.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을 판매하기 시작한 건 37년 전쯤부터 입니다. 37년 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으면, 이 시간 동안 고기와 육수를 끓이는 무쇠솥에 구멍이 나 바꾼 솥도 여러 개라고 하네요. 세월의 힘은 무쇠도 뚫는가 봅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원래 남편이 맡아서 했는데, 남편이 하니까 자동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10년 전쯤 남편이 세상을 뜨면서부터는 혼자 식당을 운영했어요. 옆에서 어른들이 도와주니까 할 수 있었겠죠.(웃음)"(박명희)3년 전부터는 둘째 아들인 김상겸 사장이 다음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어요. 어머니께서 '젊은 나이니까 사회생활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저희 할머니도 몸이 안 좋으셨는데, 어머니께서 식당 운영에 뒷바라지까지 하시니까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들어와서 일을 해보겠다'고 말씀 드렸죠."(김상겸)밖에서 볼 때는 전통을 이어가려는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이들 모자에게도 남모를 고충이 있습니다. 식당 운영이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명희 사장은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들인 김상겸 사장 역시 '할 거 없으면 가게 물려 받으면 된다'는 식의 주위 시선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솔직히 쉽지 않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도 나이가 많지 않다 보니까 한 자리에 묶여 있는 게 답답할 때가 있죠. 장사라는 게 쉬는 날이 없고 아침 일찍 나와 밤 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인데,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사람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어요."(김상겸)#손님도 대를 잇는다오래된 가게는 주인만 대를 잇는 게 아닙니다. 손님도 대를 이어 단골이 되기도 하는데요. 특히, 오산 할머니집은 같은 자리에서 단골 손님 위주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다 보니, 주인과 손님과의 관계가 남다르기 그지없습니다. 엄마 등에 업혀 오던 아이가 지금은 자기 아이를 업고 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가게만의 매력입니다. "나이 드신 할아버님인데, 서울 잠실에서 전철 타고 오산역에 내려서 식당까지 걸어오는 분이 있어요. 오셔서 설렁탕 한 그릇이랑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시는데, 이 분은 항상 오시면 옛날 이야기를 들려 줘요. 단골 손님 중에 철강회사 대표 분도 있는데, 이 분은 매번 고급 외제차를 타고 와서 설렁탕에 소주 한 잔 하고 돌아가세요.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정말 많죠."(박명희)오산 할머니집은 다른 유명한 노포 만큼 손님이 많은 곳은 아닙니다.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메뉴를 다양화하거나, 자리를 옮길 생각도 없다고 하네요. 이 역시 잊지 않고 가게를 찾는 단골 손님들을 생각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저희 생활 유지할 만큼 계속 장사를 해왔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가게 규모를 지금보다 키우고 싶은 생각은 딱히 없어요.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이 동네보다 (장사하기) 좋은 동네로 옮겨서 했겠죠. 저희 생각해서 꾸준히 오는 분들을 위해 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어요."(김상겸)오랜 역사만큼이나 가게를 설명하는 수식어도 늘고 있습니다. '백년가게' 뿐만 아니라 '줄 서는 식당', '대물림 가게'까지 칭호가 하나 둘씩 늘 때마다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한 것도 소홀하게 한 건 없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죠. 애들한테도 더 열심히 하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그러죠."(박명희)"그냥 그런거 있잖아요. 항상 그곳에 가면 거기에 있는 곳. 그런 가게가 되고 싶어요. 오래 전에 오셨다가도 '그 집 참 좋았는데' 하며 찾으면 그 자리에 있는 가게. 그렇게 남고 싶습니다."(김상겸)#비법 없는 비법오래 장사를 한 식당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맛의 '비법'. 오산 할머니집은 그런 특별한 비법이 없다고 합니다. 이 집의 소머리 설렁탕엔 인위적인 조미료가 전혀 가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고기와 뼈로 진한 육수를 만듭니다. 비법이라고 한다면 소머리를 손질하고 씻어내는 방법입니다. 소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라 냄새가 나는데, 이 냄새를 잡기 위한 세심한 손질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소 머리부터 깍두기에 사용되는 무와 양념까지 모두 국산입니다.