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토리]'가천대 길병원 왓슨'의 의의

AI 의사, 의학-4차산업 '접합수술'

김명래 기자

발행일 2017-02-24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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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앤스토리/1p=왓슨 다학제 진료
가천대학교 길병원은 지난 2016년 12월 5일 국내 최초로 IBM사의 인공지능 '왓슨'을 이용해 첫 환자를 진료하는 데 성공했다. /경인일보 DB

2012년부터 문건 1만2000쪽 학습
방대한 데이터 해석·최적의 진단
대형병원과 비슷 '암 치료 민주화'
빅4 병원, 벤치마킹·강의 등 요청
수 년내 '진료 파트너' 역할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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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미국 ABC 방송의 인기 퀴즈 프로그램 '제퍼디'(Jeopardy)에서 IBM의 왓슨(Watson)은 '인간 퀴즈왕' 2명을 접전 끝에 물리치고 우승 상금 7만7천달러를 거머쥐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진행자의 질문을 사람이 입력하면, 왓슨이 이를 인식해 정답을 내놓았다.

기계가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언어의 문맥과 그 의미를 파악한 것 그 자체로 일대 사건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에 밀려 고전하던 '늙은 기업' IBM은 왓슨 프로그램의 상용화를 본격화하며 새 시대를 준비했다.

그로부터 4년 여가 지난 2016년 12월. 국내 최초로 왓슨은 인천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에서 대장암 3기 환자를 의사들과 함께 '진료'했다. 퀴즈왕이었던 왓슨에서 진화한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의 국내 첫 임상 사례였다.

왓슨은 병리과, 내과, 핵의학과, 영상의학과,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혈액종양내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8개 진료과 전문의 30여 명과 함께 '다학제 진료'에 참여하고 있다. 왓슨과 함께한 암환자의 다학제 진료가 일주일에 15차례 안팎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인천에서 국내 유수의 병원을 오가는 암환자가 왓슨의 소견을 듣기 위해 길병원을 찾는 사례가 꽤 있다. 이같은 인천 암 환자의 '유턴 현상'은 왓슨이 없었다면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다. 왓슨을 반신반의하는 의료계 일부의 시각도 점차 바뀌는 추세다.

이른바 '빅(Big)4 병원' 중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를 방문해 벤치마킹할 예정인 곳이 있다. 왓슨 임상 사례에 대한 강의를 요청한 빅4 병원도 있다. 이처럼 의료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이 이미 인천에서 시작됐고,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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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정밀 의료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지난해 '4차 산업혁명과 보건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란 보고서를 통해 "의료 서비스의 경우 모니터링 데이터, 유전체 정보 등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의료 패러다임이 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병이 발생한 뒤 그에 맞는 증상을 치료하는 '치료 중심' 서비스가 질병을 조기에 진단해 치료하는 '진단 중심'으로 이행됐고, 환자 개개인에게 적합한 최적의 치료법을 제공하는 '정밀 의료'와 질병 발생을 앞서 인지하는 '예측 의료'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래픽 참조

이 보고서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에 의한 변화는 전례 없는 속도와 충격으로 진행된다"며 "이러한 기술 발전은 보건산업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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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의료를 구성하는 핵심 키워드의 하나는 '의료 데이터'다. 길병원의 왓슨은 의학 저널 290종, 의학 교과서 200종, 해외 선진 병원의 문헌 등 1만2천페이지를 학습했다. 지난 2012년부터 세계적 수준의 의료 기관인 미국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서 '레지던트'를 시작해 지금도 교육 중이다.

인공지능 암센터는 왓슨이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 때 환자의 나이, 몸무게, 전신 상태, 기존 치료 방법, 조직·혈액·유전자 검사 결과 등의 정보를 입력한다. 여기에 더해 환자의 기존 질환, 약물·치료 금기 사유, 약품 정보 등을 토대로 한 재검증을 거쳐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 방법을 구한다.

왓슨과 함께 하는 암환자 임상은 환자와 의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길병원 관계자는 "의사가 제안한 치료 방법이 왓슨의 치료법과 차이가 없을 때 환자는 의사의 말을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라며 "지난 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던져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TOP 병원' 치료의 보편화

가천대 길병원 왓슨 도입의 기대 효과 중 하나는 '암치료 민주화'다. 서울 대형 병원의 진료 서비스를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고 있다. 실제 암환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보면 대형 병원에 다니는 암환자들이 기존 검사 기록을 들고 길병원을 찾아가 왓슨의 다학제 진료를 받은 사례를 공유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병원의 명성과 의사의 권위보다 왓슨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의 상태와 그에 적합한 치료 방법을 찾길 원하는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의사를 만나는 이른바 '암 낭인'을 줄이는 효과도 왓슨 도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다.

왓슨이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를 받는다고 해서 진료비가 크게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각 분야 의사와 의료 상담을 하는 다학제 진료비만 추가될 뿐이다. 특정 조건의 환자는 1만원 미만으로 왓슨의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가천대 길병원 이언 정밀의료추진단장은 "주로 인천에 거주하는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에서 얻은 결론과 비교해보고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얻고 있다"며 "최소한 인천 지역에서만은 큰 신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슈앤스토리/1p=가천대학교, 인공지능기술원 설립
가천대학교에서 열린 인공지능 기술원 설립 협약식 모습. /가천대학교 제공

# 의료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암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 치료 분야까지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을 의사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이터 과학의 도구'로 활용한다면, 의료의 질을 높이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있다.

가천대 길병원은 지난해 12월 왓슨의 첫 임상이 이뤄진 이후 지멘스 헬스케어 한국법인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지멘스 헬시니어스가 개발한 차세대 IT 솔루션 '팀플레이'를 국내 최초로 도입하기로 했다. 같은 병원에서만 공유하던 의료기기 정보를 세계 전역으로 확대하는 서비스다.

또 가천대는 인공지능 미래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인공지능 기술원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의과대학, 컴퓨터공학과, 소프트웨어학과, 에너지IT학과 교수진이 참여해 원천기술연구단, 기업응용기술연구단, 메디컬연구단, 왓슨 컬리지 추진단을 구성했다.

이언 단장은 "앞으로 몇 년 안에 인공지능을 옆에 놓고 진료하는 게 보편적인 일이 될 것"이라며 "인공지능과 의사의 대결이 아니고, 인공지능을 잘 쓰는 의사와 그렇지 못한 의사의 대결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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