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호텔 화재

'부천 호텔' 한 둘 아니다… '참사 예약' 노후 숙박시설

입력 2024-08-27 20:33 수정 2024-08-28 09:26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8-28 7면

화재 예방·피난대책 부실

비상구엔 적치물·기한 임박 소화기
스프링클러 없고 완강기 무용지물
"저렴해 저소득층은 선택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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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호텔 화재사고 이후 노후 숙박시설에 대한 총체적 부실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화재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사진은 27일 경기도내 한 숙박시설 내부에 설치된 노후화된 완강기. 2024.8.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27일 찾은 수원시의 한 오래된 모텔. 건물 3층의 좁은 복도 끝 초록색 비상구 전등 아래엔 두 개의 문이 나란히 있었지만, 어느 문이 비상구인지 표시돼 있지 않았다. 둘 중 하나의 문 손잡이를 잡아 아무리 돌려봐도 꽉 잠겨있을 뿐 열리지 않았다. 바로 옆 다른 문을 열어 보자 비상계단이 나왔다. 하지만 이곳마저도 각종 적치물이 가득 쌓여 있었고, 여기엔 유통기한이 임박한 소화기들까지 널브러져 있었다.

19명의 사상자를 불러온 부천 호텔 화재가 발생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던 이날 경기도 내 노후 숙박시설 곳곳에선 여전히 화재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2000년 문을 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숙박시설에는 객실과 복도 어디에도 스프링클러가 보이지 않았다. 객실 내부에 붙여진 비상시 대피 경로 안내도마저 잘못 표기된 채 방치돼 있었다. 소화기가 놓여져 있다고 그려진 장소에는 소화기는 커녕 아무런 화재진압 장비도 없었다. 더욱이 출입문 쪽으로 탈출이 어려울 때 유일하게 외부로 탈출할 수 있는 객실 내 창문마저 외벽자재 등에 의해 막혀 있었다. 창문 옆에 설치된 완강기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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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스프링클러가 없어 화재에 취약한 경기도내 한 노후숙박시설. 2024.8.27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대피로 부실 문제는 오래된 번화가 상권 등을 중심으로 20년 넘게 영업 중인 숙박시설들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다. 2002년 개업한 수원시 팔달구의 한 숙박시설 객실 창문도 화재 시 대피로로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개로 분리된 창문 가운데 여닫을 수 있는 부분은 아래쪽 작은 창문뿐이었지만, 성인 여성 1명이 몸을 빠져나가기에도 버거운 크기였다. 유사시 위쪽 넓은 창문을 깨뜨릴 만한 도구도 보이지 않았다.



비상구 역시 대피로로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정확한 대피 경로 안내도를 찾아볼 수 없었던 건 물론, 어렵게 찾아낸 대피로에는 이불 커버나 수건 등의 빨랫감과 청소도구를 비롯한 사다리 등 온갖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비상구는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닫혀있어야 하지만, 일부 층은 벽돌이나 소화기 등을 세워 닫히지 않도록 고정해 둔 모습도 발견됐다.

제2의 부천 화재 참사 우려가 높은 이같은 실정에도 숙박시설 측은 안전에 불감한 상태다. 도내 한 숙박시설 관계자는 "객실 내부 흡연 등 투숙객의 부주의한 행동이 발화 원인인 경우가 많아 그런 부분을 주의시키는 수준"이라며 "1년에 2번씩 소방시설 점검을 통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후 숙박시설 화재 우려는 고스란히 투숙객의 몫으로 남는다. 수원의 한 숙박업소에서 만난 50대 남성 A씨는 "다른 모텔보다 저렴한 값에 이용하다 보니 안전 문제는 기대를 안 한다"며 "부천 화재 사건을 접하고 불안감은 좀 있지만 저소득층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고 했다.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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