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아모르 파티

코로나로 졸업생들과 작별인사도 못했는데
최악의 고용 상황, 취업 근황 묻기가 두렵다
AI로 고용 흡수력 더 위축·우울증은 급증세
그럼에도 '화산 기슭에 집을' 불굴 도전 기대


이한구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신학기가 시작되었지만 대학캠퍼스는 스산하다. 해동이 덜 된 응달의 냉기는 더 차갑게 느껴진다. 새내기들로 소란해야 할 때이나 2년째 비대면 개강을 맞으면서 강의실마다 인적이 끊긴 탓이다. 작년 하반기에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금년 봄부터는 캠퍼스가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점쳐졌는데 지금은 대면강의의 2학기 재개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지난달에 졸업한 제자들과 작별 인사도 못했다. 올해 졸업생들의 근황이 특히 궁금하나 취업 여부를 묻기도 두렵다. 매년 이맘때면 서울 강남으로 출근하는 수많은 새내기 직장인들로 부산하던 지하철 2호선 인근의 원룸타운도 코로나19로 '춘래 불사춘'인 지경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금년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자 수는 157만명으로 1999년 6월 관련 통계기준 변경 이후 1월 기준 최대이다. 지난 2월의 취업자는 2천581만8천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98만2천명이 줄었는데 감소폭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2월(128만명) 이후 22년 만에 가장 크다. 모든 연령층에서 취업자가 감소했지만 20, 30대 취업자 감소가 특히 두드러졌다. 30대 중반의 한 직장인의 평가이다.

"30, 40대 직장인들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 직업 자체가 없어지거나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계속 근무가 가능해 코로나19의 영향을 덜 받지만 20대는 대부분 미숙련 노동자들이어서 해고 1순위를 차지한다."

청년들의 아르바이트 자리도 크게 위축되었다. 지난달 초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전국의 청년구직자 1천5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9명이 알바 보릿고개를 호소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젊은이들이 '고수익 보장', '단순 업무'라는 유혹의 덫에 걸려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범죄에 연루되어 전과자로 전락하는 사례까지 늘고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일수록 알바 구하기가 더 어렵다.

20대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20대에서 우울증 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해서 30~40대를 추월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대 우울증 환자가 2016년 6만5천104명에서 2019년 12만1천42명으로 4년 만에 두 배가량 증가했다. 작년 상반기의 전년 동기 대비 우울증 환자 수 증가율은 20대가 78%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우울증은 마약중독, 자살과 함께 대표적인 선진국 질병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때문이다. 세계화와 자동화, 디지털화는 설상가상이어서 산업 전반에서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것이다. 지난 1월 한국은행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국내 산업현장에 로봇이 빠르게 증가해 한국은 로봇밀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경쟁국에 비해 일자리와 실질임금이 더 크게 줄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AI)의 가세로 고용흡수력은 더 쪼그라들었다.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공지능을 기후변화와 유전자변형 바이러스, 갑작스러운 핵전쟁과 함께 인류를 위협할 네 가지 위험요소의 하나로 꼽았다. 조셉 슘페터가 지적한 '창조적 파괴'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미국에서 대학졸업장의 투자수익률은 1987년의 12.5%에서 2015년에는 6.7%로 한 세대 만에 반토막이 났다. '코로나 블루'는 설상가상이나 한국의 청춘들이 더 혹독하게 느낀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1대 99' 사회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도 부모세대처럼 결혼하고 자녀들을 키우며 내 집을 마련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1990년대 및 2000년대 초반 출생의 Z세대에 회자되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에는 모골이 송연하다.

발터 샤이델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역작 '불평등의 역사'에서 "우리는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항상 비명과 울음 속에서 태어났음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경각심을 환기했다. 극소수 금수저 이외의 모든 이들은 탄생과 함께 삶의 고해(苦海) 속에 내던져진다는 의미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청춘들에게 '아모르 파티'(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를 강조하며 "베수비오화산 기슭에 당신의 집을 지으라"고 불굴의 도전정신을 당부했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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