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심 '법정 최고형' 15년 파기… 사기 혐의 액수중 68억만 인정
1심 실형 공범 9명 무죄·집유… 피해자들 "처음부터 속여" 분통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기자회견. /경인일보DB |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를 저질러 1심에서 사기죄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은 일명 '건축왕' 남헌기(63)씨가 항소심에서 징역 7년으로 감형됐다.
그와 함께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던 피고인들은 무죄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인천지법 형사항소1-2부는 27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사기, 부동산실명법 위반,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남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4∼1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 공범 9명에게는 무죄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남씨 등은 2021년 3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세입자 191명에게서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남씨의 사기 혐의 액수 가운데 68억원만 인정했다. 남씨는 대출금과 전세보증금 수입에만 의존해 대출 이자, 직원 급여, 보증금 등을 돌려막기 하던 중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할 처지가 됐는데, 그가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2022년 1월 이후에 받은 보증금만 범죄 수익으로 본 것이다.
또 공범 9명에 대해서는 같은 해 5월27일에야 남씨의 재정 상태를 인지했을 것으로 보고, 이 시점 이후 보증금을 받은 사례만 유죄로 인정했다. 일부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들에 대해선 직접적인 임대차 계약의 권한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신규 계약은 보증금 전액을, 증액 계약은 증액된 금액만큼을 편취 금액으로 인정했다"며 "해당 시점 이후 같은 금액의 보증금으로 임대차 계약을 갱신한 경우는 보증금 수수 행위가 없어 범죄 사실 증명이 없는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공소장에 (피고인들이) 임대차 보증금 상당 부분을 편취했다고 썼는데, 전세 계약을 신규·증액·동액으로도 구분하지 않았다"며 "피해자마다 각기 사정이 다른데, 이를 (하나로) 인정한다면 피고인의 방어권 침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남씨 일당 일부는 항소심 재판이 시작된 지난 6월부터 범행 가담 혐의를 부인했는데, 재판부가 이들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보증금 미납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다" "직원으로 일했을 뿐 (계약) 권한은 없었다" "남씨가 진행하는 사업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 바 있다. (6월19일자 6면 보도)
이들이 1심보다 형량이 크게 줄고, 일부는 무죄를 선고받자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남씨 일당은 처음부터 피해자들을 속이고 계약했는데, 이게 사기가 아니라니 말도 안 된다. 피해자 모두가 충격이 크다"며 오열했다. 김병렬 부위원장은 "피해자들은 3년 동안 싸우고 있는데 억울하고 허무하다. 사기로 돈 벌기 쉬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씨 일당이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에서 전세를 주고 빼돌린 보증금은 현재까지 수사당국에 의해 확인된 것만 약 536억원(665가구)에 달한다. 대책위는 피해 규모를 이보다 많은 2천753가구, 보증금 금액으로는 2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남씨 일당에게서 전세사기를 당한 20·30대 청년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해 5월 남씨와 함께 전세사기에 관여한 임대인, 공인중개사 등 35명을 추가로 기소하면서 범행 가담 정도가 큰 18명에게 범죄집단조직죄를 적용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 사건 재판은 오는 10월 중순까지 공판 기일이 잡혀 있다.
/변민철·백효은기자 bmc0502@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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