오산 할머니집은 설렁탕이나 수육을 주문하면 토렴 방식으로 음식을 데워 손님상에 내놓습니다. 토렴은 '음식에 더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어 덥히는 것'으로 가스 불이 흔하지 않았을 때 음식을 데우는 전통 방식입니다. 설렁탕은 넉넉한 고기와 함께 국수가 말아져 나옵니다.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국물 맛이 인상적입니다. 기호에 맞게 소금간을 하면 됩니다. 수육은 설렁탕에 들어간 고기와 유사하면서도 보다 쫄깃한 고기의 식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안줏거리가 될 것입니다. 김치와 깍두기, 부추김치 등 김치 맛은 짭짤하면서도 식감이 제대로 살아있습니다. 오산 할머니집처럼 한결같은 맛을 지키며 장사를 할 자신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비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합니다. 오산 할머니집 맛의 비법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산 할머니집 주소: 오산시 오산로300번길 3. 영업시간: 오전 10시 ~ 저녁 9시(오후 3시 ~ 오후 5시 브레이크타임/매주 일요일 휴무). 메뉴: 소고기 설렁탕 보통 1만원, 특 1만2천원. 소머리 수육 3만5천원, 반 접시 1만8천원.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오산 할머니집 소머리 설렁탕/디지털콘텐츠팀오산 할머니집 박명희 4대 사장/디지털콘텐츠팀오산 할머니집 김상겸 5대 사장/디지털콘텐츠팀(왼쪽부터) 오산 할머니집 1~4대 사장/디지털콘텐츠팀오산할머니집 수육/디지털콘텐츠팀

2021-02-18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⑤성남 우드아트가구]나무의 멋, '고가구'에 빠지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일흔,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가구의 주재료는 오동나무·편백나무·소나무 등의 원목입니다. 일반 가구와 달리 시트지를 붙이거나 별다른 가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무가 가진 결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봉황(다복), 거북이(장수), 박쥐(다산) 등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 문양이 새겨집니다. 고가구를 집안에 들여놓음으로써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기분까지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성남시 수진동의 '우드아트가구'는 고가구 전문점입니다. 부부 사이인 이종근·권영숙 대표는 이 자리에서만 25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영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일반 가구만 취급했다고 합니다. 고가구를 하나·둘씩 매장에 들여놓았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일반 가구를 판매할 때보다 훨씬 좋았다고 하네요."일반 가구를 10년 정도 쓰다 보면 가구에 껍데기가 일어나고, 바퀴가 빠지는 등 수리할 일이 생겨요. 10년 간 판매한 가구들을 모두 수리하려고 하니 어렵더라고요. 오랜 기간 가구를 쓰다 보니 고장 난 것인데, 가구점이 나쁘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어요."(권영숙)이종근 대표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찍부터 자개장을 만드는 기술을 배운 나전칠기 전문가입니다. 가구점을 하기 전에는 자개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나전칠기 전문가', '일흔을 넘긴 나이', '25년의 가구점 운영 경력'을 가진 그는 지금도 새로운 걸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요. 왜냐 하면 옛날처럼 매장을 방문해야 물건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고, 스마트폰으로 세계 물건을 다 보면서 비교할 수 있잖아요. 이거는(고가구는) 옛날과 지금의 중간 지점을 잘 찾느냐에 따라 장수를 할 수도 있고 전멸을 할 수도 있어요. 전시회를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안 하면 이것도 지탱하기 힘들죠."(이종근)#진심으로 쌓은 신뢰이들 부부가 25년간 한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가구점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손님과 쌓은 '신뢰'가 있습니다. 양질의 가구를 판매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들은 진심을 다한 서비스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가구 배송과 설치를 주로 맡아 하는 이 대표는 가구 배송을 가면 먼저 걸레부터 찾는다고 합니다. 배송 중 가구에 묻은 먼지는 물론 가구를 놓을 자리까지 손수 닦기 위함입니다."가구를 설치한 집에 고쳐야 할 물건이 보이면 말 없이 그냥 해줘요. 그 분들은 마음 속으로 고마움을 느끼나 보더라고요. 그런 손님들이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고맙다고 매장을 찾아와 팔아줄 때가 있어요. 