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평택항 대학생 사망사고

지난달 25일 새벽 반포한강공원에서 의대생 손정민(22)군이 실종됐다. 함께 술을 마신 친구는 손군이 한강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잠을 자다 사라졌다고 했다. 손군 아버지가 생사확인에 나섰고, 5일 만에 서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사고사와 타살 가능성 모두를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이 사고는 억측과 소문이 유난하다. 언론은 손군만 아니라 그를 불러낸 친구의 가족, 신상, 행동까지 집요하게 추적하며 의혹을 제기한다. 손군 시신을 옮기는 장면과 장례식이 중계방송하듯 보도됐다. 손군과 친구가 나눴다는 미확인 대화가 소셜네트워크에 올라와 특정 단어의 의미를 확인하려는 문의가 잇따랐다. 친구 아버지 신상은 탈탈 털렸고, 공중파 방송은 시사고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제보자를 찾고 있다.지난달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대학생 이선호(23)군이 작업 도중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손군이 실종되기 3일 전이다. 그는 용역회사 지시에 따라 적재물 정리작업을 하다 개방형 컨테이너에 몸이 깔려 숨졌다. 군 제대 뒤 용돈이라도 벌겠다며 막노동을 자처했다고 한다. 유족과 친구들은 날개만 300㎏인 컨테이너 작업을 하는데 안전장비는 물론 안전교육도 없었다고 주장한다.이 사고는 한동안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몇몇 일간지에 단신으로 보도됐을 뿐이다. 가족은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규명을 통해 억울함을 풀어달라 호소했다. 시민·사회단체가 나서면서 뒤늦게 후속 보도가 나왔다.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자 정치권이 가세하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빈소를 방문했다.비슷한 또래의 20대 청년이 잇따라 변을 당했다. 그런데 세상은 한강에만 주목할 뿐 평택은 관심 밖이다. 서울 소재 대학 엘리트 의대생에, 정확한 사고 경위가 오리무중인 미스터리가 이목을 끈 요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단 몇 푼이라도 벌겠다며 노동현장에 뛰어든 젊은이의 허망한 죽음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사고 뒤 이군 누나가 SNS에 가슴 먹먹한 사연을 올렸다. 부모에게 손 안 벌리겠다며 작업장에 가면서도 시험공부를 하겠다며 노트북을 챙겼다고. 투병하는 9살 차이 큰 누나를 끔찍하게 돌봤는데, 정작 부모는 차마 (사망 사실을) 말도 못해 모르고 있다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헬(Hell) 조선'이라 외칠만하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1-05-10 홍정표

[참성단]'이한동'과 '중부권 대망론'

경기도의 정치 거목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11대부터 16대 국회까지 6선 국회의원에 신한국당 대표, 한나라당 대표,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내무부 장관,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정계와 관계에서 일군 화려한 이력이 보여주듯이, 한 시대 경기도 정치를 대표했던 '인물'이었다.1988년 새내기 기자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출입하면서 처음 마주한 이한동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전형적 정치인이었다. 거구임에도 반듯한 체형은 균형이 잡혔고, 걸걸한 목소리는 조리있는 언변을 따스한 인정으로 감쌌다. 그는 설득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야당과 일이 꼬일 때마다 이한동이 원내협상을 진두지휘하는 원내총무에 발탁된 이유다.1989년 12월31일 전두환의 국회증언은 그의 정치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민정당 원내총무로서 백담사의 전두환을 설득해 국회 증언대에 세웠다. 통일민주당의 노무현은 명패를 던지고 평화민주당의 이철용은 "살인마 전두환"을 절규했다. 대의기관인 국회의 전두환 심판으로 한 해를 마치고 곧바로 이어진 3당 합당과 민자당의 출현으로 정치지형은 안정화된다.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의 집권여당에서 원내총무와 당 대표를 지낸 그는 극단적인 지역갈등 정치의 탈출구를 제3지역에서 찾았다. 수도권과 충청권의 합리적인 중도 민심을 정치의 주류로 만들어 통합의 정치 공간을 열고자 했다. 역동정치론, 국민통합론을 거쳐 완성된 '중부권 대망론'으로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다. 하지만 이인제에 뒤진 3위로 분루를 삼켰고, DJP연합정권의 국무총리로 정치인생의 정점을 찍은 뒤 2004년 정계를 은퇴했다.지금 정치는 이한동 시절의 정치와는 다르고도 같다. 여야가 낮엔 싸우느라 얼굴을 붉히고, 밤엔 문제를 풀기 위해 한 잔 술로 얼굴이 붉어졌던 낭만적 협치의 문화는 사라졌다. 반면에 도로 영남당, 다시 호남당이라는 지역 편파적인 정치구조는 여전하다. 합리적인 수도권 민심은 여전히 비주류로 머물고, 수도권 뜨내기 의원들이 균형발전론을 방관하는 동안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전국으로 흩어졌다.우리 정치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며 중도적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이한동의 중부권 대망론은 정치적 숙제로 남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5-09 윤인수

