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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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전 고려로 가는 타임머신 ‘동국이상국집’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2)] 지면기사
어떤 일을 뒷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기록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개인을 넘어 사회와 국가가 나서서 기록 작업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아주 오래전부터 기록 남기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려시대 기록 문화의 정수를 꼽으라면 단연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일 게다. ‘동국이상국집’은 800년 전 고려의 재상을 지낸 이규보(1168~1241) 개인의 문집인데, 당시 국왕과 최고 실력자가 적극적으로 챙기면서 국가 기록물 차원에서 간행됐다. 총 53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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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도 않게 혼욕 문화 [우리나라 문화샘터,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1)] 지면기사
올 여름 더위가 가히 역대급 폭염으로 기록될 듯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벌써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시민들이 분수 물줄기에 더위를 식히는 장면이 주요 사진 뉴스로 올라올 정도다. 폭염을 피해 세찬 분수 물줄기에 몸을 맡긴 그 어둑한 사진을 보노라면, 샤워(shower)의 어원이 쏟아지는 소나기에 몸을 씻는 데서 유래했겠구나 싶다. 더위를 식히는 데는 시원한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게 최상이다. 사람들은 몸을 씻기 위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목욕이란 것을 해 왔다. 고려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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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 가는 강도(江都)의 단오 풍속 [우리나라 문화샘터,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0)] 지면기사
음력 5월5일, 단옷날이 낀 지난주에는 전국 각 지역마다 단오 행사가 시끌벅적하게 펼쳐졌다. 그네 타기, 씨름, 농악과 같은 단오 행사들은 우리나라의 아주 오래된 명절 풍습이다. 고려시대 왕도였던 강화에도 한 나라의 수도다운 강화 나름대로의 단오 행사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화의 단오 행사는 제법 규모 있게 펼쳐졌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중히 여기던 명절답게 단오와 관련한 말도 참으로 많다. 단오는 단양이나 친중절이라고도 한다. 단오에 해 먹는 떡을 단오떡이라고 하고 단오에 액을 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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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도 전당포가 있었다고요?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9)] 지면기사
불법 대부는 무효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얼마 전 발언 이후 우리 금융 당국이 약탈적 불법 사금융 문제 해결을 위한 고강도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금융권 문턱을 넘기 어려운 돈 없는 서민 입장에서는 뻔히 그 폐해를 알면서도 고율의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사금융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그나마 맡길 물건이라도 있다면 전당포 역시 반갑게 보이기 마련이다. 전당포도 대부업 허가를 얻어야 영업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전당포 간판을 찾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그 숫자가 줄었지만 여전히 영업하는 전당포는 있다. 강화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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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미학 진수’ 청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8)] 지면기사
강화읍내 중심가에서 승용차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국화리(菊花里) 고려산 동쪽 면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청련사(靑蓮寺). 이곳에 오르면 마치 깊은 산중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높지 않은 곳인데도 시야가 툭 트여 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멀리 김포 문수산을 비롯한 산세뿐이다. 뒤로는 고려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앞으로는 굽이굽이 산등성이가 연달아 펼쳐진다. 풍수지리를 모르는 그 누구라도 청련사 뜰에 서면 이곳이 참 좋은 명당이려니 싶다. 청련사는 고구려 장수왕 4년(416년)에 절터를 찾던 천축조사가 고려산 정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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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반려동물 사랑, 소유권 다툼도 불렀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7)] 지면기사
지난 18일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강화자연사박물관 옆에 반려동물 전용 놀이터가 문을 열었다. 보호자를 위한 맨발 걷기 시설과 그늘막 등 간단한 휴게 공간도 마련돼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인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해 강화군에서 지었다. 동물등록을 했으면 누구든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반려 인구가 1천500만 명에 달할 정도라고 하는데 그 반려동물의 종류도 개나 고양이는 물론이고 새, 파충류 등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반려동물 사랑은 고려시대에도 대단했다. 동네 사람끼리 소송이 자주 일어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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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전 강도의 내력, 봄마다 고려산 진달래로 피어나고…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6)] 지면기사
