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월요논단] 바람풍이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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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문학박사
세상살이의 즐거움을 빼앗기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나 그나마 일상도 망가지게 하는 것이 선거철이다. 서로 허물을 들추어내기에 온통 눈이 뻘겋다. 그런데 남의 눈에 티끌을 보면서 정작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는 듯하다.

항간에 떠도는 '풍수'의 논란이 이와 같다. 가령 머언 길을 가고 있다고 하자, 그것도 여름날이라고 하자. 짐도 한 짐 지고서 오랜 시간 먼 길을 걸었다면 몸도 마음도 힘겨울 것이다. 그래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기왕 쉬려면 따가운 볕도 피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줄 그늘을 찾아 편안한 자리를 택하고 싶지 않겠는가? 일부러야 햇살 아래에 뾰족한 돌멩이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하겠는가? 내가 아는 풍수란 이런 정도의 상식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랏일에 풍수설이 작용한다' 하니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다. 풍수에 대한 잘못된 지식도 문제이지만 거짓된 정보를 맹신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는 바담풍 하고, 누군가는 바람풍 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모두가 바담풍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한 우려를 떨치고자 이 글을 쓴다.  


다산은 풍수설을 "꿈속에서 꿈꾸고
속이는 속에서 또 속이는 연극이다"
했다니 얼마나 신랄한 비판이었나


조선후기 대표적인 개혁사상가인 정약용 선생은 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풍수설을 맹신하는 당시의 관습을 비판하였다. "목민심서(牧民心書) '청송하(聽訟下)'에서 묘지를 둘러싼 송사(訟事)가 당시 강력범죄의 절반에 이른다고 하였다. 부모의 묘를 명당자리에 쓰기 위해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폐해가 컸다"고 하였다. 그리고 "풍수가 참으로 길흉화복과 연관된다면 왜 지사(地師)들이나 그 후손들이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는가"라고도 하면서 풍수설을 비판하였다. 다산(茶山)이 단지 세태를 비판하는 것에 그쳤다면 그 울림은 크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다산은 풍수설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스스로 실천하였다. 정약용의 만년 유택이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이유이다. 능내리 마현에는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與猶堂)이 있는데 그가 유언하기를 "내가 죽으면 무덤을 쓸 때 지사(地師)에게 묻지 말고 가원(家園)에 묻어라"하였다. 그리하여 다산은 자신이 태어난 생가의 뒷산에 묻히게 된 것이었다.



박제가와 이규경도 기복적 풍수설에 대하여 비판하였고 정조(正祖) 시대 대사헌 김하재는 풍수설의 폐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대체로 간사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풍수설(風水說)에 빠져서 주술로 제압하여 복종시키고 복을 구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니… 신은 평소 풍수를 본다고 하는 방법이 애매모호하고 이치에 맞지 않아서 사람을 망친 경우가 매우 많은 것을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논한 것은 군주와 어버이의 체백(體魄)이 묻힐 평안한 자리를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어찌 근세에 지사(地師)들이 '아무 자리에서는 아무 공(公)이 나올 것이고, 아무 자리에서는 아무 경(卿)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하였다.

꼭 오늘날 우리의 정치권과 닮았다
자신 사명 다하는게 복됨을 깨쳐야


그런데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은 기복적 믿음인 듯하다. 아직도 풍수를 논하고 있으니 가여울 뿐이다. 다산은 심지어 풍수설을 가리켜 "아, 이야말로 꿈속에서 꿈꾸고 속이는 속에서 또 속이는 연극이다"라고 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신랄한 비판이었나. 그럼에도 '허망한 꿈속에서도 또 허망함을 꿈꾸고, 속이고 속이다 보니 자신도 속이는 꼴'이 꼭 오늘날 우리의 정치권과 닮았다. 미망(迷妄)에 빠진 이들이 있다면 속히 돌아와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복이 됨을 깨치길 바란다.

'너는 바담풍 해도 나는 바람풍 한다'와 같이 '풍수'의 논란도 이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양심은 어차피 각자의 몫이지만, 제발 바람풍 하자.

/김구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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