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철 칼럼

[윤상철 칼럼]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역사적 사실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고종을 '매국노' 해석 동의 쉽지않아
우리는 기시감 가득한 위기국면서
'경험 못해 본 나라' 꿈꾸다 말지도
경험했지만 성공 못한것부터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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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언제부터인지 정치인들이나 언론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회자되었다. 신채호, 박은식, 윈스턴 처칠 혹은 미국 작가인 데이비드 매컬러가 말했다지만 별 근거도 없고 또한 중요하지도 않다. 우리 사회가 어떤 맥락에서 이 말을 화두로 삼는지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흔히 우리 국가 혹은 민족의 잘못된 과거를 잊지 말고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달리 우리가 타국 혹은 타민족에게 당한 치욕이나 수모를 기억하고 반드시 되갚아주자는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왜 치욕과 수모를 당했는지 그 배경과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어 우리 스스로의 잘못이나 실수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되갚아 주기보다 되풀이하기가 더 쉬울지도 모른다.

최근에 '매국노 고종'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의 서적이 출간되었다.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근대를 열어가는 '개혁군주'였고, 강대국들이 각축하는 한반도에서 조선을 지켜내기 위해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고 전국적인 반일의병투쟁을 배후에서 진두지휘했던 민족 투사였으나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당하고 결국은 독살된 '비운의 황제'에게 이러한 제목은 사실을 왜곡하는 불경스러운 호칭이었고 민족주의적 교육과 정치담론에 익숙한 사람들을 극도로 경악시켰다.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고종은 목숨을 걸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고독하게 투쟁한 지도자였고, '을사오적'과 같은 친일 정치모리배들에 의해 조선은 일본에 팔려 나갔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서술은 민족적 자긍심과 자주독립에의 열의를 북돋우고 국민들의 감성을 감싸 안았지만 그 스토리의 중간중간에 생략, 비약 그리고 비이성이 너무 많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역사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고종을 암군이자 매국노로 해석하는 입장에 손을 들어주기란 쉽지 않다. 국제정치외교에 무능했고,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백성을 학살하고, 혁신을 거부하고 개혁세력을 몰살했다는 객관적인 사실들이 드러남에도 여전히 그렇다. 이럴 때면 이른바 '하인리히의 법칙'이 떠오른다. 하나의 대형참사가 발생하기까지 인명피해가 없는 300건의 사고에 이어서 29건의 경미한 부상 사고가 선행한다는 이론이다. 한일합방이라는 민족사적 대형참사가 고종이나 을사오적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사적 이익의 추구에서 곧바로 발생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의 수준과 역량이 어떠했길래 고종의 실정이나 대신들의 탐욕으로 인해 곧바로 망국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의문스럽다. 동학농민운동, 임오군란이나 의병투쟁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한제국의 멸망이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길고 다층적인 과정에 의해 조선은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매국노 고종'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개혁군주 고종을 내세운 '일제종족주의'의 주장에 동의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이러한 논의들로 인해 우리는 '역사를 잊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온 조선 패망의 역사는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왜곡된 역사였는지도 모른다. 가산제적 황제전권국가에서 몇몇 대신들이 압박하여 황제가 을사늑약이나 한일합방에 동의하도록 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황제와 대신들을 포함한 조선의 지배엘리트들이 백성들을 배신하고 나라를 팔아넘기는데 담합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고 사악한 제국주의 국가의 강력한 발굽 아래 허약하지만 선한 국가와 황제가 짓밟히면서 근대로의 민족자존의 희망이 유린당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제국주의시대에 국가 간의 관계를 이념적 선악으로 구분하는 것은 전근대적 봉건국가에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을 자본주의적 계급갈등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러나 역사를 왜곡한 민족에게 현실이 먼저 왜곡되기 마련이다. 앞서의 어떤 해석을 택하든 결국 우리가 어떻게 왜 망했는지 모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겉보기에 유사한 내부의 적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로 소비될 뿐이다. 결국 우리는 기시감 가득한 극적인 위기국면에서 엉뚱하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꿈꾸다 말지도 모른다. 우선, '여러 번 경험하면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위기'를 먼저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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