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식의 다시 보는 한국 프로야구 명장면·20]1995년, 방위병 출장금지 조치

딱걸린 군인 투수 '전화기 든 군부대'

경인일보

발행일 2018-09-11 제19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퇴근후 평일 저녁·주말 이용 출전
양준혁 시즌절반 소화 홈런왕경쟁
'특권' 불편한 시선 10년 관행 사라져


2018091001000644800031421
1995년 4월 22일, 부산 사직에서 롯데가 삼성을 불러들여 홈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롯데의 선발투수는 1989년 부산고등학교를 대통령배 우승으로 이끌고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리고 1994년 롯데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해 곧장 7승을 올리며 기대를 모은 2년 차 강상수였다.

시즌 두 번째 등판이었던 강상수는 그날도 3회까지 삼성의 강타선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4회 초가 채 끝나기 전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김실과 이정훈을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기는 했지만 크게 흔들린 것까지는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아직 경기 초반이었다.

관중들은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저녁 뉴스를 보면서야 알 수 있었다.그가 갑자기 강판해야 했던 이유는 TV를 통해 경기를 보고 있던 누군가가 경기장으로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강상수는 첫 시즌을 마무리할 즈음 방위병으로 입대한 군인 신분이었고, 주말을 이용해 홈경기에 등판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침 그 경기를 TV를 통해 보게 된 소속부대 관계자가 경기장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중단'을 요구했던 것이다.

10년 이상 불안하게 이어져 온'방위병의 홈경기 출장'이라는 관행은 그렇게 확실히 깨졌고, 그 이후 한국야구의 물줄기는 크게 방향을 바꾸어 흐르기 시작했다.

1982년, 프로야구위원회 초대 총재였던 서종철은 국방부장관을 지낸 인물이었고, 무엇보다도 '프로야구의 성공을 위해 각 부서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라'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런 그의 요구를 국방부가 거절할 수 없었고, '복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에서 방위병의 경기 출장을 허용한다'는 양해가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위수 지역'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홈경기에만 출장하는 조건이었지만, 퇴근 후의 시간인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만 경기가 열린다는 점에서 '시즌의 절반'은 치를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 첫 수혜자는 1984년에 입대한 OB의 '학다리' 1루수 신경식이었고, 1993년 프로 입단과 동시에 상무에서 방위부대로 소속을 바꾼 삼성의 신인 양준혁은 그렇게 시즌의 절반만 뛰면서도 치열한 홈런왕 경쟁을 벌이는 충격을 몰고 오기도 했다.

대개 대졸 신인들은 첫 시즌을 보내며 '프로감각'을 익힌 뒤 2년차를 방위병 신분으로 보냈고, 3,4년차부터 전성기를 향한 본격적인 스퍼트를 시작하곤 했다.

하지만 문민정부 3년 차를 맞이하던 한국인들은 슬슬 '특권'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동안 사회적 논의의 대상조차 될 수 없었던 '군대'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그것은 무려 30여 년간 군사정권 아래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군대라는 것이 가지는 모순된 의미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군대란 그 자체로 가늠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하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힘 좀 쓴다는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자기 아들만큼은 빼고 돌려 '빡빡 기며' 삼 년을 보내는 서민의 자식들을 서럽게 만드는 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문민'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당시의 정부는 그런 국민적 감성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다. 문제라면 그들이 늘 그랬듯, 맥락 없이 터뜨리는 '깜짝쇼' 방식의 일 처리에 있었다.

그 해 봄, '군인은 영리행위를 하거나 겸직할 수 없다'는 군인복무규율에 근거해 각 부대가 해당지역의 프로야구팀에 방위병 선수의 출장 불가방침을 통보했고, 그렇게 갑작스레 내려진 방위병 출장금지 조치는 프로야구에 떨어진 날벼락이었다.

1995년 봄을 기준으로, 방위병 신분의 프로야구선수는 모두 55명이었다. 10명과 9명이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서 군부대로 출퇴근했던 방위병은 태평양과 빙그레가 가장 많았고, 5명씩이었던 OB와 해태가 가장 적었다.

하지만 정작 방위병 출장금지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은 LG와 해태였다. LG는 박종호(2루수)-유지현(유격수)-송구홍(3루수)으로 이어지는 주전 내야수 전원이 방위병이었고, 해태는 투수·타격의 새 기둥 이대진과 이종범이 방위병이었다.

4월27일, 이정린 국방부 차관은 '오랜 관행을 바꾸면서 유예기간도 두지 않으면 큰 혼란이 빚어진다'는 이유를 들며 한 발 물러섰다.

연말까지는 그대로 출장을 허용하되, 12월 이후로는 규정대로 출장을 금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 사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오가며 프로야구판을 들었다 놓았던 갈지자(之) 행보에 대한 비판여론이 치솟자, 다시 정부는 5월21일 국방부 제1차관보 손병익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김은식 야구작가

경인일보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