좌우지간 성의껏 해줄 수 있는 데 까지 하는거죠."(이종근)고가구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싼 편입니다. 손님 입장에서 하나를 사더라도 더 신중할 수밖에 없죠. 판매하는 사람은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다 보니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권영숙 대표는 본인이 힘들지언정 손님들을 응대할 때는 항상 웃는 모습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걸려온 전화를 목소리 톤을 높여 받는 그입니다. "제품을 사간 사람이 좋다고 하면 우리 기분도 좋죠. 어떤 손님은 우리 가구를 집에 놓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하고, 한 끼를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할머니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좀 더 신경 써서 맞춰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요."(권영숙)25년 전 인근에서 이들 부부와 함께 장사를 시작한 가게가 10곳이라면 지금 남은 곳은 1~2곳 정도입니다. 이들 부부는 '저희가 잘해서가 아니라 (손님들이) 예쁘게 봐줘서'라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백년가게 선정에 대한 소감을 묻자 '책임감'이란 답변이 돌아옵니다. "뿌듯한 반면 책임감도 느껴요. 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어요. 거짓 없이 열심히 또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 이상의 답은 없다고 생각해요."(이종근)"저희 믿고 오시는 손님들에게 조금 더 성의를 보여드리고 자상하게 많이 하고 싶어요. 잘해주고 싶어요. 감사합니다."(권영숙)#고가구 구매·관리 tip고가구를 살 때는 색상과 짜임새를 눈여겨 보라고 합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색상을 고른 뒤 가구가 섬세하게 짜 맞춰져 있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마감처리 상태를 확인하면 아주 좋은 물건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네요. 가구에 새겨진 문양의 의미를 따져보는 것도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고가구는 원목을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물걸레로 닦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가구가 뿌예지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마른 걸레를 이용하길 바랍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견과류 기름과 벼를 이용해 닦는 것입니다. 기름기가 있다 보니 닦으면 윤이 나고 고가구를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우드아트가구 주소: 성남시 수정구 제일로 154. 영업시간: 오전 9시~저녁 9시(명절 휴무). 고가구 맞춤 제작도 가능합니다./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매장 앞에 선 이종근, 권영숙 대표. 이들 부부는 이 자리에서만 25년 동안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다./디지털콘텐츠팀이들 부부는 진심이 담긴 서비스로 손님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고 한다./디지털콘텐츠팀우드아트가구점에서 판매 중인 고가구. 가구에 새겨진 문양에는 저마다의 의미가 담겨 있다./디지털콘텐츠팀

2021-02-04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④인천 흐르는물]LP와 커피, 낭만이 흐르는 곳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낭만이 흐르는 곳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뒤꽁무니를 쫓다 보면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경주마' 같은 삶의 피로감이겠죠. 오늘은 메마른 현실에 지친 이들을 위해 낭만이 가득한 공간을 소개합니다. 특히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는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인천시 중구 신포동은 지금이야 구도심으로 불리지만 인천항 개항 이후 최대 상권을 이룬 곳입니다. 하지만 신포동 일대 개항장지구는 인천 내륙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주요 공공시설이 이전하고 인천항 내항의 항만기능이 점차 줄어든 1990년대부터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이곳에 안원섭 대표가 1989년부터 30년 넘게 운영 중인 LP카페 '흐르는 물'이 있습니다. 가게의 상호는 정희성 시인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나오는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호와 얽힌 에피소드가 재밌습니다. "원래 상호는 시 구절을 인용해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였어요. 