[참성단]무개념 주차 횡포

수년 전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캠리 승용차로 막아선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진출입로가 막힌 입주민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50대 여성운전자는 자신의 차에 관리사무소가 불법주차 경고스티커를 붙인 것을 사과하지 않으면 차를 빼지 않겠다고 버텼다. 경찰은 승용차를 이동해달라는 민원에도 일반도로가 아닌 아파트 단지라며 견인하지 않았다.공분한 주민들은 차를 들어 올려 인도로 옮기고 차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차량 외부는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마세요' 등 주민들이 붙인 스티커로 도배됐다. 관리사무소는 정당한 조치였다며 운전자를 일반교통방해죄로 고발했다. 이 여성은 나흘 만에 사과했으나 법원은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최근 인천에서 '무개념 주차 횡포'가 잇따라 재림했다. 지난 4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송도의 한 아파텔 벤츠 차량의 주차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실렸다. 공동주택 주차 공간이 아닌 통행로를 가로막은 승용차에는 '주차위반 경고스티커를 붙이지 말라'는 내용의 협박성 메모까지 붙어 있었다. 고발자는 사진 4장과 함께 "욕과 함께 딱지 붙이지 말라고 써놨네요.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지난달 미추홀에서는 벤틀리 차량이 이중 주차를 해 다른 차량이 다닐 수 없게 하거나 경차 전용 공간 2개 면을 독차지해 빈축을 샀다. 운전자는 경고스티커를 붙인 것에 화를 내면서 경비원에게 반말과 욕설을 했다. 송도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세워진 아우디 승용차 운전자는 '토요일 스티커 붙이면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 붙이지 마라. 정말 화나니까'란 메모를 남겨 주민들이 어이없다고 혀를 찬다.황당 주차 사례를 보면 고가의 외제차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운전자의 행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적반하장(賊反荷杖)일 거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행태를 나무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폭언과 폭력, 협박을 일삼는다. 일그러진 플렉스(Flex) 문화의 폐해일 수 있다.지하주차장은 법상 도로가 아니기에 교통법의 사각지대다. 다중집합장소나 공동주택 주차장에서 다른 차를 막거나 주차구역이 아닌 곳에 주차해도 견인이나 처벌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 얼마 전 한 운전자는 외제 차에 보복 주차하려다 수리비 150만원을 물어줘야 했다.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홍정표 논설위원

2021-05-06 홍정표

[참성단]대통령의 명예

명예에 목숨 걸던 시대가 있었다. 푸시킨은 아내 곤차로바와 염문설이 돌던 프랑스 장교 당테스와 결투를 벌여 총상을 입고 이틀 만에 사망했다. 마크 트웨인은 언론인 시절 경쟁사 언론인과의 설전 끝에 결투를 신청받자 죽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사격 솜씨가 형편 없었던 것이다.모욕적인 상황에서 명예의 훼손을 인내하기란 쉽지 않다. 명예는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다. 명예를 훼손당하면 사회에서 자존감을 유지하기 힘들다. 하다못해 뒷골목 건달들도 양아치를 경멸하며 족보의 명예를 지킨다. 모욕을 당했다고 목숨을 걸고 결투를 벌였던 푸시킨의 시대는 끝난지 오래다. 모욕당한 명예를 회복하려면 법정 결투, 즉 법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 형법은 명예훼손, 사자의 명예훼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모욕을 모두 죄로 규정한다. 단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면 죄가 안 된다고 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다. 또 반의사 불벌과 친고 원칙을 규정했다. 명예훼손과 모욕은 피해자가 참거나 무시하면 그만이라서다.문재인 대통령이 2년 전 자신을 "북조선의 개"라고 모욕했다며 30대 청년에게 제기했던 고소를 지난 3일 취소했다. 대통령이 국민을 고소한 유례 드문 일이 뒤늦게 알려지자 난리가 났다. '대통령 욕도 못할 세상이 됐느냐'는 놀라운 반응이 대세였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던 과거 발언의 진정성도 도마에 올랐다.문 대통령이 "모욕적인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국민) 지적"을 수용한 것은 늦었지만 천만다행이다. 대한민국 최고위직 공인인 대통령과 30대 청년의 법정 결투는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대통령 입장에선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닐테고, 진다면 국민 볼 면목을 잃었을테다. 명예를 회복하려다 명예를 잃을뻔 했다. 조만대장경 전과 후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회적 평판이 달라졌듯이, 공인들의 명예는 대부분 제 스스로 무너진다.지금도 궁금한 건 국민 고소가 대통령의 진의였는지다. 푸시킨과 마크 트웨인이 결투에 목숨을 걸었던 건 주변에서 부추긴 탓도 컸다. 마크 트웨인은 결투가 무산돼 목숨을 건지고 난 뒤에는 재미 삼아 결투를 부추기는 사람들을 증오했다고 한다.만일 대통령의 국민 고소를 부추긴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 사람들이 바로 대통령의 적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5-05 윤인수

[참성단]백신 주권(主權)

코로나19와 백신은 요즘 최고의 화두다. 백신 수급 불안이 불거지면서 방역 정책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백신은 1796년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의 우두법에서 비롯됐지만, 천연두를 막기 위한 의학적 노력은 15세기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두법(人痘法)이라고 해서 천연두 환자의 고름이나 딱지를 코로 흡입하는 중장묘법이나 천연두에 걸린 환자의 옷을 빌려 입는 의묘법 등이 중국에서 시행된 바 있다. 병원성이 낮은 병원체를 이용하여 면역력을 얻는 방법을 백신 접종이라 하는데 백신이라는 말은 암소를 가리키는 라틴어 백카(vacca)에서 유래했다. 이 우두법으로 에드워드 제너는 '백신의 아버지'로 통한다.백신이 보편화하기 이전 인도에서는 천연두를 일으키는 악마 즈바라수라(Jvarasuera)를 물리치기 위해 여신 시탈라(Shitala)를 숭배하기도 했고, 우리의 경우에는 천연두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마마를 주관하는 신령인 호구별상마마를 달래는 마마배송굿 또는 손님배송굿을 벌이기도 했다.우두법이 나오기 전까지 천연두의 위세는 엄청난 것이었다. 전 지구적으로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14~16세기 멕시코에서 번성했던 아스테카 문명은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군이 퍼뜨린 천연두로 인해 멸망하고 말았다.K-방역으로 성가를 올린 신속 진단키트·마스크쓰기·사회적 거리두기는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 집단면역을 확보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방법은 백신 접종과 치료제 개발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에 불거진 백신 부족으로 인한 접종 차질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 이유가 백신 자국우선주의의 탓도 있지만, 백신 수급과 관련한 당국의 대처방식과 방역행정이 못내 아쉽다.앞선 국가들을 따라잡는 추격형 성장이나 세컨드 웨이브 전략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백신 개발, 신약 개발 등 기초분야에 대한 보다 더 과감한 투자와 지원정책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팬데믹 시대는 정치적 주권 못지않게 백신 주권도 중요하다. 이번 사태가 백신 주권을 확보하고, 정책을 되짚어보는 방역행정의 백신이 되길 바란다. /조성면(객원논설위원, 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1-05-04 조성면

