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조병창 아카이브, 빈칸을 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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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항수송정 2척 진수 상부 보고… 민간공장 생산·인력까지 챙겼다 [인천조병창 아카이브, 빈칸을 채우다·(2-2)] 지면기사
1945년 9월3일 오전 9시 36분, 미 해군 함재항공단은 항공기 95대를 동원해 목포, 전주, 군산, 경성·인천 지역 상공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9월8일 오전 11시, 미 해군 항공국 소속 커티스 SB2C 헬다이버의 선임 조종사 조지 M. 커티스 주니어(George M. Curtis Jr.) 해군 대위는 미 제7상륙부대의 상륙작전을 항공 지원하던 중 화수동 조선기계제작소 상공에서 독에 정박한 잠수정을 발견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 사진에 담긴 두 곳의 독 가운데 한 곳에 있는 잠수정 4척은 ‘3식 잠항 수송정’, 이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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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육군 잠수정 진수… 조선기계제작소 ‘공동 프로젝트’ [인천조병창 아카이브, 빈칸을 채우다·(2-1)] 지면기사
아시아·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인천 화수동 조선기계제작소(HD현대인프라코어의 전신)에서 일본 육군의 잠수정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조선기계제작소의 잠수정 건조가 부평 인천육군조병창과의 공동 프로젝트로 추진됐음을 ‘인천조병창 아카이브’ 2편에서 새롭게 밝힌다. 육군 잠수정이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일본 육군은 남태평양 일대 섬에 흩어진 부대로 가는 뱃길이 끊기자 기존 잠수정을 개조한 3식 잠항 수송정, 일명 ‘마루유’를 개발하고 조선기계제작소에 발주했다. 조선기계제작소는 1944년 8월과 12월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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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길었던 ‘공백’ 시간의 진술 듣다… 프롤로그 [인천조병창 아카이브, 빈칸을 채우다] 지면기사
경인일보는 모씨네 사회적협동조합과 공동으로 기획·연재하는 ‘인천조병창 아카이브, 빈칸을 채우다’ 첫 편에서 해방 7개월여 전인 1945년 1월18일 미 육군항공단 소속 사진비행대대가 촬영한 부평 ‘인천육군조병창’ 항공 사진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한다. 드넓은 부평 평야를 차지한 무기 공장들과 도로, 인근 주택지와 공장 지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 캠프마켓이라 불리는 이 땅은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특별한 허가가 없이 출입할 수 없었고 들어가 본 이도 극히 드문 ‘금단의 땅’이었다. 1930년대 말부터 일본이 대규모 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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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 약탈, 숨겨진 민낯 찍혔다 [인천조병창 아카이브, 빈칸을 채우다·(1)] 지면기사
■ 인천육군조병창, 땅과 공간을 바꾸다 1900년, 민영환은 부평 들녘에서 목양사라는 농장을 운영했다. 을사늑약에 분개한 민영환이 자결한 뒤 1908년 송병준 등이 목양사 부지를 강탈했다. 유족들이 법적 소송으로 대응했으나 역부족이었다. 1911년 일진회 농업회는 구 목양사 부지를 일본인에게 팔아넘겼다. 이 땅은 1923년 2월 조선군사령부 제20사단 용산기지 부대의 일본 육군연습장으로 활용되면서 계절마다 포성이 끊이지 않았다. 이 부평연습장은 주민들의 불만과 불안 속에서도 부지와 건축물까지 계속 확장되었다. 이처럼 공간이 군사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