그렇게 몇 년 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와서 이름 좀 바꿔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당시 우리 가게에 예술을 하거나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많이 왔는데, 관에서 볼 땐 상호가 문제였던 거죠. 그래서 '흐르는 물'이라고 줄인 거예요."음악을 좋아하던 29살 청년이 문을 연 이 공간은 지역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됐습니다. 시와 소설을 쓰는 사람, 미술을 하는 사람, 대중가요 또는 악기를 하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가게를 찾았습니다. 젊음을 함께 불태운 손님들이 이제는 자식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는다고 하니, 정말 오랜 기간 가게를 일궈온 겁니다. 요즘은 '뉴트로' 열풍이 불면서 젊은 사람들이 LP를 직접 가져와 틀어달라고 하는 요청도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원래 독일 바우하우스로 유학을 가서 건축미학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독일이 통일된 거예요. 당시 독일에 살고 있던 누나가 '지금은 혼란하니 독일에 오는 걸 보류해 달라'고 해서 결국 못 가게 됐죠. 그러다 지금 집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하면서 어느새 여기까지 온 거예요." #등대지기를 꿈꾼 소년시와 음악을 좋아했던 안 대표의 어릴 적 꿈은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도 아닌 '등대지기'였습니다. 그는 '어두운 밤바다에 세찬 파도를 뚫고 오는 배들한테 불빛 하나 내려주는' 등대지기가 정말 좋았다고 합니다. 실제 등대지기를 뽑는 시험에 응시하려고까지 했으나, 기계 조작을 잘 해야 한다는 말에 포기했다고 하네요. 대신 지금은 손님들에게 '물지기'로 불립니다. '흐르는 물을 지키는 물지기', 어찌 보면 어릴 적 꿈을 이룬 셈입니다. "개항장지구에 어둠이 내렸을 때 손님이 오든 안 오든 간판 불을 켜고 이곳을 지키고 있으니 등대지기와 비슷한 점이 있는 거죠. 이런 걸 보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교급이 아닌 나만의 행복."흐르는 물은 음악을 듣는 곳이지만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닙니다. 안 대표가 소장하거나 손님들이 가져온 LP 또는 CD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죠. 물론 그가 소장한 LP만 5천장 가량이니 웬만한 노래는 들을 수 있습니다. 그는 LP의 음은 녹음할 때부터 '사람의 감정을 안 다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앞으로도 흐르는 물에서 음원으로 노래를 듣는 일은 없을 듯 합니다."요즘은 음원으로 편리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저희 가게는 못 틀어드리는 음악도 있어요. 손님들이 틀어달라는 노래의 95% 정도는 바로바로 나와요. 제가 모르는 음반을 얘기하면 '잠깐 기다려 달라'하고 찾아본 뒤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죠. 그래서 배우는 음악도 많아요. 나이, 성별, 직업별로 음악의 깊이, 넓이가 다 다르거든요."#따뜻한 공간, 따뜻한 사람흐르는 물이 위치한 신포동의 매력이 뭐냐고 묻자 답변이 쉴새 없이 쏟아집니다. 천진난만한 그의 모습에서 이 지역을 사랑하는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동네에 대한 애정은 가게를 꾸준히 이어나가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40~60대를 지나가고 있는 인천 사람들은 이 동네에 와서 영화를 봤고, 쓴 소주 한잔을 마셨고, 레스토랑에 가서 경양식 돈가스를 먹었어요. 대한서림에서 책을 사고, 하다못해 나이트클럽을 가도 이 동네로 왔죠. 개항이 되면서 예술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커피든 모든 게 이쪽으로 들어왔어요. 가장 좋은 건 엄마 품처럼 어렸을 때 추억이 거의 변함 없다는 거예요. 신도시에 가면 편리하긴 하지만 왠지 내 옷이 아닌 것 같은데, 차를 타고 이곳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죠."백년가게로 선정된 건 그의 인생에 큰 자부심이자, 초심을 돌아보게 하는 자극이 됐습니다."선정 소식을 듣고 집사람하고 함께 울었어요. 물질적 혜택이 많진 않지만 지난 세월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참 기뻤죠. 가게를 운영하면서 짜증이 나는 일이 왜 없겠어요. 백년가게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가게 운영을 하려고 해요."안 대표는 손님들이 마음 편히 음악을 들으며 차 한잔,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흐르는 물이 '외갓집'같은 곳으로 기억됐으면 해요. 우연히 방문했어도, 가끔 갔어도, 오랜만에 갔어도 그 사람이 있어서 따뜻한 곳."*흐르는 물 주소: 인천시 중구 신포로 31. 영업시간: 오후 6시~새벽 1시(일요일 휴무). 연락처: 032-762-0076. 커피와 음료, 맥주 등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인천대중음악전문공연장협회 소속 클럽으로, '홍대 라이브 클럽 데이'와 같은 다양한 문화 공연도 열립니다.흐르는 물 안원섭 대표./디지털콘텐츠팀인천에 많은 눈이 내린날, 흐르는 물 외관 전경. 안 대표가 가게 앞에 쌓인 눈을 쓸고 있다./디지털콘텐츠팀.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흐르는 물 내부 모습./디지털콘텐츠팀흐르는 물에서 밴드 공연이 열리고 있다./안원섭 대표 제공

