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예지몽

신승환

발행일 2018-01-29 제12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일본 제국주의의 반인륜적 폭력
경제가 전부라는 개발독재의
반민주·반인간적 겁박에 굴종
우리의 무지와 비겁함이
초래한 결과라고 회상한다면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된다


2018012801001763500084691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싶은 인간의 희망이 예지몽이란 생각을 만들어냈다. 사실 우리 삶에서 내일 일어날 일을 오늘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엄청난 사건이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이 세상은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예지몽을 꾼다면 그래서 모두가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런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계속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예지몽이 일어날 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일의 의미를 미리 감지하게 해준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 그에 따라 지금을 바꿀 수 있을 테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신경생물학 연구는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컴퓨터의 기억 장치와 같지 않다. 사람은 지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이것을 마치 한글 프로그램의 '불러오기'처럼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기억하는 현재에서 바라는 미래와 희망을 토대로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구성한다고 한다. 물론 이 말이 과거 사실을 조작하거나 있지도 않던 일을 만들어낸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기억이 있는 사실을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조합해서 회상한다는 뜻이다. 그런 과정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꿈이라 한다.

이렇게 본다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과 형태는 매우 중요하다. 그 회상을 자세히 바라보면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진정한 미래의 희망과 바람이, 또 현재를 사는 우리 삶의 중요한 동기와 터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내일 주식 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꿈은 불가능하지만, 내일 그 주식과 관련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알려주는 꿈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철학에서도 회상을 매우 중요한 진리 인식의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꿈과 회상은 현재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과거에의 해석이라고 말한다.

우리 역사는 지난 100여 년 사이의 엄청난 변화와 충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구한말의 처참한 경험과 제국주의 침략에 따른 참혹한 고통은 지금도 가시지 않았다. 최근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는 그 고통이 현재진행형임을 잘 보여준다. 그에 덧붙여 분단과 전쟁의 고통은 지금도 우리 사회를 이념 대립으로 몰아가면서 식민시대의 고통 못지않은 아픔을 주고 있다. 개발독재 시대와 민주화 과정, IMF 구제 금융 사태 등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우리의 지난 역사가 아닌가. 그러니 역사를 회상하고 해명하는 작업은 그 역사적 경험을 추체험하고 이를 회상하는 현재의 해석이 중요하며, 그 안에는 철저히 미래를 지향하는 우리의 바람이 자리한다.

최근 <택시 운전사>, <1987> 따위의 영화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이를 통해 지금 그 역사를 호명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 호명이 결코 자랑스러운 투쟁의 기억이거나 과거의 야만에 대한 눈물 어린 아픔, 또는 그 어떤 자괴감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사건을 호명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사회와 우리 삶이 가야 할 미래를 꿈꾸면서, 지금 그 역사를 새롭게 회상하게 된다. 지난 시간 겪었던 야만과 고통이 제국주의와 독재권력, 경제가 전부라는 겁박에 굴종했던 우리의 무지와 비겁함이 초래한 결과였다면, 지금 그 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불러옴으로써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될 야만과 폭력을 새롭게 회상해야 한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의 반인륜적 폭력이건, 개발독재의 반민주와 경제만능의 반인간적인 야만이건 그 어떤 것도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단이다. 그 결단에 따라 지난 역사를 회상함으로써 지금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삶과 공동체로 바꿔놓아야 한다. 그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기억하고 회상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촛불 이후에도 이 폭력과 야만이 여전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를 잘못 회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꾸면서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가, 어떤 미래를 꿈꾸면서 지금을 살고 있는가.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신승환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