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재산비례벌금제'의 핵심은 서로 다른 죄의 무게

가난한 사람 과도한 형벌 안된다는 취지중범죄 아닌 경우 경제적 능력따라 처벌감당 가능한 죗값통해 범죄 막자는 논리우리도 이제 충분히 논의 해볼만한 정책'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돈이 있을 경우 무죄로 풀려나지만 돈이 없을 경우 유죄로 처벌받는다는 말이다.있는 자는 죄를 지어도 형벌의 무게가 무겁지 않다. 비싼 돈으로 변호사를 수임하면 죄는 가벼워진다는 유전무죄의 논리. 죄가 있어도 무죄로 빠져나가거나 일부 유죄 판결로 실제 죄의 무게에 비해 작은 형벌을 받는다. 작금의 현실이다.지난해 수원 소재 한 고시원에서 훈제계란 18알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이 40대 남자는 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생활하다 배고픔에 훈제계란을 훔쳤다. 이른바 '코로나 장발장' 사건이다. 검찰은 이모(48)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구형했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이었다.법원은 이씨에게 양형을 베풀었다. 하지만 과거의 범죄경력 때문에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이씨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1년의 실형을 살았다. 훈제계란 18알을 훔쳐 먹은 죄로 징역 1년이라는 과도한 형벌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다. 이씨가 짊어진 형벌의 무게에 대해 그 누가 적당한 무게라 말할 수 있을까.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재산비례벌금제'를 제안하고 나섰다. 재산비례벌금제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이 억울하게 과도한 형벌의 무게를 짊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형벌의 실질적 평등 효과를 낼 것이라는 주장과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지만, 있는 자들의 책임을 더 높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자는 게 이번 재산비례벌금제의 제안 취지로 이해된다.해외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형벌에 있어 그 책임은 각기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특히 벌금형에 준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등 처벌하고 있다. 재산비례벌금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형에 따라 '형기'를 정하면 이에 1인당 소득액을 곱해 결정한다. 경제적 여력이 없어 벌금을 내지 못하면 노역으로 대체한다. 핀란드와 스위스 역시 이미 100년 전부터 재산비례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죄에 대한 형벌의 기준을 각기 다르게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이들 나라가 범죄의 나라인가.중범죄가 아닌 경우 경제적 능력에 따라 그 책임의 무게를 저울질해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 아닐까.죄에 대한 처벌의 무게, 특히 벌금형의 경우 처지에 따라 그 무게는 다를 테니까.우리나라도 재산비례벌금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이재명 지사가 제안한 재산비례벌금제를 놓고 경제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문제가 되고 있다.하지만 경제력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 등은 핑계일 게다.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기준을 반영하면 해결되는 문제다.이재명 지사가 제안한 재산비례벌금제는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에게 헌법에 따른 처벌이 아닌, 그 사람이 짊어질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처벌을 통해 범죄를 막자는 게 제안의 취지일 것이고, 그게 헌법의 취지 아닌가.인천에서도 생후 2개월 된 영아가 부모의 학대로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 이후 알려진 일인데, 희생된 영아의 엄마는 죄를 짓고 구속됐고, 아빠는 모텔을 전전하며 2개월 된 영아의 육아를 책임져야 했다. 그 희생된 영아는 사회에서 보듬어야 할 상황이었다. 엄마가 구속 전 영아의 육아를 책임지는 방안을 마련했더라면, 그랬다면 그 희생은 없었을 피해였다.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하는 죄의 무게가 아닌, 죄지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죄의 무게로 처벌하는 '재산비례벌금제'. 이제 충분히 논의해볼 만한 정책이다./김영래 사회부장김영래 사회부장

2021-05-02 김영래

[데스크칼럼]제물포고 이전 논란과 구도심 인구 감소

"학습권 침해" 중·동구 반대 만만치 않아각종 개발사업으로 인천 공간구조 다핵화2·3기신도시·철도망 확충땐 더 복잡할 듯'떠날지… 명성 지킬지' 논의 계속될 전망최근 지인들과 점심을 했다. 그 자리에서 한 명이 "제물포고등학교가 송도국제도시로 이전하는 것이 맞느냐"며 '제물포고 이전' 얘기를 꺼냈다. 그는 제물포고가 송도로 이전하려는 것이 몹시 못마땅한 듯했다. 기숙사를 건립하거나 통학 버스를 운행하는 등 학교를 살릴 방법이 있을 텐데, 굳이 학교를 옮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제물포고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 제물포고를 나오지 않았고, 그 학교가 위치한 인천 중구에서 살고 있지도 않다. 그의 푸념은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구도심의 학교들이 하나둘 신도시로 떠나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박문여고 등 실제로 구도심에서 신도시로 이전한 학교가 적지 않다.지난달 16일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제물포고를 송도국제도시로 옮기고 현 학교 부지에 '인천교육복합단지'(가칭)를 조성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인천교육복합단지에는 진로교육원,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연수원 분원, 도서관, 상상공유캠퍼스, 생태 숲 등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교육복합단지가 제물포고의 빈자리를 메워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인천시교육청은 기대했다. 인천시교육청이 제물포고의 송도 이전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동문은 환영했다. 하지만 중구와 인근 동구에선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제물포고 이전은 구도심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학교 부족 탓에 구도심 인구가 더욱 감소할 것이란 주장과 우려가 나왔다.인천시교육청의 제물포고 이전 계획은 교육정책(적정 규모 학교를 육성하기 위한 이전·재배치)과도 맞물린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를 고려해 학교 신설을 억제하면서 기존 학교를 이전·재배치하는 것이다. 신도시에는 학교를 지어야 하고, 구도심 학교는 학생이 부족한 게 인천의 현주소. 그렇다 보니 학교 이전에 관한 논란과 갈등이 종종 생긴다.제물포고는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때 2천명이 넘던 학생 수는 1천명 이하로 감소해 올해 전교생은 418명뿐이라고 한다. 구도심의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 데 따른 현상이다. 제물포고는 비평준화 시절 서울대 합격자를 100명 이상 배출하는 등 명문고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중구는 인천의 중심부 기능을 했다. 제물포고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제물포고는 정원을 채우기 어려운 '비인기 학교'로 전락했다. 오죽하면 학생을 찾아 송도로 이사하려고 할까. 제물포고 이전 논란은 인천 구도심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인천의 공간 구조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다핵화하고 있다. 중구·동구와 부평구 중심의 공간 구조는 '동서'(영종~동인천~구월~부평), '남북'(송도~주안~청라·가정~검단) 축으로 확장됐다. 여기에는 인천경제자유구역(송도·청라·영종), 도시개발사업(소래·논현 등), 택지개발사업(서창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검단과 계양 등 2·3기 신도시 개발과 철도망 확충이 본격화하면 인천의 공간 구조는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구도심 인구가 신도시로 이동하는 현상이 심화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인천 인구 이동 현황' 자료(인천시 통계연보 2019년)를 보면, 인천 내에서의 인구 이동 비율이 약 65%에 달한다. 서울 또는 경기지역 전출입 비율은 각각 10%대에 그쳤다. 중구·동구 등 구도심 주민들이 더욱 좋은 생활환경을 찾아 주변의 소규모 개발지구나 서울 접근성이 좋은 신도시로 이동하는 것이다.제물포고가 중구를 떠나 송도로 이전할지, 현 자리에서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찬반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물포고 이전 문제가 지역사회에서 논쟁거리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에도 제물포고 이전 문제를 놓고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구도심 학교를 신도시로 이전하는 것은 근본적 처방이 아닌 대증요법(對症療法)에 불과하다. 신도시 개발로 구도심 인구가 감소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또 다른 학교가 구도심을 떠난다고 할지도 모른다./목동훈 인천본사 정치·경제총괄팀장목동훈 인천본사 정치·경제총괄팀장

2021-04-25 목동훈

[데스크칼럼]관례의 굴레

60여년간 '서울상의회장=대한상의회장' 공식인천상의 이끌던 '故 이수영' 경총회장 지내젊은 창업자들 성공후 50~60대 시니어되면 지역상의회장도 대한상의회장 될수 있을까"대한상공회의소에 지역경제팀을 신설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함께 나서겠습니다."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들과의 온라인 상견례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회원사의 권익 대변과 사회 발전에 기여할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국 상의 회장들의 따뜻한 조언과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각 지역 상의의 말씀을 듣고 협력하겠다"고 했다. 각 지역 경제계의 상황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어 긍정적이었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최태원 회장의 발언은 대한상의 회장이 아닌 서울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온라인 상견례 소식을 담은 대한상의 발(發) 보도 참고 자료엔 서울상의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맡는 '관례'에 따라, 최 회장이 신임 대한상의 회장으로 선출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는 '관례'대로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했다.'대한상공회의소는 회원의 공동이익을 꾀하고 상공업에 관한 회원의 의견과 건의 등을 종합·조정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이를 건의함으로써 상공업의 경쟁력 강화와 진흥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1952년 제정된 상공회의소법이 정하고 있는 대한상의의 설립 목적이다. 설립을 위해선 5개 이상의 지역 상공회의소 발기, 10개 이상의 지역 상공회의소 동의, 정부 인가 등 절차가 필요하다. 1884년 한성상업회의소를 뿌리로 하는 서울상공회의소와 1885년 인천객주회를 효시로 하는 인천상공회의소를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각 지역 상공회의소가 대한상의 구성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대한상의 회장은 대의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규정돼 있다. 대의원은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이다. 초대 대한상의 회장 선출 과정을 담은 당시의 한 신문기사를 보면 "이중재 경전(경성전기) 사장이 압도적으로 피선되고 유력시되던 이년재 미진회사(미진상회) 사장은 패했다"고 했다. 이중재 사장은 당시 서울상의 회장, 이년재 사장은 부산상의 회장이었다. 회장 선출을 위해 적어도 '선거'가 치러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7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이중재 회장을 시작으로 최근 최태원 회장까지 총 14명의 대한상의 회장은 모두 서울상의 회장이었다. 지역 상의 회장은 없었다.기업의 서열을 따질 때 흔히 등장하는 기준이 매출액과 직원 규모 등이다. 시장 영향력과 큰 덩치를 자랑하는 대기업이 서울에 몰려있고 그들을 회원사로 두는 서울상공회의소의 사회적 역할과 비중이 다른 지역 상의보다 클 수 있다. '서울상의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 '지역 상의회장은 대한상의 부회장'이라는 관례가 굳어진 배경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관례가 서울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경제인이 전국 규모의 경제단체 수장을 맡은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故) 이수영 OCI(옛 동양제철화학) 회장이다. 이수영 회장은 200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에 추대돼 2010년까지 연임하며 단체를 이끌었다. 한국경총 회장 취임 전,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내기도 한 이수영 회장은 재임 기간 기업들의 투명 경영과 윤리 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2008년 미국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경제공황 극복을 위해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 운영을 촉구하고 '노조법 개정안' 처리 등 합리적인 노사 관계 구축에 이바지했다는 등의 평가를 얻고 있다.최근 인천스타트업파크에서 만난 젊은 창업자는 자신이 가진 기술을 소개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형 실리콘 밸리'를 목표로 하는 인천스타트업파크에 입주한 70여개 창업기업의 목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들 창업자가 세계적으로 성공해 50~60대 시니어가 될 때쯤엔 지역 상의 회장도 대한상의 회장이 될 수 있으려나. 그때쯤이면 지금과는 다른 관례가 생길 수 있을까. 괜한 생각일 뿐일까./이현준 인천본사 경제팀장이현준 인천본사 경제팀장