2021-01-21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③수원 진천생고기]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 그리운 날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제2의 고향' 수원서 문 연 고깃집코로나19는 '삶의 맛'을 무척 단조롭게 만들었습니다.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기쁨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분노와 슬픔만이 남은 듯합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처럼 고된 하루를 위로해줄 일상의 소소한 행복조차 욕심이 되어버린 요즘입니다.이번에 소개할 가게는 지난 1991년 수원시 장안구 거북시장 안에 문을 연 '진천 생고기'입니다. 온전히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에게 지난 30년 세월 동안 '삼겹살에 소주 한잔'의 즐거움을 제공한 곳입니다. 진천 생고기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진천(충북) 출신 진수진 대표와 부산이 고향인 그의 아내 김은순 대표가 '제2의 고향' 수원에서 고깃집을 연지도 어느덧 30년이 넘었습니다. 이 곳이 개업 초기에 좀 더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참 재밌습니다. 주변에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고깃집이 있었는데, 손님들이 넘쳐나다 보니 한 발 늦은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근처 진천 생고기로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런 운으로만 30년 넘게 가게를 이어갈 순 없었겠지요.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한 부부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신선한 고기를 갖다가 손님이 보는 곳에서 직접 썰어줍니다. 고기 가지고 장난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신뢰를 주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네요."(진수진)"고기든 채소든 재료를 속이지 않고 좋은 걸 쓰니까 손님들이 알아준다고 생각해요. 반찬도 매장에서 파는 걸 쓰는 경우가 있는데, 저희는 직접 손으로 하니까 아직 가게를 이어나갈 수 있는 불씨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김은순)#부부가 '제2의 인생'을 사는 까닭이들 부부의 첫인상은 '금슬이 참 좋아 보인다'였습니다. 차분한 성품의 진 대표와 밝은 에너지를 가진 김 대표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오랜 기간 가게를 일궈왔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역경의 순간은 찾아왔습니다. 같은 고향 사람임을 내세우면서 접근한 사람에게 큰 돈을 사기당한 것입니다.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언제 받을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어 답답할 노릇입니다. 어린 자식들의 고생까지 얹어진 돈이라는 생각에 더욱 억울함을 느꼈습니다. 어린 딸을 근처 슈퍼에 맡기거나 가게 한편에 눕혀놓고 장사를 하면서 힘들게 모은 돈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들 부부는 두 손을 꼭 잡고 칠흑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우리가 남들 놀 때, 그러지도 못하고 죽으나 사나 가게에 매달리면서 번 돈인데, 이런 큰돈을 날렸을 때는 말도 못했죠. 그래도 애들이 있고, 아내와 같이 어려움을 겪고 견뎌냈어요."(진수진)"둘이 손을 꼭 잡았어요. 죽어가는 목숨에다 투자해 살아나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거라고. 젊으니까 다시 살 수 있다고."(김은순)#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게 하는 힘진천 생고기를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들은 이들 부부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게의 문을 열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은순 대표의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경기도청 공무원들은 진천 생고기의 주요 고객층입니다. 공직에 있을 때 자주 방문하다, 퇴임 이후 옛 생각이 나서 이곳을 찾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폐암'에 걸린 아픈 몸을 이끌고 아내와 함께 찾아온 손님도 있었습니다. "'옛날에 진천집에서 먹던 고기 맛이 생각나서 왔다'고 하는데, 가슴이 엄청 뭉클했어요. 가게를 이쯤에서 접어야 하나 라는 고민이 드는 시점이었는데, 그 분을 보니까 잊지 않고 찾아주신다는 게 너무 감사했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장사를 해야 할 거 같아요."