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건도내혁: 하늘의 도가 바뀐다

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 퀀텀 점프(Quantum Jump)라는 용어를 상용한다. 양자가 어떤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갈 때 계단의 차이만큼 뛰어오르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일의 진행은 점진적으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데 이 현상은 그렇지 않다. 단번에 계단을 뛰어오르듯이 다음 단계로 점프하는 현상을 말한다. 물리학에서 사용된 용어가 다른 분야로 퍼져가면서 비약적인 도약을 의미할 때 이 말을 사용한다. 경제적으로도 기업이 혁신을 통해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경우 퀀텀 점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자연의 세계에서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매미나 나방의 우화이다. 매미는 알에서 깨어나 땅속으로 들어가 6년간 땅속에서 탈피과정을 겪다가 7년째 되는 해 땅 밖으로 나와 나무 위로 올라가 허물을 벗고 몸과 날개를 펼치는 우화(羽化)라는 변태를 한다. 누에가 나방이 되는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나방의 교미를 통해 산란을 하고 알에서 막 나온 누에가 허물을 벗는 4번의 탈피과정과 뽕잎 먹기, 잠자기를 반복하고 마지막 잠을 자고 나면 고치를 짓는다. 고치를 대략 1주일 짓고는 후에 고치 속의 번데기가 고치를 뚫고 나와 나방이 되어 날아간다.지금 우리는 과학기술의 차원에서 변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질적인 도약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1-05-05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말의 꽃

꽃만 따먹으며 왔다 //또옥, 또옥, 손으로 훑은 꽃들로광주리를 채우고, 사흘도못 갈 향기에 취해 여기까지 왔다 //치명적으로 다치지 않고허기도 없이 말의 꽃을 꺾었다 //시든 나무들은 말한다어떤 황홀함도, 어떤 비참함도다시 불러올 수가 없다고 //뿌리를 드러낸 나무 앞에며칠째 앉아 있다헛뿌리처럼 남아 있는 몇 마디가 웅성거리고그 앞을 지나는 발바닥이 아프다 //어떤 새도 저 잿빛 나무에 앉지 않는다나희덕(1966~)꽃이 떨어지기 쉬운 것처럼 말도 더럽혀지기 쉽다. 바닥에 떨어진 꽃을 붙일 수 없듯이 한번 뱉은 말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말은 소통의 기능보다 더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지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했던 말을 번복하더라도 그것은 이전에 한 말이 아니며 되풀이할수록 왜곡될 뿐이다. 그만큼 세상을 사는 우리는 말을 통해 생각하고 말로써 움직이며 말로 살아가는데 말처럼 중요한 건 없다. 때로는 '또옥, 또옥, 손으로' 꽃을 따듯 한마디로 따낸 말이 '치명적으로' 흥망성쇠를 가늠하기도 한다. 이처럼 '말의 꽃'은 얼마나 쉬우면서 어려운가. '어떤 황홀함도, 어떤 비참함도 다시 불러올 수가 없다고' 말하는 모든 꽃이 '시든 나무'를 보라. '꽃의 말' 때문에 시들어갈 '웅성거리는 헛뿌리' 하나 떠오르지 않던가. 그 누구도 어떤 진리도 헛뿌리에서 태어나고 사라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1-05-03 권성훈

