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Town 경기도 우리가 사는 집이란

[Bad Town 경기도 우리가 사는 집이란] 마천루 그늘속 '우리 집'… 어떻게 살고 있나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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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대학가 하숙집·원룸 - 13㎡ 공간에 갇힌 청춘들의 체념

취업준비생 A(29)씨는 수원의 한 대학가 앞에서 하숙을 하고 있다. 13㎡(4평) 크기의 방 한 칸에 살며 30만원씩 월세를 낸다. 하숙집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으면 15만원을 추가로 낸다. 김씨의 원룸살이는 그의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취업시장에서 연거푸 쓴맛을 본 탓이다.

'큰 욕심 없이 혼자 살기는 괜찮다', 그가 3년간 1인 가구의 최저주거기준인 총면적 14㎡에 미달한 집에 살며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욕심이 없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의미였다.  

월세 30만원에 하숙비 15만원… 쓰라린 취업 도전
욕심 없이 혼자 살기 괜찮지만 남에 보이는게 민망
그는 집을 남들에게 내보이는 게 민망하다고 했다. 좁은 집이 볼품없어 보일까봐 스스로 위축되는 느낌도 받고 있다. 지금보다 큰 평수로 이사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게 그의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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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의 한 원룸에 살고 있는 청년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침대와 책상, 잡동사니를 올려놓을 선반 등이 들어선 그의 방엔 남는 공간이 얼마 없다. /기획취재팀

A씨는 "(제주에서) 육지로 대학을 보냈으니 최소한 삼성전자나 한국전력 등 좋은 기업에 취업하길 바라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만 잘 가면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취업을 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집값이 비싸더라도 옛날에는 열심히 하면 대출 끼고 집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조차 안 든다"며 "희망이 있어야 열심히라도 할텐데 동기부여가 떨어진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이젠 1인 가구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4가구 중 1가구가 A씨처럼 1인 가구다. 혼자 사는 사람이 늘면서 주거 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요즘은 1인 가구를 겨냥한 소규모 주택 공급이 활발해졌다. 주거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원룸은 1인 가구가 주로 사는 대표적인 주거 형태다.  
전세자금 대출 받아 '둥지'… 교사 임용 시험 준비
"재산까지 바라지 않아… 여가생활할 수 있는 곳에"
하지만 1인 가구에게 원룸은 '종착역'이 아니다. 더 나은 집에 살기 위해 거쳐가는 경유역에 가깝다. 원룸이라는 경유역을 지나고 있는 청년들은 이미 주거 문제에 상당 부분 단념한 듯한 모습이었다.

수원에서 교사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B(26)씨는 LH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23㎡(7평) 원룸에 살고 있다. 올해를 초수라고 생각하고, 2년 뒤까지 교사 임용 시험에 도전해 볼 계획이다.

그는 집으로 '재산'을 증식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정확한 표현은 '1도 희망이 없다'였다. B씨는 "재산까진 바라지 않는다. 단순히 잠만 자기 보다는 휴식도 취할 수 있고, 휴일에는 근처에서 여가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집이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원룸에 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한 단어는 '체념'이었다. 

 

수원 인계동 고시원 - 도심 한복판… 지친 몸 누울 곳은 '캡슐방'

매일 밤 전국에서 모인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수원시 팔달구 '인계박스'. 무비사거리를 지나 KBS 드라마센터 쪽으로 걷다 보면 닭발집 건물 4층에 고시원이 있다.

수원시 도시재생과 주거복지팀을 통해 이 고시원에 4년째 살고 있는 이영진(59·가명)씨를 만났다. 이씨는 자기 본명이 진짜 이름인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군지 모른다.  

용접 기술 공사판 전전… 결혼생활 오래가지 못해
역전 여인숙 '달방' 살다 지인들에 손 내밀어 옮겨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에 있던 보육원에서 자라 용접 기술을 배워 공사판을 전전했다. 2000년 결혼해 슬하에 아들, 딸을 뒀지만 행복한 가정생활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13년 전 이혼했다.

