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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後)] "우리가 꼭 기억할게"… 故 이선호 군, 59일만에 영원한 이별

"선호야 잘 가, 우리가 꼭 기억할게."19일 오전 10시께 평택시 안중읍 안중 백병원 장례식장. 지난 4월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벽체에 깔려 숨진 故 이선호(23) 군의 장례가 이날 시민장(葬)으로 열리며 이 군은 가족, 친구들과 영원한 이별을 맞이했다.지난 4월 22일 목요일 아내(어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부자(父子)는 함께 평택항으로 출근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건 아버지 이재훈 씨 혼자였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버지 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 군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작업에 갑작스레 투입됐다가 300㎏ 철판에 깔려 숨졌다. (5월 7일 인터넷 보도=평택항서 작업 중 철판 깔려 숨진 청년…아버지 "안전관리 허술" 오열)그렇게 두 달 가까이 이 군은 차가운 냉동고 속에서, 아버지와 친구들은 이 군의 죽음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싸웠고 이 군의 숨진 지 59일째인 이날 이 군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이번주 취재후는 여름태양처럼 빛났던 청춘, 이선호군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따라갔다. 이 군의 영정 사진 앞으로 하얀 국화꽃을 올리면서 아버지 이재훈 씨는 "잘 가라, 선호야"를 되뇌며 눈물을 흘렸다. 함께 헌화하던 이 군의 어머니도 아들의 영정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연신 훔쳤다.이 군의 곁을 지켜온 친구들은 추모사로 이 군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한 친구는 "백병원 장례식장 안내판에 새로운 사람의 이름이 오르고 사라질 때마다 선호 이름은 한 달 넘게 그대로인 것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선호 빈소를 지키면서 이전보다 선호의 모습을 더 많이 알게 돼 웃다가도 어쩌면 앞으로 더 볼 수 있었던 모습이라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린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선호를 하나의 슬픔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 이제 선호를 보내지만, 다시는 선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해달라"며 "누군가의 죽음에 기대 바꿔야만 하는 현실이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또 다른 친구도 "차가운 냉동고 속에서 선호를 꺼낼 생각을 하니 다행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가 문득문득 떠오를 선호에 슬퍼할 생각을 하니 두렵다"며 울먹였다.이 군의 아버지는 이 군을 추억하는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꼭 안아주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슬퍼했다.이 씨는 "약 2개월 동안 총칼 없는 전쟁을 치르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피폐해져 버렸다"며 "이 힘든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도 있었지만,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줘 약해지는 제 마음을 추스르고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다시 일으키며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이어 "제 아이는 비록 23년 살다 갔지만, 이 사회와 세상에 많은 숙제를 주고 떠난 것 같아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며 "마냥 슬퍼하는 것보다 아이의 죽음이 잘못된 법령을 다시 고치는 초석이 됐다는 자부심으로 스스로 위안하며 다시 살아가려 한다"고 말을 이었다.이날 장례식에는 정의당 여영국 당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심상정, 배진교, 강은미, 장혜영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 등이 참석했다. 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사단법인 김용균 재단 김미숙 대표 등 노동계 관계자와 유족 등 200여명이 이 군의 마지막을 함께했다.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선호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하고 노력하고 싸울 것"이라며 "차별과 착취도 재해도 없는 사회에서 이선호 님의 평안한 삶을 기원한다"고 이 군을 추모했다.정의당 여영국 당 대표는 "300㎏ 쇳덩이는 23살 청춘을 덮치고 삶의 희망을 산산조각내며 제2, 제3의 김용균만은 막아보자던 우리 심정을 산산조각냈다"며 "사람 목숨 앗아가도 기업주는 멀쩡하고 함께 일하던 노동자만 처벌받는 세상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차가운 냉동고를 나온 이 군은 발인식을 거쳐 운구 차량에 실렸고, 유족들은 운구차 앞에서 묵념하며 이 군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이 군이 59일간 머물렀던 장례식을 떠나는 마지막 모습이었다.유족들은 이번 사고의 원청업체인 '동방' 평택지사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이 군의 유해를 서호추모공원에 안치할 예정이다.이날 낮 12시께 노제를 위해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에 도착한 이 군의 아버지는 터미널 펜스 너머 이 군과 아버지가 일하고, 이 군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 현장을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노제를 마친 후에는 부자(父子)가 자주 가던 터미널 구내식당을 찾아 이 군과의 기억을 추억했다.故 이선호 군은 지난 4월 22일 오후 평택항 내 'FR(Flat Rack) 컨테이너'에서 화물 고정용 나무 제거 작업을 하던 중 지게차가 갑자기 왼쪽 벽체를 접은 탓에 발생한 충격으로 오른쪽 벽체가 넘어지면서 그 밑에 깔려 숨졌다.현행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 시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안전 조치 방안을 마련한 후 작업을 시작해야 하며, 지게차가 동원될 경우 반드시 신호수를 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 군이 투입된 작업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았고 안전관리자나 신호수도 없었으며 이 군은 안전모 등 기본적인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작업에 투입돼 숨졌다.평택경찰서는 지난 15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동방관계자 등 5명을 형사 입건하고 그중 지게차 기사 A씨를 구속해 조사하고 있다./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19일 오전 10시께 평택시 안중읍 안중 백병원에서 지난 4월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청년 노동자 故이선호 군의 장례식이 시민장으로 진행됐다. 2021.6.19 /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19일 오전 10시께 평택시 안중읍 안중 백병원에서 지난 4월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청년 노동자 故이선호 군의 장례식이 시민장으로 진행됐다. 2021.6.19 /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19일 오전 10시께 평택시 안중읍 안중 백병원에서 지난 4월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청년 노동자 故이선호 군의 장례식이 시민장으로 진행됐다.2021.6.19 /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19일 낮 12시께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에서 지난 4월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청년 노동자 故이선호 군의 노제가 진행됐다. 2021.6.19 /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2021-06-19 신현정

