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국민의힘은 변할 수 있을까

재보선 승리는 與 참패편승 반사이익 결과그런데도 탄핵·적폐수사·태극기 논란 혼돈 탄핵이후 연이은 패배 잊었나… 민의 직시를우선 과제 선거후 퇴행·수구적태도 벗어나야지난 재보궐 선거는 국민의힘의 승리가 아닌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평가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인 선거는 차선을 뽑는 과정이다. 최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의 선거는 차선은커녕 최악만은 피하고 보자는 선거로 의미가 축소되고 있다. 더구나 총선거와 지방선거는 회고적 투표의 성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민의힘의 승리는 정권심판론으로 인한 민주당의 참패에 편승한 반사이익의 결과다.그나마 반사이익을 챙길 수 있었던 요인은 박근혜 탄핵 반대와 당시 집권당으로서의 국정농단 방치에 대한 사과와 민주화 운동 관련 참회가 국민의힘이 안고 있던 족쇄를 어느 정도 해소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그러나 재보선 이후 국민의힘은 탄핵과 '적폐수사', 태극기 논란 등을 두고 혼돈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 탄핵 당시 소추위원장을 맡았던 권성동 의원이 영남 지역구 출신인 김기현 의원에게 크게 패한 것도 탄핵 관련 이슈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판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대선주자로 나서기 전에 고해성사의 과정을 먼저 거쳐라"라며 '잘못된 적폐수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극우강경 성향의 황교안 전 대표 정치복귀에도 찬반으로 당내 의견이 나뉘고 있다.재보선 승리는 상대의 패착으로 승리를 견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췄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영남에 지역구를 둔 중진들의 과거지향적 발언은 내년 대선보다는 22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유사한 상황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야권재편과 통합 논의가 동력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힘이 중도지향보다 과거회귀로 선회할 경우 안철수 대표와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과의 결합보다는 중도실용을 명분으로 제3지대에서의 정치세력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권발 연합정치는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고 그만큼 정권교체를 바라는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기가 어려워지는 것을 의미한다.영남 지역구가 대부분인 국민의힘이 중도로 확장성을 이어나가고 수권정당으로의 형태를 갖추려면 탄핵 부정과 강경수구와는 확실하게 결별해야 한다. 21대 총선의 궤멸적 참패를 상기한다면 최근의 국민의힘에서 나타나고 있는 퇴행적 행태는 그 자체로 집권보다는 지역 기득권의 안주를 의미한다.지난 총선에서의 참패로 당이 영남 기득권 정당으로 왜소화된 것이 오히려 더 핵심 지지층에 집착하게 될 유인(誘因)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영남이 다른 지역에 비해 탄핵에 찬성하는 것에 부정적 인식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 있지만, 대선 승리는 전국 차원에서 세대와 이념 성향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시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분명한 지향이 있어야 한다.지금의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서의 참패뿐만이 아니라 탄핵 이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연이어 참패한 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이제 패배의 터널을 탈출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정도다. 그것도 상대방 실책에 편승한 현상이라는 사실을 국민의힘은 직시해야 한다. 연이은 선거 패배를 까마득하게 잊고 재보선 승리에 도취되어 시대역행적 발언이 빈번하게 돌출된다면 민심에 다가갈 수 없다. 이러한 구태가 당내 역학관계나 총선을 의식한 영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어진다면 차라리 정권교체의 대의보다 야당 기득권에 안주하는 편이 낫다.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집단지성의 발현으로 여야 정당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발신한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의를 정확히 짚고 패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전제될 때 유의미한 정당으로서 생존할 수 있다. 지금의 정국을 규정하는 여러 요인 중에 탄핵은 여전히 가장 민감한 변수다. 박근혜 사면을 둘러싸고 국민의힘에 이견과 갈등이 노출된다면 이는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의 일차적 과제는 선거 이후의 퇴행과 수구적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1-05-04 최창렬

[경인칼럼]'정치로부터 체육을 지켜달라'

초대 민선 경기도체육회장에 당선된 이원성道 원치않던 결과 '무효' 결정, 법원 불인정그러자 감사착수 도의회도 조직무력화 합세진실은 체육발전·체육인 권익 약자攻伐아냐58년 개띠 이원성 경기도체육회장은 중학생 때 장거리 육상선수였다. 재능이 있었고, 승부 욕도 강했으나 고향인 화성과 수원권을 넘지 못했다. 군을 제대한 뒤 건축업을 했다. 수도권의 개발수요가 폭증하면서 꿈이 커가던 그에게도 외환위기(IMF)는 재앙이었다. 어느 날 저녁, 세상을 탓하며 치킨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 불쑥 떠오른 아이디어에 무릎을 쳤다."통닭은 왜 튀겨야만 하지? 돼지고기처럼 직화로 구우면 어떤 맛일까. 여기에 매콤달콤한 소스를 바르면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수원시 율전동에 닭 숯불 바비큐 전문점을 차렸다. 인근 대학생과 직장인이 몰리면서 줄을 서게 됐다. 장사가 잘될수록 몸은 엉망이 됐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 덜 힘들고 수익은 더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전국 가맹점 500개를 넘어선 '코리안 숯불 닭 바베큐'의 탄생 비화다.2000년대 말 마라토너 출신이란 인연으로 경기도생활체육회를 이끌게 됐다. 특유의 친화력과 맏형 리더십(leadeship)으로 공감대를 넓혔다. 지난해 체육진흥법 개정에 따라 치러진 선거에서 체육인들은 그를 초대 민선 경기도체육회장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지난달 말 그가 경기도의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회장 선거엔 3인이 출마했다. 이 회장 당선은 의외였고, 도(道)가 바라지 않은 나쁜 결과였다. 선관위가 어정쩡한 사유로 당선무효 결정을 내렸으나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민선 전 임명된 사무처장은 사표를 던지고 떠났다. 도는 체육회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고, 도의회는 체육진흥재단을 만들겠다며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대한체육회와 관련 부처가 이의를 제기했다. 도의회는 방향을 틀어 체육진흥센터를 설립하겠다고 한다. 체육회 기능과 조직을 무력화하는 내용이다.도의회는 '경기도체육회관 운영 조례'도 바꿨다. 경기도체육회관과 사격테마파크, 유도·검도회관 운영자가 체육회에서 경기주택도시공사(GH)로 이관된다. 체육회관은 고 임사빈 지사 시절 체육인들이 절반 넘는 사업비를 부담해 건립한 경기체육의 요람이다. 집주인을 쫓아낸 임차인이 '다시 들어와 살려면 세를 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송파 올림픽회관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관리하겠다면 말이 되는가.체육회는 지난 5년간 4억원 넘는 대외협력·업무추진비를 마구잡이로 썼다. 지난해 7~10월 도 감사결과다. 임직원 93명이 무더기 징계를 받았고, 일부는 수사 대상이 됐다. 도의회는 고질적인 비위와 방만한 운영을 방관할 수 없다고 한다. 썩은 나무를 도려내려는 고육책이라는 거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구성원들의 일탈은 셀 수 없을 지경이나, 그렇다고 지방자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도의회는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센터 설립이 체육 발전과 체육인 권익보호에 뭔 도움이 되는가. 이원성 아닌 친위 인물이 회장이라도 예산을 자르고, 체육회관을 빼앗고, 센터를 만들겠다고 집요하게 매달렸을까. 체육인들은 집행부 심기를 헤아리고 함께 어깨동무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 '정치로부터 체육을 지켜달라'는 이유다. 전국 광역지자체 체육회가 이런 주장에 공명(共鳴)한다.지방권력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분점한다. 의회는 입법과 감사권한을 통해 집행부를 견제·감시한다. 행정·예산·인사권은 법 테두리에서 절제된다. 그런데 입법과 행정이 짬짜미하면 권력의 오·남용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유력한 대선후보 도지사와 도의원 142명 중 132명이 같은 당이다. 신사옥 공사가 발주된 공공기관을 이전한다는 집행부의 황당한 결정에 의원들은 내 지역 챙기겠다며 딴청이다. '이재명 표 기본소득' 찬반 논쟁은 의회 밖에서 더 뜨겁다.해를 넘긴 코로나19 팬데믹에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경제 전반이 위태롭다. 빚더미 기업인과 자영업자들은 '아침에 눈 뜨기가 두렵다'고 한다. 스포츠 산업은 뿌리째 흔들리고, 관광업계는 줄도산 공포에 떤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진력해야 할 정책의 최우선은 민생(民生)을 챙기고 민초(民草)를 보듬는 일이다. 합체된 힘으로 약자를 공벌(攻伐)하고, 굴종을 강요할 일이 아닌 게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1-04-27 홍정표

