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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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김형기 셀트리온 대표이사 사장 지면기사
가이드라인 없이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 도전장 '유럽·미국 첫 승인' 결실국내 자금조달 쉽지않은 부분… 국내 벤처산업에 '능력갖춘' 앵커기업 나와야전체 매출중 국내 비중 3% 불과한데 '대기업집단' 지정돼 60가지 규제 '부담'지난 2000년 인천 연수구청 조그만 사무실에 한 벤처기업이 문을 열었다. 자본금은 5천만원. 대우그룹에서 근무하던 6명은 회사를 떠나 함께 회사를 설립했지만, 뚜렷한 사업 계획은 없었다. 사무실에 앉아 '우리는 어떤 사업을 해야 할까?'라는 주제를 놓고 토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회사가 16년 만에 국내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시가총액만 12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기업 생태계에서 보기 힘든 성공 신화를 쓴 셀트리온의 김형기 대표이사 사장은 "미래를 보는 통찰,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눈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CMO),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개발 판매 등 미래 먹거리를 먼저 보고, 이를 선점한 것이 현재의 셀트리온을 만들었다는 것이 김 사장의 이야기다. 셀트리온 설립 초기부터 서정진 회장과 함께 기업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김 사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글로벌 제약사 기준으로 보면 아직 셀트리온은 '스타트 업' 규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신약을 개발해 매출액 10조·20조원 수준까지 기업을 성장시켜 세계 바이오 제약 산업을 끌고 가겠다고 했다.-법인 설립 후 16년 만에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서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소회를 말해달라."우리가 선택한 업종이 힘든 업종이었다.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극복했고, 투자자나 금융기관에서 우리를 믿고 신뢰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셀트리온의 성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더 많다.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 기준으로 보면 조그만 업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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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박수현 묘향산한의원 원장 지면기사
탈북 한의사·한의학 박사학위 취득… 끊임없이 '국내1호' 타이틀"모르면 모른다, 양약이 낫겠다" 환자 마음 읽어주는 진솔한 진단'한의사 의료기기 문제'… 시장 확대되면 환자 판단할 기회 "찬성"지난 2002년, 36살의 청년 박수현을 경인일보가 만났다(경인일보 2002년 2월18일자 9면). 그는 탈북자였다. 통역을 부탁한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고향을 등졌고, 중국의 자전거 물결과 고층빌딩에 충격을 받아 남한행을 결심했다. 두만강을 건넌지 딱 열흘만이었다.낯선 한국 땅에서 처음 그를 맞은 것은 같은 동포의 따뜻한 환대가 아니라 의심의 시선과 차가운 멸시였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엄격했던 당시의 반공 정서 속에 내던져진 그는 여타 탈북자들이 그러하듯 쌀 속의 겨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 분리되어 버릴 듯했다. 그러나 그는 남한이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을 고치지 않았다. 청진의대 한의학부에 재학한 경험을 살려 자신을 감시하던 정보과 형사의 지병을 고쳐 준 것이 계기였다. 단번에 그의 팬이 되어버린 형사는 박씨를 경희대 한의학과에 추천했고, 94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생면부지의 영어, 낯선 한자(북한은 전공서적에도 한자를 잘 쓰지 않는다)를 기어이 극복해 2001년 3월 '국내 1호 탈북 한의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북에서 복무한 부대 이름을 따 성남 모란시장 한구석에 '묘향산한의원'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터전을 세웠다.그 후 14년이 지났다. 28살에 탈북해 만 22년간의 남한 생활, 인생의 양을 재는 저울추가 있다면 남과 북에서 살아온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 균형점을 이룬 셈이다. 이제는 중년이 된 박수현(50) 원장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1998년부터 3차례에 걸쳐 북에 있던 가족들을 탈북시킨 그는 두 동생에게 한의사의 길을 권유해 이젠 '탈북자 출신 3형제 한의사'라는 명성을 쌓았다. 지난 2010년에는 탈북자 최초로 한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국내 1호' 명함을 한장 더 보탰다.