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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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촌, 마을 이름으로 남은 고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3)] 지면기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불은초등학교 앞길을 따라 염하 방면으로 가다 보면 ‘고능리’라는 동네가 있다. 그 고능2리에 능내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능내촌’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도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을 따라 동네가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능내촌을 능촌이라고도 한다. 2016년에 펴낸 ‘불은면지(佛恩面誌)’에 따르면 고능리(高陵里)는 원래 고잔동(高盞洞), 능촌동(陵村洞), 곶내동(串內洞)의 세 마을이 따로 있었는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고잔동과 능촌동에서 한 글자씩 따서 고능리라고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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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불꽃놀이 연등회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2)] 지면기사
강도(江都) 시기 불꽃놀이가 8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과연 재현될 수 있을까. 고려시대 불꽃놀이는 연등(燃燈) 행사였는데, 왕이 참석할 정도로 국가적 대사였다. 지난 주말 강화도에서는 고려시대 연등행사의 전통을 살리고자 하는 불꽃축제가 펼쳐져 눈길을 끌었다. ‘2025 강화 장엄사 명상낙화축제’가 지난 20일 오후 6시부터 열렸다. 강화도 사찰에서 옛 불꽃놀이를 재현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찾아 행사장을 빙 둘러섰다. 시골 동네에 차를 댈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불꽃놀이를 구경하고자 하는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여러 불교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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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국민신문고 승평문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1)] 지면기사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고려궁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승평문(昇平門)’을 지나야 한다. ‘昇平門’이라고 한자로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승평문은 고려 궁궐의 정문이다. 강화로 도읍을 옮긴 뒤 궁궐을 지으면서 개성의 것을 본떴으니 승평문도 그대로였을 터다. 하지만 강화의 승평문은 그 쓰임에서는 개성시대와는 좀 다른 구석이 있었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 나타난 승평문에 얽힌 이야기 속에서 강화도 승평문이 백성들의 아픔을 호소하는 신문고 역할을 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강화 천도 후 11년이 흐른 1243년 12월, 궁궐 정문 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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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의 성지, 선원사지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10)] 지면기사
고려 문화의 정수를 꼽으라면 고려청자와 더불어 팔만대장경을 빼놓을 수 없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팔만대장경은 국보 제32호이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1237년부터 1248년까지 팔만대장경 조성을 주도한 곳이 강화도였다. 그리고 그 팔만대장경 완성 뒤 조선 태조 7년(1398) 한양으로 옮겨 갈 때까지 150년 동안 이를 보관한 장소가 강화 선원사(禪源寺)였다. 선원사는 강도(江都) 시기 최고 실권자였던 최이(최우)가 주도해 1245년 설립했다. 선원사는 최이의 원찰(願刹)이면서 국찰(國刹)이었다. 이 때문인지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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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질환 특효’ 강화 해수탕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9)] 지면기사
고려시대 최고 문장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규보(1168~1241)는 만년에 피부병을 호되게 앓았다. 4개월 넘게 고생하는 동안 용하다는 의사들을 찾아 처방을 구했지만 죄다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저잣거리에서 오가는 얘기를 들었다. 강화의 바닷물이 특효약이라는 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강화 주민들이 말하는 그 바닷물 목욕을 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렇게도 괴롭히던 피부병이 강화 바닷물 목욕 몇 번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800년 전, 이규보가 남긴 글에 강화의 바닷물로 그의 피부병을 치료한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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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로 읽는 고려… 다세대주택·상점까지 스며들었다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8)] 지면기사
인천 강화에서는 유적지 이외에도 거리 곳곳에서 고려를 느낄 수 있다. 강화읍내 상점을 비롯한 건물 외벽에 붙은 간판들에서 800년 세월을 스며든 고려의 향기가 묻어난다. 주택가 한복판에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수십 년 전 건축된 다세대주택의 이름에서부터 고려향이 가득하다. 궁골주택. ‘이곳이 바로 고려의 궁궐이 있던 자리구나’ 하고 대번에 알게 하는 이름이다. 강화군에 따르면, 궁골주택은 강화읍 관청길 55번길, 65번길 일대의 4개 동 31세대 규모를 이루고 있다. 동별로 1990년 4월~1991년 11월에 각각 준공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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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희종의 무덤, 석릉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7)] 지면기사