이천 쿠팡물류센터 '전소 위기'… 진화 쉽지 않은 이유는?

이천 쿠팡 물류센터가 전소될 위기에 처한 가운데 소방당국이 여전히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소방당국은 센터 인근 상하수로가 없어 2~3km 반경 내 마을에서 소방 용수를 끌어와 사용하는 처지에 놓였다. 게다가 센터 건물 4면 중 절반이 낭떠러지와 맞닿아있고 소방장비가 들어올 수 있는 진입로도 한 곳 뿐이어서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18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전날(17일) 오전 5시36분께 이천시 마장면의 쿠팡 덕평물류센터 지하 2층에서부터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원인은 지하 2층 물품 창고에 설치된 3단 철제 선반에서 발생한 전기적 요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소방당국은 진화에 주력했으나 화재 발생 이틀째에도 불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 18일 오후 2시까지 해당 건물은 초진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건물 내부에서부터도 계속해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전문가들은 진화에 난항을 겪는 이유로 각종 외부적 요인을 꼽았다.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재 건물 붕괴 위험이 있어서 방수포를 활용한 원거리 진화 작업만 가능하다"며 "건물 붕괴 우려가 있어서 안전 거리 확보가 필요하고 이 때문에 건물 내부 등 일부분이 계속해서 타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일각에서 제기된 스프링클러 오작동 문제와 관련해선 "물류창고는 법적으로 4m 간격으로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이지만 이처럼 건물이 많은 창고는 화재를 제 때 진화하기 위해 선반마다 설치를 해야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손원배 경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화재 진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물을 끌어와 쓰면 원활한 소방 활동에는 분명 지장이 있을 것"이라면서 "대형 화재 발생 시 포위 협공 원칙에 따라 건물 전후좌우에서 일시 다량의 물을 뿌려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차량 진출입로도 하나 뿐이어서 소방 활동 사각지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이시은·이자현·조수현수습기자 see@kyeongin.com지난 17일 시작됐던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하루 넘게 지속되고 있다. 2021.6.18 /이시은·이자현 수습기자 see@kyeongin.com지난 17일 시작됐던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하루 넘게 지속되고 있다. 2021.6.18 /이시은·이자현 수습기자 see@kyeongin.com지난 17일 시작됐던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하루 넘게 지속되고 있다. 2021.6.18 /이시은·이자현 수습기자 see@kyeongin.com지난 17일 시작됐던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하루 넘게 지속되고 있다. 2021.6.18 /이시은·이자현 수습기자 see@kyeongin.com

2021-06-18 이시은·이자현·조수현

"개헌 더 미룰 수 없다… 내년 대선때 헌법개정 투표해야"

더불어민주당의 대권 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내년 대선과 함께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 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며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정신이라고 밝혔다. 정세균 전 총리는 10일 오전 경인일보와 인천경영포럼(회장·원용휘) 주최로 인천 라마다송도호텔에서 열린 제423회 조찬강연회에 연사로 나와 이같이 언급하며 "대통령도 4년 중임제로 가는 게 옳다고 본다"고 강조했다.정세균 전 총리는 "이제는 투쟁과 분열, 반목의 정치를 청산하고 통합 정신으로 국민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과제가 바로 개헌"이라고 말했다. 이어 "헌법이 개정된 지 34년이 지났고 그간 우리 사회의 제도와 가치관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기존 헌법은 이런 급격한 사회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정세균 전 총리는 "포괄적인 헌법 개정이 불가피하지만 이게 안 될 경우 권력 구조 개편 등 부분적으로라도 헌법이 개정돼야 한다"며 "이미 개정안 등 그 뼈대는 준비된 상태"라고 했다. 또 "헌법 개정을 통해 지방정부가 재정권, 입법권 등을 가져야 명실상부한 자치 분권이 이뤄진다"고 말했다.정세균 전 총리는 강연을 마친 후 인천시와 인천시의회를 방문해 박남춘 인천시장 등과 지역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박남춘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정 전 총리의 국민을 살리는 '살림 정치'가 돼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며 "총리일 때는 방역사령관으로 애쓰시더니 지금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나라 미래를 그리고 계시다"고 했다.한편 이날 인천경영포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윤관석, 박찬대, 정일영 의원과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 등 인천 지역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 관련기사 3면(정세균 전 국무총리 인천경영포럼 강연, "젊은세대 1억 종잣돈 씨앗통장" 제안)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

