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이혼소송과 아동학대

입력 2024-04-18 20:11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4-19 14면
아이의 행복 우선시 한다면
학대 아빠와 갈라놓기 전에
둘 사이 관계회복 노력이 먼저
부모 잘못 있어도 역할 지속위해
만남 단절시키는 방향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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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안나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前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우리 아이를 학대하는 아빠와 만나게 할 수 없어요."

훈육 중 화가 나서 세 살배기 아들의 엉덩이를 걷어찬 아빠를 엄마가 신고해버렸다. 아빠는 위 아동학대 행위로 인해 자녀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받게 됐다.



이 부부는 이혼소송 중이었는데, 엄마는 아이가 아빠를 보면 학대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를 이혼 담당재판부에 제출했다. 이후 아빠와 아이는 1년 넘게 진행된 이혼 소송 내내 만나지 못했다.

가정법원에서는 이렇게 이혼과 아동학대 사건이 맞물려 진행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한 경우라도 사안이 심각하지 않아서 교육, 상담, 치료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형사법원이 아닌 가정법원이 담당한다.

보호자의 대부분은 부모다. 추가적인 학대가 우려되어 자녀를 보호할 필요가 있으면 가정법원의 아동학대 담당 판사는 접근금지를 명하기도 한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이혼 소송 재판장이었을 때 앞서와 같은 사례를 보면,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빠에게 자녀를 만나도록 허가했다가 또다시 아동학대가 일어나게 되면 어떡하지? 아이 엄마가 이혼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사건과 아이의 상태를 과장하는 것이 아닐까? 아빠가 아이를 때린 건 사실인데, 굳이 도와야 하나?

이혼 후 면접교섭을 허용할지 여부를 결정하여야 하는 이혼 소송 재판장으로서는 접근금지가 된 사건이라도 아이와 아빠의 상호작용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들의 관계를 제대로 보고 판단하지 않으면, 이후 법원의 손을 떠난 이들은 영영 회복의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법원 면접교섭실에서 아빠와 아이를 만나게 하고, 아동심리 전문가로 하여금 아이의 반응을 관찰해보도록 하였다.

뜻밖에 어린아이는 체벌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고 금세 아빠와 장난감을 가지고 즐겁게 놀았다. 조금 큰 아이들은 아빠의 진심어린 사과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으면 이내 마음이 풀리기도 하였다. 아빠에게는 대한민국 대법원 유튜브에 게재된 '아동학대예방교육' 동영상을 보게 하였는데, 아빠는 아이에 대한 체벌이 학대가 될 수 있음을 미처 몰랐다고 진심으로 후회한다고 했다.

아이의 행복을 우선시한다면, 아이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아빠와 갈라놓기 전에 아빠와 아이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궁극적인 목적 또한 마찬가지다.

아동을 학대한 쪽의 잘못을 옹호하려는 것도, 자녀를 걱정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비록 부모의 잘못이 있더라도 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지 만남을 단절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가정법원에는 한 가정과 관련된 사건이라면 사건의 내용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한 명의 전담 판사가 담당하는 '원 패밀리 원 저지'(one family one judge)라는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가정에 관련된 이혼, 아동학대 사건의 담당재판부가 다르고 관할 법원까지 다른 경우가 있다.

당장 위 미국 제도를 도입하기 어렵다면 가정법원 판사나 가사조사관에게 해당 가족과 관련된 모든 가정법원 사건 기록을 열람하고 근거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 어떨까.

그러면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접근금지가 정말 필요한 사안인지, 접근금지를 이혼에 악용하는 것인지 가릴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한 이혼을 위해 이혼과 아동학대, 면접교섭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해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이혼 소송에서 자녀의 주양육자를 누구로 정할지, 보조양육자와 자녀의 면접교섭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의 문제는 누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이혼으로 부부라는 이름은 끝나지만, 부모라는 역할은 함께 계속되기 때문이다.

/전안나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前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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