[경인칼럼]'할아비의 강'을 바라보며

임진·예성강도 흘러드는 광활한 한강하구조강으로 불리던 해상 요충·수운 집결지다지금은 누구도 못다니는 기구한 불통 수역南北이 협력해 제일 먼저 살려내야 할 물길지난해 7월 코로나19가 주춤한 틈을 타 강화도를 소요했다. 월미곶 연미정을 먼저 들렀더니 공교롭게 일대가 초긴장 상태, 검문소 초병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2017년 개풍군에서 조강을 헤엄쳐 건너왔던 한 탈북자가 3년만인 2020년 7월18일 연미정 인근의 배수로를 빠져나가 북으로 다시 넘어간 사건 때문이었다.연미정에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김포 강화해협으로 염하가 흘러가고 앞으로 보이는 한강하구라고 부르는 광대한 기수역(汽水域)이 펼쳐지는데 건너편은 바로 황해남도 개풍군 들녘이다. 연미정 앞 바다를 한강하구라고 부르는데 이곳으로 흘러드는 강이 어디 한강뿐인가? 임진강도 예성강도 있는 데다 지명의 역사적 근거가 분명치 않다. 통진의 옛 지명에 조강진, 조강포, 조강리가 있다. '세종실록'이나 '동국여지승람', '호구총수' 등의 문헌이나 고려 문호 이규보의 '조강부'나 조선 문인 신유한의 '조강행(祖江行)'과 같은 작품을 보면 이 일대는 오랫동안 조강(祖江)으로 불려왔던 해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조강이 우리말의 음차표기인지 장소성을 내포한 한자어인지는 더 살펴봐야겠다.조강 수역은 전국 수운(水運)의 최종 집결지로 선상 파시(波市)가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바닷길을 통해 전국에서 모여든 선단은 이곳에서 물때를 기다렸다가 수로를 따라 다음 행선지를 향해 떠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조강 수역에서 아비뻘인 예성강과 임진강, 한강이 갈라지고 그다음엔 손자뻘인 지류들이 갈라졌으니 이곳이 여러 강의 조상, 할아비의 강이라고 여긴 지리적 상상도 가능하겠다.조강 일대는 큰 강물들의 합수처이면서, 민물과 염수가 뒤섞이는 기수역이다. 물이 어우러진다는 뜻의 파주시 '교하(交河)'가 이곳의 특성을 잘 담은 지명이다. 그러고 보니 이 합수처를 바라보는 강화 연미정의 지명도 월미곶이다. '월미'는 인천 월미도나 포항 월미곶에도 나타나는 지명요소로 물이 교차한다는 뜻인 '얼매'의 음차표기로 추정된다.조강의 다른 이름은 '삼기하'다(祖江一名三기河). 한강과 임진강과 예성강의 세 물이 갈라지는 물류와 교통의 요충이란 뜻이니 어쩌면 조강이라는 지명과도 상통하는 별명이겠다. 삼남지방과 해서(海西)의 수운망이 합쳐지고 다시 갈라지는 곳이었으며, 조수 때문에 전국에서 온 배들이 물때를 기다려야 하는 기항지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신유한(申維翰, 1681~1725)은 '조강행'이라는 서사시에서 조강 연안에 모인 선단과 배가 실어나른 물자들이 이룬 일대 장관을 배들은 베틀의 북처럼 오가고, 생선과 소금과 과일과 미곡과 포백이 산처럼 쌓여 있으며 하루에도 백 척 천 척의 범선이 통과한다고 노래한 바 있다.'조강은 일명 삼기하(三기河)라/ 세 강이 여기서 합수하여/서해바다로 모여 가기 때문이지요/…/생선과 소금이며 과일 등속/미곡과 포백이 산처럼 쌓이고/이 나루 지나가는 배/하루에도 백 척인지 천 척인지'. -신유한, '조강행'에서한편 조강 수역으로 모이는 강의 하구는 하구언이 없어 바다로 열려 있다. 1953년에 체결된 정전협정 1조5항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 인근에서 인천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 인근까지 67㎞의 물길을 남과 북 민간의 통행을 보장하는 중립수역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곳은 남도 북도, 누구도 다닐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기구한 물길로 남아 있다. '평화의 배'가 이 막힌 물길을 상징적으로나마 열어보려 했지만 군 당국에 의해 번번이 저지되어 이곳이 불통의 수역임을 재확인해 줄 뿐이다. 세상에서 건너지 못하는 유일한 강, 저 '할아비의 강'이야말로 남과 북이 협력하여 제일 먼저 살려내야 할 물길이자 수역 아니겠는가./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2021-04-20 김창수

[경인칼럼]'카페 권력'이라니

17~18세기 '유럽카페'는 정치·문예 공론장 현재 한국의 포털 온라인 커뮤니티로 재현 인천지역사회도 이를 놓고 '카페 권력' 논란위임된 권력이 '위임한 시민모임' 꾸짖는 꼴영국은 차(茶)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하지만 17∼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는 커피였다. 17세기 후반 런던에는 3천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성업 중이었다. 계급사회였으나 계급과 상관없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커피하우스마다 특정한 주제를 토론하고 정보를 주고받았다. 사람들은 '페니 대학'이라고 불렀다. 1페니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관심사와 지식을 교환했다. 세상의 모든 뉴스와 정보가 모여들었고 다시 전국으로, 식민지로 흩어져 나갔다.커피하우스는 도버해협을 건너가 정치와 예술의 숙의장이 된다. 파리 최초의 카페 '르 프로코프'는 런던보다 무려 한 세대나 늦은 1686년에서야 문을 열었지만 머잖아 볼테르와 루소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집결처가 되고, 백년 뒤 일어날 프랑스혁명을 잉태하는 자궁 역할을 했다. 제3공화정 초기인 1880년 무렵 파리의 카페는 4만5천여개에 달했다. 파리 시민들은 카페에 마주앉아 대혁명 전야의 그때처럼 정치적 담론을 생산하고 공유했다. 문학과 예술을 탐미하고 향유했다.네이버와 다음으로 대표되는 21세기 대한민국 포털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성격과 기능 그리고 역할 면에서 영락없는 17∼18세기 커피하우스와 카페의 재현이다. 그때 그러했듯이 뉴스와 정보를 주고받고, 정치적 담론을 생산·공유하며, 생활과 문화의 관심사를 나누고 토론하는 공론장이다. 달라진 것이라곤 딱 하나, 사람들이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지 않는다는 점뿐이다.그런데 최근 인천지역사회에서 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지역 의제를 독점함으로써 민심을 왜곡하는 카페 권력"이라고 비판하는 측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며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시민 권력"이라고 반박하는 측이 치열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전자는 평소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는 강원모 인천시의회 부의장, 후자는 송도·청라·영종·검단 등 신도시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들이다.강 부의장은 "지역 카페가 이미 권력 수준으로 발전을 했기 때문에 견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도시 주민들의 '개발 이기주의'를 꼬집는 그의 논리는 선명하다. 그가 들이대는 잣대대로라면 신도시 커뮤니티들의 주장은 부동산 열망으로 응결된 지역 이기주의와 다름없다. 그러잖아도 구도심 주민들로부터 인천의 정서, 인천의 이익과는 무관한 외지사람들이라고 눈총받고 있는데 그런 인상을 더욱 깊게 만드는 비판이다. 언론도 대체로 강 부의장의 손을 들어주는 것 같다. 날 대신해 시원하게 한 주먹 날려줬다는 눈치다.그러나 나는 강 부의장의 주장과 언론의 동조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역 카페를 견제해야 한다는 것은 시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그 권력의 원천이면서 권력을 자신에게 위임한 시민을 견제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권력의 수준에 이른 게 이유라면 그 자체로 어폐(語弊)다. 본인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인정하든 않든 '카페 권력'을 이처럼 준엄하고 통렬하게 꾸짖는 강 부의장이야말로 현실적으로 현재 이 지역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권력의 일부다. "원칙에 따라 시정이 흔들리지 않게 하겠다"고 화답하는, 이 지역사회에서 실재하는 가장 강력한 권력인 시장(市長)과 함께 지역 권력구조의 상층부를 이루고 있다. 지역사회의 '가장 강력한 권력'과 그 강력한 권력과 운명을 거의 같이하는 '부분의 권력'이 '시민 권력'을 경고하는 모양새는 아무래도 사납고 불편하다. 위임된 권력이 위임한 권력을 나무라고 꾸짖는 것은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다.더군다나 '민주주의의 정원'과 '시민 권력'의 저자인 미국 시민운동가 에릭 리우의 시선으로 보면 신도시 커뮤니티들은 '거의 마법과 같은 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직화'의 단계를 아직 밟아보지도 못한 상태다. 청원에 연명하고, 집단민원을 제기하고, 플래카드를 내건다 해서 다 권력인 것은 아니다. 섣부른 틀짓기(framing)는 최악의 편 가르기를 불러들이는 배경이 될 수 있다. 들이대는 잣대 또한 신의 그것은 아니지 않겠는가./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1-04-13 이충환

[경인칼럼]아르고스의 부활

지금은 정보를 점령한 자가 세계지배 시대지난해말 한국은 1위로 '유튜브 공화국' 등극사업 관건은 가입자늘려 플랫폼 키우는 것그러나 견제할 권력이 없는 한 '디스토피아'한국이 세계 1위의 '유튜브 공화국'에 등극했다. 작년 말 유튜브의 수익창출 채널은 9만793개로 국민 529명당 1명이 유튜브로 돈을 버는 전업 유튜버들이다. 유튜브의 본고장인 미국의 전업 유튜버는 인구 666명당 1명이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익창출 채널이 많은 인도는 인구 3천633명당 1명, 일본은 815명당 1명꼴이다. 인구 몇만 명의 미니국가들을 제외하면 한국이 세계 1위이다.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보급률에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나 홀로'족이 늘면서 구독자가 급증한 것이다. 연매출 수십억원의 유튜브 대박뉴스가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까지 불러들여 콘텐츠도 한층 충실해졌다.유튜브 이용자들이 점차 해박해진다. 구글의 회사 사명은 '악을 행하지 마라(Do No Evil)'이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이베이 경영자들은 스스로를 '선한 세력'으로 자부한다. 소비재인 자동차와 집을 생산재로 전환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한 우버(자동차 공유업체)와 에어비앤비(숙박공유서비스업체)는 더 많은 찬사를 받았다. 공유경제 실현으로 진정한 디지털 사회주의를 구현했다는 것이다.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이베이, 우버 등은 스스로를 '플랫폼'기업이라 규정한다. 플랫폼이란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직거래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환경을 뜻한다. 또한 소셜네트워킹부터 GPS 위치 제공, 의료테스트 등 다양한 서비스를 무료로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해서 소비격차를 해소시킨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들이 이용자들에게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결은 디지털 플랫폼 특유의 양면(兩面) 시장인데 한쪽 면에서는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른 한 면에서는 기업들에 광고공간을 판매하거나 이용자들의 행동패턴에 관한 정보를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이 사업의 관건은 플랫폼의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검색엔진 이용 및 소셜네트워크(SNS) 참여가 증가할수록 광고 클릭 수나 소비자 행동 패턴 수집량이 많아져 수익성이 커지는 탓이다. '네트워크의 외부성', 즉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다. 또한 특정 상품에 대한 특정 소비자의 수요가 다른 소비자들의 수요에 미치는 네트워크 효과도 커서 선발기업일수록 리더기업이 될 확률이 커진다. 네이버, 카카오, 옥션, 쿠팡 등이 가입자 수 늘리기에 올인하는 이유이다.최근 1, 2년 사이에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이베이 등이 전 세계 수십억 명에게 필수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구글은 세계 포털엔진 검색 건수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페이스북 이용자 수는 2018년 기준 22억명이며 2020년 현재 세계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배송품목은 1천만건으로, 경쟁자인 월마트의 22만건은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또한 페이스북, 구글, 야후, AOL, 트위터, 아마존이 디지털 광고시장의 53%를 차지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우뚝 섰지만 독점규제는 언감생심이다.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빅 데이터이다. 미국의 5개 IT기업(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IBM)이 전 세계 데이터의 대부분을 확보하고 있다. 공공이익보다 기업이익을 위한 데이터 사유화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디지털 거인들이 세계시민들의 사생활보호와 사회적 통제, 정치적 권력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최근 크리스티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빅테크의 시장집중도가 훨씬 커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과거에는 바다를 점령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를 점령한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이다. 이들의 힘을 견제할 강력하고 초국가적인 규제 권력이 없는 한 빅브라더(Da xiong)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의 도래는 불가피하다. 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를 통치하는 최고 권력자이다. 중국정부가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에 13억 중국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비결은 감시시스템이다. 눈이 백 개나 달린 그리스신화 속 괴물 아르고스의 부활이 임박했다./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2021-04-06 이한구

