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Town 경기도 우리가 사는 집이란

[Bad Town 경기도 우리가 사는 집이란] 마천루 그늘속 '우리 집'… 어떻게 살고 있나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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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지도를 보면 경기도는 수도 서울특별시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京畿)는 서울 경(京)에 주변 또는 언저리를 의미하는 경계 기(畿)에 꼭 맞는 한자어 조합이다.

천을 짜는 베틀로 왕도(王都)를 만든다는 의미도 있지만, 실상은 나라의 중심에서 떠밀려난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산 변두리라는 의미가 강한 고장이 바로 경기도다. 제2 도시 인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안긴 곳도 경기도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인구는 산업화 시대를 지나는 동안 급속도로 증가했다. 경기도의 인구는 1950년 264만8천688명에서 2021년 8월 말 현재 1천353만519명으로 70여년 만에 511% 늘었다. 인구 증가와 함께 교통의 발달은 신도시 건설로 이어져 경기도에 '베드(Bed) 타운'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신도시 만능주의 위주의 양적 공급 정책은 기존 시가지의 슬럼화를 부추겼다.

신도시에 집을 산(buy) 사람과 못 산 사람의 개념은 사는 사람(rich)과 못사는 사람(poor)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신규 택지에서 쾌적한 주거 환경을 누리는 사람과 구도심의 낡은 집에 사는 사람의 부의 격차는 상대적 우월감과 박탈감을 동시에 안겼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도는 베드(Bed) 타운이 아니라 '배드(Bad) 타운'이다. 경인일보 기획취재팀은 배드 타운 경기도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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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안양동 노후 아파트 - 재개발에 밀려나는 세입자 비애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미도아파트 A동 1층엔 소문난 부부가 산다.

안순옥(66)씨는 30년 전 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남편 정영교(67)씨를 24시간 내내 간병하며 지낸다. 남편은 안씨를 8년 전 집을 나가 연락이 닿지 않는 아들의 이름으로 부른다.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안씨는 남편의 부름에 4번이나 간병으로 지치고 병든 몸을 일으켜 남편이 누워 있는 안방으로 향했다.

안씨가 사는 집은 1982년 11월 사용승인을 받은 48가구 규모의 공동주택이다. 안양동 명학마을의 유일무이한 구축 아파트인 미도아파트는 40년 세월을 겨우 견뎌냈다. 

'미니 재건축' 앞둔 40년된 명학마을 유일한 구축
여름엔 하수관 막혀 거실에 물이 차고 장판도 들떠
외벽 곳곳에 벗겨진 도장과 녹슨 출입문, 언제부터 쌓였는지 몰라 복도에 덧씌워진 먼지가 강산이 4번 바뀌는 동안 그 자리를 지킨 '서민 아파트'를 더 낡아 보이게 했다.

이곳은 '미니 재건축'으로 불리는 가로주택정비사업 인가를 받았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하지만 안씨 부부에게 정비 사업은 전혀 달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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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명학마을 미도아파트 세입자 안순옥씨가 거실 겸 부엌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30년 전 사고로 몸져누운 남편의 약통과 세간살이가 작은 책상에 가지런히 정리돼있다. /기획취재팀

안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전세 보증금 8천500만원을 지원받아 6년째 살고 있는 세입자이기 때문이다. 소유주는 분담금을 내고 새 아파트를 얻을 수 있다. 세입자는 이사 비용 등만 받고 살던 집에서 나와야 한다.

방 2개에 화장실 1개, 거실 겸 부엌과 세탁실, 냉장고와 가재도구가 쌓여 있는 다용도실이 이 부부의 보금자리다. 비가 많이 온 지난해 여름엔 하수관이 막혀 거실까지 물이 찼다.

이웃들의 도움으로 겨우 복구했지만, 거실 장판이 들떠 임시 방편으로 3M 불투명 박스 테이프로 땜질을 했다. 쌀은 동사무소에서 한 달에 무상 지급하는 10㎏을 쪼개고 쪼개 먹고, 이마저 모자랄 때는 국수를 끓여 허기를 달랬다.

안씨는 "나라에서 해준 집이다. 이 보증금으로는 남편이 다니는 안양샘병원 근처에 1층 집을 구할 수가 없다"며 "내 집이 아니더라도 죽을 때까지 살 집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세입자 안순옥씨, 반신불수 남편과 30년 살았지만
이사비만 받고 떠나야 "죽을 때까지 살집 있었으면"
안씨의 원대한 소원은 '내 살 집' 마련이다. 단 한 번도 이 부부는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더 바라지도 않는다. 살 집만 있으면 원이 없다고 안씨는 누차 얘기했다.

