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의병 215명 묻힌 투쟁 역사 '세상밖으로'

윤설아 기자

발행일 2019-05-30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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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의병연구소, 공동발굴 진행
공적조서 공개… 보훈처 포상 신청

강화 교동군 읍내 순사주재소 습격
을사오적 처단 동우회 활동등 밝혀
북한 출신도 포함 남북과제 가능성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과 (사)의병정신선양중앙회 의병연구소가 오는 1일 '의병의 날'을 앞두고 국권 회복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운 의병 215명을 발굴·공개했다.

인천대 중국학술원과 (사)의병정신선양중앙회 의병연구소는 29일 의병 활동을 한 215명의 공적 조서와 이를 뒷받침할 문헌 자료 등을 공개했다.

인천대 중국학술원은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해 지난 2월 이태룡 (사)의병정신선양중앙회 의병연구소장을 초빙해 공동 연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독립운동사자료집, 주한일본공사관 기록물, 국사편찬위원회 기록물 등을 토대로 발굴한 독립유공자를 국가보훈처에 포상 신청하기로 했다.

이번 포상 신청 대상자는 모두 215명으로, 이 중에는 인천 강화군(당시 경기도 강화군) 출신의 의병도 포함됐다.

이태룡 소장이 독립운동사자료집을 토대로 쓴 공적 조서를 보면 1909년 강화에서 출생한 차복만은 이병오 의병부대의 분대장으로 활동하며 강화 교동군 읍내 일본 순사주재소를 습격, 군도 4자루, 모자 4개, 복장 4벌, 신발 4켤레 등을 강탈하고 마을에서 군자금을 강요한 혐의로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의병들은 각종 기관과 군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일본 경찰 복장으로 변복했다고 한다.

이 소장은 "차복만은 1심에서 10년을 받았는데 2심에서 15년을 받았다는 것은 굉장히 큰 중형"이라며 "이병오 의병부대도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28명이 함께 가담했다는 재판 기록을 비추어볼 때 큰 규모를 이끌어 이번에 재평가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907년 6월 서울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자 을사오적을 처단하려 했던 '동우회(同友會)' 활동가들의 기록도 대거 발굴됐다.

동우회를 설립한 윤이병 등 일부는 애국지사로 인정 받았지만 평의원 대부분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평의원 출신인 최병선, 김경석, 조순종, 여규면, 임병웅 등 8명은 일제가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광무황제가 양위하거나 직접 도일해 일본의 황제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일본 외무대신 하야시의 발언에 항의하기 위한 집회를 열고 이완용의 집을 불태우기로 결의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혐의로 평리원에서 유형(유배형) 10년을 받았다.

포상 신청 대상자들의 재판 기록을 보면 교수형 9명을 비롯해 종신형 11명, 10~15년형 33명, 5~7년형 54명 등 대부분이 중형을 받았다.

재판 기록이 있는데도 여전히 독립유공자 서훈이나 포상을 받지 못한 사례가 대다수라는 게 이태룡 소장의 얘기다.

이번에는 또 우체국 주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 고초를 겪은 기록들이 다수 발굴됐다.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등 북한 출신 의병 활동가들도 20명이 포함돼 남북 공동 발굴 연구 가능성도 찾았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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