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어린이집 아동학대와 서비스로의 보육

보건복지부 통계 아동학대 건수는유치원比 어린이집이 9배이상 많아교원·노동자로 '양성 과정' 차이 탓근무 여건 등 보육환경도 주요 원인언론도 '학대소굴' 묘사 반성 필요보건복지부가 발행한 2019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의하면 만 5세 미만의 영유아 학대 피해 건수는 총 5천282건, 전체 아동학대 건수 중 17.6%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중 유치원에서 발생한 건수는 139건으로 아동학대 발생장소 전체 비율 중 0.5%, 어린이집은 1천371건으로 4.6%에 해당한다. 2019년 기준 어린이집(3만7천371개소)이 유치원(8천837개소)에 비해 4배 이상 많고, 재원생 역시 어린이집(136만5천85명)이 유치원(63만3천913명)에 비해 2배 이상 많다고 해도 유치원보다 9배 이상 많은 어린이집의 학대 발생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모두 유아를 위한 교육기관이지만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관할 주체가 다르다. 이것은 여러 차이를 양산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통상 교육부 소속인 유치원 교사는 교원, 보건복지부 소속인 어린이집 교사는 노동자로 분류하는 것이다. 교원으로서 유치원 교사가 제공하는 것은 교육, 노동자로서 보육교사가 제공해야 하는 것은 보육서비스로 주로 인식된다.교육 전문직으로서 유치원 교사는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의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전공 평균 75점, 교직 평균 80점 이상의 성적을 받아 유치원교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한다. 대학의 유아교육과는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에 개설되어 있으나, 2년제로 운영되는 전문대학에서도 유아교육과는 3년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이외에도 전문대학 기준으로 유·아동을 대상으로 한 60시간의 교육봉사, 2회 이상의 성인지교육과 심폐소생술교육 이수, 2회 이상의 인적성 검사에 통과해야 교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반면, 보육교사 2급 자격은 17개 교과 51학점을 이수만 하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따라서 자격 취득을 위한 교과목이 유사한 유아교육과 및 사회복지과 등에서 보육교사 자격을 위해 필요한 몇 교과를 추가 이수하여 보육교사 2급 자격을 서브로 취득하거나, 전문대학에서 보통 2년 과정으로 개설되는 보육과 졸업을 통해 보육교사 자격을 취득하기도 한다. 학점 이수 이외에 특별한 조건이 없는 보육교사 자격은 대학이 아니더라도 학점은행제를 통해서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보육교사 2급 자격은 17개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그 중 8과목은 대면, 그 외 과목은 온라인 수강을 통해 이수가 가능하다. 대면 교과 역시 8시간의 대면 수업을 충족하면 이수가 되어 학점은행제에서는 보통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 8시간을 대면으로 수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즉 보육교사 자격은 대학이 아니라면, 학점은행제 등을 통해 1년간 8번의 대면수업만으로도 2급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가능하다.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가 유치원에 비해 9배 이상 많이 나타나는 이유를 교사양성 과정에서 모두 찾을 수는 없다. 급여·복지 등의 교사 근무 여건, 교사 1인당 아동수, 만 3세 미만의 영아 보육 등의 보육환경도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해마다 반복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에 서울시장은 '어린이집 CCTV 하루 최소 4시간 실시간 공개'를 보육 공약 중 하나로 내놓았다. CCTV는 이미 2015년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통해 어린이집 CCTV를 의무화 한 바 있으나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9년 아동학대 건수 역시 2018년 대비 13.8% 증가했다. CCTV로는 어린이집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없다는 의미다. CCTV는 예방이 아니라 학대가 일어난 이후의 절차와 과정을 위한 장치로서의 기능이 더 크다.서비스로 인식되는 보육정책은 교육정책과 달리 노동자로서의 학부모나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설정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유치원과 달리 어린이집은 만 1세 미만의 영아에 대한 보육을 지원하고 24시간 돌봄이 가능할 뿐 아니라 연장보육을 통해 6시 이후에도 돌봄을 제공한다.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이 영유아를 위한 정책인지 노동자로서의 부모와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윤을 내는 기업의 입장에서의 정책인지 판단해야 한다. 만 1세 미만의 영유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의 지원이 필요하고, 보육을 교육으로 보고 서비스 노동자로서의 교사 양성이 아니라 교원으로서의 교사 양성 체계가 필요하다. 학계의 외침만으로는 안 된다. 학부모의 목소리가 함께 포개어져야 한다.하나 더. 유아교육기관에서의 아동학대는 더 크게 보도된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그러나 유아교육기관은 오늘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 "유치원·어린이집 아동학대 다반사", "계속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고" 등의 뉴스들이 쏟아진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쇄신해야겠지만 아이들이 다니는 곳을 학대의 소굴로 묘사하는 언론 또한 반성이 필요하다./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2021-05-04 김명하

[수요광장]언론개혁, 그것이 알고 싶다

김의겸 靑 대변인, 투기 의혹 사직文정부 부패 DNA 없다던 前 기자 정치인 변신후엔 "언론 개혁" 실소사법·검찰개혁도 내로남불 똑같아김어준도… 국민은 상식세상 원해국회의원 김의겸은 전직(前職) 기자다. '한겨레신문'기자 김의겸은 '최순실'을 집중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신정부 출범 후 8개월 만에 그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전직(轉職)한다. 대변인 김의겸은 '문재인 정부는 부정부패의 DNA가 없다'는 명언(?)을 했다. 그 이후 그는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직했다. 보통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돈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개발예정지에 '투자'했다. '흑석선생'이라는 별칭은 그래서 얻어졌다.이제 그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여권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사임함에 따라 비례대표 의원을 승계했다. 국회의원 김의겸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언론개혁을 하겠다'고 발언했다. 언론인이 자신의 직분을 이용하여 부와 권력을 탐하는 것은 옳지 않다. LH 직원의 일탈과 다를 바가 없다. 국민들은 그런 것이 언론개혁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기자 출신으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친여성향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언론개혁 다짐은 실소를 자아낸다. 언론인에서 현실 권력을 얻은 그가 바로 권언유착의 가장 큰 수혜자라 할 수 있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권언유착을 앞장서 비판한 사람이 언론개혁의 소임을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세상이다.조국사태 이후 우리 사회, 아니 여권에 만연한 내로남불의 전형을 그에게서 다시 본다. 그리하여 그들이 말하는 언론개혁이 일반인의 상식과는 전혀 다름을 확인하게 된다. 언론개혁이란 무엇인가? 중립과 객관을 가장하여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권력 감시를 게을리하거나, 정부정책을 비판 없이 보도하거나, 또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권력자를 찬양하는 것. 그래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은 무시되고 일방적인 여론을 생산해 내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언론개혁인가? 5공시대처럼 '땡문(文)뉴스'를 부활하고, 모든 매체에서 '문비어천가(文飛御天歌)'가 울려 퍼지는 것을 의미하는가?이미 국민들은 집권세력이 말하는 '개혁'이 상식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사법개혁의 결과, 이른바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이 부상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거짓말로 인해 사퇴압박을 받고 있다. 검찰개혁도 마찬가지다. 공석이 된 검찰총장 후임자는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법무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력한 하마평에 오른 이성윤 지검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기소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는 대통령의 대학동문이기도 하다. 개혁의 수혜자는 결국 국민이 아니라 권력이었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것이 사법개혁이고 검찰개혁이라면 국민들은 동의하기 힘들다.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교통방송(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언론개혁의 핵심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뉴스공장은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다. 진행자의 하차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국민이 30만을 넘어섰다.여당 국회의원들은 온갖 궤변과 억지로 김어준을 옹호한다. 국회의원 김의겸의 발언은 김어준 '사수' 의지의 신호탄이다. 한 중진의원은 김어준의 '천재성으로 청취율 1위'에 올랐다고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뉴스공장이 청취율 1위에 오른 비결은 법규 위반의 결과다. 사실 왜곡을 서슴지 않고, 일방적이며 자극적인 논평으로 청취자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법정제재를 가장 많이 받은 프로그램이 바로 뉴스공장이다. 장자연 사건의 윤지오와 조국 딸의 출연,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음모론, 보궐선거 전날의 신뢰하기 어려운 출연자의 근거없는 의혹 제기 등 수많은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TBS는 세금으로 운영하는 방송이다. 계약서 없이 지급한 고가의 출연료에 대해서 또 다른 의원은 자신도 계약서 없이 방송출연료를 받았다고 증언한다. 방송가의 관행이라고 강변한다. 헛웃음이 나온다. 단발성으로 출연하는 게스트와 고정 진행자가 같다는 말인가. 김어준 문제는 언론개혁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 바로 서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1-04-27 이영철

[수요광장]'늘공'과 '어공'

