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으로 공개한 '한글옷'
美부통령·IMF 총재 등
세계적 인사들도 입어
디자인 독점 행사 않고
동대문 등서 판매 원해
19일 새로운 상품 공개
"보존에 머물지 말고, 계승을 넘어 일상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9년째 '한글'과 사랑에 빠진 디자이너 이상봉(사진)씨의 말이다.
'한글' 하면 떠오르는 사람 1위는 시대를 불문하고 '세종대왕'이다. 그 뒤를 이은 사람은 집현전 학사도 한글 학자도 아닌 이상봉씨다.
잘 다듬은 수염과 말끔하게 민 머리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인 환한 미소는 '한글'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전 미국 부통령인 앨 고어의 한글 티셔츠와 현 IMF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애용하는 한글 스카프를 만든 국내 최초의 '한글옷' 디자이너다.
이씨가 한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6년 한불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열린 파리 패션쇼에서 '한글옷'을 선보이면서이다.
'한글옷'을 선보이겠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그를 말렸다.
그는 "한글옷을 무대에 올리겠다고 했을 때 작업을 함께 한 제자들과 다른 패션 디자이너들이 말렸어요. 왜냐하면 촌스러워 보이니까…. 또 감히 한글을 옷에 사용한다는 게 괘씸하다고 생각한 거죠"라고 말했다. 사실 그 역시도 수교기념 패션쇼에서만 한글옷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패션쇼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외국 패션 관계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한글을 처음 접한 외국 디자이너들은 한글을 일종의 기호, 디자인의 하나로 보고 흥미를 보였다.

한글옷을 냉대했던 국내 디자이너계와 사람들의 시선도 변했다. 그는 "패션쇼 이후 저를 만류했던 사람들이 반대하던 마음을 돌려 저를 응원했어요. 특히 젊은 친구들이 3만 통이 넘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줘 용기를 얻었죠"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는 한글 패션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고, 한글을 새긴 원단을 지원해 주는 원단업자, 붓글씨로 쓴 한글 폰트를 무료로 기증한 서예가 등 제작을 돕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씨가 만든 한글옷은 한국을 대표하는 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상징물이 됐다. 그는 9년째 코이카 대원들을 위한 한글옷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또 올해는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와 함께 한글 3만자로 만든 충무공 이순신 현수막을 제작하는 데 동참했다.
한글과의 인연은 자연스레 우리 문화와 한글을 알리는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관련 제품도 다양해져 '휴대전화 케이스' 등 다양한 상품에 제작되고 있다.
이 정도 인기라면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길 만한데, 그는 한글옷으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허 신청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한글은 저만의 것이 아니에요. 한글은 모두의 것이죠"라며 "인사동과 동대문 의류타워에서 제 한글옷을 카피한 옷이 팔리길 간절히 바라요"라고 말했다.
요즘에는 한글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그는 "요즘은 화장실 타일을 보면 한글 모음, 자음이 보이고, 매듭을 봐도 한글의 글자 하나 하나가 보여요"라며 한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애정이 깊은 만큼, 한글 바로 쓰기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 그에게 요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SNS에 올린 그의 글에 '한글 띄어쓰기'와 '받침'이 틀린 것을 지적하는 네티즌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요즘 SNS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이 문장이 맞는지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올리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568돌을 맞은 한글날을 맞아 그는 "한글에 대한 신성함을 벗어나 우리 젊은 친구들이 한글을 갖고 놀았으면 좋겠어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일상화시켜서 패션이든 디자인이든 분야를 막론하고 폭넓게 도전을 하길 진심으로 바라요"라며 솔직한 견해를 밝혔다.
'문자'로서의 '한글'의 틀을 깨고 다양성을 강조한 이상봉 디자이너는 오는 19일 서울에서 열리는 패션쇼에서 새로운 한글옷과 함께 그 동안 연구한 한글상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유은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