2021-06-10 김명호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인천경영포럼 강연, "젊은세대 1억 종잣돈 씨앗통장" 제안

부모찬스 아닌 사다리 놓아줘야상속·증여세·기금으로 재원 확보정치 개혁실패 권력구조 개편을경제 밑에서 확산 '분수론' 강조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현재 우리 정치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혁에 실패했다고 진단하고 국민과 함께 미래 희망을 공유하며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밝혔다.정세균 전 총리는 10일 경인일보와 인천경영포럼(회장·원용휘)이 주최한 조찬강연회에 연사로 나와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가 직면한 위기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정세균 전 총리는 "현재 시점에서 정치 개혁에 실패할 경우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정치가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헌법 개정을 통해 권력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헌을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지방정부의 재정권·입법권 독립, 선거권 연령 하향 등 다양한 개혁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정세균 전 총리는 우리나라 경제 구조와 관련해서도 대기업 등 일부 기업이 창출한 이익을 나누는 '낙수효과'가 아니라 밑에서부터 경제 성장 원천을 만들어 분수처럼 넓게 확산하는 '분수경제론'을 구현하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 경제가 일부 대기업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 등 밑에서부터 성장 원천을 만들어 분수처럼 넓게 퍼져 나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중산층이 튼튼한 항아리형 경제로 가야 우리의 미래가 담보된다"고 했다.정세균 전 총리는 젊은 세대들이 '부모 찬스'가 아닌 본인의 노력으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 '씨앗통장'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상속세를 재원으로 모든 출생아에게 국가가 통장을 만들어줘 20세까지 1억원을 모아주는 씨앗통장을 제안한다"며 "국내 출생아 27만명을 대상으로 이 정책을 실시하려면 약 330조원의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는 상속·증여세와 별도의 기금 운용 등을 통해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젊은 세대들에게 사다리를 다시 놓아 줘야 한다"며 "씨앗통장이 현실화할 경우 젊은이들이 1억원을 종잣돈 삼아 취업, 결혼 등을 준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정세균 전 총리는 "제가 부족한 점도 있지만 젊은 시절 18년 동안 종합상사에서 샐러리맨으로 실물 경제를 익혔고 시대가 원하는 경제 정책에 대한 경험과 소신을 가지고 있다"며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10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라마다 송도 호텔에서 열린 '제423회 인천경영포럼 조찬강연회'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의 새로운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2021.6.1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21-06-10 김명호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⑭고양 진미정육점] 편견 깬 정육점, 비결은 '정직'