[경인칼럼]왜 정권심판론인가

선거는 정당정치 유지, 국민이 권한위임 불구집권당, 유불리 따른 법안통과… 여론 악화서울·부산시장 보선 고작 네거티브전 의지압도적 다수에도 초라한 상황 통절 반성을행정부와 의회 권력을 가진 집권당이 야당의 반대로 국민 일반이 지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할 때 몇 개의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첫째, 의회 다수를 확보했음에도 법안 통과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여당의 의지 빈곤과 정당 리더십의 부족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둘째, 여당이 야당과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묵시적으로 공유하는 경우일 수 있다. 셋째, 다수결 정치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으나 합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함으로써 야당의 동의를 얻어내려는 다수당의 민주주의 철학의 관점이다.집권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들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부합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법안들을 야당의 동의 없이 처리했다. 압도적 다수를 만들어준 국민의 명령이라는 명분이었다.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사건의 부도덕한 부동산 경제 교란 행위로 이해충돌방지법이 이슈로 떠오르자 여야가 법 취지에 공감했으나 부패청탁금지법 제정 당시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피해가던 국회가 또다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사후 규제인 청탁금지법에 비해 이해충돌방지는 사전규제라는 이유와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 포함 여부가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논리지만 집권세력이 강단 있게 검찰 관련법을 밀어붙이던 때와 다르다. 그러나 몇 개의 쟁점법안에 대해 여당이 여야 합의를 배제하고 단독으로 처리한 것에 대한 부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셋째 경우에 해당한다.이해충돌방지와 관련된 사안은 청탁금지법을 만들 때 핵심적인 사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껴갔고 그나마도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민원을 최전선에서 직면해야 한다는 이유로 청탁금지법의 적용대상에서도 배제됐다.결국 이번에도 여야가 이해충돌법 통과에 소극적인 것은 여야 모두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는 첫째와 둘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핵심 가치는 주권자의 의사다.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어떠한 정치세력에게 권한을 위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선거는 정당정치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은 말할 것도 없다. 지방선거는 지방정부의 대표를 선출하는 기능도 있지만 중앙정부에 대한 평가의 의미를 배제할 수 없다.서울과 부산 시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진행 중이지만 두 광역단체의 수장을 결정한다는 의미 못지않게 중앙정부의 집권기간 동안의 평가의 의미를 띠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본래 지방선거는 총선과 대선 사이에서 정권에 대한 중간심판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정당들로서는 결정적 변곡점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회고적 투표의 성격이다.모든 선거의 결과는 개표가 끝나야 알 수 있지만 이번 보궐선거 전반을 관통하는 프레임은 정권심판론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의힘에 비해 압도적인 지지율을 구가하던 집권당의 초라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집권세력은 지방선거의 결과와 관계없이 통절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안은 국민의 의지를 내세워 강행 통과시키고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동의는커녕 청문보고서 채택도 되지 않은 후보자의 장관 임명을 다반사로 하는 행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내로남불은 윤석열의 검찰총장 사퇴와 LH 투기 사건으로 결정적 여론 악화의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네거티브 선거전략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린 것이다.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우다가 이에 맞지 않으면 야당과의 합의를 강조하는 이중잣대로는 민심에 다가갈 수 없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지만 국정운영의 주체는 집권세력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을 비롯하여 대중일반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다가갈 때만이 내년 대선을 기약할 수 있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1-03-30 최창렬

[경인칼럼]전국이 '투기 먹잇감'인 나라

공직자들의 지분투자는 '비밀의 동지' 전제그래서 LH사태 '공공·공정 훼손' 중대범죄광명·시흥 이어 '용인 SK예정지'도 투기 정황역대정부 알고도 방치·이용 현재도 진행형사촌이라도 땅은 함께 사는 게 아니라고 한다. 훗날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절친끼리 토지를 사들였다가 원수지간이 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함께 부자 되자며 의기투합했으나 시일이 지나면 이해가 갈리게 된다. 여윳돈은 장기투자도 무방하나, 빌린 자금은 이자와 원금 상환 부담에 사정이 급해진다. 나대지로 팔자는 쪽과 개발행위를 해 가치를 높이자는 주장이 맞선다. 누군가와 함께 땅을 산다는 것은 '분쟁의 지뢰밭'을 공유하는 것에 다름없다.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토지를 공동매입하고 지분을 쪼갠 건 어지간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눈을 피해야 하는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자는 비밀유지가 전제돼야 하고, 공평하게 이익을 나눌 수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이미 드러난 대로 함께 사들인 토지를 1천㎡ 크기로 쪼개기를 한 직원들은 오랜 세월 고락을 함께한 동지들이다.사태 초기,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LH 직원들의 광명·시흥지구 투기를 두고 '몰랐을 수 있다, 얻어걸린 경우가 아닌가 싶다'고 해 공분을 샀다. 그러니까 전문가들도 인정한 수법을 '소의 뒷걸음질'에 빗댄 거다. 야당은 물론 여권도 '내 편 감싸기에 정무 감각을 잃은 어이없는 발언'이라 혹평했다. '국민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이 틀린 소리만은 아닌 듯하다.LH 사태를 조사 중인 정부 합동조사단이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민변과 참여연대가 폭로한 투기 의심 직원 14명 외에 수십 명이 추가로 적발됐다고 한다. 3기 신도시에 대한 투기 의심 사례를 보면 광명·시흥이 전체의 70%를 넘는 압도적 점유율을 보인다. 가장 늦게 지정된 막내 동네에 '지분 쪼개기와 희귀목 심기' 고수들이 몰려든 까닭은 뭔가.광명·시흥 17.4㎢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다. 분당신도시와 맞먹는 크기에 서울과 인접해 기대를 모았으나 진척되지 않았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지구 해제됐고, 특별관리구역으로 재지정됐다. 2025년까지 환지방식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2010년 이전 상태로 되돌려진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개발이 될 땅이다.턱없이 낮은 지가(地價)도 매력적이다. 10년 넘게 그린벨트보다 더한 족쇄가 채워지면서 헐값이 됐고, 인근 지역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평당 가격이 200만원을 밑돌아 광명역세권과 수십 배 차이가 난다. 원주민들은 부동산 열풍이 분 2018년부터 외지인들의 방문과 거래가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신도시도 좋고, 아니어도 나쁠 게 없다.SK하이닉스는 2019년 2월 용인 원삼 일원 442만㎡가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부지라 발표했다. 열흘 뒤 경인일보는 2년 전부터 클러스터 부지 경계가 선명한 도면이 유출돼 투기세력 참고서가 됐다고 보도했다. 지역 토지거래 건수가 2017년과 2018년 급증한 사실도 전했다. 부지 선정은 물론 도면이 사전 유출되고 투기꾼들이 사재기에 나선 사실을 추적 보도한 것이다.지자체는 조사도, 수사 의뢰도 하지 않았다. 경찰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진(强震) 발생 전, 이상 행동을 하는 동물이 많다. 쥐는 한 방향으로 떼 지어 이동하고, 새들은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자연이 경고하는 전조 증상이다. 광명·시흥 이전에도 1·2·3기 신도시마다 대규모 투기 정황은 차고도 넘쳤다. 역대 정부는 필요하면 조사하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뭉갰다. '재수 없어도 안 걸린다'는 경험치가 쌓여 전국이 투기 먹잇감이 됐다.LH 사태는 공공의 기능과 공정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중대범죄행위다. 토지·주택을 마음껏 주무르는 무소불위의 권한은 유혹을 견뎌내기 힘들다. 수십 년 응집된 부조리가 폭발했는데, 정부·여당은 유불리를 먼저 따져보자는 태도다. 검찰과 감사원의 조사·수사를 두고 정치권이 다른 소리를 한다. 정부 고위인사가 재임 중 개집을 짓겠다며 산단 예정지를 사들였다. 그런데도 전 여당 대표는 '위는 맑아진다'며 아랫물 탓을 한다. 거물은 숨고, 잔챙이만 몇 패가망신할 처지다. 머리를 조아린 정부·여당에 국민이 외려 '발본색원해달라' 애원할 판이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1-03-23 홍정표