2021-04-11 이현준

[데스크칼럼]'허위·흑색선거' 진실가려 징벌적 책임을

'기승전 네거티브'로 막내린 서울시장 보선내곡동 땅서 촉발돼 여야 상호 비방전 확산 고소·고발 14건 시민단체까지 합하면 20건대선 앞… 의혹 꼭 밝혀야 천박정치 종지부잔여 임기 1년 남짓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났다. 정치권에서 꽤 오래 취재했지만 생전 이렇게 난잡한 저질 선거는 처음 본다. 흔히 이번 선거가 단순한 시장선거라기보다 대선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고 하지만 반칙과 막장으로 얼룩진 현실 정치의 천박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아마 국민들도 역대급 저질 끝판왕 네거티브 선거에 눈길을 돌렸을 것이다.의도됐든, 그렇지 않든 이번 선거는 '기승전 네거티브' 선거였다. 본선에 들어가기 전부터 야당 후보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 나쁜 이미지 씌우기, 프레임 선거로 난타전을 벌였다. 공세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시작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한창이던 때 민주당과 박영선 후보 측이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땅 '셀프보상'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방이 시작됐다. 오 후보의 뜨뜻미지근한 대응도 상호 비방전 확산을 자초했다.이 셀프보상 문제는 땅 측량 자리에 오 후보가 참석했는지로 비약됐고 측량 후 16년 전 '생태탕'집에서 식사했는지를 놓고 그 식당 주인과 아들까지 등장하면서 당시 백바지에 페라가모 로퍼를 신고 있었다는 오 후보의 패션논란까지 등장해 후보는 없고 '생태탕'만 끓이는 선거가 됐다.최악의 네거티브 선거로 양당이 제기한 고소·고발 건수만도 14건이며 시민단체까지 합하면 20건에 달한다고 한다.누가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했던가. 축제가 돼야 할 선거는 말싸움과 엔딩을 할 수 없는 공약까지 난무했다.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더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려는 게 민심이다. 선거판은 더 그렇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아직 한곳만 쳐다보는 '외눈박이' 국민을 볼모로 패거리·진영 싸움에 목을 매고 있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거꾸로 퇴보하는 이 난장판 싸움, 이번에는 진실을 가렸으면 한다. 누가 판을 이리 만들었는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내 편 네 편 가르는 진영 싸움이 이번 선거에서 더 노골화했다. 속된 말로 친문·비문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죽기살기식 싸움이 난장판 선거를 자초했다고 본다. 오만과 독선에 빠진 민주당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일갈했다. 그는 "운동권의 논리로 정당 정치 문법을 파괴했다. 강성 친문 지지자들이 원하는 메시지만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지난 2002년까지만 해도 여야, 좌·우파는 국회에서 싸워도 사적으로는 모임을 갖고 술자리도 하면서 인간적 교분을 가져왔다. 그러나 17·18대 이후 전대협을 비롯한 운동권 출신들이 제도권 정치에 들어오고 21대 국회에서 그 후진들까지 민주당을 장악하면서 운동권 기수가 아닌 사회 경력자들은 적으로 간주되고 타도 대상이 돼 버린 게 지금 우리 정치권의 모습이다.여기까지 온 데에는 진보 좌파의 독주를 막지 못한 영혼(?) 없는 보수 우파의 나약함과 무기력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권력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게 정치판의 속성이다.이제 선거는 끝났다. 지금쯤 당별로 재보선 계산서를 들여다보고 있을 거다. 승패는 오만한 권력에 대한 중도층의 지지 철회가 가장 큰 요인이 됐을 터. 반칙과 불공정이 정당화할 수 없는 가치가 승패를 가르는 준칙이 됐을 것이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스윙보트인 중도층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제 대선의 계절에 들어선다. 그러나 이번에 보여준 여야의 선거 행태를 보면 다음 대선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은 암울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 양 측이 제기한 고소 고발 전에 대해서는 끝까지 진실을 규명해 주길 바란다. 과거 김대업의 병풍 사건, 나경원 1억 피부 의혹처럼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요즘 공무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징벌적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데 선거 농단, 특히 허위사실과 흑색선전에 대해서는 그 대상이 누가 되었든 법이 허용하는 최고의 처벌을 가할 수 있는 법·제도 마련을 서둘러 주길 바란다.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네거티브 선거를 막을 수 있다./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2021-04-07 정의종

[데스크칼럼]경기체육을 살려야 한다

"정치로부터 체육회 지켜달라"는 국민청원'도의회, 센터설립 반대' 체육회 반발서 시작체육인들 '전국 유일 상황' 이해 못하는 반응체육웅도 위상 걸맞게 '논란' 이제는 접어야'제발 정치로부터 지방체육회(경기도체육회)를 지켜주십시오'.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이다. 지난 2일 게재된 이 민원은 하루가 지난 3일 현재 3천600명을 넘기고 있다. 이는 경기도의회가 추진하는 '경기체육진흥센터'(이하 센터) 설립 반대를 표명한 경기도체육회가 반발하면서부터 시작됐다.이원성 경기도체육회장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어 "도의회가 추진하는 센터 설립은 국민체육진흥법에 배치되는 유감스러운 조치로 민선체육회장의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강력히 반대함을 선언한다"고 했다. 도의회가 지난달 26일 경기도보를 통해 경기도 체육진흥 조례 전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는 게 이 회장의 주장이다.그러면서 "센터를 설립·운영하려는 사업과 업무는 구체적으로 도체육회와 중복된 업무다. 국민체육진흥법이 명시한 지방체육회가 수행해야 할 사업을 도지사가 설립하는 센터가 수행하겠다는 것은 법 위반의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이 회장은 기자회견 후 곧바로 도의회 청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센터 건립을 막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도체육회의 반발에 도의회와의 마찰도 불가피해진 상황이다.앞서 도와 도의회는 민선체육회장 시대를 맞아 변화된 여건에 맞게 업무를 조정하자는 의도를 내비쳤다. 최만식 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지난달 간담회에서 "민선 체육회 시대를 맞아 체육계의 패러다임이 전환됐다. 개혁하는 과정에서 일부 진통은 불가피하지만 경기도 모델이 정착된다면 다른 시·도에서도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도의회는 지난해부터 도체육회에 대한 감사, 행정사무조사 등을 통해 운영 전반의 문제점을 확인했고, 관행적으로 운영해왔던 부분에서 상당수의 문제를 확인한 도의회 문광위는 경기체육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데 결론을 냈다. 체육행정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민간 영역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선 센터 설립이 필요하다는 게 문광위의 판단이다. 앞서 도의회는 체육회가 맡아 운영하던 도립체육시설의 위탁사업자를 경기주택도시공사(GH)로 변경하는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하지만 집행부와 도의회도 '무리수'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초 경기체육진흥재단을 설립하려 했지만 행정안전부 승인까지 거쳐야 하는 상황이어서 센터로 이름만 바꿔 추진한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행안부 등의 승인을 받으려면 대략 1년의 기간이 소요되는데, 행안부 기조가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것에 인색해 승인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 센터로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도내 체육인들은 체육회를 왜 이렇게 흔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도와 도체육회가 민선 회장 출범 이후 사이가 나빠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예상을 벗어난 선거결과가 원인이라는 시각인데, 지난 한 해 체육회에 대한 중첩 감사가 이어지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게 체육인들이 바라보는 시각이다. 게다가 센터 설립이 전국에서 유일한 상황이라 이해하지 못하는 체육인들도 많다.도체육회는 그동안 대한민국 체육 웅도에 걸맞은 역할을 펼치며 도의 명예와 위상을 세웠다. 도체육인들은 매일 땀과 희생을 통해 금메달의 열매를 맺었고 경기체육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전국동·하계체육대회에서 잇따라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연패 신화를 쓴 것도 바로 도체육인들이다.이제 센터 설립을 둘러싼 논란은 이쯤에서 접어야 한다. 도와 도의회, 도체육회는 다시 화합의 무대를 마련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현재 경기체육의 잡음은 결코 체육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체육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바로 경기체육을 전국에 알리기 위해서다. 더는 잡음으로 유망주들과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의회나 도체육회 모두 체육인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길 바란다./신창윤 문화체육부장신창윤 문화체육부장

