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 일상의 공포가 되다·(中)] 전문가들의 진단은

'참는 사람이 바보' 인식 팽배… '甲' 되는 순간 열등감 폭발
입력 2023-08-09 20:32 수정 2023-08-13 14:05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8-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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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과 공무원 등을 향한 민원인들의 욕설 및 폭언, 폭력행위 등 악성 민원 피해가 늘어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사진은 8일 오전 경기도청 열린민원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2023.8.8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를 뒤흔드는 악성 민원인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원인을 찾았다. 급성장한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차츰 쌓여왔던 열등감이 민원인으로서 '갑'이 되는 순간 마구잡이로 분출된다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와 재난이 지속되면서 사회적인 불안감과 긴장감이 높아짐에 따라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참는 사람은 바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어린시절 교육 받을 때부터 '경쟁'
타인 신뢰 낮고 이겨야 하는 심리
무시하거나 차별·비난·혐오 고착

경제적 불평등 심화, 서열화 생겨
속상함·억울함 다른 곳에 푸는셈
'남이 하니까'… 사회 전체의 방임

 

 

■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교 교수



= 한국 사회는 경쟁 사회이면서 부·권력·명예 등을 얻을 수 있는 문이 좁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교육을 받을 때부터 경쟁에 내몰린다. 인격이 형성되는 성장기에 목표를 달성하려면 남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다보니 전반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이기지 못하면 피해를 본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렇다보니 민원을 제기할 때 보다 강하게 하거나 악성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심한 경우도 벌어지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모두가 자기 자신을 잘 표현하는 '표현적 주체'가 된 점도 한 몫을 한다. 먼저 표현, 주장하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으로 여긴다.

■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 문화가 약화돼 타인을 무시하거나 차별, 비난하고 혐오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심리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역시 구조적 이유다.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서열화가 생겼다. 그래서 자신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을 무시하는 풍조가 생겼다.

■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 경제 발전으로 물질주의가 확산되고 빈부 격차가 커졌다. 이런 가운데 SNS 사회가 되면서 타인과 비교하는 경향이 심화돼 스스로 억울하다고 여기는 심리가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을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민원인·소비자가 되는 순간 갑으로 바뀌면서 을의 위치에서 느꼈던 분노, 억울함을 마구잡이로 분출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월등해진데 대한 뿌듯함을 느낀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마치 당연한 것처럼,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방식으로 확산되고 서슴 없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이전엔 '참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이젠 '참는 사람이 바보다. 약자가 되면 당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진 점도 영향을 미친다. '권력이나 돈이면 다 된다'는 인식의 반작용 효과라고도 볼 수 있다.

■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 악성 민원 제기엔 열등감의 폭발, 피해를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다. 본인이 가진 속상함이나 억울함, 분함을 다른 곳에 가서 푸는 셈이다. 이런 공격성을 약한 사람, 거절하지 못한 사람에게 투사한다.

일부 악성 민원인 중엔 관심을 받기 위해 공격 대상을 물색하고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경우도 있다.

예측 불가능한 재난 상황 등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기저 불안이 커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불안감이 공격성을 표출하게끔 하고 악성 민원 등 범죄 행위에 연루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황의갑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 여러 개인적 사안, 사회·정치적 이슈 등으로 사회적 긴장감이 높아진 점이 과다하거나 왜곡해 표출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를 잡아주기 위한 사회적 통제 시스템이 급격하게 완화된 측면이 있는데, 이런 점이 더해져 마치 하나의 문화처럼 인식되고 그렇게 치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런 게 오랜기간 지속되고 고착화된 것이다. 이를테면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나 학생,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교사 양측의 권익이 적절히 조율되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는데 너무 한 쪽에만 무게가 실리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흘러왔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선 아예 대응이 어렵고 교육을 제대로 하기 벅찬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기 보단, 사회 전체가 이런 문제를 방임했고 이 같은 추세가 과하게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강기정·김준석·김동한기자 kangg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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