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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

  • 고려 사람들의 취미와 레크리에이션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3)]

    고려 사람들의 취미와 레크리에이션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3)] 지면기사

    인간이 만든 놀이 중 가장 고상한 것을 꼽으라면 바둑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을 터이다. 최근에는 인간과 인공지능(AI)의 대결이 세계적 이목을 끌기도 했다. 현대의 바둑판은 가로, 세로 19줄씩 엇갈리는 점이 361개이다. 먼저 두는 흑돌이 181개, 나중에 두는 백돌이 180개이다. 여기에 깊은 철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고들 한다. 고려시대에도 바둑은 선비들의 고상한 취미였으며 여럿이 즐기는 레크리에이션이었다. 고려말 삼은(三隱) 중의 하나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의 기록 중에 바둑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평소 바

  • 고려시대 출산 장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2)]

    고려시대 출산 장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2)] 지면기사

    강화군자원봉사센터에는 최근 새롭고 색다른 일거리가 생겼다. 강화 지역 영유아용 턱받이와 임산부용 손수건을 만들어 배달하는 일이다. 턱받이와 손수건은 한때 강화를 상징하기도 했던 소창으로 만든다. 재봉 봉사자들이 재봉을 맡고, 일반 봉사자들은 단추를 달아 완성한다. 강화 지역에는 대상 아이들이 7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자원봉사센터는 파악하고 있다. 이 사업은 인천시자원봉사센터 우수공모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강화군자원봉사센터에서 소창 턱받이와 손수건을 만들어 나누어 주는 것은 출산장려정책 중의 하나이다. 출산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의

  • 금풍양조장 우물에서 만난 800년 강화의 술 문화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1)]

    금풍양조장 우물에서 만난 800년 강화의 술 문화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1)] 지면기사

    인천 강화군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을 꼽으라면 단연 온수리의 금풍양조장이다. 금풍양조장에서 빚어낸 술은 그 맛도 일품이어서 1938년에는 인천주류품평회 탁주·약주 부문에서 우등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또한 양조장 건물과 여러 시설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어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금풍양조장은 강화를 대표하는 술맛을 자랑했던 만큼 1974년 정부의 양조장 통폐합 정책에도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1년에 설립된 금풍양조장은 빚어내는 술뿐만 아니라 곧 100주년을 맞이하는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깊은 우물

  • 나막신 신고 정족산을 오른 고려 사람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0)]

    나막신 신고 정족산을 오른 고려 사람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0)] 지면기사

    신문기자들끼리 주고받는 농담 혹은 훈계 중에서 상대에게 가장 모욕적인 것을 꼽으라면 단연 ‘발로 써도 그것보다는 낫겠다’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 손으로 쓴 네 원고가 내가 발로 쓴 것보다 못하다는 얘기다. “이걸 글이라고 썼냐” 이런 뜻이다. 은근히 발을 손에 비해 하찮게 여기는 태도가 깔려 있다. 인천 출신 시인 김영승의 시에도, 선풍기의 하얀 스위치를 발로 눌러 끄다 보니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싶어 선풍기한테 정말 미안했고 괴롭기까지 했다는 내용이 있다. 배꼽을 쥐게 만드는 역발상의 시이지만, 발의 입장에서

  • 노을의 섬 교동도, 풍류의 산 화개산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9)]

    노을의 섬 교동도, 풍류의 산 화개산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9)] 지면기사

    강화군의 주요 섬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교동(喬桐) 역시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옛 정취를 물씬 풍기는 대룡시장과 강 건너 북녘땅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화개산은 그야말로 회색빛에 갇혀 사는 도시인들에게는 색다른 맛을 안겨 주는 청량제가 아닐 수 없다. 대룡시장에 왔다가 화개산을 들르는 것인지, 화개산 모노레일을 타러 왔다가 대룡시장을 찾는 것인지,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덤인지는 중요치 않다. 고려시대 교동은 수도 개성에 사는 여유로운 이들에게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였던 모양이다. 그 시대 시인 묵객들에게

  • 민간에도 널리 퍼져있던 사냥 문화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8)]

    민간에도 널리 퍼져있던 사냥 문화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8)] 지면기사

    사냥은 산이나 들판의 짐승을 잡는 일인데, 그 사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동굴이나 무덤의 벽화 형태로 그 사냥 모습이 전한다. 인간이 처음 사냥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마도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테다. 어쩌면 짐승에게 쫓기던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책으로 짐승에게 역공을 가하면서 사냥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아니면 공격하는 짐승을 잡기 위해 시작된 사냥은 언제부터인가 스포츠나 놀이로 변화했다. 사냥의 여러 기법은 군인들의 전술로 발전했고, 사냥꾼은 곧바로 군인으로 징발되었다.