#들어가며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 지난주 금요일, 오늘 소개할 백년가게인 '진미정육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곳 사장님께 인터뷰 섭외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죠. 당시 사장님은 출타 중이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제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고정관념'이 맞습니다. "전화 주셨다고요?", 전화기 너머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금껏 방문한 백년가게 대부분은 부부가 같이 운영했고, 무엇보다 제가 만나본 정육점 사장님들은 대개 남자였기 때문이죠.인터뷰를 하기 위해 가게에 방문한 당일까지도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제가 가진 이런 편견은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깨져버렸습니다. 오늘은 39년 간 정육점을 운영해온 최봉자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정육점 사장이자, 한 집안의 가장 최봉자(67) 씨는 지난 1983년 고양시장에 정육점을 차렸습니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은 뒤 뭐라도 하긴 해야 했다.", 그의 설명입니다. 진미정육점은 원래 부부가 함께 운영했습니다. 손님에게 판매할 품질 좋은 고기를 구매하고, 손질하는 일은 주로 남편의 몫이었습니다. 봉자 씨의 남편은 딸이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남편과 사별한 슬픔과 함께 홀로 딸과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게 된 것이죠. 담담한 듯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봉자 씨의 모습에서 그가 느꼈을 세월의 중압감이 읽혔습니다. "결혼해서 남편과 같이 정육점 일을 하면서 하나하나씩 배웠어요. 얼마 안 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부터는 혼자 하게 된 거죠. 왜 여기는 여자가 장사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오히려 친근감이 있고, 편하다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많았죠."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홀로 정육점을 운영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양주와 파주 등지로 직접 고기를 사러 다니고, 소나 돼지를 해체하는 일 모두 직접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래처에 갈 때면 자신을 조금은 의아하게 쳐다보는 시선도 느껴졌다고 합니다."옛날에는 새벽 1시에 소나 돼지를 직접 사러 여기저기로 많이 다녔어요. 돼지는 한 번에 7~8마리씩 샀는데, 해체하고 자르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혼자인 데다가 처음에는 고기에 대해 잘 몰랐으니까 고기 킬로수 같은 경우 속는 일도 있었어요. 일일이 뭐라 할 수 없으니까 모른 척하고 넘어가고 그렇게 살아온 거죠." #백년가게의 비결은 '정직함' 힘든 시간을 보낸 그에게 버팀목이 되어 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봉자 씨가 시장에서 만난 인연들이죠. 진미정육점에는 '직원인 듯 직원 아닌' 그의 동료들이 있습니다. 가게 일을 돕고 있으니 직원은 맞는데, 따로 급여를 받진 않으니 직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봉자 씨를 돕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일산시장 인근에서 오랜 기간 미용실을 운영한 김명옥(79)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는 왜 정육점에 출근해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들을 맞고 있을까요? "혼자 가게 운영하는 걸 옆에서 다 지켜봤어요. 사장님이 고기 하나에도 마음을 다하고, 주변에 베푸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통한 거 같아요. 지금은 누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되었죠."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였습니다. 이곳 손님들은 가게를 찾으면 하나같이 사장님을 먼저 찾습니다. 일을 도우러 온 봉자 씨의 아들과 친구들이 가게에 있음에도 굳이 인터뷰를 하는 봉자 씨에게 말을 겁니다. 고기도 고기지만, 봉자 씨를 보고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많다는 것이죠. "주인이 친절하고, 고기가 맛있으면 그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대를 이어받을 아들한테도 맛있는 고기는 당연하고, 손님에게도 친절해야 한다고 말하거든요. 저희는 암소, 암퇘지 등 최고로 좋은 고기 아니면 안 팔아요. 그래서 그런지 개업 초창기 때부터 오는 손님들이 많죠. 시어머니가 왔다가 며느리가 오는, 대를 이어 오는 단골손님들이 많아요."진미정육점은 명절 당일만 문을 닫습니다. 외국은커녕 국내 여행도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봉자 씨입니다. 제주도에는 단 한 번 가봤다고 하네요. 자신을 보고 찾아온 손님들이 헛걸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내가 하는 가게이기 때문에 내가 있어야 해요. 손님들께 좋은 고기 줄 때가 가장 행복하기도 하고요. 애들이 다 결혼해서 잘살고 있고, 앞으로는 편안하게 잘 사는 더 '좋은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아들이 나중에 이어받아서 가게를 확장하고 이름도 날리면 더 바랄 게 없겠죠."이런 그의 진심을 손님들도 알고 있나 봅니다. 가게에 찾은 손님에게 진미정육점을 꾸준히 찾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사장님이) 아주 정직해서, 아주 정직해요."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진미정육점 주소: 고양시 일산서구 일청로12번길 9.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8시(명절 당일 휴무). 전화번호: 031)976-3101.진미정육점 사장 최봉자 씨.2021.06.08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최봉자 사장(왼쪽 두 번째)과 그의 친구들.2021.6.8 /진미정육점 제공최봉자 사장 지인.

