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혼 관계 30대 남성 A씨가 여성 B씨를 납치 살해한 뒤 숨진 것과 관련, 이 사건 발생 1달 전 피해 여성이 가해 남성의 추가 폭행 사실과 구속 필요성 등이 담긴 600장 넘는 의견서를 경찰에 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 검토만 하다 구속영장 신청에 나서지 않으면서 참극을 막지 못했다. 가해 남성을 사회로부터 격리할 여지가 있었음에도 필요조치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경찰이 늑장 대응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1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4일 A씨를 폭행 등 혐의로 수사해달라는 고소장이 화성동탄경찰서에 접수됐다. 이 고소장은 상습 가정폭력 피해를 겪던 B씨가 낸 것으로, B씨는 이어 4월 17일 변호사를 통해 A씨의 지난 1~2년간의 추가 폭행 사실 녹취와 그에 대한 구속·압수수색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600여장의 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B씨가 이미 가정폭력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고소를 통해 A씨의 추가 폭행 사실을 밝힌 건 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동 중인 A씨가 찾아와 보복할 우려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고소장 제출 앞서 B씨는 A씨를 가정폭력으로 세 차례 신고했으며, 경찰은 지난 3월 3일 세 번째 신고 이후 B씨가 피해와 두려움을 호소하자 A씨에 대해 ‘100m 이내 접근금지 및 전기통신을 이용한 연락제한’ 등의 긴급임시조치를 했다. B씨는 이 조치에 따라 지인의 오피스텔을 거처로 삼아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12일 오전 A씨가 분리조치를 무시하고 B씨가 머문 오피스텔을 찾아 납치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외출하기 위해 집에서 나온 B씨를 제압하고 자신이 빌린 렌터카에 강제로 태운 채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머리에 두건을 씌웠으며 양손까지 결박했다. 이후 두 사람이 함께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 B씨가 달아나자 A씨는 그를 쫓아 흉기로 살해하고 범행 후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법률대리인을 통한 B씨의 추가 고소와 의견서가 제출되자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A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신청을 할 방침이었다고 해명했다. 다만 의견서 내용이 방대해 이를 검토하느라 시간이 소요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제출 자료가 600장이 넘어 내용을 살펴볼 시간이 필요했고, 내부적으로는 A씨에 대한 영장 신청을 결정하고 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전 가정폭력 신고 당시 구속영장 신청 시도는 없었느냔 물음에는 “분리조치가 이미 이뤄졌고 영장을 신청할 만한 사유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