(김은순)물론 헤쳐 가야 할 어려움도 많습니다. 거북시장의 유동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엎친 데 덮친다고 코로나 여파로 매출이 3분의 2가량 감소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이들 부부에게 새로운 자극이자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조금 인내를 갖고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더라고요. 장모님께서 늘 하신 말씀이 '진 서방 밥이나 먹고 살겠나'였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뭐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변함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신선한 고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보답하겠습니다."(진수진)"모두가 대박을 원하는데, 대박보다 평범함 속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좋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성공에 비중을 크게 두면 정작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앞으로도 정직하게 이 자리를 지키려고 해요."(김은순)*진천 생고기 위치: 수원시 장안구 정조로934번길 25. 메뉴: 육회, 안창살, 등심, 차돌박이, 갈매기살, 항정살, 삼겹살 등(소고기·돼지고기 국내산).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수원시 장안구 거북시장 안에 위치한 진천 생고기. 사진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진수진, 김은순 부부./디지털 콘텐츠팀.손님에게 신선한 고기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진수진 대표./디지털 콘텐츠팀.기억에 남는 손님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 김은순 대표./디지털 콘텐츠팀.진천생고기 상차림/디지털 콘텐츠팀.

2021-01-07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②군포 재궁태권도장]태권도장을 지키기 위해 경비원이 되다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마약은 끊어도, 태권도는 못 끊는다여러분은 '태권도'하면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 여럿과 함께 태권도장으로 향했던 어린 시절 모습이 선명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 문대성 선수가 상대 선수를 멋진 뒤돌려차기로 제압한 장면도 기억 한편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태권도를 소환해 보려고 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28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남 재궁태권도장(군포) 총관장입니다.이영남 관장이 태권도를 시작한 계기는 유년시절 남들보다 작은 '키' 때문이었습니다. 보통의 부모들이 그렇듯 이 관장의 아버지도 자식의 성장이 또래보다 더딘 걸 염려해 아들을 태권도장에 보낸 것이었죠.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시작한 것이지만, 그는 금세 태권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취미 생활 정도로 여긴 태권도가 어느새 그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고, '태권도의 길'을 가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태권도를 시작한 뒤로는 몸집이 큰 사람들을 상대해도 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이 단련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까 말 그대로 배짱이 아주 대단해졌죠."그토록 사랑한 태권도였지만 한때나마 스스로 도복을 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과거 태권도 관련 단체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했다가 승단 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무도인으로서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요? 다시 도복을 입을 수밖에 없던 그였습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태권도는 마약 이상이라고 볼 수 있죠. 마약은 끊을 수 있지만, 태권도는 못 끊으니까요."#낮에는 태권도 관장, 밤에는 경비원이 관장의 태권도 사랑은 말 그대로 흘러넘칩니다. 그를 보며 느낀 감정은 일종의 '부러움'이었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애정만으로 도장을 지켜나갈 순 없습니다. 28년 된 도장을 운영하는 그가 밤에는 강남의 한 빌딩에 경비원으로 취업해 밤샌 근무를 하는 이유입니다.