2021-06-10 배재흥

'괴로움 호소했었다'… 동료 증언으로 드러난 네이버 직원 비극적 선택 이면

'임원 A가 자기(고인 B씨)를 거치지 않고 팀 멤버들을 직접 매니징(관리)하여 최근 퇴사한 사실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인력 부족으로 충원해도 모자랄 판에 팀원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어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2020년 11월 18일)'두 달짜리 업무가 매일 떨어지고 있어서 매니징하기 어렵다'(2021년 1월 28일)'임원 A와 미팅할 때마다 자신(고인 B씨)이 무능한 존재로 느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2021년 3월 26일)지난달 25일 네이버 사원 B(40대)씨가 성남시 분당구 소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곁에는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메모가 남겨졌다. B씨가 비극적 선택을 하기까지 평소 동료들에게도 특정 임원 탓에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괴로움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반복되는 임원 A의 부당한 업무지시와 모욕적 언행에 괴로웠고, 이를 해결하고자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는 숨을 거두기 2개월 전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 계속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나?' 등의 어려움을 토로했다.이 같은 B씨의 업무 환경은 함께 일한 동료들의 증언으로 속속 밝혀졌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이하 공동성명)은 7일 B씨 죽음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B씨의 사망은 회사가 지시하고 회사가 방조한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고 강조했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공동성명 자체 조사 결과를 보면, B씨는 과도한 업무와 상급자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업무지시, 모욕적인 언행과 더불어 2년여 동안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이를 묵살한 회사의 무책임함이 그대로 드러났다.특히 상급자 임원 A는 B씨의 업무를 평가하는 주체이자 연봉 인상과 인센티브 제공, 보직·해임 등 전반적인 인사권한을 쥐고 B씨를 옭죄어온 것으로 보인다.B씨는 휴게 시간 1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기 일쑤였고, 업무가 많아졌음에도 임원 A가 직접 팀원들을 관리하면서 팀원 이탈이 반복됐지만 인력 충원은 사실상 없었다고 동료들이 증언했다. 지난해 11월 B씨는 동료에게 "업무도 과중한 상황에서 팀원을 트레이닝시키고 이제 적응할 만큼 성장시켜 놓았는데, 임원 A때문에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허탈하고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상급자 지위를 이용해 임원 A가 부당한 업무를 지시하고 모욕적인 언행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게다가 또 다른 임원 C는 다른 조직에 속한 B씨에게 지난해 10월 직접 업무 지시를 한 데다 임원 A와 C 간 의견충돌이 발생하자 이 문제를 B씨에 전가하며 누구의 지시를 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고충도 동료들에게 토로했던 것으로 파악됐다.모욕적인 언행도 나왔다. 공동성명은 "임원 A가 회의 중 종종 고인 B씨가 모욕감을 느낄 만한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다"면서 "특히 5월 7일 5시 회의에서 인턴의 프로젝트 주제 논의 중 고인이 의견을 제시하자 임원 A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면박을 줬다가 5분 후에는 고인의 의견과 동일한 내용의 프로젝트 과제를 진행하자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또한, 공동성명은 회사 측의 방조와 무책임한 태도도 B씨의 비극적 선택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9년 1월, 2019년 5월 B씨를 포함한 팀장들이 경영진 D씨에게 임원 A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별다른 조처는 없었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했던 팀장 14명 중 4명은 직위 해제되고, 또 다른 4명은 결국 퇴사했다고 덧붙였다.지난 3월에도 이해진 GIO와 한성숙 CEO 등이 참여한 회의에서 직원들이 임원 A를 시사하며 선임의 정당성을 질문했지만, 당시 인사담당자는 인사위원회가 검증한다는 등의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는 설명이다.오세윤 공동성명 지회장은 "임원 A는 본인이 가진 권한을 이용해 고인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면서 "직접적인 가해를 한 임원 A와 이 문제를 알고도 묵살했던 경영진 D는 이 일에 큰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B씨의 업무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메신저 이력과 출퇴근 기록, 임원 A 메신저 기록 등을 회사 측이 보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진상 규명을 위해 수사권한을 가진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조사 및 수사 결과 이후 노조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위 구성 ▲책임이 드러난 자에 대한 엄중 처벌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경영진의 사과 등도 촉구했다.한편 지난달 28일 분당경찰서는 지난 25일 네이버 사원 A(40대)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A씨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에는 업무상 스트레스 등을 호소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직장 동료들을 상대로 A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변사사건으로 수사하고 있으며 참고인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아직 갑질로 입건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7일 오전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은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5일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2021.6.7 /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2021-06-07 신현정

'日 방사능 오염수 방류' 해상 규탄… 궁평항·전곡항 '해양 쓰레기 수거'

안산시, 선박 30여척 동원 시위시장 등 동참 "반드시 철회돼야"14일부터 '경기 바다 여행 주간'경기도와 안산시, 시민단체들이 바다 관련 산업의 중요성과 바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된 '바다의 날(5월31일)'을 맞아 바다를 지키고 해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직접 나섰다.특히 올해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과 맞물려 일본 정부에 대한 해상 규탄시위도 함께 열려 눈길을 끌었다.31일 안산시는 어선 및 요트·보트 등 선박 30여척을 동원해 대부도 탄도항 일원 해상에서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한 일본 정부 규탄 시위를 펼쳤다. 2023년부터 원전 방사능 오염수 125만t을 바다에 방류하기로 한 일본 정부의 결정을 규탄하고 철회를 촉구하기 위해 마련했다. 윤화섭 안산시장도 시 소유 요트 '안산호'에 탑승해 해상시위에 동참했다. 윤 시장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면 수개월이면 서해 끝자락에 있는 안산 탄도항까지 흘러들어와 생태계 파괴는 물론, 암과 백혈병, DNA 손상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전 세계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본 정부의 결정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경기도 비영리 단체 등록을 마친 바다환경지킴이협회도 이날 화성 궁평항과 전곡항 일대에서 경기도·화성시·화성시자원봉사센터·한국환경공단·수협 등 관계자 50여명과 함께 해양 쓰레기 수거 작업을 진행했다.박재순 협회장은 "바다 오염은 수산물을 다시 섭취하는 사람들에게 총구로 되돌아와 생명에 지장을 준다"며 "특히 요즘 일본의 핵폐기물 방류 결정으로 수산물에 대한 경각심이 일깨워지는 시점에 바다환경 지킴이 협회의 활동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경기도는 해양 관광 활성화를 위해 풍부한 해양레저 인프라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화성·안산·평택·시흥·김포 등 5개 시를 대상으로 오는 14일부터 1주일 동안 '경기 바다 여행주간'을 연다. 수도권과 가까워 지리적 이점이 있는 관광지로 최근 일상 속 소소한 여행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경기 바다의 숨은 명소를 발견하는 이벤트는 물론 테마 여행, 체험 상품, 투어 상품들도 제공된다.아울러 도는 해양 안전사고를 미리 체험하고 생존법을 배울 수 있는 '경기도 해양안전체험관', 캠핑 차량을 활용해 다양한 관광 자원을 찾아가는 홍보관도 운영한다. /황준성·남국성 기자 yayajoon@kyeongin.com바다의 날인 31일 오후 안산시 단원구 탄도항에서 대부도 어촌계 협의회 등 어민들이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1.5.31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2021-05-31 황준성·남국성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⑬성남 대성기름집] '참기름 맛집', 모란시장 맛의 비법은?