[김나인의 '생활관상']얼굴의 상을 잘 보려면 육기의 형상변화를 잘 살펴야 한다

기색은 과거·현재·미래 운명과 연계아무리 상이 좋아도어두우면 좋은 운도 사라지고맑으면 나쁜 운도 좋게 바뀐다그 사람의 심성부터 아는게 중요관상학에서 기색의 종류를 6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물론 그 사이에 중간색이 있게 마련이니, 한가지 기색만 들어와 있는 경우는 드물다. 기색(氣色)은 오래 머무는 경우도 있고, 금세 사라지는 기색도 있으며, 기(氣)는 작용하는데 색(色)이 피부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또한 조석(朝夕)으로, 시간 분단위로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는 기색도 있다. 이는 현재의 일, 과거의 일 또는 미래의 어느날에 생겨나게 될 일에 따라서 기의 작용에 대한 징후가 바로 나타나기도 하고, 피부속 또는 오장육부 안에 깊숙이 숨어있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기색은 여섯 종류로 나뉘는데, 청룡기는 목화토금수 오행(木火土金水 五行)을 모두 포함하는 황명하고 밝고 맑은 색이고, 주작기는 검붉은 색으로 선지의 피, 해가 질 때 구름과 합쳐서 나타나는 색이고, 구진기는 먹구름 같은 색, 탁하고 무겁고 거무튀튀하며 회색빛을 머금은 색이고, 등사기는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와 같은 색이고, 백호기는 돼지 비계와 같은 색이며, 현무기는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회색의 탁한 색을 말한다.이 중에서 가장 좋은 색은 청룡기이며 구진기가 제일 흉하다고 보며, 그 다음이 현무기를 흉한 색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기색이 안면에 걸쳐 생겨나면 반드시 우환 손재 사고 질병 관재 소송 이별 등의 일이 생기게 되는데, 어느 부위에 들어와 있느냐에 따라, 그 길흉화복이 달라지게 된다. 다만 안좋은 기색이 어느 부위에 들어왔다 하여도, 색이 얼마나 흐리고 옅은지,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등을 세밀히 살펴야 한다. 갑자기 좋지 않은 기색이 생겼더라도, 바로 사라지면 길흉을 논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기색은 오묘한 자연의 질서에 의해 스스로 생겨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나 생각만으로 없어지고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일이 잘되어 가는데, 길흉이 생겨날 수도 있고, 현재 힘겨운 일이 산재해 있는데, 밝고 황명한 색이 생겨날 수도 있다. 기색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운명과도 연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아무리 상(相)이 좋아도 기색이 어두우면 좋은 운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결함이 있더라도 밝고 맑은 기색이 얼굴에 생겨나면 나쁜 운이 다하고 좋은 운으로 바뀐다는 징후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온전한 부귀와 공명을 끝까지 유지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며 현재까지 고달프고 힘든 일을 겪고 있더라도, 언제까지나 불우한 생을 사는 것만은 아니다. 마음가짐에 따라서도 운은 바뀔 수 있는 것이니, 상을 볼 때는 형체나 형상보다 심성은 어떤지,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또한 낮에 보는 것과 밤에 살피는 것은 기색의 흐름과 변화를 읽는데, 많은 차이가 날 수도 있다. 화장한 얼굴과 맨 얼굴을 대할 때도 기색이 다르게 보여질 수 있다. 어느 한 부위에 집중적으로 기색이 생겨날 수도 있다. 눈 주변이 유난히 검을 수도 있고 코 부위가 유난히 붉을 수도 있다. 오장육부의 기의 작용에도 응하게 되니, 간은 파란색인바, 얼굴에 푸른빛이 돈다면, 간에서 시작되는 기색이고, 만일 흑기(黑氣)가 들어오면 그 출발은 신장에서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다. 기색은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를 대변할 수도 있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들어오는 기색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이처럼 기색은 아주 다양하며 복잡한 형태로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니 한가지 색으로만 드러나지는 않으므로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이마는 화성(火星)으로 보니, 이마에 흑기(黑氣)가 들어오면 수극화(水剋火)가 되어 흉하다고 보며, 코는 오행이 토이니 파란 기색이 들어오면 목극토(木剋土)가 되어 상극이니 흉하다고 보는 것이다. 턱은 수성(水星)으로 보는데, 턱 부위에 누리끼리한 색이 들어오면 토극수(土剋水)가 되어 흉한 일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은 여름철이니, 화(火)가 정색(正色)이므로, 화를 지칭하는 이마에 붉은 기색이 들어오면 이는 정색이 자리한 것으로 보아 나쁘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현재는 곤궁한 일이 있어도 좋아질거라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21-05-02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유시위대: 오직 때가 위대하다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과 관련한 화폐논쟁이 뜨겁다. 가상화폐, 암호화폐, 디지털화폐로 각기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주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된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반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분산형 데이터 저장기술로 중앙집중형태의 데이터가 초래하는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기술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의 구현에 암호화 기술을 적용하였기 때문에 이런 기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암호화폐라고 부른다.정치권력적 관점에서 보면 화폐는 중앙에서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발권력은 중앙정부만이 갖는다. 그러므로 여타의 화폐에 대해 용인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화폐라고 부른다. 일부 정부나 우리나라의 경우도 현 정부의 금융파트 수장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대사회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였다. 모든 문명은 디지털기반이다. 그러므로 화폐 또한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하는 흐름은 당연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실제로 종이나 동전의 아날로그 화폐는 점점 디지털로 변화하고 있다. 다른 두 관점에 비해 중립적인 용어이면서 역사적 문명 변화의 통찰이 들어간 디지털화폐라는 명칭이 좋을 것 같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것은 오직 시절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1-04-28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농업회사법인 설립 등기

최근 농업회사법인의 설립 등기에 관한 의뢰를 받았습니다.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에 의거, 농업의 경영이나 농산물의 유통, 가공, 판매를 기업적으로 하려는 자나 농업인의 농작업을 대행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농업회사 법인을 설립할 수 있습니다. 설립요건으로는 출자자에 반드시 한 명 이상의 농업인이 포함되어야 하고, 기본적으로 농업인 또는 농업 생산자 단체가 설립을 하지만 비농업인도 주주가 가능하며 농업인이 아닌 자는 농업회사법인의 총출자액의 100분의90미만일 것이라는 요건이 있어 반드시 농업인이 10% 이상을 인수하여야 합니다.(같은 법 제18조)의뢰인에게 법률상 조문을 숙지하고 농업인은 최소 1명 이상이어야 가능하며, 이때 농업인은 최소 10%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면 가능하고 말씀드렸지만 실무적으로 놓친 사항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농업회사법인의 설립 시 실무적으로는 적어도 설립 등기 시에는 100% 농업인이 설립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행히 의뢰인은 농업회사법인의 설립 요건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 농업인 1인으로 설립등기를 마친 바 있습니다.농업회사법인은 설립요건이 농업인 1인만 있으면 가능하고 비농업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설립요건을 완화해주면서 농지를 매입할 수 있다는 장점과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이 있어 기업들의 농업 진출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농업회사법인들이 농업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 비농업적 목적사업에 치중하면 결국 그 피해는 농민들이 보게 되는 문제점이 있어 농업회사법인 설립요건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법률적으로는 그대로인 듯싶습니다. 이렇듯 실무적으로 설립등기시 만이라도 주주가 모두 농업인이어야 된다고 등기요건이 강화되어 미약하나마 다행인 듯 싶습니다./주영민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주영민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