2021-04-04 신창윤

[데스크칼럼]속풀이

집밖서 먹는 점심메뉴 선택은 늘 고민이다전날 과음이라도 했을땐 시원한 국물 최고아동 학대사망·토지투기 등 우울한 소식에 마스크쓴 국민 답답함 풀 봄 바람이라도…"세상에는 맛있는 음식과 아주 맛있는 음식만 있다"고 주장하는 지인이 몇 명 있다. 주위에선 '어설픈 미식가'라고 부른다. "식탐이 많아 아무거나 잘 먹는 것 아니냐"고 질타하면 "음식에 대한 애정을 포만감을 즐기는 것으로 치부하지 말라"고 항변한다. "맛있다. 아주 맛있다"를 외치는 이들에게는 정말 맛없는 음식은 없을까. 어설픈 미식가들은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아예 찾지 않는다고 한다. 맛없는 음식을 찾지 않으니 당연히 맛있거나 아주 맛있는 음식밖에 없다는 거다. 어딘가 조금 애매하게 들리기는 해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어설픈 미식가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점심 한 끼를 먹는 것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뭐 대충 아무거나 먹지"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AI(인공지능)에 뒤지지 않은 정보처리 능력을 발휘한다. 그들이 메뉴를 선택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보면 이렇다. 1단계, 자신의 공복 상태를 살피고 전날 먹은 음식과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배려한다(그날 날씨와 기온도 중요하다). 2단계, 머릿속에서 현 위치에서 최단거리 내에 입맛에 맞는 음식점을 검색한다. 3단계, 함께 식사하는 일행들의 입맛을 고려한다(최대한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한데 그래야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다). 4단계, 머릿속으로 음식점을 정하면 동료들에게 "거기 식당이 음식이 정갈하고 먹을만하다"며 은근히 맛집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5단계, 이미 발걸음은 머릿속으로 정한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동료들도 무난하다 여기고 자연스럽게 따라간다).신기한 것은 이 다섯 단계가 불과 2~3분 이내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한 식당에 가면 이 어설픈 미식가는 동료들의 반응을 살핀다. "괜찮은데"라는 반응이 나오는 순간 미식가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 겉으로는 대충 때우는 것처럼 보여도 점심 한 끼도 최소한 맛을 내는 음식을 찾다 보니 맛없는 음식이 있을 수 없다.집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에겐 메뉴 선택은 늘 고민이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기준은 전날 저녁 음주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건 차치하고 술자리를 가진 것을 전제로 보면 해장음식은 크게 얼큰함과 담백함 두 가지로 나뉜다. 대표적인 얼큰한 해장음식으로는 육개장, 짬뽕, 감자탕, 부대찌개, 생선이나 해물로 끓인 매운탕 등이 있다. 담백한 것은 설렁탕, 북엇국, 콩나물국, 우거지 해장국, 황태해장국, 순댓국, 연포탕(낙지탕), 갈비탕, 굴국밥, 매생이국, 재첩국, 죽 종류 등 얼큰한 것에 비해 종류가 많다. 의외로 냉면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 애주가다. 냉면이 나오기 전 따뜻한 면수에 간장이나 까나리액젓을 넣어 속을 살짝 달랜다. 그리고 위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이 소주나 막걸리 한 잔에 시원한 냉면육수로 마무리하면 그런대로 응급처치할 수 있다.숙취로 속이 좋지 않을 때는 익숙하고 편안한 음식을 찾게 마련이다. '속풀이'는 전날 마신 술로 거북해진 속을 가라앉히는 일. 또는 그런 음식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해장음식은 영혼을 감싸주는 '소울푸드'다. 해장음식을 찾는 이유는 뜨거운 국물이 주는 '시원함' 때문이다. 몸이 상쾌해지고 개운함을 느낄 때 "시원하다"고 말한다. 속이 시원하다고 하는 것은 답답한 것이 풀리고 후련함을 느낄 때다. 시원하다는 것은 온도의 개념보다 느낌의 개념이다.새해 덕담을 나눈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 중순을 넘기고 봄이 오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부터 1년 가까이 "시원하다"는 말을 시원스럽게 들어본 적이 없다. 식당 벽면에 "식사 중에도 얘기를 나누려면 마스크를 써달라"는 안내문을 보면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답답하다. 어린 자녀가 부모의 방치와 학대로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 한 편으로 끼니를 챙기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과 정치인들의 부동산 투기 소식에 밥벌이를 걱정하는 젊은이들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쓰린 속은 해장음식으로 달랠 수 있지만, 국민들의 답답한 속은 무엇으로 풀어야 하나. 오는 봄,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어주었으면 좋겠다./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

2021-03-17 이진호

[데스크칼럼]서울시의 일극주의적 철도 정책

'평면환승 원칙' 운운 엄포로 볼 수밖에 없어'수도권 철도 연장' 인천·경기는 약자일뿐정부의 신도시 정책 역행 같아 우려스러워생활밀접 정책 시장 없을때 발표 이유 궁금1976년 2월18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시를 방문해 구자춘 시장으로부터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서울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증가율을 둔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듬해 2월10일 서울시 연두 순시에서 임시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밝혔다. 그는 "통일이 될 때까지 서울에서 고속도로나 전철로 약 1시간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임시행정수도를 만드는 것을 오래전부터 구상해오고 있다"고 했다. 역대 서울시장들이 한결같이 인구 증가 억제 대책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서울에서 살기가 불편해야 하고 취업의 기회도 줄어들어야 한다"(김성배 제19대 서울시장)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가 서울에 집중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는 늘 정부의 고민거리였다. 임시행정수도 구상은 오랜 논의 끝에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이어졌고, 서울의 위성도시 취급을 받던 곳에는 하나둘씩 대규모 주택단지(신도시)가 조성됐다.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서울과 연결되는 광역교통망을 확충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했다. 신도시 조성 목적이 서울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주택난과 집값 안정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꿎은 인천과 경기지역에 신도시를 조성한 셈이다. 인천과 경기지역 전체를 옥죄고 있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탄생도 서울의 인구 증가와 무관치 않다.서울시는 지난달 10일 보도자료를 내어 "앞으로 도시철도 및 광역철도 연장은 직결 운영이 아닌 평면 환승을 원칙으로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서울 지하철과 인천 또는 경기도 지하철을 직접 연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서울에 들어오려면 환승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인천시민과 경기도민 입장에선 서울 경계 지점에서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불편을 겪게 되는 건 명약관화다. 서울시는 보도자료에서 평면 환승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불편함 없이 빠르게 환승할 수 있고, 차량 고장 등 사고가 발생해도 전 노선의 운행 중단을 방지할 수 있으며,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의 근무 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세계 많은 국가가 평면 환승 구조를 도입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평면 환승 원칙을 선언한 가장 큰 이유는 '서울교통공사의 적자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많은 지자체가 직결 연장을 요청하고 있지만 서울교통공사 적자 상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는 "평면 환승 원칙은 모든 신규 철도 사업에 적용할 예정이며 직결 연장은 서울시 운영 원칙을 준수한 경우에만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건설비는 물론 운행 비용까지 분담하는 지자체의 사업만 직결 연장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지자체가 지하철 건설·운영비를 분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업별로 협의하면 될 것을 '평면 환승 원칙'을 운운하는 건 엄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수도권 철도 연장에 있어선 인천과 경기가 약자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또한 서울시의 평면 환승 원칙은 정부의 신도시 조성 정책에 역행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철도 연장을 계획하는 곳 상당수가 서울의 주택난 해결과 집값 안정을 위한 신도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신도시 주민들의 서울 접근성을 향상하려고 지하철 연장 등 광역교통개선대책을 고민하는데, 서울시는 지하철을 갈아타라고 하니 말이다. 수도권 주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서울시장이 없을 때 발표해야 했는지도 궁금하다.박남춘 인천시장은 지난 10일 쉐라톤 그랜드 인천호텔에서 열린 '제408회 새얼아침대화'에 연사로 나와 서울 중심의 '일극주의(一極主義)'로 인천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서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석탄발전, 서울의 쓰레기를 묻는 수도권매립지, 한강 하구 지역인 강화도 일대로 떠내려오는 해양 쓰레기 등을 꼽았다. 2019년 수도권매립지 반입량 337만t 중 143만t(42%)은 서울에서 왔다. 인천에서 버린 쓰레기는 69만t(21%)이다. 서울시의 철도 평면 환승 원칙을 생각하면 이 또한 일극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싶다./목동훈 인천본사 정치·경제총괄 팀장목동훈 인천본사 정치·경제총괄 팀장