[경인칼럼]해양도시와 해양문화

올해는 관련법 시행… 해양문화·교육 원년인천은 168개 다도해·해양물류 중심지 불구경북·부산 준비에 비해 '관심과 비전' 부족미래신산업 하루빨리 활성화계획 서둘러야2021년은 해양문화와 해양교육의 원년이다. 지난 2월19일부터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약칭 해양교육문화법)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이 법의 제정 취지는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의 활성화를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하고 해양에 대한 국민의 인식개선 및 인재양성, 해양문화 진흥을 촉진함으로써 국가의 해양역량 강화와 사회발전 및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2020년 2월18일에 제정된 법률이다. 이에 따라 해양 관련 지자체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으나 인천은 잠잠하기만 하다.해양문화교육법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저소득층, 장애인 등 사회적 배려대상자에게 해양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균등한 해양문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며, 해양문화를 향유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수립·실시할 것을 책무로 명시하고 있다. 또 해양수산부 장관은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5년마다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 기본계획에는 주요 해양도시와 지자체의 해양교육문화 실태를 반영한 특성화 계획을 담아야 한다.경상북도는 해양수산발전계획과 해양문화활성화 계획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경상북도는 '글로컬 해양문화관광', '세계평화협력의 바다' 등의 비전을 세우고 39개 실천과제에 총 4조420억원을 투입하는 해양수산발전 기본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환동해를 해양문화·교육 메카로'라는 목표 아래 환동해 해양문화포럼을 개최하면서 해양교육문화 활성화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해양수도를 표방하고 있는 부산시도 한국해양대학교, 국립해양박물관 등 기존 해양교육문화 인프라 외에 해양인문문화진흥센터 설립계획을 세우고 해양어린이박물관 설립계획도 검토하고 있다.인천은 서해 연안 및 국제 항로의 허브인 항구를 갖춘 해양물류의 중심지다. 지리적으로 볼 때 인천은 경기만에 흩어져 있는 다도해를 행정구역에 포함하고 있다. 강화도, 백령도, 덕적도와 같은 유인도 40개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128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는 인천의 다도해는 수려한 경관이 자랑거리이지만 지질학적·생태학적 가치도 높은 해양문화자원의 보고(寶庫)이다. 인천은 총연장 140㎞에 달하는 해안선과 다양한 수변 공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인천 연안에는 9m에 달하는 조석간만의 차로 인한 광대한 갯벌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 규모는 세계 최대이다.역사적으로 볼 때도 인천의 해양도시적 특성은 더욱 분명하다. 비류백제시대에 인천은 '미추홀(彌鄒忽)'로 불렸는데, 이 지명이 바닷물로 둘러싸인 땅을 의미하듯 해양성은 인천의 정체성을 이루는 토대다. 인천은 바다와 갯벌을 이용한 어업과 수산업, 항구를 통한 해양·해륙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물류 허브 도시이다. 그런데 해양성과 해양문화가 인천의 로컬리티와 성장동력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해양문화에 대한 관심도 해양 관련 연구기관도 부족한 편이다. 관련 연구도 교육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2024년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이 개관될 예정이지만 아직 시민들의 관심 밖이다.해양교육문화법 시행을 계기로 인천은 해양도시로서의 비전을 재확인하는 한편 해양교육을 본격화하고 해양문화 활성화를 위한 계획 수립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해양수산은 국가 경제의 한 축이자 지역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미래산업 분야이기도 하다. 인천시는 경기도와 함께 분쟁과 불통의 바다로 남아 있는 조강수역(한강하구)과 NLL(북방한계선) 일대를 남북이 공동 수혜자가 되는 소통의 물길, 평화의 수역으로 가꾸어 나가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바다를 지속가능한 지역경제의 동력으로, 해양레저 및 해양 문화 콘텐츠의 자원으로 탈바꿈하자면 먼저 해양 관련 행정의 혁신과 해양교육을 통한 해양의식의 일대 변화가 요구된다./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2021-03-16 김창수

[경인칼럼]저널리즘의 자해(自害)

성인 10명중 8명, 모바일로 뉴스 접해 '대세' 60대 이상 절반 급증·청년은 읽는뉴스 선호그런데도 언론사 제공 뉴스서비스 질 엉망바로잡기도 외면… '거대한 붕괴' 조마조마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8명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모바일 인터넷을 이용해 뉴스를 접한다. 정확하게는 77.9%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콕'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TV나 PC 이용자가 증가했음에도 대세는 모바일 뉴스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언론진흥재단의 2020년도 '언론수용자 조사' 보고서 내용이다.보고서엔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포함돼 있다. 우선 60대 이상의 모바일 인터넷 뉴스 이용률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 조사에서는 60대 4명 중 1명(25.5%)이 모바일 인터넷 뉴스를 본다고 했는데 이번 조사에선 응답자의 거의 절반(48.3%)이 이용한다고 답했다. 청년층이 '보는 뉴스(영상)'보다 '읽는 뉴스(글)'를 선호한다는 점은 의외였다. 지난해 처음으로 도입된 이 질문에 20대 응답자의 68.5%가 '읽는 뉴스'를 '보는 뉴스'(27.1%)보다 선호한다고 답했다. 30대의 55.1%도 '읽는 뉴스'를 선택했다.모바일 인터넷을 이용해 뉴스를 접하는 건 50대 중반인 아내와 후반인 내게도 '당연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TV뉴스도 보지만 대부분의 뉴스를 스마트폰을 통해 미리 얻는다. 그런데 체감하는바 언론사들이 제공하는 모바일 뉴스서비스의 질이란 게 한마디로 엉망이다. 소위 메이저라고 하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나 내로라하는 경제지들이나 연예계 가십거리를 다루는 특화된 매체나 하등 다를 바 없다. 보수라 칭하든 진보라 불리든 매체의 내적인 것과도 상관없다. 모바일 뉴스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매체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이다. 오자와 탈자가 홍수를 이루고, 문장이 아닌 문장은 읽는 이의 인내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용인을 무색하게 만든다."오는 20일 취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도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한 상·하원의 지원 속에 순항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된다" (경향신문, 미 상원 조지아 결선투표 민주 1곳 승리 1곳 우세, 입력 2021. 1. 6. 오후 5:16)"펠로시 의장은 또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직구를 계속 수행하면 안 되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면서" (동아일보, 트럼프 두 달 만에 '승복선언' 미 민주당 "해임 안하면 탄핵 추진", 입력 2021. 1. 8. 오후 9:29)"트럼프 전 대변인 본인도 CNN 기자들에게 '가짜뉴스'라고 호통치며 질문을 거부하며 민주주의의 기본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중앙일보, 30분 만에 31개 질문 답했다…바이든 입 '샤키' 데뷔 합격점, 입력 2021. 1. 25. 오후 5:32 수정 오후 7:45)"현대차도 '당장 전기차 생산라인을 신설한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 바이든 "관용차, 미국산 전기차로 바꿔라"... 현대차·기아 '비상', 입력 2021. 1. 26. 오전 10:38)지난 1월 바이든 시대를 맞는 미국 정가 소식을 전하는 기사 몇 개만 봐도 이렇다. 급기야 며칠 전엔 참 읽기 민망한 표현도 등장했다."이 대표가 지난 5일 저년 첫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어린이들이 유명 인물을 인터뷰하는 방식의 MBC 파일럿 프로그램 '누가 누굴 인터뷰'였다" (중앙일보, "대통령 할 거야?" 10살 아이 돌직구에 이낙연이 밝힌 고민, 입력 2021. 3. 6. 오후 12:04 수정 오후 12:26)굳이 파헤치고 드러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일부 언론사를 제외하곤 사후라도 바로잡으려는 성의조차 비치질 않는다. 뻔뻔하고, 낯 두껍고, 몰염치한 처사다. 저널리즘의 신뢰성에 대한 명백한 자해행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아주 낮은 단계의 '게이트키퍼'마저도 내부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모바일 뉴스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속도경쟁의 불가피한 후유증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사소한가. 별거 아닌가. 하지만 나는 사소하고 별거 아닌 글쓰기의 작은 오류에서 시작되는 저널리즘의 거대한 붕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대세를 놓치고 있다는 안타까움은 사치일 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1-03-09 이충환

[경인칼럼]아모르 파티

코로나로 졸업생들과 작별인사도 못했는데최악의 고용 상황, 취업 근황 묻기가 두렵다AI로 고용 흡수력 더 위축·우울증은 급증세그럼에도 '화산 기슭에 집을' 불굴 도전 기대신학기가 시작되었지만 대학캠퍼스는 스산하다. 해동이 덜 된 응달의 냉기는 더 차갑게 느껴진다. 새내기들로 소란해야 할 때이나 2년째 비대면 개강을 맞으면서 강의실마다 인적이 끊긴 탓이다. 작년 하반기에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금년 봄부터는 캠퍼스가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점쳐졌는데 지금은 대면강의의 2학기 재개 여부조차 불투명하다.지난달에 졸업한 제자들과 작별 인사도 못했다. 올해 졸업생들의 근황이 특히 궁금하나 취업 여부를 묻기도 두렵다. 매년 이맘때면 서울 강남으로 출근하는 수많은 새내기 직장인들로 부산하던 지하철 2호선 인근의 원룸타운도 코로나19로 '춘래 불사춘'인 지경이다.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금년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자 수는 157만명으로 1999년 6월 관련 통계기준 변경 이후 1월 기준 최대이다. 지난 2월의 취업자는 2천581만8천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98만2천명이 줄었는데 감소폭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2월(128만명) 이후 22년 만에 가장 크다. 모든 연령층에서 취업자가 감소했지만 20, 30대 취업자 감소가 특히 두드러졌다. 30대 중반의 한 직장인의 평가이다."30, 40대 직장인들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 직업 자체가 없어지거나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계속 근무가 가능해 코로나19의 영향을 덜 받지만 20대는 대부분 미숙련 노동자들이어서 해고 1순위를 차지한다."청년들의 아르바이트 자리도 크게 위축되었다. 지난달 초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전국의 청년구직자 1천5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9명이 알바 보릿고개를 호소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젊은이들이 '고수익 보장', '단순 업무'라는 유혹의 덫에 걸려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범죄에 연루되어 전과자로 전락하는 사례까지 늘고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일수록 알바 구하기가 더 어렵다.20대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20대에서 우울증 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해서 30~40대를 추월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대 우울증 환자가 2016년 6만5천104명에서 2019년 12만1천42명으로 4년 만에 두 배가량 증가했다. 작년 상반기의 전년 동기 대비 우울증 환자 수 증가율은 20대가 78%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우울증은 마약중독, 자살과 함께 대표적인 선진국 질병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때문이다. 세계화와 자동화, 디지털화는 설상가상이어서 산업 전반에서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것이다. 지난 1월 한국은행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국내 산업현장에 로봇이 빠르게 증가해 한국은 로봇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경쟁국에 비해 일자리와 실질임금이 더 크게 줄 수밖에 없다.인공지능(AI)의 가세로 고용흡수력은 더 쪼그라들었다.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공지능을 기후변화와 유전자변형 바이러스, 갑작스러운 핵전쟁과 함께 인류를 위협할 네 가지 위험요소의 하나로 꼽았다. 조셉 슘페터가 지적한 '창조적 파괴'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미국에서 대학졸업장의 투자수익률은 1987년의 12.5%에서 2015년에는 6.7%로 한 세대 만에 반토막이 났다. '코로나 블루'는 설상가상이나 한국의 청춘들이 더 혹독하게 느낀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1대 99' 사회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도 부모세대처럼 결혼하고 자녀들을 키우며 내 집을 마련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1990년대 및 2000년대 초반 출생의 Z세대에 회자되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에는 모골이 송연하다.발터 샤이델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역작 '불평등의 역사'에서 "우리는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항상 비명과 울음 속에서 태어났음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경각심을 환기했다. 극소수 금수저 이외의 모든 이들은 탄생과 함께 삶의 고해(苦海) 속에 내던져진다는 의미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청춘들에게 '아모르 파티'(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를 강조하며 "베수비오화산 기슭에 당신의 집을 지으라"고 불굴의 도전정신을 당부했다./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2021-03-02 이한구

