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작가가 쓴 임영균 약전

  • 90번 태형과 가출옥, 저항정신 불씨 삼은 학구열 [이원규 작가가 쓴 임영균 약전·(2)]

    90번 태형과 가출옥, 저항정신 불씨 삼은 학구열 [이원규 작가가 쓴 임영균 약전·(2)] 지면기사

    ■ 3·1 운동 철시 투쟁, 서대문감옥에 갇혀 1919년 3월, 임갑득은 눈병 때문에 기차로 통학하던 학교를 쉬며 객주조합 급사로 일하고 있었다. 대한독립 만세 함성은 인천에서도 크게 울렸으나 헌병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꺾였다. 3월 26일과 27일, 내리(현 중구 내동)의 잡화상 18세 청년 김삼수(金三壽)는 상가 철시(撤市)로 일제에 저항하자는 격문을 여러 전신주에 붙였다. 28일, 29일 문 닫은 점포가 늘어났다. 친일 매체 ‘매일신보’는 4월1일자 3면에 ‘소요(騷擾)사건의 후보(後報)’ 제목 아래 전국 상황을 알리며 인

  • 일제 만행에 일어선 한 소년… 100년 동안 잊혔던 애국지사 [이원규 작가가 쓴 임영균 약전·(1)]

    일제 만행에 일어선 한 소년… 100년 동안 잊혔던 애국지사 [이원규 작가가 쓴 임영균 약전·(1)] 지면기사

    ■ 임갑득에서 개명, 100년 만에 알려져 임갑득(林甲得·1904~1966) 지사는 100년 동안 잃어버렸던 소년독립투사이다. 3·1운동 때 인천의 상가 철시(撤市) 투쟁을 펼치고 경찰에 체포되었다. 서대문감옥에 수감되고 다음해 2월 가출옥했다. 만 14세 8개월에 체포됐으니 3·1운동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독립투사 4천239명 중 최연소였을 듯하다. 가출옥 이후의 행적이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경인기차통학생회 문예부와 연극단체 칠면구락부를 이끌었고, 인천 첫 조선인 치과병원을 열고 언론사를 경영하고, 사회봉사로써 중망(衆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