2021-03-14 목동훈

[데스크칼럼]등교 첫날의 비극…인천 영종 아동학대 사망

부모의 보살핌 대신 고통속 짧은 생 마감갇힌채 심각한 영향 결핍상태 '가슴 먹먹'가정학습등 출석 대체… 쓸모없는 매뉴얼집앞 '나의 작은 관심'이란 문구 눈에 밟혀한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봄 방학이 끝나고 새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러 첫 등교하는 날이었다. 또래 아이들은 이른 아침 책가방을 메고 신발 주머니를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부모들은 등굣길에 아이의 작은 손을 꼭 붙잡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선생님들은 새 학기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교문 앞에서 아이들은 고개를 돌려 엄마, 아빠에게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었다.새 학기 등교 첫날이던 지난 2일 인천 중구의 한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집에서 숨을 거뒀다. 온몸에 멍과 상처를 안은 채…. 학교에 오지 않았던 그 아이였다. 이름처럼 예쁘게 반짝였을 아이였다.경찰은 이날 인천 중구 운남동 자택에서 딸 A(8)양을 숨지게 한 혐의로 B(27)씨와 그의 아내 C(28)씨를 긴급체포했다.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였다.그렇게 또다시 한 아이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여덟 살이면 부모의 따뜻한 품에서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다. 가장 안전하고 포근해야 할 집에서 엄마와 아빠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짧은 생을 마감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A양의 부모는 2일 오후 8시57분께 자택에서 "딸이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했다. 경찰과 119구급대가 출동했을 당시 A양은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경찰은 현장에서 B씨 부부를 긴급체포했다. 소방당국은 A양의 턱관절이 움직이지 않았고, 손가락 끝 등에서 사후 근육이 딱딱하게 굳는 강직 현상을 보였다고 전했다. 아이의 이마와 허벅지엔 멍 자국이, 양쪽 턱에는 찢어져 생긴 상처가 있었다. B씨 부부는 관련 혐의를 부인했으나 결국 구속됐다.아이는 심각한 영양결핍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죽했으면 출동했던 한 구급대원은 "아이의 두 볼은 움푹 파이고 팔다리가 말랐는데 '앙상하다'고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라며 "언뜻 봤을 땐 유치원생만 했다"고 말한다.세상을 등지기 하루 전날에 먹었던 점심밥이 아이의 마지막 끼니였다. 취재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온종일 먹먹했다. B씨 부부는 신고를 받고 온 경찰과 구급대원들에게 "편식이 심해 식사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았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부검에서도 숨진 아이의 위에는 음식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이 아이는 집에만 갇혀 지낸 듯 보인다. A양을 봤다는 주민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주변 편의점에서도 아이의 존재를 몰랐다. 왜 그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A양의 집은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곳에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 두 아이를 키우는 B씨 부부가 유독 눈에 띄었다는 일부 주민들을 후배 기자가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한 주민은 "지난달 여자아이가 비명을 지르면서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했다.아이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 밖에 놓여 있었다. 공교롭게도 A양의 집 근처에는 중구 제2청사와 영종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중구청의 한 관계자는 "이 가정은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서비스 관련 사례 관리 대상이 아니어서 아동 학대 여부를 더더욱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코로나19가 번진 지난해 아이는 온라인 원격 수업에만 참여하고 등교 수업에는 모두 빠졌다. 학교 측은 가정 방문을 요구했으나 부모는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했다. 지난해 11월 말에야 이뤄진 A양과의 전화 통화로는 학대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없었다.교육부는 무단결석(미인정결석)하는 아동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매뉴얼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A양의 부모처럼 등교 대신 가정학습 등으로 대체하겠다고 하면 출석이 인정돼 이 매뉴얼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아이의 집 앞에는 '나의 작은 관심으로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집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나의 작은 관심'이란 문구가 눈에 밟혔다./임승재 인천본사 사회팀장임승재 인천본사 사회팀장

2021-03-07 임승재

[데스크칼럼]백신과 경제자유구역

첨단바이오 국내외 3200여개 기업활동 활발정부, 외투 세제 인센티브 축소후 유치 감소기업 자유로운 활동·투자자 관심유도 연계'선순환 구조' 갖출수 있도록 역할 바뀌어야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전국적으로 일제히 시작됐다. 지난해 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최근까지 인천·경기지역 2만7천여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8만9천여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또 1천500여명(인천·경기 530여명 포함)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감염 확산세는 여전하다. 코로나19에 대한 반격이 이번 백신 접종으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나라에 앞서 백신 접종을 시작한 미국과 영국 등의 경우 백신 접종 이후 신규 확진자 수가 줄고 있다는 보도다. 해당 국가의 방역 대책 강화, 계절적 이유 등 다른 요인과 함께 백신 접종이 신규 확진자 감소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를 곧 끝낼 수 있다'는 섣부른 기대감은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백신 접종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백신 접종이 확진자 수 감소, 전염병 대응 능력 강화, 코로나19 극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시작점이 되길 바랄 뿐이다.경제자유구역은 2002년 관련법이 제정·공포되면서 처음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설명할 때 흔히 따라다니는 'IMF 외환위기'를 졸업한 직후다. 세계의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우리나라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일종의 선순환 체계를 만들자는 취지가 컸다. 그 시작은 인천이었다. 세계적인 국제공항과 항만, 인구 2천만 규모의 수도권 배후 시장을 둔 인천의 입지적 강점이 높게 평가됐다. 정부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들겠다며 송도와 영종, 청라 등 209㎢ 부지(현재 122㎢ 규모로 조정)를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개청식에 참석해 "한국경제의 도약을 위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의 핵심사업이 인천에서 시작됐다"며 경제자유구역 성공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인천경제자유구역 조성 업무를 담당하는 인천경제청은 공유수면을 매립하면서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을 찾아다니며 투자자를 찾았고, 도로와 지하철 등 각종 기반시설을 지속해서 확충했다. 다행히 그런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면서 인천경제자유구역은 IMF 외환위기 이후 국가 경제 도약의 중요한 역할을 했고, 국가대표 경제자유구역으로 성장했다. 첨단 바이오산업을 이끌고 있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해 국내외 3천200여개 기업이 인천경제자유구역에서 활발한 기업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GCF(녹색기후기금) 등 10여개 국제기구, 한국뉴욕주립대 등 해외 교육기관 등도 품으면서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하지만 정부가 외국인투자기업에 제공하던 각종 세제 인센티브를 축소한 이후 경제자유구역의 외투 유치 실적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조세 비협조 지역 블랙리스트'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였는데, 그만큼 경제자유구역의 외투 유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수도권'에 있다는 게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가장 큰 인센티브 아니겠느냐"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은 현재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 지역에 국내외 첨단산업 분야 기업을 대상으로 조성되고 있는 산업단지의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경제자유구역 지정 등에 많은 역할을 했던 이환균 초대 인천경제청장은 "외국인들의 자발적 투자가 이어질 수 있도록 경제자유구역의 역할이 바뀔 때가 됐다"고 했다. 국내 스타트업을 포함한 첨단 기업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성과 도출,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과 투자 결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경제자유구역이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정부가 경제자유구역 입주 기업 등을 지원해 글로벌 신산업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며 최근에야 각종 사업 추진에 나선 상황에서 그의 조언은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경제자유구역이 국가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또 다른 선순환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경제자유구역을 처음 지정할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이현준 인천본사 경제팀장이현준 인천본사 경제팀장

2021-02-28 이현준

[데스크칼럼]남경필의 '광역 서울도' 구상이 생각나는 이유

서울·경기·인천은 예부터 공동생활권인데시장 보궐선거 진행·서울시의 행태를 보면수도권 산적한 공동 난제는 '남의 일' 방치포스트코로나 대변혁시대 '통 큰 공약' 바라1년을 끌어온 코로나19 방역 속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은 모름지기 과거 경기도의 한 행정구역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경성부, 그전에는 한성부로 불렸다. 경기도청 공무원이 서울을 관리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 시장선거는 경기도와 같은 생활권이기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와 지리적 관계가 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공통적인 공약과 이슈들이 쏟아질 것이다. 처음 집값 문제가 이슈였으나 교통문제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이유도 그런 연관성 때문이다.잠은 경기·인천에서 자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 반대로 집은 서울이면서 경기·인천에 일터가 있는 서울 시민. 이들이 뒤엉켜 사는 곳이 서울이고, 경기이고, 인천이다. 원주민도 있지만 팔도 사람이 다 모여 사는 곳이 이 수도권이다.얼마 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차 타고 다니는 경기도 사람 20%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사람이 경기도로 이동하는 숫자까지 더하면 수도권의 공동체를 더 실감할 것이다.그러나 이번 선거에 '서울 낙원'을 갈구하는 공약은 쏟아지고 있지만, 만병의 근원인 수도권 주택문제와 생지옥 같은 교통문제, 쓰레기 대란 등 산적한 수도권의 공동 과제에 대해선 아직 해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득표에 눈이 멀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직 수도권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공부가 덜 됐을 수도 있다.이런 틈을 타고 서울시는 지난 설 명절 즈음에 경기도와 인천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직결(직접연결) 사업을 더는 벌이지 않겠다고 선전 포고했다. 인천과 경기도 김포와 연결하는 서울지하철 5호선, 인천 검단연장사업인 9호선 인천공항 직결, 제2 경인선 사업 등에 예산을 못 주겠다는 것이었다. 속된 말로 '니네'(경기·인천)들이 알아서 하라는 '배째라'식 엄포였다. 2025년 종료를 앞둔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 문제도 거의 같은 식이다. 헐값으로 팔당 상수원 물을 가져다 먹고, 난개발로 쏟아진 쓰레기를 마구 버리면서도 자체 매립지 하나 없는 게 서울이다.얼마 전 언론에 난 남경필 전 경기지사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과거 그가 던진 '서울광역도' 구상을 한번 되새겨 보았다. 당시 그는 역차별받고 있는 경기도의 현실을 고려해 수도권 규제 철폐를 주장하며 "경기도를 포기할 테니 서울과 합치자"고 일갈했다. 모든 서울 중심의 체계를 흔들어 더 큰 대한민국으로 나가자는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제안이었다. 당시 경기도민들은 '너무 오버한다', '대선 출마용' 이슈라며 생뚱맞다는 반응을 보였고, 결국 빛을 보지도 못했다.그러나 지금과 주제는 조금 달랐지만, 현재의 서울, 수도권은 상상을 초월하는 과밀과 혼잡, 무질서와 무방비로 방치되는 모습이다.세대별로는 20·30세대의 부동산 '영끌투자', 대출이자로 찌든 40·50대 하우스 푸어, 세금 폭탄을 걱정해야 하는 60·70대 노년층이 즐비하고, 지역적으로는 똘똘한 서울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강남으로 몰리는 반면, 변방의 경기·인천은 상대적 박탈감과 양극화의 희생양으로 소외되고 있다.코로나19로 세상은 바뀌고 있고, 기업들은 새로운 신산업을 찾아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가며 코스피 3천시대에 진입했다. '바이 코리아'에서 '프리미엄 코리아'로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고 실제 좋은 기운이 감도는 느낌이다.가장 먼저 수도권의 변화가 목전에 와 있다. 현재 3개 노선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완공되면 서울과 경기·인천은 공간적으로 전철 한두 정거장 차이고, 시간적으로도 10분대 왕래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서울만 지상의 낙원을 만들지 말고 경기·인천과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거당적으로 수도권에 얽힌 난제를 풀어 경기·인천을 포함한 '메트로폴리탄 서울' 구상 같은 거 말이다. 이번 선거는 대선 전초전이기도 하고, 여야 모두 대선 주자급 인사들이 많이 출마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새로운 서울, 미래의 수도권을 위한 '통 큰 공약' 하나 만들어 주기 바란다. 그래야 서울시장선거도 이기고, 내년 대선에서도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 것이다./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2021-02-24 정의종

