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마약퇴치의 날 특집

[통큰기획-세계 마약퇴치의 날 특집] 재활센터서 만난 중독자들의 경고

인생 좀먹는 위험한 선택… "일상 사라지고 후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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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 이동재(23)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씨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 3월 다르크에 입소했다. 2022.6.22 /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

"죽도록 후회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약이 하고 싶어요." 시작은 쉬웠다. 인터넷 검색, 병원 처방, 친구 권유로 손쉽게 접한 마약은 순식간에 일상을 잠식해갔다.

남양주시에 위치한 약물중독재활센터 '경기도다르크'에서 만난 중독자 4명은 "누구나 마약에 중독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에서 중독자라는 낙인만을 찍을 게 아니라 치료에 힘써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함께였다. → 표·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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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 권유, 병원 처방, 인터넷 검색… 손쉽게 접한 마약




김은지(22)씨는 처음 약을 접한 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는 "너무 충격적이라 잊히지 않는다"며 고개를 숙였다.

촉망받는 래퍼이자 방송에도 출연했던 김씨는 지난 2019년 12월17일, 음악작업실에서 처음 마약을 접했다. 곡 작업을 하자는 동료의 제안에 찾아간 작업실에선 모두가 빨대를 입에 물고 있었다.

그들은 "이게 뭐냐"는 물음에 대답도 없이 김씨의 입에 빨대를 물렸고, 곧 정신이 아득해졌다. 김씨는 "연기를 마시면서 '이제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들이마신 약이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해당 마약은 진통효과가 강력해 말기암 환자의 진통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친구 권유·인터넷 통해 손쉽게 빠져
환상은 잠시 약에서 깨면 고통·악몽


이동재(23)씨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로 약을 시작했다. 불면증 치료제를 다량으로 처방받아 친구들과 투약했다. 이씨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이후 서서히 중독성이 센 약으로 나아갔다. 성인이 돼서 호스트바에서 일하며 손님들에게 마약을 팔기도 했다.

이씨는 "인터넷에서 마약을 구입해 클럽에서 비싸게 팔았다"며 "딜러가 노숙자, 행방불명자의 대포 명의를 준다. 그걸로 무통장입금을 하면 비트코인 대행업체로 가고, 업체에서 우회 송금하면 딜러에게 간다. 마약을 전달하는 드라퍼들이 따로 있어 딜러는 절대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A(30)씨와 김모(20대)씨는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댔다. 약이 잠시나마 괴로움을 잊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마약을 뜻하는 은어들을 구글링하자 수많은 판매상들과 연결됐다. 마약을 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0분이었다.

A씨는 "인터넷을 잘 못 다루는 중장년층도 구글링으로 마약을 구하는 시대다. 트위터, 텔레그램 등 온라인을 통해 마약을 구할 방법은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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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잠식한 마약


손쉽게 구한 마약은 이들의 일상을 서서히, 그러나 완전히 파괴해갔다. 쾌락도 잠시 온몸을 휘감는 고통이 시작됐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곁을 떠났다. 중독자들은 "마약을 시작한 후 모든 순간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김은지씨는 지난 2019년 마약을 시작한 이후 3년간 중독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약에 취해 있을 때 가득했던 행복감과 편안함은 약에서 깨자 고통으로 변했다. 마비돼있던 몸이 풀리며 근육통, 오한, 환청이 은지씨를 괴롭혔다.

그는 "몸이 벌벌 떨리고 가슴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발작이 일어나 병원에 실려간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투약량이 점점 늘면서 59㎏이었던 몸무게는 40㎏까지 줄었다. 눈앞에서 친구를 잃은 적도 있었다.

김씨는 "마약이 너무 세니 심정지가 온다. 자다 무호흡 증상이 오는데 그때 못 깨면 그대로 죽는 것"이라며 "함께 약을 하던 몇 명의 친구들이 제 눈앞에서 그렇게 죽었다"고 했다.

심정지·무호흡에 눈앞 친구 잃기도
마약 범죄 가장 큰 피해자는 '가족'


이동재씨 역시 마약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하루 0.3~0.5g의 마약을 투약하는 중독자가 됐다. 하루에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마약을 투약했다. 70㎏이었던 몸무게는 48㎏까지 줄었고, 어떤 일을 해도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다.

네 번의 심정지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길을 걸어 다니면 사람들이 쓰러지는 환각이 보였고, 집에 있으면 환청이 들렸다.

그는 "제가 중독자라고 생각도 안 했다. 이 좋은 걸 왜 끊어야 하나, 평생 하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지금 인터뷰 끝나고 마약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볼 정도로 중독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씨의 팔에는 주사 자국이 가득했다.

■ 끊기로 결심한 순간


심각하게 중독됐다고 느낀 순간,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김은지씨는 "24시간 이불을 덮어쓰고 덜덜 떨며 울었다. 나는 어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데 마약을 하니 내가 죽어가는 느낌이었다"며 "하나님이 있다면 구원받고 싶었고, 거짓말처럼 끊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우울증을 견디기 위해 마약을 시작한 김모(20대)씨는 마약에 대한 환상이 깨진 순간 단약을 결심했다. 우울증은 일시적으로 나아지는 듯했지만 점점 악화됐고, 곧 마약이 현실을 바꿔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씨는 "약물을 하고도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을 갖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착각했었다. 마약이 너무 좋아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며 "가족, 건강, 명예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마약의 본 모습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약에 중독됐던 1년간 '끔찍한 악몽'을 꾼 것 같았다고 했다.

중독 벗어나려면 '치료공동체' 중요
범죄자 낙인보다 회복시스템 시급


이동재씨는 부모님을 위해 단약을 결심하게 됐다. 그는 마약범죄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가족이라고 했다.

이씨는 "약에 취해 부모님 얼굴에 침을 뱉고 집 창문도 깼었다. 항상 후회하고 있다"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마약범죄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제일 피해 보는 사람들은 나를 생각하는 가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독에서 벗어나고 난 뒤 부모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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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부터 마약을 시작한 김은지(22)씨는 지난해 8월 단약에 성공했다. 김씨는 "제가 변화하며 가족 모두가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고 말했다. 2022.6.22 /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

■ "마약 벗어날 길은 치료공동체뿐"


중독자들은 마약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료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잘못된 선택을 했던 자신들의 잘못이 크지만, 사회도 중독자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을 게 아니라 회복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A씨는 "멀쩡하고 똑똑했던 사람도 약으로 망가진다. 매스컴에서 재벌, 연예인만 마약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독자 중에는 힘든 분들도 많다"며 "갈수록 마약을 구하기 쉬워지고, 그만큼 빨리 퍼지고 있지만 그에 비해 회복에 대해 알려진 것이 너무 없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은지씨 역시 "처벌은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마약사범을 사회에서 내쫓을 게 아니라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이든 시스템이든 마련해야 한다"며 "판매상들은 강하게 처벌받아야 한다고 쳐도, 중독자들은 재활치료 시스템이 있어야 다시 사회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처벌 당연하지만 사회복귀 도와야"
"손대는 순간 나를 버린다" 당부도


이들은 마약의 유혹에 넘어가 새롭게 손을 대려는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씨는 "마약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을 버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신념도, 가치관도, 자존심도 없다. 나는 없어지고 마약만 남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약에서 벗어나니 약 없이 숨 쉬고 잔다는 것,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스스로 밥을 해먹는다는 것이 모두 행복하다"며 "마약을 하면 영혼이 죽는다"고 말했다.

/이자현기자 naturel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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