[경인칼럼]민주주의와 자제의 규범

대통령 연임은 1회에 국한 '규범' 확립 불구美루스벨트는 대공황 이용 3선에 성공 인물한국정치도 관용·자제 규범 사라진 격투판野 반대일변·권력집단 法잣대만… 지양을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이겨 낸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수정헌법 22조(대통령 임기 제한)를 세상에 나오게 한 장본인으로서 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재앙을 이용하여 3선에 성공한 인물이다. 물론 그의 3선은 헌법 위반은 아니다. 루스벨트의 3선 성공 당시 미국은 연임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성문화된 헌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대통령 연임은 1회에 국한한다는 '규범'이 확립되어 있었다.또한 그는 1936년 재선에 성공한 후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을 제어하기 위하여 대법원 판사의 수를 늘리려고 했다. 정권에 우호적인 판사를 대법원에 심겠다는 심산이었다. 물론 헌법에서는 대법관의 수를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생각은 당시의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결국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언론과 지식인, 집권당인 민주당의 많은 인사들까지 반대하는 바람에 그의 생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가 대공황의 중대한 국가위기 상황임에도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다.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상호보완의 관계지만 갈등적 관계일 때도 무수히 많다. 국회에서 의결된 탄핵소추가 비선출 권력인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는 것도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와의 대립이란 관점에서 논쟁의 대상이다. 물론 헌법과 법률이란 테두리 내에서 합법이다.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규범이다. 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사라진 정치판에는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고 어떤 수단과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반드시 꺾어야 하는 적(敵)만이 존재할 뿐이다. 위법은 아니지만 제도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서 영원히 퇴출시키겠다는 적개심이 정치의 동력으로 작용한다.이러한 태도는 극단적 분열과 대립을 가져오고 정치는 배타적 승부만 난무하는 격투로 변한다. 외국의 예가 아닌 바로 한국 정치의 모습이다. 민주화 이후에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인 까닭이다. 야당은 진영에 상관없이 집권세력을 감시하는 견제견이 아닌 투쟁으로 일관하는 투견이 된다. 여당은 권력을 감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감시견이 아닌 순종적인 애완견으로 전락한다. 이는 쟁점적 사안을 일단 고발부터 하고 보는 극한적인 정치의 사법화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가 사법화된다면 사법 또한 정치화될 수밖에 없다.지금 목도하고 있는 전형적 모습들이다. 사법개혁을 외치지만 검찰과 법원은 종종 정쟁에 휘말린다. 사법농단이 그것이고 최근 대법원장의 거짓도 마찬가지다. 인사청문회를 거친 고위공직자 후보자가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되는 숱한 사례들은 대통령의 권한이 자제의 덕목을 발휘하지 않는 좋은 예다.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야당 동의 여부가 인사권 행사에 아무런 견제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인사청문회 제도는 폐지해야 마땅하다. 물론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므로 헌법과 법률이라는 제도적 테두리 내에서 아무런 하자가 없다.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므로 청와대 민정수석이 배제되어도 법률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오히려 민정수석의 행위를 항명으로 몰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축적된 관행이 척결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왜곡되고 뒤틀린 적폐가 아니라면 규범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규범이 무시된다면 민주주의는 오로지 성문화된 법률만으로 지탱되어야 하며 그 결과는 극한 대립과 분열이다. 권력을 향유하는 집단이 이를 무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새삼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권력은 최대한 자제되어야 하고, 권한은 신중하게 행사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요체인 자제의 규범은 사라지게 된다.자제가 사라지고 나면 다수결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의해 소수의 의견은 무시될 수밖에 없고 합의제 민주주의 역시 설 땅을 잃게 된다. 야당의 반대 일변도의 정치행태, 권력을 가진 집단이 법률의 잣대만을 가지고 권한을 휘두르며 강성 지지자를 의식하는 정치행태는 모두 지양되어야 한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1-02-23 최창렬

[경인칼럼]공급 폭탄 '200만 호'

2014년 '부동산 제3 파동' 꺼지지도 않았는데文정부 임기말, 83만호 주택 공급 25번째 대책 3기 신도시 117만호 합치면 가히 물량폭탄李지사 '기본주택' 해법에도 대폭락 재앙 우려2014년, 국내 부동산시장이 재폭발했다. 서울 강남에서 발화돼 강동·송파와 마포·용산·성동으로 번졌다. 달아오른 열풍은 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지나 대전·부산·대구를 휩쓸었다. 지방 광역시에 중소도시 아파트까지 몸값이 뛰었다. 지금껏 7년이 넘도록 꺼지지 않는 불길을 두고 198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이은 '부동산 제3 파동'이라 한다.노태우 정부는 분당·평촌·일산 1기 신도시에 주택 200만호를 지었다. 주민들이 경부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민란(民亂)을 겪었으나 입주 무렵 시장은 가라앉았다. 10여년 뒤 다시 강남이 들썩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과세로 '대못을 박겠다'고 했으나 불은 더 번졌다. 동탄·김포 등 2기 신도시 계획이 나오면서 시장이 잠잠해졌다.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광풍의 위력을 가볍게 봤다. 투기를 잠재우고 가수요를 누르면 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낙관했다. 1·2차 파동 때 공급을 확 늘려 시장을 안정시킨 것과 다른 방향이었다. 불안한 세입자에 '집 사지 않아도 된다'며 임대차 보호법을 강화했다. '집 사세요'가 '세 사세요'가 됐다. 수요 억제와 임대 장려는 불구덩이에 기름을 끼얹는 오판이었다.정부는 임대사업자의 지방세를 감면해주고 양도소득세 중과도 유예했다. 2017년 말 발표한 임대주택등록 활성화 방안이다. 8년 이상 장기보유하는 경우 특별공제 70%를 적용했다. 종부세 합산에서 배제하고 건강보험료까지 감면하는 종합선물세트가 더해졌다. 임대사업자는 150만을 넘어섰고, 갭(Gap) 투자가 성행했다. 다주택자의 조세 도피처가 됐고, 투기 수요를 부추겼다. 8년 이상 장기 보유 사업자가 늘면서 매물 잠김 현상이 일어나 집값이 치솟았다. 참여연대는 임대사업자에게 과도한 특혜를 줬다며 정부 관련 부처를 대상으로 공익감사를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지난해 임대사업자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집값 안정의 주역이라던 임대인들이 천덕꾸러기가 됐다.정부가 이달 초 '부동산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주택 83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규제 완화와 공공주도의 절차 간소화, 이익 공유제를 버무려 추진 동력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3기 신도시 117만호를 합하면 200만호에 달하는 물량 폭탄이 쏟아지게 됐다.정책이 공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제될 게 있다. 당위성과 실행방안, 시의성이다. 2·4 대책은 신규 택지 후보지를 특정 짓지 못했다. 뭔가에 쫓기듯 서두른 느낌이다. 야권은 서울 시장 선거를 겨냥한 선심이라 비판한다. 인구가 감소하는 마당에 그 많은 물량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경기·인천 170만호는 숨이 막힌다. 과잉공급으로 대폭락을 부르는 재앙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출구 없는 전·월세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양도세 한시 면제 등 매물 물꼬를 틀 유인책도 내놓지 않았다.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2·4 대책으로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 강조한다. 상반기 중 수도권에 20개 넘는 신규 택지를 확정하겠단다. 임기 말 정책을 다음 정부가 이어받은 사례를 경험하지 못했다. '반값 아파트'라는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 주택과 박근혜 정부의 중장기임대형 '뉴스테이'가 그렇다. 시장 반응이 싸늘한 이유다.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해법은 공공임대인 '기본주택'이다. 주택 정책 모범국인 싱가포르를 배우고 싶다며 주한 대사를 만났다. 싱가포르는 자가 보유율이 90%를 넘고, 주민 80%가 공공주택에 거주한다. 합리적 대안으로 국민 공감을 이끌어낸 뒤 끈질기게 추진한 결과물이다.정부는 4년 동안 25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출범 초 서울 30만호와 3기 신도시를 발표했다면 스무 차례 넘는 추가대책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불안한 30·40대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더미를 안고 집을 사고 나서야 운전대를 돌렸다. 임기 후반 느닷없는 공급 폭탄에 시장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폭등보다 두려운 건 폭락이다. 200만채가 지어질까 걱정들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낮은 게 위안이라고 한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1-02-16 홍정표