[데스크칼럼]체육계 학교 폭력, 라떼부터 고쳐야

1980년대 올림픽 등 계기 엘리트체육 전환지도자·선수들은 '오로지 우승'이 지상과제합숙통한 체벌·폭력 '인권 사각지대' 대물림이제 스포츠는 복지 '나때는 말이야' 끝내자연초부터 프로배구 선수의 학교 폭력 파문이 뒤늦게 불거지면서 체육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중·고교 시절 운동부에 소속된 학생 선수들이 선·후배간 갑질과 폭언, 폭력 등을 밝히면서 프로 선수들의 자질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이번에 터진 학교 폭력 파문은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이다영 선수를 시작으로 남자 프로배구 OK금융그룹 소속 송명근, 심경섭 선수로까지 번졌다. 결국 이들 선수는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 자격 무기한 박탈까지 당했다. 게다가 이들의 어설픈 사과문과 한국배구연맹과 대한민국배구협회의 늑장 대응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자배구 선수 학교폭력 사태 진상규명 및 엄정 대응 촉구합니다'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연고주의,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한 체육계의 갖은 폭력과 부정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엘리트 스포츠가 대전환의 시기를 맞았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지상 과제는 오로지 1위만 존재했다. 당시 지도자들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우승이라는 지상 과제를 위해 합숙이라는 대안을 세웠고, 학교 내 합숙소는 선수들의 또 다른 폭력의 온상이었다. 지도자들은 어린 선수들의 경기력을 위해 체벌과 얼차려를 했고, 선배들은 후배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가했다. 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대물림됐고 습관화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가 됐다.결국 얼차려와 구타에 못 이겨 일부 선수들은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하는 상황까지 발생했고 근신 처분까지 받았다. 특히 개인종목보다는 단체종목에서 이런 상황은 더 심각했다. 단체종목 특성상 지도자들이 동료의식과 더불어 연대책임을 따졌기 때문이다. 이는 선·후배 또는 동료 간의 불신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선배들은 '라떼(나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썼다.학교 폭력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성적지상주의에서 오는 체육계의 갖은 폭력과 부정 비리가 배구계에서 끝날지 미지수다. 추가 폭로가 잇따르고 또 다른 선수들이 가해자로 지목될지도 모른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남자 프로배구팀 한국전력이 구단 자체적으로 학교 폭력 사건을 조사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학교 운동부 징계 이력을 통합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참에 학교 폭력 전수조사와 예방기구 설치 등 다양한 대책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가해 선수들이 자진 신고하게 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지금은 1980년대가 아니다. 학교 폭력처럼 민감한 상황은 사회적 조명을 받기에 충분하다. 선진 사회가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아직도 체육계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구단과 팀, 지도자, 선수, 부모 등 당사자들은 '라떼'라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스포츠는 국민에게 늘 용기와 희망을 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복싱 홍수환의 승리 소식과 IMF 경제 위기 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를 점령한 박세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점령한 박찬호 등 스포츠는 국민과 늘 함께했다. 올림픽 금메달 소식도 더없이 즐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지도자 리더십과 선수 발굴, 육성 시스템 등 국가 엘리트 스포츠 전반의 문제점을 찾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스포츠는 복지'라고 한다. 국민들은 엘리트 선수들의 활약에 맞춰 각 종목에서 생활체육을 통해 건강을 다진다. 앞으로는 학교 폭력이 스포츠계에서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라떼'는 이쯤에서 끝내자./신창윤 문화체육부장신창윤 문화체육부장

2021-02-17 신창윤

[데스크칼럼]비리호송자(非理好訟者)

'이치에 닿지 않는 송사를 잘 일으키는 놈'조선시대 백성 변호사 '외지부'를 빗댄 말최근 현직판사의 탄핵소추안 발의를 보며민주주의 부정·공정 재판에 害 될까 걱정조선시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백성들을 변호하던 이들을 외지부(外知部)라 불렀다. 외지부는 송사(訟事)를 맡은 관원은 아니지만 밖에서 백성들을 대신해 소장을 작성하고 소송을 대리하는 조선의 변호사였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과 강문종 교수 등이 펴낸 '조선잡사(朝鮮雜史)'를 보면 "무지한 백성이 스스로 소장을 작성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외지부는 법률 지식과 문서 작성 능력을 토대로 법을 모르는 이들을 도왔다. 형식을 갖춰 소장을 대신 쓰고 소송이 진행되면 자문도 맡았다"고 전한다. 강 교수는 책에서 "조선시대 소송은 세 차례 진행되었고, 두 차례 승소해야 사건을 매듭지었다. 판결에 불복하면 상급기관에 재심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외지부는 긴 소송 과정에서 의뢰인을 보호했으며 법률 대리인 역할도 함께 했다"고 밝혔다.외지부는 글과 법을 모르는 백성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지만, 법률 지식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기록을 보면 중종 때 외지부 유벽은 형조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심문 내용을 빼내 의금부에 수감된 의뢰인에게 답변을 미리 알려 주었다. 왕실 인사들이 외지부와 결탁해 이익을 도모했다가 적발됐다. 백성을 꼬드겨 소송을 벌이며 법을 이용해 사회를 어지럽힌 일로 연산군은 외지부 16명을 함경도로 유배 보냈다. 효종 때는 외지부 최선석, 최선협이 문서를 위조해 훈련도감 포수 안사민을 노비로 만들려 시도했다. 이렇듯 외지부는 조선 조정의 골칫거리였다. 조정은 외지부를 '이치에 닿지 않는 송사를 잘 일으키는 놈'이라는 뜻으로 비리호송자(非理好訟者)로 불렀다. 성종실록(성종3년, 1472년 12월 1일)에는 "시시비비를 어지럽히고 관리들을 현혹해 판결을 어렵게 하는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문이 기록돼 있다.최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을 어지럽히고, 판사들에게 겁을 줘 판결을 어렵게 하려는 여론몰이에 사법부가 당혹해 하고 있다. 단순히 판결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게 아니다. 판사에 대한 폄하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판새(판사 비하)', '법레기(법관+쓰레기)', '검찰대행업자'라고 헐뜯는다. 지난 1일에는 국회에서 현직 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처음으로 발의됐다.판사들에게 '법리와 논거'를 따지지 말고, '헌법의 가치로도 판단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양심을 버리고 법의 공정 가치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혹시나 이대로 가다 검은 것을 흰 것이라 하면 무조건 희다고 말해야 하는 세상이 올까 두렵다. 휴고상을 네 차례나 수상한 미국의 저명한 인문학자이자 작가인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은 선전 선동술과 세뇌교육에서부터 일반 홍보나 광고에까지 흔히 사용되는 방법으로 '흑백의 두 가지 모순'을 설명한 바 있다. 하나는 '적에게 사용할 때는 분명 사실과 모순되게 검은 것을 희다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버릇'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당원에게 사용할 때는 당의 규율이 요구하면 검은 것을 희다고 기꺼이 말하는 충성심'을 말한다. 하인라인은 그들이 검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희다고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세력을 단결시키고, 상대방을 기만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했다.'미스 함무라비'의 저자 문유석 판사는 저서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종교, 문화 따위가 다수의 의견이라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만약 다수의 의견이 늘 옳다면 인류는 아직도 천동설을 믿고 잔인한 사적 보복을 허용하며 인종 간 결혼은 금지하고 성적 소수자를 박해하고 있지 않을까. 다수결의 원칙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에서 다수에 대한 정교한 견제장치도 같이 마련하고 있는 이유"라고 지적한다.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가 공정한 재판과 독단적 판단을 견제하기 위해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이르는 삼심제도를 시행하고 별도의 헌법재판소 등 제도적 보완장치까지 마련하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판사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판결해 달라고 요구하면 세상은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헌법에서 판사들에게 인신을 구속하고, 재산권을 강제할 권한을 부여한 것은 판사들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정의를 수호한다는 국가와 국민의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이진호 인천본사 디지털취재팀장

2021-02-03 이진호

[데스크칼럼]빚 권하는(?) 나라

2000년초 '신용카드 대란'을 겪은적이 있다금융당국 알고도 '카드사 무한경쟁' 방치탓작년 '영끌'이어 올해는 '동학개미' 무한질주당시 데자뷔, '멈춰야' 목청에도 당정 '모르쇠'2000년대 초반, 이른바 '신용카드 대란' 당시. 무려 3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신용불량자가 돼 하루아침에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길거리로 쫓겨나 노숙자로 전락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등 대한민국 전체가 금융 쇼크에 휩싸인 적이 있다.국내 굴지의 카드사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갚을 능력이 전혀 없는 사회 초년생들과 뚜렷한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무분별한 경쟁을 통해 신용카드를 발급해주었고, 그 한도를 높여 주었다.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너도나도 카드 빚더미에 내몰렸다. 10여년이 지나 "(당시)금융당국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카드사들의 무한경쟁을) 방치했다"는 것이 현재도 카드사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A씨의 전언이다.('신용불량자' 제도는 2005년 '금융 채무 불이행자'로 명칭을 변경한 채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이란 신조어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유선생(유튜브를 통해 주식투자 기법 등을 강의하는 사람)의 학생'들이 '동학개미'와 '서학개미'로 무장해 국내외 주식시장의 판도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국내 굴지의 관련 회사 회장도 5년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변형된 형태의 주식투자 강의를 할 정도로 관련 업계는 '주린이(주식 어린이)'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카드사들이 20여년전 벌인 무한경쟁의 데자뷔다.이 때문인지 증권업계 및 투자금융협회 등의 추계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는 대략 700만명으로 파악하는데 지난 한 해에 100만명 가까이 증가했다.동학개미들의 무한질주가 두려움을 넘어 공포스럽다. 일부 전문가들은 광기(狂氣)라고도 표현한다. '포모(FOMO·Fears Of Missing Out, 모두들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데 나만 물먹는 것 아니냐)'란 용어가 20대 대학생들과 30대 초보 직장인, 40대 가정주부, 50~60대 은퇴자들의 입에 붙어 다닌다.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코스피(KOSPI)와 코스닥(KOSDAQ)을 합쳐 22조7천억원(2019년 9조3천억원)이었는데 지난 8일에는 무려 60조원이었다. 코스피가 하루에 100포인트 이상 널뛰기를 한다.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실물과 괴리가 있다"며 경고장을 날리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잇따라 경고장을 날리고 있지만 제어가 전혀 안 된다. 시장에 대한 강력한 억지력이 없다. 심지어 향후 증시 대폭락시 "난 그래도 경고를 했었다"란 면피용이라는 일부 분석이 나올 정도다.급기야 3월15일로 끝나는 공매도 금지 기간이 시험대에 올랐다. 동학개미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2차 연장을 해달라고 국민청원을 냈다.더불어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동조하고 지도부도 가세하자 금융당국도 한발 물러선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금융위원회 업무계획 관련 '온라인 사전 브리핑'에서 "공매도 문제와 관련해 단정적인 보도가 나가는 것은 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아직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광기(狂氣)와 포모(FOMO)로 장착하고 폭주하는 기관차를 누군가는 멈추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와 여당에서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흘러 증권업계 종사자로부터 "금융당국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빚 권하는 나라가 될 순 없지 않겠는가?/이재규 정치부장이재규 정치부장