2021-04-27 주영민

[시인의 꽃]꽃기침

꽃이 필 때 / 목련은 몸살을 앓는다 / 기침할 때마다 / 가지 끝 입 부르튼 꽃봉오리 / 팍팍, 터진다 처음 당신을 만졌을 때 / 당신 살갗에 돋던 소름을/ 나는 기억한다 / 징그럽게 눈 뜨던 / 소름은 꽃이 되고 / 잎이 되어 다시 그늘이 되어 / 내 끓는 청춘의 / 이마를 짚어주곤 했다 떨림이 없었다면 / 꽃은 피지 못했을 것이다 / 떨림이 없었다면 / 사랑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더 이상 / 떨림이 마음을 흔들지 못할 때 / 한 시절 서로 끌어안고 살던 꽃잎들시든 사랑 앞에서 / 툭, 툭 나락으로 떨어진다 피고 지는 꽃들이 / 하얗게 몸살을 앓는 봄밤, /목련의 등에 살며시 귀를 대면 / 아픈 기침소리가 들려온다박후기(1968~)당신이 그를 만났을 때처럼, 흔들리지 않고 시작되는 것이 있는가. 흔들린다는 것은 무의식에 있는 것을 깨운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마음이 여기서 저기로 반응하는데 그것이 강렬하면 할수록 움직임도 커진다. 몸살을 앓고 있는 봄날같이 당신의 '가지 끝 입 부르튼 마음 꽃봉오리가 팍팍, 터지질' 않던가. 돌이켜보면 그런 당신도 '처음 당신을 만졌을 때'부터, '당신 살갗에 돋던 소름을' 잊지 못하는 것같이. 너무 화사해서 징그러울 정도로 피어나는 목련처럼 살갗에 돋던 소름들. 이것은 청춘의 '잎이 되어 다시 그늘이 되어' 보냈던 숱한 나날들을 기억한다. 떨림은 꽃이 되고 사랑이 되고 한 시절이 되어 툭툭 떨어져도 좋았다. 아직도 세월의 등 뒤에 사랑의 귀를 대면 '피고 지는 꽃들이 하얗게 몸살을 앓는 봄밤'이 당신을 깨우질 않던가. 봄날 꽃가루처럼 '아픈 기침소리'가 망각의 계절을 뚫고 날아다닌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1-04-26 권성훈

[조성면의 '고서산책']철도는 미디어다 -'만주철도여행안내'(1927)

철도, 문화·이념 전파하는담론적이면서 새로운 문화·경험만들어내는 대화적 미디어이기도'만철' 남북~시베리아~유럽 연결교통수단·세계평화 매개역 되길철도는 미디어다. 흔히 미디어라 하면 신문·잡지·TV·유튜브 등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미디어의 범주와 종류는 이보다 훨씬 넓고 또 많다. 미디어연구의 획을 그은 마샬 맥루언(1911~1980)은 인간의 인식과 감각의 확장을 동반하는 모든 것을 미디어로 규정한다. 가령 교통수단은 발의 확장이며, 안경과 현미경 등은 눈의 확장에 해당한다.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미디어와 관련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인식과 세계관은 물론 사회의 변화를 촉발하기에 마치 온몸에 마사지를 하는 것처럼 삶과 생활의 구석구석에 두루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철도는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끈 견인차였으며, 생활 방식과 시간 및 공간에 대한 경험과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근대 초기 제국주의 국가들이 앞을 다퉈 철도부설권을 놓고 격렬하게 각축을 벌였던 것은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고, 해당 지역과 공간에 대한 지배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소민족들의 입장에서 철도는 고약한 축복이었다. 새로운 근대문명과 생활의 시작이라는 축복과 함께 억압적 식민지배체제가 더욱 공고화, 가속화하는 양날의 검이었기 때문이다.1927년 '만선일보'에서 나온 '만주철도여행안내'는 철도가 갖는 그와 같은 이중성을 극명하게 잘 보여준다. 총 313쪽에 달하는 '만주철도여행안내'는 철도이용객들을 위한 단순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일본인들을 위한 만주학개론으로서 만주지역을 'Y'자로 분할한 만주철도 노선이 닿는 만주 전역을 다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기후·풍물·역사유적·식생·농업 생산·광물자원 등을 모두 조사, 정리하고 있어서 순수한 관광안내 책자라고 보기 어렵다.인쇄와 출판은 '만선일보'가 했지만, 실제 저자는 최고의 두뇌 집단으로 후일 만주국 건국을 기획하고 입안했던 '만철조사부'였다. 만주국은 청의 마지막 황제 아이신줴러 푸이(愛新覺羅溥儀, 1906~1967)를 집정으로 내세운 괴뢰국으로 만철조사부와 관동군이 만든 나라였다.본래 만주는 공간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 북쪽의 해서 여진·동쪽의 동해 여진·중앙의 건주여진 등 여진족을 이르는 족명(族名)이다. 중국인들은 만주국을 치욕의 역사로 보기에 만주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위만주국(僞滿洲國)' 또는 동북 삼성이라 지칭한다.만주역에 철도가 부설된 것은 1898년 러시아가 랴오둥 반도 조차조약으로 둥칭철도(東淸鐵道)를 부설하면서부터이며, 남만주철도는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이 포츠머스강화조약(1905. 9)과 청일만주선후조약(1905. 12)을 통해 철도 관련 이권을 러시아로부터 이양받고 이듬해인 1906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발족시키면서 본격화한다. 이를 통해 일본은 한반도를 X자로 종관하는 철도에 남만주철도까지 손에 넣음으로써 식민지배를 위한 전략철도노선을 구축한다. 다롄·봉천(선양)·신경(창춘)·하얼빈 등을 연결하는 만철은 최고 시속 130㎞에, 냉난방 장치에 식당 칸까지 갖춘 특급열차 아시아호를 앞세우고 만주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맥루언은 정보의 정세도와 대중의 참여도를 기준으로 미디어를 쿨 미디어와 핫 미디어로 나누고 있는 반면, 빌렘 플루서(V. Flusser, 1920~1991)는 정보의 분배와 저장을 위주로 하는 담론적 미디어와 창조를 중심에 둔 대화적 미디어로 분류한다. 철도는 여객과 물자만을 수송한 게 아니라 문화와 이념을 전파하는 담론적 미디어이면서 새로운 문화와 경험을 만들어내는 대화적 미디어이기도 했다. 만철은 기본적으로 식민 지배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철도가 이런 흑역사를 딛고 21세기에는 남북과 시베리아에 유럽을 연결하는 진정한 교통수단, 세계평화를 매개하고 창조하는 견인차로 거듭나길 기원해본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1-04-25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순천자존: 하늘을 따르는 자는 보존된다

