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페이크뉴스(fake news)' 라는 괴물

대선국면 '가짜뉴스' 구별 오해와 억측 낳을 수도
퇴치 위해선 합리적 사고·판단만이 유일한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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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1센트짜리 신문 '페니 프레스(penny press)'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뉴욕 선(New York Sun)'이 창간 2년 무렵인 1835년 8월 21일 평범한 기사 하나를 싣는다. 존 허셀 경이라는 영국 귀족이 남아프리카 희망봉에서 최신형 대형 망원경으로 '매우 아름다운 천문학적 발견'을 했다는 영국 신문기사를 인용한 보도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된 보도는 며칠 뒤 "허셀 경이 큰 산과 초목이 무성한 숲, 그리고 뿔을 가진 네 발 짐승의 모습을 한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내용으로 확대된다. 그 이튿날부터는 "푸르스름한 납빛을 띤 염소처럼 생긴 동물들과 물새를 발견했다", "허셀 경이 달의 한 지역에서 아홉 종의 포유류와 다섯 종의 난생동물들을 분류해내는데 성공했다", "등 뒤에 크고 반투명이며 막으로 된 날개를 가진 인간박쥐까지 찾아냈다"는 기사가 계속 이어졌다. 뉴욕의 다른 신문들은 이 기사들을 '퍼 나르기'에 바빴다.

'달 날조사건(The Great Moon Hoax)'으로부터 180년이 지난 지금도 페이크뉴스(fake news), 즉 가짜뉴스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트럼프와 힐러리가 차기 미국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격전을 벌이던 과정에서 확산된 '프란시스코 교황의 트럼프 지지'라는 가짜뉴스가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될 일이다. "힐러리가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공급했다", "힐러리 이메일 유출사건을 수사 중인 FBI요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내용의 가짜뉴스들은 힐러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힐러리와 민주당 인사들이 워싱턴DC의 한 피자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른바 '피자게이트'는 압권이다. 20대 남자가 선거도 끝난 12월 4일 피자가게를 찾아가 진상을 직접 파헤치겠다며 총기를 난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8월부터 11월 투표일까지 미국 대선기간 석 달 동안 페이스북에서 가짜뉴스 20개의 반응건수는 871만 건으로 주류매체 뉴스 20개의 반응건수 736만 건보다 18%나 많았다. 자극성과 의외성을 띠고 있는 가짜뉴스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주류언론의 뉴스보다 훨씬 더 쉽고 강하게 유권자들에게 파고들 수 있었다는 얘기다. 페이스북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의 '공유'는 3천만 건, 클린턴 지지자의 '공유'는 800만 건으로 4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가짜뉴스들을 '퍼 나르는' 행위가 지지자들의 결속을 공고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판 자체를 뒤집는데 한몫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페이스북은 급기야 '페이크북(fake book)'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연말 "메르켈 총리는 히틀러의 딸"이라는 가짜뉴스의 확산을 경험했던 독일은 9월 총선을 앞두고 페이스북이 가짜뉴스를 24시간 안에 삭제조치하지 않으면 6억 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체코정부는 10월 총선이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도록 대응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우리도 최근 유력 대선후보가 '가짜뉴스'에 의한 피해를 이유로 중도하차하는 일을 경험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치적 경향성이 뚜렷하고, 경제적 불균형이 심하며, 경쟁심과 상실감이 동시에 크게 소용돌이치는 곳에선 가짜뉴스의 유혹과 수요가 클 수밖에 없다. 반면 자칫 언론의 자유가 제약당하거나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그 대응은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대선 국면에서는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일이 예측 불가능한 오해와 억측을 낳을 수도 있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괴물'과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만이 손에 쥔 유일한 무기다.

/이충환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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