공직 퇴임후 잠시 복귀한 적이 있다충실 보좌역 도지사 비서실장으로문제는 행정 뒷전 정무적 판단 의존결이 달랐던 나는 6개월만에 물러나둘의 불협화음 국민만 불행 명심을"실장님은 안 된다고 하는 게 너무 많습니다." 공직을 떠난 뒤 6개월 만에 다시 공무원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비서실장으로 일해 달라는 요청으로 그리된 것이지요. 6개월 동안 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정치인 도지사나 정무적인 감각으로 판단해 도지사를 보좌하는 '어공'(어쩌다 선출직을 따라 공무원이 된 사람)들은 공직이 몸에 밴 저 같은 '늘공'(공채 정규직 공무원)과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저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비서실장은 정무적인 판단이 부족한 것 같다'며 저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결이 달랐던 겁니다. 6개월이 지나 공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지요. 그래도 가끔 도정에 대한 소견을 전했습니다.지사는 도청을 떠났는데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고 하더군요. 아마 참견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저 도청에서 30년 이상 일한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말이지요. 그러던 중 후배 공무원이 자치행정국장으로 옮긴 지 석 달도 안 돼 경질된다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저는 조직이 흔들릴 수 있고, 그의 인생에 상처로 남는 일이니 정기인사 때까지 미루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지요. 하지만 그는 북부청사로 좌천됐고, 그 후 저도 조언하는 걸 거의 포기했지요. 다만 후임 실장에겐 전임자로서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비서실장은 지사만 보좌하는 게 아니라 행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아야 된다고 했지요. 하지만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그에겐 '쇠귀에 경 읽기'인 듯했습니다.선출직 공무원이나 그를 보좌하는 사람은 정무적인 감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그 정무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법이나 상식을 벗어나면 사건이나 논란거리가 되기 십상이지요. 그런데 제가 만난 늘공들은 좀 마땅치 않아도 어공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반면, 어공들은 아예 늘공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짙더군요. 어공의 이런 행동은 자신을 일반 공무원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특권 의식 때문일 거라고 봅니다. 특히 정치적인 코드가 같다거나 인연이 있다고 해서 전문성·도덕성 등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공무원으로 일하게 된 사람일수록 더욱더 심했지요. 문제는 그들 스스로는 무엇이 잘못인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공무원은 법에 따라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고 늘 법규를 연찬하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일을 해야지요. 어공이 어떻게든 임기 내에 내세울 만한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욕심은 이해를 합니다만 공직자가 지켜야 할 법규나 규정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건 안 될 일입니다. 공무원이 정치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으로만 일을 처리하다 보면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상도(常道)가 실종되기 때문이지요. 다음 선거를 의식해서 선심 행정이나 보여주기식 행정에 치우쳐 정당성을 상실하면 허점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편법을 넘어 범법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늘 법규를 연찬하고 규정에 따라 신중히 일해도 실수가 생기게 마련인데, 매사를 정무적인 판단에 의존해 행정을 하면 실수를 넘어 큰 과오로 번질 수 있지요.늘공은 어공을 행정을 모르는 문외한이 권력의 뒷배를 믿고 설친다고 깎아내리고 어공은 늘공을 기득권이고 무사안일에 젖어 있는 개혁대상으로 여깁니다. 늘공 중에도 어공들에 줄을 대고 더 설치는 앞잡이도 생겨나지요. 영전을 염두에 둔 얄팍한 처신이지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줄타기입니다. 늘공은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으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만 어공은 그런 기회마저 없지요. 늘공이든 어공이든 중심을 잃지 않고 일해야 되는데 서로 처지나 관점이 다르니 알력(軋轢)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늘공과 어공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기면 국민들만 불행해지지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공무원은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명제(命題)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1-04-20 홍승표

[수요광장]위드 코로나 시대의 시적 윤리학

밉든 곱든 자연과 인간은 공생한다서정시의 과제는 예언자적 저항과 자기성찰 강화…생태 사유·실천은 기후·환경위기 맞물려 중요성 커져이제는 인류적 의제로 권역 넓혀야그동안 생태학의 의제와 성과를 수용하거나 변형한 경우는 소설보다는 시쪽에서 훨씬 강렬하고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생태시학의 활발한 전개는 한결같이 근대주의가 가진 진보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원적 회의와 맞물려 나타났다. 이는 근대적 가치의 완성을 위해 매진했던 진보 기획이 일정하게 과학주의로 편향되었고, 이성으로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근원적 현상에 대해 무심했던 것도 중요한 반성적 거점이 되어주었다. 또한 이는 자연과 우주를 타자로 몰아붙였던 지난 시대의 역사 과잉에 대한 반성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생태시학에는 근대의 자기 반성적 요소가 뚜렷하다. 하지만 그 이론적 작업은 아직도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둔 계급, 젠더, 지역, 분쟁 등에 대한 인식을 생태적 사유와 결합해야 하는 과제들을 남겨놓고 있다. 물론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충격을 담아내는 근본적 쇄신을 전제하고서 말이다.한동안 주류미학으로 등극하여 반성적 대상이 된 후에도 생태시학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장악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담론이자 대안담론의 가능성으로 충일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생태주의는 그 자체로 물신화하거나 무공해식품 같은 자본주의의 수사적 첨병 노릇을 할 개연성을 늘 가지고 있다. 또한 생태시학은 또 하나의 신비주의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가롭게 숲을 거닐거나 유기농 작물들을 일용하는 녹색 중심주의의 소박한 담론을 뛰어넘어 진정한 대안적 사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 욕망에 의해 유린되고 상처받은 우주 혹은 자연에 대한 근원적 터닝을 감행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곧 황폐화된 물질문명과 완전히 격절할 수 있는 순수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연결되며 밉든 곱든 자연과 인간이 공생해야 한다는 종말론적 자각과도 연관되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예언적이며 동시에 성찰적인 장르일 수밖에 없는 서정시가 가질 수 있는 '코로나19'시대의 과제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예언자적 저항과 자기 성찰을 강화해가는 것으로 모아질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최후의 윤리학이자 급진적 대안으로 대두한 생태적 사유는 자연을 신성한 것이 깃들인 유기적 생명체로 승인하면서, 그것을 인간 욕망 실현을 위한 자원으로 생각해온 근대의 자기 증식 논리에 대한 반성적 시선을 함유해갈 것이다. 그만큼 생태적 사유와 실천은 치유 불가능 단계에 빠진 지구의 기후위기와 맞물리면서 그 중요성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와 호흡하면서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되돌려주려는 기획을 통해, 윤리적 차원을 넘어 일종의 우주적 연민으로 그 영역을 확대해가야 한다. 그리고 사물의 배후에 있는 본질을 읽어내고 표현하는 발견의 감각을 통해 생태시편이라 명명되어온 서정시의 기율과 감각을 성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애송시 전통이 지나치게 사사로운 감상적 사랑 이야기가 많았던 것을 되돌아보면서 더욱 근본적인 인류적 의제로 그 권역을 넓혀가기를 소망해본다.이때 우리는 인간을 위한 환경 차원으로 자연을 한정하는 경향도 경계되어야겠지만, 인간을 배제한 일방적인 자연 숭배 속성도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 한술 더 떠 염인증에 가까운 인간 혐오를 보인다든가, 대안 없는 문명 비판을 반복적으로 양산하는 것은 서정시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심층적 사유를 결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연과 함께 역사와 삶을 꾸려가는 공생적 주체이지 그저 내몰려야 할 대상이거나 수동적 관찰에 머무는 관조자가 아니지 않은가. 서정시에서 사물에 대한 재발견의 시각과 균형 감각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결국 앞으로 펼쳐질 생태시편들은 인간에 대한 일방적 혐오와 자연 신비주의를 벗어나, 부단히 일상으로의 환속 통로를 열어두면서, 그동안 망각되었던 인접 가치들을 활발히 끌어들이는 데서 완성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위드 코로나' 시대의 시적 윤리학은 전혀 새로운 생태적 사유와 실천을 통해 한층 더 깊고도 스케일 큰 속성을 부여받을 것이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1-04-13 유성호

[수요광장]코로나19 4차대유행 경고! 철저 방역·재무장 절실

백신접종에도 지구촌 확진자 급증강한 전파력 변이 바이러스가 원인 국내도 전국 확산 양상은 마찬가지 장기간 방역에 지쳤나 경각심 느슨강화된 수칙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과 인도에서는 1일 확진자가 10만명을 돌파했고, 유럽에서도 신규 확진자 급증으로 재봉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백신접종 1억명을 넘긴 미국도 신규 확진자 6만명대를 기록하면서 4차 유행이 시작됐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국내 사정도 비슷하다. 비수도권의 확진자 비중이 40% 안팎까지 높아지며 전국적 확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코로나19 대국민 담화에서 "4차 유행 갈림길에 서 있다"며 이대로 가면 1일 확진자가 1천명 이상으로 많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 역시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인천의 한 어린이집 집단감염에 50대 젊은 원장 사망사건을 계기로 인천 엄마들뿐 아니라 전국적인 불안 호소가 많다.설상가상 변이 바이러스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백신 확보에 외교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라는 요구가 쏟아지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국내의 경우 변이 바이러스는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직은 낮은 수준(41건)이지만 감염재생지수가 모든 권역에서 1을 넘었다. 변이 바이러스의 강한 전파력이 연일 보도되고 있어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높아야 하는 시점임에도 필자 가족을 비롯해 주변에서 감지되는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장기간 방역에 지친 탓인지, 경계심도, 긴장감도, 수칙 이행 자세도 느슨해진 것 같아 걱정된다.실제로 강한 전파력을 가진 변이 바이러스로 인한 유럽의 실상은 최근 국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를 '완전히 새로운 유행병'으로 정의했을 정도로 코로나19 감염 건의 75%가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다. 약 3%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발 변이 바이러스라고 한다. 변이 바이러스 전파력은 백신 접종이 한창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에 느슨해진 경계심이 아닐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처럼, 1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친 방역수칙 이행에 지치고 느슨해진 마음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백신접종이 시작되면서 안도감으로 코로나19에 대한 경계 심리가 더 약해졌을 것이다. 방역생활에 모두가 지쳐있는데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누군가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렇게 느슨해진 틈을 타 K-방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걷잡을 수 없이 감염이 확산되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오기 전에 미리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은 코로나19가 창궐한 초기, 당시의 공포와 경계심보다 더 무장된 자세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7일 서울과 부산시장 재보선으로 전국이 선거 열풍 한가운데 있지만, 백신 수급 차질에 대한 보도가 넘쳐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백신 수급 사정이 좋지 않다며 연일 국민적 불안을 부추기는 언론보도가 잦은 데다 대안 제시보다 논란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5일 문 대통령의 백신 수급에 대한 설명이다. "상반기 1천200만명 백신 접종, 11월 집단면역 목표달성에 총력을 다하고 1차 접종자 수를 최대한 확대, 그 시기도 앞당길 것"이라며 강화된 방역수칙에 무관용 원칙을 언급했다는 사실이다.강화된 방역수칙은 모든 다중이용시설 이용자는 전원 입장 기록을 남겨야 하고 특히 유흥시설은 전자 출입명부만 인정한다. 또한 미술관·박물관·도서관·경륜장이나 경마장 등의 장소에서는 음식물 섭취가 금지된다. 지난 5일부터 강화된 수칙을 위반할 시 업주는 300만원, 이용자는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한다. 장기간의 코로나에 경제는 어렵고, 방역에 지치고 힘들지만 4차 대유행 경고를 결코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철저한 방역수칙 이행과 감염에 대한 경계심 등 재무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K-방역으로 칭송받던 자긍심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면 과욕일까./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1-04-06 김정순