#들어가며경기도·인천지역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이 기사를 클릭했다면 조금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통의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군 귀한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소상공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백년가게란? -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국민 추천은 20년 이상)의 소상공인 및 소·중소기업.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모란시장은 수도권 전통시장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수도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이죠. 모란시장은 향토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만, '개 도축'과 관련한 갈등이 몇 년 전까지 이어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성남시는 지난 2017년 정책연구보고서를 발간 했는데요. 연구진이 2012~2017년 9월 말까지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모란시장의 연관어는 '개고기', '도축장' 등으로 대부분 개와 관련한 부정적인 이미지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모란시장의 개 도축시설은 모두 철거되었습니다.이처럼 모란시장은 좋든 싫든 한때 '가축 시장'으로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이와 함께 모란시장을 대표했던 품목은 '기름'입니다. 양질의 참기름과 들기름을 짤 수 있는 '기름 시장'의 명성도 가축 시장 못지않은 데요. 1990년대 말께 모란시장 내 기름집은 무려 50여 곳에 달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점포 수가 조금 줄어 38곳의 기름집이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기름 맛과 김치 맛박정수(52)씨는 지난 1988년 문을 연 '대성기름집'의 2대 대표입니다. 그는 군 제대 이후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부모님에게 가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정수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 직접 가게를 운영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아버지의 반대가 만만찮았다고 합니다. 아들은 작업복 대신 양복을 입고 출퇴근 하길 바랐던 것이죠."그때는 이 일이 좀 더 자유롭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다니는 것보다 벌이도 나았고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자식이 번듯하게 넥타이 매고, 양복 입고 출퇴근하면서 직장 생활하길 바라죠. 옛날 분들은 그게 더 심했어요. 당시에는 아버지께 많이 혼났죠."그로부터 어느새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정수씨 부부의 노력으로 대성기름집의 기름은 제주도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성남시와 수도권을 넘어 전국적인 판매망을 구축한 것이지요.정수씨에게 대성기름집만의 '기름 맛' 비법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 무딘 감각으로는 기름의 맛과 향이 특별하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정수씨는 '김치 맛'을 예로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습니다. "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잖아요. 기름도 김치 맛처럼 약간씩 달라요. 어떤 깨를 쓰느냐, 깨를 얼마나 볶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거든요. 한 동네에 사는 이웃주민 두 분이 기름을 짜러 오세요. 한 분은 저희 집에서 기름을 짜고, 다른 한 분은 안쪽 집에서 기름을 짜요. 같이 차를 타고 와서 기름을 짜는 곳만 다른 거죠. '굳이 저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먹는 사람은 맛의 차이를 느끼는 거죠."#모란시장 기름집의 미래는?모란시장의 기름집들은 '상생'하는 사이입니다. 기름집이 여러 곳 몰려있다 보니 양질의 깨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선의의 경쟁도 펼칩니다. 맛이 상향 평준화되는 것은 물론, 기름집 주인들이 손님을 응대하는 말투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네요."모란시장의 기름 맛과 향이 다른 곳보다 좀 더 나아요. 기본적으로 기름집이 38곳 있으니까 깨를 구매하기 쉽고, 가격 경쟁력도 있죠. 특히, 손님들께 잘할 수밖에 없어요. 주인이 한 번 틱 거리면 손님들은 '어? 그래 알았어' 하고 바로 옆집에 가면 되니까요."그러나 고민거리도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죠."기름집이 있는 곳이 전통시장이잖아요. 지금은 어머니가 시장에 와서 기름을 사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있지만, 이후에는 '그 자식들이 모란시장에 와서 기름을 사 먹을까?'라는 생각이 들죠. 이곳 기름집들도 인터넷 판매나 홍보 방법 등을 알아보고 있어요. 다들 그쪽으로(젊은 손님을 유인 할 수 있는 방법) 많이 고민하고 있는 거죠."정수씨는 슬하에 두 아들을 뒀습니다. 큰아들은 기름집 대를 잇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고, 대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은 가게를 이어받겠다고 했다네요. 그는 아들에게 "싫으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싫은 마음이 드는 건 이 일이 고되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대를 잇겠다는 아들의 의사를 반대하지 않는 건 지난 세월 그가 느낀 보람과 행복 덕분일 겁니다.대성기름집이 있는 모란시장 골목에 가면 기분 좋은 고소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정작 정수씨는 하루에 기름 냄새를 두 번 맡는다고 합니다. 가게 문을 열 때 한 번, 퇴근 후 옷을 갈아입을 때 한 번. 계속 맡다 보니 무슨 향이 나는지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다른 기름집 주인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모란시장 기름집 모두가 손님들에게 맛있는 기름을 대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저희 집 뿐만 아니라, 모란시장에 있는 기름집들 다 좋은 깨 쓰고, 손님들한테 박하게 대하지도 않으니까 많이 찾아주면 고맙겠습니다."*대성기름집 주소: 성남시 중원구 둔촌대로83번길 7.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7시(매주 일요일 휴무/장날이면 정상영업). 전화번호: 031)754-2883.가게 앞에 선 대성기름집 대표 박정수씨. 2021.5.21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인터뷰 도중 활짝 웃는 박정수씨. 2021.5.21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가게 전경. 2021.5.21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2021-05-27 배재흥

