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시장을 기록하다

  • 사라질 운명 안다… 전시관처럼 역사는 남기고파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下)]

    사라질 운명 안다… 전시관처럼 역사는 남기고파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下)] 지면기사

    한국전쟁 직후 인천 동구 송현동 일대에 조성된 양키시장(송현자유시장)은 70여년의 역사를 끝으로 지난 6월 문을 닫았다. 인천의 대표적 구도심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양키시장은 경인전철 동인천역 일원 재개발 사업의 핵심 대상지다. 지난 6월 철거를 앞두고 모든 보상 절차가 마무리된 양키시장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인천시와 인천도시공사(iH)는 동인천역 일원 개발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동인천역 북광장과 양키시장, 배다리마을 인근이 개발 대상지다. 현재 해당 지역의 토지이용계획이 확정돼 있는데, 양키시장

  • 오성극장 영화 한 편, 순댓국 한 그릇… 내 청춘이었다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中)]

    오성극장 영화 한 편, 순댓국 한 그릇… 내 청춘이었다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中)] 지면기사

    양키시장(송현자유시장)은 1990년대 후반까지 인천시민들이 즐겨 찾는 쇼핑공간이자 여가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역할을 했다. 1971년 양키시장 천장 슬래브(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3층 규모로 지어진 ‘오성극장’은 쇼핑과 영화(문화) 관람을 같은 공간에서 할 수 있도록 한, 당시로선 획기적인 구조였다. 오성극장이 입점해 있는 양키시장은 당시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복합문화상가’로 기능을 하며 주말이면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성황을 이뤘다. 1970~1980년대 당시 한 장소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며 쇼핑까지 즐길 수

  • “전쟁후 시대상 간직… 추억 공간 마련되길”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中)]

    “전쟁후 시대상 간직… 추억 공간 마련되길”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中)] 지면기사

    “양키시장(송현자유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인천의 역사와 시대상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지난 12일 동구 양키시장에서 만난 유동현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양키시장이 철거된다는 건 역사의 한 막이 내려가는 걸 의미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인천 동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유 전 관장은 양키시장은 단순한 시장의 의미를 넘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현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어려웠던 시기에 피란민들이 살기 위해 불법으로라도 양키 물건을 팔며 자리를 잡았던 그 공간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라며 “양키

  • 지붕위에 또 집… 단속 뜨면 순식간에 도망 ‘도깨비시장’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中)]

    지붕위에 또 집… 단속 뜨면 순식간에 도망 ‘도깨비시장’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中)] 지면기사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미군부대 등에서 흘러나온 밀수품을 내다 팔며 형성된 양키시장은 인천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양키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공간적 위치에서부터 업종, 건축 구조, 상점 간판 등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상 등이 담겨 있다. 한때 극장까지 입점해 있는 지금의 ‘복합쇼핑몰’과 같은 기능을 했던 양키시장은 동인천 일대 개발 사업을 앞두고 지난 6월 모든 점포가 문을 닫았다. 시장 철거 후에는 이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가, 공원 등이 들어설

  • 송현동 위치한 양키시장은?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上)]

    송현동 위치한 양키시장은?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上)] 지면기사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형성된 송현자유시장(양키시장)은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복, 담배, 커피, 청바지 등 다양한 ‘미제’ 물건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1970~1980년대 외국 제품 유통 중심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인천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교복 자율화와 기성복 대중화 바람을 타고 옷 가게 밀집 지역으로 변모했던 양키시장은 1990년대 들어서는 ‘짝퉁(이미테이션)’ 제품 판매 등으로 큰 호황을 누렸다. 인천의 대표적 구도심 지역인 동구 송현동에 자리 잡고 있는 양키시

  • 남편 이북 고향 따 ‘수선집’ 간판… 70년 변함없는 미싱소리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上)]

    남편 이북 고향 따 ‘수선집’ 간판… 70년 변함없는 미싱소리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上)] 지면기사

    철거를 앞두고 있는 ‘양키시장’은 인천 시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곳이자 한국전쟁 직후 인천의 사회상이 반영돼 있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공간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하나 둘 모여 시작된 시장은 1970~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인천 부평 미군부대에서 밀반출된 ‘미제상품’과 인천항 하역 노동자들이 들여온 각종 외국 제품들이 이 곳에서 유통됐다. 이후 맞춤 양복과 교복, 수선 제품 등이 시장의 중심 상품이 됐다. 한 때 인천의 ‘핫 플레이스’였던 양키시장은 도심 재개발 사업과 맞물려 철거될 예정이다. 이 곳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송현자유시장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上)]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송현자유시장 [양키시장을 기록하다·(上)] 지면기사

    인천의 대표적 구도심 지역인 동구 송현동 100번지 일원. 경인전철 동인천역 북광장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100m 남짓 거리에 조만간 철거를 앞둔 시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성인 4~5명이 나란히 서 있기조차 힘든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1~2평(3~7㎡) 정도의 작은 점포들이 다닥다닥 마주하고 있는 시장 내부는 미로처럼 얽혀 있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작은 간판들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이곳, 바로 ‘양키시장’이다. 양키시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