[수요광장]파랑새가 되어버린 행복

코로나시대 우리 생활은 많은 변화그런데도 소유·충족에 저당잡힌 삶무소유를 실천한 '월든' 작가 소로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강력 메시지 나의 행복은 어디에 머무는가? 팬데믹으로 이어진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에 실로 많은 변화를 야기했다. 소소한 개인의 변화로부터 국가 및 세계 경제의 지각변동에 이르기까지 넘쳐나는 신조어의 의미와 함께 익숙한 듯 낯선 것들이 주변에 빼곡하다. 필요와 요구의 변화는 새로운 문화가 되어 우리 곁에 머물고 잠시 멈추어 서서 나를 돌아볼 시간임을 자각하게 하는 아침, 어김없이 제 역할을 하는 시간과 자연은 우리에게 정한 약속을 선물로 전해온다.삼월의 말미, 이른 아침 햇살과 함께 드러내는 목련 봉오리, 때 이른 봄꽃 소식에 마음 한편 잠잠히 감사와 안도의 숨이 솟는다. 행복은 감정의 상태적 발현으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껴 흐뭇함'이란 사전적 의미를 지니며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서 정치사상이나 고전적 체계에서도 인간에 있어 궁극의 목적이었다.지금 당신은 행복한가? 실로 많은 이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흔쾌한 대답을 듣는 것은 나의 기대일 뿐이었다. 좀 더 많은 소유와 충족이 행복이란 또 다른 문화로 정착된 지금 상대적 결핍과 함께 그 존재가 무색해졌고, 구심점이 부로 연결된 삶은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되어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저당잡고 있다.'월든'의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진정한 자유를 꿈꾸며 월든 호숫가에서 2년여에 걸쳐 자급자족의 자연인으로 무소유의 삶을 실현했다. 19세기 초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였던 소로는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을 지었고 이때 지출한 건축비는 28달러, 당시 그의 나이 27세였다. 어떤 건축물보다 위대한 모험으로 이어지는 이 사건의 월든 호숫가 집은 그의 걸작의 산실이 되었다. 당시 미국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집의 노예, 재산의 노예, 일의 노예였다. 물질로 향한 나의 욕구, 객관화되는 삶의 방식과 타인의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울 것과 자본에 종속되는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에 던지는 강력한 경고를 메시지에 담아냈다.10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이 회자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욜로족이나 귀촌의 등장 역시 '간소하라! 진실하라! 자연을 벗하라!'는 그의 외침과 연관 있음은 아닐는지. 무엇이든 소유하려면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의 대가는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삶과 소유 사이에 서 있다. 어떤 선택이든 자신의 것이며 자신의 책임일 것이다.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자신의 행복의 창조자임을 언급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초절주의나 형이상학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행복에 관해 자신만의 해답을 찾게 되길 제언해 본다. 삶의 철학에 녹아든 행복이란 명제 앞에 철저하게 주관적인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마음먹은 만큼 행복하고(에이브러햄 링컨),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가는 지혜로움으로(제임스 오펜하임)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퍼블릴리어스 사이러스) 일을 놀이로 즐긴 에디슨의 삶의 철학으로 거듭나길.역사를 통해 깨닫게 되는 지혜로움과 함께 나의 생에 뿌리깊은 나무로 나의 지경을 넓혀간다면, 그래서 그런 나의 시간들이 스스로 인정과 자긍의 자양분으로 순환될 수 있다면 온전한 존중으로 이어져 자신다움이 발현되지 않을까? 소크라테스의 소극적 대화를 거론치 않더라도 자신의 내적 무지로부터 깨우침의 소중함으로 이어져 자신을 알아가는 질문으로 의미를 더해 간다면 자신만의 진정한 모습과 함께 주관적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리라.나의 행복은 어디 머무는가? 불볕 태양 아래 바람을 이는 푸른 빛 해송이어도, 탄도에 숨죽여 피어나는 야생화 한송이어도 좋다. 무엇이든 나다움으로 선택하는 나의 삶이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삶은 매 순간으로 이어지는 과정(Process)임을 깨닫는 지혜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가치와 의도대로 선택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길. 세상을 밝히는 빛은 별빛도 방안의 불빛도 아닌, 나, 너, 우리, 77억개 우리 자신의 행복의 빛이 아닐까?/정백연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코칭학과장정백연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코칭학과장

2021-03-30 정백연

[수요광장]위선 사회 벗어나기

대한민국 지도자들을 보고 있으면조선시대 양반들이 부·욕구 채우듯내로남불 위선으로 의혹이 넘친다 거짓의 징벌은 감당못하게 커져야그렇게 비판하는, 나는 떳떳했나?위선(hypocrisy)은 미덕이나 선을 표면적, 외관상으로 보여주나 실제적, 내면적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것을 말한다(위키백과사전). 선으로 위장하는 것이 위선이다. 위선의 예는 많다.4단계 계급사회인 조선시대의 많은 양반들은 힘든 노동을 하지 않고도 중인(향리, 기술직), 상민(농민, 수공업자), 천민(노비, 기생), 여성들의 노동력과 성을 착취하거나 이용하고 폭행해서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며 욕구를 채우려고 했을 것이다.자신들의 위선을 감추기 위해 사서삼경 논어 공자를 논하며 자신들의 성욕은 충분히 관리되고 있는 척 했을 것이다.'청산리 벽계수야 쉬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망공산할제 쉬어감이 어떠하리'.조선시대 천민신분 기생 황진이는 이런 양반들의 위선을 농락하고 풍자하여 양반들의 본모습을 드러내 백성들에게 통쾌함과 희망을 주었다고 한다.그럼에도 장원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마다하고 기철학과 자연과학을 연구했던 화담 서경덕은 황진이의 유혹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고, 황진이는 서경덕에 존경을 표하고 이를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음을 깨닫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설이 있다.다음은 해리포터와 친구 론이 비밀의 방에 잡혀있는 론의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도망가려는 교수님에게 도움을 청하며 나온 대사이다. 위선은 사기의 일종임이 잘 드러나 있다."책에 나온 얘기는 뭐죠?", "책은 오해를 낳기도 해.", "직접 쓰셨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렴. 내가 그런 일을 했다고 해야 사람들이 책을 많이 사지.", "교수님은 사기꾼이에요. 다른 마법사들의 공로를 가로챘어요.", "할 줄 아는 게 있기나 하세요?"서울시장 선거와 부산시장 선거가 한창이다. 국민의힘 소속 후보 중 한 사람은 자신의 재임 기간 중 아내의 보상가 36억원 땅이 포함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보금자리주택개발 사업이 승인되었고, 이는 국장 전결사항이어서 자신은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가격 폭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다른 한 사람은 재혼한 아내의 아들과 딸이 부산해운대 LCT아파트를 분양받았다는데 누구로부터 얼마에 샀는지 특혜분양 의혹을 명확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분 또한 종편 등에 나와서 조국에게 부끄러움을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 염치가 있다면 사퇴하라고 비판하곤 했었다.물론 성평등 인권 부패척결을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지방자치단체장들과 국회의원들, 지방의원들 보좌관들의 성추행 비위, 땅 투기 사실과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위선적인 양반들의 조선이 나라를 빼앗겼듯이 위선적인 지도자들로 인한 대한민국의 손해가 너무 크다.위선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포장 속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공직자에 대한 재산형성 및 살아온 과정에 대한 팩트 체크와 주변 사람들의 평판 수집이 개인정보 보호보다 우선되도록 개선해야 할 것 같다.인생의 더 많은 과정들을 검증해봐야 한다. 거짓으로 인한 징벌과 손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야 한다. 착한 척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속아왔다. 차라리 거칠더라도 솔직한 사람이 낫다.그리고 언론들과 국민들도 신랄하게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욕하고 있다.자신들부터 돌아봐야 한다. 역시 나의 위선을 돌아본다. 난 두 시장후보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직원들을 욕하며 나는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는가? 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척 사진 찍는데 열중하며 보이지 않는 기부를 한 적이 있는가? 난 공익을 주장하며 사익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김문수 경기신용보증재단 전략이사김문수 경기신용보증재단 전략이사