2021-01-24 이재규

[데스크칼럼]인천의 가치 더할 '인천 아리랑'

전통연희단 서광일대표 공모로 우수학술상'제물포 살기 좋아도~, 왜인 위세 못살겠네'국내 최초 기록, 경기 자진아리랑 계통 밝혀일제 언급 한국 노동운동 시발점 계승해야새해 벽두 인천 문화계에 낭보가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제9회 국립국악원 학술상' 공모를 진행한 국립국악원은 심사를 마치고 얼마 전 최우수학술상과 우수학술상 수상자를 선정·발표했다. 인천의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서광일 대표가 '인천 아리랑의 최초 기록과 선율에 관한 연구'로 우수학술상을 받았다(1월7일자 17면 보도=국립국악원 학술상 최우수에 황보영·우수상에 서광일). 현재 단국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서광일 대표는 세 번째 학기의 소(小) 논문의 주제를 '인천 아리랑'으로 정했다. 그 결과물로 국립국악원 학술상에 응모해 수상자로 결정된 거였다.서 대표는 논문에서 19세기 말 개화기 인천에서 불린 '인천 아리랑'의 최초 기록과 음악적 선율·곡조에 대해 규명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인천 아리랑'은 우리나라 최초로 기록된 아리랑이며, 음악적으론 '인천 아리랑'이 경기 '자진 아리랑(구조 아리랑)'의 계통임을 최초로 밝혀냈다. 우리나라에는 지역에 따라 가사와 리듬이 다른 아리랑이 50여 종류나 있다고 한다. 진도·밀양·정선 아리랑 등에 비춰 볼 때 인천 아리랑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서 대표의 논문은 지금까지 우리 문학과 음악 관계자들에 의해 학문적으로만 접근된 인천 아리랑을 연구·정리함으로써 세상에 가치와 의미를 알린 것이다.서 대표가 인천 아리랑에 관심을 가진 건 2017년 10월 개봉한 영화 '대장 김창수'를 보면서란다. 인천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백범 김구가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철도 공사에 강제 동원돼 노역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 "인천 제물포 살기 좋아도~, 왜인 위세로 못 살겠네." 수감자들이 곡괭이질을 하며 지친 몸을 달래고자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인천 아리랑이다. 영화를 연출한 이원태 감독은 영화 개봉 후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천 아리랑을 경인선 부설공사 장면에서 노동요로 쓰기 위해 고증에 공을 들였다"고 밝힌 바 있다.영화가 끄집어낸 인천 아리랑을 역추적한 서 대표와 잔치마당 단원들은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 미국 감리교 선교사이자 교육자였던 호머 B. 헐버트(1863~1949) 박사가 1890년대 서양식 5선 악보에 채보한 아리랑들 중에서 인천 아리랑을 찾았다. 잔치마당은 이를 근간으로 3개 마당으로 구성된 '인천 아라리'를 공연했다.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아리랑은 1920년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흥행하면서 알려지고 기록됐다. 영화로 흥행하기 전엔 민요를 경시하는 풍조로 인해 아리랑에 관심을 두고 가사를 기록한 조선 사람은 없었던 상황에서 헐버트 박사가 기록으로 남긴 거였다. 그에 앞서 1894년 5월 일본에서 발간된 '유우빈호우치신문'의 '조선의 유행요'와 그해 8월 일본에서 유학한 홍석현이 쓴 조선어 회화책인 '신찬 조선회화' 등에 실린 인천 아리랑이 연구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서 대표는 이들 연구 자료들을 토대로 인천 아리랑이 우리나라 최초로 기록된 아리랑임을 논문에서 밝혔다.인천 아리랑은 정서적으로 독특하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린 아리랑들은 사랑하는 임의 배반과 그를 원망하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그 안에 설움과 한이 깃들어 있는 것이 기본적 서사다. 그러나, '인천 아리랑'은 일제(왜인)를 언급한다. 개항 이후 전국 팔도에서 품을 팔러 온 노동자들로 붐빈 인천의 사회상을 잘 드러낸다. 나아가 '한국 노동 운동의 시발점'인 인천의 역사를 뒷받침한다.인천 아리랑은 시민의 지속적 관심으로 계승해 나가야 할 대상이다. 조사·연구 등의 학술 활동과 함께 시연을 통해 문화콘텐츠로 개발하고, 관광자원으로의 활용까지 인천 아리랑은 지역의 가치를 끌어올릴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2021-01-17 김영준

[데스크칼럼]선택적 법 집행

부패·타락한 정권일수록 자신들 보호위해사법부 장악후 압박 '선택적 법 집행' 강요'정의·자유 수호 최후의 보루'라는 대법원올바른 판단 신뢰땐 '선택' 설자리 없을 것역사적으로 '선택적 법 집행(selective enforcement of law)'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훼손했다. 17~18세기에는 인간을 재산으로 여기는 노예제도가 성행했지만 노예 소유주 중에 인권을 짓밟았다고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 아프리카계 흑인이나, 계급사회의 천민, 특정 종교 국가의 여성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근대 이후 최근까지도 군주나 권력자, 성직자 등 지배층에만 법 앞의 평등이 적용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중세나 근대가 아닌 20세기 대한민국에서 나온 말이다.중세시대에 자행된 '신명재판(神明裁判)'은 선택적 법 집행의 대표적 사례다. 신명재판은 오직 '신의 심판'만이 유무죄를 결정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신이 주관하는 재판이니 "무고한 사람을 벌주지 않는다"는 믿음은 증거나 무죄추정원칙, 피의자의 인권보호 등 인간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았다.신명재판에서 자주 사용된 방식은 '물건 건지기'다. 물이나 기름이 끓는 솥에 돌이나 쇠붙이 등을 넣어놓고 건져내는 방식이다. 손에 상처나 화상을 입지 않는 사람이 재판에서 승소한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는 뜨겁게 달군 솥이나 그릇, 쇠를 맨손으로 들게 하고 일정한 거리를 걷게 한 뒤 화상을 입지 않으면 무죄로 판결했다.중세 유럽과 아시아에서 공통으로 쓰인 방법은 용의자의 손발을 묶은 뒤 물속에 넣는 방법이다. 현장에서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판관들이 선호했다고 한다. 재밌는 사실은 유럽에서는 범인이 물에 가라앉으면 무죄로, 반대로 아시아에서는 유죄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같은 재판방식인데도 해석은 반대로 했다. 유럽에서는 "죄 없는 사람은 깨끗한 물이 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시아에서는 "신이 목숨을 살려주기 위해 물 위로 띄운 것"이라고 해석했다.마다가스카르에서는 19세기까지도 독성 있는 열매를 먹고 살아나면 무죄로 판결하는 바람에 수천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시체를 놓아둔 관 옆에 살인의 용의자를 세우고 관에서 피가 흐르면 범인이라고 판단하거나 커다란 빵을 한번에 먹도록 하고 체하지 않으면 무죄로 판단하는 웃지 못할 이러한 재판방식은 한동안 동서양에서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서도 피고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물을 살짝 데우거나 솥을 적당히 달궈 화상을 입지 않게 하는 사기재판도 벌어졌다고 하니 옛날에도 '지인 찬스'로 재판관을 매수하려는 비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신명재판과 같은 선택적인 법 집행의 폐단은 죄 없는 사람을 처벌하고 범죄자를 무죄로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폐단이 거듭할수록 학자들 사이에선 신명재판에 대해 과연 신(神)이 하느님인지, 악마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점차 사라졌다.21세기 전 세계 민주사회에서도 정치인 비리 재판이 끊일 날이 없다. 권력을 잃은 쪽에서는 자신들의 비리 재판 결과를 "정치적 탄압"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현 정권 인사들의 비리 재판 결과에 지지자들까지 나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다. 이념과 정파에 상관없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인사를 처벌하는 재판관을 양심 없는 부패한 법관으로 몰아간다. 특정 집단 중에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사법부에 '선택적 법 집행'을 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권력은 기본적으로 '부패'와 '타락'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부패하고 타락한 정권일수록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법부를 장악하고 싶어한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권력들이 사법부를 장악한 경우 사법부를 압박해 '선택적 법 집행'을 강요했다.현대의 국가 체제에서 입법부와 행정부 외에 사법부를 분립한 이유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법의 기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대법원을 '정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1, 2심 재판 과정에서 법 해석이나 양형에 다소 미흡한 판단이 있더라도 경륜과 자질을 갖춘 대법관이 법리를 명확하게 분별하고 올바르게 판단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한 믿음이 강한 신뢰로 이어질 때 '선택적 법 집행'이 들어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21-01-06 이진호

