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투석, 엄마는 일터였는데… ‘방임죄’ 부모만 탓한다
위기 신호 감지한 정부·지자체, 정작 도움 없고 ‘친모 송치·친부 내사’
고의성 입증땐 처벌 불가피… “책임 묻기 전 돌봄 여건부터 마련하길”

경찰이 지난 2월 인천 한 빌라 화재로 숨진 고(故) 문하은(12)양의 친모를 방임 혐의로 송치한 데 이어 친부를 상대로도 관련 혐의가 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어려운 형편에서 양육하다 아이를 잃고 실의에 빠진 부모가 형사처벌을 받을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아동 권리 보호에 힘써야 할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 친모 이어 친부도 경찰 조사…혐의 입증되면 처벌 불가피
19일 경인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서부경찰서는 문양의 40대 친부 A씨를 상대로 아동복지법(방임) 위반 혐의 등이 있는지 입건 전 조사(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입건 전 조사는 범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어 수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사실관계 확인 등을 진행하는 절차다.
문양은 지난 2월 인천 서구 심곡동 빌라 4층에서 난 화재로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끝내 숨졌다. 방학 중 혼자 집을 지키다 발생한 참변이었다. 중증 신장질환을 앓는 아버지는 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가 있을 때였다.
경찰은 앞서 지난 3월 문양이 집에 홀로 있다가 위험에 처한 점과 집안 청결 상태 등 여러 정황을 토대로 친모를 아동복지법(방임)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다만 당시 친부는 건강 상태와 인지 능력 등을 고려해 입건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최근 보완수사를 요청하면서 경찰이 친모와 친부를 상대로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의 요청에 따라 보완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수사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 복지 사각지대서 방임되는 아동, 부모만의 책임일까
문양 가족은 지난해 말부터 전기와 가스요금이 밀리는 등 형편이 어려워졌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 같은 위기 신호를 감지했고, 행정복지센터는 수차례 문양 부모와 상담을 벌였다. 그러나 소득과 재산(차량) 등이 지원 기준에 맞지 않아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지역사회에서는 문양 가족에게 성금 등 온정의 손길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던 중 친모가 방임 혐의로 송치되자 ‘과도한 처사’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당시 국민의힘 소속 유승민(대구동구을) 전 국회의원은 자신의 SNS 계정에 “방임은 의식적으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인데 여건이 안 된 것까지 방임으로 처벌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문양 가족을 지원해 온 인천 서구의회 백슬기(민, 검암경서동·연희동) 의원도 지난달 10일 열린 제273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우리 사회는 이 가정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만약 수사 단계에서 방임의 고의성이 입증되면 부부는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련법에 따라 보호자가 아동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경제적 여건 등을 이유로 아동학대 사건 피의자를 처벌하지 않을 수는 없다”면서도 “입건을 했더라도 검찰이 가정의 상황을 고려해 기소유예나 낮은 구형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선처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다시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방임이나 위험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세원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며 “아동복지법은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로 아동과 그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수립을 명시하고 있다. 부모가 충실한 양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