2021-03-23 김문수

[수요광장]미얀마의 봄, 모두의 꿈

민주화 의지 꺾이지않는 시민투쟁 폭력진압·살상 1980년 광주 판박이당시도 지구촌 연대로 싸움 이어가경기아트센터, 미얀마 봄 지지행사공생공영의 인류위해 중요한 실천민주화를 위한 미얀마 시민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매일매일 끔찍한 폭력과 살상 소식이 들려오지만, 꺾이지 않고 오히려 더 확산되고 있는 민주화의 희망도 전해진다. 민주주의는 총칼로 억누를 수 없음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미얀마의 봄이 하루빨리 자리 잡고, 민주화의 꽃이 활짝 피어나길 기대한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만, 그 피와 희생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끔찍한 현재를 바꾸는 힘은 안타까움과 염원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해 왔다. 단 한 사람의 희생이라도 막기 위해 우리도 나서야 한다. 미얀마의 봄은 모두의 꿈이고, 민주주의는 인류 보편의 미래이기 때문이다.민주주의를 가슴에 담고 1970~1980년대를 살아온 시민이라면 미얀마의 소식을 보면서 아픈 우리의 과거를 떠올릴 것이다. 1980년 광주의 5월이, 잔인한 진압 이후 지속되는 억압의 시대를,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터져 나오는 저항과 희생을, 그리고 마침내 1987년 6월의 봄을 생각하게 된다.1982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필자는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몇 번을 복사한 흐린 문건으로 처음 접했다. 이후 군대를 제대하고 독일 기자가 찍은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그때의 생생한 현실을 볼 수 있었다. 고립된 광주가 세계로 알려지고, 그 영상 덕분에 많은 양심적 시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출발과 과정, 결과까지 삶으로 살아온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미얀마 민주화운동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지난 14일 경기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재한 미얀마 유학생들의 공연을 보면서 참석한 많은 시민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여러 명의 경찰들에게 힘없이 폭력을 받아들이는 한 청년의 모습, 총탄을 맞고 피 흘리며 쓰러진 시민을 안고 울고 있는 또 다른 시민의 얼굴, 진압 경찰들 앞에서 죽음조차도 초월하고 기도하는 수녀의 사진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장면들이었다.많은 시민들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동병상련의 마음에서 시작되겠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공유된 가치는 연대를 촉구하고, 구체적 참여를 찾아 나서게 한다. 민주주의는 특정 국가나 특별한 시대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근대 시민혁명 이래로 인류가 이루어 낸 보편적 가치이자 공동의 자산이다. 이런 연유로 미얀마의 봄을 위해 계속되는 희생은 우리가 눈을 감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하려 해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던 시절, 외신에서 전해주는 연대의 목소리가 어떤 힘을 주었는지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국경을 넘어, 사상과 종교의 차이도 너머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세계 곳곳의 양심적 시민들 덕분에 우리는 고립되지 않았고, 희망을 키워갈 수 있었다. 여러 통로를 통해 제공되던 경제적 도움 덕분에 지속적으로 '민주화를 위한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참여하는 시민들이 만들어 갈 것이다. 미얀마의 봄을 지지하고, 연대하려는 시민들의 마음이 확산되고, 뜨거워지면 연대의 방식, 구체적 행동은 만들어질 것이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시민들과 경기아트센터가 주최한 지난 14일 공연은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의 외교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방정부 차원의 연대와 지원을 위한 활동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지방정부 산하 공공기관들도 각 기관의 특성을 살려 이 행동에 나설 수 있다. 직장에서, 크고 작은 모임에서도 마음을 모으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면 된다.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재해를 당한 시민들을 돕는 마음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제 연대에 참여하는 시민행동도, 기아 퇴치를 위한 기부도 공생 공영의 인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실천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일이 인류 평화와 공영을 위한 길이다. 다만 이 일은 절박한 현실이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시민이라면 지금 당장 나서야 할 일이다. 미얀마의 봄을 기다리며,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지키려는 모두의 꿈이 하루빨리 실현되길 바란다./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장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장

2021-03-16 유문종

[수요광장]죽음으로 가는 길, 닿지 않는 목소리

부당해고 연대의 시민참여 행사에배고파요 도움을 구걸하는 노숙자 사람들은 투명인간 보듯 스쳐간다죽어가는 이도 계급이 있는 것인지 그들의 행동이 위선은 아닐진대… 꽤 긴 길이었습니다. 김밥과 따뜻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사이를 그는 마치 행진하듯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어깨를 넘는 긴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몹시 추웠던 날이었는데도 맨발이었습니다. 마지막 사람들까지 지나친 후 지난밤의 눈이 녹아 만들어진 작은 물웅덩이를 맨발로 건너고는 근처를 배회했습니다. 족히 이삼백명의 사람들이 흩어져 점심 식사를 하는 행렬 사이를 걸어왔는데도 그는 눈길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쪽에는 여전히 가득 쌓인 김밥과 귤, 초코빵 그리고 따뜻한 차가 있었으나 그의 몫은 없었습니다.기업의 부당해고에 연대의 마음을 보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행사였습니다. 지방에서 걷기 시작해 몇 날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어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자고, 그러니까 죽이지 말고 살리자라고 외치는 걸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리고자 한 것은 비단 한 명의 은유적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의 횡포, 그럼으로써 노동자 개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 그렇게 터전을 잃고 삶을 잃고 사그라져 가는 사람들을 더 이상 죽도록 놓아두지 말자는 지극한 연대의 외침이었을 겁니다.광장에서도 그랬습니다.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하며 수십일을 단식하는 이의 뒤에 서서 평일과 주말마다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습니다. 촛불을 들기도 했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고 함께 굶기도 했습니다. 단식하는 이를 살리고 그가 요구하는 것을 함께 요구하며 더 이상 죽이면 안 된다는 선언의 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장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절규에 가까운 노숙자의 외침, "배가 고파요. 죽겠어요. 돈을 좀 나눠 주세요"란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촛불을 든 사람들이 손쉽게 그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누군가는 결국 그에게 얼마쯤의 돈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돈을 쥐어 주는 길에 닿은 그의 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쩌면 무관심보다 더 쓰라린 모멸을 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존재를 인정받는 일상의 의례가 '나'를 위반하고 그래서 일상의 관계가 중단되는 순간, 그가 누구든 사람은 그 사회의 경계 바깥에 존재하며 투명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투명해진 이들을 살리자고 나선 길에서 만난 죽어가는 이에 대한 배제의 장면이 자꾸 떠오릅니다. 한 장면이 떠오르니 과거의 장면들과 오늘의 사건들도 연이어 생각이 납니다. 비통한 이들의 죽음에도 계급을 나눠 놓은 것인지요. 혹은 '죽음'과 '죽음으로 가는 길'은 다른 것인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연민과 연대는 죽어가는 길에는 닿지 않고 죽어야 비로소 당도할 수 있는 것인지요. 죽어가는 바로 옆의 이들을 스쳐 지나가며 누군가를 살리자는 외침을 '위선'이란 말로 손쉽게 치부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살리자는 '함께의 외침' 혹은 '함께 걷는 길' 또한 귀하기 때문입니다.질문은 많아지고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혹은 누구를 만나야 답을 들을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서야 비로소 더 큰 공감과 연민, 연대의 마음을 받는 이들. 그렇게 모순적 환대를 받으며 상징이 되는 이들이 오늘도 우리 곁을 떠납니다.지난주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한 두 젊은이가 스스로 죽었습니다. 존재했으나 존재를 삭제당하고 모멸당한 이들이었습니다. 편협하고 왜소한 세계로부터 떠밀려 이 세계를 떠난 정치하는 시민이자 전 음악교사였던 김기홍 선생님, 어떠한 순간에도 군인이고자 했으나 심신장애 3급을 강제 판정받고 전역한 부사관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빕니다. 무조건적 환대, 차별 없는 환대의 세계에서 부디 평안하기를 빕니다./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2021-03-09 김명하

[수요광장]반갑다, 추신수!

프로야구의 시작… 3월, 봄이 왔다올해 수도권 팬들에게는 더욱 특별추신수 품은 인천 '신세계' 펼치고수원 'kt'는 강팀 반열에 오를 기회연고팀 간 '수인선더비' 발전했으면3월이다. 봄은 왔다. 그러나 봄의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일 수 없고 상가(商街)는 일찍 철시한다. 그렇지만 봄과 함께 야구도 온다. 야구팬들의 일년은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시작한다.작년의 야구는 아쉬움이 많았다. 대부분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열렸다. 올스타전이 취소되었다. 포스트 시즌도 서울의 돔구장에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全) 경기를 소화한 것은 대단한 성과다. 미국과 일본은 게임 수를 축소했다. 야구는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긴다. 매 시즌 조건이 동일해야 한다. 시즌별로 경기 수가 달라지면 기록의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수도권 야구팬들에게 2021년은 특별하다. 우선 '인천 SK'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인천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지난해 성적이 부진했던 SK는 일찌감치 사장과 감독을 교체하고 2021년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야구단의 주인이 아예 바뀐 것이다. 이어서 지난달 23일에는 추신수 선수 영입을 발표했다. 코리안 메이저리거를 대표하는 투수가 박찬호라면 타자는 추신수다. 그는 연봉과 성적이 메이저리그 상위권인 현역 선수다.부산 출신의 추신수 선수가 왜 인천 연고팀에서 활동할까. 프로야구 선수들의 노동시장이 일반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는 독점 성격이 강한 독특한 비즈니스다. 각 팀의 목표는 우승이지만 팀 간의 전력이 불균형하면 팬들은 흥미를 잃는다. 전체 리그의 활성화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야구단의 사업권 보호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선수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다. 드래프트 제도(신인선수 선발 시에 성적의 역순으로 구단이 선수를 지명), 보류선수 조항(구단의 동의 없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移籍)이 불가능한 선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2007년에는 당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특별 드래프트가 이루어졌다. 이들이 국내로 돌아올 경우, 선수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소속 구단을 정해 놓았다. 광주 출신의 김병현 선수가 서울 연고의 히어로즈에 입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때 추신수 선수는 SK의 지명을 받았다. 그 권리를 신세계가 승계했다.추신수 선수의 활약을 가까이서 자주 볼 수 있는 인천의 팬들은 행복하다. 작년에 김광현 선수를 내준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팀 전력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신세계의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로 출발하는 신세계가 인천의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선사했다고 할 수 있다.수원의 kt도 금년이 중요하다. 연속해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강팀의 반열에 오른다.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하고 팬층도 확대된다. 반면에 성적이 부진하다면 한 시즌 '반짝'한 팀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kt는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배출했다. 이 둘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로하스 주니어는 일본 한신(阪神) 타이거스로 이적했다. 신인선수는 2년 차에 부진하다는 징크스도 있다. 새로 보강된 전력도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지만 신생팀의 티를 벗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선수들의 경험과 자신감은 큰 자산이 되었다. kt야구단의 역량과 리더십을 진정으로 평가받는 한 해가 될 것이다.현재 kt는 울산에서 동계훈련 중이다. 신세계는 제주도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오는 20일부터 시작하는 시범경기를 통해 겨울동안 준비한 것을 최종 점검하고, 4월3일 개막전에 맞춰 팬들에게 최선의 기량을 선보인다.2021년. 인천과 수원 야구팬의 기대는 높다. 더 나아가 수원과 인천 연고팀의 대결이 수인선(水仁線) 더비로 발전하면 좋겠다.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의 매치, 서울의 LG와 두산의 라이벌전처럼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간다면 팬들의 관심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단, 선수들의 노력은 물론 미디어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kt와 신세계의 첫 대결은 4월27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펼쳐진다. 지겨운 역병(疫病)이 빨리 물러가고 추신수 선수를 경기장에서 직접 볼 수 있으면 야구팬들은 더 행복할 것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1-03-02 이영철