탈북 출신에 화려한 이력을 보고 혹자는 그를 '코리안드림'에 성공한 유명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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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최동호 시인 지면기사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서정시는 가장 강렬하고 아름답고 깊숙한 소통의 수단'인공지능의 세상' 인간이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시인협회장 임기 2년간 시쓰기 운동… 내년 남북시인대회 문인교류도 추진아직 이세돌 九단과 알파고가 대국을 시작하기 전인 3월 초, 최동호 시인은 '인간들이 알파고에게 인간을 도둑맞았다'고 썼다. 많은 이들이 인간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때, 최 시인은 승패와 상관없이 인공지능이 깊숙이 스며든 세상을 통렬하게 감각하고 있었다. 일평생 인간을,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 바친 그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진짜와 가짜가 더욱 교묘하게 뒤섞일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을 수 있을까. 너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까. 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시(詩)라고 말했다. 40여 년을 시인으로 살아온 그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일지도 모른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시는 너무 멀고,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을 듣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얼마 전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사람을 식당에서 봤어요. 집사람이 알아보고 일러주길래 그 쪽을 봤는데 그 때의 내 느낌은, 티비에서 본 그가 진짜인가 여기서 밥먹고 있는 그가 진짜인가 순간적으로 헷갈리더라고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보내는 인상이 그만큼 강한거예요. 알파고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상과 현실 사이의 벽은 이미 흔들리고 있어요.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죠."최 시인은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면 웬만한 시인보다는 잘 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것은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의 능력이 아니다. "기계가 깊숙이 들어올수록 인간의 삶은 더 각박해집니다. 그동안은 인간이 유일절대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인류의 문화는 발전해왔어요.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세상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많이 상쇄되고 신도 부정될 거예요. 그런 세계에서 인간의 인간적인 면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그는 인공지능이 더 잘 쓰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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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태범석 전국 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 지면기사
2018년부터 고교 졸업생보다 대입정원 많아… 고등교육 구조조정 시급41개 국·공립대 모여 기성회계 폐지·시간강사제 개선등 현안 머리맞대사립대 비해 매우 낮은 교육공무원 보수 '인재 영입 걸림돌' 합리화해야바빠도 '경기도 대표 국립대' 한경대 총장으로서 지역사회 역할도 '충실'"고등교육(대학 등)의 구조개혁은 시급한 명제입니다. 그만큼 책임이 무겁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하지만 고등교육의 구조개혁은 강제가 아닌 대학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지난해 12월 전국 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이하 협의회) 제23대 회장으로 선출된 태범석(58) 국립한경대학교 총장. 벌써 1년 임기 중 1/4분기가 지났다. 협의회는 올 들어 3차례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협의회에서는 국·공립대학이 직면해 있는 각종 현안에 대해 논의했고 그 결과는 정부에 건의됐다. 현안은 지금도 계속 논의되고 있다.현재 전국 국·공립총장협의회에는 전국 41개 국·공립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국립대학 28개교, 공립대학 1개교, 교육대학 10개교, 국립대법인 2개교다. 협의회의 설립 목적은 ▲국·공립대학 간 상호협력을 통한 대학교육발전방안 모색 ▲국·공립대학 발전과 학술연구에 관한 공동협의 ▲대학교육의 제도개선에 관한 공동협의 ▲대학재정의 합리적인 확충방안 모색을 위한 공동 협의 등이다.태 회장은 "국·공립대학은 현대 대학 구조조정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생 수 감소, 총장 선출 문제 등 중차대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성회계 폐지와 대학 회계 도입에 따른 재정적인 문제, 각종 대학 평가 사업 등을 중요한 현안으로 손꼽았다.태 회장은 "현재 교육부에서는 국립대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그 결과가 국립대의 구조조정이나 정원 줄이기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태 회장은 지난해 말 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시간 강사법 폐지'와 '교육공무원의 보수 체계 합리화', '대학 구조조정' 등 국·공립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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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소진광 새마을운동중앙회 신임회장 지면기사