저 높고 푸른 하늘은 아무 말도 없지만 고인들은 인간생활의 모든 원천을 그리로 돌렸다. 만물을 낸 것도 하늘이고 세월을 운전하는 것도 하늘이고 인간의 현불초와 부귀를 관장하는 것도 하늘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의 일이 잘못돼도 하늘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행위를 좋게 보지 않았다. 공자는 하늘이 아무런 말도 없지만 사시를 운행하며 만물을 내니 나도 하늘을 닮고 싶다고 하였다. 맹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늘을 따르는 자는 존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여기서 하늘은 무얼까? 맹자에 의하면 하늘은 두 가지의 경우로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덕(德)의 손을 들어주는 하늘이고, 또 하나는 힘의 손을 들어주는 하늘이다. 덕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받은 선량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는 이런 덕이 통하는 시절을 도(道)가 통하는 세상이라고 하였다. 힘은 덕과 달리 현실을 움직이는데 직접 관여하는 인간의 에너지이다. 맹자는 이 힘이 좌우하는 시절을 도(道)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하늘은 이 둘 다를 의미한다. 도가 통하는 시절에는 덕이 작은 이가 큰 덕의 소유자에게 부림을 받는다. 도가 통하지 않는 시절에는 힘이 약한 이가 힘이 강한 이에게 부림을 받는다. 어쨌든 보존하고 싶다면 도가 있는 세월이든 없는 세월이든 그 추세를 거스르면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 시절에 해당할까?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1-04-21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노란 단무지

옹벽 위에서 쏟아져 내린 개나리 줄기들옹벽에 페인트칠을 한다. / 보도블록 바닥으로페인트 자국 흘러내린다. //옹벽 밑에는일렬횡대로종이박스가 깔렸다. //할머니들은머릿수건을 쓰고 앉아나물과 밑반찬을 판다. //개나리 줄기들이 내려와허옇게 센 머리카락 쓰다듬는다. / 염색물을 들이기 위해길고 가는 붓질을 한다. //노랗게 물든 단무지들플라스틱 대야에 담겼다. / 쳐다보는 사람 머릿속에아득히 색소 물을 들인다. //이윤학(1965~)'물들다'라는 말은 자신도 모르게 스미거나 옮아간다는 동사다. 봄이 되면 세상이 화사하게 보이듯이 우리의 마음도 봄처럼 자동적으로 닮아간다는 것이다. 길가에 노랗게 울타리를 치고 있는 개나리 줄기는 그 주변에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표시한다. 그것도 땅에서 힘겹게 올라와 '옹벽 위에서 쏟아져 내린 개나리 줄기들이 옹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처럼 만개한 개나리꽃이 스며든다. 거기에 속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응시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은 '허옇게 센 머리카락 쓰다듬듯이 염색물을 들이듯이' 노랗게 번지고 있는 시공간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쳐다보는 사람 머릿속에 있는 아득한 색소 물'이다. 봄으로부터 감염된 아름다운 전파의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얼마든지 허락할 수 있는 이러한 감염은 무엇을 물들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물들이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존재로 채색되어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1-04-19 권성훈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연극 'X의 비극' 사내가 한 말중'그렇게'에 방점 찍어야재앙과 폭력에 고통받는 사람들비극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못보고앞으로만 달리는 우리 현실 가리켜연극 'X의 비극'(이유진 작, 윤혜진 연출, 3월12일~4월4일, 소극장 판)은 우리 시대에도 비극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는 작품이다. 이미 낡아 버린 이 질문을 다시 묻는 것은 제목 때문만은 아니다. 재앙과 폭력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비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물음에 우리는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한 사내가 눕는다. 어느 날 느닷없이 눕는다. 쓰러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누운 것이다. 연극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사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할 뿐이다. 1년이 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누워서 연극이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사내가 눕자 가족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내가 생계를 꾸려야 한다. 경력 단절로 인해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온갖 일을 다 해 보지만 생활은커녕 생존하기도 힘들다. 아내가 사내에게 말한다. "대출금이라도 갚고 눕든가." 하지만 사내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아들은 고등학생이다. 입시 준비에 차질이 생겼다. 도저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이 말한다. "아저씨가 차라리 나아요."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든 아들도 눕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아들에게 사내가 말한다. "너도 곧 어른이 되겠구나. 너무 무리는 하지 마라."연극 'X의 비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X에 대해. X는 누구일까. 제목에 주인공의 이름을 붙이는 게 규칙이다. 안티고네, 햄릿 그리고 오셀로. 이런 식이다. 사내에게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강현서. 왜 '강현서의 비극'이 아닌가. X의 자리에 누가 오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모두가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다음으로 비극에 대해. 비극은 몰락으로 인한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주어진 운명의 제약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맞서는 인물이 보통이다. 그래서 비극의 주인공은 취약하기는 하지만 나약하지는 않다. 나약한 인물이 아니어야 하는 까닭은 그가 운명에 맞서야 할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약한 인물로는 사건을 만들 수 없다. 취약한 인물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몰락에 이르기 위한 조건이다. 완전무결한 인물이 몰락하는 이야기는 공감하기 어렵다.연극 'X의 비극'은 한 사내에 관한 비극이 아니다. 사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 나약한 인물이 아니다. 1년이 넘도록 누워 있는 것은 얼마나 강력한 행동인가. 문제는 그 어떤 행동보다도 강력한 이 행동이 사건의 전부라는 데 있다. 사내는 누워버렸기에 사건을 만들 수 없다. 사건은 그를 둘러싼 다른 인물이 만들게 된다. 그로 인해 이 작품은 마치 소설의 서술자처럼 여러 인물이 독백처럼 읊고 있는 대사로 넘쳐나게 된다.내레이션처럼 울려 퍼지는 대사는 사내가 아닌 사내가 누워버린 상황을 보게 한다. 인물이 아니라 인물을 감싸고 있는 환경을 보라고 강요한다. 제목에 붙은 비극이 의미하는 바가 그 환경의 구조가 지닌 폭력에 대한 환기가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그저 그 강력한 구조의 그물에 포획된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 그 틀 안에서 옴짝달싹하기조차 힘겨운 때가 태반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사내가 중요하지 않다. 상황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강현서가 아닌 X인 것 아니겠는가. X의 자리에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누가 놓이더라도 크게 다를 것이 없기에 비극이 아닐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연극이 시작하면서 사내는 말한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사내가 누우면서 한 그 말은 '살고 싶지 않다'에가 아니라 '그렇게'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렇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재앙과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진정 비극으로 내몰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우리의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 모두 그 '삶의 열차'에 타고 있는 것이라고 연극 'X의 비극'은 말하고 있다./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1-04-18 권순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객주가임: 손님이 주인에게 더해 임한다