[수요광장]어머니와 다듬이질

가부장제·남존여비 심했던 어릴적어머니의 억눌린심정 달랬던 도구恨으로 맺히기전 분출시킨 두드림한밤 달빛타고 들려올 땐 제법 운치귓전에 맴도는 그리움 고향의 소리다듬이질이 있었습니다. 돌로 만들어진 다듬이 위에 옷감을 접어 올려놓고 홍두깨로 두들겨 다듬는 일이었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려웠던 시절을 살던 우리 어머니들의 말 못 할 심정을 달래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다듬이질할 때 그 내려치는 소리의 강약은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지요. 사람들은 다듬이질 소리를 들으며 그 가락의 강도로 아낙네들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우리의 어머니들은 케케묵은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관습에 얽매이고 시어머니와 시누이 등 시집 식구의 참견과 질책에 억눌려 살아야만 했지요. 말 못 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던 그 울분이 한(恨)으로 맺히기 전, 분출시킬 수 있는 것이 다듬이질이었습니다. 다듬이질 소리가 밤이 깊어질수록 요란하게 울렸던 것은 그만큼 맺힌 사연이 구구절절했다는 반증이지요.다듬이질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정말로 애원하고 하소연하는 듯 들립니다. 고혹한 달빛을 타고 들려올 때는 제법 운치가 있는 가락으로 안겨들기도 하지요.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양손에 홍두깨를 들고 박자를 맞추어 두드리는 소리는 참으로 절묘하고, 저절로 신명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자칫 방심하면 엇박자가 나기도 하지요. 네 개의 홍두깨가 섞이다 보니 조금만 소홀히 하면 서로 부딪치기도 합니다.다듬이질은 마음이 하나 되지 않으면 속도와 박자를 맞출 수가 없지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두 여인이 한 집안에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되고 며느리가 된 것은 운명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을 짊어지고 살다 보니 고운 정, 미운 정이 가슴에 쌓여 한(恨)이 되었을 테지요. 그래서 응어리진 한을 깨부수듯 어금니를 질끈 물고 홍두깨를 움켜잡아 내리치면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북받쳐 남모르게 눈물을 삼키며 울었을지도 모릅니다.애틋한 사연이 담긴 삶의 응어리를 한 자락 소리로 거침없이 풀어내는 다듬이질 소리는 바람을 일으키고 큰 산을 흔들었지요. 밀어치고 당겨치고, 맺고 풀어내며 어둠을 빛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어놓고, 정처 없이 떠돌다가 다시 또 휘몰아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꿈이나 사랑을 일깨우고 다시 돌아올 기약 없이 먼 길을 떠나버리곤 했습니다.눈 오시는 밤이면 화롯가에 둘러앉아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먹으며 눈 날리듯 정겹게 날아드는 다듬이질 소리를 들었지요.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저희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지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다듬이질로 지치셨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잠시 쉬면서 함께 군고구마를 먹으며 어머니는 가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지요. 그 얘기가 아득하게 꿈결같이 느껴질 때쯤이면 스르르 잠이 들곤 했습니다.다듬이질하는 할머니와 어머니 모습은 더없이 보기 좋았지요. 다듬이질 소리가 커지면 '무언가 못마땅하고 화나는 일이 있구나!' 숨죽이며 지켜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일없이 일정한 가락의 다듬이질로 잘 다듬어진 옷감은 가족의 옷이 됐지요. 어머니의 손길로 만들어진 옷, 그 따뜻한 사랑이 있어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귓전을 울리는 다듬이질 소리, 달빛을 타고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에 눈을 감으면 어느새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웃음 짓곤 하지요.세월이 흐르고 연륜이 더해져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의 소리를 듣는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작은 일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는 여여함도 얻게 되었지요.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들이 많이 있지만 사무치게 그리운 얼굴과 귓전을 맴도는 소리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고 다듬이질 소리는 어린 시절 기억 속 고향의 소리로 남아있지만, 문득문득 어머니와 다듬이질 소리가 그리운 것은 결코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1-02-23 홍승표

[수요광장]서정시의 비밀 지도

실존적 고투 자기 고백의 서정시는 소수 애호가들 사이에서 창작유통운명적인 명제는 요즘에 더욱 실감詩 '저녁의 노래·봄의 과수원' 보면시간 예술로의 속성 또한 분명하다코로나19가 일상화하고 있는 신산한 시대가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상수로 하면서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진단하고 정신적 지남을 제안해야 할 인문학 역시 그 물리적, 심리적 기반이 점점 약화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변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과거처럼 인문학적 지식이나 감수성이 교양인으로서 필요한 인프라로 기능하기보다는 자본 창출을 늘리는 데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지식이 도구적 합리성의 질료가 되어 자본 증식에 기여하게 된 이 시대에 인문학이 추구해왔던 지향은 '지식=자본' 등식으로 왜소화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공동(空洞) 현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시대에도 하나의 확실한 지표를 제공해 주는데,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이나 제4차 산업혁명 등을 예거하면서 운위되곤 하는 인문학의 위기 흐름일 것이다.이러한 시기에 문학의 위기 혹은 서정시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대안 없는 자기 위안의 형식이기 쉬울 것이다. 서정시가 위기 아닌 시대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서정시는 언제나 소수 애호가들 사이에서 창작 유통되었고, 근대 이후에도 예술 장르 가운데 가장 적은 수요자들을 거느려왔다. 그런데 서정시가 운명적으로 소수 독자를 가진다는 명제는 요즘 들어 더욱 실감을 더해가고 있다. 이는 서정시가 독자의 숫자에 집착했을 때 언어의 이완을 통한 감상벽(癖)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게 해준다. 다시 말해 서정시의 위기가 적실성을 얻으려면 독자 수 감소에 따른 시장에서의 소외현상이 아니라 서정시의 정체성 차원에서 의제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서정시는 시인 자신의 실존적 고투를 내용으로 삼는 자기 고백의 양식이다. 거기에는 한 시대의 주류와 대항하면서 자신만의 외따로운 개성적 사유와 감각을 통해 새로운 상상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시인 자신의 열망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서정시의 위의(威儀)를 다시 세워 보려는 고전적 열망과 깊이 닿아 있는 어떤 것일 터이다. 또한 서정시가 시간의 흐름에 의해 완성되고 그것을 향수하는 데에는 일정한 시간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시간예술로서의 서정시의 속성 또한 분명해 보인다. 타고르의 시 '저녁의 노래'는 어떠한가. "오래전에, /내가 아직 어렸을 때,/저녁이 그 평안함으로 대지를 덮듯이/그대는 그대의 사랑으로 나를 감싸주었다./저녁이 그 마력을 가르쳐준 것이었을까?/이는, 당신이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별들이 모두 나타나기에./그대는 내 자신의 숨겨진 보물을 내게 보여주고 당신 자신은 한 마디도 노래 부르지 않고, 오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노래를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이는 서정시가 탈환하는 시간이 얼마나 근원적인 것인가를 보여주는 더없는 사례일 것이다.다음 시를 더 읽어보자.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어요./당신이 안 오신다면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어요?/당신이 오신다면 또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어요?"(J. 루미, '4행시 888번') 루미의 언어는 부재를 통한 현전의 가능성을 통해, 텅 비어 있지만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떤 존재를 향한 갈망을 드러낸다. '봄의 과수원'은 꽃과 술과 촛불로 채워져 있다. '당신이 안 오신다면' 이런 것들이 소용없겠지만, 혹시라도 '당신이 오신다면' 다른 차원에서 이런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봄의 과수원'은 어떤 이유에서건 '당신'의 부재를 완성하는 사랑의 비밀 지도를 품고 있는 셈이다.어쨌든 서정시는 시간을 대상으로 시간을 원질(原質)로 하는 언어예술이다. 그 순간이란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나타난 '충만한 현재형'일 테니까 말이다. 그 충만함이 우리로 하여금 시간의 가혹한 흐름 속에서 잃어버린 서정시의 원리를 회복하게끔 유도해 갈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가능한 것 역시 그 안에 호환할 수 없는 예술적 아우라가 출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출렁임과 스며듦의 순간이 바로 우리가 서정시의 비밀지도를 읽는 빛나는 특권의 시간이 아니겠는가./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1-02-16 유성호

[수요광장]쿡방·먹방 열풍에 자극적인 미각 변화, 괜찮을까?

방송에 유튜브까지 온통 요리예능식생활이 삶의 모든 것인 양 과하다무엇보다 단짠매운 맛에 길들여져시청률만 좇다 국민건강 해칠 우려집밥을 즐기는 가족 모습이 그립다쿡방과 먹방의 전성시대다. 공중파 방송뿐 아니라 유튜브까지 온통 요리 예능이 넘쳐난다. 채널을 이리저리 아무리 돌려봐도 요리 예능이 판을 치고 있다. TV를 켜기가 싫어질 정도로 넘쳐난다. 물론 직접 요리할 형편이 못 되거나 음식을 맘껏 먹기 어려운 누군가는 요리 예능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 애써 이해하자면 혼밥이 대세인 현대인의 라이프 패턴을 반영한 시대적인 흐름일 수도 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집콕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회적 여건도 요리 예능 편성을 부추겼을 것이다.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식생활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인 듯 먹는 요리 프로를 과하게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폐해가 염려스러울 정도다. 혹자는 폐해랄 것까지 있느냐며 반문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에게 주는 부정적인 영향은 분명해 보인다. 대중 매체의 현실 구성 효과를 규명한 거브너의 '배양이론(cultivation theory)'에 의하면 'TV 시청'과 '세상에 대한 인식'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폭력물을 많이 시청하는 사람일수록 세상을 폭력적으로 인식하는 등 매체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요리 예능의 영향 역시 그리 간단치가 않을 것이다.무엇보다도 입맛 기준의 변화이다. 방송에 노출된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맛에 길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요리 예능과 대중의 입맛 변화에 대한 인과관계를 단정적으로 언급하기는 한계가 있겠지만, 대중적 미각 기준이 바뀌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시중 음식 대부분이 달고 짠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식재료에 양념은 가능한 적게 넣는 것을 즐긴다. 원재료의 식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음식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지만 필자의 요리는 자녀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너무 올드하고 밍밍한 맛이라며 '엄마나 많이 드세요'라는 식이다. 이미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탓에 집밥을 밍밍하게 느낀다. 미각 기준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고 하지만 실은 미각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리 예능에 빗대어 과하게 단맛 중심인 음식 트렌드를 장황하게 말했지만 실은 식문화에 대한 철학적 부재가 만들어낸 산물을 지적하고 싶다. 요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유행 음식에 대한 성찰도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음식에 '설탕 몇 스푼'이라는 간편 요리법을 개발(?)한 유명 셰프 탓인지, 이를 부추기는 방송 탓인지 잘 분별이 안된다. 암튼 요즘 시중 음식이 대체로 너무 달고 짜서 건강을 해칠 우려가 없다고는 못할 것 같다.더 심각한 문제는 방송 프로그램의 획일성이다. 프로를 다양하게 제작하지 않고 오로지 시청률과 트렌드만 좇아 유사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있다. 간혹 요리 프로에 새로운 시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형식을 나름 덧붙이고는 있지만, 몇몇 유명 셰프나 요리로 잘 알려진 연예인 위주의 단순 구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과도한 요리 프로그램이 국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맛을 이야기하는 달콤하고 느린 일상을 즐기며 소통하는 과정 없이 그저 먹는 행위·맛만 강조하는 먹방식 요리 프로그램이 식탐 문화를 조장하고 비만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 문제도 예사롭게 넘길 일은 아니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초고도비만 인구 비율이 특히 10~30대 사이에서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 또한 고민해봐야 할 사회적인 문제다."방송사는 왜 음식을 다루는가. 현재의 음식문화가 가진 딜레마는 무엇인가에 대한 실체적 고민 없이, 단지 시청률에 급급해 현란한 테크닉으로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음식 프로를 호되게 비판하는 어느 음식 평론가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그저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몸에 안 좋은 설탕과 조미료를 듬뿍 넣는 조리법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보다 가족이 식탁에 모여 정을 나누며 집밥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1-02-09 김정순