  • 고려지(紙), 800년 전 ‘K-컬처’… 강화산닥나무를 보라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7)]

    고려지(紙), 800년 전 ‘K-컬처’… 강화산닥나무를 보라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7)] 지면기사

    우리나라 최초의 K-컬처 수출품은 무엇일까. 문화 상품으로는 단연 고려 종이를 꼽을 수 있다. 고려에서 만든 종이, 고려지(高麗紙)는 외국에서 찾는 ‘Made in Korea’의 원조였다. 고려 종이가 얼마나 우수했는지, 종이 발명국 중국에서조차 고려에서 만든 ‘Made in Korea’를 찾았다. 고려 종이는 특히 강도(江都) 시기에 많이 쓰였다. 개성에서 수도를 옮겨 온 강화도에서는 팔만대장경의 경판을 만들고, 금속 활자까지 만들어 냈다. 이들 목판과 금속 활자는 모두 종이책 발간을 염두에 둔 것들이었다. 그러니 그때 강화에서의

  • 불교의 나라서 꽃피운 종교의 자유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6)]

    불교의 나라서 꽃피운 종교의 자유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6)] 지면기사

    우리나라 어느 지역을 가나 주택가에 깃발을 내건 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깃발의 종류도 다양하다. 흰색과 붉은색을 내건 집도 있고, 붉은색과 푸른색을 매단 집도 있다. 거기에 태극기를 더한 집도 있다. 그 태극기를 위에 단 곳도, 아래로 내린 곳도 있다. 흰색 바탕에 붉은색 글씨로 절 표시인 만(卍) 자를 써서 달아 놓은 집도 있다. 영락없이 이들 깃발 표시는 점을 치고 굿을 하는 무속인의 집을 가리킨다. 이들 깃발을 내건 집이 강화에는 유난히 많은 편이다. 강화도 바닷가 곳곳에서는 무속인들의 제사 지내는 모습도 심심치

  • 강화 화문석은 고려시대에도 국가대표 특산품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5)]

    강화 화문석은 고려시대에도 국가대표 특산품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5)] 지면기사

    지난 25일 오전 6시30분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들판. 한운수(79)·추순임(73) 부부의 비닐하우스 논에서 왕골 수확 작업이 한창이었다. 동네사람 몇이 나와서 거들었는데 대부분 노인이었다. 부인 추순임씨는 왕골로 돗자리나 생활용기를 만드는 강화군 완초공예 명장이다. 이 동네는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왕골을 심고 화문석을 짰다. 이제는 한씨 부부를 비롯해 그야말로 몇 집 남지 않았다. 일은 고되고, 벌이는 시원치 않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하려 들지 않는다. 강화 화문석의 명맥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왕골은

  • 강도인(江都人)들은 무얼 먹고 살았을까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4)]

    강도인(江都人)들은 무얼 먹고 살았을까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4)] 지면기사

    ‘광야’의 시인 이육사는 노래했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그의 고향 안동에서만 7월에 포도가 익어가는 것은 아니다. 강화도 역시 7월의 포도는 익어가느라 바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 지역의 해풍 영향인지 강화도 포도는 그 품질이 뛰어나기로 이름 높다. 포도의 제철은 하우스 재배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아무튼 여름철로 보면 된다. 800년 전 고려시대 사람들도 포도를 먹었다. 이규보의 시가 그 사실을 전한다. ‘건성사 제석전 주인 선생이 기거하는 누각 앞에 시렁을 만들고 포도

  • 800년전에도 정부가 물가잡기는 어려웠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3)]

    800년전에도 정부가 물가잡기는 어려웠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3)] 지면기사

    지난 12일은 강화도 풍물시장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상가 건물 안의 강화풍물시장은 상설이지만 그 바깥은 2일, 7일, 닷새마다 장터거리로 변한다. 강화군에서 인정한 농사짓는 사람들이 오일장에 맞춰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내다파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직거래 장터이기 때문에 서울 등지에서 일부러 찾는 손님들로 넘쳐난다. 이날 장터에는 폭염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정오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감자, 양파, 호박, 가지, 고추, 옥수수 같은 저마다의 물건을 내놓고 파는

  • 800년 전 고려로 가는 타임머신 ‘동국이상국집’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2)]

    800년 전 고려로 가는 타임머신 ‘동국이상국집’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2)] 지면기사

    어떤 일을 뒷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기록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개인을 넘어 사회와 국가가 나서서 기록 작업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아주 오래전부터 기록 남기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려시대 기록 문화의 정수를 꼽으라면 단연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일 게다. ‘동국이상국집’은 800년 전 고려의 재상을 지낸 이규보(1168~1241) 개인의 문집인데, 당시 국왕과 최고 실력자가 적극적으로 챙기면서 국가 기록물 차원에서 간행됐다. 총 53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