날씨나 기후는 인간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오랫동안 관찰해 왔으며 그 내용이 경험칙으로 전해진다. 황제내경에 의하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기후를 주인에 비유하였다. 주인은 늘 자기 집에서 거주하면서 살기 때문에 큰 변동이 없다. 일년 사계절의 날씨가 큰 틀에서 보면 일정한 패턴으로 흘러가는 것을 주인에 비유하여 주기(主氣)라 한다. 반면 똑같은 봄이라 하더라도 해마다 특징적으로 기억할 정도의 특이한 날씨가 펼쳐지는 경우가 있는 데 이를 손님에 비유하여 객기(客氣)라 한다. 어느 집에 찾아오는 손님의 기질이나 성격에 따라 주인집 분위기가 일시적으로 변화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날씨도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운기(運氣)이론에 의하면 올해는 태음(太陰) 습토(濕土)가 사천(司天)하는 해이다. 습토가 한 해를 전반적으로 주관하게 되고 그 자리는 여름철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습토는 비를 의미하기 때문에 강우를 의미한다. 일년이라는 시간을 6등분하여 보면 춘분에서 입하까지는 상화(相火)의 자리라서 정상적인 기후는 따뜻하다. 그런데 객기로 찾아온 것이 군화(君火)이다. 군상(君相)은 화(火)를 임금과 신하로 구분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이 둘이 동시에 겹치게 되면 염병(染病)이 유행한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확산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운기(運氣)까지 불리하니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1-04-14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주택상속등기와 양도소득세

초로의 아주머니 한 분이 상담을 오셨다. 본인은 3년 이상 산 집을 팔고 시골로 이사하였는데 생각지도 않던 양도소득세가 수천만원 부과되었다고 한다. 세무서에 가서 상담을 해보니 10년전에 사망한 남편으로부터 상속받은 주택 지분이 있기 때문이고 양도소득세를 감면받으려면 상속지분상속등기를 무주택자인 아들 단독소유로 하는 상속재산협의분할에 의한 상속등기로 경정해와야 한다 해서 그 경정등기를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공동상속인인 딸의 지분에 대하여 압류가 되어있어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경정등기를 할 수가 없다고 하니 실망하고 돌아갔다. 위 사례의 경우 피상속인이 사망하고 딸은 3개월 이내에 법원에 상속포기신청서를 접수하고 어머니와 아들이 협의분할하여 현재 상속된 주택에 살고있는 아들 앞으로 상속등기를 마쳤으면 어머니도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았을 것이고 딸의 상속지분도 압류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딸이 상속포기서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고 협의분할에 의하여 지분을 아들(딸의 오빠)에게 양보하면 딸의 채권자로부터 사해행위취소소송에 제기되어 딸의 지분이 강제로 상속될 수 있다.상속받은 주택은 소유한 자가 5년 이내에 팔면 1가구 2주택으로 보지 않지만 5년이 경과하면 추가주택으로 본다. 공동지분으로 상속받은 경우 지분이 많은 배우자의 주택으로 간주하고 배우자가 없거나 상속지분이 같을 경우는 실제로 상속받아 거주하는 상속인의 소유로 보고 상속받은 집에 상속인이 살지 않을 경우는 연장자의 주택으로 보아 1가구 2주택으로 양도세가 중과된다. 무주택자가 단독상속받는 경우에는 취득세도 감면된다. 상속인 전부 공동상속받은 경우 또는 상속인 중 빚이 있는 사람이 채권자가 강제로 공동지분상속등기로 한 경우(채권자가 상속인 중 1인을 상대로 채권가압류를 하면서 채권자가 대위로 상속등기한 경우이다)에 협의분할에 의한 상속등기로 소유권을 경정할 수 있다. 다만 지분상속 후 다른 변동사항이 있으면 경정등기를 할 수 없다./이상후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이상후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