[수요광장]나의 시대정신

한 시대 모든 영역 관통 이념·태도이승만 '통일' 박정희 '경제발전' 등대통령의 정책공약은 '협의의 반영'그렇다면 다음 정권의 시대정신은기득권 놓은 공명정대·언행일치 ?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모든 영역에 관통하는 정신이나 이념 태도를 말한다.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은 18세기 각 유럽 민족국가의 역사발전 단계에 따른 민족정신과 결부시키며 헤겔, 괴테 등이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민주주의와 선거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대통령이나 지도자의 자격 중 시대정신을 갖춘 사람을 뽑는 것이 출신, 경력, 돈, 인성, 정책, 공약, 홍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국민들 사이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30여년 한 세대를 관통하는 광의의 시대정신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는 협의의 5년 단위 대통령 임기 중에 필요한 협의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정책공약을 일컬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가장 잘 갖추어 이를 제대로 수행하면 국민들에게도 행복한 것이고,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사람을 잘못 뽑았을 때 그 불행은 국민들에게 돌아온다.해방 이후 통일과 친일청산, 토지개혁이 시대정신이었던 시절의 이승만 대통령, 민주적 리더십의 강화와 경제 발전이 시대정신이었던 시절의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정부 수립, 기업 구조조정 등 경제 내실화가 시대정신이었던 시절의 노태우·김영삼 대통령, 정권교체와 남북평화 정착 및 지역주의 극복이 시대정신이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가 시대정신이었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적폐 청산, 남북관계개선, 일자리 창출, 복지국가 양극화 해소 주택문제해결이 시대정신인 문재인 대통령! 이분들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과 역사가 냉혹히 평가할 것이다.이렇듯 우리 정치사에서 어떤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시대정신이라는 흐름이 있다. 국민들은 시대정신을 가장 잘 체득하고 있는 지도자감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간다. 물론 국민들이 제대로 뽑은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으며, 기대에 충분히 부응한 대통령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어쩌면 이러한 권리와 책임이 사실은 뽑힌 대통령 이전에 뽑은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다.국민들이 바라는 다음 정권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의 대학 교수회가 선정한 사자성어들을 살펴보면 다음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반추해 볼 수 있다. 20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사도를 깨고 정도를 나타냄, 2018년 임중도원(任重道遠)-맡은 바 임무는 무겁고 실천할 길은 멈, 2020년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너는 틀림, 내로남불 등이다.2022~2027년 우리 대한민국을 관통할 시대정신은 무엇일까?교수들의 사자성어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정리해보면 (1)공명정대(公明正大)-부패하지 않고 기득권을 타파하며 밝고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2)실사구시(實事求是)-좌우이념, 당리당략,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으며 국민들의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느냐가 모든 정책 결정의 기준이 된다. (3)언행일치(言行一致)-불필요한 갈등과 비용을 줄이며 신용도 높은 사회로 가기 위한 대한민국 모든 분야 모든 국민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정책적으로는 (1)권력기관 간 상호감시, 고위공직자 및 사회지도층 부패에 엄벌, 지방자치로의 분권강화, 중대재해기업처벌 강화, (2)4차 산업혁명 사회에 맞는 경제, 일자리, 자영업자, 비정규직 대책 및 복지 강화, 기본소득 기반구축, 실용적 남북관계개선, 교육의 공정성과 실용성 확보, (3)고위공직자 1주택 이하 승진 인사 철저히 반영, 부동산 백지신탁, 정치인 매니페스토 공약이행률 정당공천 반영제도화, 사회지도층 주택소유 탈세 여부 범죄사실 등 자격요건 강화, 언론의 가짜뉴스 징벌적 손해배상 및 처벌강화, 유권자와 국민도 언행일치 등이 다음 정부의 시대정신에 필요한 몇 가지 대표적인 정책들이 아닌가 생각한다.이러한 시대정신을 구현할 철학과 경험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누구일까? 국민들은 고민하고 있다. 또한 나는 이러한 시대정신에 저항하는 기득권은 아닌지, 시대정신에 부합하기 위해서 내가 내려놔야 할 기득권은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겠다. 정치인 고위공직자에게는 손가락질하면서 정작 나는 어떤가? 되물으며 이 글을 마친다./김문수 경기신용보증재단 전략이사김문수 경기신용보증재단 전략이사

2021-02-02 김문수

[수요광장]마을공동체와 코로나19

감염병 종식돼도 삶의 변화는 가속일·가정 양립시대 돌봄·교육등 해법 시설이 아닌 공동체의 몫 인식 확인마을은 중앙·지방정부의 연결지대현장 소통·합의주체 정책성공 열쇠코로나19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변화는 너무 크고, 깊어서 코로나19가 깨끗이 종식된다고 해도 이전 생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전으로 복귀가 어렵다는 의견 중 하나는 변화의 폭과 깊이뿐만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 때문이다. 변화는 팬데믹시대를 겪지 않았어도 가야 할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하여 미래를 앞당겼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적극 공감하는 주장이다.고령화, 일과 가정의 양립시대를 살아가는 돌봄 문제 해법이 무엇인지를 코로나19는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대규모 시설로 노인 돌봄을 해결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시설이 아닌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어르신을 보살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이 돌봄 역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소규모 돌봄 시설과 함께 마을공동체의 역할에 많은 시민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인식이 이러한 미래시간의 앞당김을 보여준다.돌봄 문제를 넘어서 마을공동체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힘으로 작용한다. 마을은 사적 공간인 가정과 공적 영역인 국가와 지방정부를 연결하는 중간지대이다. 코로나19 대응과 피해에 대한 지원, 회복을 위한 많은 정책들이 국가 차원에서 결정되고 지방정부를 통해 각 시민들에게 이르는 길목에 마을이 있다.긴급하게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구체적 정책 내용을 설계할 때 답은 현장에 있다. 마을 현장에서 정확한 실상이 제공되고 주민들 사이의 의견 합의가 신속하게 이루어질 때 정책은 성공한다. 또한 정책 집행과정에서도 마을공동체의 힘은 발휘된다. 공적마스크 공급 과정이나 긴급 지원이 필요한 주민의 발굴, 방역과정에서 피해를 본 업소 선정, 피해 보상 지원금 지급 과정 등을 복기해 보면 마을공동체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활이 활발한 소통을 통해 이웃과 공유되고 이러한 과정을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책임 있게 추진해나간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당연히 정책 집행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추진될 수 있다. 마을공동체가 갖는 힘이다.복지 분야로 눈을 돌려봐도 마을공동체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동사무소를 행정복지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사회복지사를 추가로 배치한다고 복지 사각지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안타깝고 불행한 사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답은 간단하지만 우리는 어렵게 그 길을 가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서로를 보살필 때 복지 사각지대는 사라진다.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면 매년 반복되는 불행한 일들을 예방할 수 있다.최근 몇몇 지역에서 4년마다 수립하는 지방정부의 지역사회보장계획을 마을단위까지 확장하여 수립하고 있다. 마을 주민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복지 분야에서부터 마을공동체의 힘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활 현장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정책성과는 높아질 것이다. 초기 과정에서는 시행착오가 없지는 않겠지만 동 단위 지역사회보장 계획은 지방정부 단위의 정책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보여줄 것이다.교육 분야도 학교와 마을공동체와의 협업에 주목하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이 확산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적응하는 다양한 직업교육을 담장에 갇힌 학교 안에서만 진행할 수 없다. 직업 활동이 이루어지는 마을로 나와야 하며 마을에 있는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마을에는 수많은 자원이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생활하고 있으며 문화·역사자원을 비롯하여 생태·환경 자원도 활용할 수 있다.코로나19 위기를 통해 주목을 받고 있는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제안되어 왔다. 위기는 그 시간을 앞당겨 주었을 뿐이다.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돌봄 마을, 복지 사각지대가 없는 복지 마을, 학교와 마을이 협력하는 마을교육공동체가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만들어질 것이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전환은 코로나19가 준 교훈이다./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장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장