[참성단]'이건희 컬렉션' 이동작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이것은 강도다: 세계 최대 미술품 도난 사건'은 미국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도난 사건을 다룬다. 경찰관 복장을 한 2인조 남성 용의자가 경비원을 제압해 포박한 뒤 81분 동안 내부를 돌면서 13개 작품을 훔쳐 유유히 사라졌다. 사건은 '성 패트릭 날'인 1990년 3월18일 새벽에 발생했다.도난당한 명화는 렘브란트, 마네, 드가 등 전설적인 거장들의 작품이다. 가치를 환산하면 현재 감정가로 5억 달러(약 5천600억원) 수준이고, 당시로는 2억 달러로 평가된다. 박물관 측은 1천만 달러란 거금을 보상금으로 내걸었으나 30년이 지나도록 미제로 남아 있다.범인들은 고가의 미술품을 겨냥했으나 부주의하며 거칠게 다뤘고, 가치가 높지 않은 화병을 가져가기도 했다. 용의자 추정을 헷갈리게 하려는 의도된 행동으로 추정된다. 4부작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는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뒤 박물관의 허술한 관리 실태를 조명하고 누가 훔쳤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당국의 압박으로 입지가 좁아진 보스턴 지역 마피아 단체 소행으로 추정했으나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국립중앙박물관이 이건희 컬렉션 이동작전에 돌입했다고 한다. 물동량은 자그마치 고미술품 2만1천693점이나 된다. 호암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양쪽에 소장된 유물을 중앙박물관 수장고 내 별도 공간으로 '훼손 없이 안전하게' 옮기는 유물 대이동이다. 작전 수행에 도움을 주려 삼성 측은 무진동 차량 등 유물 전문 운송 차량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중앙박물관은 기증 유물 보관을 위해 1천㎡ 규모의 '이건희 수장고'를 마련했다고 한다. 온도는 물론 지진과 화재에도 피해가 없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워낙 방대한 수량에 작업 과정이 까다로워 이동을 마치더라도 등록까지는 2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중량이 큰 석조물들은 아직 목적지를 정하지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고가의 예술품은 장소를 옮길 때가 가장 위험하다. 신출귀몰한 절도수법은 영화와 소설의 단골 소재다. 가드너 박물관 사건은 보안장비가 허술하기 짝이 없던 수십 년 전 일이다. 첨단 감시장치로 들여다보는 지금 여건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더라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다중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세상에 완벽한 안전은 없기 때문이다./홍정표 논설위원

2021-05-03 홍정표

[참성단]노동의 위기

지난 1일 노동절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노동단체들의 집회와 행진이 벌어졌다. 코로나 재난으로 인한 구조조정을 반대하고, 비대면 사회를 지탱하는 플랫폼 노동자와 서비스 노동자들의 권리향상 등 노동계의 요구가 빗발쳤다. 민주노총은 하반기 총파업도 예고했다.소년 노동자 출신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 대한민국의 노동이 위기에 놓였다"며 "땀흘려 일한 근로소득으로는 급격히 벌어지는 자산격차를 따라갈 수 없어, 대한민국은 땀의 가치가 천대받는 사회로 전락해가고 있다"고 했다.이 지사가 우려한 대한민국 노동의 위기는 청년세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MZ세대는 노동의 가치에 절망한 상태다. 경실련 분석대로라면 임금 노동자가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36년을 모아야 한단다. 이 정부 들어 15년이 늘었단다. 임금의 30%를 저축해 아파트를 사려면 118년이 걸린다니 평생 노동해도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고 죽는 셈이다.프랑스 격언에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노인은 추억에 산다'는 말이 있다. 노동의 가치에 절망하고 분노한 대한민국 청년들이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키운다. 곳곳에서 터지는 성공사례가 이들의 희망봉이다.떼돈을 번 일부 동학개미, 서학개미를 추종하는 개미군단들이 주식시장의 큰 손이 됐다. 밤새워 미국 주식을 거래하느라 직장에선 졸고 있는 청년 직원들이 주식시장이 탄광이라면 가상화폐 시장은 금광이다. 수개월, 수년 사이에 수십, 수백억원의 투자 차익을 챙겼다는 대박 사례가 속출한다. 400억원의 비트코인 수익을 내고 퇴직을 선언한 '삼성전자 형'의 뒤를 잇겠다는 수많은 청년들이 코인 광풍에 몸을 실었다.적금을 깨고 대출 받아 주식과 가상화폐에 영혼을 바친 청년들의 눈에 핏발이 서렸다. 투자환경에 영향을 미칠 정책에 불을 켜고 반대한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주식 공매도로 주식시장이 철렁 가라앉으면 난리가 날 것이다. 정부와 여야 정당은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가상화폐 규제를 머뭇댄다.부동산이 노동의 가치를 조롱하자 청년들이 영혼을 투기의 제단에 바치고 있다. 신성한 노동으로 기적을 이룬 나라의 현실이라기엔 너무 암담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5-02 윤인수

