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수요광장]쿡방·먹방 열풍에 자극적인 미각 변화, 괜찮을까?

방송에 유튜브까지 온통 요리예능
식생활이 삶의 모든 것인 양 과하다
무엇보다 단짠매운 맛에 길들여져
시청률만 좇다 국민건강 해칠 우려
집밥을 즐기는 가족 모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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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쿡방과 먹방의 전성시대다. 공중파 방송뿐 아니라 유튜브까지 온통 요리 예능이 넘쳐난다. 채널을 이리저리 아무리 돌려봐도 요리 예능이 판을 치고 있다. TV를 켜기가 싫어질 정도로 넘쳐난다. 물론 직접 요리할 형편이 못 되거나 음식을 맘껏 먹기 어려운 누군가는 요리 예능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다. 애써 이해하자면 혼밥이 대세인 현대인의 라이프 패턴을 반영한 시대적인 흐름일 수도 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집콕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회적 여건도 요리 예능 편성을 부추겼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식생활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인 듯 먹는 요리 프로를 과하게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폐해가 염려스러울 정도다. 혹자는 폐해랄 것까지 있느냐며 반문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에게 주는 부정적인 영향은 분명해 보인다. 대중 매체의 현실 구성 효과를 규명한 거브너의 '배양이론(cultivation theory)'에 의하면 'TV 시청'과 '세상에 대한 인식'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폭력물을 많이 시청하는 사람일수록 세상을 폭력적으로 인식하는 등 매체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요리 예능의 영향 역시 그리 간단치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입맛 기준의 변화이다. 방송에 노출된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맛에 길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요리 예능과 대중의 입맛 변화에 대한 인과관계를 단정적으로 언급하기는 한계가 있겠지만, 대중적 미각 기준이 바뀌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시중 음식 대부분이 달고 짠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식재료에 양념은 가능한 적게 넣는 것을 즐긴다. 원재료의 식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음식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지만 필자의 요리는 자녀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너무 올드하고 밍밍한 맛이라며 '엄마나 많이 드세요'라는 식이다. 이미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탓에 집밥을 밍밍하게 느낀다. 미각 기준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고 하지만 실은 미각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리 예능에 빗대어 과하게 단맛 중심인 음식 트렌드를 장황하게 말했지만 실은 식문화에 대한 철학적 부재가 만들어낸 산물을 지적하고 싶다. 요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유행 음식에 대한 성찰도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음식에 '설탕 몇 스푼'이라는 간편 요리법을 개발(?)한 유명 셰프 탓인지, 이를 부추기는 방송 탓인지 잘 분별이 안된다. 암튼 요즘 시중 음식이 대체로 너무 달고 짜서 건강을 해칠 우려가 없다고는 못할 것 같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방송 프로그램의 획일성이다. 프로를 다양하게 제작하지 않고 오로지 시청률과 트렌드만 좇아 유사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있다. 간혹 요리 프로에 새로운 시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형식을 나름 덧붙이고는 있지만, 몇몇 유명 셰프나 요리로 잘 알려진 연예인 위주의 단순 구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

과도한 요리 프로그램이 국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맛을 이야기하는 달콤하고 느린 일상을 즐기며 소통하는 과정 없이 그저 먹는 행위·맛만 강조하는 먹방식 요리 프로그램이 식탐 문화를 조장하고 비만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 문제도 예사롭게 넘길 일은 아니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초고도비만 인구 비율이 특히 10~30대 사이에서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 또한 고민해봐야 할 사회적인 문제다.

"방송사는 왜 음식을 다루는가. 현재의 음식문화가 가진 딜레마는 무엇인가에 대한 실체적 고민 없이, 단지 시청률에 급급해 현란한 테크닉으로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음식 프로를 호되게 비판하는 어느 음식 평론가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그저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몸에 안 좋은 설탕과 조미료를 듬뿍 넣는 조리법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보다 가족이 식탁에 모여 정을 나누며 집밥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정순 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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