故이선호 대책위·민주노총, 산업 현장 '죽음의 악순환' 끊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만들어야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882명. 산재 사망 사고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목표와 달리 지난 2019년보다 오히려 27명 늘었다. 반복된 노동자의 산재 사망 사고로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재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처벌법)'도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법 제정 이후에도 산재사고는 반복됐고,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죽음의 악순환' 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故 이선호 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필요""우리 아이는 일당 10만원을 벌기 위해 (일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14일 오전 11시 평택시 안중읍 금곡리의 안중 백병원 장례식장 앞.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 고 이선호 씨가 숨진 지 23일째인 이날, 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가 땡볕 아래 마이크를 들었다. 그는 "사업주가 인건비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우리 아이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FRC(개방형 컨테이너)의 날개를 접는 일에 동원됐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했다. 이어 "안전요원 2명까지도 필요 없고, 딱 한 명만 그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면 이번 사고는 일어날 수 없었던 사고"라고 말했다.선호 씨가 일한 현장의 하루 일당은 10만원. 사업주는 고작 10만원을 아끼기 위해 안전을 도외시했고, 그 결과 선호 씨는 퇴근길에 오르지 못했다. 이재훈 씨는 "선호가 우리 가족 곁을 떠난 순간,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 우리 가족은 이 고통을 평생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한다"며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단 한 번이라도 돌아본다면, 사업주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전날(13일) 문재인 대통령도 이곳을 찾아 고 이선호 씨를 조문했다. 고 이선호 군 산재사망대책위(이하 대책위)는 "정부 여당과 문 대통령은 결자해지(結者解之) 심정으로 법과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대책위는 ▲유가족들이 이해할 수 있는 철저한 진상 규명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안전한 현장을 위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 ▲산재사망, 중대재해를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의 마련 및 개선 등을 요구했다.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도 기자회견문을 통해 "산재사망은 기업의 구조적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선호 님이 떠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세상이 이 죽음에 관심을 둔다. 모든 이들의 추모의 마음이 모이기 시작하자 정치인들이 움직인다"며 "이들이 와서 뱉은 말이 현실이 되어야 한다. 이들의 말대로만 되면 이제 우리나라는 산재로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한편, 고용노동부는 이날 평택항에서 발생한 고 이선호 씨 사망사고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지자체 합동 기구인 '평택항 사망사고 관계기관 합동 TF' 첫 회의를 열면서 철저한 수사로 사고 원인을 밝히고, 위법 사항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온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으로 입법 취지 살려야…"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1월 어렵게 국회 문턱을 넘었다. 고용부는 법 시행에 앞서 시행령 제정에 들어갔다. 시행령은 5월 입법 예고 후 7월 국무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원청과 경영책임자의 처벌과 공무원 처벌조항,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을 걷어내기 위해 온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요청하고 있다.지난 12일 오전 11시55분께 포천시 영북면의 한 채석장에서 50대 남성 1명과 60대 남성 1명이 기계에 끼여 숨졌다. 이들은 고장 난 바위 절단기인 '와이어 소(wire saw)'를 수리하러 기계 아래쪽으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기계가 내려앉으면서 참변을 당했다.사고가 발생한 작업장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었다. 포천 사고처럼 지난해 업무상 재해 사망자 882명 중 714명인 80.9%가 상시 근로자 5명 미만, 5~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소규모 사업장이 산재사고에 더욱 취약한 게 현실이다.그러나 5인 미만은 법 적용에서 아예 제외됐고, 5명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이후 3년간 법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포천 사고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하려면 오는 2024년이 돼야만 가능한 것이다.또한, 처벌 대상을 '경영책임자 등'으로 명시해 모호한 부분이 있고 공무원 처벌 조항도 빠졌다.지난 6일 연천 차탄천에서 대전차장애물이 무너지면서 50대 가장이 숨졌다. 공사 현장 발주처인 연천군은 공사구간에 불과 6년 전 설치한 대전차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당연히 공사 현장에 투입된 숨진 노동자도 이 같은 사실을 알긴 어려웠다.더욱이 관리·감독 또한 발주처인 연천군이 맡아 연천군의 관리 미숙에 대한 책임을 피하긴 어려운데, 경찰 조사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져도 연천군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민간 사업장보다 더욱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이 공공기관이지만, 공무원이 가진 인·허가권이 중대재해의 원인이 됐다는 점은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서 공무원은 제외됐기 때문이다.민주노총은 "이제 임박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빈틈없이 올바르게 제정해야 한다"며 "모법인 중대재해처벌법도 원청과 경영자책임자 처벌, 공무원 처벌조항,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걷어내고 인과관계 추정의 원칙이 포함되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故 이선호 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은 14일 오전 11시 평택시 안중 백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신현정 기자 god@kyeongin.com