시대의 문제 해결… 공동체 회복 우선대한민국 발전 50년 원동력 세계화 노력선배 업적 기억하고 젊은 지도자 육성중앙서 정책개발 지방조직 기능살릴것"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은 세계 평화의 씨앗이 되고 지구촌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평화의 횃불이 될 것입니다."29일 취임식을 가진 소진광(61) 제23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안으로는 나라발전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고 밖으로는 지구촌 세계시민들의 복지향상을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역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을 보면 국무총리나 장관 등 공직자가 주로 맡아왔지만 23대 회장은 이례적으로 학자(현 가천대 행정학과 교수)가 선출됐다. 전국 대의원들로부터 선출된 중앙회장직은 무보수 명예 봉사자리로 겸직이 가능하다. 소 신임회장은 새마을운동의 우수성을 확신하고 세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온 만큼 새마을운동에 대한 그의 새로운 역할의 기대치가 높다. -"이 시대에 유용한 새마을운동의 교훈과 실천논리를 펼치겠다."소 회장은 지난 15년간 새마을운동을 꾸준히 연구해 왔다. 그는 새마을운동 경험이 다른 어떤 지역사회발전이론이나 사례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해온 학자다.그는 "행정학을 전공한 학자로 주민자치와 지역발전, 거버넌스(協治),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공부하면서 새마을운동에 관심 갖게 됐다"며 "새마을운동이 단순한 과거의 경험이 아니라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고 나라발전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그러나 처음 그가 새마을운동을 연구하자 학계에서는 특정 시대의 정치상황에 빠져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소 회장은 "새마을운동을 정치적인 색깔로만 보려는 시각이 잘못됐다"고 반박하며 "새마을운동을 연구하다 보니 어떤 지역사회발전 이론과 사례보다 우수한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그는 "새마을운동의 우수한 실천 사례를 우리나라에 한정하지 않고 건강한 세계시민사회 구축에 활용해야 한다는 각오"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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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이문열 작가 지면기사
살던 집 작가지망생 문학수업 강의실로 첫 개방이념·정치논쟁 속 문원의미 퇴색… '외로운 싸움'공적장소 전환해 창작레지던시 유지·활용하고파작가 이문열이 요즘 고약한 상황에 처했다는 풍문을 접하고, 무슨 일인가 싶어 인터뷰를 청하고 이천 부악문원을 찾은 건 지난 11일이었다. 이문열은 1985년10월5일 이천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1998년 부악문원을 설립한 이후 31년 가까이 이천 시민으로 살고 있다. 부악문원은 그의 집필실이자 동시대 문청들의 학숙이자 창작공간이다. 그의 생애에서 '이천 시절'은 문학적 성취와 정치적 사변(?)이 버무려진 격랑의 시기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시인(1991)', '선택(1997)' 등 논쟁적 작품을 비롯해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변경'(1998)등 주요작품들이 이천에서 탈고됐다. 그에게 부와 명예을 안겨준 초대박 스테디셀러인 '이문열의 삼국지'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문단의 보수우익 대표 논객으로 이념논쟁에 뛰어들었을 땐 선혈이 낭자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2001년 치러진 그의 책 장례식은 치열했던 정치사변의 피날레였다. 그 시절의 부악문원은 이문열에게 외로운 고지전을 감당했던 '참혹한 진지'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그 난리통에 낙향의 염원은 무뎌졌고 이제는 부악문원을 기반으로 이천에 정주할 생각이라 했다. 그런데 그 부악문원이 이제 이문열에게 다른 의미에서 "고약한 일"이 됐다.-이천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집을 짓고 주민등록을 옮긴게 85년 10월 5일이다. 그 해 봄 대구에서 꽤 좋은집을 팔아 서울로 이주를 했더니 연립주택 살 돈 밖에 안됐다. 그런데 어머니까지 해서 식구가 많았다. 할 수없이 집 근처에 10평 남짓한 집필실을 하나 얻으려니 전세로 1천만원이었다. 계약을 고민하던 차에 이천 사는 친구(조각가 강대철)가 그 돈이면 이천에서 땅 1천평을 살수 있다더라. 촌놈인지라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10평짜리 방보다 땅 1천 평이 훨씬 나아보이더라. 