시인 김소월이 강화에서 났더라면 그의 시구(詩句)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은 아마도 ‘강화에 고려산 진달래꽃’이 되었을지 모른다. 고려산은 전국 최대 진달래 군락지로 손꼽힌다. 4월 중순이면 1주일 남짓한 기간에 10만 명이 훌쩍 넘는 인파가 정상부를 곱게 물들인 진달래를 보기 위해 고려산으로 몰려든다. 예로부터 고려산에 둘러싸인 강화읍내를 일컬어 ‘하늘이 베푼 곳’이라 했다. 1690년 8월 어느 날, 병조판서 민암은 임금 숙종과 강화도 일대의 방어체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민암은 소매에서 지도 한 폭을 꺼내 펼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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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보다 호화로웠던 권력의 집, 진양부는 어디에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5)] 지면기사
강도(江都) 시기, 왕보다도 더한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최우(?~1249)가 살았던 집은 궁궐 그 이상이었던 것으로 여러 기록에 그려진다. 그 집이 강화군청 옆 견자산 언저리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곳이 어디였는지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다만, 2020~2021년 견자산 남동쪽과 북쪽 자락에 ‘관청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 건물지로 추정되는 유구가 여럿 발굴되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토대로 이 일대가 최우의 저택 진양부(晉陽府) 자리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양부가 당시 최고 권력자의 집이라는 점에서 그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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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풍광 연미정, 단기 집중 기숙학원이 되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4)] 지면기사
우리네 대부분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시험을 거치게 마련이다. 입학시험이나 취직시험 준비가 얼마나 힘들면 시험지옥이란 말이 생겨났을까. 낮에는 바다 구경, 밤에는 달맞이, 언제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오래전부터 강화 8경의 하나로 손꼽혀 온 연미정(燕尾亭)이 고려 강도(江都) 시기, 관직 진출을 위한 시험공부 장소였다는 기록이 있어 눈길을 끈다. 16세기 왕명으로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강화도호부’ 편에 ‘연미정 공부’ 이야기가 실렸다. 연미정을 일컬어 ‘갑곶나루 위에 작은 산이 있고, 그 아래 바닷물이 나뉘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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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송루 인근에 왕자정과 오읍 약수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3)] 지면기사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사람은 물 없이 살 수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물맛 좋은 곳을 골라 터를 잡고 살았다. 800년 전 고려의 수도 강화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레 수많은 사람이 지금의 강화읍과 그 주변으로 모여들었는데 그때 그들은 어디서 물을 조달했을까. 강화읍에는 강도(江都) 시기의 이야기를 간직한 우물과 샘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맑은 물이 샘솟고 있다. 송악산 남쪽 고려궁지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 강화산성 북문인 진송루(鎭松樓) 가는 길을 오르다 보면, 고려궁지 서편 담장 가까이에 왕자정(王子井)이라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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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 공방 엿보는 강화전쟁박물관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2)] 지면기사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서 보듯 현대전은 첨단 무기의 경연장이다. 전술 대결 또한 치열하다. 그렇다면, 800년 전 우리 고려의 군인들은 세계 각지를 휘젓고 다니던 몽골군에 맞서 어떤 무기와 전술로 싸웠을까. 그때 역시 고려의 첨단과 몽골의 첨단이 서로 맞부딪쳤다. 고려군의 무기 체계는 몽골군과 대적하기에 충분할 만큼 첨단이었다. 문제는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와 전투 지휘관들이었다. 갖추고 있는 무기를 잘 활용하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전적으로 지휘관의 역량에 달렸다. 고려의 선박 운용과 해상 전투력 역시 무척 뛰어났는데, 몽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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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중 영빈관 사신 접대, 승천포 고려천도공원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1)] 지면기사
800년 전 강도(江都) 시기 강화도에는 지금의 청와대 영빈관 격인 외교사절을 위한 손님맞이 공간이 따로 있었다.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해안가에 가면 ‘고려천도공원’이 있다. 고려가 1232년 개성에서 강화로 도읍을 옮긴 뒤 39년간이나 강화를 근거지로 삼아 몽골과 항전하면서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등 다양한 문화적 꽃을 피운 점을 기리기 위한 장소다. 고려천도공원을 조성하기 전인 1999년 강화군에서는 이곳에 ‘고려고종사적비(高麗高宗事蹟碑)’를 먼저 세웠다. 지금도 이 사적비는 고려천도공원의 핵심 요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