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도시는 없다

[통큰기사-아이를 위한 도시는 없다] 엄마는 어쩌다 아들을 찔렀나

극심한 생활고, 비정해진 부모, 무관심한 사회… 비극의 공식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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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관인 김철민(가명) 형사는 서윤아(가명·32)씨 가족의 비극이 벌어진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숱한 죽음을 눈앞에서 본 그에게도 견디기 힘든 사건 현장이 있다. 아이가 피해자인 경우다.

신고를 받고 사건 현장에 도착한 김 형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모텔 객실 침대에 바르게 누워있던 서씨의 6살 아들이었다. 아이의 창백한 얼굴, 그는 아이의 숨이 이미 멎은 줄만 알았다. 객실 화장실에는 아이의 가슴에 이어 자기 몸을 찌른 서씨가 혼절해 있었다.



타일 바닥에는 범행에 쓰인 날 길이 12㎝ 과도가 떨어져 있었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서씨의 딸은 강한 정신적 충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연거푸 흘렸다.

당시의 참혹한 광경을 하나하나 떠올리던 김 형사는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며 팔뚝을 쓸어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아주대학교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에서 응급 수술을 받은 서씨의 아들은 꺼져가던 생명의 불씨를 되살렸다. 서씨 역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 평범했던 가족에게 닥친 비극


사건 조사를 시작한 오산경찰서 형사들은 범행이 발생한 2월28일 오후 2시45분 이전부터 시간을 거꾸로 돌렸다. 전날 서씨와 남매는 서울시 종로구에서 전철을 타고 1호선 오산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왔다.

모텔에 입실한 뒤 이 가족은 맞은편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주전부리를 샀다. 이러한 장면은 건물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CCTV에는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 찍혔다. 아이들이 엄마를 무서워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이 가족이 예정한 마지막 여행 출발 이틀 전 친정집 근처 상점에서 구입했다. 서씨는 남편과 경제적인 문제로 사이가 나빠진 뒤 본래 부부의 거주지였던 수원시를 떠나 서울 친정집에 머물렀다. 부모와 자매들 간 갈등을 겪곤 원룸을 따로 얻어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범행 도구를 미리 준비한 정황에 비춰 봤을 때, 서씨의 범행은 우발적으로 빚어진 참극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서씨가 모든 걸 포기하고 자신과 어린 아들의 가슴에 낸 상처였다.

엄마 서씨, 경제적 문제로 남편과 별거
원룸 생활… 빚 갚으며 힘겹게 남매 양육
형편 어려웠지만… 학대전과는 없어


서씨는 남편을 20대 초반에 만났다. 연년생으로 딸과 아들을 낳아 함께 양육하다 3년 전부터 둘 사이가 틀어졌다. 별거 중에도 부부는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물을 정도의 관계는 유지했다고 한다.

이들이 별거를 하게 된 이유는 돈 문제 때문이었다. 젊은 부부가 사채 빚을 갚으며 두 아이를 키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씨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학습지 교사, 소일거리 등을 하며 월 150만~180만원을 받아 별거 중에 남매를 양육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당시 서씨 수중엔 카드만 있었을 뿐 현금은 한 푼도 없었다.

친정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서씨 가족의 생활고는 점점 심각해졌다. 막판에는 월세를 내지 못해 살던 원룸에서 쫓겨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서씨는 평소 아이들을 굶기거나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풀지 않았다.

김 형사는 "부부 모두 아동학대 전과는 없다. 남매가 밥을 굶은 적도 없었다"며 "남매 엄마가 휴대전화 숙박 앱으로 예약을 하고 오산으로 온 정황으로 봤을 때, 애초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온 것으로 보였다. 조사를 받을 당시에 죄책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육아부담 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해
법률혼 유지 탓 한모부가정 혜택도 제외
극단선택 결심 서씨, 아이들과 가족여행


안타까운 점은 서씨가 육아 부담을 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다.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법률혼 관계는 유지했기에 한부모 가정에 주어지는 여러 혜택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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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서윤아(가명•32)씨가 취재진에게 보낸 편지. 서씨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행동으로 상처를 받았을 가족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전했다. /기획취재팀


# 가족은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서씨는 계획을 전부 실행할 만큼 치밀하지도, 모질지도 못했다. 서씨의 숨바꼭질 놀이의 피해자는 아들뿐이었다. 딸에겐 침대 위에서 TV를 보고 있으라고 한 뒤 화장실로 아들을 데려와 샤워 가운에 붙은 허리끈으로 눈을 가리고 흉기를 들었다.