고려시대에는 사람이 죽은 뒤 묫자리를 쓸 때 풍수지리에 따른 명당을 골라 택했으며, 장례 기간도 무척 길었다. 왕이나 그 가족의 경우 묫자리를 택하는 기준이 더욱 엄격했을 터이다. 그 고려시대 왕 또는 왕후의 무덤이 강화에 4기가 있다. 석릉, 가릉, 곤릉, 홍릉이다. 이는 명확하게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되는 경우만 그렇다. 고려시대 왕들은 실제로 명당 자리에 묻힌 것일까. 지난 11일 오후, 강화 천도 시기 가장 먼저 조성된 왕능인 석릉(碩陵)을 찾아나섰다. 내비게이션에 ‘석릉’을 입력하니 목적지를 친절히 안내했다. 차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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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지, ‘고려’는 어디에 있나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6)] 지면기사
인천 강화군의 관광 1번지는 강화읍에 있는 고려궁지이다. 강화군의 관광안내도에는 15곳의 주요 관광지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고려궁지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맞서 39년간 항전했던 궁궐터로서 갖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고려궁지는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1232년 6월, 실권자 최우는 반대하는 신료의 목을 베어가면서 강화 천도를 결정했고, 곧바로 군대를 동원해 강화에 궁궐을 지었다. ‘고려사절요’ 기록을 바탕으로 보면 궁궐 공사가 여러 해에 걸쳐 확장됐음을 알 수 있다. 지금 강화읍 관청리 일대에 자리잡았을 고려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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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산업단지와 고려유물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 지면기사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옥림리 일대에는 인천상공회의소가 주도해 조성한 강화일반산업단지(강화산단)가 있다. 강화산단 조성 과정에서 대규모 고려 유물이 발굴됐다. 강화산단은 다양하고 화려한 유물들을 수습한 뒤 그 자리에 세워졌다. 인천지역 공장부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강화지역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조성한 강화산단에 입주한 기업체의 면면은 우리나라 제조업 기술 수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고려 유물 단지’ 위에 선 강화산단은 800년 전 유물과 그 시대 장인의 기술 수준까지도 함께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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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비추는 ‘섬김의 대상’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4)] 지면기사
거울은 내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있게도 하지만 나의 내면까지 되돌아보고 반성하게도 하는 독특한 물건이다. 고려시대 사람들에게도 거울은 무척 각별한 생활 도구이자 영험함이 깃든 섬김의 대상이었다. 불과 10여 년 전, 인천 강화에서 고려시대 거울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청동거울이 세트로 발굴되었다. 2013~2017년, 강화도 교동대교에서 강화대교를 잇는 인화~강화 도로 구간 문화유적 발굴 조사가 있었는데 이때 용정리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 부근에서 그동안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고려시대 거울이 출토됐다. 재질은 청동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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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나라’ 고려에선 불상도 휴대했다는데…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 지면기사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다. 고려가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긴 뒤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급하게 추진한 일이 개성에 있던 사찰을 강화도에 다시 세우는 거였다. 절을 짓는 일이 왕이 머무는 궁궐 공사와 맞먹는 중요한 국가적 사업이었다. 2010년,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강화여고 기숙사 증축 부지에서 고려 무신정권 시기 불상 조각의 흐름과 강도(江都) 시기 불교 미술의 특징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유물이 발굴돼 관련 학계를 놀라게 했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아주 작은 ‘금동삼존불상(金銅三尊佛像)’. 크기는 높이 7㎝, 폭 6.5㎝ 정도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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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사’ 새겨진 향로… 가늠 힘든 역사적 가치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2)] 지면기사
인천 강화에서는 최근까지도 국보급 고려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고려 도성의 중심이었던 강화군 읍내에서는 유물 발굴로 인해 원하는 공사를 제때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하 터파기 공사를 꺼릴 정도다. 유물 발굴로만 따지면, 강화는 ‘현재 진행형’ 고려 수도이다. 최근 발굴된 고려 유물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강화역사박물관 전시장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垸)’. 강화역사박물관 ‘고려시대 강화’ 코너에 가면 볼 수 있다. 청동은입사향완은 다른 유물과 달리 사방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