그러나 쉽지 않아 보인다. 통계가 증명한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 자가점유비율(2019년 최신 통계)을 보면 경기도의 주택 자가 보유율은 53.5%로 전국 평균인 58.0%를 밑돈다. 전세는 19.2%로 26.0%인 서울시 다음으로 높다. 인천시는 경기도보다 사정이 낫다. 자가 보유율은 60.2%, 전세는 15.6%다.

남편 정영교씨는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출신으로 안씨와 중매 결혼을 하고 9년 만인 1991년, 1기 신도시인 군포 산본신도시 공동주택 공사 현장에서 목수로 일을 하다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해 30년째 누워만 있다. 남의 집 짓는 일을 하다 몸져누운 정씨는 결국 평생 집 한 번 갖지 못할 처지다.

현재 살고 있는 미도아파트 1층은 이달 전세 보증금 8천500만원에 2023년 8월까지 재계약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 본격화하면 이 부부는 보금자리를 찾아 또 거리를 떠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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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금광2동 반지하 주택 - '기생충' 영화처럼 빗물이 주르륵

반지하 주택은 한국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반지하 주택의 수는 경기도에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던 와중에 함께 증가했다. 1970~1980년대는 저소득층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주택에 지하층을 설치하는 걸 적극 권장했다고 전해진다.

반지하 주택은 채광과 환기에 취약하고, 침수 위험도 높다. 영화 '기생충'이 적나라하게 그린 모습 그대로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도내 반지하 주택의 수는 지난해 기준 9만912개다. 이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영화 같은 현실을 매일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반지하' 매입한 김씨
리모델링 됐지만 냄새·침수 곤혹… 수차례 보수
성남시 금광2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 2년 전 입주한 김모(45)씨는 '내 집 마련'의 꿈을 반지하 주택으로 이뤘다. 부족한 돈과 부모님과 함께 살 충분한 크기, 전·월세를 오가는 불안정한 주거 환경 등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매입한 이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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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금광2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 사는 노인이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다. 볕이 잘 들지 않는 방은 한낮임에도 형광등이 밝게 켜져 있었다. /기획취재팀

김씨는 "여기서 다른 데로 이사를 가는 건 스스로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청약이나 이런 건 어차피 가능성이 없는 점수이기 때문에 이미 포기했다"고 말했다.

반지하이긴 하나 깨끗하게 리모델링 된 집이라, 입주 초기에는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냄새와 침수 문제로 곤혹을 치렀다고 했다. 비가 오면 베란다에 물이 새 보수 공사만 이미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누수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해 비만 오면 여전히 물이 샌다. 이 문제로 세탁기는 제자릴 찾지 못하고 방 한편에 연결해둔 상태다. 침대와 세탁기의 어색한 동거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씨는 "나는 참을 수 있겠는데, 부모님이 냄새에 민감하시니까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보육교사 함씨도 채광·환기·벌레 문제로 시달려
"내 집 마련 가능할까… 신도시는 바라지도 않아"
보육교사인 함모(31)씨도 2년 전부터 금광2동의 한 지하방을 얻어 살고 있다. 누워 잠을 잘 수 있는 정도의 작은 방과 화장실, 조그마한 부엌이 그만의 독립적인 공간이다. 김씨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처음에는 반지하도 '살만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반지하의 고질적인 문제인 채광과 환기, 벌레가 그를 곧 괴롭히기 시작했다. 함씨는 "빛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성향인데, 대낮에도 깜깜해서 우울함이 생긴다"며 "여름이 되면 습해져서 바퀴벌레나 돈벌레, 꼽등이가 자주 나온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당장 이사를 나가기엔 녹록지 않은 형편이다. 직업 특성상 대출이 충분하게 나오지 않을뿐더러 당장 주거 비용이 늘어나는 건 현재로선 부담스럽다고 한다.

함씨는 "나름 반지하이긴 한데, 다시는 지하인 집에 못 살 거 같다"면서도 "내 집 마련 계획은 있지만 그게 가능하다고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신도시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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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김대현차장, 손성배, 배재흥기자
사진 : 김금보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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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배재흥·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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