[경인칼럼]뉴타운 광풍과 도시 생태계

서울시장 보선에 '13년전의 갈등' 재현 조짐우상호 16만·안철수 74만·김선동 80만호 등1년 임기일 뿐인데… 저마다 주택 물량공세 저급 포퓰리즘 두고두고 비판받을 애드벌룬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13년 전에 불던 '뉴타운' 광풍이 재현되고 있다. 2008년 총선 당시 서울지역에 출마한 여야 국회의원이 모두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다. 선거 후 대다수 뉴타운은 구역지정이 해제되었고 집값 폭등이나 원주민과 세입자가 쫓겨나는 등 무수한 사회적 갈등과 후유증을 남겼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여야후보들이 내건 제1호 선거공약도 한결같이 주택물량공급을 늘리겠다는 약속이다. 우상호 의원이 16만호 공급을 약속하자,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65만호를,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은 70만호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74만호를, 김선동 국민의힘 전 의원은 8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120만호 추가 공급 주장도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서울 32만가구 개발사업을, 전국적으로 공공주도 83만가구를 개발하겠다는 대규모 주택공급 대책을 발표하면서 광풍에 가세하고 있다.이 같은 주택공급 물량 공세가 1년 임기의 서울시장이 약속하기 어려운 정책일 뿐 아니라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조율 없이는 물리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애드벌룬에 불과하다. 지난 30년간 서울시 주택 인허가 건수는 연평균 8만~9만호 수준으로 연간 10만호를 넘어서기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수십만호 공급을 공약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요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는다면 주택건설에 올인하는 정책을 수긍할 수 있겠지만 서울시의 현재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할 수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수십만호의 주택건설이 단기간에 이뤄진다해도 문제이다. 개발계획과 추진은 투기 수요를 부르고 결과적으로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 환경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른바 '신속공급'으로 원주민들과 세입자들의 주거는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다. 대규모 주택공급은 필연적으로 서울로의 인구 집중을 부른다. 과밀이 불러올 부작용은 아랑곳하지 않는 공급 만능의 단순 접근법에서 벗어나야 한다.주택보급률이 96%에 달하고 서울시 인구가 해마다 감소추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공급확대가 대안이 될 수 없다. 1~2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와 맞물린 초저금리 추세가 주택 수요로 몰리면서 발생한 것이다. 1년 임기 중에 가능하지 않은 공급확대 목표를 부풀려 제시하는 것은 저급한 포퓰리즘이며, 무리한 추진으로 큰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주택공급확대 위주의 대증요법식 처방은 서울의 도시 생태계를 훼손할 것이 분명하다. 모든 후보들이 주택 공급량을 늘리기 위한 층고제한이나 용적률 완화를 전제로 고밀도 개발을 약속하고 있다. 교통과 일조권과 조망권, 인프라 부족으로 주거환경과 도시기능 악화를 초래하고 초고층화는 안전문제도 제기된다. 그린벨트를 풀어 신규택지를 개발하겠다는 정부 대책은 난개발을 부르는 하책이다. 미세먼지로, 또 코로나19 위기로 도심 공원과 녹지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도심의 허파와 시민의 휴식처를 줄이는 것은 두고두고 비판받을 역주행 정책이다.일부 후보들이 기존의 도시재생 정책을 주택문제를 초래한 원흉(?)처럼 비난하고 있지만, 도시재생은 부동산 경기의 장기 침체로 유명무실해진 뉴타운 사업을 대체하면서 지역자산을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로 도심 공동화를 최소화하고 기존 거주자 중심의 마을공동체를 비롯한 역사와 문화로 형성돼온 도시 경관과 생태계 보전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주택가격 폭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택문제를 공급확대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주택보급률은 96%에 달한다. 개발 이익은 투기세력이나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돌아가고, 도시 주거환경과 안전문제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뉴타운' 경쟁은 중단돼야 한다. 여야 후보들과 정부가 온갖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집값은 오름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투기를 억제하면서 주거환경과 도시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공급 연착륙 정책이 절실하다./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2021-02-09 김창수

[경인칼럼]좌초 또는 난파의 위기

朴시장의 '힘겨운 매립지싸움' 노력에 지지종료후 조성된 땅 피해시민에… 명분·박수 그러나 한달도 채 안돼 주도권 정치권으로 '4자합의 단서' 변수까지… 아무래도 실수 같아두 달 전, 경인칼럼 '수도권매립지를 떠도는 유령'(2020년 11월25일자 19면 보도)은박남춘 인천시장의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응원했다. 오는 2025년 수도권매립지를 마감하고자 하는 박 시장의 의지와 노력에 지지를 보냈다. 역대 정부는 단 한 번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밝힌 적 없지만 1987년 '수도권 쓰레기광역해안매립계획'을 확정할 때부터 이미 영구사용을 염두에 뒀다. 그런 속셈을 당시 언론을 통해선 '150년 이상 매립 가능'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지난 30년 세월 동안 서울시와 경기도의 적극적인 후원, 그리고 인천시의 묵시적인 동조 속에 어느덧 세계 최대 규모가 돼버린 인천의 수도권매립지 위로 여전히 영구존속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박 시장은 한 세대가 태어나고 자라 30대 성년이 되도록 수도권매립지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화된 불공정 합의를 꿰뚫어 보았을 것이다. 중앙정부를 포함한 이해관계 주체들 간의 매립지 영구사용을 위한 암묵적 합의가 실재하는 것으로 판단했음직하다. 각오하고 정의와 공정을 외쳤을 것이다. 물론 민선 7기 역점사업인 '구도심 균형발전'이 지지부진하자 인천의 숙원인 매립지 이슈를 대신 띄워 재선 고지를 노린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도권매립지 사용에 종지부를 찍고, 기왕에 조성된 땅을 그동안 가장 큰 피해를 입어왔던 인천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정의고, 공정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새로운 매립지 정책은 지역사회의 그런 희망과 바람을 담아냈다. 명분을 갖췄고, 박수를 받을 만했다.그런데 그 이후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인천시 자체 매립지의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 옹진군의 거센 반발은 일찌감치 예상됐던 일이다. 결사항전을 부르짖지 않는다면, 단식투쟁에 돌입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수상했겠다. 소각장 신·증설을 둘러싸고 몇 개 구가 연합해서 벌인, 합리로 가장한 매우 비합리적인 저항 역시 예측 가능했던 범위였을 것이다. 나머지 기초지자체장들은 시장과의 관계나 정치적인 이해로 인해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거나 아예 내지도 않았다. 그 정도면 시장으로선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재된 폭발력에 비해 실제 후폭풍은 결코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채 한 달도 안 돼 사안의 주도권이 정치권으로 넘어가 버렸다.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이 매립지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안을 제시키로 한 것이다. 박 시장도 합의했다. 인천시로선 먼 바다로 항해하기 위해 닻을 거두고, 돛을 올리고, 물길을 잡기도 전에 배의 키를 놓아버린 꼴이 됐다.밖에서도 변수가 발생했다. 환경부, 서울시, 경기도 3자가 대체 매립지 공모에 나섰다. 하지만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이어 펼쳐질 대선 레이스를 감안하면 '실패하기 위해 만든' 공모라는 게 중론이다. 공모를 했으나 대체 매립지 확보에 실패했으니 4자 합의 '단서조항'에 따라 기존 매립지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예정된 결론에 이르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 임명장을 받은 '실세' 한정애 환경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매립지 사용 종료 시점이 2025년 이후로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SNS를 통해 항의성 질의도 해봤으나 호수에 돌 던지기와 다를 바 없었다.정치의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더 꼬이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구로부터도 욕을 먹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행정이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이쪽저쪽 욕먹을 각오가 돼 있기 때문이다. 맷집도 좋다. 공공의 이익영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구보다 박 시장이 잘 알 터이다. 새로운 매립지 정책은 어느 쪽으로든 반드시 거센 삼각파도를 맞게 돼 있는 공공선(公共善)의 배다. 박 시장과 인천시가 키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가야 했던 이유다. 어차피 별도 보이지 않고, 풍랑도 거친 바닷길이라고 처음부터 모질게 마음먹지 않았던가. 정치권에 덜컥, 키를 넘겨준 건 아무래도 실수 같다. 그들에게 맡겨두면 무역항도 아니고 어항도 아닌, 달빛 어지러운 이상한 항구에 닻을 내릴 수도 있다. 좌초 또는 난파되거나./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1-02-02 이충환

[경인칼럼]벼랑 끝의 아시아적 가치

日기업 '150년 연공서열제 파괴' 변화 감지 군수재벌 미쓰비시케미컬도 100% 직무성과오너, 직원 가솔 간주한 亞고도성장론 요체유교자본주의… 한국선 더빨리 사라질조짐일본 기업사회에 패러다임의 변화가 감지된다. 간판기업인 토요타, 후지츠, 히타치, 손보재팬 등의 성과연봉제 도입 선언에 이어 일본 최대의 화학기업 미쓰비시케미컬이 올해 4월부터 1만2천여사원 인사평가에 근무 연차 항목을 없애고 리더십, 사업능력, 문제해결능력 등을 반영하기로 했다. 대리가 부장보다 연봉을 더 받거나 후배가 먼저 승진하게 된다. 근속 연수에 상관없이 100% 직무성과로 연봉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연공서열제가 임직원들의 혁신과 도전의식을 약화시키고 자리보전에만 집착케 해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미쓰비시케미컬은 일본근대화의 선구자인 이와사키 야타로(岩崎미太郞, 1835~1885)가 1870년에 창업한 미쓰비시그룹의 핵심계열사여서 더 주목된다. 미쓰비시는 일본제국주의에 편승해서 최대재벌로 성장한 군수기업이자 태평양전쟁 때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본의 대표적 극우기업이다.연공서열제란 근무기간이 길수록 직급과 월급이 상승하는 시스템으로 일본경제 근대화 150년 역사의 키워드이다. 미국의 동북아 권위자인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는 일본기업의 고속성장 비결로 연공서열제를 꼽았다. 보겔은 이 제도가 직원들에게 안정적인 미래를 제시해서 애사심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라 진단했다. 일본인들은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로 산업별 노조가 아닌 '기업내 노조'와 '종신고용' 그리고 '연공서열'을 내용으로 하는 '삼종(三種)의 신기(神器)'를 자랑한다.일본인들은 자신보다 크거나 강한 존재에게 순종하고 의지하는 습성이 있다.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 빈번한 자연재해 탓이 큰데 오늘날에도 일본이 여전히 세계 최고의 '신(神)들의 나라'인 점이 시사하는 바 크다. 이런 습성은 사회생활에도 강한 영향을 미쳐 일본인들은 모든 사회조직을 집(家)으로 간주하고 가부장주의를 맹신했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 기업의 오너경영인은 조직원들을 한솥밥을 먹는 가솔(家率)로 간주한다.지난해에 작고한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이를 일본인들의 집단무의식으로 규정했다.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브 융은 집단무의식을 인류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축적한 모든 잠재적 기억의 흔적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학 중국학 종신교수인 뚜웨이밍(杜維明)은 연공서열제를 인의(仁義)의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동양사회 고도성장론의 요체로 일반화했다. 유교자본주의 혹은 아시아적 가치론의 탄생배경이다.한국에서는 유교자본주의 문화가 더 빨리 사라질 조짐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종신고용 관행이 사라진 터에 직장에서 '우리'를 강조하는 선배사원들을 '꼰대'로, '나'를 우선하는 밀레니엄세대 사원들을 '싸가지'로 갈등하는 추세여서 성과연봉제가 쉽게 안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정부의 제임스 매티스 초대 국방장관의 발언이 떠올려진다. 해병대 대장출신이자 '전사(戰士)수도사'로 존경받았던 매티스는 2018년에 국방장관으로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한핵 문제나 중국의 부상, 중동 불안, 사이버 공격 등이 아닌 미국 군인들의 '소외감'이라 답변해서 주변을 당혹케 했던 것이다."자신이 더 큰 무언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잃는다면 동료들을 위해 애쓸 필요가 있을까요?"매티스는 애국심과 전우애로 상징되는 군대조직 특유의 사회적 자본의 상실을 우려한 것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을 '개인 사이를 연결하는 사회관계망과 그로부터 생성되는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이라 정의했다. 신용이나 의리, 충성심 등은 사람들 간 유대의 산물로써 선의와 선행에 보답하는 행위의 원천인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군사적 열세에도 진주만기습을 감행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군인의 '진충보국(盡忠報國)'정신을 확신했던 때문이었다.사회적 자본은 기계, 부동산, 화폐 등 물적 자본에 버금가는 매우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다. 아시아사회의 근대화를 실증해낸 유교자본주의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2021-01-26 이한구