[데스크칼럼]신도시의 자족 기능과 서울 접근성

중앙대캠 유치 무산된 인천 첫 신도시 검단 자족기능 강화에 의미, 특화구역 개발 대체 광역교통망 또한 신도시 개발의 중요 정책서로 상충 아이러니속… 올 1단계 입주예정정부가 서울 등 수도권 주택시장과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계획한 공공주택지구를 '신도시'라고 한다. 인천 첫 신도시는 검단신도시다. 검단신도시는 서구 원당·당하·마전·불로동 일원 1천110만6천㎡ 부지에 공공주택(7만5천851가구) 등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인천시가 국토교통부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구 지역에선 토지구획정리사업이 한창이었는데 도로 등 기반시설이 부족한 상태에서 포도송이식 개발이 이뤄지다 보니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인천시는 개발 압력이 높았던 서구 지역을 계획적·체계적으로 개발하는 방안이 필요했고 국토부는 공공주택을 공급할 땅(택지)이 절실했다. 검단신도시는 인천시와 국토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탄생한 것이다. 인천도시공사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3개 단계로 나눠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1단계 지구 입주가 예정돼 있다.국토부는 2006년 10월 검단신도시 개발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그로부터 약 3년 4개월 후 인천시와 중앙대는 검단신도시에 캠퍼스를 조성하는 양해각서를 주고받았다. 검단신도시에 대학병원과 연구소까지 갖춘 캠퍼스를 조성하는 내용이었다. 중앙대가 검단신도시의 자족 기능을 강화하고 베드타운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인천시는 기대했다. 하지만 중앙대 캠퍼스를 검단신도시에 유치하겠다는 인천시 계획은 2015년 5월 무산되고 만다.실패한 프로젝트(중앙대 캠퍼스 유치)이지만 의미 있는 시도였다. 대학이 지역 산학연 협력 활성화에 있어 혁신플랫폼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 지역대학 대부분이 송도국제도시 등 남부권에 몰려 있는 점을 고려하면 교육 인프라 불균형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인천시는 중앙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업과 교육기관을 검단신도시에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세워 놓고 있었다.인천도시공사와 LH는 검단신도시 특화구역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역세권 주변을 개발하는 '넥스트 콤플렉스', 스마트 워크 센터를 갖춘 '워라밸 빌리지', 저탄소 녹색도시 조성을 위한 '휴먼에너지타운' 등을 계획해 추진하고 있다. 이들 특화 사업은 검단신도시 개발 촉진 및 조기 활성화를 꾀하기 위한 것으로 검단신도시의 자족 기능을 향상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신도시의 '자족 기능' 못지 않게 중요한 게 '광역교통망'이다. 신도시 개발사업이 인천·경기 지역 주택 공급을 통해 서울로의 인구 유입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신도시의 서울 접근성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울과 가까운 곳에 신도시를 계획하는 것이고 정부가 신도시 입지 발표 후 광역교통 개선 대책을 내놓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신도시 개발사업의 성공을 위해 서울 접근성을 향상하는 건 아이러니다. 광역교통망 확충을 통해 서울 접근성을 향상하면 베드타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신도시의 '자족 기능'과 '서울 접근성'(광역교통망)이 상충하는 셈이다. 어찌 보면 신도시의 숙명은 '잠재적 베드타운'이요, 그 굴레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자족 기능 향상'인 것이다.신도시의 자족 기능과 서울 접근성을 상호 보완적 관계로 볼 수도 있다. 신도시가 기업 유치를 통해 그 지역 모든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며, 일부 또는 상당수는 서울 등 신도시 밖 직장으로 출퇴근할 수밖에 없다. 서울 접근성이 좋지 않다면 기업 유치는 물론 인력 수급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신도시의 자족 기능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광역교통망 확충을 통해 기업과 주민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도시의 자족 기능 확보 및 광역교통망 확충이 애초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로 2019년 5월 1·2기 신도시 교통 대책으로 국토부 장관이 직접 발표한 '인천도시철도 2호선 검단 연장사업'도 경제성 부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은가. 1·2기 신도시 가운데 자족 기능을 갖춘 곳은 현재 분당, 판교, 광교 정도에 불과한 것 또한 현실이다./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목동훈 인천본사 경제부장

2021-01-03 목동훈

[데스크칼럼]코로나19 체육시설 운영중지가 해법인가

굳게 닫힌 모든 시설 국민의 건강 악화일로민간 시설·종사자들은 폐업과 실직 내몰려전문가 "이제는 능동적인 전환 필요한 시기"방역 강화 속 '안전 매뉴얼' 등 재설계 강조올 초부터 불어닥친 코로나19가 체육계에도 큰 변화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언택트 문화에 따른 비대면 서비스 강화로 강제적 디지털화가 현실화된 요즘에는 온라인교육은 물론이고 음식점내 키오스크 사용, 온라인 쇼핑 등이 일상화됐다. 또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국가간 경계가 강화되고 폐쇄적 활동으로 항공·무역·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는 저성장과 저금리, 저물가로 이어지고 국민의 건강증진에 기여한 체육시설 운영은 더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정부의 코로나19에 따른 사회간 거리두기 강화로 사람간의 교류는 더욱 힘들어졌다. 평소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해 온 국민들도 체육시설이 폐쇄되면서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체육시설은 6만여개로 이중 공공체육시설은 2만8천500여개에 달한다. 5% 내외인 1천여개가 실내 공공체육시설이고 민간체육시설은 80% 이상인데, 대부분 체육관 등의 도장업을 비롯, 체력단련장업, 당구장업 등 실내체육시설로 이들은 모두 자영업자에 속한다.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체육시설 운영자들은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상황에 따라 최고 90% 이상(수도권)의 시설 운영을 중지하면서 방역과 감염 차단에 동참하고 있다. 공공체육시설은 정부, 지자체의 운영중지 지침에 따라 운영하지 않아도 시설 종사자들의 삶에 큰 영향이 없다. 문제는 민간체육시설이다. 대다수 체력단련장이 영업하지 못하면서 폐업과 실직에 내몰렸다. 이는 체육시설업 종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들에게도 활동의 폭이 좁아지고 건강한 신체활동이 적어짐에 따라 우울 증세와 삶의 활력이 감소(코로나 블루)하는 등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체육은 전인교육을 통한 건강한 신체, 삶의 질 향상을 이루는 목적이 있다. 이에 정부에선 건강복지를 국가적 정책으로 1989년 의료보험(국민건강보험)을 도입했다. 하지만 건강을 잃은 후 애프터 서비스(after service)란 이미지가 커져 2000년에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하면서 비포 서비스(before service)로 건강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 체육에 대한 참여와 국가적 지원이 증가했다.코로나19 시대인 현재 체육시설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국민들은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지 못하고 활동하지 못해 목표했던 비포 서비스는 점점 멀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선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올해 체육시설 운영은 아직도 안갯속이다.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선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정부의 강력한 방역 의지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1년 가까이 계속되는 코로나19에 체육 전문가들은 이제 소극적 보다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체육시설을 문만 닫는다고 해서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겠는가'라는 얘기다.일부에선 오히려 마스크를 착용하고 인원을 제한하면서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면 '코로나19 확산'과 '코로나 블루'를 동시에 극복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공공체육시설의 경우 안전방역의 체계화를 통해 민간까지 안전한 시설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파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또 공공체육시설을 운영하는 지자체, 공사, 공단, 재단 등에선 시설의 실질적 안전체계 매뉴얼을 정립하고 지도방법, 운동공간 활용의 다양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체육시설의 안전성을 알려야 한다. 더불어 시설의 리모델링 등으로 스포츠 산업의 재설계를 추진하는 것도 서둘러야 한다. 무조건적인 스포츠의 언택트를 요구하는 것은 체육에 대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체육만이 갖는 특화된 성질인 '함께 하고 땀 흘리는 것'을 언택트와 콘택트 사이에서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공공체육시설에서의 건강과 힐링을 찾기 위해 코로나19 이후의 체육시설에 많은 연구와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신창윤 문화체육부장신창윤 문화체육부장

2020-12-27 신창윤

[데스크칼럼]금서와 분서

금서 10만권으로 만들어진 '책의 파르테논'장소는 나치가 독재옹호 책 불태운 곳 카셀시대마다 '정치·신앙 등 해친다' 낙인 자행홍콩이어… 우리나라도 금서 DNA는 남아2017년 8월 독일 소도시 카셀에서 열린 현대 미술 박람회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작품은 아르헨티나의 행위예술가인 마르타 미누힌의 '책의 파르테논(The Parthenon of Books)'이다. 이 작품은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본떠 10만권의 책으로 설치돼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책의 파르테논'이 상징하는 의미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작품에 사용된 10만권 모두 전 세계에서 금서(禁書)로 낙인된 책으로 독일 시민들로부터 기증받았다는 것. 두 번째는 '책의 파르테논'이 세워진 카셀의 프리드리히 광장은 1933년 5월19일 나치가 지정한 금서 2천권을 불태웠던 상징적인 장소라는 것이다.마르타 미누힌은 언론 인터뷰에서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를 꽃피운 아테네의 상징인 파르테논을 금서로 만든 것은 나치가 독재를 옹호하기 위해 책을 불태운 곳에서 평화와 민주주의,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1933년 독일 나치는 카셀의 프리드리히 광장 등 전국 대학가 주변 100여곳에서 책을 불태웠다. 불에 탄 책들은 문학, 역사, 정치 등 분야별 3천종에 달했다. 나치는 이후에도 1935년부터 정기적으로 발간되었던 1만2천400종의 도서 그리고 인도주의, 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성향을 가졌거나 유태인 저자 149명의 모든 저술 등을 금서로 못 박았다.종교도 금서에 자유롭지 않다. 1571년 교황청은 아예 '금서성(禁書省)'을 설립했다.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 소위 불온서적 출간이 유행하자 교황청은 들불처럼 번지는 종교에 대한 도전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교황청은 금서성 설치 이후 1600년 지구가 돈다고 주장했던 이탈리아 철학자 브루노를 화형시켰다. 1633년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은 이후 교황청은 4천권이 넘는 책을 1948년까지 금서 목록에 실었다.종교 관련 서적 중 대표적인 금서로 꼽히는 책은 '세 명의 사기꾼, 모세·예수·마호메트'이다. 모세와 예수, 마호메트를 사기꾼으로 묘사해 불경한 책으로 불리는 이 책은 오늘까지도 문헌의 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이 책은 가톨릭을 신봉하는 유럽의 왕조들의 서슬 퍼런 검열을 피해 오로지 손으로 베낀 형태로만 극히 제한적으로 유통됐다.책의 내용이 가톨릭과 기독교, 이슬람교의 최고 지도자들을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대놓고 떠들어댔으니 저자는 물론이고, 책을 베낀 이들조차 적발당하면 화형을 피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18세기는 계몽주의 사상을 곁들인 권력을 쥔 왕족·귀족·성직자들의 추문을 비하하는 책들이 유행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은 저서 '책과 혁명'에서 프랑스혁명 직전까지 금서가 된 베스트셀러를 보면 왕정을 비방하거나 권력자와 성직자들의 파렴치한 추문을 들춰냈다. 특히 집단으로 거물급 인사에 대한 명예를 공격하는 중상비방문(벽보, 광고, 노래, 인쇄물, 소논문 또는 책)들은 1789년 7월 프랑스혁명의 불을 지폈다. 그 대표 주자가 바로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 계몽사상가 루소와 관용(똘레랑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볼테르다.어느 시대, 어느 정권이나 금서로 낙인찍는 주된 이유는 정치·안보·사상·신앙·풍속 등을 해치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의 분서도 같은 이유로 자행됐다. 하지만 금서와 분서는 오늘날까지도 인종, 이념, 자유언론에 대한 탄압과 특정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핵심은 "옛것으로써 오늘날의 것을 비난하는 자는 멸족시키고, 관리가 (이런 자를) 보고 알면서도 들춰내지 않는다면 같은 죄를 묻는다"는 것이다.지난 7월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은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내 공공도서관에서 민주화 인사의 저서가 모두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홍콩의 공공도서관을 담당하는 기관은 "홍콩보안법 시행에 따라 일부 서적의 법 위반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공공도서관이 정치인과 시사 평론가들이 출간한 책들을 정치편향 이유로 금서로 지정했다고 한다. 21세기 민주주의에서도 금서의 DNA는 여전히 남아있다./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