[참성단]자녀의 성(姓) 결정권

1980년대 소개팅이나 미팅 자리에서 청춘들은 호구조사가 먼저였다. 단일 본 성씨인 경우 같은 성을 가진 이성이 나오면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다. 오랜 세월 동성동본(同姓同本) 간 혼인은 관습상 금기시됐고, 법으로도 금했다. 동본이란 죄로 혼인신고를 못해 자녀에게도 피해가 대물림되는 등 폐해가 심각했다. 극단적인 선택도 많았다. 여성·시민단체가 나서고 각계의 진정이 잇따랐다. 2005년 법이 폐지되면서 8만여 쌍이 족쇄를 벗어났다고 한다.호주제(戶主制)는 승계 순위를 아들, 딸(미혼인 경우), 처, 어머니, 며느리 순으로 정해 남아 선호 풍조를 조장했다. 가족 구성원이 호주에게 종속돼 자율성과 존엄성을 부정하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해쳤다. 여성은 혼인 전엔 아버지 호적, 결혼 뒤 남편 호적, 남편 사망 뒤 아들 호적에 올랐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를 깨부수겠다며 한 이혼녀가 낸 위헌소송이 헌법불합치로 결정되면서 2000년대 후반 폐지됐다.자녀의 성(姓)을 정할 때 부모 협의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부성(父姓)이든 모성(母姓)이든 상관없이 자율 결정이 가능해지는 거다. 자녀의 성을 결정할 시점도 혼인신고가 아닌 출생신고 때로 바뀐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의 핵심 내용이다. 다양성과 보편성, 성 평등을 지향하면서 수혜자를 혼인·혈연관계 중심의 '정상가족'에서 벗어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부성 우선주의'를 벗어나자는 취지에서다.'혼인 중 출생자'와 '혼인 외 출생자' 구분도 폐기된다. 법률혼과 혈연가족 밖에 있는 비혼 동거 등 가족 형태도 법·제도 안으로 들어온다. 비혼 여성의 단독 출산을 위한 사회적 논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방송인 사유리로 인해 관심이 높아졌으나 여성 단독 출산을 위한 정자 기증은 불가능하다.성리학(性理學)을 추앙한 조선 시대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극성기였다.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내쫓을 수 있는 권리(칠거지악·七去之惡)를 줬다. 불과 100여 년 전이다. 서울·부산시장 보선 뒤 20대 페미니즘 논란이 뜨겁다. 여성 할당제에 맞서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군 입대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 평등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고 법 틀을 바꿔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1-04-29 홍정표

[참성단]'이건희 컬렉션'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가족들이 28일 전무후무한 상속세 납부와 사회환원 계획을 공개했다. 우선 26조원이라는 이 회장의 유산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들이 납부할 상속세 12조원은 지난해 정부 상속세 세입의 3~4배란다. 서민들에겐 비현실적인 숫자다. 사회환원 계획도 역대급이다. 감염병 예방 인프라 건설과 소아암·희귀질환 어린이 환자를 위해 1조원을 기부한다.하지만 압도적인 현금의 향연도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 비하면 초라하다. 유족들은 이 회장이 수집한 1만1천여건, 2만3천여점의 미술품을 국·공·사립 박물관, 미술관에 기증한다. 작품 면면이 경이롭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1393호)'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은 물론 모네, 피카소, 르누아르 등 국내외 근·현대회화 거장들의 명작들이 즐비하다.호사가들은 3조원가량이라는 감정가를 놓고 입방아를 찧지만, 당대 최고라는 '이건희 컬렉션'은 실제 시장 가격에 호환불능의 무형의 가치를 더하면 금액으로 환산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미술계가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경악할만한 사건으로 평가하는 이유다.가장 큰 수혜자는 지정문화재 60건을 포함해 고미술품 2만1천600여점을 기증받는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조 단위의 작품과 유물들을 거저 받아 국립의 품격과 위상이 치솟았다. 올해 소장품 구입예산 40억원으로는 꿈도 꿀 수 없던 일이다. 국내외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 1천600여점을 기증받는 국립현대미술관은 비로소 근·현대 회화의 역사성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모네, 달리, 피카소, 샤갈, 르누아르, 고갱의 작품은 '덤'이라기엔 배보다 큰 배꼽일테다. 제주도의 이중섭미술관도 이번 기증으로 제대로 '이중섭미술관'이 될 모양이고 대구미술관·전남도립미술관·박수근미술관도 이름값이 가능해졌다.박물관, 미술관만 횡재한 것이 아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국민 모두가 수혜자다. 정부가 감사 성명을 발표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건희 유족들의 '이건희 컬렉션' 기증은 80여년 삼성 역사의 모든 치부를 상쇄할만한 결단이다. 색안경을 쓰고 볼 이유가 없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4-28 윤인수

[참성단]시대착오적인 군대 밥상

1812년 러시아 정벌에 나선 나폴레옹의 군대는 모스크바를 점령할 때까지는 천하무적이었다. 하지만 식량 보급선은 끊어지고 모스크바엔 먹을 것이 없었다. 식량 대신 약탈품을 가득 채운 군대는 퇴각하면서 자멸했다. 거란군은 호기롭게 고려 국경을 넘었지만 식량 한 톨, 물 한 모금 남기지 않은 고려의 청야전술에 배를 곯다가 퇴각하던 중 귀주에서 강감찬에게 몰살당했다. 최강의 군대도 병사가 굶주리면 순식간에 당나라 군대가 된다.6·25 전쟁 때 정부가 급조한 국민방위군은 식량 없는 군대의 비극을 보여준다.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북한 인민군의 전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방위군을 설치한다. 60만여명의 수도권 장정들이 국민방위군에 편입돼 부산 등 후방 집결지로 행군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와 군 고위층이 국민방위군 예산을 횡령했다. 구걸로 연명하는 국민방위군의 행군은 죽음의 행렬이었다. 엄동설한에 굶어 죽고 얼어 죽은 장병이 수만명으로 추정될 뿐 70년 가까이 비극의 진상과 보상은 전설로 희미해졌다.최근 부실한 군대 급식을 고발하는 병사들의 제보 사진과 글들에 정부를 성토하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휴가 후 귀대해 자가격리 중인 병사들에게 제공된 도시락 사진들은 기막히다. 밥반찬으로 나물 한 줌과 깍두기 두 조각, 통조림 햄 한 조각에 김 몇 장이다. 노숙자 무료급식도 이보다 낫다 싶어 부아가 치민다. 1천원짜리 생일상 사진도 가관이다. 생일 병사에게 제공해야 할 1만5천원짜리 케이크 대신 생일 초를 꽂아넣은 1천원짜리 빵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경인일보가 보도한 군부대 생일병사 떡케이크 납품 문제(3월23·24일자 1면 보도)는 괜한 지적이 아니었다.카투사를 선망했던 시절이 있었다. 미군과 같이 먹는 급식이 한국군의 '짬밥'과는 천지 차이였던 이유도 컸다. 하지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고, 군대 밥 좋아졌다고 믿은 지도 꽤 됐다. 그만큼 부실한 병영급식 사진들은 충격적이다. 장병 1인의 한 끼 단가가 2천930원으로 중·고교 급식단가의 절반이라니 한참 잘못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조원짜리 공항 건설을 결정하는 나라의 군대에서 줄 밥상과 생일상이 아니다. 남성만의 국방의무가 역차별이라는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시대착오적인 군대 밥상이 기름을 부을까 걱정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4-27 윤인수