경찰 조사에서 서씨는 애당초 딸만 이 세상에 남겨둘 계획은 아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심한 가해를 하고만 엄마가 죄책감에 젖어든 나머지 딸은 그대로 두고 자신의 몸에 칼을 겨눴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김 형사는 "아들을 해하고 난 뒤에 딸까지 어떻게 할 정신이 없지 않았을까 싶다. 멘털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던 걸로 보인다"고 했다.

서씨의 범행은 아이러니하게 그의 가족을 다시 모이게 만들었다. 서씨는 전치 4주 진단을 받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주치의 안내에 따라 10일 만에 퇴원했다. 서씨의 남편은 아들과 아내가 있는 병원을 오가며 간병에 매달렸고, 먼저 퇴원한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걱정해 본래 가족이 모여 살던 수원 자택으로 데려갔다.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퇴원해 남편 집에 머무르고 있던 서씨를 붙잡아 검찰에 송치했다. 서씨가 유치장에 있던 사흘 간 경찰은 병원에 두 번이나 동행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어서 의료진이 상주하는 구치소행(검찰 송치)을 서둘렀다는 전언이다.

서씨의 자녀들은 현재 외조부모가 직접 보호하며 키우고 있다. 경찰은 애초에 서씨 남매가 받은 충격을 염두에 두고 복지센터 등을 통해 이들이 지낼 거처를 알아보았으나 남매는 외조부모와 지내길 희망했다고 한다.

아들 해 하고 자해… 죄책감에 딸은 무사
아이들, 외조부모와 함께 지내길 희망
피해자인 남편도 법정서 아내 선처 호소


지난 3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서씨는 수원지법 형사13부가 맡은 1차 공판이 열리기 2주 전 본인이 직접 작성한 의견서와 정상관계진술서를 재판부에 냈다. 정상관계진술서는 피고인의 구체적인 사정과 생활환경 등을 담아 법원에 기소된 죄를 저지르게 된 경위를 기록하는 문서다.

서씨는 1심 선고 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했다. 서씨 사건의 1심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은 삶이 힘들었다고 했다. 부부가 경제적으로 힘들게 아이들을 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거기다가 친정에서의 불화까지 겹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원룸에 살다 결국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법정에서 서씨의 남편도 재판부에 용서를 구했다. 엄밀히 따지면 서씨 남편은 피해자인 아들과 함께 피고인이 된 아내의 반대쪽에 선 피해당사자였지만, 본인 역시 아내의 범행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느낀 것으로 보인다.

서씨 남편은 "아내의 범행에 대해 법원의 선처를 요구한다"며 "다시 우리 부부가 남매를 올바르게 양육할 의사가 있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법적 책임을 다한 어느 시점에 서씨는 다시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서씨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들은 심장 안에 비정상적인 혈액 주머니(혈심낭)가 생겨 죽을 고비를 넘겼고, 딸은 말을 잃었다.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받은 아이들과 서씨의 관계가 범행 이전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서씨의 충분한 반성과 노력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의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치유하고, 아이들이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국가와 사회의 역할도 필요해 보인다.

서씨, 출소후 자녀와 관계회복은 불투명
구치소 수감중 취재진에 보내온 편지
"가족들에게 상처 줘서 죄송한 마음…"


취재진은 현재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서씨에게 사건과 관련한 질문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며칠 뒤 서씨는 취재진에게 짤막한 답장을 보내왔다.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기자님께 편지가 올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편지를 4~5번 읽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결론은 모든 이야기를 들려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사연은 익명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상처 줘서 죄송한 마음을 담아 사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키우고 계신 부모님들께도 후회하는 일 안 생기도록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2021년 12월13일."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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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손성배, 배재흥기자
사진 : 김금보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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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흥·손성배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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