2021-05-14 신현정

[단독]지속학대 의심되는 그 집…'사회복지사 가정'이었다

양모 '그룹홈' 운영… 양부는 도와입양기관, 현장방문 2회만 하면 돼'2020 매뉴얼' 따라 규정 어기지 않아개정판 선제적용 했다면 '아쉬움'화성에서 학대로 의식불명에 빠진 입양아의 양부모가 취약계층 아이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11일 경인일보 취재를 종합한 결과 현재 2세 입양아 학대에 방조한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돼 조사 중인 양모 A씨는 그룹홈을 운영한 적 있는 사회복지사이며 양부 B씨도 그룹홈 운영을 도왔던 것으로 파악됐다.이 아동의 입양을 담당한 입양기관 측도 "직업이 입양하는데 직접적 근거가 된 건 아니다. 양부모가 될 사람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중점을 두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답했다.또 입양기관은 입양 후에 단 1차례만 가정방문을 했고 이후 이루어진 2·3차 관리는 서면과 전화 확인에만 그쳤던 것으로 확인됐다.C(2)양은 지난 2020년 8월 말 이들 부부에 입양됐다. 모두의 축복 속에 꽃길만 걸을 줄 알았지만,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3차례에 걸쳐 양부인 B씨에게 손과 주먹, 나무재질의 구둣주걱 등으로 폭행당했다. 말을 듣지 않고 운다는 이유에서였다.결국 C양은 심각한 뇌손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게다가 C양을 치료한 의료진도 엉덩이, 허벅지, 가슴 등 몸 곳곳에서 시일이 지난 듯한 멍 자국들이 발견됐다고 밝혀 지속적인 학대도 의심받고 있다. C양 입양 절차를 진행한 건 D사회복지기관이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19년 아동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C양을 본 후 안쓰럽게 여기다 입양을 결정했다. D기관은 정상적인 입양 절차에 따라 교육 등을 진행했고, 지난해 8월 최종적으로 입양됐다.입양 절차를 진행한 기관은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 이후 1년간 입양 아동의 양육환경을 확인해야 한다. D기관은 지난해 10월, 지난 1월, 4월 3차례에 걸쳐 입양 후 관리를 진행했다. 이 중 담당자가 직접 가정을 방문한 건 입양 후 2개월이 지난 지난해 10월 1차례뿐이다. 나머지는 B씨 부부와 전화·이메일·문자 등으로 적응 여부를 점검하는 등 비대면에 그쳤다.C양 입양 당시 현장에 적용됐던 '2020년 입양실무매뉴얼'은 입양 후 1년 안에 4차례 '입양 후 관리'를 해야 한다. 이 중 현장 방문은 2회만 하면 돼 표면상으로 D기관이 규정에 어긋난 것은 없다.하지만 '정인이 사건'을 돌이켜 보면 아쉬운 부분이 남는다. 정인이 사건 이후 보건복지부는 입양실무매뉴얼을 개정해 지난 1월 발표했다. '입양 후 관리'는 4회에서 6회로 늘리고, 3회는 가정방문, 3회는 면담으로 진행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10일부터 현장에 적용됐다. 개정된 매뉴얼은 언론과 각종 홍보자료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D기관이 기존 규정 대신, 개정된 매뉴얼을 선제 적용해 가정방문을 더했다면 이번과 같은 참극은 없었을지 모른다.D기관 관계자는 "규정에 맞게 입양과 입양 후 관리 절차를 밟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져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인원이 부족해서 현장 점검을 하지 않은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인원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지영·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입양한 2세 여아를 폭행 학대한 피의자 양부 A씨가 11일 오후 수원남부경찰서에서 나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수원지방법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2021.5.11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1-05-11 공지영·김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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