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갑질에 대처하는 법

장석주

발행일 2021-04-16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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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 짓누르고 파탄내는 극악한 범죄 행위
부당함 즉각 항의하고 바로잡고자 힘써야
갑질은 또다른 갑질 불러… 참아선 안된다
정당한 분노·저항 자신의 자존감 지켜줄것


장석주 2
장석주 시인
최근 한 야당 국회의원이 보궐선거 개표상황실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당직자의 멱살을 잡고 정강이를 걷어차 갑질 논란에 휘말렸다. 갑질은 한국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이른바 대한항공 086편 회항사건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갑질 사례일 것이다. 2014년 12월5일, 미국의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떠나는 여객기에서 대한항공 총수 가족이자 부사장인 조현아씨가 객실승무원의 서비스를 트집 잡아 항공기 회항을 지시하고 이륙을 지연시켰다. 이 갑질 사태로 기업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기업의 인사구조 변화까지 불러오는 파장을 낳았다.

고용주와 피고용주, 직장 상사와 하급 직원, 아파트 입주민과 경비원, 선배와 후배… 같이 부나 직위, 나이의 격차로 인해 갑과 을이라는 비대칭 구도가 생긴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갑질이란 힘의 위계에서 비대칭 관계인 갑이 을에게 윽박지르며 월권적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갑질은 갑의 우둔함과 무신경함에서 비롯되는데, 무엇보다도 개별자의 비뚤어진 인성, 인권에 대한 인지적 감수성의 부재, 즉 인격의 막돼먹음이 가장 큰 발생 이유일 것이다. 갑이 을의 인권을 침해하고 이익을 빼앗을 때 위력 행사는 갑질 당사자의 비루함은 그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갑질은 피해자의 내면에 트라우마를 남기며, 삶의 의욕을 고갈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태다. 갑질 피해자의 일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렇듯 타인의 인격을 짓누르고 파탄 낸다는 점에서 갑질은 극악한 범죄 행위다.

갑질의 행태는 실로 다양하다. 부당한 강요, 협박, 막말(반말과 욕설), 폭행, 임금 떼먹기, 열정 페이… 따위가 다 갑질이다. 과시적인 소비문화와 함께 갑질이 활개를 치는 천민자본주의 세상은 너저분하고 미친 세상일 것이다. 몇 해 전 한 방송사 외주 프로그램 제작사의 조연출 일을 하던 한 청년은 모욕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여긴 미친 세상이야!"라고 외치고 자살했다. 그런데 갑과 을은 고정불변의 관계가 아니다. 어제의 갑이 오늘은 을이 되고, 어제의 을이 오늘은 갑이 될 수가 있다. 이렇듯 갑과 을의 관계는 유동적이다.

갑질사건 때마다 대중의 분노가 들끓고 벌통을 쑤신 듯 소동이 벌어지는데도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없는가? 유교적 가부장제 내에서 작동하는 수직화된 힘의 위계와 질서를 한국 사회가 관습적으로 수용하여 문화정서적 기율로 삼은 것도 원인 중 일부일 것이다. 또한 깊은 삶의 생태학이 부재하는 사회의 낮은 단계의 인권 감수성과 천박한 물질만능주의도 갑질이 창궐하는데 한 몫을 했을 테다.

갑질은 구역질 나는 행위다. 어떤 경우에도 갑질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갑질에 대처하는 을의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즉각적으로 갑의 부당한 행위에 항의하고 바로잡고자 애써야 한다. 강자들은 내심 약자의 저항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갑질을 당하고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은 철학자 니체가 말하는바 우리 안에 잠재된 '노예의 속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예의 속성'은 힘의 위세 앞에서 저자세와 굴종을 낳는데 이것을 약자가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처세술이라고 호도해서는 안 된다. 철학자는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을을 두고 "재빨리 영합하는 자, 개처럼 툭하면 벌렁 드러눕는 자, 비굴한 자"라고 꼬집는다. 더 나아가 "결코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는 자, 독성 있는 침이나 사악한 눈길도 받아들이는 자, 지나치게 인내심이 강한 자, 무슨 일이든 만족하는 자를 증오하고, 그런 자들에게 구역질을 느낀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고 말한다. 그렇다. 갑질에 대한 인내심은 우둔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노예 도덕에 대한 비겁한 굴종이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모욕과 폐해에서 자신을 지키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갑질은 또 다른 갑질을 불러온다. 갑질에 속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참아서는 안 된다. 즉각 분노하고, 항의하라! 그 정당한 분노와 항의가 당신의 자존감과 인격을 지켜줄 것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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