그의 도장에는 이요한 지도관장과 이다해 수석사범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 관장의 아들, 딸입니다. 2대가 함께 힘을 모아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관원이 대폭 줄면서 둘의 인건비도 감당하기 벅찬 상황입니다. "태권도 가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제가 체육학 박사이고 한 체육관의 총관장이지만 경비원으로 일하며 땀 흘리는 게 전혀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게 저의 태권도 정신이자, 철학입니다."백년가게 선정은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국민추천 방식으로 백년가게가 된 재궁태권도장은 한 자리에서 28년 간 도장을 운영한 점과 앞으로도 도장을 이어나갈 가능성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도장을 지켜 온 이 관장의 노력이 빛을 본 것입니다. "자기가 중소기업 도와주는 쪽 직원이라고 하면서 전화로 백년가게 이야기를 하길래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어요. (웃음) 주변의 도움을 받아 백년가게로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한 길을 걸어오길 잘했구나!',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었죠."#한옥 도장에서 대통령 배출을 꿈꾸다대를 이어 도장을 이어나가는 것은 그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아들과 딸이 모두 태권도를 업으로 삼고 있고, 곧 사위가 될 사람도 태권도인입니다. 말 그대로 '태권도 집안'인 셈이죠.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겠다'는 자식들과 이견(?)이 좀 있지만 손주들이 태권도를 했으면 하는 기대까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봅니다. "욕심인 건 알지만 손주도 다른 운동 말고 꼭 태권도를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웃음) IMF 등 많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백절불굴'의 자세로 도장을 지켜왔습니다. 제 자식과 후손들이 이 도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틀 정도는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이 관장의 최종 목표는 한옥 도장을 짓는 것입니다. 당장 건물을 짓지는 못하겠지만 군포와 안산 경계지점에 이미 부지도 사놓았습니다. '올바른 정신과 건강한 신체 수련'을 강조한 그는 이 공간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임입니다. "많은 후배들이 자신의 꿈과 이상을 불태울 수 있는 멋진 도장을 짓는 게 남은 인생의 중요한 계획입니다. 제가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를 길러냈듯이 제 자식들은 실력과 인성을 갖춘 훌륭한 지도자가 돼 대통령까지 배출하는 도장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재궁태권도장 위치: 군포시 산본로 296-1 401호.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재궁태권도장 이영남 총관장. 도복을 입은지 벌써 45년이란 오랜 지났지만 그의 태권도 사랑과 열정은 초심 모습 그대로 인듯 했다. 2020.12.24 /디지털콘텐츠팀백년가게로 선정된 재궁태권도장./이영남 총관장 제공재궁태권도장의 이영남총관장과 이요한 지도관장(왼쪽), 이다해 수석사범이 품새를 선보이고 있다. 세 사람은 가족이다. 2020.12.24 /디지털콘텐츠팀

2020-12-24 배재흥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①안산 할리바버샵]사람 몸에 칼을 댄다는 책임감

#들어가며 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안산시 '할리바버샵'에 가다경인지역에는 총 119곳(경기도 85곳, 인천 34곳)의 백년가게가 있습니다. 이곳의 대표들은 자기 업종의 전문성을 가지고 최소 20년 이상 가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장인'입니다. 이 중 어떤 장인을 첫 번째로 소개해야 할지, 가게 선정 과정부터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러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한 '바버숍'이 백년가게로 선정돼 있는 걸 발견하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것의 향기가 나는 백년가게와 현대적인 느낌의 바버숍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서였죠. 이곳의 대표는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손에 쥔 빗과 가위를 놓지 않고 있는 신태민 이용기능장입니다. 그는 이용사 자격증 취득 시험의 감독관을 맡고 있을 정도로 이용업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치면 심사위원 격인 셈이죠. 이런 그도 바버숍 매장을 열기 위해 지원자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술과 연륜은 있다고 하나, 최신 이용 트렌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느지막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신 기능장의 고생길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이발소를 운영하다 새롭게 트렌드를 접목시켜 바버숍 문을 연 건 5~6년 전 일이에요. 