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월요논단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 입양에 대한 법제도 정비

    입양에 대한 법제도 정비 지면기사

    [경인일보=]우리나라 입양의 역사는 1961년에 제정된 고아입양특례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고아들의 입양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고아수출국(?)이란 오명을 남긴 법률이기도 하다. 그후 1976년 12월 입양특례법으로 개정되었고, 1995년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으로 전문개정된 뒤, 2008년 2월 29일 법률 제8852호까지 9차례 개정되었다.입양에는 국내입양과 국제입양이 있다. 국내입양은 민법과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의한 입양으로 나누어져 있다. 현실적으로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의한 입양보다는 민법에 의한 입양이 절대적으로 많아 입양아동들에 대한 보호가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특히 민법상의 입양은 아동의 친생부모와 입양부모와의 개인간 동의로만 입양절차가 이루어지고 있고, 입양도 신고만 하면 되도록 되어 있어,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절한 가정에 입양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내 입양의 입양법 구분으로 인한 문제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반면에 국외입양에 대하여는 종래 국가가 일부 방치내지 묵인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동안 국외로 입양된 아동이 16만명을 넘으며 아직도 1천300여명의 아동들이 매년 국외로 입양되고 있다. 과거 6·25 직후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많은 아동들이 국외로 입양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입양에 대한 국민들의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인식, 국내입양 양부모의 까다로운 입양대상 아동선정, 국내입양에 대한 홍보부족과 입양기관의 해외입양 선호방침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특히 그동안 국외입양의 경우 아동보호 및 기관운영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은 국외입양 부모로부터 받는 입양비로 충당되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국제사회는 1960년대 이후 국제입양 건수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입양이 남용되는 등의 법적 문제가 발생하는데 비해, 이를 조정할 국제적 법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을 하면서, 1993년 5월 국제사법에 관한 헤이그 회의에서 '국제입양에서 아동보호 및 협력에 관한 협

  • 저출산ㆍ고령화 시대, 교육이 희망이다

    저출산ㆍ고령화 시대, 교육이 희망이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출산 억제를 외치던 정부의 캠페인 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이제는 '각 가정에서 적어도 둘 이상의 자녀를 꼭 낳아주십시오'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저출산의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은 2005년도에 합계출산율이 1.08명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이후 계속해서 세계적인 저출산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옥스퍼드대 인구문제연구소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한국은 2305년에 인구 500명만 남게 되어 한국이라는 국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편, 이러한 저출산 추세 속에서 한국인의 수명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2050년이면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7.3%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략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와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가 2050년이 되면 72.0%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205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4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하기 위해 조세와 사회보장비를 부담해야 한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출산과 양육을 위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를 독려하고, 경제활동에서 물러나는 시기, 즉 은퇴시기를 늦출 필요가 있다. 또한 입직 연령(최초로 직업을 얻는 연령)이 높은 우리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군병력의 감축, 조기취학, 수업연한의 단축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어느 정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겠지만, 동시에 또 다른 문제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밀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구 증가 정책을 마냥 추구할 수는 없다. 또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60%에 근접하는 상황에서 이를 높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은퇴 시기를 늦춘다고 하더라도 고령으로 인한 생산성의 감소는 불가피하며 무리하