[경인칼럼]단일화의 명암

4월 서울시장 보선, 野 후보 결정 초미관심그러나 지지율탓 국민의힘·안철수 간 삐걱후보 단일화는 선거 승패 결정적 요인 작용거대당 기득권·도취 버리고 以退爲進 하길선거정치에서 후보 단일화는 승패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소주의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처음 실시된 13대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는 단순한 선거공학으로 볼 수 없는 민주주의의 시금석이었다. 국민의 피와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화의 과실을 또다시 12·12 쿠데타의 핵심이었던 인물에게 넘기느냐의 절체절명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노태우의 승리였고 결정적 원인은 민주진영의 단일화 실패였다. 2002년에 노무현과 정몽준의 포장마차 단일화가 성사됐지만 노무현 승리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2011년에 안철수의 양보는 박원순 승리의 초석이 됐으나 2012년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는 정치적 의미가 현저히 반감된 정치이벤트에 그쳤다.다가올 4월 서울시장 선거의 보수야권 후보 결정은 보궐선거의 최대 관심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지지율이 국민의힘 후보들의 지지율을 앞서면서 국민의힘과 안 대표와의 단일화 논의가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 후보 단일화가 현실적 선거공학의 차원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단일화가 얼마나 무력한지는 경험으로 입증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의원의 경선과정이 본격화되면 안 대표의 출마선언과 국민의힘과의 단일화 논의로 선거 초반에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였던 구도도 깨질 수 있다.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수야권이 패배한다면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이후 전국 규모 선거에서 5연패를 기록하게 된다. 이 패배는 차기 대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면에서 국민의힘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선거다. 여당으로서도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최근의 여권 지지율 정체와 부동산 정책 실패, 경제 양극화 등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다음 대선에서 반전을 꾀하기 어렵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여야에게 건곤일척의 승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선거 승패를 가르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이번 선거의 최대변수는 야권 단일화 여부다. 보수야권의 후보 결정 과정의 첫째 관건은 국민의힘이 거대정당으로서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안 대표의 국민의당이 3석임을 감안할 때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란 권력쟁취를 위한 투쟁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안 대표의 지지율이 높은 것이 오히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라는 역설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현 단계는 국민의힘이 안 대표에 대한 견제를 넘는 배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양상이다. 국민의힘이 3석을 가진 정당 대표와 외부에서 경선을 치를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이는 거대정당의 기득권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안 대표 입당 후 경선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당 대표가 경선을 위해 합당도 아닌 상황에서 자신이 속한 정당을 이탈하는 것은 정당문법상 상도(常道)가 아니다. 국민의힘 후보가 정해지고 안 대표와 다시 경선을 치르는 과정이 진행될지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지조차 안갯속이다.둘째 안 대표도 지지율에 도취해서 자신으로 단일화되는 것만이 보수야권이 승리할 것이라는 착시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선거국면 초반의 높은 지지율이 최종 후보로 결정되는 것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국민의힘의 정당지지율이 민주당보다 앞서는 여론조사가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안 대표가 진정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문재인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초석이 되겠다는 진정성을 가질 때 오히려 승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국민의힘이 기득권을 쉽사리 내려놓지 않는다면 선거는 보수야권에게 불리해질 수 있다. 최근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안 대표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는 듯한 발언이 전략적 고려에서 나온 것일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단일화가 상대폄하나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흐른다면 단일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단일화는 승리의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닐 뿐만 아니라 단일화에의 과도한 집착이 결과를 그르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나 안 대표 모두 제갈량의 책략인 '이퇴위진(以退爲進, 물러나감으로써 나아간다)'의 의미를 새겨야 한다./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2021-01-19 최창렬

[경인칼럼]팔당상수원 46년의 족쇄

용산참사·조안면 청년의 극단선택을 보며'생계형 저항'에 국가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동부권 7개 시군 특별대책지역도 마찬가지 정부 지속 규제 합당근거 빈약한데 모른체2009년 1월19일 새벽,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빈 건물을 철거민 32명이 기습 점거했다. 국내 대기업 건설사가 주도하는 재개발사업 보상에 불만인 세입자와 철거민 단체 간부들은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인화물질을 반입했다. 다음 날 새벽 경찰의 무력 진압과정에서 불이 나 민간인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고, 농성자 전원이 연행됐다. '용산참사'의 전말(顚末)이다.이 사태를 보면서 '국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됐다'는 유시민 작가는 '국가란 무엇인가'란 책을 냈다. 유 작가는 '명백한 불법행위라 할지라도, 공권력을 무분별하게 행사하여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국가의 행위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농성) 빌딩에서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그것이 훌륭한 국가가 할 일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2017년 7월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20대 청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아버지를 도와 식당을 운영하는 건실한 청년이었으나 버거운 생을 버텨내지 못했다. 식당 건물은 무허가였고, 행정·사법 합동단속반에 적발돼 강제 철거될 처지였다. 유서를 본 유가족은 오열했다. "이 가게 잘 될 수 있는 수호신이 될게요". 마지막 순간에도 청년은 가족의 생계가 달린 식당 걱정을 놓지 못했다. '용산 세입자들의 국가'와, '조안면 청년의 국가'는 무엇이 다른가.그가 나고 자란 조안면 운길산역 일대는 1975년 팔당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린벨트에 수도권정비계획법이 더해진 중첩규제로 개발이 묶였다. 생계가 막막한 주민들은 버섯재배사와 창고, 주택을 식당과 카페로 무단전용했다. 행정·사법 당국에 수차례씩 적발되면서 과징금이 쌓였고, 전과자가 늘었다. 2016년 한해 검찰 단속으로 84개 업소가 문을 닫았다. 계속되는 단속과 처벌에 주민들은 분노했고, 단체 행동에 나섰다. 환경부가 내놓은 대책은 고작 푸드트럭 허용이었다.주민들은 지난해 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상수원관리규칙'에서 규제하는 건축물의 설치, 영업허가 제한은 불합리하다.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 재산권을 침해한다. 공권력 행사주체인 남양주시도 주민 편에 섰다. '상수원보호구역 규제로 지방자치권과 시의 재산권 행사에도 침해가 발행한다고 판단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헌법소원 청구에 참여했다'고 한다.강남·분당과 가까워 개발 압력이 거센 광주시 오포읍 일대는 공장 난개발의 대표 사례다. 상수원 보호에 수도권정비계획까지, 거미줄 규제로 공업지역마저 1천㎡ 이상 규모의 생산시설이 원천 봉쇄된 결과다. 그물망을 피하려는 탈·불법에 편법이 횡횡하면서 동네가 망가졌고, 멀쩡한 앞산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맑은 물을 공급해야 한다'며 정부가 특별대책 지역으로 지정한 남양주·광주·양평·이천·여주·가평·용인의 안타까운 현실이다.광주시 도척면 임야에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배출시설설치제한, 상수원특별대책 1권역, 산지관리법이 적용된다. 반세기 가까이 덧씌운 규제의 틀은 집요하고 가혹하다. 경기도는 동부권 7개 시·군의 그물망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달라고 건의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공청회 자리에서다. 정부는 말이 없다.오·폐수 처리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하수처리장으로 흘러든 생활용수를 1급수로 정화해 하천으로 돌려보낸다. 환경부는 상수원 규제가 여전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특정 지역에 대한 무기한 중복 규제가 합당하다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는 빈약해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민과 지자체의 아우성을 모른 체한다.1973년 팔당에 물이 차고, 주민들은 조상들의 땅을 떠나야 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부자 마을이 될 것이라던 정부는 2년 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었다. '식수원을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는 규제의 당위성은 눈부신 문명 앞에 무력해진다. 주민들의 의문은 증폭되고, 불만은 분노로 번지고 있다. 남양주에서 발화한 주민 저항은 폭발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의 침묵은 사태를 키울 뿐이다./홍정표 논설위원홍정표 논설위원