매장 운영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서 교육을 받았죠. 집에 도착하면 새벽 3~4시가 됐어요. 그렇게 7~8년 정도를 했죠. 기존 매장을 운영하면서 평소 해오던 틀에서 벗어나려고 아이템 구상을 많이 했어요. 솔직히 저희 가족, 지인분들을 상대로 연습을 많이 했죠. (웃음)"*바버숍이란?- 남성의 머리카락을 깎고 구레나룻과 수염을 다듬는 이발소를 현대적으로 브랜딩한 가게.(출처: 박문각) #가위를 든 자부심그가 바버숍을 운영하면서부터는 소위 진상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일반 이발소를 운영할 때는 무턱대고 반말을 하는 손님부터 술을 마시고 와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답니다."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일반 이발소를 할 때는 고객님들과 말다툼한 적도 있죠. 작은 인테리어부터 제 나름대로 갖춰야 할 것들을 갖추고 바버숍을 운영하다 보니 매장의 품위도 많이 올라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처럼 막무가내인 고객님들은 요즘은 별로 없어요."개인적으로 바버숍이든 이발소든, 미용실이든 머리카락을 자르러 가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용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용사와 미용사는 가위 혹은 면도칼 등 날카로운 물건을 사람들의 얼굴에 직접 대는 직업군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부심 또한 대단합니다. "자격증 체계로만 놓고 보면 사람 몸에다 칼을 대는 직종은 우리 업종과 외과의사 밖에 없어요.(웃음) 여태까지 이 일을 먼저 했던 선배들이 후배를 육성할 때 그런 마음으로 가르쳤어요. 지금은 제가 후배들에게 직업에 대한 애착이나 장인 정신 하다못해 프로 정신을 가질 수 있게끔 지도를 하고 있죠."#백년가게 그리고 책임감 신 기능장은 자기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백년가게 선정을 꼽았습니다. 이용기능장이 됐을 때, 기능대회에서 최고 기능인으로 선정됐을 때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백년가게 선정은 그의 계획에 없던 일입니다. 업력 30년 기준을 채우지 못하다 보니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죠. 이런 그가 바버숍으로는 처음으로 백년가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추천제 덕분이었습니다. 평소 그를 좋게 본 지인이 직접 그를 추천한 것이었죠. "제가 기능공부 할 때부터 알고 있던 고객님인데, 내색은 안 하셔도 그 분인 것 같아요. 저를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분 밖에 없거든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백년가게로 선정된 가게들은 정부의 각종 행·재정적 지원을 받게 됩니다. 더불어 여러 소상공인들의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뒤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신 기능장에게는 업계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도 큽니다. "우리 업을 해도 성공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지면서 이용업종이 활성화 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요. 이용업이나 바버숍 관련 매뉴얼을 전수해 나가는 상황을 만들어 나가야죠. 미래가 보이고 희망이 보이는 직업군이 될 수 있게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바버숍 이용 tip지저분한 머리카락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미용실을 찾는 기자에게 바버숍 경험은 '생경' 그 자체였습니다. 매번 기성복을 입다, 맞춤복을 사러 간 느낌이랄까요? 특히, 얼굴의 잔털 하나하나까지 관리해 주는 면도 서비스를 받고 난 뒤에는 '시원함' 그 이상의 기분을 느꼈습니다.신 기능장의 추천은 국가에서 준하는 인증이나 거기에 걸맞은 기능장,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전문 매장을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취향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후회하지는 않을 거랍니다. 바버숍이 남성 전용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여성분들도 이용 가능합니다. 정기적으로 면도 서비스를 받는 여성분들이 꽤 된다고 하네요. 안산 '할리바버샵' 위치: 안산시 상록구 충장로 432 홈플러스 안산점 2층. 영업시간: 10:00~21:00(명절 당일 휴무).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매장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신태민 기능장. /디지털 콘텐츠팀신태민 기능장의 가위에 몸을 맞긴 기자./디지털 콘텐츠팀백년가게 마크./중기부 제공.신태민 기능장의 면도 서비스를 받고 있는 기자. 베일까 걱정했던 것도 잠시, 이내 편안함에 빠져들면서 비몽사몽을 오가는 행복을 맛봤다./디지털 콘텐츠팀

2020-12-10 배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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