[참성단]배우 윤여정의 조연

두 살 터울인 조영남과 윤여정은 70년대 초, 음악다방에서 처음 만났다. 피아노 앞에 앉은 조영남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윤여정은 '한국에도 저렇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천부적 재능에 감탄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1974년 결혼해 두 아이를 두었으나 1987년 이혼했다. 윤여정은 육아를 위해 연예활동을 접고 미국행을 택할 정도로 가정에 충실했으나 조영남이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면서 파경을 맞았다.얼마 전, 조영남이 방송에 나와 "내가 바람을 피워 이혼한 것이다. 그때(일이) 이해가 안 된다. 왜 애들을 두고 바람을 피웠는지 이해가 안 된다. 머리가 나쁜 거다.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지난날을 후회하는 듯한 발언이다. 그와 친하다는 방송인 유인경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혼 뒤에도 워낙 미련을 못 끊고 있으니 가수 이장희의 권유로 꽃을 보냈는데, '한 번 더 갖고 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는 거다.윤여정이 1980년대 한인(韓人) 가정의 미국 이민사를 그린 영화 '미나리'로 2021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윤여정은 '다른 후보들과 어찌 경쟁이 되겠는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했다. 두 아들이 일하러 나가라고 해 열심히 일했는데 고맙게도 상을 받게 됐다고 해 박수를 받았다.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은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됐다. 1957년 영화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두 번째 아시아 배우다.방탄소년단을 앞세운 K-팝에 이어 K-무비가 주목을 받는다. 지난해 한국 영화 '기생충'은 감독상과 작품상 등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올해는 미나리가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유통망을 가진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국내 작품이 최상 순위에 자주 오른다.윤여정은 데뷔 첫해인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군인이던 조영남은 짧은 머리를 하고 시상식에 나와 축하해줬다. 옛 연인이 세계적인 연기자 반열에 오르는 장면을 TV로 지켜봤을 것이다. 이번엔 축하 자리에 함께 할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배우 윤여정의 인생역정에 조영남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평생 못 잊을 애증의 상대가 있었기에, 삶의 질곡이 녹아든 연기(演技)가 농익은 건 아닐까. /홍정표 논설위원

2021-04-26 홍정표

[참성단]가상화폐의 미래

"내가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다." 지난해부터 경제, 금융 전문가들이 국내 주식시장과 가상화폐 시장의 거품을 경고할 때마다 인용된 아이작 뉴턴의 한탄이다.뉴턴은 18세기 초 설립된 남해회사 주식을 샀다. 영국 정부의 채권을 인수하는 대신 남미와의 무역독점권을 보장받은 주식회사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노예무역이 무산되자 남해회사는 대정부 로비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주식을 공개한다. 회사는 금광 발견 등 가짜뉴스까지 퍼트려 주가 상승에 올인했다. 국민 사이에 주식 매수 광풍이 불었다. 뉴턴도 차익을 실현한 재미에 추격매수에 나섰던 모양이다. 하지만 거품은 꺼졌고 뉴턴도 2만 파운드, 지금 돈으로 20억원을 날렸단다. 이 모든 일이 1720년 한 해에 있었던 일이다.지난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적대적 발언으로 가상화폐 시장은 벌집을 쑤신 형국이다. 은 위원장은 가상화폐를 금융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고 투자자 보호계획도 없으며 상당수 가상화폐 거래소가 폐쇄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가상화폐 거래에 과세한다는 방침은 분명히 했다.시장의 반응은 확연하게 엇갈린다. 은 위원장의 경고를 가상화폐 시장의 버블을 경계하는 확실한 경고등으로 받아들이는 투자자들은 차익 실현에 나섰다. 이 때문에 대장 코인인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했다. 하지만 주말을 지나면서 가상화폐의 가치를 지지하는 투자자들의 저항으로 보합세가 유지되고 있다. 주식에서 가상화폐로 갈아탄 20대들은 "조폭도 자릿세를 받은 상인은 보호해준다"며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언급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가상화폐의 미래는 오리무중이다. 지금은 카지노 칩처럼 투자자에게만 의미있는 화폐다. 칩이 카지노 밖에선 플라스틱 쪼가리에 불과하듯, 비트코인도 실물 시장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 투자가 계속 유지되려면 가상화폐 가치가 무한하게 상승해야 하는데, 세상에 그런 재화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카지노 조명이 꺼지고 화투판 담요를 걷어 버리면 칩도 바둑알도 무의미해진다. 화폐 발행권을 쥔 정부가 "이제 끝"을 외치면 정말 끝이다.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 투기 파동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투자자는 튤립을 보지도 못한 채 돈을 날렸었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4-25 윤인수