2021-04-13 이상후

[시인의 꽃]벚꽃

아,그녀를 믿을 수 없구나 //저, 수줍음의 미소!살포시 옷고름을 풀며 어서 오라, 어서 오라고뜨겁게 안아달라고찡긋, 유혹의 미소를 날리던 그녀!둥근 달을 수줍게 만들었던 그녀!내 심장에 붉은 화살 하나 꽂아 놓은 그, 녀, 가, //어느새 사라졌다언약 하나 없이 야반도주를 했다 //이 치 떨리는 배반이여! //나 다시는 너의 옷깃에 눈을 열지 않으련다나 다시는 사월의 몽환에 젖지 않으련다 //못된 가시내!배재경(1966~)어디까지나 시간의 길고 짧은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 같은 하루라도 길게 보내기도 하고 짧게 끝나기도 한다. 소유할 수 없는 시간은 그대로지만 자신의 상황에 따라 느껴지고 변화하고 진행된다. 그것은 어떤 것에 기대한 만큼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믿음과 같다. 그 믿음은 스스로의 기대가 만들어낸 것으로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인 것. '저, 수줍음의 미소'로 4월에 피어나는 벚꽃은 어떠한 이름으로도 가질 수 없는 법. '내 심장에 붉은 화살 하나 꽂아 놓은' 그 즐거움이 커질수록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만다. 벚꽃은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고 벚꽃에 기댄 자신만이 남아버린 것이다. '이 치 떨리는 배반'을 한 것은 벚꽃이 아니라 그것을 믿었던 자신일 뿐. 이렇듯 '다시는 사월의 몽환에 젖지' 않으려면 벚꽃을 '그녀'로 호명하지 말아야 할지니. '짧은 믿음'이 '긴 배반'으로 남는 것과 같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1-04-12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중년의 삶, 생애 전환의 시기

중년을 거쳐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다양하다. 내 부모님의 삶을 보면 '노년을 어떻게 보낼까'를 궁리하셨다기보다, '자식들에게 무엇을 남겨 둘까'를 고심하셨던 것 같다. 이와 달리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죽기 전까지 인간의 품위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관심이 더 많았다. 나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수동적인 공부'를 했고 대학교에서 겨우 '능동적인 공부'에 눈을 떴으며 대학원에 가서야 비로소 공부란 '해답 없는 먼 길의 여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학위를 받으면 공부가 끝날 것이라 여겼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시시포스(Sisyphos)의 돌이 다시 어깨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이력서와 미래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사업계획서를 쓰고 중·장년 남성들 중심의 면접을 거쳐 그들의 마음에 들었다는 '확인증으로서의 입사 결정'이 있으면 직장생활이 시작된다. 그렇게 들어간 직장에서 상사나 동급 또는 낮은 직급의 동료 중 뜻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으며 나 또한 누군가의 윗사람이거나 아랫사람일 때도 있었으니 누군가에게 '맞지 않는 상사' 혹은 '동료'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나의 직장생활을 곁에서 본 사람들은 내가 포장된 탄탄대로를 편히 걸어간 것으로 여겼다. 심지어 비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럴 경우 나는 "설령 울퉁불퉁하고 바윗덩어리가 앞에 있었을지라도 이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거나 기억에서 지워버려라. 좋은 것만 생의 지문에 남겨 두어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여기게 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늘 '얼마나 운 좋은 인생인가!' 라면서 스스로 세뇌해 왔지만 처연할 정도의 진청색 하늘, 구불구불한 산등성이에 수채화처럼 번져가는 산 꽃나무들의 흐드러짐,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봄날을 맞이하면 나의 '불안정한 정서'와 '육체적인 미진함이 주는 힘겨움을 아닌 척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길들여 왔음을 선명히 알게 된다. 그동안의 불운을 갱신하기 위해 '기억 안에서 기억을 먹어'버림으로써 행운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어찌 모르랴. 요즘 나는 중년과 노년의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서 어떨 때는 미친 듯이 팔랑대는 나비가 되고, 또 어떨 때는 가장 빠른 속도라고 생각하고 달려가는 애벌레가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중년의 시기를 제대로 보냈다면 노년의 삶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제대로 문고리를 찾아 문을 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2018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는 '50+신중년 세대'가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전환'의 시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며 '살던 대로의 관성에서 벗어나 다른 삶의 궤도를 그릴 수 있는 계기'를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기획된 것이다.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진행해 왔던 이 프로그램에서 '중년'을 '관성을 가진 자'라고 보고 있으며 그와 달리 '신중년'은 나이에 규정되지 않고 소위 '꼰대('자기는 항상 옳고 남은 늘 틀렸다고 생각하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영국 BBC에서 정의함)'와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변성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성찰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신중년의 삶을 '모험을 디자인하는 신중년 문화예술 수업'으로 구성하여 출판한 책 '생애전환학교'는 11명의 필자를 통해 우리에게 '남은 생에 대한 나의 서사'를 위한 좋은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제1부 '창의적 전환의 삶을 위하여', 제2부 '낯선 감각, 이토록 예술적인 전환이라니!', 제3부 '끝나지 않은 전환의 실험이 남긴 것들' 등의 주제로 총 3부로 구성된 '생애전환학교'를 읽으면서 얼마 전 서울과 부산에서 있었던 시장 보궐선거가 떠올랐다. 선거 결과에 대해 여러 전문가의 청년층과 중·장년층에 대한 세대 해석이 분분했었다. 그런데 나는 '나이 든 자'가 현명하게 산다면, '나이 어린 자'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수단'을 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네 탓', '내 탓'을 가리는 것보다 청년, 중·장년, 노년 등 저마다의 '생애전환시기'를 맞이할 때마다 개인의 존엄을 지닌 '주체'로서 서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손경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손경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2021-04-11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불외입외: 두려워하지 않으면 두려움에 들어간다

