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어떤 합리성인가?

신승환

발행일 2018-02-26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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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353일만에 석방
법의 합리성 정치·경제 이상 중요
이 판결은 공동체 정당성 위해
진정 숙고해야할 문제 뭔지 질문
그 대답따라 우리 미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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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2심 선고는 우리 사회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청와대발 국정 농단 사건으로 불거진 의혹은 마침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과 징역 12년 구형으로 이어졌다. 비록 1심 선고에서 징역 5년으로 감형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최고 권력이 관여된 사건인 만큼 2심 선고가 어떻게 내려질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구형과는 확연히 다르게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지면서 그는 구속 353일 만에 석방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 판결에 거세게 반발했다. 25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 판결을 내린 정형식 판사에 대한 파면 청원을 청와대에 올리기도 했다. 삼권이 분리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관의 판결을 행정부가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일을 했을 리는 없지만 그만큼 이 판결에 수긍할 수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에 비해 주류 언론들은 대체로 이 판결을 환영하거나, 또는 한국 경제를 위해 받아들여야 할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기도 했다.

평창 올림픽이 열리면서 이 사건은 그대로 묻히는 듯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성찰하고 분석해야할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고 권력의 내적 연관성이다. 정치와 경제의 최고 권력이 어떻게 결탁되었으며, 그런 내밀한 결탁을 법은 어떻게 다루는지 이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공화국을 표방하는 한국은 민주주의 정치체제이지만 이를 유지하는 것은 민의에 의해 합의된 법체제이다. 그런데 그 법이 민주공화국의 근본 토대를 위협한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법은 법체계와 그 절차의 합리성에 의해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과연 이런 외적인 타당성이 법의 전부일 수 있는가. 법적 정당성을 충족시켰다 하더라도 내적 합리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온갖 현란한 말로 판결을 정당화해도 반발이 심한 까닭은 그 내적 합리성을 수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치의 정당성은 법이 지니는 외적 타당성을 넘어 법 정신과 원리에 상응할 때 달성된다. 그런데 그것이 법관의 개별적 정의관이나 이념적 성향에 따라, 또는 조직의 논리에 따라 왜곡된다면 우리 사회의 정당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나무로 된 쇠가 있을 수 없듯이, 불의한 정의가 정의가 아니듯이 정당성을 상실한 법은 법이 아니다. 나치도 법의 이름으로 죽음의 수용소를 운영했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고심한 것은 법의 정당성일까, 정의일까 아니면 그 무엇이었을까. 그가 "가장 고민한 것은 이재용의 석방여부였다."

사회철학자 A. 네그리는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가 전 지구화된 제국이 되었다고 말한다. 제국 밖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제국은 정치와 경제가, 권력과 금권이 결합하여 통치하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이 판결은, 이를 환영하는 주류언론의 태도는 우리 사회의 현재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법이 스스로 권력과 금력에 굴복할 때 그 법의 정당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민주공화국 체제를 지켜내기 위해 권력과 금력에 종속된 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법을 독점한 이들의 자의에 따라 체제 자체가 흔들린다면 어떻게 민주공화국을, 정의와 공동선을 지켜낼 수 있을까. 최고 권력과 최고 금력이 불의하게 결탁하고 이를 부당하게 합법화할 때, 어떻게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가 가능할까. 불의한 결탁은 소외와 억압을 낳는다.

법의 합리성은 정치, 경제의 합리성 이상으로 중요하다. 개인이든 사회든, 또는 국가든 그것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합리성이 지켜져야 한다. 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내적 합리성을 필요로 하듯이 사회나 국가도 이런 합리성을 필요로 한다. 민주공화국에 타당한 법적 합리성을 어떻게 일궈내야 하는 것일까. 이 판결은 우리 삶과 공동체의 정당성을 위해 진정 숙고해야할 문제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질문한다. 그 대답에 따라 우리 미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대답과 그에 따른 실천 없이 민주공화국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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