[참성단]'유럽축구 슈퍼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 중 최강 리그는? 독일·영국 리그는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거친 몸싸움이 특징이다. 스페인은 화려한 개인기에 고난도 기술축구가 돋보이고, 이탈리아는 빗장 수비에 이은 반격이 매섭다. 장·단점이 분명하고 개성이 강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유럽 축구리그 수준을 간접 평가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 UEFA 챔피언스리그다. 각국 리그 최상위 32개 팀이 참가해 예선리그와 토너먼트를 거쳐 우승팀을 가린다. 유럽 명문 구단의 각축장이자 천문학적 매출이 뒤따르는 꿈의 무대다. 유럽 축구팬들은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대회보다 챔피언스리그에 더 열광한다.지구촌 축구팬을 놀라게 하는 뉴스가 나왔다. 축구 슈퍼리그(ESL)의 출범 소식이다.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 등 프리미어 리그 6개 구단과 AC밀란, 인터 밀란, 유벤투스(이상 이탈리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이상 스페인) 등 12개 구단이 참여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자본인 JP 모건이 46억 파운드(약 7조2천억원)을 투자한다는 속보가 전해졌다.리그 운영방식은 챔피언스리그와 유사하다. 15개 팀이 주말 경기를 벌인 뒤 상위 팀끼리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린다. 오는 8월에 시작해 내년 4월까지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 등 슈퍼스타들이 뛰게 된다. 주말마다 챔피언스리그 수준의 게임을 볼 수 있다.하지만 영국은 물론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 각국 축구협회가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참가 구단은 기존 리그에서 퇴출하고, 소속 선수는 각종 대회 참가를 막기로 했다. 프리미어리그 6개 구단은 즉각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탈퇴를 선언했다. 슈퍼리그 출범 자체가 어렵게 됐다.'꿈의 리그'를 향한 당찬 도전은 멈춰 섰다. 빅(Big)클럽 위주의 폐쇄적인 리그 운영에 비판 여론이 거세고, 양대 축구 연맹이 가로막는다. 하지만 허를 찔린 담대함에 놀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재주는 구단·선수가 부리고, 수익은 연맹이 챙긴다는 불만이 크다. 돈과 권력에 취한 FIFA와 UEFA에 구단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혁명이 실패했다고 꿈이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1-04-22 홍정표

[참성단]양주시 노인의 기적

총격으로 머리 관통상을 당하고도 살아남기는 힘들다. 총기 난사 사건이 일상인 미국에선 드물지만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 2012년 70여명의 사상자를 낸 콜로라도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 패트라 앤더슨은 4발의 총알을 맞았고, 1발은 코를 관통하고 뇌를 관통해 두개골 뒤편에 박혔다. 하지만 총알 제거 수술을 받고 회복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신의 보호"라 했다.2001년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은 더욱 극적이다. 범인은 연방 하원의원 개비 기포드를 표적으로 삼았다. 6명이 희생됐고 기포드 의원도 총알이 뇌를 관통하는 중상을 당했다. 하원의원을 노린 총기 난사에 미국인은 충격에 빠졌고 그녀의 쾌유를 기원했다. 신의 가호인지 수술은 성공했다. 하지만 언어장애와 실명 등 심각한 후유증으로 의원직은 사퇴했다. 이후 총기규제 전도사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최근 양주시의 박모씨에게도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5일 70대인 박씨는 유해조수구제단원이 발사한 산탄에 총상을 입었다. 1발의 산탄엔 다수의 총알이 들어있어 목표물 공격 반경을 넓혀준다. 피해자는 신체 여러 곳에 총상을 당했는데 총알 1개는 우뇌를 관통했다. 양주소방서 구급차는 피해자를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에 신속하게 이송했다. 외상센터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수술을 무사히 마쳤고, 현재 피해자는 일반 병실에서 회복 중이라고 한다.박씨의 구사일생은 양주소방서의 신속한 호송과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의 즉각적인 대응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오인 사격 사고를 냈지만 유해조수구제단원의 지체없는 신고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뇌를 관통당하고서도 살아남은 건 기적에 가깝다.현재 경찰은 유해조수구제단원을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란다. 사고 당일 양주시의 요청으로 유해조수 포획에 나섰다가, 나물을 뜯던 박씨를 발견하지 못해 사고를 냈으니 처지가 딱하다. 하지만 박씨에겐 치명적인 사고였으니 법적 처벌을 피하긴 힘들테다. 그래도 관청의 요청으로 농가피해를 막기 위한 유해조수 포획 중 벌어진 사고라는 정황이 충분히 참작되길 바란다. 박씨를 살린 기적이 훈훈하게 마무리됐으면 해서다. 미담에 목마른 험악한 세상 아닌가. /윤인수 논설실장

2021-04-21 윤인수

[참성단]'군 가산점제도' 부활(?)

1979년 제대군인 우선 채용을 명시한 매사추세츠주 법률이 헌법의 평등조항을 위반한다는 위헌 심판에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은 이랬다. "군필자 우선 고용권은 군복무의 희생에 대한 보상, 제대 후 사회 복귀를 위한 편의, 애국적 임무수행의 조장 및 충성스럽고 규율 있는 인력들을 주정부 공무원으로 유도하기 위해 고안된 방안으로써 전통적으로 정당화되어 왔으므로 합헌이다."1998년 7급 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이화여대생들과 연세대 남성 장애학생이 군복무 가산점제도 때문에 떨어졌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1999년 평등권,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심판으로 군 가산점제도를 폐지시켰다. 남성들의 군복무 불이익을 여성과 장애인의 불이익으로 해소할 수 없으니 군 가산점 이외의 방법으로 보상하라는 취지였다.군 가산점제도에 대한 미 연방대법원과 우리 헌재의 판결이 다른 건 국방환경이나 사회·문화적 수용성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미국 사회는 군 가산점제도를 정당화한 전통을 계속 감당할 수 있었던 반면, 우리 사회는 법적으로 국방의 의무에서 배제된 여성과 장애인이 겪는 차별을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세월이 흘러 상황이 일변했다.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진입 장벽은 거의 사라지고 진출 분야도 거의 제한이 없다. 오히려 교단에서는 남자 교사를 보기 힘든지 꽤 됐다. 남성들은 국방의무 자체를 역차별로 주장한다. 20대 남성(이대남)은 또래 여성과의 경쟁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민감해진 공정과 정의의 감수성으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내로남불을 심판했다.혼비백산한 민주당에서 이대남을 향한 구애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전용기 의원은 군 가산점제도 부활을 주장한다. 여성들도 군 가산점제도 부활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워 개헌도 불사한단다. 박용진 의원은 '남녀평등복무제' 도입을 제안했다. 여성도 징병하자는 국민청원엔 6만명이 넘게 동의했다.여당 의원들의 주장과 제안이나, 일도양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군 가산점 부활은 사회·문화적으로 수용할 만한 환경조성이 선행돼야 하고, 남녀평등복무제는 고도의 전력을 유지해야 하는 국방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주장과 제안에 그치면 이대남의 실망에 이대녀(20대 여성)의 반발이 추가될 수 있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4-20 윤인수

