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현실과 예술적 비전

김창수

발행일 2019-03-13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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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이 꿈꾼 '한반도 전역 비무장화'
이종구 화백이 예측한 '남북정상 백두산 산행'
하노이회담 '결렬'로 평화기반 실현안됐지만
역사는 비관론자보다 낙관주의자 편일 수도

김창수-새프로필 사진2
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지난해 6월 1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시범적으로 비무장화하는 방안이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논의되었다. 이 회담에서 또 비무장지대 내 지뢰제거, DMZ 내 최전방 감시초소 및 중화기 철수,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화 방안 등도 논의되었다. 남북의 군인들이 비무장 지대를 확대하자는 제안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면서 취해지는 조치들에서 언젠가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이 역력하다.

신동엽 시인이 50여 년 전 쓴 시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 밤은'도 그 기시감의 실체 중의 하나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무장화를 꿈꾼 시인의 노래에는 비무장지대의 총부리와 탱크가 뒤로 돌아 완충지대가 팽창되다가 마침내 한반도 전역이 평화로운 비무장지대로 바뀌는 장면이 담겨 있다. 목하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인 '군사합의서' 이행 중이다. 11월 1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연습 중단, 판문점 공동경비구역과 강원도 철원 일대의 지뢰제거작업 개시, 서해 일대의 해상완충구역 설정과 해안포사격 중지와 해안포 포문 폐쇄조치 등이 실행되었다. 시인의 상상, 취기 어린 몽상의 실현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신동엽 시인이 '술을 많이…'을 쓴 1968년은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때이다. 그해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정찰국 소속 무장공작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가 발생했다. 일주일 뒤인 1월 23일에는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Pueblo號)가 북한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북한으로 나포되고 83명의 미해군이 북한에 억류되는 사건까지 벌어져, 남북 간 그리고 미북 간의 갈등 때문에 한반도는 또 다른 열전으로 비화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되었을 때였다.

비무장지대 확대로 이 땅이 평화지대로 바뀌는 상상도는 전쟁 발발까지 상황에서 쓴 것이다. 이 당시로서는 7·4 남북공동선언과 같은 통일 관련 남북협의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때였다. 이 같은 상상은 신동엽의 일관된 소신이었던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시적 비전(vision)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엄혹한 시기에 대결의 종식과 평화 시대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불러낸 비전일 수 있다.

지난해 가을 이종구 화백의 전시회 '광장-봄이 오다'에서도 작가의 '예측'이 화제를 모았다. 그의 '봄이 왔다' 연작 중에는 남북한의 두 정상이 나란히 백두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모습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작품 두 점도 함께 전시되었다. 그런데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일행이 함께 백두산을 등반함으로써 '봄이왔다' 연작은 마치 예언처럼 현실에서 실현되었다.

이종구 화백이 예언가 일리는 없다. 그림의 구도는 지난해 4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경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으로 갔다가 남측으로 되넘어온 장면이다. 작가는 이 장면을 두 정상이 공동경비구역의 경계선 대신, 백두산과 한라산으로 표상되는 국토의 남북을 자유롭게 오고 갔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가까운 미래에 온 민족이 남북을 자유로이 왕래하게 될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도 함축된 것이다.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하노이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 교착국면을 타개하고 평화체제의 기반을 다질 것이라는 다수의 예측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비관론자들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낙관주의자의 편인지도 모른다. 우연처럼 보이는 역사의 전개에는 시작과 끝으로 연결된 필연의 법칙과 '간지(奸智)'가 함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50년 전 한반도의 평화지대를 꿈꾼 신동엽 시인의 무구한 꿈이 지금 비무장지대에서 실현되고 있듯이 말이다.

/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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