수원에는 4년 전에 왔다. 공사장에서 일을 할 때 만난 지인들이 여럿 있다는 이유가 그의 발길을 수원으로 돌렸다. 처음엔 역전 여인숙에서 달방을 살았다. 달방은 숙박시설에 한 달 치 숙박비를 미리 내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지인들에게 1만~2만원씩 돈을 얻어다 쓰면서 삶을 이어온 그의 보금자리는 고시원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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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역의 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는 60대 남성이 방 모서리에 서 있다. 택배 상자 만한 냉장고와 텔레비전, 선풍기가 그의 살림 전부다. 끼니는 오뚜기 3분 요리와 무료급식소에서 때운다. /기획취재팀

고시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 공용 주방과 빨래방을 지나 호실 출입문 5~6개를 지나면 이씨의 방이 보인다. 국산 엑사비오(XAVVIO) 저가형 17인치 텔레비전과 작은 냉장고, 쿠쿠 전기밥솥, 월 2만4천200원 선불 스마트폰과 충전기가 그의 전기용품 전부다.

이씨의 침대는 슈퍼싱글 사이즈로 170㎝에 85㎏인 그의 크기와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워 보였고, 고시 공부를 할 고학생을 위해 고시원장이 들여놓은 책상 위엔 담배 몇 갑과 컵 커피를 재활용한 재떨이, 식용유와 초고추장·쌈장·간장이 규칙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인계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추석을 맞아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나눠 준 신라면 한 박스와 지인이 당뇨에 좋다며 가져다 준 비트즙 박스가 그나마 그의 세간살이 가지 수를 늘렸다.  
선불 스마트폰·충전기… 책상에 널브러져있는 살림
매입임대 선정후 계약금 30만원이 없어 놓치기도
이씨의 방세는 한 달에 30만원이다. 화장실이 안에 있고 바깥으로 쪽 창문이 나 있어서 주거 환경이 아주 열악한 것은 아니지만, 캡슐 만한 고시원 방은 숨막힌다.

이씨처럼 집이 아닌 곳, 법정 용어로 주택 이외의 거처에 사는 경기도민의 비율 역시 전국 평균을 웃돈다. 지난해 전국 광역지자체별 주택 유형 비율에 따르면 경기도의 주택 이외의 거처 비율은 5.5%로 서울시 6.9%에 이어 두 번째였다. 전국 평균은 4.8%다. 주택 이외의 거처는 비닐하우스, 컨테이너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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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지난달 동사무소를 통해 LH 매입임대주택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팔달구 인계동·세류동·지동·매산로2가, 영통구 매탄동·망포동, 권선구 구운동, 장안구 조원동·송죽동의 다가구주택이나 도시형생활주택 34곳 중 한 곳을 정하면 LH에서 임대료를 지원해주는 제도다.

계약금 30만원이 없어 지난 8월 매입임대주택은 놓치고 말았다. 그의 전 재산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25만원과 수급비 통장에 10만원, 일반 예금 계좌에 1만1천원 뿐이다.

이씨는 "고시원 방세 30만원 중에 24만원을 정부에서 지원해주고, 한 달에 50만원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 만으로는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힘들다"며 "전입 신고를 제대로 하고 살 수 있는 집에 살면서 고시원 밥에 중국산 김치 말고 반찬을 먹고 싶다"고 했다. 

 

과천 '꿀벌마을' 비닐하우스 - 경마장 앞 군집… 3대째 '억척스러운 삶'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렛츠런파크의 옛 이름은 과천경마장이다. 렛츠런파크 과천의 주출입구 건너편엔 컨테이너들이 놓여 있고, 그 주변으로 비닐하우스가 군집해있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하얀 벌집처럼 생겼다.

비닐하우스 마을 주민들은 15년 전 마을 이름을 꿀벌마을이라고 지었다. 꿀벌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라는 의미다. 행정상 명칭은 아니지만 과천동 7통을 시 공무원들도 세월이 흐르자 꿀벌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과 함께 수도권에 남은 유이(唯二)한 비닐하우스 빈민촌이다.