[참성단]공시지가 인상

김영삼 정부는 부동산 실명제로 거래의 투명성을 높였다. 재산공개를 의무화해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막았다. 30대 기업과 임원의 토지소유 현황을 조사하는 등 재벌의 부동산 투기도 강하게 눌렀다. 대통령 아들이 구속되고 IMF 사태를 맞았으나 부동산 시장은 안정됐다.외환위기를 조기에 끝장내려는 김대중 정부는 규제완화정책을 추진했다. 분양가를 자율화했고, 임대사업자에 세제지원을 늘렸다. 국민임대 100만호 건설을 위해 수도권 그린벨트를 과감하게 풀었다. 강남지역 아파트가 본격 상승하기 시작했다.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지자 노무현 정부는 다시 규제를 강화했다. 역설적으로 전국 아파트 가격이 치솟았다. 강남 은마아파트는 1999년 2억원에서 2002년 4억원, 2007년 14억원이 됐다. 역대 정부 중 부동산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시기다. 정부는 2007년 표준지 공시지가를 12.4% 인상했다. 역대 최고 상승률이다. 부동산 가격폭등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진화됐다.정부가 토지·주택 공시지가를 대폭 인상했다. 2021 표준지 공시지가는 지난해보다 전국 평균 10.37% 인상됐다. 2007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평균 19.08% 올라 역시 최대폭이다. 공시지가는 국·지방세 과세와 각종 부담금 징수의 근거가 된다. 전국지자체는 표준지가를 토대로 5월 중 개별공시지가를 확정한다.종합부동산세 대상 공동주택은 전국에서 70%나 급증했다. 이 수준으로 확정될 경우 민원이 폭증하고 조세저항이 거셀 것이란 우려다. 야당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시가 책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반기를 들었다.정부는 공시가가 올라도 서민들은 걱정할 게 없다고 한다. 중·저가 아파트는 각종 공제 혜택으로 외려 세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다. 여론이 나빠질 것을 예상한 단기 처방이란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보편복지를 확대하는 정부에서 증세를 피할 방법은 뭘까.야당을 떠난 노(老)정객이 여당의 4·7 보선 패인 중 하나로 '세금의 정치'를 꼽았다. '세금이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줄 모르고 세금 올리고, 공시지가 올리고, 조세저항에 감이 전혀 없더라'는 거다. 증세한 정치세력이 선거에서 이긴 사례를 찾기 힘들다. 2007 대선에서 여당 후보는 사상 최대 표차로 패했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1-04-19 홍정표

[참성단]가스라이팅

최근 한 여배우의 스캔들이 화제다. 학교폭력, 스태프에 대한 갑질, 학력위조 등 제기된 의혹이 종합선물세트다. 그 중에 연인이었던 남자배우에 대한 가스라이팅 의혹도 있다. 드라마에 출연 중이던 연인에게 극중 스킨십을 금지시키는 문자 메시지가 공개됐다. 실제로 남자배우는 애정 신(scene)을 거부하다 중도하차했다고 한다.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어 통제하고 지배하는 정신적 학대행위를 말한다. 연극 '가스라이트'에서 유래했다는데 기본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애착,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둘 다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단다. 결과는 참담하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피해를 인식하지 못한다. 가해자가 켜놓은 가스등 불빛 안에 갇히는 것이다.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등 각종 반인륜적인 폭력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낯익은 용어가 됐다. 가정에서는 부모들의 가스라이팅으로 자기도 모르게 부모에게 병적으로 의존하는 자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반복된 폭력을 인내하는 주된 이유도 가스라이팅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총선 전엔 여당이 영입한 청년 인재가 전 여자친구의 가스라이팅 의혹 제기로 물러나는 일도 있었다.논리적으로 가스라이팅은 개인뿐 아니라 집단에 대해서도 가능하다. 최근에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신간에서 "한국은 미국에 가스라이팅 된 상태"라고 밝혔다. 미국에 의존하는 우리의 한미동맹 의식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찬반 논란은 있겠지만 논리적으로는 가능한 비판이다. 국민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독재정권의 대국민 가스라이팅은 집요하다.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나자 참패한 여당은 반성을, 승리한 야당은 겸손을 강조하며 민심을 받들겠다고 했다. 얼마나 지났다고 스스로 뱉은 말을 삼켜버리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조국과 내로남불을 반성했다가 혼쭐이 났다. 한 의원은 반성을 반성하는 반성문을 올렸다. 강성 당원들의 문자 조리돌림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야당은 대권 여물통에 코 박고 이전투구를 시작했다.정당과 정치인의 건망증은 민심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잠시 속일 수는 있을지언정 가스라이팅은 불가능한 것이 민심인데 말이다./윤인수 논설실장