그 때 땅을 알아보고 친구의 빈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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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홍헌표 '터닝메카드' 감독 지면기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미래소년 코난' 좋아해 대기업 그만두고 日유학… 한국 얕보는 편견맞서 두배로 노력애니는 영화·게임등 영향주는 '상위문화'… 3D분야 발전, 2D '위기'돈보다 인력양성 인프라 지원이 중요"애니메이션을 만들고 표현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지난해 2월 초 첫 선을 보인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 전국의 아이들은 열광했고 자연스레 터닝메카드 장난감을 사려는 부모는 유통매장 앞에서 긴 줄을 서야 했다. 중고시장에서 새제품 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는데 인기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터닝메카드 장난감은 별도의 전기적인 동력장치가 없는 자동차에 카드를 가져다 대면 로봇으로 변신한다.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3세 유아도 반하는 이유다. TV안이나 밖이나 터닝메카드 열풍이다.터닝메카드는 한국의 제작회사와 감독이 만든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홍헌표(48)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과 애정 덕분에 가능했다. 처음부터 홍 감독이 애니메이션 제작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외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7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1년 3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이 후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홀홀단신으로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가족들의 반대도 극심했지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다는 꿈 하나로,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의 한 획을 긋게 됐다.터닝메카드로 국산 애니메이션 열풍을 일으킨 홍헌표 감독을 지난 3일 서울 구로 e스페이스에서 만났다.-첫 전공은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나. 어떻게 애니메이션 제작에 입문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하야오 감독의 '미래소년 코난'을 꾸준히 챙겨볼 정도였다. (웃음)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도쿄 커뮤니케이션 아트라는 애니메이션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2000년에 일본의 대표적인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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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박형우 인천 계양구청장 지면기사
그린벨트 해제 위해 '온힘'착한가격·풍부한자원 장점미분양 우려에도 성공 확신연 2만 고용창출 효과 '기대'낮은 재정자립도 극복 자신서운일반산업단지가 지난 8일 기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조성에 들어갔다. 인천 계양구 서운동 96의 19일대 52만4천910㎡ 부지에 조성되는 서운산단은 오는 2018년 6월 공사를 마치고 기업들이 입주해 계양구의 새로운 경제 동력이 될 전망이다. 서운산단은 금속가공·전자부품·전기장비 등 일반제조업체들과 식료품·종이제품 등 복합업종 기업들이 입주한다. 지난해 12월 산업시설용지 72필지(31만4천455㎡)에 대한 분양·입주 신청을 받아 평균 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서운산단은 서울외곽순환도로, 경인고속도로, 인천공항고속도로 등과 인접해 지리적 장점이 크고, 3.3㎡당 평균 378만원의 분양가로 인근의 주요 산단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높여 기업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역경제계에서는 서운산단이 대박 신화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계양구의 새로운 경제 동력이 될 서운산단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형우 계양구청장을 지난 2일 만났다.-서운일반산업단지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인천 시의원을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양구 서운동부터 효성동까지 준공업지역인데 공업지역의 기능을 못 했다. 이 지역에 아파트와 빌라 등이 계속 지어지면서 그에 따른 민원도 많이 발생했고,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거시설은 많아지는데 사람들이 일할 곳이 부족했다. 세수 확충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계양구 지역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구청장이 되자마자 산업단지 개발 계획을 세웠다. 산업단지 지역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인천 서북부권 최대 산단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공장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풀어나갔나."인천에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산업단지로 만든 것은 서운산단이 첫 사례다. 구청장에 부임하자마자 산업단지에 적합한 땅을 찾아봤는데 계양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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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최광욱 칼빈대학교 총장 지면기사
