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 일상의 공포가 되다·(上)] 삶을 파괴하는 폭언

말 한마디로 사람 잡는다
입력 2023-08-08 20:48 수정 2023-08-13 14:05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8-09 1면

악성민원 관련 경기도청 민원실 (14)
교원과 공무원 등을 향한 민원인들의 욕설 및 폭언, 폭력행위 등 악성 민원 피해가 늘어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사진은 8일 오전 경기도청 열린민원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2023.8.8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최근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교단을 뒤흔드는 악성 민원이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비단 학교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악성 민원인, 블랙 컨슈머의 갑질과 폭언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야기해 누군가는 오랜 기간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음식점이며 병원이 하나둘 문을 닫는다. 급기야 경비원이, 교사가, 공무원이 생을 마감한다.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제도 손질의 움직임이 일지만 이마저도 잠시, 악성 민원은 형태와 장소를 달리해 또 다시 누군가의 일상을 송두리째 망가뜨린다.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은 채 사회 전 분야를 흔드는 악성 민원의 실태를 조명하고, 구조적 원인과 해법을 살펴본다. → 편집자 주·관련기사 3·9면([악성민원, 일상의 공포가 되다·(上)] 욕설은 예사 폭행·성폭력까지… 10명 중 6명 '이직·퇴직 고민')

'양주 고깃집 모녀 사건' 피해자
2년 넘게 법정 다툼… 대법까지
"가만 안 둬" 협박 교사들 불안
"돈 내놔. 너 과부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양주시 옥정신도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진하(36)씨는 2021년 5월의 어느 날을 잊지 못한다. 여느 때처럼 평범했던 그 날은 한 모녀의 등장으로 박씨에게 지울 수 없는 악몽이 됐다.

모녀는 자신들이 식사한 자리 바로 옆 테이블에 다른 손님들이 앉아있는 점을 문제 삼았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위배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음식점이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음식값을 환불해줘야 한다는 요구마저 해왔다. 박씨가 이를 거부하자 곧바로 거친 욕설과 협박이 날아왔다.

모녀의 고성은 그날 하루에만 그치지 않았다. 수차례 식당으로 전화를 거는 것은 물론 온라인상에서의 별점 테러 등을 서슴지 않았다. 박씨는 이른바 '양주 고깃집 모녀 사건'의 피해자다. 그는 결국 고깃집을 1주일간 나가지 못했다. 상당기간 전문적 상담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존중할만해야 존중을 하죠."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 A씨는 서이초 교사의 일이 남 일 같지 않다. 훌륭한 교육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은 이곳 학교로 발령을 받은 지 얼마 안 돼 벌어진 학교 폭력 사건으로 산산조각났다.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A씨는 온갖 폭언에 노출됐다. "선생 자격도 없다" "고소하겠다" "우리 아이는 착한데 선생님 때문에 신고가 된 것" "그런 것 하나 못 막나"라는 말을 짧게는 10여분, 길게는 30분 넘게 들어야 했다.

대부분은 일방적이었다. A씨의 말을 들으려는 학부모는 거의 없었다. 밤 11시에 전화를 걸어 "부모로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학부모마저 있었다.

3
교원과 공무원 등을 향한 민원인들의 욕설 및 폭언, 폭력행위 등 악성 민원 피해가 늘어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사진은 8일 오전 경기도청 열린민원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2023.8.8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폭언과 협박을 들을 때마다 A씨는 공포에 휩싸였다.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무너진 것은 물론, 개인의 삶에도 큰 트라우마가 됐다. 학부모들의 발언 하나하나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그는 "그땐 정말 무서웠다"고 어렵사리 말했다.

악성 민원이 일상을 파괴하고 사회를 좀먹고 있다. 2021년 양주의 한 고깃집이 2023년 의정부의 한 학교가 됐을 뿐 악성 민원과 갑질은 어제도,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사회 전 분야에서 악성 민원에 따른 피해가 극심해지자 법이 강화되고, 크고 작은 대응책이 잇따르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악성 민원, 갑질 피해자들 다수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서이초 교사 사례와 같은 극단적인 결과마저 초래하기도 한다. A씨 학교와 같은 지역에 있는 다른 초등학교에선 2년 전 교사 2명이 학부모 갑질을 이기지 못해 6개월 새 잇따라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때로 장기간 소송에 내몰리기도 한다. 양주 고깃집 사건의 박씨는 2년이 넘은 지금까지 가해 모녀와 법정 다툼 중이다. 지난해 항소심에서 모녀에게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지만 이들은 판결에 불복하며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소송엔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크나큰 정신적 고통이 수반되지만 그럼에도 박씨는 끝까지 임해 명확한 법 집행 기준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악성 민원이 더 이상 먼 일이 아닌 지금, 누구나 일상의 공간에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강기정·김동한·김대훈기자 kanggj@kyeongin.com

2023080801000319300016202

 



경인일보 포토

강기정·김동한·김대훈기자

kanggj@kyeongin.com

강기정·김동한·김대훈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