2021-01-12 홍정표

[경인칼럼]양비론의 계절

선거때면 진영 나눠져 부정적 비판만 난무논리의 비약 상대 배려 외면에 기준도 모호언론·지식인들 공정성유지 명분 흔한 논조본질호도 잘못된 여론 조성… 사회적 손실양비론이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왔다. 선거가 다가오면 진영을 나누어 정당과 정파 간 비난은 더욱 신랄해지고 비전이나 정책은 뒷전이고 오직 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공학적 통합론만 무성하다. 양비론의 매력은 대립 갈등하고 있는 두 주장이나 명제를 한꺼번에 비판하는 논리여서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호쾌해 보인다. 일상생활에서도 양비론은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형제가 사소한 일로 다툴 때 말리는 부모의 말은 대체로 양비론이다. 피해가 경미한 접촉사고 현장에서 화해를 유도하기 위해 교통경찰이 양측의 실수를 지적하면 좀 불만이 있어도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양비론은 위태로운 논리이다. 각각 다른 기준으로 대상을 비판하거나 지나치게 이상적 관점에서 현실의 대상을 평가할 경우 대상들 간의 상대적 차이는 무시되고 부정적 성격만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오십 보 도망가나 백 보 도망간 병사나 매한가지라는 '오십보백보'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 병사가 적진으로 도망갔다면 걸음 수를 기준으로 평가할 내용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양적인 기준과 질적인 기준을 의도적으로 뒤섞어 더 나쁜 대상을 옹호하는 물타기 논리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우리 사회에서 '논객'이라고 불리는 지식인의 주장에서 자주 발견되는 오류의 유형이다. 부분으로 전체를 공격하는 논리적 비약을 서슴지 않는다. 맥락도 없고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최소의 배려도 없는 언어들이 난무한다. 말은 시비를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증오와 환멸을 부르는 주술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논객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기존의 주장을 싸잡아 비판하는 태도는 곤란하다. 비판은 취향에 따른 선택과 달리 제3자나 비판 대상이 수긍할만한 기준이나 원칙이 있어야 한다. 기준이나 원칙이 분명하지 않은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그런데 양비론이 외형적으로 객관성과 중립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태도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공정성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흔히 사용하는 논조이지만 실은 본연의 책임을 회피하는 교묘한 기회주의이다. 어느 한쪽을 지지했다가 받을 수 있는 비난을 의식한 '균형감'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의 본질은 외면하고 사건의 주변 상황을 기사화하여 본질을 호도하여 잘못된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 정론직필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팩트'를 직핍하여 시비곡직을 엄정하게 밝히는 용기이다. 합리적 판단에 의한 양비론이라면 그 논리적 귀결은 질적으로 '새로운 길'이어야 한다. 양자의 단점을 모두 보완하면서 장점까지 내다 버리지는 않는 지양(止揚)의 대안이어야 한다. '새로운 길'은 없고 통합론만 내세우는 것은 기계적 중립주의이며 본질적으로는 내용 없는 양비론에 불과하다. 이같은 양비론이 횡행하면 비판 대상과 현실에 대한 냉소주의나 사회적 결정장애 상태를 야기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정당 간 진흙탕 싸움과 같은 과도한 정쟁이 유권자들의 환멸감을 부르고 이것이 정치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중국의 선진(先秦 )시대 제자백가들이 저마다의 사상과 논리를 기초로 한 경세와 치국론을 내세워 우열을 치열하게 다툰 시대였다. 대분열의 시기처럼 보이지만 중화문명을 형성하여 일약 세계의 선진문명 반열에 올랐으며,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미칠 정도로 문화적 대도약이었다. 유가와 도가, 법가를 비롯한 다양한 학자와 학파들이 경쟁했던 백가쟁명(百家爭鳴)처럼 보궐선거와 대선을 앞둔 우리 정당들도 국가 비전과 지방 경영의 어젠다를 놓고 격돌하는 정책경쟁의 일대 난장을 만들면 좋으련만! 양비론이 부상하는 이 계절은 지식인들과 언론의 역할이 한층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다./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2021-01-05 김창수

[경인칼럼]'백신'의 정치공학

트럼프는 "대선이후 백신개발 발표는 음모" 獨·佛·伊 등은 동시접종 조율 공동성명 결속 日 스가 지지반등 노림·中 시진핑 치적 선전 우리도 '늑장확보' 논란… 자만한 정부 자초'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을 처음 쓴 이는 '미생물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다. 가축 질병이었던 닭 콜레라와 탄저병의 예방법을 개발한 파스퇴르는 인간의 감염성 질환으로 연구를 확장했다. 광견병까지 정복한 1880년대에 이르러 예방접종을 위해 독성을 줄인 균으로 만든 약을 '백신'이라 이름 붙였다. 80여년 전 에드워드 제너가 소의 우두를 이용해 인류를 괴롭혀온 천연두의 예방법을 개발한 데서 영감을 얻었던 그는 암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약 이름을 찾았다. 제너를 기리는 헌사였다. 영화로 치자면 일종의 '오마주'였던 셈이다.인류를 역병에서 구해낸, 숭고하고 헌신적이며 존경의 의미까지 품고 있는 백신이 한 세기 반이 지나 돌연 정치공학적 키워드로 바뀌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발표가 대선 이후에 이뤄진 것은 자신의 재선을 막기 위한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트럼프와 백악관은 '트럼프 백신'이라 부르면서 자찬하고 있다. 지난 21일 방송과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백신을 공개 접종한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이라고 추켜세우는 여유를 부렸다.유럽에선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27개 EU 회원국들이 일제히 백신 접종에 들어갔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백신을 빨리 승인하라며 유럽의약품청을 강하게 압박한 결과다. 앞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백신 동시접종을 조율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백신을 정치적 매개로 삼아 전에 없이 강한 결속을 보여주었다. "내년 상반기까지 모든 일본인이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누차 밝혀온 스가 일본 총리는 이미 확보한 충분한 양의 백신과 내년 초 조기접종을 지지율 반등의 디딤돌로 삼으려 한다. 중국은 자체 개발한 시노백 백신을 시진핑 주석의 치적으로 내세우며 '우한포비아'를 망각의 강 너머로 밀어내고 있다.이 겨울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백신 확보 실기(失機)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세밑 정국이 뜨겁다. '조국사태'로 시작해 이제는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모양새가 되어버린 '윤석열사태', 스무 번이 넘는 대책에도 여전히 답 없는 '부동산사태'와 더불어 정권의 안위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 잠재적 파괴력은 집권여당이 '제2의 부동산사태'가 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일 정도다. 성마른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까지 연결 짓는다.사실 논쟁 자체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백신 조기도입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음을 시인했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최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정세균 총리는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도입 논의를 시작할 당시 확진자 수가 적었기 때문에 백신에 크게 의존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고 밝혔다. "철저한 방역, 치료제를 통한 환자 최소화, 그 다음에 백신 사용을 통해 코로나19 상황으로부터 가장 빨리 벗어나는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오판(誤判)은 정부 스스로 'K방역'의 함정에 빠져든 결과다. K방역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주는 국민을 배경 삼아 칭찬에 취하고, 평가에 환호하며, 부러움에 자만한 정부가 자초한 낭패다. 백신이야말로 진짜 '게임 체인저'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가볍게 여기고, K방역을 호위의 방패막이로 삼은 정치적 타산의 필연이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의 부작용 사례를 확인한 뒤 접종하기 위해서"라거나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는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변명은 차라리 가소롭다. 정 총리처럼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면 그 다음 말이 간단·단순·명료해지는 법인데 그걸 억지로 피하려하니 말이 말 같지 않게 되는 것이다.말도 안 되는 논쟁을 벌이는 사이 주한미군을 위한 백신이 지난 2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에 첫 반입됐다. 그들에겐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오래된 사진첩 속의 흑백사진을 다시 꺼내보는 것 같다. 이 불편하고 자존심 상하는 기분은 도대체 무어람./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이충환 언론학박사(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객원논설위원

2020-12-29 이충환

[경인칼럼]정치가 과학을 농단하면

건축비만 최하 10조원 이상 동남권 신공항경제성 논란에도 與 힘의 논리 가덕도 추진이자만 年 4천억 4대강·아라뱃길 사례 경종'바른 과학기술…' 국가적 재앙 백지화 주장10년 이상을 끌던 동남권 신공항이 부산 앞바다에 자리 잡을 모양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터파기공사가 점쳐지나 건축비만 최하 10조원 이상이어서 예비타당성조사 통과가 관건이다. 가덕도에 공항을 건설하면 김해신공항보다 최소 3조∼4조원의 혈세가 더 소요돼 경제성 논란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힘의 논리로 반대세력에 재갈을 물리기로 했다.지난달 26일에 소속의원 135명의 연명으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의 '가덕도 신공항 건설촉진 특별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예타 면제 구실로 지역균형 발전을 내세웠다. 국가재정법 제38조에는 정부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의 경우 반드시 사전에 정책적, 경제적 타당성 조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타 조사대상은 총비용이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각종 사업이다.1999년에 김대중 정부가 부실한 타당성조사에 따른 국책사업 실패 재연을 방지하고자 예타 제도를 도입했다. 예타 평가항목은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등인데 핵심은 경제적 타당성 검토(재무분석)이다. 투자비용과 장래의 예상수입(편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서 점검하는 것이다. 비용편익(B/C)분석기법을 사용하는데 편익을 투자비로 나눈 값이 1보다 크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다른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더라도 경제성 분석결과가 사업의 성패를 가늠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재무분석 수치 왜곡으로 천문학적인 혈세를 투입한 공공사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고질적인 정경유착 비리의 온상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외환위기로 경황이 없음에도 김대중 대통령이 예타의 법제화를 서둘렀겠는가. '3조원짜리 자전거길'이란 별명의 경인아라뱃길이 새삼 주목된다. 길이 18㎞, 폭 80m, 수심 6.3m의 인공수로 건설 및 서해안과 경기도 김포의 한강 길목에 대규모 물류단지를 조성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이명박정부는 인천항과 경인고속도로의 과부하를 줄이는 물류혁명이라며 2009년 1월에 착공해서 2012년 5월에 개통했다. 공사비용은 약 2조7천억원이었다.성과는 어떠한가. 개통 첫해부터 지난해까지 8년 동안에 경인항 김포터미널에서 처리한 화물은 당초 예측치의 1%에 불과하고 김포터미널과 인천 서구 검암동 시천교를 오가는 유람선사업은 갈수록 승객이 줄어 전망이 불투명하다. 교량 통과높이, 수심, 운하폭 등 외항선 통행조건에 미달한 것이 결정적이다. 한겨울에는 물길이 얼어붙는 날이 많은 점도 매력을 떨어뜨렸다. 더 실망인 것은 아라뱃길 착공 전에 이미 인천신항 건축계획이 확정되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경인수로가 '배가 다니지 않는 뱃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타당성 평가가 화근이었다. 2008년 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출한 '경인운하 수요예측 재조사' 보고서를 근거로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KDI는 편익(B)/비용(C) 비율을 1.065로 제시해 사업성을 확인했다. 1988년 노태우정부 이래 20여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타당성을 검토했는데 B/C비율이 0.92에서 2.07까지 정권 입맛에 따라 널뛰기했다. 동일한 연구기관이 같은 자료들로 경제성을 검토하는데 B/C값이 달랐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덕분에 우량공기업이던 한국수자원공사는 졸지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4대강과 아라뱃길 건설로 수공의 부채가 2007년 말 5천억원에서 2016년에는 11조4천억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수공이 갚아야 할 이자만 연평균 4천억원 이상이어서 2016년부터 정부가 매년 혈세로 이자를 대신 갚아주고 있다. 수공이 로또 대박을 맞지 않는 한 천문학적 규모의 원리금 전부를 국민들이 갚아야 할 판이다. 국민들은 무용지물인 아라뱃길만 떠올려도 속이 쓰리다.지난달 24일 800여명의 분야별 과학자들을 회원으로 둔 '바른 과학기술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은 가덕도 신공항 백지화를 주장하며 "국책사업에서 정치가 과학을 뒤엎으면 국가적 재앙만 초래한다"고 경고했다./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2020-12-22 이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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