학교에 헌신할 기회 감사… 개혁신학의 역사적 전통 잘 살려 나갈것순수신학과 축구부 창단 의미… 올해 U리그 출전해 좋은 선수 발굴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신학 대학인 용인 칼빈대학교에 축구부가 탄생했다. 지난 1월 30일 창단된 칼빈대 축구부는 신학대 안에서도 순수 신학과 학생으로 구성되는 등 새로운 축구 문화를 예고하고 있다. 칼빈대가 축구부를 창단하게 된 배경에는 아프리카 축구 선교사인 임흥세 감독의 힘도 컸지만, 지난달 25일 새로 부임한 최광욱(72) 제5대 총장의 역할도 컸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최광욱 총장을 지난 29일 만나봤다.최 총장은 취임 소감을 묻자 "저같이 부족한 사람을 60년 역사가 넘는 개혁신학의 요람인 칼빈대 총장으로 임명해주신 이사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4년 임기 동안 전임 총장님들이 이뤄놓은 칼빈의 명성을 잘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전했다.이어 "내가 2년 동안 칼빈대 이사로 활동했지만, 아직 밖에서 학교를 보는 정도여서 학교의 현안과 발전 방향에 대해 파악하기 힘들다"면서 "하지만 평생 사업을 해온 사람으로서 학교를 위해 내가 할 일을 잘 살피고 답을 찾은 뒤 돌아보지 않고 전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최 총장은 "칼빈대는 여러 가지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학교"라면서 "한국과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학교 출신자와 목회자, 신학자, 평신도들이 각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의 역량을 잘 모으고 나아간다면 더 나은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개혁 신학의 전통이 무너져 가는 이때 70년을 향해서 가는 칼빈주의를 이어가는 개혁신학의 역사적 전통을 잘 살려 나가겠다"고 밝혔다.칼빈대는 최근 신학대 최초로 축구부를 창단해 올해 U-리그에 출전할 계획이다. 특히 신학대 중에서도 순수 신학과 안에 창설된 축구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과거 순복음 총회신학교가 첫 신학 대학 축구부를 만든 바 있지만, 이번에 첫발을 내디딘 칼빈대 축구부는 신학대 안에서도 순수 신학과 학생으로 이뤄졌다는 점과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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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 김우식 인천도시공사 사장, 변화를 말하다 지면기사
부동산 자산 데이터베이스화·직원 역량 강화 공감대 '부채우수기관 표창' 성과수요자에 맞춘 토지 공급·처분 가능 토지 매각계획… 시장상황에 따른 계획변화검단새빛도시 스마트시티사업 SPC와 협의해 실시·매매협약 체결 리스크 최소화"도시공사는 다른 어떤 처방보다 체중을 줄여야 합니다."인천도시공사 김우식 사장은 인터뷰 중 도시공사를 '비만'이라고 표현했다. 많은 빚을 안고 있는 도시공사는 사람으로 치면 과체중이라며 체중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해 도시공사의 체중 조절에 주력했고, 성과를 거뒀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7천408억원의 부채를 감축했다. 행정자치부에서 부채감축 우수기관으로 표창도 받았다. 한때 과도한 부채로 '빚더미'라는 소리를 들었던 인천도시공사가 부채감축의 상징으로 변모한 것이다. 501억원 규모의 흑자도 달성하면서 도시공사는 경영지표 상으로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영 지표가 좋아지면서 직원들도 예전과 달리 의욕적이고, 자신감을 찾았다는 것이 외부의 평가다. 최근 도시공사 집무실에서 김우식 사장을 만나 공사의 변화에 대해 들었다. 대화의 주제는 도시공사 경영 지표에서 부동산 경기 전망, 검단새빛도시 등 공사의 주요사업, 이달 말 있을 복합리조트 발표, 도시공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 SPC(특수목적법인) 등으로 옮겨갔다. 김우식 사장은 각 사업과 관련된 세부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빚더미'라는 소리를 듣던 인천도시공사가 부채 감축 우수기관으로 표창을 받았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었나."지난해 연초에 도시공사 경영정상화 원년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주변 여건도 좋았다. 저금리 기조로 갔고, 부동산 경기도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일하는 방법도 바뀌었다. 그동안에는 만들어진 토지를 봐달라는 것이 마케팅 방법이었다. 직원들이 인맥으로 매수의향자를 알아보고 입찰을 부치는 형태다. 이렇게 해서는 시장에서 잠재적 수요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이 때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