2021-01-26 유문종

[수요광장]"그래도 애써보자" 말의 무력함에 대하여

양부모 학대·미혼모 아이 창밖던져사건속 얘기는 일상과 꿰어져 있다살아내야하는 것은 온통 개인의 몫누군가의 가난·박탈·죽음엔 침묵가진것들에 욕망 크기는 안줄인채부모는 이혼했고 아픈 형제를 간호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휴학의 이유였다. 1년 뒤 그는 복학했다. 부모는 각자의 가정을 꾸렸고 간호는 여전히 그의 몫이다. 자취하는 친구 집에 몇 명의 친구가 모여 함께 지냈다. 휴학하던 시기에는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았고 복학할 때에는 디스크 치료까지 받게 됐다.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거나 과제를 하기 위해 앉아 있는 시간도 그에겐 고통스러웠다. 코로나19가 잠깐 주춤하던 시기, 대면 수업이 열렸다. 버스를 타고 학교 오는 길, 통증을 감당할 수 없어 중간에 택시를 탔다. 돌아가는 길에도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표정이 없었고 그만큼 이야기는 담담했다. "고생했네"란 말로 시작해서 "그래도 애써 보자"란 말로 끝낸 위로를 건넸다. 그 '말'의 순간이 문득, 그렇지만 자주 생각났다.뉴스를 보다 한 이야기가 오래 남았다. 집에 보호자 없이 남겨진 8살, 10살 형제는 화재를 피하지 못했고 8살 동생은 깨어나지 못했다. 서른 살 젊은 엄마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되어 검찰에 송치됐다. 스물에 첫 아이를 낳은 엄마는 남편 없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매달 수급비를 받으면서도 종이가방을 접고 포장작업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그마저도 일이 끊겼다. 종이가방을 접고 포장작업을 해서 버는 60만원은 더 이상 마련할 수 없었다. 첫째 아이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판정을 받았고 우울증을 앓던 엄마는 수차례 아동학대로 신고당했다. 주어는 매번 다르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사건 속의 이야기와 일상이 보이지 않는 실로 꿰어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미혼모 신분으로 아이를 기를 수 없어 입양기관에 보낸 아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했다', '자택 화장실에서 출산한 둘째 아이를 4층 창밖으로 던져 숨지게 한 이십대 엄마가 7살 아이와 함께 도주하다 잡혔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연명치료를 포기한 41살 엄마가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결국 인공호흡기를 떼어 사망했다'는 기사들 말이다.살아내야 하는 것이 온통 개인의 몫이다. 돌봐줄 부모를 갖는 것,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고 과제를 해내고 팀 프로젝트에 제 몫으로 참여하고 제때 졸업하고 취업해서 돈을 버는 것이 온전한 개인의 능력이 아님은 오늘의 일상을 통해 증명된다. '그럴만한 노력의 결과로 얻은 성공'은 그 반대, '변명의 여지 없는 뒤쳐짐', 그래서 '연민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결과'란 무의식적 신념도 함께 만들어 냈다.온종일 일해도 어떤 일들은 최저 시급에 머무른다. 아무리 원해도 누군가는 배우고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이 어렵다. 개인의 나태와 무능이 아니라 불운을 개인의 능력으로 치부하는 구조의 나태와 무능이 더 큰 원인이라는 것을 이젠 우리 모두 안다. 지나치게 화려한 공공건물들과 굳이 필요없는 더 빠른 데이터 통신망의 시절에도, 걱정 없이 배우고 큰 어려움 없이 자신과 가족을 돌보며 살아 내기 어려운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아파트 보유세 907만원이 4천754만원이 됐다는 분노는 그렇게 폭등한 세금을 가능토록 한 가파른 집값 상승과 그 이면의 목소리, 그러니까 누군가의 가난, 누군가의 박탈, 누군가의 죽음에는 침묵한다. 가진 것들에 대한 욕망의 크기를 줄이지 않은 채, 한 사람을 처벌하고 관련 법을 개선하자는 말로 쌓은 분노와 "그래도 애써보자"란 위로만으론 그이들의 비통에 닿을 수 없다./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2021-01-19 김명하

[수요광장]네비게이션이 필요한 교통방송

서울시장의 영향력하에 있는 TBS폭설 방기·1(일)합시다 중립 논란스마트폰시대 존립 근거 희박한데 정치적 편향성 노골화에 잇단 지적거짓논리 반복 객관적사고 어렵다지난 6일 폭설이 내렸을 때 TBS교통방송(이하 TBS)의 방송내용에 대해 야권 정치인이 문제를 제기했다. 긴급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통방송의 역할을 방기하고 시민에게 '고통'을 주는 방송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TBS는 폭설에 대응하여 교통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다고 해명했다. 기본편성표만 보고 실제 방송내용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했다고 반박했다.'#1(일)합시다'도 논란이다. TBS는 자사의 유튜브 구독자 증가를 위한 홍보영상이라고 설명한다. 야당에서는 4월 보궐선거를 앞둔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한다. TBS 출연자가 등장하여 푸른색의 1번 민주당을 '찍으라'고 노골적으로 선동한다는 것이다. TBS의 책임과 정치적 중립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TBS는 1990년에 출범했다. 경제성장으로 자동차가 급속도로 보급되었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주로 교통정보와 음악을 내보냈다. 세월이 변했다. 이제 운전자들은 네비게이션을 통해 교통정보를 얻는다. 교통방송의 존립근거가 희박해진 것이다. 공공조직은 탄생하기도 어렵지만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없어지지도 않는다. 조직 자체의 생존이 조직의 목표가 되어버린다. 본래의 설립 목적을 벗어나 사업 범위를 확대한다. FM방송에서 시작한 TBS는 케이블TV와 지상파DMB에 진출했고 영어FM과 중국어방송도 실시한다.여기에 정치인들의 욕심이 더해진다. 방송은 일상생활의 일부다. 정치인들이 방송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 정파를 막론하고 동일하다. TBS는 서울시장의 영향 하에 있다. 청계천 개발이 칭송되었고, 새빛섬이 찬양되었다. 정치적 편향성이 노골화된 것은 고 박원순 시장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친여 성향의 사람들이 프로그램 진행자가 되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대표적이다. 동시간대에 청취율이 가장 높지만 동시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를 가장 많이 받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이용수 할머니에게 '기자회견 냄새가 난다'(주의)가 대표적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김어준이 '수많은 거짓말'과 '온갖 음모론'을 양산하다고 지적한다. '가짜' 뉴스공장이라고 비판한다. 사실을 왜곡하고 편파적인 내용을 통해 청취자를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여 청취율을 올리는 것이다.서울시도 이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TBS를 산하기관에서 출연기관화하여 재단으로 전환했다. 방송의 독립과 운영의 자율을 보장한다는 모양새와 명분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관리감독의 최종 책임은 시장에게 있다. 이를 외면하면 직무유기다. 지난 6일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재단 이사장을 선임했다. 이사장의 임기는 3년이다.TBS는 서울시가 재원을 부담하고 운영하지만 가청지역은 경기도와 인천시를 포괄한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전파는 행정구역의 경계를 초월한다. 경인지역의 운전자들도 주요 청취층이다.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경인지역 주민들도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에 노출되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경기도는 유일하게 지역방송국이 없는 광역자치단체다. 춘천, 청주에도 TV방송국이 있다. 인구 100만이 넘는 수원에는 방송국이 없다. TV는 물론 라디오도 없다. 경기방송이 2020년 3월 사업권을 반납한 이후 지역방송이 사라졌다. 경기도의 방송, 최소한 경기방송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라디오 방송이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의회와 경기도에서도 경기교통방송에 대한 타당성 검토용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경기방송의 필요성은 적극 공감한다.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다. 경기도 전역에서 동일한 주파수로 방송을 송출하면 서울과 인천도 가청권에 들게 된다. 경기도 방송이지만 수도권방송이 되는 것이다. 방송을 이용하려는 욕망이 경기도 기반의 정치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렇지만 TBS와 같은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거짓과 편향된 논리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거기에 동화되고, 그러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사고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TBS에 대한 우려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2021-01-12 이영철

[수요광장]우생마사(牛生馬死), 우보만리(牛步萬里)

새해는 늘 새롭고 다른 설렘의 시작남탓 말고 정성을 다해 살아갑시다씨줄, 날줄 엮인 세상, 일체유심조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어요소의 우직 행보로 '여여한 세상'을새해 새 아침입니다. 붉게 솟구친 햇덩이가 온누리를 더없이 따뜻한 손길로 살포시 보듬어 감쌉니다. 새해는 늘 새롭고 다른 설렘으로 안겨오지요. 지난 한해는 '코로나19'로 우리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지난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이른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의 의미를 지닌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선정됐지요. 잘못을 서로 남 탓으로 돌리고, 상대를 비난하는 싸움만 무성했다는 방증입니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도 난무했지요. 그러나 그치지 않는 비는 없는 법입니다. 과거에 매달리면 밝은 내일은 보이지 않지요.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꿈과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겠는지요.새아침 문득, 화가 이중섭의 흰 소(白牛)가 떠오릅니다. 백의(白衣)민족의 굳은 의지와 늠름한 기상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유명하지요. 흰 소는 설산(雪山)에서 맑은 물과 향기로운 풀만 먹는 신성한 동물로, 꿈속에서 만나면 행운이 깃든다고도 합니다. 소는 한 식구와 같은 노동력의 핵심이었지요. 유순한 데다 우직하고 끈기 있게 일을 잘해 농경시대에는 최고의 역용(役用)동물이었습니다. 논밭을 파 엎고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는 열 사람 이상의 몫을 해내곤 했지요. 그런가 하면 애경사가 생겼을 때는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든든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이제 농경의 기계화로 옛이야기가 됐지만, 저에게 소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오르막 내리막 가리지 않고 늘 뚜벅뚜벅 걸어가라는 가르침을 준 존재였지요.학창 시절, 시골에서 머슴처럼 소를 키우고 농사일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는 소의 얼굴은, 힘겨움 속에서도 포근함이 가득한 어머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둠 속 워낭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의 평화로운 얼굴은 삶의 질곡을 온몸으로 견디신 아버지 모습이었지요. 입에 거품을 물고 달구지를 끌거나, 어금니를 질끈 물고 밭을 갈고 질펀한 논의 굴곡진 바닥을 써레질로 고르는 소의 뒤태는 아버지 뒷모습과 아주 비슷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논밭으로 달려가 부모님과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곤 했지요. 잔꾀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습관을 소에게 배웠고, 제 삶의 소중한 자양분이 됐습니다.'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말이 있지요. 말은 거센 물살 속에서 질주 본능으로 죽어라 헤엄치지만 제자리를 맴돌다 죽고, 소는 물살에 몸을 맡기면서 조금씩 헤엄쳐 결국 뭍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여름에도 홍수 때문에 물에 떠내려간 소가 수십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있는 것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요. 내 능력을 과신해 거센 물살을 거스르면 말처럼 익사하기 쉽고, 물살에 몸을 맡기면서 뭍으로 향해 가면 소처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말이 있지요. 호랑이가 먹잇감을 노리는 것처럼 날카롭게 상황을 판단하되 황소처럼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저는 호시는 못돼도 적어도 우보로 걷고자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올해는 우직하게 걸어가는 우보만리(牛步萬里)로 남 탓하지 말고 정성을 다해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면 더 나은 세상이 열리는 법이지요. 세상 모든 형상은 씨줄, 날줄로 엮어져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여러 상황의 흐름과 운이 조화를 이루면 좋겠지요. 일체 유심조(一切 唯心造)라,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 했습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는 법, 기쁘고 보람이 있을 일부터 찾으면 세상이 달리 보이지 않겠는지요. 가슴 속 꿈과 희망이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풍요로운 열매를 맺어 서로 나누는 넉넉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소박한 삶의 성취가 기쁨 되고 감동이 되는 여여(如如)한 세상이 되기를…./홍승표 시인홍승표 시인

