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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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등처럼 비출지어라, 전등사여!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21)]
강화 전등사에는 평일, 휴일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년에 100만 명 정도 찾는다. 전등사는 세로로 움직이는 시간과 가로로 연결된 공간이 만나는 교차점이다. 그리하여, 전등사 경내는 온통 오랜 이야깃거리로 넘쳐난다. 최근 조계종이 유명 사찰에서 진행하는 남녀 소개팅 프로그램 ‘나는 절로’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전등사였다. 전등사는 60~70년 전에도 젊은이들이 가정을 꾸리고 새출발하는 예식의 공간이었다. 강화지역 노인들은 전등사를 최초의 신식 결혼식장으로 기억한다. 1950년대 후반, 강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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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국내 으뜸 향교를 품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20)] 지면기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鄕校)가 인천에 있다. 교동향교.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229-49에 있는 교동향교는 고려시대 처음 건립된 향교 중 하나였으며, 공자의 얼굴 그림(畵像)을 최초로 들여와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교동향교는 고려시대 한반도 유학 전래 과정에서 무척 큰 상징성을 갖고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교동향교에 공자의 화상을 안치했던 인물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향(1243~1306)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고려사절요’의 졸기에는 “사람됨이 장중(莊重)하며… 항상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의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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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보낸 아들 그리워, 고종의 울음 들은 견자산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9)] 지면기사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중심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은 북산, 남쪽은 남산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막아주며, 서쪽은 고려산 자락이 한 발짝 떨어져 어깨를 두르고 서 있고, 동쪽에서는 견자산이 허리를 바짝 감싸고 있다. 견자산과 남산의 빈틈을 남문 성곽이, 견자산과 북산 사이를 동문이, 북산과 남산의 틈을 서문 성곽이 지키고 섰다. 강화읍 북산은 고려가 천도(遷都)한 뒤로 개성에서 도읍을 지키던 산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송악산이라 칭해왔다. 강화읍내를 둘러싼 산 중에 견자산은 규모 면에서는 가장 작을지라도 강화읍의 성지(聖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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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고개, 두문불출의 충절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8)] 지면기사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롭게 나라를 열었을 때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지낸 인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무리가 개성 근처의 두문동이라는 동네에 숨어든 72인이다. 이들을 흔히 ‘두문동 72현(賢)’이라 칭하기도 한다. 두문동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뜻의 두문불출이라는 말에서 땄다. 이들은 태조 이성계의 고려 유신 등용이라는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벼슬자리를 피해 이곳에 터를 잡고 숨었다. 두문동 근처 고갯길 도로명은 새로운 나라 조선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에다 고개 현(峴) 자를 붙여, 부조현(不朝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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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따르지 못해 문 잠갔다… ‘두문불출’의 충심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8)]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롭게 나라를 열었을 때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지낸 인재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무리가 개성 근처의 두문동이라는 동네에 숨어든 72인이다. 이들을 흔히 ‘두문동 72현(賢)’이라 칭하기도 한다. 두문동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뜻의 두문불출이라는 말에서 땄다. 이들은 태조 이성계의 고려 유신 등용이라는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벼슬자리를 피해 이곳에 터를 잡고 숨었다. 두문동 근처 고갯길 도로명은 새로운 나라 조선에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에다 고개 현(峴) 자를 붙여, 부조현(不朝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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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구(擊毬), 무예인가 사치인가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7)] 지면기사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파크골프장을 더 만들어달라는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파크골프가 노인층을 중심으로 크나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 골프 선수가 세계대회를 석권했다는 소식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골프는 잔디 위에 놓인 조그만 공을 막대기(클럽)로 쳐서 멀리 보내고, 그 공을 정해진 구멍(홀)에 넣는 경기다. 우리나라의 골프 열기가 요즘에만 뜨거운 것이 아니었다. 고려시대에도 대단했었다. 고려 때에는 이를 격구(擊毬)라 했다. 그 운동장을 구장(毬場) 또는 구정(毬庭)이라 칭했다. 말을 타고 공을 치기도 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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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정서, 청산별곡을 낳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6)] 지면기사
고려가요 ‘청산별곡’과 ‘가시리’는 그 내용이 더없이 슬프고도 아름답다. 우리가 아는 많은 수의 고려가요는 슬픈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들 비장미의 고려가요가 여몽전쟁 시기 강화에서 태동했다는 시각이 많다. 중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이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고려가요 ‘청산별곡’. 전체를 보게 되면 그나마 내용이 다가오는데, 교실에서 노랫말을 조각조각 분해해 놓으면 그렇게도 난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나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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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이 대중교통이었다고?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5)] 지면기사
고려시대, 강화는 우리나라 말(馬) 산업의 핵심 공간이었다. 강화는 제주도와 함께 나라에서 필요한 말 수요를 충당하는 중요한 목장지였다. 강화의 그 역할은 수도를 옮긴 강도(江都) 시기에 더욱 두드러졌다. 특별히 삼산면 석모도 매음목장과 양도면 진강산 진강목장이 유명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옛말에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라고 했다는데 강도 시기만큼은 사람이나 말이나 태어나면 강화로 보내라고 했을 것만 같다. 그 정도로 강화의 말 목장 비중은 높았다. 요즘 사람들은 강화가 무슨 말의 고장이냐고 하겠지만,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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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축제에 스민 고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4)] 지면기사
매년 10월이면 강화도 전등사 일대에서는 삼랑성역사문화축제가 펼쳐진다. 제25회 올해 행사는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시간’을 주제로 열렸다. 전등사를 품고 있는 삼랑성(三郞城)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다.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에서 병인양요 당시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프랑스군을 격퇴시키기도 했다. 삼랑성 동문 입구에는 이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삼랑성역사문화축제에서는 매번 ‘고려 왕 행차 재현 행사’도 열린다. 고려가 강화도에 도읍을 옮긴 뒤 왕궁에서 이곳 삼랑성까지 행차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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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촌, 마을 이름으로 남은 고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3)] 지면기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불은초등학교 앞길을 따라 염하 방면으로 가다 보면 ‘고능리’라는 동네가 있다. 그 고능2리에 능내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능내촌’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도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따라 동네가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능내촌을 능촌이라고도 한다. 2016년에 펴낸 ‘불은면지(佛恩面誌)’에 따르면 고능리(高陵里)는 원래 고잔동(高盞洞), 능촌동(陵村洞), 곶내동(串內洞)의 세 마을이 따로 있었는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고잔동과 능촌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고능리라고 했다.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