우리 눈으로 목격한 것은 아니라도 역사기록에 의하면 정치를 잘한 지도자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공통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명(銘)이다. 명(銘)이란 돌이나 나무나 일상도구에 새겨놓은 글이다. 좌우명(座右銘)이란 말이 있듯이 날마다 눈에 보이게 글을 새겨놓고 마음을 다잡는 역할을 하는 게 명(銘)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경계로 삼을 수 있는 말을 새겨놓고 마음에 새긴 것이다. 대표적으로 하나라 걸을 치고 상나라를 연 탕임금은 목욕하는 그릇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고 새겨놓고 마음을 다잡았다. 성인이라 불리는 요임금도 순임금에게 제위를 물려줄 때 경계를 잊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늘 위태롭고 도리에 합당한 마음은 늘 미미하니 오직 정의롭고 한결같이 해야 중용의 도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계하면서 자리를 물려주었다.현대 민주주의 정치에서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 가장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백성이 주인이기 때문에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닌 고대 정치사에도 나오는 일관된 주문이다. 그런데 요임금 말씀처럼 사람의 마음은 늘 한결같이 유지하기 힘들어 위태로운 면이 있기 때문에 자꾸 백성이 두려운 존재임을 망각하기 쉽다. '서경'에서는 두려워하지 않으면 자신이 두려워할 상황에 들어가게 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꼭 명심해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1-04-07 철산 최정준

[심현보의 '생태교육']거주 불능의 지구가 와도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전세계, 이상기후 재난에도무관심하거나 대응하지 않아우리에게 지구외엔 선택지 없어기후·생태계변화 외면하지 말고'지구환경 지키기' 실천 나서야지난해는 대부분의 학교가 입학식도 못 한 채 원격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며 혼란스러운 상태로 보냈다. 그러나 올해는 조심스럽게 입학식도 치르며 새 학년을 시작하였다. 여전히 등교 개학과 원격수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만, 인천에서는 모든 초등학교와 특수학교 신입생들에게 책꾸러미를 선물하여 책과 함께 아이들이 성장하도록 책날개 입학식도 운영하였다.아직도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와 같은 감염병의 원인이 기후 및 생태계의 변화와 밀접하다고 한다. 데이비드 월러스 웰스는 '2050 거주 불능 지구(2010)'에서 이상기후로 인해 2050년에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는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인간에게 미치는 살인적인 폭염, 지도를 바꿀 정도로 녹아내린 빙하, 치솟는 산불, 가뭄으로 인한 갈증과 굶주림 등은 우리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생각에 불안하기까지 하다.그중에서도 더 강하고 빨라지는 바이러스의 위협,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는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치명적이고 무서운 재난이다. 열대지역에 살던 박쥐들이 기후변화로 인간과 물리적으로 가까워졌으며 그리하여 박쥐가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까지 전염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최재천 교수는 생태계 보전에 관한 총체적 대책이 필요하며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감염사태는 앞으로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한다.이제 우리 사회는 기후 위기와 생태교육에 관심을 두고 지극히 일상적인 방식으로 누구나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투자를 많이 하는 국가일수록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유지할 것이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는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학교의 교육환경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실감하고 있다. 첫째, 학교를 지을 때부터 학생과 교사의 학습 환경을 고려한 철저한 건축기준과 환경기준이 정비되어 안전과 건강에 최우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둘째, 교수-학습에서는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학생들에게 교육활동이 제공될 수 있도록 수업에 필요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최적의 장비와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학교는 학생들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교육이 제시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할 것이고, 지금보다도 더 장기적인 기후의 변화 및 단기적으로는 하늘을 뒤덮는 황사와 같은 환경변화가 나타나는 시대를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예견하고 있는 빈번해질 대규모의 감염병 위기, 기후 위기, 생태계 변화 등에 대비한 교육이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은 현재의 일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 지금 전 세계는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이상기후와 재난에도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당장 탄소 배출을 줄여도 기후 상승을 막지 못하는데, 지구는 무감각과 무책임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기후 위기와 생태계 변화는 어느 특정한 국가나 사람들만의 잘못을 말하기에는 어렵고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특히 기후변화가 일으킬 수 있는 재앙과 재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관심이 있더라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후 위기와 생태계의 변화는 이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낮고, 회복력이 떨어지는 국가일수록 더 가혹한 결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2020년 7월30일 지구를 출발한 화성 탐사체 'Mars 2020'이 지난 2월18일 무사히 화성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안에 타고 있던 탐사로봇을 화성에 내리게 했고, 생명체의 흔적과 생존 가능성을 탐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우리에게 지구 외에는 아직 선택지가 없다. 따라서 기후와 생태계의 변화를 외면하지 말고, 코로나19의 위협을 극복해 가는 것처럼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할 때다./심현보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교장심현보 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교장