2020-12-20 이진호

[데스크칼럼]서철모 화성시장님, 이런 상황인데도 가만히 계실겁니까?

12년째 민간아파트 개발중인 화성 배양동토지주 200억대 잔금 못받고 공매절차 신세자신의 땅 신탁되는 사실상 범죄해당 피해민원 불구… 市, 안전장치없이 허가권 넘겨2008년 화성의 한 시골 변두리이자, 수원 경계지역인 화성 배양동 일원에 민간아파트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곳 마을은 정조대왕이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잠든 현륭원(현 융건릉)을 참배하기 전 제상을 차린 마을, '제청말'이라 알려진 곳으로 친인척들이 모여 사는 조용한 전형적인 시골부락이었다.필자 또한 이곳에서 자랐고 최초 사업부터 지켜봤다.12년이 지난 2020년 12월 현재, 이곳 마을엔 여전히 지역주택조합이 개발을 추진 중이다. 마을 사람 일부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삶의 터전을 개발사에 팔아 넘긴 뒤 매매대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얼마 전에는 공매개시절차라는 안내장까지 받는 신세가 됐다. 2008년 민간아파트 개발사업자는 2015년 지역주택조합으로 사업을 전환한 뒤 조합사업권을 현재 조합에 넘겼다. 앞서 전체 사업부지 중 67%의 사업부지가 토지 일부 대금을 대출해준 '유진투자증권'에 의해 신탁처리된 상태여서 그렇게 사업권이 넘겨졌다.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2020년 11월 현재 200억원(소송에 따른 법정이자 포함)대 토지 잔금이 미지급된 상태다. 2015년 당시 조합은 토지주들에게 수차례 토지 잔금 부분에 대해 지급을 약속했고, 조합원 모집 등 사업추진을 수행해왔다.그런데 지난 11월 초 신탁토지주들에게 신탁토지에 대한 '공매개시절차'라는 안내장이 날아들었다.잔금이 미지급된 토지가 100% 지급된 것처럼 신탁됐고 유진투자증권과 조합 등에 의해 신탁토지에 대한 공매절차가 개시된 것이다. 문제는 토지 잔금에 대한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그 어디에서도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2015년부터 사업을 추진해온 현 조합 측도 토지 잔금 지급의 의무를 이야기해오다, 위로금조로 지급하겠다는 식으로 돌변, 신탁토지주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유진투자증권이 신탁토지에 대한 잔금 부분에 대해 명확한 권리해석을 하지 않고, 기업의 실익만을 챙겨 신탁토지주들은 공매절차개시로 금전적 피해에 대한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유진투자증권이 신탁토지에 대한 매매 잔금을 추가 대출해 준 뒤 조합 측과 사업부지에 대한 자산매각 등의 절차를 밟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을 피해였다.화성시 행정도 문제다.최초 신탁 등에 대한 이해가 없던 토지주들은 잔금도 받지 못한 채 자신들의 토지가 신탁되는 사실상 범죄에 해당하는 피해를 봤다. 지역주택조합으로 사업이 변경될 당시, 피해 토지주들은 이 같은 피해에 대해 화성시에 정식 민원을 제기했었다.토지 잔금 해결책 없이는 사업허가권 연장을 동의하지 않는다는 민원이었다. 하지만 화성시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현 조합에 허가권을 넘겨줬다.현재 조합에선 공매절차가 개시되면 조합이 토지를 낙찰받아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그렇지만 만일 조합이 낙찰받지 못할 경우, 또 미지급된 200억원대 토지 잔금에 대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잔금도 다 치르지 않은 토지를 '법'을 앞세워 취득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인데, 이 또한 법적 분쟁 대상이다. 화성시도 큰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이제는 적극 행정에 나서야 한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유진투자증권도 자산양수도계약을 철회하고, 신탁토지 잔금에 대한 해결방안을 세운 뒤 자산양수도계약 등에 나서야 한다. 12년째 지연된 사업의 피해 책임을 이제는 말끔하게 정리할 때다.추신. 문재인 대통령께.900명이 넘는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이 산산조각날 상황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정부 차원의 철저한 조사와 행정개입을 통해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켜 주십시오./김영래 사회부장김영래 사회부장

2020-12-16 김영래

[데스크칼럼]두 화재 이야기

'무사는 무한·무수사이 간신히 건진 낱말…'21년전 인현동 모티브 김금희 소설 대목이다핵심은 비행이 56명 죽음을 덮을수 없는 법라면 형제 '뒤늦게 실화'도… 본질 안바뀌어"무사하다는 것은 무한과 무수 사이에서 간신히 건져 올려진 낱말 같아. 막막한 바다를 떠다니는 작은 보트처럼."소설 '경애의 마음'(김금희 作) 중 한 대목이다. 주인공 경애와 상수는 21년 전인 1999년,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한 인천 인현동 호프집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다. 인현동 화재사건을 취재한 기억으로 인해 이 소설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돌이켜보면 '숨진 학생들에 대한 애도' 보다 '학생이 호프집에서 술을 마신 행위'에 대한 비난이 앞섰던 게 사건 초기의 사회 분위기였다. 소설도 경애의 사유를 통해 당시 상황을 묘사한다. "경애는 비행,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들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로, 죽은 56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사고 발생 후 며칠이 지나 기성세대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사뭇 다른 공간을 취재한 적이 있다. 화재로 숨진 남녀 고교생의 영혼결혼식이 열린 길병원 영안실이었다. 남학생은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다 변을 당했고, 여학생은 반에서 1~2등을 다투던 모범생이었다고 했다. 단지 호프집에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고 도무지 비행, 불량이라는 수식어를 달 이유를 찾지 못한 열일곱, 열여섯의 꽃다운 영혼이었다."두 젊은 영혼이 지금 영정으로 만나지만, 이 모순되고 부도덕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함께 스러져간 인연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닙니다."주례의 결혼 선포로 사돈이 된 두 아버지는 신랑, 신부를 대신해 흑장미와 순백의 국화를 교환했다. 생판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처음 인연을 맺는 현장은 잔인하리만치 처연했다. 편견으로 오염된 바깥 공기와는 확연히 달랐던, 그리고 그 누구라도 가슴으로 추모할 수밖에 없었을 그 슬프고 외로운 결혼식장이 소설을 읽는 사이 떠올랐다. 이 때문인지 소설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로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라는 경애의 울분 어린 질문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답했는지 묻는 듯했다. 사실 그 질문은 미세먼지와도 같았던 편견이 걷히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공유할 수 있었다. 그 질문의 결과물이 지난해 인현동 화재 참사 20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공적기억조형물 '기억의 싹'이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2020년의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화재사건에 주목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한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이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인천 미추홀구 화재사건이다. 동생은 세상을 떠났다. 소설 속 표현대로 '무한과 무수' 사이에서 건져 올려지지 못했다. 이 사건을 접한 많은 언론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의 '무사함'을 담보하지 못하는 돌봄시스템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그리고 많은 제도개혁을 이끌어냈다. 형제를 돕기 위한 후원의 손길도 잇따랐다. 최소한 인현동 화재처럼 뒤늦게 기억의 싹을 세우는 것으로 희생자들을 위로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그런데 최근 경찰이 "화재의 원인은 아이의 실화였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조그만 파장이 일고 있다. 라면을 끓이다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불장난으로 인한 화재라는 새로운 분석이 제시되면서 일부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소 흔들리는 듯하다. 물론 언론의 잘못이 크다.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에 소방당국의 추정을 토대로 화재원인을 특정한 것은 분명 반성할 일이다. 그렇다고 이 사건의 본질과 의미가 희석될 수 있을까. 이 사건은 구멍 숭숭 뚫린 돌봄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한 참사라는 게 핵심이다. 화재 원인이 다르다고 해서 본질이 바뀔 수도, 바뀌어서도 안되는 사건이다. 어찌보면 호프집에 가거나 불장난을 한 행위는 시스템 부재라는 근원적 참사 원인과 비교할 때 편린에 불과하다. 기억의 싹을 제대로 심어야 할 것 같다./임성훈 인천본사 편집국장임성훈 인천본사 편집국장

2020-12-13 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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