  • 휴가 다녀오셨습니까

    휴가 다녀오셨습니까 지면기사

    [경인일보=]"휴가 다녀오셨습니까?" 해마다 여름이면 흔히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주로 가족, 친지 단위로 휴가를 가고 여름 방학이 짧은 한국의 특성상, 7월말에서 8월 초순에 이르는 기간은 여름휴가의 절정을 이룬다. 지난 주말 광복절 연휴를 보낸 지금, 막바지 휴가철을 남겨 놓고 있다.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피서지 행렬은 실상 백년이 채 안 된 근대적 풍경이다. 1913년 조선 제1호 해수욕장인 부산 송도해수욕장 개장에 이어 인천 월미도, 몽금포 해수욕장, 당시 조선 거주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휴양지였던 원산 송도원 해수욕장 등은 기차로 대표되는 근대적 교통수단에 의해 개발된 여름휴가 명소였다. 치료를 위한 해수욕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해수욕복'을 입고 즐기는 오락과 여흥은 가히 새로운 풍경이었다. 대성황을 이룬 그 광경에 대해 만화가 안석영은 "소위 해수욕이라는 게 구정물 속에서 맨살 부비는 것이다 입으나마나한 속속뒤리 다-비최이는 해수욕복을 입고"라고, 조소어린 스케치를 남기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운행을 시작한 피서 열차는 70년대 말 승용차 바캉스족의 등장으로 불황을 맞이하기 전까지 해마다 초만원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여비가 없어 그 행렬에 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20~30년대, 그들은 왕복 버스 삯 십전이면 갈 수 있는 '피서 여행'을 떠났다. 한강인도교다. 경성 최고의 명소에 매달린 채 사람들은 하늘로 치솟는 불꽃놀이와 강바람에 취해 더위를 잊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왜 우리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어디론가 꼭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일까. 안석영은 경성의 도시 공간 변화와 가옥 구조를 통해 그 일단을 설명한다. 경성에 집은 늘어났지만 조선 사람의 집은 오히려 '오그라드는' 식민지 도시의 상황, 그 집마저 나무 하나 심을 뜰 없이 정체불명의 형태로 지어진 '근대 개량' 주택에서 폭염을 피할 방도를 마련하기는 어려웠다. 여름날,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휘황찬란한 도심의 스펙터클에 취해 스스로 스펙터클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 이른 아침 산에서 만나는 미달이

    이른 아침 산에서 만나는 미달이 지면기사

    [경인일보=]오늘 아침도 미달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이름처럼 그리 화려하지 않은 남양주의 황금산은 웬만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을 산기슭에 숨기고 있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30층 아파트 높이의 황금산의 정상 몇 발아래 떡갈나무 밑에서 강아지 미달이는 아침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 반갑게 사람들을 맞는다. 밤새 기다려온 것처럼, 그러나 꼬리를 흔들지는 않는다. 맞이하는 그의 인사에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한발이라도 다가가면 어느새 몇 발을 물러서고 만다. 그래서 그는 조금은 소심한 미달이다. 이런 미달은 문득 우리에게 어린왕자에게 한 사막여우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참을성있게 서로를 길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조금도 더 가까워질 수 없어, 꽃이 너에게 소중하게 된 것은ㄹ 그 꽃을 위해 소비한 너의 시간들 때문이란다. 반년 전 어느 날 미달이는 혼자가 되었다. 쓸쓸한 그의 눈빛으로 우리는 그의 가족, 그와 함께했을 이름 모를 사람들에 관한 그 어떤 기억들을 짐작할 뿐이다. 그는 이제 그를 행복하게 했을, 아니 어쩌면 더 슬프게 했을지도 모를 그 어떤 사람들에 관한 기억들로부터 떠나 황금산 속에서 머물고 있다. 산에 사는 미달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온 몸을 덮는 털로도 감출 수 없는 앙상한 갈비뼈나 굶주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쓸쓸한 미달의 눈빛이 그리 말한다. 앞에 보이는 사물을 바로 쳐다보지 않고 멀리 사물의 뒤쪽을 건너다보는듯한 그의 눈빛이. 미달은 그가 선택한 황금산이란 영역과 거기서 누리는 값비싼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어떤 소중한 것과도 바꾸지 않았다. 밤새도록 부시럭거리며 깊은 잠을 들지 못하게 하는 성가신 산속의 새 가족들, 털가죽을 뚫고 뼛속까지 젖게하는 차가운 밤이슬, 한줄기 별빛조차 허용하지 않는 숲속의 짙은 어둠도 미달을 결코 마을로 다시 돌아가게 하지는 못하였다.매일 아침 마음씨 좋은 몇사람의 지금동 아주머니들이 미달이 좋아하는 먹을거리와 물을 들고 산을 오른다. 우리 모두는 매일 아침 그의 산에 입산을 허락해주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