2021-04-04 심현보

[경제전망대]암호화폐, 유용한 가치 저장 수단인가 투기 수단인가

독립적·분권화된 글로벌 공동통화테슬라 이어 GM도 거래결제 검토반면, 변동성 커 투기수단·악용소지전문가 의견 분분속 현실 贊 분위기이런 광풍은 '달러패권 쇠퇴' 경고 ?비트코인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2월 8일, 테슬라는 비트코인 15억 달러 어치를 매수함과 동시에 "전기차를 사는 데 비트코인도 받아준다"고 발표하였다.GM도 테슬라를 따라 암호화폐 거래결제를 검토 중이며 시카고선물거래소(CME)는 이미 암호화폐를 취급해 소규모 헤지펀드들 중심으로 20억 달러의 거래실적을 내는 중이다.신용카드회사인 마스터카드가 비트코인을 결제시스템에 추가했고,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록은 비트코인을 투자적격 자산에 포함시켰다. 트위터는 직원들 급여를 비트코인으로도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칼럼 작성일 기준 비트코인은 한화가치로 약 6천600만원을 돌파하였다. 지금까지 채굴된 1천860만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8천770억 달러)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의 두 배, 골드만삭스에 비해선 여덟 배에 이른다. 그야말로 미 달러의 패권을 넘보고 있는 수준이다.이러한 비트코인 광풍에 대해 해외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진단은 비트코인이 특정 국가의 정부나 중앙은행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분권화된 글로벌 공동통화'여서 인위적인 절하나 권위주의적인 통제를 당할 위험이 없고, 발행총량이 2천100만개를 넘지 못하게끔 상한이 설정돼 있다는 것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달러나 유로화보다 더 안전한 자산'이라는 결론이다.비판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다.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는 변동성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투기적 수단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파월 의장은 이날 국제결제은행(BIS)이 주최한 화상포럼에서 "암호화폐는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유용한 가치저장 수단이 아니다"라며 "달러화보다는 금의 대체재 성격으로, 투기적 자산에 가깝다"고 말했다.재닛 엘런 재무장관에 이어 미국 통화 정책의 수장까지 비트코인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앞서 옐런 장관은 지난달 "비트코인은 거래를 수행하기에 극도로 비효율적이고 투기적"이라고 경고했다. 암호화폐가 자금 세탁과 재산 은닉, 테러 자금 모금 등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데다 채굴 과정에서 전기를 너무 많이 소모한다는 의미다.재닛 엘런 미 재무장관과 파월 미 중앙은행 Fed의장과 같이 우선 달러의 기축을 유지하면서 CBDC시대에도 여전히 달러 기축을 유지하고자 하는 집단에서는 비트코인 가치 상승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일관하고 있다.'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또한 비트코인에 대해 "아무 가치도 없고 계량도 할 수 없는 디지털 기호를 통화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다. 비트코인의 근본 가치는 영이며, 탄소세를 제대로 부과하면 마이너스다"(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라고 원색적인 비판의견을 밝히기도 하였다. 비트코인을 온라인으로 채굴하는 데 엄청난 전력이 소모된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이렇듯 비트코인이 달러 패권을 넘볼 진정한 가치 저장 수단이냐, 혹은 단순 투기 자산이냐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현실은 비트코인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듯하다.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타락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유사통화에 대한 쏠림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와 양적완화(대규모 통화 살포)가 금융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을 무력화하면서 온갖 시장 왜곡을 일으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진단이며,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긴급 경기부양 명목으로 1조9천억달러를 더 찍어내기로 한 것을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결국 비트코인 광풍이 의미하는 것은 달러화의 거품으로 인한 달러 패권의 쇠퇴가 시작됐음을 시장이 경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최영식 쉬프트정보통신(주) 대표이사·(사)판교1조클럽협회장최영식 쉬프트정보통신(주) 대표이사·(사)판교1조클럽협회장

2021-03-31 최영식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도선부: 물이 들어오면 배가 뜬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세계 변화는 지대하다. 이 중에 코로나19가 금융에 끼친 영향이 들어있다. 전염병으로 일상생활이 마비되면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줄줄이 늘어나자 구제를 위해 미국을 필두로 돈을 풀기 시작했는데 그 액수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이다. 그런데 문제는 있는 돈을 푼 것이 아니라 돈을 찍어냈다는 점이다. 당연히 돈이 지나치게 많이 풀리면 돈의 가치가 하락하고 자산가치가 올라간다. 물이 들어오면 배가 뜨는 이치와 같다. 최근 터키의 리라화 가치가 폭락한 것을 무심히 지나쳐보기 힘들다.그래서 화폐에 관한 의심이 고개를 다시 쳐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엄밀히 말하면 국가가 아닌 민간은행연합체가 그 발행을 하고 있는 실정에서 수천 조씩 찍어댄 후유증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초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 속에서 부를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화폐가치를 추락시키지 않을 새로운 자산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화폐에 대한 시대적 변모를 고려하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도 디지털 화폐에 관한 정책논의가 이루어질 터인데 시대에 맞는 열린 견해를 기대해본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1-03-31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벚꽃 지다

날이 흐리다 어제보다 흐린 오늘 꽃이 떠나고 있다 네 슬픈 눈시울처럼 붉어진 흰 꽃잎 눈보라처럼 흩날리고 있다 나 여기 레테의 강 건너 네 곁으로 왔단다 함께 있는 때만이라도 즐겁기로 했었지 약속을 어긴 건 당신이에요 너는 말하는데 꽃나무는 말이 없다 책을 읽어야겠지 상처 다스리는 법이 페이지마다 씌어 있지 아무도 찾지 않는 방에 들어가 비밀스레 나의 모더니즘을 읽는다 꽃잎처럼 흩어진 시간 끝에 선다 벼랑 끝에 바람이 분다 생은 스러지기 전에 크게 한 번 빛나는 벚꽃 잎 떠난 자리에 황토비 내리겠지 너 떠난 자리에 칠흑이 서겠지방민호(1965~)3월 말부터 개화하는 벚꽃은 한순간 눈을 멀게 한 사랑처럼 왔다가 간다. 그것도 기다렸다는 듯이 어제 피어나 기다려주지 않고 오늘 떠나간다. 어느새 눈 감았다가 뜨고 나면 사라지는 꿈처럼, '슬픈 눈시울처럼 붉어진 흰 꽃잎 눈보라처럼 흩날리고' 망각의 강에서 와서 왔던 곳으로 사라진다. 그렇지만 짧은 시간 동안 기억의 '페이지마다 씌어 있는 아무도 찾지 않는 방'에서 언제든 찾아오는 당신은 언제나 새롭다. 당신과 함께한 '꽃잎처럼 흩어진 시간 끝에서도, 벼랑 끝에 바람이 불 때도, 우리의 생은 스러지기 전에 크게 한 번 빛나는 벚꽃'이었지 않던가. 그렇게 '잎 떠난 자리에' 흘린 그 눈물이 버찌가 되듯이. 이제 꽃비로 상처를 마감하는 벚꽃은 꽃말처럼 '순결'한 '정신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중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1-03-30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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