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촉진자'의 딜레마

김창수

발행일 2019-04-17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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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마친 文대통령 중재역 곤궁
비핵화 협상 빅딜-스몰딜 美北간 큰 격차
상호불신탓 합의내용 이행 논의 교착상태
불이행땐 제재 복원 '스냅백' 장치 고민을


김창수-새프로필 사진2
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교착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카드는 보이지 않는다. 일괄타결의 빅딜을 선호하는 미국과 동시적 상응조치의 스몰딜을 내세우는 북한 간의 견해차를 좁히기 어려운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첨예할수록 중재자의 지위도 백척간두처럼 위태롭다. 비핵화 협상에 대한 야당 측의 회의적 주장도 '촉진자'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의 하나로 제시했다. 미국이 원하는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북한에게 비핵화 검증의 명분을 제공한다면 교착 타개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제안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이 와중에서 북한은 한국이 중재자를 자처하며 강대국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불만스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처럼 중재자는 머리 둘 곳 없이 늘 곤궁하다. 이해관계가 다른 갈등과 분쟁의 당사자들을 협상장으로 불러내 화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양보 없는 타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양보를 요구할 뿐 먼저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협상이 삐걱거리면 중재자가 편파적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협상이 결렬되면 중재자는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된다.

선택지가 좁아진다고 해서, 또 처지가 곤궁하다고 해서 중립적 지위로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미국과는 비핵화 목표를 같이하며 북한을 상대하는 플레이어이며, 무엇보다 비핵화 협상의 과정과 결과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추진되고 있는 남북교류의 마당에서도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닌 주역이기 때문이다. 비핵화 협상의 진척과 평화체제의 확립은 민족의 생존 전략이며, 전쟁의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공동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착상태가 2017년과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비할 바 아니며, 미국과 북한이 협상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남북정상회담의 계기는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3차 북미정상회담을 성과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 실효적 지렛대가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촉진자(facilitator)란 집단 간 의사소통 촉진 기술을 통해 이해 당사자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거나 공동의 과제를 도출해내는 역할을 수행하는 역할이다. 촉진자는 공감적 이해와 수용적 태도를 갖춰야 하며, 당사자들이 개방된 마음과 합리적 사고를 통해 창의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핵화협상의 어려움은 한국전쟁 이후 70년간 적대시해왔던 국가인 미국과 북한, 북한과 한국 간의 협상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문턱을 높이려는 매파들에게 둘러싸여 있듯이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미국식 비핵화 방안을 수용할 경우 핵 보유국의 '위업'과 지위만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다른 길' 카드를 내보이며 협상결렬에 대비한 출구전략을 시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상호불신이다. 비핵화 협상과 남북교류는 지난해 판문점선언, 싱가포르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합의를 차근차근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방법이다. 미국은 북한의 동시상응 원칙을 핵폐기를 미뤄둔 채 여러 단계로 나눈 스몰딜로 실리만 취하는 살라미 전법이 아닌가 의심한다. 북한도 미국의 '불가역적 비핵화'를 전제로 한 일괄타결 방식에 대해 비핵화 조치 후 상응조치를 강제할 수단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합의 이행에 대한 상대방의 대응을 신뢰하지 못해 논의는 답보 상태이다.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의 내용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복원함으로써 이행을 보장하기 위한 스냅백(Snapback) 장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신 일괄타결이 아니라 비핵화를 두세 단계로 나누어 성실한 이행과 상응하는 조치의 선순환을 이뤄 나가는 것이다.

/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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