2021-01-05 홍승표

[수요광장]2020년의 언론과 문학

코로나19가 '삶의 상수'가 된 요즘 언론을 보면 불균형보도 사례 심각K방역·검찰개혁 등 편향이 판친다문학은 집콕환경 영향 그나마 선전 새해는 소띠해 牛步虎視하길 대망2020년은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저물어간다. 기억할 만한 대소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곁가지에 불과했다. 이렇게 감염병 바이러스는 우리를 한 해 내내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삶의 낯선 변수가 아닌 익숙한 상수(常數)가 되어가고 있다. 올해 우리는 방역이라는 미증유의 과제로 정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의료진과 정부와 민간이 잘 협력하여 우리는 서구 선진국들의 무력한 방역 체계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태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경제불황으로 인한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지만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지금도 하루에 수만 명의 확진자가 지금도 나오는 데 비하면,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런데 많은 언론은 다른 국가와의 비교는 점점 줄여가면서 우리의 방역 초기와 현재 수치를 비교하면서 K-방역이 망했다느니 하는, 누가 보아도 한쪽으로 치우친 정략적 언어를 기사로 내보내고 있다. 피로감과 불안감에 공포감까지 얹는 것은 방역 최전선에서 혼신을 다하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정치적으로 핫이슈였던 검찰개혁에 대해서도 많은 언론은 선택적 정의에 따른 자사(自社) 이익의 보도 관행을 버리지 못했다. 현실정치 안에서 어떤 힘들이 충돌할 때는 내적 논리의 필연성과 진행 과정의 적법성 등을 잘 따져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할 터인데, 많은 언론은 아직도 무차별적 침소봉대와 저주의 악담으로 자신들만의 불가피한 생존 논리를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일간지에서 데스크와 상치되는 칼럼을 썼다고 논설위원이 좌천되고 사표까지 내게 된 것이 그 극명한 사례일 것이다. 유형무형의 광고주들과 긴밀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생존방식이 다양한 기사들의 갈등적 공존이 아니라 특정 세력의 유불리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기사들의 일률적 도열을 초래한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 언론 생태계가 이렇게까지 극심한 불균형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앞으로 이러한 균형을 찾는 것도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해진 한 해였다.대규모 청중이나 관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니 한국문학은 그래도 코로나 시대의 직접적 피해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아동 청소년과 국내소설 부문은 작년 대비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고도 한다. 연극, 영화, 뮤지컬 같은 분야에 미안할 만도 하다. 집에만 있어야 했던 강제적 환경이 책을 가까이 하게끔 했고, 그만큼 문학이 선호되는 빈도가 늘어났을 수도 있다. 내용적으로는 특별히 페미니즘의 주류화가 선명해졌고 사회적 약소자들에 대한 발견과 탐색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일국 차원의 '노동', '젠더', '몸'의 범주를 넘어 국경을 넘어서는 난민이나 디아스포라 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짐으로써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으로의 끝없는 도전과 성취를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보편성과 특수성을 잘 결합하여 세계무대에서 두루 읽히는 성과를 내기를 소망해본다. 올해에도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인 많은 어른들이 세상을 떠났다. 시인 문덕수, 소설가 남정현, 천승세, 조해일, 현길언, 박기동, 정소성, 비평가 신동욱, 김종철 선생 등이 타계하였다. 평안하시길 빈다. 또한 올해는 한국 역사의 물줄기를 근본에서부터 바꾼 6·25전쟁, 4·19혁명, 전태일 분신, 광주민주화운동 등이 동시에 70주년, 60주년, 50주년, 40주년을 맞아 근대사를 성찰하게끔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아직도 미해결인 역사적 쟁점과 그로 인한 진영 간 분쟁은 한국 사회의 갈등적 국면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갈 길이 멀다.이제 의학적으로 코로나 시대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이전의 대규모 스포츠 관람이나 군중집회 같은 방식은 2020년 이전의 역사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문화 형성의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새해 신축년은 소띠 해다. 우보호시(牛步虎視)라는 말이 있거니와 소처럼 느리게 걸으면서 호랑이처럼 단호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언론과 문학을 대망한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의 종언과 함께 근원적인 성찰과 예지를 통한 치유와 회복의 시대가 열리기를 희원해 본다./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2020-12-29 유성호

[수요광장]잃어버린 2020년을 돌아보며

올 한해는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마스크를 찾느라 허둥댔던 기억뿐연말 나눔의 김장·봉사 등 사라지고끝모를 정치권 갈등·언론 편향보도내년 이맘때는 다시 웃음 가득하길어느덧 2020년 해가 저물고 있다. 연말이면 늘 그렇지만 올해는 유독 무엇을 하면서 1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마스크는 챙겼는지 허둥댄 기억밖에 없다. 지난 21일엔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가 23일 0시부터 내년 1월3일까지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3단계로 격상되는 게 아닌지, 긴장감이 고조된다.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에 이 고비를 이겨 낼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혹시나 하면서 연말 특수를 조금은 기대했을 외식업자들의 고충은 얼마나 클지, 이들의 애로가 가늠된다는 위로의 말이 무색할 것 같다. 그렇다. 올 한 해는 나라 안팎, 모두가 코로나19로 고통스럽다. 오죽하면 2020은 '잃어버린 1년'이라고 했을지 격하게 공감된다.세계는 지금 코로나와의 전쟁으로 잿빛 공포를 경험하고 있다. 경제적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올해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4.2%로 예고했다. 더 큰 문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가 코로나 백신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백신을 구하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깜깜하고 긴 터널을 건너고 있다. 코로나 장기화로 피로감과 고립감으로 우울감이 깊어진다고 한다. 이처럼 코로나는 우리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내몰면서 연말 세시 풍속까지 바꿔놓고 있다.실제로 연말 이맘때면 어김없이 등장, 뉴스를 장식하던 장면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취를 감추었다. 빨간 장갑을 끼고 단체로 오손도손 모여 앉아 김치를 담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풍경은 볼 수 없다. 대기업의 임직원들이나 봉사 단체 회원들이 좁은 골목길에 긴 줄로 서서 땀을 흘리며 연탄을 나르는 모습도 사라지는 풍경 중의 하나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그 앞에서 돈을 넣으려고 줄 서는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이쁜 손은 보기 힘들 것이다.이 모두가 코로나 감염 우려 때문에 사라지는 풍경이다. 사회가 아무리 어려워도 연말 뉴스를 통해서 전달되는 크고 작은 선행들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준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가슴을 훈훈하게 녹이기 충분하다.그런데 올해는 우리 마음을 녹이는 따듯한 풍경이나 나눔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갈등으로 얼룩진 불편한 뉴스만 넘쳐난다. 정치권의 끝 모를 진영 싸움에 여·야 갈등 양상은 해가 가도 끝낼 기미가 없어 보인다.갈등이 정치뿐일까? 언론의 편향적 보도도 갈수록 수위가 높아 간다. 설상가상, 얼마 전에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킨 '성범죄자 조두순'의 출소를 둘러싼 장면은 가뜩이나 편치 않은 우리 사회를 더 불편하게 했다. 그야말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속죄하는 모습 대신 마치 유명인사라도 되는 양, 뒷짐 지며 인사하는 '조두순'의 출소 장면은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했다. 게다가 국민적 불안과 분노 사건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유튜버의 보도 행태는 더 불편했다. 24시간 '조두순'에 대한 밀착 감시가 얼마나 잘 이루어질지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성범죄는 본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범죄의 유형 중에 재범률이 특히 높다는데 관련 대책은 또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 건지 답답할 뿐이다.올 한해 우리 사회 이슈나 주요 키워드 중에 세계적인 쾌거로 국민을 기쁘게 해준 좋은 뉴스도 많은데 필자가 혹여 너무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BTS'의 세계적인 성공,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그랬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의 자랑스러운 쾌거는 국민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구세군 종소리가 애달픈 연말이다. 저만치 멀어져가는 2020년 끝자락에서 필자 자신을 되돌아본다. 올해는 필자에게도 어려운 일이 많았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고 이들에게 따듯한 손길을 내미는 필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훈훈하고 행복해진다. 올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후회나 허탈감 대신 뿌듯함이 느껴지는 마무리를 다짐하면서, 내년 이맘때는 우리 모두 눈물 나도록 웃을 수 있는 기쁨이 가득하기를 소망해 본다./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2020-12-22 김정순
1 2 3 4 5 6 7 8 9 10
  • 강원일보
  • 경남신문
  • 광주일보
  • 대전일보
  • 매일신문
  • 부산일보
  • 전북일보
  • 제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