 

과천시 과천동 191의 지목은 밭(田)이고, 소유자는 대한민국이다. 여기에 사람이 산다.

문인순(43)씨는 부모님과 함께 서울대공원 자리의 슬레이트 지붕 집에 살다 밀려나 경마장 자리인 광창마을에 살다 또 떠밀려 1985년부터 이 자리에 살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만난 잘 생긴 한 살 연상 오빠와 결혼해 현재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까지 비닐하우스 집에서 살고 있으니 3대째 꿀벌마을을 지키는 꿀벌 가족이다.

비닐하우스
과천시 과천동 7통은 비닐하우스에 사는 꿀벌들이 사는 '꿀벌마을'이다. 언제 어떻게 지어진 지 알 수 없는 비닐하우스 집 앞에 어린이용, 성인용 자전거가 놓여 있는 모습이 이질적이다. /기획취재팀

비닐하우스에 살면 공간의 자유로움이 있다는 이점은 있다. 마치 글램핑(화려함을 의미하는 glamorous와 camping의 합성어)장에서 장기 투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발만 바깥으로 내밀면 하늘이 보이는 낭만 외 모든 실생활은 불편하다.

일단 상하수도관이 전혀 없다. 생활용수는 지하수로 충당하고 생수를 사 먹는다. 화장실은 땅을 파서 간이로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정화조 차량을 불러 치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지은 비닐하우스는 속칭 '베니다' 합판을 덧대 내구성을 강화하다 보니 세월이 흐르면서 썩어 나무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최근에 지은 비닐하우스 집은 샌드위치 패널로 가벽을 세워 그나마 낫다.

주거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지자체로부터 주거 지원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아이들이 뛰놀 놀이터,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전혀 없어 자치회에서 기초생활수급자까지 월 1만원 회비를 걷어 마을자치회관을 유지하며 '붕붕도서관'이라고 명명한 공부방을 운영한다.  

수천만원 이행강제금 '불법 순환 고리' 탈출 소망
과거 강제철거 예삿일 신발도 밖에 내놓지 못해
또 밀려나고… 서울 구룡마을과 함께 남은 빈민촌
상하수도 없고 간이화장실… 주거지원 혜택 제외
토지주가 있는 땅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사는 사람들은 토지사용료(속칭 도지세)를 1년에 한 번 낸다. 마을 통장 이응경씨는 이웃 2가구와 함께 토지주에게 각각 100만원씩 연 300만원을 내고 산다. 이씨는 가구점을 운영하다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1990년에 마을로 들어왔다.

이씨는 "망해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마을"이라며 "친인척들도 망해 들어와서 옆 빈 땅에 비닐하우스 짓고 살다 보니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꿀벌마을 주민들은 '불법의 순환 고리'에서 탈출하고 싶다. 가정용 전기가 안 들어와 농업용 전기를 끌어다 쓰다 누진세 폭탄을 맞고 수백만원을 분담하기 일쑤고 반기 별로 나오는 이행강제금이 쌓여 수천만원이 됐다.

과거엔 강제철거가 예삿일이어서 주민들은 비닐하우스 안에 살아도 신발을 밖에 내놓지 못했고, 빨래를 햇볕에 말리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한다.

꿀벌마을은 문재인 정부의 '야심작' 3기 신도시 과천 과천공공주택지구(168만6천888㎡) 예정지다. 3기 신도시 개발에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싶지 않아서 비닐하우스 집을 택한 빈민들의 주거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은 없다.

문씨는 "불법이 불법을 낳고 주민들을 사슬로 옭아맸다. 예기치 않게 나라에서 돈을 가져가니까 비닐하우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며 "나이 많은 수급자 어르신 60명이라도 우선 주거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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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김대현차장, 손성배, 배재흥기자
사진 : 김금보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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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배재흥·손성배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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