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남수동의 일명 ‘파란 대문집’ 담장에는 23년간 자라난 장미 덩굴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SNS 인증사진의 화려한 배경으로 유명해진 꽃들은, 70대 노부부에게는 매일 아침 진 꽃을 털어내고 가지를 다듬으며 자식처럼 키워낸 삶 그 자체였습니다. 말 한마디면 기꺼이 이웃들에게 나눠주곤 했던 그 소중한 장미 덩굴은, 최근 한밤중 찾아온 불청객들의 가위질에 힘없이 잘려 나가며 군데군데 흉측한 구멍이 뚫리고 말았습니다.
더 큰 슬픔은 이 장미가 마주한 또 다른 현실에 있습니다. 수원의 명소가 된 이 주택 일대는 문화재보호구역 정비사업 대상에 포함돼 있습니다. 숫자와 효율만을 앞세운 개발 중심의 행정 서류 위에서, 수천만 원의 프리미엄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 아름다운 장미는 그저 철거해야 할 ‘지장물(공공사업에 방해가 되는 물건)’에 불과합니다.
사람 사는 집이 평당 얼마냐의 가치로만 환산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떠나도 장미는 여기 남아 사람들이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노부부의 소박한 바람은, 규제만을 앞세운 삭막한 행정의 장벽 앞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파란 대문집은 우리를 반겨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