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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석무 칼럼] 실학을 꽃피운 경기도, 이제 열매도 맺자

    [박석무 칼럼] 실학을 꽃피운 경기도, 이제 열매도 맺자 지면기사

    근세의 대학자 위당 정인보는 조선의 실학자로 세 분을 꼽았다. "조선 후기의 학술사를 종계(綜系)하여 보면, 반계가 일조(一祖)요, 성호가 이조(二祖)요, 다산이 삼조(三祖)인데, 그 중에서도 정박명절(精博明切: 정밀하고 박학하고 밝고 절실함)함은 마땅히 다산에로 미룰 것이다"(다산선생의 생애와 업적)라고 말하여 실학을 개창한 반계 유형원, 반계를 이어 실학을 중흥시킨 성호 이익, 반계와 성호의 학문과 사상을 이어받아 실학사상을 집대성(集大成)한 다산 정약용이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라고 정리하였다.실학의 학파로 북학파라고 말하는 연암 박지원, 담원 홍대용, 초정 박제가 등 큰 학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학문과 사상을 다산은 모두 수용하여 크게 이루어냈기 때문에 세 분의 학자가 바로 대표적인 학자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참으로 특별한 일은 세 분이 모두 경기도와 매우 깊은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반계는 태생지야 서울이지만 경기도 땅을 밟으며 온 나라를 두루 여행하였고, 한때는 경기도 여주에서 살아가면서 경기도 사람이 되기도 했다. 비록 은거했던 전북 부안군 반계서당에서 '반계수록'의 대저를 저술했지만 죽은 뒤에는 선산이 있는 경기도의 죽산에 묻혀서 지금까지 경기도와 인연을 맺고 있다. 더구나 그 후손들이 경기도 과천에서 살고 있다는 점으로 보면 경기도 학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경세유표'로 개혁 호소했던 '다산'공직자 공정·청렴 행정 '목민심서'공정한 수사·재판 주문 '흠흠신서' 성호와 다산은 경기도 태생이자 경기도에서 살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묘소는 경기도에 그대로 남아 자신들의 학문과 사상이 경기도에서도 제대로 계승되어 나라다운 나라가 되기를 그렇게도 염원하면서 눈을 감고 계실 것이다. 반계의 꿈과 희망은 토지의 공개념이 실현되고 인재 선발이 공거제도(公擧制度)를 통해 이룩되어야 한다는 데 목표가 있었다. 토지의 공유(共有)를 통해 제도를 바르게 하고 과거제도의 폐단에서 벗어나 공정한 추천을 통한 인재 선발만 이룩되면 나라에는 반드시 바른 정

  • [박석무 칼럼] 난세의 명재상 오리대감 이원익

    [박석무 칼럼] 난세의 명재상 오리대감 이원익 지면기사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이 생각나고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가 생각난다'라는 옛날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책임총리로 한 나라의 흥망성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는 조선시대의 영의정이야말로 국난을 극복하는 위대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역사적으로 위대한 재상들이 많기도 했지만, 그 중에서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가장 칭찬했던 대표적인 위기 극복의 명재상은 바로 '오리정승', '오리대감'이라 호칭되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이었다. 요즘 정권교체기를 맞아 온갖 어려움에 처해 있는 나라의 형편을 지켜보면서, 400여년 전에 세상을 떠난 위대한 명재상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위기를 극복할 명재상이 오늘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리정승은 왕족으로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선산이 있는 오늘의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일대를 고향으로 여기고 자주 찾아 은거하기도 했지만, 생의 마지막을 또 그곳에서 마쳐 묘소도 그곳에 있고 기념시설 또한 그곳에 있어 경기도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경기도야말로 조선시대 인물의 보고인 지역이었다. 학자 정치인 율곡 이이, 우계 성혼 등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살았던 곳이요, 조선 후기 성호 이익, 순암 안정복, 다산 정약용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나왔지만, 정치가 한 사람을 꼽자면 당연히 이원익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어수선한 민심 수습 정치적 역량겸손함·자신 낮추는 위대한 능력 이원익은 1564년 18세에 생원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면서 원로 재상 동고 이준경의 사랑을 받는 청년이었고, 1569년 23세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하자 명재상 서애 유성룡의 신임을 얻어 벼슬살이가 승승장구로 열리기만 했다. 황해도 도사(都事) 벼슬에 부임하자 그곳 황해도 관찰사로 있던 율곡 이이의 눈에 들어 다시 중앙관서로 자리를 옮기면서 촉망받는 미래가 열리고 있었다. 당시 큰 정치가들인 이준경·유성룡·이이 등은 각자가 진영이 조금은 달라 서로 화합하지는 못하던 때인데, 이원익은 그들 모두에게 진영의 논리와는 관계없이 전폭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