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교류 첨병 한중카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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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카페리에 나는 저가항공… 선박 고급화 전략으로 ‘활로’ [한중 교류 첨병 한중카페리·8] 지면기사
한중카페리는 코로나19 이후 전자상거래 화물 유치와 관광 상품 다각화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지만 최근 들어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저가 항공편이 확대되면서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인천발 중국 노선이 증가하면서 항공 요금이 이전보다 저렴해진 데다 중국 내 공장들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많이 이전하면서 물동량 확보도 수월치 않은 상황이다. 항만 업계는 한중카페리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소비자들이 항공편이 아닌 한중카페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선박을 고급화하고, 전자상거래 화물 등에 대한 통관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정책 지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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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탑승객 ‘0’… 한중카페리의 ‘생존 묘수는?’ [교류 첨병 한중카페리·7] 지면기사
한중 수교 이전인 1990년부터 운항을 시작하며 한중 교류의 첨병 역할을 했던 한중카페리는 2020년 1월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의 국경 봉쇄 조치가 시작되며 큰 위기를 맞는다. 인천항과 중국을 오가는 한중카페리 10개 노선의 탑승객이 ‘제로’가 되면서 선사 수익이 급격히 감소했다. 하지만 이런 위기는 한중카페리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변화의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기간 급증한 한중 간 전자상거래 물량은 한중카페리의 새로운 수익원이 됐고, 팬데믹 이후에는 승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관광 상품이 개발되는 등 선사들이 살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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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레이 웨이하이 한중FTA협력촉진센터장 [한중 교류 첨병 한중카페리·6] 지면기사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는 한중카페리 개설 이후 한국과의 교류를 토대로 도시가 발전했다. 웨이하이시에 있는 1천800여개의 외국인 투자 기업 중 900여개는 한국 기업으로, 전체의 51.9%에 달한다. 청레이(사진) 웨이하이 한중FTA지방경제협력촉진센터장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90년 한중카페리 개설로 만들어진 해상 교역로는 지난 36년 동안 웨이하이 발전의 토대가 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은 물론 우수한 해외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는 등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청레이 센터장은 “1차 산업 중심이었던 웨이하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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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황해 단거리 항로 열리고 인천항 컨테이너 뚫린다 [교류 첨병 한중카페리·5] 지면기사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한중카페리가 개설되면서 인천항도 급격히 성장했다. 인천국제공항과 함께 인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인천항의 현재 위상은 한중카페리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물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중카페리 항로가 개설된 1990년 이전만 하더라도 인천항에는 컨테이너 항로가 거의 없어 수도권 관문 항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산항이 국내 물류 산업을 사실상 독점했다. 한중카페리가 운항을 시작하면서 인천항은 대(對)중국 수출입 중심 항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고, 중국 경제성장과 더불어 물동량도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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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조그만 어촌 웨이하이시, 지금은 산둥성 견인 [한중 교류 첨병 한중카페리·4] 지면기사
중국 산둥성에 위치한 웨이하이시는 한중카페리 노선이 개설된 1990년 이전만 해도 옌타이시에 속해 있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어업이 주요 경제 수단이었던 이곳은 인천항을 잇는 한중카페리 운항 이후 대(對)한국 교류의 중심 지역으로 부상하며 현재는 산둥성 경제를 견인하는 주요 도시로 성장했다. 한중카페리 개설로 안정적 물류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해외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졌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아파트와 상업시설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지금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중심 도시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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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동항운 주앙 옌 부사장 “카페리 물류 대체불가 … 36년간 가교 역할” [교류 첨병 한중카페리·3] 지면기사
위동항운은 우리나라와 중국을 잇는 한중카페리를 처음 운항한 선사다. 1990년부터 인천~웨이하이 노선 운항을 시작한 위동항운은 그동안 한중 간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동항운 주앙 옌 부사장은 최근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위동항운은 한중카페리 항로를 개설한 이후 36년 동안 한중 교류에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위동항운이 한중카페리 운항을 시작한 1990년은 한중 수교가 체결되기 이전으로, 주한중국대사관이 없었다. 이 때문에 한중카페리 개설에 맞춰 문을 연 위동항운의 서울 사무소는 당시 국내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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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이전부터 ‘뱃길’… IMF땐 직장 잃고 ‘보따리상’ 진출 [교류 첨병 한중카페리·2] 지면기사
한중카페리는 한중 수교 이전인 1990년 9월15일 인천항에서 처음 운항을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을 잇는 뱃길은 중국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1949년 이후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다. 해방 이후 최초의 여객 직항로인 인천~웨이하이 카페리 항로를 시작으로, 현재는 인천에서 10개, 평택 5개, 군산 1개 등 총 16개 노선이 운항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잇는 뱃길이 열린 지 36년이 지나면서 배를 타는 승객들도 크게 변화했다. 초창기에는 고향(중국)을 찾는 인천 거주 화교들이 주로 이용했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일명 보따리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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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해빙… 5060 단체 관광·젊은층 K-POP 보러 온다 [교류 첨병 한중카페리·(1-1)] 지면기사
이재명 정부 들어 그간 경색됐던 한중 관계에 온기가 돌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2차례의 한중 정상회담은 한중 해빙 무드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부침이 심한 한중 관계 속에서도 지난 수십 년간 두 나라 교류의 끈을 이어준 수단이 한중카페리다. 한중 수교(1992년) 이전부터 인천항과 중국을 이어온 한중카페리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현재는 두 나라 간 문화·경제·관광 등 다양한 분야 교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보따리상(따이궁)이 주로 이용했던 한중카페리를 타는 사람들도 이 같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있다. 지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