2021-04-18 윤인수

[참성단]일본산 수산물

한겨울 동해산 명태는 국민 생선이었다. 보관 상태에 따라 생태가 동태가 되고, 코다리·북어로 말려져 식탁에 올랐다. 강원도 최북단인 거진항에는 생태찌개 전문 식당이 유난히 많았다. 갓 잡아올린 생태에 소금만으로 간을 한 이 지역 생태탕은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극찬을 받았다. 저녁엔 든든한 술안주였고, 아침엔 시원한 속풀이였다.거진항 거리를 채웠던 생태 집은 사라지고, 동태찌개 식당 몇이 명맥을 잇는다. 2000년대 초 기후 변화로 동해안 명태가 자취를 감추면서 생태찌개 식당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정부는 지난 2019년부터 동해안의 생태 포획을 금지하고 처벌 규정까지 만들었다. 국내산은 씨가 말라 러시아·일본산으로 대체됐다.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침수되면서 오염수 유출이 우려됐다.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안전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국민 불안이 커지자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수입을 금지했다. 이후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일부 수산물은 금지 대상에서 해제됐다.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기로 한 것과 관련, 정부가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원산지 검사와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해양수산부는 주요 수입 수산물 17개 품목에 대해 유통 이력을 관리하고 있다. 이 중 일본산 수산물은 가리비, 참돔, 멍게, 방어, 명태, 갈치, 홍어, 먹장어로 8개 품목이다. 연간 수입 물량은 3만t 규모다.소비자 심리를 꿰뚫는 대형유통업체들은 일제히 일본산 수산물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산 유입에 민감하다는 점을 의식해 일찌감치 손절한 거다. 전통시장과 음식점들도 판매 금지 대열에 가세했다. 그나마 근근하게 버텨온 생태찌개 집들마저 죄다 문을 닫을 판이다.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는 안전성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근거 없는 막연한 추측과 불안감으로 소비가 위축되어선 안 된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정부 입장은 어정쩡하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원전 오염수와 수산물 안전성과의 인과 관계를 규명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발생하지도 않은 광우병을 걱정하면서 수많은 국민이 촛불을 들었다. 근거 없는 선동에 나라가 흔들렸다. 국민 식탁이 불안해지면 사회 질서도 어지러워진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1-04-15 홍정표

[참성단]'불가리스 품절'과 '백신 품귀'

발효유 제품인 '불가리스'가 매대에서 사라졌다. 제조업체인 남양유업의 연구소장이 13일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소비자들이 장바구니에 쓸어담았다. 원숭이 폐 세포에 배양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불가리스를 투여한 결과 바이러스의 77.78%가 감소했고, 개 신장세포에 배양한 감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99.999%, 사실상 100% 감소했단다.연구결과는 놀랍다. 실험 결과가 인체에 똑같이 작용한다면 인류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이 바로 코로나에서 해방된다. 독감은 불가리스 한 통이면 만사형통이다. 하지만 착각이다. 남양유업의 연구를 인체에 적용하려면 감염 세포를 모두 추출해 불가리스에 적셔야 한다. 치료를 위해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얘기다. 불가리스의 항바이러스 효과를 인정한다 해도 인체에 실현할 방법이 없으니 허무맹랑한 소리다. 어제 오전 치솟던 남양유업 주가는 곧 잠잠해졌다.불가리스 소동은 코로나에 지칠대로 지친 예민한 민심을 보여준다. 상술에 가까운 연구결과에도 앞뒤 없이 반응할 정도로 코로나에서 벗어나고픈 국민 염원은 간절하다. 하지만 유일한 게임체인저인 백신의 접종·수급계획이 자고 일어나면 꼬여버리니 환장할 노릇이다. 대통령이 백신 물량 확보와 11월 집단면역 목표를 자신하자마자 미국이 얀센 백신 접종을 중단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처럼 혈전 부작용이 심각해서다. 우리는 600만명분을 도입할 예정이었다.상반기 접종 백신의 대부분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더불어 얀센 백신마저 안정성 시비에 올랐는데 문제는 그마저도 턱없이 모자라거나 아직 도착도 안 했다. 반면 같은 시간에 런던 시민들은 야외 펍에서 맥주를 즐긴다. 이스라엘은 곧 관광객 입국을 허용한단다. 6억명분의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을 가진 미국이 일상을 회복하는 건 시간문제다. 백신 격차의 결과는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백신 접종 후진국의 코로나 블루는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정치인들은 불가리스 소동에서 불안과 공포에 갇힌 민심을 읽어야 한다. 여든 야든, 아니면 여야를 초월하든 당장 백신사절단을 꾸려 백신 여유국에 달려갈 일이다. 체면을 차리고 책임을 따질 때가 아니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4-14 윤인수

[참성단]일본의 방사능 해양 방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해안가의 후쿠시마 원전을 거대한 쓰나미가 덮쳤다. 원전의 전력공급망이 차단되면서 냉각수 공급이 끊겼다. 후쿠시마 원전이 흰 연기를 뿜어내며 폭발하던 장면에 세계는 전율했다. 초유의 대양 오염 공포 때문이었다. 세계 각국은 일본 수산물 수입을 중단하거나 검역을 강화했다.하지만 진짜 공포가 시작됐다. 일본 정부가 13일 지난 10년간 탱크에 모아 두었던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125만t을 바다에 방류하기로 최종 결정해서다. 오염수의 방사능 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정화해 2년 뒤부터 30년간 방류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나 일본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이미 1차 정화했다는 탱크 내 오염수에서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들이 기준치의 100~2만배 이상 검출됐다는 그린피스 보고서도 있다.일본 정부는 해양 방류의 이유로 저렴한 비용을 꼽았단다. 겉으론 예의와 염치를 차리면서 속으론 자국 이기주의에 집착하는 일본의 '혼네'(本音·본심)가 가증스럽다.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는 명백한 반인류 범죄다. 해류를 탄 방사능 쓰레기가 1년도 안 돼 제주와 동해 바다에 도착한단다. 해류를 타고 5대양에 퍼질 것도 당연하다. 일본이 뭐라고 지구 바다 전체를 핵쓰레기장으로 만드나.우리 국민의 방사능 감수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전에서 사용한 작업복, 장갑, 부품 등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리하는 경주 방폐장 하나 건설하는데 30년 가까이 걸렸다. 얼마 전에는 월성원전의 정화 전 삼중수소가 기준치를 넘었다는 보도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이 방류한다는 오염수는 방사능 물질이 농축된 고준위 폐기물이다. 방사능 해류가 우리 앞바다에 이르면 통영 멍게가 미야기 멍게가 될 수 있다. 수산업과 국민 식생활에 미증유의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다.정부는 일본 정부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국제기구에 오염수의 객관적 검증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중국도 대일 국제소송을 예고했다. 하지만 미국은 짐짓 무관심한 태도다. 미·중 신냉전의 틈을 노린 일본의 방류 결정은 얄미울 정도로 전략적이다. 정부의 대응만큼이나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시민단체와 민간기구와의 글로벌 연대가 중요해 보인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1-04-13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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